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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혹은 에세이가 되어도 좋을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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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읽었다. 떠나간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 읽어도 스산한 마음이 든다. 더욱이 투병생활 중에 쓴 글들은 아무리 밝다하여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시인의 가슴 속에 담겨있었던 말들, 이제는 영원히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작 메모’라 이름 붙여진 글을 읽으면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고독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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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읽었다. 떠나간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 읽어도 스산한 마음이 든다. 더욱이 투병생활 중에 쓴 글들은 아무리 밝다하여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시인의 가슴 속에 담겨있었던 말들, 이제는 영원히 그렇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시작 메모’라 이름 붙여진 글을 읽으면서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절망과 희망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다가 이내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대로 두어도 시가 되는 문장들, 한편의 에세이로 나타날 수 있었던 구절들을 읽어가면서 먼 이국땅에서 시인의 일상을 구속했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엽서에 쓰인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읽으며 시인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을까를 떠올려보지만 그저 막막한 생각만이 든다.

 

‘허수경 유고집’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3부로 되어있다. 1부에는 허수경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쓴 시작 메모가, 2부에는 아직 시집으로 묶이지 않았던 시 13편이, 그리고 3부에는 자신의 시에 대해 쓴 작품론과 시론이 실려 있다. 이 중 시작 메모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시인의 마음을 담아낸 글들로 훗날 시나 에세이로 갈 글들이었지만 이제는 그 길을 잃은 글들이다. ‘나의 시가 자신의 시간을 사는 동안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간다.’ ‘너의 모습이 아니라 너의 뒷모습이 보이는 시를 써야 한다.’는 글들에서 시인이 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떻게 쓰려 했는지를 읽는다. 그런가하면 ‘역이라는 것은 스쳐 지나는 곳이 아니다. 역이라는 곳은 스쳐 지나온 모든 것을 버리는 곳이다.’라는 글은 시인이 생각했던 삶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게 만든다. 시인은 이 글들이 시라는 형태로 나타날지, 에세이라는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 시가 되어도, 에세이가 되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시작 메모에 있는 글들 속에는 이국땅에서 살면서 느꼈을 법한 고독과 외로움이 들어있고, 때로는 절망하고 또 때로는 희망에 부풀은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쓴 글들은 시인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보게 만들기도 한다.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이라는 문장의 ‘시’라는 글자에 사선을 그어 지우고 ‘글’이라는 글자를 써넣은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서, 이제는 그곳에서 고독과 외로움과 희망과 절망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하기만을 기원해본다.

k*****1 2020.02.19. 신고 공감 1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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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써내려간 시인의 '시작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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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허수경 시인의 부음을 신문에서 확인하고, 이후 몇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읽었다. 시인은 한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하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학문인 고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번에 ‘허수경 유고집’이란 형식으로 시인이 남긴 ‘시작 메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실상 그 내용은 ‘시작 메모’라기보다는 일기나 메모에 가까웠다. 물론 그중에는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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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허수경 시인의 부음을 신문에서 확인하고이후 몇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읽었다시인은 한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하고또 그곳에서 새로운 학문인 고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이번에 허수경 유고집이란 형식으로 시인이 남긴 시작 메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실상 그 내용은 시작 메모라기보다는 일기나 메모에 가까웠다물론 그중에는 시를 쓰기 위한 구상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2011년부터 작년(2018)까지 기록했던 메모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뒷부분에는 문예지에 수록되었던 시와 2편의 작품론과 시론이 덧붙여져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시인이 낯선 땅에서 오랫동안 외로움과 동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간혹 한국에 오더라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글 속에 문득문득 내비치고 있었다그리고 다른 시인들의 시집을 읽으면서시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간략한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컴퓨터에서 확인한 글들은 각기 작은 글(2011)’, ‘NOTE(2012)’, ‘글들(2013), ’희망들(2014)‘, ’Schriften(2015), ‘SH(2016)’, ‘병상일기(2017)’, 그리고 가기 전에 쓰는 시들(2018)’이라는 폴더에 담겨있었다고 한다아마도 시인은 이 글들을 작성하면서 때로는 희망을 생각하기도 했고때로는 병상에서의 투병에 대한 상념들을 풀어놓기도 했을 것이다그리고 작년에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듯폴더의 제목을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라고 붙였던 것이다.

   

만약 편집을 할 때 임으로 취사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2011년과 2012년에 쓴 글들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독일과 한국을 오가면서 느꼈던 상념들이 담겨 있으며멀리 터키에서의 발굴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외로움의 감정들을 토로하기도 했다그래서 이 글들은 차라리 일기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2013년에는 단 3편의 글만이 수록되어 있으며, 2014년 4월 15일까지는 역시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가, 4월 20일부터는 비극적인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그에 대한 비탄과 울분을 토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었지만시인 역시 젊은 나이에 쓰러져간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토로하고 이후 1년 가까이 쓴 글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2015년에 쓴 글 하나와 2016년 후반부터 쓴 글들 몇 개그리고 스스로 병상일기라고 명명한 2017년의 기록들이 이어지고 있다병상일기의 기록들은 오히려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다는 듯치료 과정과 그에 대한 상념들로 채워져 있었다그리고 생의 마지막에 시를 쓰고 싶었던 듯 폴더 이름을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이라고 붙였지만, 4월 15일에 쓴 단 하루치의 글만이 수록되어 있었다힘든 투병 과정에서 시인의 의욕만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이제 더 이상 시인이 시를 쓰지는 못하겠지만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남겨진 작품들을 통하여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20.02.04. 신고 공감 1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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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시만 쓰는 생--- [산문-가기 전에 쓰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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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을 읽는 마음은 참 스산하다. 세상에는 이미 없는 작가, 그런데 글은 남아 있고, 독자로서 작가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고, 작가의 죽음이 꼭 남의 죽음인 것만은 아닌 것 같고, 마치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고...... 무엇보다 이제 다시는 이 작가의  새로운 글을 더 읽지는 못하겠구나 싶은 절망까지.  마음이 이러하니 글이 제대로 읽힐 리가 있나. 한 문장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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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을 읽는 마음은 참 스산하다. 세상에는 이미 없는 작가, 그런데 글은 남아 있고, 독자로서 작가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고, 작가의 죽음이 꼭 남의 죽음인 것만은 아닌 것 같고, 마치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고...... 무엇보다 이제 다시는 이 작가의  새로운 글을 더 읽지는 못하겠구나 싶은 절망까지. 

 

마음이 이러하니 글이 제대로 읽힐 리가 있나. 한 문장 읽고 한숨 한번 쉬고, 한 단락 읽고 고개 한번 흔들고, 한 쪽 읽고 물 한번 마시고. 얼마나 끊겼는지 모르겠다. 읽어도 읽어도 낯설기만 한 마음에 속상했다. 힘들었겠구나, 외로웠겠구나, 그래도 시를 놓지 않고 있었구나. 사는 게 뭐라고, 시가 뭐라고, 이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이 책이 나를 이렇게 가르쳤다. 

 

어떤 이의 죽음은, 어떤 이의 생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된다. 살아서 서로 알고 모르고를 떠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해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제 삶이 흔들릴 만큼의 충격이 전해지기도 한다. 남은 책 하나, 일기처럼 메모처럼 생각들이 흩어져 있고, 귀한 시도 몇 편 실려 있다. 종종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종종 꺼내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9.12.1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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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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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허수경 *오래 지지 않는 꽃들. 오래 서 있지 않는 나무들.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을 사물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 꽃잎들. 내 의지대로가 아닌 꽃잎들. 모든 울음이 들리지 않는 시간들. 그렇지 않다. 그 시간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하지. 밤은 무엇이지? 신 너트가 산책을 하는 시간이라고. 이 시간동안 무엇을 하느냐고 누구는 묻지. 나는 돌아가지 않을 산책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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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움

허수경

 

*

오래 지지 않는 꽃들. 오래 서 있지 않는 나무들.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을 사물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 꽃잎들. 내 의지대로가 아닌 꽃잎들. 모든 울음이 들리지 않는 시간들. 그렇지 않다. 그 시간은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하지. 밤은 무엇이지? 신 너트가 산책을 하는 시간이라고. 이 시간동안 무엇을 하느냐고 누구는 묻지. 나는 돌아가지 않을 산책을 하면서 웃는 시간이라고. 그리고 나는 말하지. 잘 지은 모래성 안에 개미가 기어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싶어요. 그 집은 내 집이니까 개미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세계가 이해되려고 해요. 그리고 숲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지요. 너는 어느 정도로 세계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리고, 폐인처럼 봄이 안기는구나. 사실은 속물인데. 모든 고독을 유배 보낸다. 이제 고독 없이 혼자 있을 것이다.

 

*

혼자 있지 말아요

 

 

YES마니아 : 플래티넘 c*******l 2019.12.1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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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 가기 전에 쓰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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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 향해있는 말들로 시인을 자주 생각하고 있다.어느 시 한편이 삶 가운데로 들어와 눌러 앉았다.그 시는 너였다가 우리였다가 처음 읽고 놀랐던 순간이 되기도 한다.시인이 떠난지 일년이 흘렀다. 시인은 없고 그가 남긴 말들만 남았다.나는 이런 순간들이 안타깝고 구슬프다. 외로웠겠구나, 싶다가도그게 시인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아픔 조차도 수긍이 간다. *항상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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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으로 향해있는 말들로 시인을 자주 생각하고 있다.

어느 시 한편이 삶 가운데로 들어와 눌러 앉았다.

그 시는 너였다가 우리였다가 처음 읽고 놀랐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시인이 떠난지 일년이 흘렀다. 시인은 없고 그가 남긴 말들만 남았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안타깝고 구슬프다. 


외로웠겠구나, 싶다가도

그게 시인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아픔 조차도 수긍이 간다. 


*

항상 누군가를 향해 있는데

고스란히 그 사람을 지켜보는 것 같은데,

그건 내 마음의 원인일까




YES마니아 : 로얄 t****j 2019.10.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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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된 것들과 시가 되지 못한 것들 모두를...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시가 된 것들과 시가 되지 못한 것들 모두를...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내용보기
책은 모두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 ’시작 메모‘는 2011년 4월 13일에서 2018년 4월 15일까지 씌어진 글들이다. 이 글들은 ’글들‘이라는 폴더 안에 있던 작가의 글들이었고, 작가는 2018년 10월 3일 우리들 곁을 떠났다. 2부에는 시인이 2016년 출간된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이후 발표한 시들을 모아 놓았다. 3부는 작가가 자신의 시집 《빌어먹을, 차
"시가 된 것들과 시가 되지 못한 것들 모두를...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내용보기

  책은 모두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인 ’시작 메모‘는 2011년 4월 13일에서 2018년 4월 15일까지 씌어진 글들이다. 이 글들은 ’글들‘이라는 폴더 안에 있던 작가의 글들이었고, 작가는 2018년 10월 3일 우리들 곁을 떠났다. 2부에는 시인이 2016년 출간된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이후 발표한 시들을 모아 놓았다. 3부는 작가가 자신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에 부친 작품론과 <시인이라는 고아>라는 제목의 시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검은 동상이 나무 그늘 밑에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쑥쑥 자라나고 있다. 여름 나무의 그늘이 커지는 것처럼 무언가가 커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언지 잘 모르겠다. 영악한 혀가 말을 하느라 우둔한 손이, 글을 쓰는 걸 잊어버렸을까? 어떤 형식이 뛰쳐나오지 못하고 내 속에 숨어 있다. 나와라, 나와라, 형식이여.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오래 꽁꽁 숨어 있는가?” (pp.46~47)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작 메모‘이다. ’시작 메모‘는 시를 만들기 위한 메모이며 동시에 시가 시작되는 메모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아직 발아하기 전의 상태로 시인에게서 시작된 무언가가 담겨 있기도 하고, 그러한 발아에 책임을 지고 있는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에 천착하는 심경이 드러나기도 한다. 발아가 시작될 것에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인의 고민이 담겨져 있다.


  “혼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말을 주고받는 행위 역시 대화에 속한다. 모국어로 말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는 내 속에 수많은 타인을 만들어낸다. 이 세상의 많은 좋은 시는 완벽한 모놀로그를 다이알로그로 만들 때 탄생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 믿음이 없다면 내가 쓸 수 있는 시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pp.58~59)


  아래의 문장을 보면 시가 움트는 과정을 좀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시인은 문장 하나를 치고 그 뒤를 이어 또다른 문장을 이어간다. 여기서 빛을 시인이 받아 안은 시로 해석하며 읽어 본다. 시를 위한 하나의 문장이 빛처럼 시인에게 다가가고, 그것을 잡았다가 놓아주고 그것을 바라보기도 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외부의 빛과 내부의 빛이 충돌하고 소리내고 멀어지는 장면을 멋대로 떠올린다.   


  『저녁에 컴퓨터 앞에 앉아 문장 하나를 친다. 빛을 안아줄 수 있는 손은 없다. 그 뒤를 잇는 문장,


  빛을 말아 쥐고 손을 오므리면
  금방 내 손안에는 그늘만 남는다.
  마당 청소를 하다가 햇살 아래에서
  동그마니 손을 오므린다.
  빛이 사라진 손 동굴
  다시 빛을 놓아주기 위해 손을 벌린다.
  손금에도 빛은,
  빛은 멀리 있는 빛을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도


  새가 날카롭게 칼을 떨어뜨리듯
  소리 낸다.』 (pp.232~233)


  ’시작 메모‘는 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시작 메모‘이면서 일종의 일기글이다. ’글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작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남은 우리는 ’글들‘을 통해 그런 작가의 모습과 모습을 바라보게 되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런 작가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산문의 가장 강력한 힘은 아마도 담담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 흥분하지 않고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 능력이라기보다는 단련을 통해서 나온 인내. 사물과 풍경 앞에서 흥분하지 않기.” (p.209)


  안과 밖이, 속과 겉이 뒤섞이고 뒤바뀌며 뒤엉키는 것이야말로 삶이라고 생각한다. 온화한 격랑과 난폭한 정적은 시인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한 특권을 질시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시인은 떠나갔고 시간은 흘러갔다. 젊어 시인을 알았지만 건성으로 시를 읽었고 나이들어 시인의 시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 시인이 떠났다. 책에 실린 시인의 시를 시리게 읽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읽었다.


   봄꿈


  꽃무늬 바지를 입고 노인은 절집으로 향하는 수유꽃 노란 길을 걸으신다 뼈가 가벼운 새들이 나무 위에서 잠에 겨운 꽃잎을 한 장씩 개키고 있다 절집에는 소풍을 가지 못한 얼굴들이 고기반찬 없는 상을 차리다가 병든 자목련을 바라본다 극락까지 가서 밥을 먹고 지옥으로 돌아오면 마을의 몇 안 되는 염소들은 실개울 곁에 앉아 간첩이 내려왔다는 뉴스가 박힌 신문을 우물거리고 있다 근처 큰 도시에 있는 술집에서 일하던 아가씨 셋이 개여울에서 변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이미 염소의 위장 안에 있다

 

허수경 / 가기 전에 쓰는 글들 / 난다 / 363쪽 / 2019 (2019)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21.07.0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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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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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이 영면한 나무를 보았다. 나도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시인을 사랑했던 사람들로 둘러싸인 그 나무를 한참 보았다. 시를 짓고 시집을 내고 그 시를 통해 독자와 만나는 게 시인의 일이라면, 그 인연을 만들어준 나무에게로 돌아가는 사람, 그 귀결이 참으로 시인답다는생각도 했던 것 같다.   2 나는 문단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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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이 영면한 나무를 보았다. 나도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지, 시인을 사랑했던 사람들로 둘러싸인 그 나무를 한참 보았다. 시를 짓고 시집을 내고 그 시를 통해 독자와 만나는 게 시인의 일이라면, 그 인연을 만들어준 나무에게로 돌아가는 사람, 그 귀결이 참으로 시인답다는생각도 했던 것 같다.

 

2

나는 문단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허수경 시인은 유난히 후배들이 좋아하고 사랑했다. 거기서 그의 인품이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시인들도 시인을 "누나"라고 불렀다. 어려움이나 격의를 느끼지 않는 다정한 사이이기에 가능한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나 욕망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자식을 통해 자신의 DNA를 이 세상에 남기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4

나는 종종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라지는 인생을 꿈꾼다. 아무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과 완벽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바람 사이에서 나는 종종 갈등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한 사람은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6

이 책을 만든 그의 후배들 역시 그런 마음이었을  거다.

시인의 시작 메모와 시인이 남긴 시들과 자신의 시에 대해 스스로 쓴 평론들을 모두 모은 마음들, 특별한 편집 없이, 따로 더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남기고 싶었던 마음, 그 기저에는 시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테고, 시인이 '시'로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 남긴 시들과 시집만큼이나, 그 소중한 마음들이 시인을 오래 기억되게 만들 것이다.

 

7

외국에서 살면서 모국어로 생각하고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므로.

나 같은 경우는 마종기 시인 쪽이 나의 결과 더 비슷하다고 느끼지만, 허수경 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행간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이나 외로움, 공허함 같은 것들, 그리고 그런 정서들이 시로 승화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그것이 나의 한 조각이기도 함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모국어를 쓰던 그 곳에서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마다, 모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 간절함은 경험한 자들만이 알 것이다.

 

8

타국도 모국도 아닌 곳에서 영면하고 있을 시인(인간은 왜 '영면'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까?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고 영혼이 있다면 다른 차원의 삶을 살테고 윤회가 있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텐데 말이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면'이라는 표현을 쓴다. 고단한 삶의 끝에 영면이 있길 바라는 내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을 남아 있는 자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9

이 책의 제목은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원래는 '시'였는데 '시'에 빗금이 쳐지고 '글'로 대체된 제목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의 제목인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을 복원하고 싶다. 보랏빛 처연한 이 책엔 그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인의 정체성이 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21.06.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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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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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구매하네요. 엽서의 허수경 시인님 글씨 보고 울컥했네요. 허수경 시인님의 시를 좋아해도 평소 시집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라서 이 책이 더 자주 읽힐 것 같아요. 소중히 지니며 읽겠습니다. 훌륭한 작가님이라서 오래오래 좋은 글을 읽고 싶었으나 남기신 글이 이미 충분히 좋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기겠습니다. 동시대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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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 구매하네요. 엽서의 허수경 시인님 글씨 보고 울컥했네요. 허수경 시인님의 시를 좋아해도 평소 시집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라서 이 책이 더 자주 읽힐 것 같아요. 소중히 지니며 읽겠습니다. 훌륭한 작가님이라서 오래오래 좋은 글을 읽고 싶었으나 남기신 글이 이미 충분히 좋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기겠습니다. 동시대를 함께한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k******5 2021.03.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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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작가님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제목부터 먹먹해져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아끼는 동생에게도 선물해주었습니다. 꼭꼭 읽어주길.  <간절히 기다릴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찾아오는데 등이 시려서 옷을 하나 더 껴입으려다 슬그머니 당신의 손이 내 등에 닿아 있다 생각하고 옷을 의자에 내려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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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작가님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제목부터 먹먹해져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아끼는 동생에게도 선물해주었습니다. 꼭꼭 읽어주길.  <간절히 기다릴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찾아오는데 등이 시려서 옷을 하나 더 껴입으려다 슬그머니 당신의 손이 내 등에 닿아 있다 생각하고 옷을 의자에 내려둔다. > 

b******a 2020.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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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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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춘에는 잎들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멀리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운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볼 수 없는 산수처럼 아득하기 때문이다.    제비꽃이 피었는데 눈이 와서 바깥에 나가 앉아 손으로 눈을 가려준다. 저 꽃 얼어버리면 어제 겨우 내가 참아내었던 그리움이 같이 얼어버릴 것 같아 부럽다.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라, 내 속에서 나가서 온전히 길을 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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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춘에는 잎들의 피리 소리를 들으며 멀리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리운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볼 수 없는 산수처럼 아득하기 때문이다.   

제비꽃이 피었는데 눈이 와서 바깥에 나가 앉아 손으로 눈을 가려준다. 저 꽃 얼어버리면 어제 겨우 내가 참아내었던 그리움이 같이 얼어버릴 것 같아 부럽다.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가라, 내 속에서 나가서 온전히 길을 잃어라.    

간절히 기다릴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찾아오는데 등이 시려서 옷을 하나 더 껴입으려다 슬그머니 당신의 손이 내 등에 닿아 있다 생각하고 옷을 의자에 내려둔다.     한없이 설레는 나무들은 키가 잘 자라지 않는다. 새가 앉아 있던 가지에 노을이 오고 있다. , 당신. 이 저녁에 온다면 나는 무얼 드릴까? 만일 당신이 온다면 … …. 나는 무얼 드릴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없다. 

 거칠게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 꽃이 떨어질 때 어떤 신음 소리가 나는데 그 신음 소리는 자신이 낸다는 것을.     

흔들린 사진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내가 간곡한 뭔가를 찍었는데 그 간곡한 무언가가 흔들렸다는 거다. 아니면 내가 그 간곡한 무언가에 저리도 물들었다는 거다. 흔들리는 모든 파장으로 당신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 

지혜로운 것의 윤리성은 삶을 지루하게 하는가 아니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 예술가인 내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그건 예술가의 독이다. 상처와 전면전을 벌이는 인간에게 지혜를 요구하는 것은 윤리적이지만 그것은 예술가에게는 예술을 집어치우라는 말과 같다.

k****6 2020.04.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