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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전성시대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잘 팔리는 책도, 가장 많이 출판되는 책도 에세이다. 그러다 보니 잘 골라야 한다. 잘 골라서 읽으면 어쩐지 횡재를 하는 것 같다. 작가들이 에세이를 쓰기 위해 그만큼의 공력을 들이기 때문이이다. 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뭐랄까, 재미가 없으면 손이 가지 않는다. 무정 에세이는 일단 재밌다. 책의 띠지에 '읽으면 서늘하게 쓸쓸해지고 덮으면 다시 따듯해지는 기묘한 책'이라고 설명해 놓았지만 내가 보는 이책의 키워드는 그러나, 유머같다. 문장들 사이를 빙긋거리며 맴도는 유머를 하나씩 발견하는 묘미가 있다. 그러다가 코끝이 찐해지는 그런 에세이, 부희령의 '무정 에세이'는 바로 그런 책이다. 귀농 실패기,라는 글을 보자. 그는 귀농을 해서 주경야독하리라는 야무진 꿈을 꾼다. 흙과 함께 일하고, 밤에는 책상에 앉아 달빛을 바라보며 아마 소설을 쓰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소설가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고된 노동에 밤이 되면 공부는 커녕 픽픽 쓰러져 코골기 일쑤다. 그가 결국 농촌 학생들을 데려다 놓고 과외공부를 가르치며 호구하게 되는 과정에 나는 빙긋빙긋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농촌에 있으면 대학을 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농촌의 과외선생이 결국 농촌을 떠나게 되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부희령은 그가 가르치던 아이들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서늘한 인생의 진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선생님은 정말로 안 떠나실 줄 알았어요." --4부 세상에 없는 집 201쪽 무정 에세이, 96편의 문장들을 하나씩 읽는다. '두려움이 씻겨나가도록 아이가 실컷 울기를, 그래서 이 세상에 갓 태어났을 때처럼 연약한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그 몸으로 다시 한 번 봄 햇살 속으로 반짝이며 튀어 오르기를, 나는 바랐다. 5부 우리들의 안녕 288-289쪽' 이런 문장으로 가슴이 따듯해지기도 하고, '오래 전 부모도 고향도 잃은 아버지가 나를 지나쳐 걸어간다. 이따금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주저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손을 뻗어 늙은 아버지를 붙잡지 못하는지, 부질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6부 가깝고도 먼시간 315쪽' 어떤 슬픔으로 먹먹해지기도 한다. 문장들 하나하나가 오롯이 애틋하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애틋했던 기억이 과연 얼마 만이던가. 개인적으로 평점 별 다섯을 모두 투척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가을, 여러분들에게 꼭 읽어보시길 강권한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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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침 안개 속을 걷는 듯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아침 안개의 상태를 신호로 삼는다. 밤을 건너온 자욱한 안개 속으로 힘없는 햇살이 스며들며 천천히 깨어나는 아침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열린 농로를 따라 안개 너머의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안개 세상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상과 나를 가르는 벽인 듯 싶지만 결코 단절은 아니다. 대상을 멀리 두는 거리감을 가졌지만 또한 서로를 이어주는 넓은 품을 가졌다. 차갑게 다가오는 듯 싶지만 때론 온전히 감싸주는 아늑함이 있다. 안개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계절을 건너는 중이다.
이 가을아침 안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글을 만났다. 작가 부희령의 책 ‘무정에세이’가 담고 있는 문장에서 얻는 느낌이 그렇다. 작가 부희령과는 이 책으로 첫 만남이다. 아니 페이스북 친구이니 글을 만나는 것은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와 책에 관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을 펼친다.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책 소개 덕분이다.
여섯 가지 테마로 엮은 글을 조심스럽게 펼친다. 별로 꾸미지 않은 문장에 이런저런 일상을 건너오는 생각을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다. 속내를 드러내기에 망설여질 법도 한 내용 있고, 지극히 사소한 작가의 가정사를 비롯한 개인이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다.
무심한 듯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보면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서늘함과 아늑함이 공존한다. 내 발밑을 보지 못하고 순간순간 걸려 주춤거리듯 읽던 문장에서 넘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문장이 품은 온도는 따뜻하나 곁은 내주지 않은 무심함이 앞서는 것일까. 아니며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속내를 드러내서 읽는 이의 부끄러운 마음을 까발리는 솔직함에서 오는 불편함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문장에 감정들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 묘한 끌림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가시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남겼으니 작가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다. 여물어가는 가을에 묵직한 문장을 만났으니 계절을 건너가는 발판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짙은 안개 속을 걷다보면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내 안에서 하나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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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고 지날 이름이 아니었다. 성도 희귀하고 이름까지 특별하여 한 번 보니 금방 저장이 되고 되뇌게 된다. 북녘땅 어디 높고 깊은 고개 이름 같기도 하다.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로 보게 된 이름이다. 결국 읽었다. 읽고 보니 참 사소하다. 차마 입 밖에 내지 않고 가슴에 그냥 처박아 둔 일들이 꺼내어져 사소한, 그러나 사소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야기가 되었다. 곱씹게 되는 이야기 들이다.
모두 사소한 일, 부질없는 일,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깜짝 놀랄 일도 아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은 물론 아니다. 나 또한 왜 기억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나에게는 세상의 진짜 중심처럼 느껴진다. 흔히 떠들썩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중심이 오히려 공허한 것과 달리, 그런 장면들 속에는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손을 내밀게 만든다. 중심이란 그런 것이다. (38 – 39쪽)
나무들의 길은 시간의 길. 땅속의 시간에서부터 저 높은 우듬지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중력을 거슬러 솟아오르던 시간의 길이 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듯, 그들이 지켜본 시간의 켜에 대해 탄식과 허밍으로 고요히 말하기 시작한다. (203쪽)
이따금 나의 깔끔한 합리성을 무너뜨리고 싶다. 타인의 작은 허물에 눈 감는 어수룩함. 살다 보면 어느 정도 손해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 햇빛이나 바람처럼 목적 없이 흩어지고 퍼져나가는 선량함. 그런 마음들 없이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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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흑산이 생각나는 검정색 톤의 표지, 스크레치가 난 듯한 거친 표면 처리, 그리고 가시성에 도움이 안되는 은박의 책제목까지...무정에세이의 첫느낌은 설명하기 어려운 파격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독창적인 내용이 무엇일까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서곡이랄까? (이라크 영화속 노새이야기 편을 보고 표지를 다시 눈여겨봤다.) 길 위에서-여행의 이유등으로 시작하는 책 분류를 보면서 잭 케루악, 김영하 작가등이 연상되었다. 동일한 제목의 다른 느낌은 모임에서 동명이인을 만난 소감이다. 무정에세이이 주는 마력은 ‘회색’과 ‘부드러움’이다. 선명하거나 직선적인 흑색 표현보다는 물이 흐르듯 부드럽고 여백이 있는 넉넉한 비움의 여운이 돋보인다. 여기에서 ‘회색’은 기회주의나 회피의 색상이 아닌 ‘흑색의 농도’로 표현한 색상이다. 일부는 표지에서처럼 스크레치가 난 농도차로도 말하고 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은 것들의 부제의 설명이 아닐까? 보이는 것들은 흑색의 농도가 깊게, 보이지 않은 것들은 농도가 옅게 행간과 맥락속에 녹아 있다. 결국, 구체적인 저자의 삶을 진솔하게 구체적으로 써내려간다. 이름에 걸친 사연, 넷째 딸로 태어나 살아온 가정사, 누구나 공감하는 그 시대 아버지와 인연, 경제적인 어려움의 담담함, 잦은 이사의 소회, 귀농의 이상과 현실, 다시 농촌을 떠난 사연등 강함보다 부드러움, 포장이나 꾸며짐보다 솔직함이다. 신문 칼럼으로서,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장점은 구체적인 사실 묘사에서 두드러진다. 추상적인 단어보다 사물이 앞에 있는 것처럼 설명해가고 끌어가 결국 그 자리에 독자가 있게 만드는 힘이 저자의 매력이다. 검색해보니, 친형과 같은 나이이다. 그 세대들이 정서를 어쩔수 없이 텍스트에서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보다 잔잔한 미소나 기다림으로 전달되는 에세이이다. 결국 인생의 연륜이 더해진 삶의 여유이다. 우러난 차를 음미하며 목으로 넘기는 느낌이다. 글 속에 보면, 극장에서 냄새를 풍기며 햄버거 먹는 젊은 여성 이야기하다가 결국 자산의 과거와 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여유가 어찌보면 우리 시대의 가장 필요한 메세지가 아닐까? 이 정글세상에서 ‘내로남불’을 이렇게 표현하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울까?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알탕을 끓여내라고 소리치던 일당 30만원의 타일공" 장면에서 보이지 않은 사람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이끌어낸다. 부희령 작가의 글쓰기 방식을 따라해보고 싶다. 형식은 모방이 가능할지 몰라도 생각을 따라할 수 있을 지 모른다. 기승전무정한 방식의 글쓰기이다. 마지막에 어김없이 표현되는 무심함이란 피식피식 웃음을 성사한다. 결국 사람이나 인류, 그리고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니,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 옛날 창의적인 사람이 누구냐고 했을 때, 대부분 과학자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 소설가라고 했다. 그 대답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무심한 듯 곁눈질하지만, 과도하지 않는 시선과 말로 만나는 무정한 방식이 그 사회에 오래갈 수 있는 방법일 지 모른다. 무정함은 따뜻함과 사랑의 또다른 표현방식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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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점점 피곤해진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니 세상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언감생심이 되고 만다. 나의 한 몸을 잘 추스르고 나의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나의 가까운 이웃의 안녕을 체크하는 일로도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간다. 이제 올 한 해도 두 달여가 남았을 뿐이고, 이 년 동안 들르던 카페가 문을 닫는다고 하고, 엄마는 짝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하신다.
부희령 / 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 사월의책 / 365쪽 / 2019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