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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TED프리젠테이션의 수상자 카렌 암스트롱이 자신의 책에서 자비에 대해 이야기한다. 7년동안 수녀로서의 삶을 살다 다시 환속하게 된 그녀는 <축의시대>, <성전>, <마호메트>, <신의 역사> 등의 책으로도 잘 알려진 영국의 종교학자이다. 카렌이 말하는 자비의 핵심은 황금률이다. 즉,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라'라는 행동주의적 표현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비'는 단순히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음으로써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즉시 알 수 있는데,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이런 형태의 황금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본성적으로 인간이 실제로는 무자비하리만큼 이기적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자기중심주의는 약50억 년 전, 살아남기 위해 태고의 진흙탕에서 몸부림치던 파충류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 21쪽 다른 인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카렌 역시 인간의 본성에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여전히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많은 학자들의 주장과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을때 아무래도 인간은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것에 더욱 쉽게 반응한다는 사실에 무게가 실린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에서 '자비'에 이르는 길을 수련의 길, 고행의 길로 묘사하며, 그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것 아니겠는가. 카렌은 유대교, 그리스도교(기독교), 힌두교, 불교, 유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자비'를 설명하고 풀어내며 종교의 화합, 그리고 이 시대 가운데 자비의 필요성을 말한다. 다만, 각 종교에 나타난 신화적인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우화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서두에 밝힌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진화론'의 입장에서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고 있는 카렌은 '창조론'의 입장에 있는 신화속의 이야기를 도입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유대교나 그리스도교를 신화로 언급할 때) 책에서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넘어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을 삶에서 행하기 위해 열 두가지의 단계를 차례로 연습해야 함을 순서대로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책의 원문이 'Twelve steps to a compassionate life' 이다) 그것은 '자아'를 버리는 것이다. 자아를 버린다는 것은 곧,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타인이 겪는 고통을 나의 고통과 같이 느끼고, 동일한 마음으로 대상과 교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카렌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인용하며 나와 의견이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타인을 몇 마디 단어로 규정해 버리고, 판단해 버리는 행동을 그치는 것이 자비를 행할 수 있는 중요한 단계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자신이 알고, 주장하는 사실이 과연 얼마나 참으로 진실과 근접해 있는지, 그 사실의 기반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보며, 상대방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한다. 살펴본 것과 같이 카렌이 말하는 자비는 자아를 타인과 동일시하는 자비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주장하는 바가 내 마음에도 동의가 될 때, 자비를 행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자신이 중심이되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넓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무자아'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을 때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자비롭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는 며칠, 몇 년간의 수행이나 연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행동으로 이루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50억 년 전, 생명체들은 오로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네 가지 F'라고 부르는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였다." 네가지 F는 feeding(먹이), fighting(투쟁), fleeing(도망), fuxxing(번식)이다. 이 메커니즘을 기준으로 인류는 진화했고, 아직도 본성안에 네가지 F가 남아있음으로 열 두가지 자비를 실행하기 위한 수련을 행함으로써 이기적인 본성을 극복하고 자비의 인간으로 진보할 수 있다는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카렌의 의견에 깊은 공감이 되기도하고 배워야 할 점도 많이 있지만,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F가 극복해야 할 마음속의 부정적인 본성이라면, 왜 기원전 몇 세기부터 존재했던 인물들과 현대의 사람들 사이에 조금도 자비로운 마음이 진화하지 못한 것일까? 사회적으로 인권이 신장되고 평등의 개념이 확장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기적인 행동이 억제되고 억눌러졌을뿐, 개개인의 내면을 살펴보았을 때 여전히 '자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나타나는 핵심 메세지는 '자비'이다. 장발장은 누군가에게 용서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 수련이나 수행으로 자비의 마음을 어느정도 성장시킬 수 있겠지만 이와같이 누군가의 '자비로운사랑'을 경험한 사람들 또한 자신을 버린다. 용서받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도, 친구들의 우정도, 연인의 애정도 그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사랑받는 것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들의 사랑이 우리를 용납하고 받아주며 그 사랑안에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카렌이 말하는 자비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