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8.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숨어 살던 기록들
"숨어 살던 기록들" 내용보기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100년후로 돌아갔을 때,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큰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일제 강점으로 나라 잃은 서러움의 긴 세월과 동족상잔 (同族相殘)의 비극인 6.25 전쟁입니다. 따지고 보면 100년이 그리 긴 세월은 아닌 듯도 합니다. 고령화시대로 접어 들면서 주위에서 80,90 어르신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90을 훌쩍 넘어서서 1세기를 호흡하며 더불어 살아가시는
"숨어 살던 기록들" 내용보기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100년후로 돌아갔을 때,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큰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일제 강점으로 나라 잃은 서러움의 긴 세월과 동족상잔 (同族相殘)의 비극인 6.25 전쟁입니다.

따지고 보면 100년이 그리 긴 세월은 아닌 듯도 합니다. 고령화시대로 접어 들면서 주위에서 80,90 어르신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90을 훌쩍 넘어서서 1세기를 호흡하며 더불어 살아가시는 어르신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100년의 시간 속에 일어난 이 두 사건 속에서 대한민국의 모습은 여기저기 상처를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 상흔이 회복이 안 된 부분이 지천입니다.

 

정현웅(鄭玄雄). 이 분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미술가',  '조선미전 특선화가', '혜성처럼 등장한 삽화가', '당대 최고의 장정가', '날카로운 비평가', '고분벽화 모사가', '출판미술의 개척자', '아동미술의 대가' 등등입니다.

1927년 고교 재학중인 18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입선, 그 뒤로도 수차례 입선과 특선을 하며 화가로서 실력을 인정 받음.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해서 신문삽화가로, 뒤이어 조선일보사에서는 [조광], [여성], [소년]등의 잡지에 수많은 삽화와 표지화를 그리며 1930~40년대 대표적인 삽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 뒤로도 문화계에 많은 공헌을 하다가 해방이 된 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조형예술동맹, 조선미술동맹 등에 참여. 6.25 전쟁이후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1950년 9월 26일 북한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분에 대해서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어찌하다가 북으로 올라가셨을까? 그러나 그 내용을 접하면서  '어쩔수 없으셨겠구나'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1945년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숨가쁜 해였다. 이 해 8월 18일, 해방된 지 사흘만에 '조선미술건설본부'가 출범했다. 각 분야의 미술가 187명이 가입한 이 대규모 미술단체에 정현웅이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평소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던 정현웅이 조직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분이 전격적으로 이 단체에 영입되게 된 것은 예술적 영향력과 함께 언론사에 근무하셨던 이력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방후 세대 이후는 '조선'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왼쪽으로 치우쳤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6.25 사변 이후 이 땅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조선'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당연히 북쪽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조선'이니 '동맹'이니 하는 명칭이 매우 광범위하게 쓰였지요. 아, 물론 이 당시에 벌써 왼쪽이냐 오른쪽이냐가 구분되는 시점이긴 합니다. 정현웅이라는 분에 대해 좀 더 알려 드리고 싶어서 보충을 하면, 조선미술건설본부는 예술인들의 모임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산하단체였다고 합니다.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는 좌익문인들이 중심이 된 데다가 산하단체 역시 좌익문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정현웅이 속한 조선미술본부에는 좌우익 미술인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장황한 설명으로 단체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분의 월북 배경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이미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령자가 뒤바뀌는 전쟁터에서 월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연합군이 인천에서 들어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급히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어쨌든 조선미술동맹의 서기장이란 간부의 직책을 맡았던 그는 좌파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날 자신이 없었지요. 선택의 길은 단 한 가지 뿐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남긴 말은 단 한 마디입니다.  "잠깐 북쪽에 갔다 와야겠어" 그러나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이 됩니다.

 

반공(反共)을 넘어 승공(勝共)으로 교육받은 우리의 교과서엔 정 O 웅, X X X, O O O 등의 모호한 글자들이 종종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그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예술가들이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 본인은 물론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도 크나큰 어둠으로 자리잡고 있었지요. 한 개인과 가족의 범위를 넘어 우리나라 근대미술사나 문학사에 묻혀져 있던 자료들과 흔적들이 지금이라도 세상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100년 전 태어난 한 예술가의 삶을 다시 들추어내고, 보듬고자 하는 것은 다양한 시각 이미지가 사회,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또한 다방면에서 관심을 풀어 낸 정현웅의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우리 근대미술사를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다."

 

 책에는 이 분이 남긴 글, 그림, 삽화, 만화, 책의 장정들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s******5 2012.11.27. 신고 공감 4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돌베개)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돌베개)" 내용보기
올해 열번째 책벗 선정 도서는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 지난 달 어느 금요일 저녁, 나에게 유일하게 할애된 저녁 자유시간에 선배들이 하는 책모임에 구경을 갔었다. 남자친구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기도 하고, 참여하고 있는 선배들이 나보다 연배도 훨씬 높으시고,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신 고수분들이라 어디 좋은 얘기 건져들을 거 없나 해서 갑작스럽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돌베개)" 내용보기

올해 열번째 책벗 선정 도서는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

지난 달 어느 금요일 저녁, 나에게 유일하게 할애된 저녁 자유시간에 선배들이 하는 책모임에 구경을 갔었다. 남자친구가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기도 하고, 참여하고 있는 선배들이 나보다 연배도 훨씬 높으시고,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신 고수분들이라 어디 좋은 얘기 건져들을 거 없나 해서 갑작스럽게 찾아간 모임이었다.(사실 밥얻어먹으러 갔다.) 동인천에서 냉면을 먹으면서 평화운동 이야기를 하다, 이전에 '변월룡'이라는 화가의 삶을 다룬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컬처그라피)이라는 책을 가지고 모임했다는 얘기가 나와 그 책을 선정하게 된 계기나 소감 등을 여쭸었다. 오랫동안 통일 운동을 하신 선배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사람 인생이 너무 비참하잖아'라고 이야기를 꺼내셨다. 한국 최초의 미술학 박사이자, 뛰어난 실력으로 러시아에서 인정받은 한인 화가인 변월룡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20세기 초반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서도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소속감을 잊지 않았던 화가이다. 위의 책을 보면 알겠지만,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영구귀화'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고국땅에서 살지 못하였고, 2005년 남한에서의 전시회 또한 거부당한 비운의 화가이다. 역사 자체가 비극이었으니, 그 시대에 비운의 삶을 살지 않았던 이가 누가 있겠냐마는, 이렇게나 뛰어난 화가가 미술책에, 혹은 근현대사 책에 단한번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뭇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 문영래(컬처그라퍼)

이와 같은 충격은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한일 병합의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화가로 인정받고 ,'민중과 가까운 대중예술'을 추구하며 평생동안 화가이자 삽화가, 기자, 미술평론가, 편집자, 책장정가로 활동했던 이가 정현웅이다.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변월룡의 경우와 같이 '정현웅'이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느 잊혀진 월북미술가와의 해후'라고 작게 적힌 소제목과 같이 정현웅도 월북미술가란 이유로 오랫동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화가이며, 이 책은 그런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재평가를 담고있다.

책 날개에 저자의 이력이 아니라, 정현웅의 이력을 실었다.

아마도 정현웅이라는 이의 이름이 대중에게 낯선 만큼 저자의 이름보다는

전기의 주인공인 그의 이력을 앞에 넣는 것이 적절하다 판단했으리라.

일제강점기부터 그가 폐암으로 사망한 1976년까지 그가 활동한 50여년의 자취를 저자의 설명과 그림을 따라 쫓아가다보면, 여느 화가들과 다르게 '민중예술' 혹은 '대중예술'을 표방한 그의 신념이 눈에 보인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러한 예술관이 그의 작품활동과 범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서양화가로서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가, 하루가 지나면 쓸모없어지는 신문에 삽화를 그리고, 잡지와 책의 표지화를 그리고, 일반적으로 화가의 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책의 장정을 맡아 했다. 더군다나 오늘날까지도 예술의 범위에 쉽사리 포함되지 않는 만화도 그렸다. 서양화가로서 자질이 충분했음에도 갤러리에 걸려있는 우아한 그림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신문과 책의 표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의 '대중 예술관'이 말뿐인 허울이 아님을 증명한다.

가장 맘에 드는 작품 중에 하나인 <소 관리공>(1963년, 판화)

그가 북에서 쉽게 접했을 민중들의 일상을 힘있게 그려낸 점이 좋았다.

일제 강점기부터 분단, 그리고 월북한 그 이후까지 격동의 시기를 살아낸 화가인 만큼, 그의 일생을 담은 이 책은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 이후 조선 미술 동맹 등의 활동을 하기 전에는 그는 반일투쟁을 하거나 계급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운동가는 아니었다.(1940년대 일제의 군국주의 탄압이 강화되던 시절 그가 일제를 찬양하는 그림을 그려 친일 미술가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도 이 책은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그의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중예술가로서 그의 면모가 좋았다고 하면서 동시에 치열한 반일 투쟁가가 아니였던 그의 삶 또한 좋았다고 하면 모순적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유의미했던 점은, 일제 강점기와 분단 그 이후의 시기를 학교 근현대사 수업을 통해 배운 나로서는, 그 시기가 투쟁가들의 역사로만 채워져있었다. 다시 말해 20세기 초중반 한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내게 친일파와 항일투쟁가뿐이었다. 일본에 조선이 넘어가고, 일본인이 조선인을 탄압하고, 국내외로 그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고... 이 역동적인 역사적 흐름 안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고 있었고, 자신의 꿈을 꾸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현웅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투쟁가들과 일제 탄압의 역사로 성글게 채워져있던 한국의 20세기 초반이 정현웅이라는 대중예술가의 삶을 통해 그 시대에도 그림을 그리고,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잡지와 신문을 내고, 글을 쓰고 슬을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넣을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임에 틀림 없지만, 모두가 훌륭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기에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이어나가며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시간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렇다고 해서 정현웅을 친일 미술가라고 평가하거나 완전히 개인적인 삶만을 추구한 이기적인 예술가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의 화폭에는 일제의 억압에 억눌린 민중의 삶이 담겨져 있으며, 갈수록 초라해져가는 조선의 모습 또한 그려져있다.)

<적후에서>(1960년대)

붉은 단풍이 인상적이다. 그의 월북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가장 뒤에 따라가고 있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정현웅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부인과 자식들을 두고 떠나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이후로 그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방 후 얼마지 않아 남북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을 따라 몸을 피하고 다시 돌아오려던 정현웅은 다시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다. 분단이 확실해지고, 나홀로 북에 남겨진 정현웅은 고구려 벽화 모사 작업에 몰입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예술 작업을 하여 북에서 삶의 기틀을 잡았다고 한다. 책에 도록이 잘 실려있는데, 월북 이후 그가 그린 조선화나 역사화에서 또한 그의 뛰어난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즐거운 일은 그의 그림을 보는 일일 것이다. 초반 작품들은 도록에 실려있는 흑백 사진만 있긴 하지만, 이후 그림들과 만화들은 꽤 선명한 화질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그림을 눈 앞에 두고 직접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분단이라는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고, 그들의 실력과 삶의 생적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화가들이 많을 것이다. 새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임을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니 서양의 미술 사조는 배웠어도, 우리나라의 미술 역사에 대해 들어본 적 조차 없는 것 같다. 아쉬운 지점이다. 이번에 정권 바뀌면 북한 길 좀 뚫리려나... 조선 미술박물관에서 직접 그의 그림을 만나보고 싶다.

<실뜨기>(1966년)

덧붙여

하나

돌베개에서 진행하는 책벗, 벌써 열번째다. 매달 한권의 책을 선정하여, 돌베개에서 책을 보내주면 서평도 쓰고, 오프라인 만남도 갖는 모임이다. 올한해 동안 대여섯번 참여하다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저물었다. 매번 책 선물 받는 것이 감사하고 또 죄송스러워 (기한을 조금 넘길지라도) 서평을 꼭 쓰다보니, 시나브로 블로그에 돌베개 책 서평만 쌓이고 있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하거늘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잡아내리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정현웅이 그린 초기 그림의 배경을 설명하는 사진. 드래그 하고 싶게 만드는 커서 발견.

셋,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게을러서 그렇지, 돌베개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돌베개 알바 아니므니다...

r*******0 2012.12.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