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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신체에 새겨진 민중의 이야기, 참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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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야기란, 아니 오늘의 한국문학이란 바로 이런 뿌리에 연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전기수, 강담사, 그리고 재담꾼, 연희재담가들이 읽어주고, 꾸며내 들려주던 규방일화와 염정담, 군담 등 민담, 방각본 언패소설, 판소리 등 민중들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고. 정작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삶의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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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이야기, 이야기란, 아니 오늘의 한국문학이란 바로 이런 뿌리에 연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전기수, 강담사, 그리고 재담꾼, 연희재담가들이 읽어주고, 꾸며내 들려주던 규방일화와 염정담, 군담 등 민담, 방각본 언패소설, 판소리 등 민중들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고. 정작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삶의 이야기 속에 깃들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고, 비로소 민중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한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참말의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진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대한 작가 스스로의 정의처럼 주류의 역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자생적 근대화”를 통과하는 조선 민중의 고통과 상처의 실체라는 이 무거운 진실이 고요한 산마을 오직 여울물 소리만 돌돌돌 나듯이 나지막하게, 꾸밈없는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로 들리는 까닭은 역시 우리들의 몸속에 흐르는 이야기에 대한 민중적 공감과 동의의 탓일 것이다. 더구나 소설의 말머리부터 색주가와 흔쾌한 어우러짐의 질펀한 대화, 관기였던 양반첩이 된 관기 월선과 그 소생인 연옥의 등장은 익살과, 재치와 기지 넘치는 이야기의 세계로 곧바로 이끌어댄다. 저 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을 쓴 민중과 괴리된 역사가 아니라 민초들의 역사라는 그 친근함의 이야기로.

 

“가지마라 부헝”...아마 이 부엉이 울음소리는 다가 올 여인의 인고(忍苦)를 만류하려 함이었을까? 그럼에도 자신의 발목을 잡은 남정네의 손아귀에 끌려 어느새 그의 품에 안겨있었다는 話者,‘연옥’의 말은 여인네의 수줍은 듯 발칙한 연정이 그득하다. 이 하룻밤의 운우지정(雲雨之情)덕에 민중의 삶을 민중의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 이름도 신통방통한‘이신통’이란 이야기꾼(傳奇叟)이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지아비가 되고, 연옥은 사랑, 그 무심한 남정네의 행적을 쫓아 시대를 술회한다.

 

삼정(三政)이 무너지고, 백성은 탐관의 부패로 신음하던 시절, 과거제 역시 매관매직의 다른 형식으로 타락하고, 무능한 권력은 외세에 꺾여 제 목소리를 잃어버리던 시대, 백성은 어디에도 그 고통을 말 할 곳이 없었을 것이다. 이 의탁할 곳 없는 백성들의 믿음이었던 서양의 천주학조차 침략과 약탈의 표리부동이었으니 민중의 신앙으로서 동학(東學)의 자생적 발흥은 결단코 필연이자 당위였을 것이다. 소설은 이러한 시대사(時代史)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민중적 실체, 그 속살을 말하고 있다. 또한 민담, 재담과 같은 이야기로서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서, 삶이란 것 자체의 순수성으로 더 많은, 더 깊은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과거장의 풍경 속에서 시골 유생들의 염원을 기만하는 돈벌이, 각종 차별과 부당함 등 시장 장터와 같은 문란함과 혼탁함이 익살스럽게 그려지고, 거창한 역사적 명명인 임오군란 역시 생존까지 수탈당하는 백성들의 무참하고 쓸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일상적 면면들이 역사를 대체한다.

어쨌든 소설의 중심을 흐르는 시대적 사건은 동학혁명이다. 인간이 하늘이다. 라는 이 천지가 개벽할 민중적 자각을 위해 모든 이야기가 모인다고 해도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민중이라는 나라의 실질적 주체들에게 역사를 돌려주려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책무를 짊어진 이가 바로 이야기꾼이다. 반쪽짜리 양반인 서자인 아버지에 다시금 노비의 소생인 얼자라는 계급은 이미 신분상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자신의 여인들, 가족을 위해서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하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들에게 떳떳한 지아비로서, 아들로서, 형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사람들에게 언패소설을 읽어주는 이야기꾼이 되었던 것은 젊은 청년‘이신’이 세상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 어루만지는 유일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책을 읽어주던 전기수의 삶이 동학이라는 민중으로서의 의식을 깨우치게 하는 목소리가 되기까지의 스스로 얽어맨 삶의 행적은 그대로 이야기꾼, 작가의 본질, 아니 어떤 소명의식에 가닿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를, 서방(남편)의 행적을 좇는 여인, 그녀의 신산한 행적조차 경박하지 않고 엄숙해 보이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오랜 좇음의 기대는 그녀에게 재회와 잉태라는 숭고하기조차 한 역할을 부여한 것만 같다. 민중의 얘기, 정말의 역사가 후대에도 잇닿게 하는 그런 소명을 그녀의 몸에 불어 넣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우리들의 몸속에도 이야기꾼의 그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이 전해질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 우리의 소설이란 이렇게 질서와 권위의 힘에 가려진 민중의 삶들을 드러내는 것이고, 바로 그 연원이란 이들의 행적에 담겨있음을, 또한 이야기꾼이란 세상을 말하는 일꾼의 목소리이기도 함을 말하려는 것일 게다.

사위가 고요한 산속 여울물 소리처럼 번잡함과 거창함이 배제된 소박한 이야기에 빠져 절로 우리들의 몸과 신체에 흐르는 역사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이야기의 역사, 그리고 민중의 역사가 같은 호흡을 하며 다가오는 우리 문학의 새로운 장을 보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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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격동의 시기를 살아갔던 어느 이야기꾼의 생애-여울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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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현대사는 바람 잘날 없는 그야말로 격동의 역사이지만, 특히나  19세기 후반은 정말 역대급 사건들이 숨돌릴 새도 없이 연이어 터지던 시기였다. 이 시대를 돌아보게 되면 이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 어지러운 난세를 견뎌냈는지, 겪어내고 살아남은 것만해도 용하다 싶었다.   '여울물소리'는 제목만 봐서는 자연 속 평화로움을 연상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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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근현대사는 바람 잘날 없는 그야말로 격동의 역사이지만, 특히나  19세기 후반은 정말 역대급 사건들이 숨돌릴 새도 없이 연이어 터지던 시기였다. 이 시대를 돌아보게 되면 이 시대에 살았던 백성들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어떻게 이 어지러운 난세를 견뎌냈는지, 겪어내고 살아남은 것만해도 용하다 싶었다.

 

'여울물소리'는 제목만 봐서는 자연 속 평화로움을 연상케 하지만 19세기 후반 그야말로 혼란과 격동의 시대에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던 한 예인의 행적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야기꾼, 전기수인 이신통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말해주는 이는 그의 아내 박연옥이었다. 서자였던 이신통과 얼녀였던 두 사람은 혼인 이전에 서로를 품으며 가슴으로 기억하고 하는사이였다. 그러다 부부의 연을 맺게 됐지만, 이신통은 과거에 응시한 뒤 바람처럼 떠돌며 세상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천지도(동학)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의미를 깨닫고 이 썩어빠진 세상은 달라져야 하고,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에 뜻을 함께 하는 동지들과 움직이게 됐다.

 

썩은 내가 진동했던 세상, 무엇하나 온전하지 못했던 세상 거기에 외세까지. 이신통은 과거를 보면서 더 이상 이 나라에 기대를 포기하게 됐다. 이야기 꾼으로 세상을 부초처럼 떠돌다 박연옥과 인연을 맺게 됐지만 연옥과 함께 뿌리 내리며 살지 못하고 예인에서 점차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스승의 행적과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담고 있는 시대가 시대니만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온전한 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었을 시대, 그리고 먹고 살기가 정말 빡빡하기 이를데 없었던 시대, 민초들은 이야기 속에 자신의 울분과 희망을 담았지만 그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야기로 그쳐 버렸다.

이신통의 절망은 과거를 치르던 과거장에서 확인했지만, 그가 이야기 꾼으로 연행을 하면서 이야기 속에 담긴 꿈을 '사람이 하늘'이라고 외쳤던 천지도에 걸게 된 것이다.

 

'여울물소리'는 화자인 연옥이 신통의 행적에 대해 전해주고 있지만 화자와 주인공이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아서인지 화자와 주인공이 그다지 밀착되지 않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이야기 뼈대는 보이지만 소설적인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캐릭터가 전형적이라고 할까.이렇게 격동의 시대를 헤치고 살아온 인물을 담아내는 작품이라면 인물의 생동감이 작품을 끌어가는 주축일텐데,사건과 신통의 행적은 서술됐지만 그 파란만장한 시대에 펄펄 살아 꿈틀거리는 신통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짐작한 만큼 딱 그렇게 그려졌다. 

 

신통보다는 연옥모녀가 갖는 남자에게 기대지 않는 천연덕스러움과 자생력이 더 마음에 들었다. 연옥을 출가시키면서도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했던 연옥모, 그 말처럼 연옥은 스스로 집을 나와 혼인전 마음에 두었던 신통을 기다리다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그런 연옥도 본격적으로 화자의 역할을 하면서 그 천연덕스러움이 반감됐다.

 

민초들이 살아내기 정말 힘들었던 고난의 시대, 그 시대를 겪어내고 살아냈던 인물들의 움직임으로 이야기의 틀이 짜졌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퍼덕이며 움직였던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함께 그려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시대적 배경과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신통의 사명감은 돋보였지만 그 틀 속에 신통이 갇히고 묻혀버린 느낌이었다. 전형적이었다. 천지도 스승의 삶과 사상을 담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하려한 이야기꾼이었다는 것만큼은 부각되고 있지만.

 

이 작품은 황석영 작가의 등단 50년에 발맞춰 나온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재기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오히려 작가에게 상처를 입힌 작품이 돼버렸다. 내게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던 작품이었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나 창작자들이 자신의 이름값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것은 반세기를 작가로 지낸 황석영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책을 다 덮고 난 뒤 '여울물소리'란 제목의 의미를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이 쉴새없이 사건이 터져나온 격랑의 시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잔잔한 여울이라니. 이야기꾼 신통이 세상에 널리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뜻한 것이었을까. 비록 지금은 세상이 어수선해 신통의 이야기가, 신통이 전하고자 한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멈춘 것은 아니란 것, 여울물처럼 비록 얕더라도 끊이지 않고 흐르고 흘러 강으로 바다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 간다는 것이 아닐까하고 그 의미를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e****0 2015.10.13. 신고 공감 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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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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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데, 옛날처럼 접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고, 거기에 살을 보태서 들려주는 이야기꾼을 누구나 다 좋아했을 것 같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신기했을것이고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어떤 작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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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데, 옛날처럼 접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고, 거기에 살을 보태서 들려주는 이야기꾼을 누구나 다 좋아했을 것 같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신기했을것이고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어떤 작가가 그랬다던가. 황석영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탈거라고 했단다. 그가 이름을 말했던 작가들이 다 노벨문학상을 탔다지. 그래서 조금은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의 글이었던지 술술 읽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책을 썼다는 책의 배경은 '동학농민운동'을 하던 그 시절, 일본군이 민비 시해를 하던 아픈 시절이기도 하다.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선언을 했던 동학을 '천지도'로 바꿔 써낸 글은 진정하 사람의 도리, 사람들이 살아길 길은 어떤 길인가를 나타내는 글이기도 하다. 동학혁명이 일어난지 내후년이면 120년이라 한다. 얼마전에 여동생네와 함께 전봉준 피체지에서 하룻밤 묵고 왔었는데 그것 또한 인연인지 동학을 다룬 이런 책을 만난 것 같다.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88페이지) 

 

 

동학을 천지도로 바꾸어 나타낸 이 소설은 꼭 천지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의 화자는 연옥으로 시골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옥은 자신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떠난 이신통을 기다리며 객주를 하고 있지만, 그의 소식을 듣고는 부리나케 짐을 꾸려 그를 찾는 여정을 하는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다. 이신통은 서얼의 서자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했지만 전기수, 강담사, 재담꾼, 광대물주, 연희 대본가이기도 하며, 신통방통하다하여  본명인 이신 보다는 이신통이라 불리운다. 그런 그가 전국을 떠돌다가 천지도의 도인이 되어 혁명에 참여하게 된다. 연옥의 이야기보다는 연옥이 이야기하는 이야기꾼 이신통의 이야기이다.

 

 

 

이신통의 행적을 좇아다니며 연옥은 자신이 몰랐던 이신통에 대해서 한가지씩 알게된다. 

누구보다도 총명했던 어린시절이며 그의 본가가 의원을 하고 있었다는 점. 그에게 누이와 배다른 형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며 그를 곧 만날 것만 같아도 쉽게 만나지지 않는다.

 

 

 19세기 구한말은 격동의 시기였던 것 만큼 이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봉건적인 조선의 신분 질서가 무너지며 근대화의 기로에 있는 시기에 민중의 동학 운동이라는 근대화의 의지가 담긴 내용들이 담겨져 있었다. 현재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지 않는가. 진정한 이야기꾼에 대한 이야기였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계절을 아는 좋은 비라

한 봄을 맞아 내리는 구나!

바람 타고 남몰래 야밤에 오는 봄비

세상 만물 적셔도 소리는 전혀 없네  (175페이지,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 

 

 

영화 '호우시절'에서의 제목도 위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 했다. 계절을 아는 좋은 비, 이들에게도 이처럼 좋은 비가 내렸으면 좋았을 것을.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2.12.05. 신고 공감 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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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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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   여울물은 그 여울을 흐르는 물 을 뜻하는 말로 흘러가는 물이 바닥에 부딪히고 ,길이 좁아져 그 힘과 소리가 달라지는 .. 그런 물흐름을 말한다. 우리의 인생 또한 어디론가 이렇듯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순조롭게 깊고 녋은 강을 흘러갈 때도 있지만 이렇듯 여울을 만나 흐름의 모양과 속도가 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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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 얕거나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

 

여울물은 그 여울을 흐르는 물 을 뜻하는 말로 흘러가는 물이 바닥에 부딪히고 ,길이 좁아져 그 힘과 소리가 달라지는 .. 그런 물흐름을 말한다.

우리의 인생 또한 어디론가 이렇듯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순조롭게 깊고 녋은 강을 흘러갈 때도 있지만 이렇듯 여울을 만나 흐름의 모양과 속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렇게 또 어디론가 흘러들어가게 되는 물길과도 같은 것이 삶이다..

이렇듯 순조롭지만은 않았던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그의 행적을 찾아 다니던 한 여인을 통해서 전해지게 된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워 듣던 구수한 옛날이야기 생각이 난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고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 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그 이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글을 배우고 책이라는 것을 알고 부터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보다는 직접 글을 읽으며 이야기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지금이야 읽고 싶은,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렇듯 책을 통해서 원없이 만나고 읽고 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었던 19세기 그 당시에는 아무리 언문이 널리 보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 맘대로 책을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수' '강담사'라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그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당시의 '이야기꾼'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신(이신통)은 서얼출신으로 글을 읽고 학문에 매진하지만 과거조차 볼 수 없는 신세였다. 한양으로 올라와 어울리게 된 서일수를 만나 그와 어울리면서 본격적인 전기수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저 읽어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담꾼으로서 그러고 광대물주의 역할도 하고 결국에는 연희 대본도 쓰게 되는 그러다가 결국 천지도에 입문하여 혁명을 함께 하고 그 사상을 기록하는 일까지 하게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다룬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화자는 그의 내자인 박연옥이다.

그녀 또한 객주집을 운영하는 여인으로서 양반과 기생첩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운영하던 객주집에 들게 된 이신통.. 그 때의 인연을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근처 시골 부자의 후처로 시집을 가게된다. 하지만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남편을 떠나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맘속에 있던 이신통의 자취를 찾아다니게 된다.

그렇게 담담히 그의 행적을 쫒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이신통의 이야기가,그 시대를 살아갔던 우리들의 민초들의 이야기가 구성지게 보여지게 된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을은 대부분 그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던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사람들이다.

살림살이 따뜻한 중인들부터,당시 천민이었던 악공, 화공, 소리패, 연희꾼등 신분의 체면에 얽매이지 않았던 어찌보면 갓 쓴 선비들보다는 사상이 자유로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보여지는 것보다는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멋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었던 것 같다.

당장은 힘든 현실, 어려운 삶이지만 그것을 해학과 풍자로 즐길 줄 아는..

그러기에 반주 몇 잔에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 노래에 장단을 맞추어 함께 즐길 줄 알았던...

이신통을 찾아다니는 박연옥의 발자취가 닿는  고장마다 그 곳만의 향토색이 물씬 풍겼고 그들의 삶의 활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낙후된 봉건제도가 붕괴되는 전환기였고 그 안에서 싹 튼 민중의식은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신분제도를 뒤엎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혁명 ( 이 책에서는 '천지도'라 표현된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생적인 근대화를 추구하지만 외세의 압력에 의해 좌절되고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속에서 그렇게 또 다른 여울을 통과하며 힘없이 쓰러지는 민초들이 있었다.

이신통도 그러한 인물중의 하나이다.

서얼출신으로 출사표도 던져보지 못한 채 이야기꾼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며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천지도의 교리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비록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가 지나간 흔적에는 또 다른 새로운 여울이 생기게 되고 그 여울을 흐르는 물소리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귓가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소이다. 갑오년에 시작된 혁명이 이제 다 끝났지요. 그러나 아주 끝나버린 것은 아니외다. 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가뭄이 지나면 어느새 골짜기와 바위틈에 숨었던 작은 물길이 모여들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고, 강물은 다시 흐르겠지요. 백성들이 저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찌 죽은 이들의 노고가 잊히겠습니까?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 (P467)

책을 읽으며 만날 듯 만날 듯 하면서 계속 그의 뒤만을 쫒게 되는 연옥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를 바로 만나게 되었다면 이렇듯 긴 이야기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고향을 찾아갔을 때 알게된 이신통의 과거는 그의 이야기에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서얼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그의 행적을 쫒다보니 조선 팔도 유람하듯이

이곳 저곳을 둘러 볼 수 있었던 그러면서 그 고장마다 특색있는 물산들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신통이 읽어주는 '장끼전', 놀이패들이 신명나게 노는 놀이 마당에서 나오는 각종 타령들과 재담꾼들의 걸죽한 이야기들.. 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고

이신통이 방각본 언패 소설책들과 함께 간직했던 '천지도경' '천지도가'를 통해 천지도가 추구하고자 했던 그 의미를 볼 수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t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p488)

 

 

 

  <한국일보에 연재된 '여울물 소리'의 일러스트의 일부입니다. > 출처:한국일보 뉴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m 2013.04.26. 신고 공감 4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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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여울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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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않는 것이 있을까? 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역사도 흐르고 이야기도 흐르고 그렇게 굽이쳐 흐르며 더 큰 강을 이르고 바다를 흘러간다. 19세기 급변하는 시대에 민초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청과 일이 위와 아래로 노리는가 하면 쇄국정치를 하려는 자와 그 반대 세력의 부딫힘 속에 민초들 또한 새로운 믿음에 잉걸불처럼 하나 둘 물들어갔던 천지도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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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않는 것이 있을까? 물도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역사도 흐르고 이야기도 흐르고 그렇게 굽이쳐 흐르며 더 큰 강을 이르고 바다를 흘러간다. 19세기 급변하는 시대에 민초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청과 일이 위와 아래로 노리는가 하면 쇄국정치를 하려는 자와 그 반대 세력의 부딫힘 속에 민초들 또한 새로운 믿음에 잉걸불처럼 하나 둘 물들어갔던 천지도가 나라를 흔들고 백성들의 삶을 흔들어 놓던 그 시대에 서자로 태어나 제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바람에 떠도는 나그네처럼 떠돌이 삶을 우연처럼 선택하게 된 이신, 이신통이라는 전기수와 그를 보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되어버린 양반과 기생 첩 사이에서 태어난 연옥이란 여인의 기구한 삶과 함께 그시대의 역사가 함께 씨실과 날실로 엮여 전기수의 이야기처럼 그시대를 들려주고 있다.

 

19세기 근대문물이 밀려 들며 뒤숭숭한 시절에 동학과 함게 민심 또한 뒤숭숭한 때,양반과 기생 첩의 소생인 연옥은 그녀의 어머니의 삶이 그렇듯 그녀 또한 어머니의 삶을 닮아 가듯 그녀 또한 첩으로 가지만 한번 보고 마음에 담은 신통을 잊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자신이 살아 온 삶과 다른 삶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삼년의 결혼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강경에서 객주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늘 신통에게 향하고 있고 어머니 또한 그녀의 맘을 알기에 신통을 기다린다. 그들의 운명은 빗겨 가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바람처럼 만나기도 하며 연을 이어가던 중 그가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천지도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첩의 소생이며 신통은 서얼이라 자신의 뜻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들이니 오죽했을까.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바람처럼 살아가야 하는 운명들,그런 운명들에게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천지도는 들불처럼 일어나지만 아직 조선이라는 나라가 버티고 있으니 사람이 곧 하늘이 못 되는 흉흉한 세상일 수밖에.

 

이신통,그는 서얼이지만 편애없이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시켜 준 아버지 덕분에 모든 면에 뛰어나지만 그의 뜻을 펼치고 살 세상이 아니다. 그 또한 첩의 소생이니 과거는 물론이고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과거가 무엇인지 한양이 어떠한지 구경하러 올라갔다가 천지도인 서씨와 만나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천지도에 몸 담게 되기도 하면서 그가 그동안 익혀 온 글공부가 이곳 한양에서 전기수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그럭저럭 생활을 연명할 수 있어 전기수의 삶을 함께 펼치며 천지도에 점점 깊게 빠져 든다. 하지만 팍팍한 세상이다. 없는 자는 더욱 멸시 받고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백성이 없다면 나라도 없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민초들의 삶은 질긴 잡초처럼 이어져 나가고 흘러가고 신통의 삶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바람처럼 유랑하는 삶으로 이어져 연옥과 이어진다는 것은...

 

연옥과 신의 교차된 삶 속에서도 세월은 흘러 가고 역사는 흘러간다. 연옥은 잠깐의 신통과의 인연으로 이내 부부의 연을 맺지만 그렇다고 부부라고도 내세울수도 없는 삶이자만 앉으나 서나 신통의 걱정으로 그위 뒤를 밟아가며 그의 행적을 좇지만 늘 한걸음 뒤다. 그렇게 신통을 삶을 좇으며 보여주는 조선의 역사와 민초들의 삶은 고난하다. 천지도를 믿는다는 이유하나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가는 사람들,팍팍한 민초들의 삶은 전기수의 이야기가 되고 풍얼패의 풍얼속에 한 판 굿처럼 난장이 되어 흘러간다. 신통이 혼돈의 역사속의 서얼의 삶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면 연옥은 팍팍하지만 굿세게 가정을 지키고 이끌어 가는 강인한 조선 여인네의 삶을 잘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이 없는 여인네들만으로 구성된 연옥이네 삶이지만 그들은 지치지 않고 꿋꿋하게 여울을 돌아 큰 강으로 이어져간다. 신통의 삶으로 보여지는 조선의 역사라 한다면 연옥의 삶으로 나타나는 여인네들의 질곡의 삶이 질긴 민초들의 여울물과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

 

비록 신이 연옥이 가꾸고 누리는 여생을 보지 못하고 객사를 한 것은 정말 딱한 삶이지만 그런 민초들의 삶이 모이고 모여 현재의 우리가 있게 해주는 삶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한사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이름 없는 별들의 삶이 점철되어 이루어진 것처럼 그들의 삶은 여울물을 돌아 큰 강을 이루어주었다. 신통이 풀어내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와 풍물패의 한 판은 그런 이름 없는 별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처럼 깊은 여향을 남기며 연옥에게서 노성으로 이어지는 삶을 말해주고 있다. 한 권에 담기 보다는 대하소설로 풀어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읽었다. 한 때는 이런 민초들의 삶을 담은 대하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참으로 뿌듯함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세월이 변하다보니 짧아지고 간추려진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큰 강이 근원을 이루는 물의 시작은 한 방울에서 시작되고 그 근원은 크고 깊은 것이 아니라 작은 옹달샘에서 시작하듯 나라를 이루는 근간 또한 백성들 개개인의 삶이 모여 이루어 큰 강을 이루었다는 것을 '여울물 소리'에서 신과 연옥의 삶에서 비롯된 많은 이들의 얼키고 설킨 삶에서 또 한번 그 여운을 느낀다.

 

'물이 말라 애를 태우던 가뭄이 지나면 어느새 골짜기와 바위틈에 숨었던 작은 물길이 모여들고,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오고, 강물은 다시 흐르겠지요. 백성들이 저렇게 버젖이 살아 있는데 어찌 죽은 이들의 노고가 잊히겠습니까?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

 



y******2 2013.01.17. 신고 공감 3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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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때문에 다시 가슴에 새겨진 "황석영"이라는 각인, 꽤나 오래갈 것 같다
"이 책 때문에 다시 가슴에 새겨진 "황석영"이라는 각인, 꽤나 오래갈 것 같다" 내용보기
2013년 새해 들어 읽은 첫 번째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 중 한 명인 “황석영” 작가의 신작 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 모음/2012년 11월)>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황석영 작가는 그간 신문 기고(寄稿) 글이나 방송 인터뷰, 시사·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는 만나왔지만 소설 작품으로는 학창시절 필독서(必讀書)였던 장편 소설 <장길산> 이후이니 근 20 여 년 만에 만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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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새해 들어 읽은 첫 번째 책은 시대를 대표하는 중견 작가 중 한 명인 “황석영” 작가의 신작 소설 <여울물 소리(자음과 모음/2012년 11월)>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황석영 작가는 그간 신문 기고(寄稿) 글이나 방송 인터뷰, 시사·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는 만나왔지만 소설 작품으로는 학창시절 필독서(必讀書)였던 장편 소설 <장길산> 이후이니 근 20 여 년 만에 만나는 셈이다. 그의 문학 인생이 지난 2012년 50 주년을 맞이했고 그만큼 많은 소설들을 발표 - 읽지는 않았지만 소설 제목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작품들이 여럿 된다 - 해 왔는데도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은 지난 정권 들어 그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가 영 마땅치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편벽(偏僻)한 나의 독서 이력(履歷)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이 책을 받아 들고서도 금세 책을 열어볼 수 가 없었다. 분명 “그”를 알고 있음에도 처음 만나는 것 마냥 “낯섦”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눈에서 멀리하다가 새해 들어 다시금 집어 든 이 책, 불과 20~30 페이지를 채 읽기도 전에 “낯섦”이 기우(奇遇)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격변기였던 19세기 후반 구한말(舊韓末)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民草)들의 이야기다.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庶女)인 박연옥은 열여섯 나이에 시골 부자의 후처(後妻)로 시집가게 되지만 어머니의 주점(酒店)에서 알게 되어 하룻밤 정을 나눈 이야기꾼 이신통을 못내 그리워한다. 3년 만에 친정으로 다시 돌아온 연옥은 그리워하던 신통과 재회한다. 천지도 민란에 참여했다가 큰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신통과 짧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만 신통은 훌쩍 떠나버린다. 잠시 동안의 결혼 생활로 연옥은 아이를 가지지만 사산(死産)되고, 신통의 소식을 전해 들은 연옥은 그를 찾아 나서게 되고, 그 길에서 양반집 서얼(庶孼)로 태어났던 신통의 과거사와 천지도 입도 과정, 현재까지의 행적들을 지인(知人)과 가족들을 통해서 전해 듣게 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지만 연옥의 신통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오랜 수소문 끝에 다시 만난 둘은 이틀 동안의 짧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된다. 짧은 만남 이후 연옥은 다시 아이를 가지고 되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 “노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일곱 살이 되었을 무렵 연옥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이번에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유골을 수습하러 길을 떠나게 된 연옥은 유골을 수습하고 고향 길로 돌아오는 길에 묵게 된 집에서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던 여울물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낯섦으로 시작했지만 황석영 작가 특유의 입담과 서사(敍事)에 학창시절 읽었던 <장길산>의 향취와 감흥이 고스란히 다시 느껴지면서 낯섦을 금세 잊어버리고 초반부터 책에 빠져 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반동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19세기 격변기의 “임오군란(壬午軍)”과 “동학혁명(東學革命)”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관통하며 살아온 신통과 여옥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는 재미가 즐겨 읽는 장르 소설 못지않게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가 풀어 놓는 구수하고 질펀한 판소리 사설들과 당시 이야기꾼들 - 이들을 “전기수(傳奇叟)” 또는 “강담사(講談師)”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들려 주는 “장끼전”, “콩쥐팥쥐”와 같은 고전 동화들, 그리고 서럽고 애달프기만 하면서도 결코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의 삶은 그를 왜 민중 소설가라고 부르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우리 고유의 말과 정서의 맛을,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살았던 민중(民衆)들의 삶을 이렇게 구성지고 드라마틱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이 시대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의 문학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답게 작가로서 그의 문학적 소명(召命)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가 문학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여실히 가늠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일개 독자인 나로서는 감히 할 능력도 되지 않을 뿐더러 많은 분들이 알차고 좋은 서평들을 올려주셨으니 염치없게도 그분들의 글들로 가름하기로 하고 제목인 “여울물 소리”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받아들임(解釋)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겠다. 앞서 줄거리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제목인 “여울물 소리”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여옥인 남편인 신통의 유골을 수습하고 신통의 마지막을 돌봐 준 뱃사공의 집에 하룻밤 묵는 장면에서 나온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서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P.488)

 

어쩌면 책에서 그린 19세기 말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인 임오군란과 동학혁명 등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그 성공 여부를 떠나 큰 물줄기(大河)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물줄기를 이루게 된 것은 결국 바로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맴돌듯이 흐르고 있는 수많은 여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히 숨죽이고 들어야만 비로소 들리는 물소리들이지만 분명히 흐르고 있으며, 그 물 소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보잘 것 없고 가늘기만 한 물소리이지만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는, 그래서 그 소리에 담고 있는 민중들의 숨소리와 삶을 다시 한번 새겨 들으라는 작가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여울물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만 그런 여울물들이 함께 모여 이뤄내는 역사의 큰 물줄기를 제대로 바라보고(直視), 또한 그 의미를 올곧이 가슴에 담을 수 있다(理解)는 뜻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백년 후에는 우리들의 삶 또한 여울물 소리로 기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를 다시 만나 보는 반가운 책읽기였다. 의식적이든 또는 무의식적이든 오랫동안 멀리 했던 “황석영” 이라는 이름 석자가 이 책으로 다시금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각인(刻印)되었다. 이 각인, 오래 갈 것 같다. 



a*****7 2013.01.18.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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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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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격변하는 구한말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울물 소리]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스케일은 실로 방대하다. 그래서 읽어가다보면 얼핏 대하소설로 쓰이면 더 좋을 듯한 느낌도 받았지만, 한 권에 담겨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 읽어가는 맛도 새로웠다. 방대한 스케일을 압축해 나가는 시대의 이야기꾼의 재주에 실로 감탄하고, 거대한 격변의 시대인 구한말의 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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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격변하는 구한말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울물 소리]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스케일은 실로 방대하다. 그래서 읽어가다보면 얼핏 대하소설로 쓰이면 더 좋을 듯한 느낌도 받았지만, 한 권에 담겨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 읽어가는 맛도 새로웠다.

방대한 스케일을 압축해 나가는 시대의 이야기꾼의 재주에 실로 감탄하고, 거대한 격변의 시대인 구한말의 농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 권으로 풀어놓은 작가의 재주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여울물 소리]는 19세기 구한말의 전기수와 강담사, 광대물주 등 동시대의 서민들과 하층민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 축을 이루는 것은 한 여인이 간직한 사랑이라고 보여진다.

시집간 지 3년 여만에 다시 집을 찾게 되는 연옥이 평생 처음으로 맘에 두었던 떠돌이 사내 이신통을 잊지 못해 한 평생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전기수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격변하는 시대상을 그려주고, 그 속에서 서민들이 어떻게 격변하는 시대에 시달리며, 또는 생존의 처세술을 익히며 사는지를 소상히 묘사한다.

 

서자 출신으로 과거 시험에 응할 수 없었던 이신(이신통)은 자신의 글공부를 시험해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서일수를 만나게 되면서 또다른 세상으로의 눈을 뜨게 된다.

 

우연히 들른 주막에서 낼 모레면 결혼하게 될  연옥을 맘에 품고 취하지만, 곧 그의 떠돌이 근성으로 둘은 헤어지게 되고, 그날의 맘은 한 평생 서로 잊지 못하게 된다.

이신통 자신은 서자지만, 그 당시 한양에서 치뤄지던 과거 시험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시험의 비리로 그 자신 학문에 뜻을 접게 되고, 서일수를 통해 새롭게 알게된 세상으로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재주인 책 읽어주는 전기수로서의 일을 하면서 어느덧 세월이 흐르게 되고, 그 자신 사건의 중심에 서 있게 된다.

 

한편, 박연옥은 이신통을 잊지 못해 그를 알고 있거나, 그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그의 행적을 찾아서 전국을 떠돌아 다니게 되고, 급기야 그를 만나게 되지만, 예전과는 다른 이별의 수순을 맘으로 깊이 받아 들이게 된다. 아련하고 슬픈 사랑이야기지만, 둘 사이에 말없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는 맘 씀씀이가 가슴깊이 새겨지며 아름답게 다가온다. 

 

격변하는 시대의 풍랑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이신통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해하고 어느덧 자신도 그의 일에 깊숙이 관여해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는 연옥에게서 오늘날의 사랑의 형태에선 쉬이 떠올릴 수 없는 깊이를 발견하게 되어 더없이 소중했다.

 

[여울물 소리] 이야기 곳곳에 숨어있는 천도인들이 설파하는 이야기 속에서 시대를 살아가면서 바뀌지 않는 진리를 발견하고,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이라는 시대의 아픔 속에서 서민들과 하층민들의 고단하고 팍팍했던 삶을 다시한번 떠올려 보고 되새기게 되었다.

아울러, 현 시대의 大 작가의 시선 속에서 구한말의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느낌이 남달랐던 소중한 독서 시간이었다.

 

 

 

m******9 2012.12.22.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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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은 달랐다. 황석영의 신작 '여울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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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워낙에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커서 김지하 시인과 함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허나 평소에 신작 위주로, 재미 위주로 책을 읽는 아빠소는 이런 거장의 저서들을 감히 읽을 생각을 못했었다. 왠지 제목만 봐도 어려울것 같고, 평단의 찬사를 받는걸 봐서는 재미도 없을것 같고 (ㅡㅡ; 영화도 평론가들이 평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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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워낙에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커서 김지하 시인과 함께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허나 평소에 신작 위주로, 재미 위주로 책을 읽는 아빠소는 이런 거장의 저서들을 감히 읽을 생각을 못했었다. 왠지 제목만 봐도 어려울것 같고, 평단의 찬사를 받는걸 봐서는 재미도 없을것 같고 (ㅡㅡ; 영화도 평론가들이 평가하는 영화는 재미없지 않은가...), 또 이런분들의 작품은 무~지 길것 같고, 헐... 그만하련다. 여기서 무식하고 얕은 독서취향이 다 들통나버렸다. 


암튼 그래서 그 유명한 이름세에도 불구하고 황석영 작가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말이다. 그나마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같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대학때 불어닥친 민족, 민주화 바람을 타고 읽은적이 있다. 태백산맥은 읽었던 때가 1991년이었는데 참 감명깊게 읽었었다. 헌데 훗날 이 책이 새누리당 보수정권 시절(당시는 아마 민자당이었지?) 금서로 규정되기도 해서 이해하지 못했었지.. 아니 왜? 왜 태백산맥이 금서야?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작품속 남과 북을 대표하는 주인공들이 '남한=절대선, 북한=절대악,괴뢰,빨갱이' 이렇게 정의되어야 하는데 남과 북 모두 아픈 시대의 피해자들이다~ 뭐 이런 내용이라서 친북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즈음이다.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당시의 과격한 재야의 남북교류 분위기를 타고 정부에 허가받지 않고 문익환 목사등 진보시민단체 사람들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것이 1989년이다. 이 즈음이 전민련, 전대협, 범민련같은 단체들이 결성되던 시기다. 당시 사회상으로 이들 통일단체들은 당연히 불법단체로 규정되었고,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이 실시되었다. 이때 북한방문으로 인해 황석영 작가도 투옥되었다. 지금 세대들이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금강산 관광을 하고, 민간교류도 활성화 되고 하니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민주당 정권 이전 새누리당 집권시절에는 북한이라는 말도 입에 담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통일을 주장하면 좌파라고 했고, 우리민족을 강조하면 빨갱이라고 했다. 어쩜 지금과 똑같을까? 10년이 지나고 다시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으니 지금도 북한과의 교류를 얘기하고, 통일을 얘기하면 종북좌파라고, 빨갱이라고 몰아부치지 않는가...


어쨋든 다시 황석영으로 돌아와서... 황석영 작가가 민족주의 진보의 대표 문학인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 그 유명한 '장길산'이다. 197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를 했고 1983년과 84년에 걸쳐 총 열권으로 발간됐다. 북한에 홍명희의 '임꺽정'이 있다면, 남한에 황석영의 '장길산'이 있다는 말이 유행하였다. 방북이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있었네'라는 작품을 출간했고,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4년간 해외를 떠돌다가 마침내 귀국하고 곧바로 수감되었다. 1998년 출소이후 '오래된 정원'등의 작품으로 다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서두에 황석영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 얘기했었다. 솔직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너무 급진적인 성향의 작가라는 이미지때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고 고백한다.


이번에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신작소설 '여울물 소리'를 읽게 됐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분위기도 바껴 급진적인 이미지가 희석된데다, 무엇보다 두께가 얇은(!) 소설이라 무심결에 읽게됐다. 게다가 핑크빛 표지는 또 얼마나 세련됐든지...



이 책을 읽고서야 왜 사람들이 그를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느니, 거장이라느니 하는 찬사를 보내는지 알게됐다. 이전까지 내가 읽어왔던 현대작가들의 작품과는 왠지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 한 작품 읽어보고 그의 작품세계를 논한다는건 터무니없는 일이고, 이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민족, 민중(국민,백성) 중심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19세기 조선말기 일본과 청나라의 주도권 싸움과, 민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민비일파의 개화정책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높은 세금으로 하루아침에 산적이 되고, 살기위해 민란을 일으키는 백성들뿐이었다. 이신통이라는 인물과 그를 사랑한 여인, '나'를 중심으로 이시대 시대상과 동학운동의 진행과정을 흡입력 있게 풀어냈다. 노작가인데다 시대가 조선말기다 보니 소설의 문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적응하기 다소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동학운동의 사상을 설명하는 주요 스토리가 겉핧기 식으로 읽는 이들에게는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독하며 읽기 시작한다면, 다소 어려우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매력을 만끽할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을 여자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고, 지금 관점으로는 상상조차 되지않는 남성우월주의 사회하에서 여성으로서의 삶과 결혼생활을 읽는 재미도 있다.  



제목 그대로다. 역시 거장은 달랐다. 나처럼 아직 황석영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이번에 나온 신작 '여울물 소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참, 그런데 왜 제목이 여울물 소리일까? 


여울이라는게 빠른 물살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말한다. 여울목, 여울물.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제목을 소개하면서 대략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깊은 산속 암자나, 혹은 시골 할머니 집에만 가도 평소에는, 낮에는 들리지않던 소리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들리기도 한다. 시냇가에 흐르는 물소리도 그러한데 벌레소리 같기도 하고, 재잘재잘 시끄럽게 얘기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론 웃음소리,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 서민들의 삶이, 이런 소리들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는... 정확히 이렇게 얘기한건 아닌데 내가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신작소설 검색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f******e 2012.12.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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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여울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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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라는 큰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내가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한마디로,황석영은 남녀간의 사랑이 뭔지 안다라고나 할까?!여울물 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신통과의 짧지만 깊은 사랑을 나눈 연옥의 마음. 남성 작가가 어쩜 그렇게도 여자의 마음을 잘 묘사할까 생각하면 작가님이 여심을 좀 아는 남자이지 않을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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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이라는 큰 작가에게 붙는 수식어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내가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한마디로,

황석영은 남녀간의 사랑이 뭔지 안다

라고나 할까?!

여울물 소리도 예외는 아니다. 

신통과의 짧지만 깊은 사랑을 나눈 연옥의 마음. 

남성 작가가 어쩜 그렇게도 여자의 마음을 잘 묘사할까 생각하면 작가님이 여심을 좀 아는 남자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신통의 족적을 추적하고 따라가는 연옥, 그러다가 결국 확인하는 진실들을 가슴에 품는 연옥에게서 우리 여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옥은 어느 남자 못지 않게 당차며 행동력 있게 그려져 지금에 비해 옛 여인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매우 시대를 앞선 여인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건 분명 올해의 책이다.



s******9 2012.1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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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문학 50주년 기념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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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등단 50주년을 맞아서 발표한 소설이 <여울물 소리>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황석영의 작품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인 <모랫말 아이들>, <오래된 정원>, < 강남몽>, < 바리데기>, < 낯익은 세상>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황석영 문학 후반기인 방북 이후에 쓴 작품이다. 그러니 나는 황석영 등단 50년을 지켜보지는 못한 독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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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등단 50주년을 맞아서 발표한 소설이 <여울물 소리>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황석영의 작품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인 <모랫말 아이들>, <오래된 정원>, < 강남몽>, < 바리데기>, < 낯익은 세상>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황석영 문학 후반기인 방북 이후에 쓴 작품이다. 그러니 나는 황석영 등단 50년을 지켜보지는 못한 독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 '이야기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남고 어떤 것이 사라지나'하는 생각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쓰기로 하였다. 이야기꾼이라고 하면 황석영 자신도 이야기꾼이 아닌가? 작가는 그의 문학 생활 50년을 되돌아 보면서 자신의 작품들 중에 어떤 작품이 남고 어떤 작품이 사라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여울물 소리>는 그렇게 해서 탄생된 소설인데, 소설의 배경은 19세기이다. 작가는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근대의 맹아기(맹아기)라고 하는데 비하여, 19세기를 반동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우리역사 속에서 19세기는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세도정치, 삼정문란, 동학혁명, 청일전쟁 등 국내외적으로 큰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 시기이다. 그래서 이 책 속에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들이 주축을 이룬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사건이 임오군란이라든가, 동학혁명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역사 속 사건의 중심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까지도 그대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분명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인내천 사상이 중심이 된 동학을 이야기함을 알겠는데, 그 사상을 천지도라 하여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지만, 책 말미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나는 너무 리얼한 역사의 재생을 어느 정도는 파하기 위해서 이르테면 동학을 천지도로 바꿔 쓴 것처럼, 실제 인물은 조금씩 바꾸거나 몇몇 인물들을 유형별로 합쳐 놓거나 이름도 몇 자씩 바꾸거나 자와 호 또는 변성명을 이용하기도 했고 (...)"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렇다. 구태여 우리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조선말의 역사를 사실 그대로 소설 속에 담기 보다는 이렇게 변형한 작가의 의도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쓰면서 <여울물 소리>에 담아 놓은 민요, 판소리 대본, 언문 소설 등은 원문 그래도 인용하거나 동학 교주인 최제우와 최시형의 행적과 글은 왜곡하지 않고 사실대로 인용하였다. 그들이 바로 작가가 책 속에 담고 싶어 했던 이야기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소설은 화자인 시골 양반출신의 아버지와 관기였던 월선 사이에서 태어난 연옥이가 엄마가 운영하는 다리목 객주집에 묵게 된 이신통과의 하루밤을 잊지 못해 그의 일생을 추적하는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전기수라고 했는데, 이신통은 그 누구보다는 생동감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이다. 그의 인생은 서얼 출신이기에 과거를 볼 수도 없고, 그러니 관직에도 나갈 수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세상을 떠돌아 다니면서 이야기를 읽어주는 전기수로 살아간다. 그러나 워낙 재능이 많아서 강담사, 재담꾼, 광대 물주, 연희 대본가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천지도에 입도하여 혁명에 가담하기도 하고, 훗날 그의 스승들이 죽은 후에는 그들의 사상과 행적을 기록하는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19세기인지라 조선말의 부패한 정부의 상황이나 서얼차별로 인하여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나 부자들이 벼슬을 하기 위해서 과거에 동원하는 부정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소개된다. 그리고 임오군란이나 동학혁명로 자연스럽게 소설 속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신통과 같은 인물은 조선 후기의 지식층의 주변부에 있던 서얼 등의 이유로 신분상승이 불가능했던 독서계층이었는데, 당시에 이들에 의해서 많은 언패소설이쓰여졌고, 이를 읽어주는 이야기꾼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동학의 주축 세력이기도 했다.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이야기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가에 대한 의문을 이 소설은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현대의 이야기꾼인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서 소설 속에 담아 놓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어떤 변화가 동학정신과 연결이 된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 (p. 488)

<여울물 소리>는 황석영 등단 50주년을 맞는 소설인데, 출판사의 불미스러운 일로 이 책이 절판이 되어서 아쉬운 감이 든다. 작가에게는 그 어떤 소설보다도 의미있는 책이었을텐데, 그 아픔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n******5 2013.05.30.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