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석은 죽은 자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이다. 비석에 새겨진 글들은 남은사람들이 죽은 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나타내는 표지석이다. 그런 비석에 글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할까? 아마 죽은 이들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거나 혹은 누구인지는 알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가 되었던 그런 백비를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욱이 우리가 죽은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그런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일합방부터 광주5.18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이름 없이 희생한 사람들 혹은 그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비석을 세울 수도, 설사 비석을 세운다 해도 무어라 새길 수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는 제주 4.3평화공원 전시관에 누워있는 백비를 보고서 ‘백비가 역사를 머금고 현실 속에 세워질 수 없더라도 내 마음에 세워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들어보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총 8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은 1장에서 5장까지는 일제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가산을 정리하여 식솔들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 이들 모두 서간도에서 독립운동 기지의 중심기관인 경학사와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위한 인재양성소 역할을 한 신흥무관학교 설립과 운영에 참여했고, 후일 임시정부에도 관여했지만 이들의 삶에 남은 것은 명예와 부귀영화보다는 희생과 상처의 흔적뿐이다. 1932년 두 분 모두 만주에서 산화했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비석하나 세울 수 없었기에 저자는 마음속에 백비를 세우지 않았나 싶다. 단재 신채호와 백암 박은식, 그리고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삼의사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만 저자는 그들의 삶 하나하나를 되짚어 나간다.
저자는 특히 상해의 만국공묘에 있는 묘지의 주인공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상해의 만국공묘는 외국인 공동묘지를 뜻했으나 쑨원의 부인 쑹칭링이 이곳에 묻히면서 쑹칭링 능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이 능원의 외국인 묘원에는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묘지가 14기 있는데, 이 중 11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거나 봉환될 예정에 있다. 남은 묘지 중 두 개는 조상섭과 임계호라는 표석이 남아있으나 묘비도 없이 남겨진 묘 하나는 동농 김가진의 묘로 추정된다고 한다. 3.1운동이후 설립된 최대의 항일조직인 비밀 독립운동단체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를 지냈던 동농은 많은 사람들이 체포, 투옥되자 망명길에 오른다. 임시정부의 어른 역할을 했던 그는 독립운동에 뛰어든 대한제국의 유일한 대신이었고 그때 나이가 74세였다고 한다.
우리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들 뒤에서 그림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임시정부에도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한 존재들이 많았다. 아버지 김가진을 따라 망명길에 오른 김의한 역시 임시정부의 그림자로 백범을 수행했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망명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 김의한의 아내 정정화는 스무 살 여인의 몸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김의한이 임시정부 27년의 세월을 그림자처럼 뒷받침했다면 정정화는 그림자의 그림자로 살면서 임시정부 안살림을 혼자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런 정정화가 후세들이 반드시 기억해주기를 원했던 사람이 동암 차리석이다. 독립협회에서 처음 도산을 만나 이후 평생을 도산과 함께 한 차리석은, 신민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후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임시정부의 비서장으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임시정부와 함께 했던 그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역사를 품고 곳곳에 서 있는 비석들은 그림자와 같다. 드러나지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세워진 자리에서 온갖 풍상을 맞으며 때론 깨어져 나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파묻혀 보이지 않는 비석도 많을 것이다.’(141쪽)라는 저자의 글은 왜 그가 백비를 마음속에서나마 세우려 했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저자가 살펴보는 현대사의 백비는 6장과 7장으로 제주 4.3사건과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비록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아직까지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1948년 4월3일 막이 오른 4.3사건으로 희생된 사람 수는 2만5천에서 3만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초토화 작전이 진행되기 전까지의 희생자 수는 대략 1천명미만이었고,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 1948년 10월 이후 5개월 동안 집단살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1980년 연좌제가 폐지될 때까지 대를 이어가며 고통 받았다. 4.3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지만 ‘역사는 현장에 있던, 현실을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에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이 책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던 제주 4.3평화공원 기념관에 전시된 백비는 4.3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의 역사를 상징하는 비석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광주 5.18민주화운동 역시 마찬가지이다. 엄연한 사실임에도 진영논리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필요할 때 제대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역사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시대, 종교조차도 진영논리에 편승해 희망보다는 절망을 조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비석, 지켜야 할 마음’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이름 없이 희생된 이들이 품었던 마음의 뜻인 심비(心碑)이다. 이회영이, 신채호가, 안중근이, 그리고 4.3의 제주도민과 5.18의 광주시민이 한결같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에 새겼던 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심비에 새긴 그들만의 이야기가 그들의 삶을 역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되새기는 것은 과거의 비극과 잘못을 들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역설하는 저자는, 우리도 내 인생의 품은 뜻을 한 문장으로 마음속에 새길 것을 주문한다. 그런 심비가 묘비가 되는 삶이 잘 살아온 인생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비가 있다면 마음의 비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고, 아직 백비라면 자기만의 이유를 새기자고 말하는 저자, 그것은 ‘누워있는 백비를 세우는 일은 심비를 품은 의식이 각성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질곡의 우리역사 속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다간 그들, 명예나 이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그들의 삶을 읽으면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본다. 더불어 내가 마음에 품은 뜻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나의 심비는 무엇일까? 내 묘비에 한 문장을 쓰게 된다면 나는 어떤 문장이 새겨지기를 원할까? 두고두고 생각해보게끔 만들 것 같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10여년 전 전남 나주에 답사를 갔을 때, 조선시대의 명문장가로 잘 알려진 임제(林悌)의 무덤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의 무덤 앞에는 아무 기록도 새겨져 있지 않은 백비(白碑)가 세워져 있었고, 이것은 그의 유언에 따른 것이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당쟁이 심하던 시기 벼슬을 떠나 강호자연에서 풍류를 즐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당대의 명기인 황진이의 무덤을 지나면 지은 시조로 인해 파직을 당하는 등 호방한 성품을 지녔던 인물이기도 하다. 임제는 죽음을 앞두고 사방에서 황제라 칭하는데 오직 조선만이 속국으로 자처하고 있으니, 이러한 욕된 시대에 죽더라도 곡(哭)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그러한 뜻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묘비에 아무 것도 새기지 않은 ‘백비’를 남겼던 것이다.
‘백비(白碑)’는 뜻 그대로 아무 기록도 새기지 않은 비석을 일컫는다. 어쩌면 너무도 할 말이 많지만, 비석에 차마 다 풀지 못할 뜻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보았던 ‘백비’를 접하고,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비석에 새기지 못한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라고 붙였다. 최근 의열단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벌였던 김원봉의 훈장 추서 문제가 이념적 대결의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일제 강점기 항일 투쟁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이 되고 6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여전히 이념의 문제가 해당 인물을 평가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심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이 기획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전체 8장으로 구성된 목차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시간적 순서에 따라 1980년의 광주민주항쟁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1장은 ‘작은 비석에 담을 수 없는 큰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전재산을 처분해 가족들을 이끌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의 업적을 조명하고 있다. ‘비석보다 무거운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이란 제목의 2장에서는, 뛰어난 역사가였던 신채호와 박은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들의 업적인 이미 충분히 알려졌지만,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있는 소제목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듯이 저자는 그들의 업적에 비해서 그 의미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3장은 ‘돌아오지 않은 무덤 찾아오지 않은 독립 상해만국공묘’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다가, 이국의 땅에 묻힌 김가진과 정정화 그리고 차리석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4장은 항일 투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데, ‘비석만 세워놓아도 세상을 떨게 할 삼의사묘역’이란 제목으로 모두 4명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최근 다시 항일 투사들의 추모공간으로 꾸미기로 결정된 효창공원에 묻힌, 안중근과 윤봉길 그리고 이봉창과 백정기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안중근의 시신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특히 ‘청년 아나키스트’로 소개되고 있는 백정기의 삶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개인들의 삶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5장에서는 ‘양화진 언덕 위에 선 역사의 증인들’이란 제목으로 항일에 참여했던 외국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상이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행적을 다룬 내용이라면, 6장에서는 해방 이후 남북 분단의 와중에서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가 처음 백비를 목격하고 이 책을 기획했던 단초를 제공한 사건인 것이다. ‘글자 하나 없고 세울 수도 없는 백비’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이념적인 문제로 그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통한의 세월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역시 과거 ‘4.3평화공원’을 방문했을 때, 책으로만 접하던 그 참상을 비로소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다. 지금은 ‘4.3’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그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에 간단히 언급되고 있는 ‘여순사건’에 대해서도 이제부터라도 진상 규명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7장에서는 ‘오후 5시 18분에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제목으로, 광주민주화항쟁의 비극적인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최근 전두환의 자서전으로 야기된 광주항쟁에 대한 극우세력들의 폄훼에 맞서, 역사적 단죄가 이뤄졌으면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마지막 8장은 ‘지켜야 할 비석 지켜야 할 마음 심비(心碑)’라는 제목으로,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 마음 속에 주체성으로 형성하는 것이 바로 ‘마음에 품은 뜻(心碑)’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제안이 담겨 있다.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던 부분인데, 단 하나 역사 용어에 대해서 꼭 지적하고 싶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된 사건을 우리는 ‘을사늑약(乙巳勒約;1905)’과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것은 강요된 조약이며, 국가의 치욕이라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는 명칭인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다루면서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경술국치’가 아닌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를 줄곳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을사조약’이나 ‘보호조약’이라는 용어도 종종 보인다. 아마도 그동안 식민사관에 의해 명오염된 명칭들에 너무도 오랫동안 노출되어 저자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사용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책의 내용에서 보여지는 항일에 대한 뚜렷한 저자의 의식만큼이나 적절한 용어 사용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추가로 책을 찍는다면, 초판의 이러한 부적절한 용어가 반드시 고쳐질 수 기를 기대한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비석- 흔히 비석에는 그 사람의 최종직위나 또는 여기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말이 써 있다. 서울의 남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인 우리집 근처에는 많은 선인의 묘가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 최고의 개혁정치가로 후세 사림들이 모두 그의 제자이기를 바라는 정암 조광조 선생, 그리고 포은 정몽주, 세종의 장인이었던 심온 선생, 정약용의 선조들이 내가 사는 지역 근방에 묻혀 있다. 조광조의 묘비다. 비록 역적으로 몰려죽었지만(아마도 죽었을 당시에는 이 비석이 없었으리라) 그는 조선 사림의 종주로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면서 영의정 외 긴 관직이 새겨져 있다. ![]()
(언젠가 김영하 선생이 도시를 여행하면 그 도시의 공동묘지에 방문해 본다는데, 나는 선인들이 묻혀 있는 이런 OO묘에 많이 가본다. 그분들이 거기 누워 있다는게 신기하고 무언가 시대를 넘는 교감같은게 있다고나 할까. 조광조 선생의 묘비에는 정부인 증 정경부인 이씨 부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겸 동지경연 성균관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령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 관상감사 문정공 정암 조광조 선생 지묘 라고 되어 있다
이를 해석하면 정부인(조선시대 정이품,종이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던 붕직으로 숙부인의 위요 정경부인의 아래다, 조광조가 생전에는 대사헌(종2품)이었기 때문이다) 사후 증직으로 정경부인(조광조가 정1품 영의정이 되었기 때문에) 이씨가 합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조광조 선생은 작위가 가선대부였고, 사헌부 대사헌 겸직으로 동지경연과 성균관사였다. 다음으로 증직으로 대광보국숭록대부(정1품에게 주어지는 작위) 의정부 영의정이면서 거느릴 령으로 명예직이지만 경연과 홍문관,예문관,춘추관, 관상감의 사를 겸직한다. 다음으로 시호인 문정과 조광조의 호인 정암이 쓰여져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직접 가서 연구하고 보면 재미있다. 아, 조선시대 영의정이 되면 수많은 기관을 통솔하는구나. 분명 회의가 많겠지? 뭐 이런 것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이 책 백비에는 아직 죽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해 말 그대로 백비 _ 무명비, 또는 비석조차 없는 우리의 선인들을 기리고 있다. 첫번째는 우당 이회영 선생이다. 삼한갑족이라는 표현으로 문벌 높은 집안에서 공신의 후예로 또 장안 최대의 부자로 명예를 누렸다. 이회영의 가문의 시작은 백사 이항복으로부터 시작한다(물론 그전에도 양반이었다 백사 이항복은 권율의 사위로 영의정, 호성공신이다. 영조 때 소론의 영수로 영의정을 지낸 이광좌, 이종성 고종때 영의정이었던 이유원 등 여섯명의 정승과 두명의 대제학 10대째 명문을 우지하며 일제에 굳이 협력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이회영은 그런 안주와 현실의 타협을 버리고, 국은(나라의 은혜)를 받은 것을 지조와 독립운동으로 갚으려고 일어섰다. 이들의 이후 일생은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건립하고 독립운동에 힘쓰다 모든 형제가 이국 땅에서 병사 심지어 굶어죽고 이시영만 해방된 한국땅을 밟는다. 이회영 6형제는 무덤조차 없는 사람이 있고, 이들을 기릴 수 있는 것은 명동 YWCA에 남아있는 이회영 선생 흉상과 작은 표지석 하나만 남겨두었다. 우리는 제 한몸 일신의 영달을 거부하고 나라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다가 세상을 뜬 이분 같은 분들을 기려야 한다. 이회영의 후손에 국회의원 이종찬씨와 국회의원 이종걸씨가 있다. 나는 이분들에게는 '까방권'을 준다. 물론 그렇다고 가끔 정치적 문제있는 발언을 할 때도 있지만, 이분들이야말로 최고의 선조를 둔 명문, 금수저로 인식해드려야 한다. 우리시대의 금수저를 조금 다른 개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우당 이회영과 함께 석주 이상룡 선생이 나온다. 안동의 명문으로 임청각이라는 정말 어마어마한 집을 소유하고 있던 부자였다.
더없이 소중한 삼천리 우리 산하여 오백여 년동안 예의를 지켜왔네 운명이 무엇이길 늙은 것과 매개했나 까닭없이 꿈결에 온전한 사발이 던져졌네
이 땅에 그물이 처진것을 보았으니 남아가 제 일신 아끼는게 어디 있으랴 잘 있거라 고향 동산이여, 슬퍼하지 말지어다 다른 날 좋은 세상 되거든 다시 돌아오리라 ---p.30
이상룡 선생이 지은 거국음의 한 구절이다. 고향에서 양반으로 편히 살아도 되었으나 그들 50여명의 식솔들은 만주로 간다. 이 후 우여곡절의 독립운동은 말 안해도 고난의 연속이었으리라. 이상룡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다. 1932년 만주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이상룡 선생은 해방되기 전에는 자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매우 오랜시간이 지난 1990년에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당시 이완용 후손들은 국가를 상대로 서울 서대문구의 땅을 되찾아 당시 시가로 30억원에 해당하는 돈을 가지고 해외로 이민을 가서 잘먹고 잘 살고 있는데, 우리 독립운동을 한 후손들은 다들 어렵고 힘들게 사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모사꾼들과 매국노들이 잘먹고 잘 살며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는 나라에서 국혼이 살아있는 애국자들을 기대할 수 없다. 역사의 심판이 엄중함을 지금 세대가 봐야만 한다.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하고 기득권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역사의 심판을 비껴 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야 후세가 한걸음이라도 제대로 걷게 된다. ---p.44 ~ 45
내가 평소 너무나 많이 하는 말인데 저자가 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다만 위의 정치인들이 실천 못할 뿐이지.
다음으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우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가인 단재 신채호 선생과 백암 박은식 선생이 나온다. 나는 회사 면접 때마다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보면 서슴없이 단재 신채호 선생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얼마든지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버리고 정의를 실천한 점, 여기에 민족사관을 바탕으로 감옥에서 오로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으로 펼쳐 낸 명저 <조선상고사>까지. 그는 정의를 실천한 뜨거운 가슴과 명석한 두뇌로 민족사상과 창의성을 발휘해 낸 미래형 지식인이자 문화운동가였다. 양반 가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때 아버지와 형을 잃고 조금은 불우했던 그는 그 자신은 성균관에 입학해서 공부하고 26세의 나이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황성신문>에서 애국 계몽운동을 펼친다. 이후 역시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고, 우리나라 일부사람의 특성인 당파성을 배척해 아나키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단재선생은 아나키스트로 일제의 호적에도 올리지 않아 그의 후손들은 호적을 찾기까지 9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또 그의 후손들은 결코 부유하지 못하다. 그가 이땅에 남긴 것은 묘지와 작은 비석하나, 복원된 초가삼간 생가가 다이지만 그가 남긴 위대함은 만고에 이어지리라.
백암 박은식 선생 역시 독립운동과 역사연구를 함께 했다. 나는 얼마 전 그의 한국통사가 읽고 싶어서 구입했다. 제대로 된 완역본이 없어 매우 오래된 책을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이런 것 또한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실정이리라. ![]()
(이천 하고도 20년이 더 지난 이 시점에 완역본은 1990년대 나온 표지부터 한자로 이름이 적혀진 이 책이 거의 유일하다, 평소 법학을 전공하고, 역사를 좋아해서 한자를 잘 알지만 힘들게 읽고 있다. 우리의 아픈 출판 현실이다)
다음으로 독립 상해만국공묘에 묻혀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김가진 선생은 일제에 의해 무작위로 작위를 받는다. 그가 조선말년 규장각대제학, 농상공부 대신 등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는 안동김씨 명문이었으나 서얼이었기 때문에 서얼이 할 수 있었던 규장각 검서관으로 벼슬을 시작해 대신에까지 올랐다. 그는 이후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열정을 바친다. 또한 그의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까지 그의 집안은 독립운동 명문이 된다.
다음으로는 효창공원에 묻혀있는 삼의사묘역의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가 나온다. 이분들은 뭐 워낙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한 독립운동가들인데 아나키스트 백정기 정도만 조금 덜 유명한 독립운동가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때 이 효창공원을 제대로 가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었는데 양화진 언덕 위에 선 베델, 헐버트 등을 비롯한 많은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이 주는 가장 좋은 이야기였다. 평소 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전 제임스 S 게일의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책을 읽으면서도 이 부분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중에 이 양화진 언덕과 많은 곳을 방문해 보고 싶다.
이 책의 시작이라고 밝힌 제주 4.3사건의 글자 하나없고, 세울 수도 없는 백비를 가진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온다. 마음이 아프다. 현 정부들어 조금씩 해결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다음으로 5.18 민주혁명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전 TV프로그램에서 아직도 골프치고 잘먹고 잘사는 전두환을 비롯해 그 밑에서 호의호식하며 지금도 천억 넘는 재산을 보유한 정호용, 허화평 등의 인물들이 대비되면서 역사에 대한 바른 청산이 안 되는 우리나라가 조금은 슬프다. 이래서 어린 아이들에게 더욱 역사교육과 윤리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오천년의 우리 역사는 침입과 전쟁, 반목이 많았다. 반도국의 숙명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그 아픔을 간직한 발칸반도, 1800년대 후반까지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못했고, 지금도 비만 와도 정치인을 탓한다는 부정부패 1순위를 다투는 이탈리아 등 많은 반도국은 그런 역사가 많다.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우리 선인들의 비석이 세워진 답사지 사진이 한 Chapter가 끝날때마다 수록되어 있어 우리가 다시 그 역사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 『백비』는 한강보다 넓고 긴 역사의 물줄기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던 독립운동가, 민주혁명가 등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의 현재와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또한 바른 역사의 흐름을 언제나 꿈꾸게 만들어준다. 리뷰가 너무 늦었다. 그동안 나 역시 조금은 애국이라 할 수 있는 쌍둥이 자녀를 낳아서 키우느라 너무 시간이 지체됐다. 미디어샘 출판사와 예스블로그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대신 성실한 리뷰를 작성하려고 노력했고, 많은 분들이 좋은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한가지 지적은 예전분이라 그런지 일제의 강압과 불법적인 과정에서 이뤄진 '경술국치' 를 한일합방이라고 한다던지,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 전세대로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온 것이 익숙해서 그런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또한 p.15의 하곡 정제두(鄭齊斗) 선생에서 오타가 있습니다. 정재두로 되어있습니다. 다음판에는 수정 부탁드립니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