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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개봉한 이 영화가 진즉에 dvd로 나왔는데, 눈치 못 채고 지나치다 지금에서야 발견했다.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인데, 우선 프랑스 극무대에 올려져 잘 알려진 극본, 상연작을 각색한 경우고, 메가폰을 로만 폴란스키가 잡았으며(비록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그 나이에 직접 이런 걸 극화할 생각을 하는 게 대단한 도전 정신이다. 지금 상업성에 혼을 팔며 대중영합에 늦바람이 난 마틴 스콜세지와는 너무도 대조됨), 일부에서 근황을 궁금해했던 거물급 두 배우가 나오는 점도 주목을 끌었다. 연극도 그렇고 영화의 감상 포인트 역시, 극의 전개에 지나친 몰입을 할 일은 아니다. 아니,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참상이야 TV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하루 이틀 보던 처지도 아니지 않는가? 이 극의 빼어난 점은 첫 씬을 제법 길게 잡고, 두 쌍 네 사람의 독특한 개성이 잘 드러나게 아슬아슬한 대화, 점잖은 처지에 서로 일정 선을 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그 분위기의 창출에 포인트가 놓인다. 한 사람이 좀 쎈 수를 뒀다 하면, 바로 이어 받아 그 배우자가 수습을 하고, '이 사람은 애를 쓰고 있군.' 하는 눈치를 충분히 받았다는 신호를 연이어 보내는 상대방 부부의 눈물 어린 노력, 뭐 이런 걸 감상하는 재미가 대부분이다. 싸움이 아니라, 싸움까지 안 가려는 그 분투와 신경전을 지켜 보는 게 재미지,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이런 걸 감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성이 막장이거나 주변과 전혀 조화를 이룰 줄 모르는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다. 이런 치들은 대개 제 직업에서 거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 채, 업무에서 겉도는 무능자이기가 쉽다. 어이 없는 것은, 무능자들이 모여서 냄새 나는 서클을 이루는 중에는, 서로 간에 더없는 화목과 협조를 이루는 분위기를, 억지로 과시하듯 자아내느라 눈물 겨운 촌극을 벌인다는 점이다. 과연 누가 낙오자의 서클에 기를 쓰고 편입되려 하겠는가? 정작 제 살과 호흡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자가, 온라인으로 도피하여 오늘도 뜻도 모를 책의 필사 작업에 명을 떼 놓듯 열중하는 중이다. 멍청한 듯 현명하지도, 현명한 듯 멍청하지도 않은, 그저 태생의 우둔함과 강퍅함을, 이제 제 비슷한 무리들 중에서 원숭이 무리 서로 털손질해 주듯 품앗이를 할 뿐이니, 그 수준이야 보지 않아도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그런 손에서 무슨 치유가 가능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