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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잔잔하고 다소곳하며 평온함을 이야기 하지만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주제로 인해 반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같은 여자 입장이고 나이도 비슷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과연 이런 사람이 세상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뭐... 소설이니까 가능하지.. 하면서도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경우가 많다는 걸 알기에 동감할 수 없는 간극 때문에 딴지를 걸게 된다. 결혼한 사람 따로, 사랑한 사람 따로, 그리고 헤어짐과 떠돌이 생활. 자신의 사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프고 상처 받아야 그만 두게 될까? 뼈마디가 녹아 내릴 정도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지만.. 이기적인 사랑도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까 요코는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유부남과 유부녀가. 요코가 사랑한 남자는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라지고, 그 사랑의 결과로 요코에게는 딸 소우코가 태어난다. 자신의 지도 교수였던 남자와 살던 요코는 소우코와 함께 그(지도교수)남자와도 헤어져 이 동네 저 동네를 방랑하며 딸과 함께 살아간다. 요코는 매일 매일 떠나간 남자를 떠올리고 기다린다. 소우코는 친해질 만하면 전학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어 엄마에게 물어본다. 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냐고. 이에 요코는 ‘하느님의 보트’에 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춘기를 맞이한 소우코는 그런 엄마의 의견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독립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사랑은 그런 것 같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에게는 너무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 유부남이었던 남자와 유부녀였던 여자가 만나 뼈마디가 녹아 내릴 정도의 사랑을 한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다. 어디에 있든 찾아 낼 거라는 말을 남긴 채. 그리고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가는 여자의 모습은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어린 딸 앞에서 커피와 담배 그리고 초콜릿을 먹으며 살아가는 여자의 모습이라니... 누굴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지, 누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랑을 믿었던 여자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바로 그 남자의 한마디와 추억이겠지만... 그 사랑에 모두 동조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집과도 인연을 끊었고, 딸아이에게 그만큼의 상처도 남겼으니까. 사랑의 모습은 나라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한다고 하지만 가끔... 일본 작가를 통해서 만나는 사랑은 좀 무섭고 섬뜩하다. 집요하고 집착이 심하다고나 할까? 아니 그런 집착은 어느 나라 사람이나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그게 당연한 일상인 것처럼 잔잔히 그려내는 건 일본 작가들만의 방식인 것 같다. 그래서 같은 여자 이면서도, 사랑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묘하게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 이 작가의 신작이 발표 된다고 한다. 벌써 예약 도서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솔직히 살짝 망설여지기도 한다. 사랑과 기다림,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나는 얼마나 작가의 글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 내 성격 자체가 섬세하고는 거리가 멀기에 도전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미치도록 그리워야 긴 시간의 그리움을 그리고 기다림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내 아이의 아픔을 감내하면서까지.. 아.. 이해할 수 없는 여자도 많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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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느님의 보트(에쿠니 가오리: 소담출판사, 2012) 사랑, 기다림과 성장 그리고 여자
엄마와 나의 인생은, 엄마 말을 빌리자면 ‘아빠를 만날 때까지 이리저리로 구르는 돌 같은’ 인생이다. -하느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요미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 3대 여류작가로 불리워지는 <하느님의 보트>입니다. 에쿠니 가오리 작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로 평가받는 소설에 대한 소개글을 빌리자면 <하느님의 보트>는 한여름 불볕 같은 사랑을 하고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와, 그런 엄마 곁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
<엄마와 딸 두 시점에서 이야기 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 여류작가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에쿠니 가오리 소설에서 그녀의 문장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있습니다. (단아하다. 청아하다. 부드럽다. 수려한 느낌을 준다 등)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문장을 수정하는 고집스러운 면과 담담한듯 하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글은 이미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죠. <하느님의 보트>는 에쿠니 가오리의 말을 빌리자면 소소하고 조용조용한 이야기지만 '광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쓴 소설 중 '가장 위험한 소설'입니다. 한여름 불볕같은 사랑을 하고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인 요코는 오직 그리움으로 삶을 채색해나가고 그리움은 독자로 하여금 애절하고 때로는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 책은 엄마인 요코의 시점을 생각해볼때 연애소설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구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시점이 있기 때문에 연애소설이 아닌 성장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하느님의 보트>에서 요코를 이야기 하면서 요코의 딸아이 '소우코'의 시점을 자주 사용하는데 요코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라나는 '소우코'의 시선은 '요코'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고 바라보는데 보다 깊이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이 작품은 에쿠니 가오리의 폭넓은 작품 영역 활동 가운데서도 분명 독특한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요코와 소우코 두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모습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한 소우코이기이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이 엄마인 요코와 매우 닮아 있지만 점차 성장해 나가면서 엄마의 망상과 광기어린 기다림과 집착 그리고 환상을 구분해내고 점차 자신의 생활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따라나가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요코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소우코의 변화와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간 남자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요코. 둘의 이야기가 성장과 기다림이라는 두개의 축이 한권의 책에서 경험되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그리움의 흔적을 만져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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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소리로 조근조근 따뜻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에쿠니 가오리... 개인적으로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이 작가를 좋아한다. 과장되게 가르치려하는 모습 없이 담담하고 솔직하며 감성을 작극하는 서정적인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작가...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 아픈 마음이 치유되는 온기를 느끼게 된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가 개인적으로 자신이 여태까지 써 온 작품 중에서 가장 위험한 작품이란 말을 했다. 허나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로서는 작가의 이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단 한번의 치명적인 사랑의 열병을 가진 여자와 그녀의 딸... 사랑한 사람의 자취가 없는 장소에 결코 익숙해지지 못해 끝없이 새로운 장소를 찾아 둥지를 틀어야만 하는 모녀의 이야기는 사랑이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와 아픔으로 남을 수 있는지 그로인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여자의 모습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나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화자는 엄마인 요코와 딸 소우코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엄마 요코는 일 년이나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신을 찾아올 남자를 위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한 장소에 머물러 있으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찾지 못할거란 불안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엄마 요코의 이야기를 통해 만나게 되는 아빠의 이야기에 소우코는 어느새 긴가민가 하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엄마가 아빠의 이야기를 할 때 보여주는 알싸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냄새와 함께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느끼기에 아빠의 존재를 믿고 싶다.
엄마는 사랑하는 남자이며 소우코의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면 소우코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로 마음을 터 놓을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한 걸음 물러나서 나와 엄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친구보다 소중한 엄마와의 시간도 분명 소중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복잡한 심정을 토로하는 마음씨 고운 딸이다.
한시도 딸 소우코와 떨어져 생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요코로 인해서 캠핑 한번 제대로 다녀 본 적 없는 소우코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스스로 엄마의 곁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 이런 소우코의 모습에 두렵고 무서운 요코...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우코의 뜻을 받아들이지만.....
엄마 요코가 과거의 시간 속에서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 조금은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보다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던 엄마와 딸....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간 앞에 놓이지만 그들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잔잔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느낌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기억만 가지고 삶을 지탱하는 요코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그런 엄마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감싸 안는 아직은 어린 소우코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한 곳에 밪줄을 내리지 못하는 '하느님의 보트'에서 16년을 살아 온 그녀들의 묶여지지 않은 삶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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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보트, 내 책장, 에쿠니 가오리 칸에 맨왼쪽에서 두번째에 꽂혀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과 디자인도 무게도 다르다. 겉표지만 보고 그만 깜빡~ 속아 또 구매하고 말았다. 덕분에 이렇게 또 새로이 읽게 되었지만..^ㅎ 요코 씨를 보면 늘 연상되는 사람이 있다. 김은정. 내 고딩 때 동창이다. 키가 나만큼이나 크고 삐쩍 말랐으며 얼굴이 무척 하얗고 너무 하얘서 눈밑을 꾹꾹 누르면 잠깐동안은 보랏빛으로 변해서 무척이나 아파보이는 얼굴이 된다. 그 얼굴을 하고서 그 아이는 야자시간 조퇴를 많이도 했다. 나랑 같이. ㅎㅎ 그 아이는 요코 씨 같았다. 현실을 살지만 현실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아이만의 세계. 뭔가 다른 형질의 공기가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세계. 은정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졸업하고 나서 연락이 끊겨 소식을 모르지만 이건 안다. 이제는 내가 그 아이 같은 삶은 살고 있다. 나만의 세계. 실은 나도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는 세계. 그래서 그런지 요코 씨를 보면서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요코 씨가 그 사람을 만나서.. 엄마를 무척 사랑하지만 엄마와 같은 세계를 살지 못해 미안한 소우코를 보면 어쩐지 내가 더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른의 이기주의다. 소우코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소우코는 그래서 더 잘 자란 것 같다. 누구보다 자기 주장 뚜렷하게, 누구보다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채로.. 그렇게 잘 자랐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면서 그것을 뚜렷하게 주장하고 사는 이가 그렇게 흔치는 않았으니까.. 아직 고딩이지만 그런 소우코가 참 대견하다. 드디어 만난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소우코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빠를 만난 소우코는 어떤 표정일까.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쉽게도..;; 작가님은 자신이 쓴 이야기 중에 가장 위험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나는 어쩐지 안정이 되었다. 작가님의 야기는 항상 그랬다. 나를 안심시킨다. 그 어떤 이야기라도 작가님의 글 한 줄이라도 읽으면 불안정한 내 상태가 서서히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그 어떤 약보다도 효과가 빠르다. 작가님의 그 특유의 담담한 말투는 언제나 나를 안심시킨다. 괜찮다고. 지금도 괜찮다고.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어쩌면 늘 괜찮았다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약간은 병적으로 그렇게 작가님의 책을 찾았던 것 같다. ㅎ
p.84 우리 부모님을 위해 분명히 해두자. 내가 초등학생 때 친구를 다치게 하고, 중학생 때 머리를 코튼 캔디색으로 물들이고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는 신세가 되고, 몇 번이나 가출을 하고 학생부에 끌려가곤 한 것은 모두 내게 원인이 있어 빚어진 결과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을 좋아했다. 다만 나는, 뭘 어째야 좋을지 몰랐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당신은 길치니까 말이지. 언젠가 그 사람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꽤나 멀리까지 갔었군. 나는 울고 싶었다.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어쩔 줄 몰랐다. 내내 혼자였다. 또뽀가 되지 못했다.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사는 게 재미없었다. 살아 있어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 왜 더 살아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p.177 이번에 학생이 세 명 늘어난다고 한다. 아마도 비어 있는 목요일과 금요일 오전을 이용할 것이다. 일도 중요해. 엄마는 말한다. 담배와 커피와 초콜릿은 엄마의 영양원이고 일은 엄마의 안정제, 아빠는 엄마 삶의 버팀목이고 엄마가 사는 이유, 그리고 소우코는 엄마의 기쁨이며 보물이라고.
p.188 - 만약 가출을 하고 싶으면……. 얼마 전에 엄마가 불쑥 그런 말을 했다. 일요일,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 하고 싶으면 해도 괜찮아. 어렸을 때, 엄마는 몇 번이나 가출을 한 것 같다. - 단 무사히 있다는 소식만은 간간이 전해줘.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가출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알고 있다. 알겠다는 내 대답에 엄마는 안심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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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과 성장 소설을 동시에 읽다 " 에쿠니 가오리의< 하느님의 보트 >를 읽고
"나는 그 사람이 없는 장소에 익숙해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느님의 보트에 탔기 때문에..." -어른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를 동시에 다룬 작품-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들려준 에쿠니 가오리 작가가 이번에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거의 사랑을 잊지 못해 과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엄마와 현실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딸의 이야기를 에쿠니 가오리 작가는 이 책 『하느님의 보트』에서 들려준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 속에서 에쿠니 가오리 작가는 한때 불볕같은 사랑을 하고 그 과거 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와 그런 엄마 곁에서 자라나고 아이의 성장 이야기를 둘다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연애 소설과 성장 소설을 동시에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화창한 여름 날, 요코는 '뼈마디까지 녹아버릴 듯한 사랑'을 한다. 그렇게 불같은 사랑을 하지만, 결국 그녀의 남자는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그 사랑의 결실인 딸 소우코를 그녀에게 남겨주면서 말이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그녀를 찾아오겠다는' 기약없는 약속만을 하고서 그는 어딘가 멀리 떠난다. 그래서 딸인 소우코는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녀에게 아빠라는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 존재는 실제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요코의 과거 기억 속에,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그래서 소우코는 엄마인 요코를 통해 어렴풋이 아빠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엄마인 요코에게 소우코 아빠의 존재는 너무나 강렬하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존재이다. 마치 절대자이며 신적 존재여서 그 사람과 언젠가는 만날 거라는 그 약속과 믿음만이 요코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요코는 그가 찾아올 약속을 믿고 소우코와 함께 몇 해째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며 이사를 자주 다닌다. 한 동네에 오래 살아 익숙해지면 그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요코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지도 못하고 동네에 적응도 못한 채 살아간다. 잦은 이사로 인해 소우코는 자주 전학을 다니면서 친구를 제대로 사귀지도 못하고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과거 속에 사는 요코와 달리 소우코는 현실 세계 속에 살며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떠돌아다녀야 하냐'는 소우코의 질문에 요코는 '하느님의 보트'에 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느님의 보트'는 무슨 의미일까.
"왜 자꾸 이사를 하는데? 엄마는 내 머리에 몇 번이나 입맞춤하면서 말했다. "엄마랑 소우코는 하느님의 보트에 탔으니까." -p. 41-42
어쩌면 하느님의 보트는 기약없는 기다림이었을지 모른다. 과거 사랑에 대한 그리움만 남아서 그것이 두 모녀의 삶을 억압하는 것만 같다. 결국은 지켜지지 못할 약속, 헛된 기다림이자 잘못된 믿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끝까지 요코는 그 기다림을 포기하지 못한 채, 삶을 이어간다.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 그를 만난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상상인 것일까.
이에 반해 딸인 소우코는 그 헛된 기다림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요코와 달리 소우코는 더이상 과거 속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미래를 향해 한 발 내딛으려고 한다. 엄마와의 유대 관계를 깨고, 껍질 속에 머무르기보다 기꺼이 껍질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현실을 살고 싶어. 엄마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잖아."
결국은 서로 함께할 수 없는 요코와 소우코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지만 과거에 머물며 엄마의 세계 속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 속에서 힘겨워하는 소우코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또한 믿고 의지했던 딸이 자신을 떠나고 정말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요코의 모습도 참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그가 돌아올거라는 헛된 믿음에 갇힌 채 말이다. 아마도 요코는 계속 하느님의 보트에 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보트는 결국 전복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이 책 속에서 번갈아 서술되는 요코와 소우코의 심리묘사가 너무 인상적이다. 마치 어른의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에서 비추는 두 대의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일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연애 소설쪽에 비중을 두었던 에쿠니 가오리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성장 소설쪽으로 이야기를 확장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책이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걸작이자,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위험한 작품이라고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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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처럼 회귀해 구원받은 그녀 요코와 소우코라는 모녀의 이야기다. 요코는 사춘기 때부터 방황을 시작한다. 뭔가를 하고 싶은 자유 때문일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유를 추구했다. 추구했다기보다, 내게 자유는 음식이나 수면처럼 필요한 것이었다. 자유롭기 위해 싸웠다. 자유를 찾아 가출도 했다. 하지만 자유와 불편함이라 무척 닮은 것이었다. 그래서 구별을 못할 때도 있었다." 183쪽 그녀는 대학졸업 후 지도교수인 모모이 선생님과 특이한(?) 결혼을 하지만,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 소우코를 임신한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이 때부터 그녀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다. 딸 소우코를 데리고 피아노를 치며 지방 도시를 전전한다. 그 때 그 때 숙소를 구하고 일자리를 찾아 지내다, 익숙해질만 하면 떠난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찾아올거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말이다. 어린 소우코는 이런 생활에 힘들어하면서 묵묵히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서로 밖에 없는 모녀이니까. 정든 친구와 집을 뒤로 하고 엄마를 따라 이사를 하고 적응하는 소우코. 그런 소우코를 보며 사랑했던 남자의 흔적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엄마. 이런 기약없는 세월이 속절없이 흐른다. 이쯤 되면 요코는 남자가 자기를 찾아오길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도망을 다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요코는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행여나 날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으로 수시로 거처를 옮기는 것처럼 보인다. 잠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오래 기억되는 걸까. 소우코 아빠에 대한 기억은 늘 환상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패턴도 소우코가 사춘기를 맞으면서 무너진다. 소우코는 더 이상 자신의 미래를 엄마의 손에 맡기지 않기로 한다.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기숙사행을 선언한다. 서먹함과 갈등 속에서 요코는 딸을 놓아준다. 혼자가 된 뒤에야 그녀는 현실로 돌아온다. 그와 헤어졌던 도쿄로 다시 돌아갈 용기를 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딸 소우코의 '반항'이다.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결국 그것이 모두를 살리는 해결책이 된다.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 소우코가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무조건 순종했다면 아마 둘의 인생은 계속 떠돌이가 될 것이며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파국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어" " 난 너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한 거야" 이런 신파조 대사를 읊조리며 말이다. 다행히도 이 소설은 소우코의 반항으로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엄마에게 반기를 들긴 했지만 아직 어린애라 소우코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까 하는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둘은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인 외조부모도 만나게 된다. 요코는 도쿄로 돌아가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새로 가정을 꾸린 모모이 선생님으로부터 그 남자의 소식도 듣게 된다. 십 년 전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요코를 버린 게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은 꿈인가 싶을 정도로 갑자기 남자가 나타나 재회한다. 그녀가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는 운명적 사랑의 힘을 믿고 있는 걸까. 어찌 됐든 요코의 사랑은 다시 해피엔딩이다. 긴 세월이 지난 뒤 운명적으로 만난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눌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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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봐서는 뭐지? 싶었던 소설 이소설은 모녀가 등장하고 모녀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그리고 짧은기간이 아닌 딸이 초등학교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니까 꽤 긴 기간이다 어머니인 요코는 피아노를 가르치며 살고 학생이 적은탓에 저녁에 나가서 웨이트리스도 겸하고있다 딸인 소우코와 함께 단둘이 살고있다 그녀보다는 오히려 딸이 더 어른스럽다고 느껴지는데 그녀는 소우코의 아버지를 기다리고있다 요코의 말에 따르면 뼈마디가 녹아들정도로 사랑한 그남자를 얼마가 걸리더라도 그녀를 찾겠다고 한 그남자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를 기다린다 그리고 소우코는 그녀에게있어 그남자가 준 선물이며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역으로 소우코는 자신을 보며 아빠를 떠올리는 엄마를 보며 무슨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소우코는 아빠를 모른다 본적도 없다 사진도 없다 그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짐작만 할뿐 게다가 엄마의 이야기를 다 믿을수도 없다 영리한 소우코는 엄마의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 아니란것을 눈치챌정도다 그두사람이 외국으로 여행간적이없다는것 요코는 한곳에서 길어야 일년정도밖에 살지않는다 익숙해지는것 그곳에 뿌리내리는것을 두려워하는것이다 그러나 소우코에게 그것은 얼마나 잔인한일인가 어린아이가 자꾸 전학을 간다는것 적응할만하면 또 이사가야한다는것 새로운친구를 사귀어야하고 적응해야한다는것은 스트레스다 그러나 엄마가 가자고 하면 따라야하고 소우코는 안가면 안되냐고 떼쓰지않는다 그렇다고 소우코가 마냥 괜찮은것은 아니다....... 처음엔 소우코가 너무 안됐었다 하느님의 보트라는말은 요코의 표현으로 이리저리 떠다니는 자신들의 삶을 말하는것이다 정착하는것을 거부하는 그녀 아마도 정착하고 그곳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면 그가 찾을수없을거란 막연한 두려움.. 요코의 무지막지한 그에 대한 사랑이 조금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결같은 그에 대한 사랑을 보며 정말 저렇게까지 한사람만을 바라보며 그사람만을 사랑할수있는것일까 남들이 봤을때 그게뭐냐고 그렇게 사는게 좋냐고 할지언정 그녀는 그를 만난것으로 그를 사랑한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행복하다고 그를 기다릴수있어 행복하다고 하니 대단하단생각도 들고 그런사랑을 할수있었던 그녀가 부럽기도 하다 물론 소우코가 성장하고 자라면서 이 평화롭게만 보이던 모녀의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기시작한다 요코야 그에대한 추억이 있어서 그를 떠올리며 그를 기다리겠지만 소우코에게 있어서 아빠는 그 실체가 없을뿐이다 엄마에게서 들은것뿐 아빠의 약속이란것도 과연 이루어질것인가 의구심이 들고 소우코는 아빠를 추억할수있을만한것이 하나도 없으니 그럴만도하지않을까 딸은 앞으로 나아가고싶어하고 요코는 그렇지않다 한사람만의 입장이 아닌 두사람의 입장이 번갈아가며 나타나서 흥미롭고 두사람모두 너무 담담하달까 문체가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런분위기가 오히려 더 서글펐달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달까 그치만 뼈마디가 녹을정도로 그렇게 오랜시간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릴수있었던 그녀의 사랑이 몹시 부러워졌다면 내가 좀 이상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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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에게는 소녀와 어른이 병존하는 것일까. 얼마 전 읽은 <수박 향기>에는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이야기들의 화자는 모두 소녀들이다. 그것도 모두 한구석에는 그들 나름의 결핍감을 가진 소녀들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짠하게 했다.
<하느님의 보트> (2012, 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도 그런 소녀가 화자로 등장한다. 혼외 관계에서 태어나 아빠를 본 적이 없고, 엄마와 둘이 살아가는 소녀 소우코이다. 밤에도 일을 하는 엄마를 위해 스스로 아침을 차려 먹고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귈 만하면 다른 곳으로 떠나자는 엄마의 말에도 잘 따르는 착한 딸이다. 또 한 사람의 화자는 소우코의 엄마인 요코다. 중학생 때부터 가출을 했던 아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이 차이가 20살이 넘는 교수님과 결혼한 여자, 운명적인 사랑인 '그 남자'를 만나 딸을 낳고 남편을 떠난 여자,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그 남자의 말을 믿고 기다리며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떠도는 생활을 하는 여자.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성적인 면에서 매우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요코는 유부녀인 상황에서 아내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소우코를 낳는다. 요코의 남편인 모모이 교수는 그런 모녀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지만, 요코는 소우코를 데리고 모모이를 떠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불륜인데, 요코는 그 점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아름다운 사랑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사회의 인식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를 반영하는 것일까. 일생을 걸 만한 사랑을 해 보았기에 기다림을 감내할 수 있는 요코의 이런 자유는, 딸의 행복까지 침해할 정도로 거침없다. 끝없는 떠돎에 지친 소우코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하며 독립을 선언하기까지는 말이다.
요코와 소우코의 관점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하느님의 보트>는 그 담담한 문체 때문에, 이런저런 윤리적인 면을 내려놓고 딸과 엄마가 만드는 평화롭고 쓸쓸하고 낭만적인 일상을 상황 자체로 느끼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다. 피아노 연주와 달콤한 초콜릿, 해안가의 산책과 사랑의 기억은 삶의 낭만이다. 그러나 온갖 간난신고를 빼고 여행자로서의 스쳐 지나감만 남은 그런 가벼움은 삶으로 보기 어렵다. 16년의 떠돎은 이제 마치고, 하느님의 보트에서 내려와 뭍에서의 삶을 시작할 때이다. <하느님의 보트>는 그런 상륙의 장면으로 마무리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제시한다. 이제부터 펼쳐질 뭍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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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을 읽으면 느껴지는 것들.... 투명함.... 세밀함....친밀함... 마치 책 속의 그녀가 된 기분.
요코는 소우코라는 딸을 데리고 여기저기 일년 마다 한 번씩 이사를 한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소우코는 엄마를 이해 하면서도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납득 할 수 가 없었다. 처음에는 신났었다. 신기하기도 했다. 엄마는 늘 일 했지만 자신의 곁에 있었고, 산책을 하면서 매년 네 번의 생일을 챙기면서 아빠에 대해 얘기 했었다. 얼마나 예쁜 얼굴로 웃는지, 얼마나 곧은 등을 가지고 있었는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눈을 감으면 떠오를 정도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 한 아빠라는 존재를 잊지 못하는... 아니 그리워 할 정도로 아빠에 얘기를 해 줬었다. 그 얘기를 할 때면 엄마는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그때에만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 하는 것 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힘들어 졌다. 익숙한 것이 좋은데, 익숙해 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려면 엄마가 하려는 이사를 막아야 했다. 그리고 터뜨려 버렸다. 기숙사에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엄마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이제는 돌일킬 수가 없다. 후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이사를 한다. 이상하다. 사람을 기다린다면 보통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인데, 이 책의 주인공은 익숙하다라는 생각이 들면 곧 바로 그곳을 떠난다. 마치 그곳에 붙잡히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 초콜릿의 주인공은 딸을 데리고 계속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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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코가 들어섰을 때 요코는 25살이었습니다. 소우코 아빠에게는 부인이, 자신에게도 남편이 있었죠. 하지만 어느 여름날 소우코의 아빠,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소우코가 뱃속에 있는지 몰랐었죠. 소우코가 태어나면서 요코는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두 모녀의 방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 시작에 소우코는 초등학생입니다. 정작 아빠의 얼굴은 모르지만, 이것저것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하는 정보는 또 알고 있습니다. 바로 엄마 때문이죠. 아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엄마가 종종 해줍니다. 비록 자주 해주지는 않지만요. 그래서일까 아니면 아빠가 그리워서일까, 소우코는 엄마가 해주는 아빠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코는 낮에는 피아노 레슨을 하고 밤에는 바에서 일합니다. 앞서 말했듯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물지 않지만, 그녀의 생활 패턴은 대게 이렇게 설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요코는 그가 떠날 때 한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꼭 찾아내겠다는 약속이었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그를 의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의 동료도 어이없어하는 그 약속을. 하지만 그녀는 그가 그 말을 하던 때 그의 눈을 보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녀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언뜻 이해하기 힘들 만큼, 소우코가 한창 학교를 다닐 나이인데도 요코가 자꾸 거처를 옮기는 것은, 어느 곳이든 익숙해져 버리면 소우코의 아빠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때문입니다.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없는 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니 익숙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모녀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추억으로만 살 수 있는가. 가졌던 것과 갖고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정작 내게 가졌던 것들만 남아 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이 책을 읽으며 자꾸 바라봤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떠올려 봅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더욱 귀하고 감사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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