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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여류 화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내게도 여류화가하면 떠오르는 인물을 당장 말해 보라고 하면 프리다 칼로, 베르트 모리조,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몇 해 전 비제 르 브룅이라는 여류화가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녀의 그림을 일부러 찾아봤다. 그러다가 르 브룅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르 브룅에 대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류 화가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여류 화가 중 한 명인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는 175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엘리자베트는 10대 때부터 전문적으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하여 1774년 성 누가 조합의 멤버가 되었고 1776년 21세 때 화가이자 화상이었던 28세의 장 바티스트 피에르 르 브룅과 결혼했으며 1779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782년 남편과 함께 플랑드르 지역을 여행할 때 본 루벤스의 <밀짚모자>(1622-25)에 영감을 얻어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그렸다. 1783년 28살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그해 10월부터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혁명의 칼날을 피해 토리노로 망명한 비제 르 브룅은 피렌체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자화상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녀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망명 생활 중에 그린 첫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3년 동안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들을 두루 둘러본 비제 르 브룅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1795년까지 머문다.
1795년 7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갔고 그곳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1799년 딸 줄리가 결혼했고 1800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에 제출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 비제 르 브룅은 훗날 지인들에게 이 자화상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최고라고 자랑했다.
1800년 6월에 베를린에 있던 르 브룅은 프랑스 입국 허가서를 받고 1802년 1월에 파리로 복귀한다. 프랑스로 돌아간 후에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결국 600점이 넘는 초상화를 남겼다. 1835년에 <회상록>을 출간한 그녀는 1842년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후 파리 근교의 루브시엔 공동묘지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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