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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배 놀라운 기술》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과연 그의 농사법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사랑이라고…….
흙과 사과나무와 벌레와 그리고 자신이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 하나가 된 가장 큰 힘은 기무라 씨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아보고 먹어보기까지 했던 흙, 사과나무 하나하나를 붙들고 "미안하가, 제발 힘내주세요"라고 하며 끊임없이 해준 기도, 떨어지는 사과나무 잎은 물론 그를 절망시켰던 잎말이나방 벌레에까지 혼신을 다해 이들을 사랑하며 하나가 된 기무라 씨 모습, 그 자체가 바로 자연재배농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사적으로 공부하여도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끔 실마리를 준 것은 산에서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잡목이었습니다.
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비료도 없고 병해충의 방제도 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열매를 맺으며 다음 세대에 그 생명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퇴비도 사용하지 않는 자연재배라고 하여도 단순히 방치하는 것만으로는 물론 작물이 자라지 않습니다. 어떠한 환경이 작물의 생육에 좋은 것인지, 자신의 몸을 작물로 바꾸어 놓고 관찰하며 거기에 주위의 환경과 균형을 갖추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인간이 작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장마가 시작되면서 그야말로 지옥의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무농약 재배를 시작한 해에 사과나무는 모두 4번이나 잎을 내고, 그리고 잎이 나올 때마다 해충에게 먹히고 벌거숭이가 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또 놀란 일은 9월이 되자 같은 해 두 번째 꽃이 피었습니다. 기온이 내려가고 잎이 없는 상태의 나무는 봄이 왔다고 착각을 일으켰나 봅니다.
사과나무는 1년에 한 번밖에 꽃이 피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핀 꽃은 이듬해 분의 꽃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듬해에는 꽃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1년에 두 번 꽃을 피운 사과나무는 이듬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헌을 찾아 읽고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라니!'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지 오래된 버려진 밭은 제 어깨 높이까지 풀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헤치면서 걸어가 보았더니 향긋한 흙냄새가 코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발아래는 푹신푹신한 느낌이 마치 쿠션을 밟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과나무 앞에 섰습니다.
"놀랍다! 벌레가 없어!"
그리고 어제 봤던 사과나무를 보고 또 봤더니 그것은 사과나무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열매에서 싹이 나서 자란 도토리나무였습니다.
"이것이 해답이다!"
저의 무참한 사과밭과는 너무나도 다른 눈앞의 광경, 풀은 여기저기 제 맘대로 자라고 있었고, 그 속에서 씩씩하게 잎을 무성하게 내고 있는 도토리나무는 그야말로 건강 그 자체였습니다.
주위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았더니 잎말이나방과 같은 해충류는 보이지 않지만 나비나 메뚜기, 풍뎅이, 벌, 개미 같은 벌레들이 각자의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조용히 활동하고 귓가에는 어디선가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기는 생명이 넘치고 모든 것이 순환하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무의미한 것이나 방해되는 것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도토리나무도 생태계의 일부로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로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관리르 받고 있는 사과밭과는 전혀 다른 광경입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제가 찾고 있던 해답이었습니다.
대두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꽉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가을에 대두를 뽑아보면 뿌리혹박테리아는 하나도 없습니다. 생물의 힘으로 고정된 질소가 메마른 흙에 양분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그해는 사과나무가 기뻐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이듬해도 대두를 뿌리고 밑에서 올라오는 풀은 뽑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과나무에 붙는 벌레를 잡으면서 변화해 가는 사과밭의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자연계의 균형은 자연 그 자체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그 자연의 움직임이 잘 이루어져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도 밖에는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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