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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어느 구석을 찾아봐도 善은 없다. 물론 선악의 관점에서 소설을 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을 터.
도시는 고대에도 있었고 중세에도 있었으나 지금이야말로 도시의 시대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새로운 기점의 시기를 산다. 이전의 시대는 역사로서 존재할 뿐이다. 모든 삶은 도시적이며 그 어느 곳도 도시가 아닌 것은 없다. 그것은 그래서 경이로운 것일까? 경이가 아니라 경악이다. 경악스러운 도시, 경악스런 도시에 대한 풍자가 이 소설의 본 의미가 아닌지?
이 소설의 시대적 시점은 1887년부터 1929년까지이다. 주인공 오노프레 부빌라는 몇년생인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에 비친 내용들로 보자면 1874년생이다. 바르셀로나에 나타났을 당시 1887년, 열 세살이었고 1929년 55세에 도시에서 사라진다. 만국박람회를 기점으로 의미있는 인간으로 등장하며 그 다음 만국박람회를 끝으로 자신의 의미를 소멸시킨다. 도시를 움직이는 실력자, 거부가 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전통적의미의 자본 축적은 없다. 부정과 불법과 폭력으로 부를 형성해 나가고 자신을 비롯해 주변에 교과서적, 전통적 의미의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있다면 아마도 자신의 어머니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정상적 인간이다. 그가 걸은 길이 현대의 도시이며 도시자본주의일 것이다. 우리의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도시가 폭발해 온 것도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결코 바르셀로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소설은 뭘 말하고 싶을까? 아니 내가 소설 속에서 뭘 보았을까? 결국 도시란 세균이 득실거리고 가스로 가득차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식중독걸린 아픈 배가 아닐까? 현대 도시자본주의의 실체는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에 다름 아닌듯.
수녀원에 들어간 여자 델피나가 죽기전에 남긴 편지;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검은색이 칠해진 커튼일 뿐이다. 커튼 저편에는 다른 삶이 없다. 같은 삶이 있을 뿐이다. 커튼의 다른 쪽 면을 벗어나야 비로소 내세에 이를 수 있다. 커튼만 쳐다보고 있으면 우리는 또다른 삶을 보지 못한다. 커튼 저편의 삶도 이편의 삶과 마찬가지다. 현실이 환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커튼을 지나갈 수 있다..." |
| 정말 놀라운 소설이었다. 하구와 사실을 교묘히 엮이고 섞어서 바르셀로나 (스페인)의 역사를 보여주는데 작가의 말솜씨가 어찌나 대단한지 (패러디 유머 풍자 등등 모든 기법 활용) 홀딱 빠져 읽었다. 마치 한국의 천명관 (고래)같은 소설가였다. 이 책 읽는 동안 1888년부터 1930년까지의 역사의 큰 흐름을 알게 된 것 같음 ㅋㅋ 바르셀로나란 도시에 정 붙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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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도시 = 바르셀로나, 그 안에서 오노프레 부빌라라는 인물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다. 두번의 만국박람회 사이 기간 중 거부의 반열에 오르고 두번째 만국박람회 개최 날 애인과 비행기를 타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인물, 한낱 산골 무지렁이에서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인물 보다는 조그만 어촌 마을에서 세계적인 대도시가 된 바르셀로나 라는 도시 자체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