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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화가를 알게 된다는 건 커다란 기쁨이다. 나는 새로운 화가를 알게 되었다. 이중그림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 또한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국내의 현존하는 화가 중 최고가를 기록한 작가. 김동유 이다. 앤디 워홀이 그린 마릴린 먼로의 그림이 각인되어 있는 상태에서 마오 주석의 작은 그림들을 이미지화해서 커다란 마릴린 먼로의 그림이 되는 기법, 즉 픽셀 모자이크 회화기법이자 이중그림을 보며 그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알고 있는 인물들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새로운 그림을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 또한 이런 이중그림을 그린 화가, 김동유가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가 좋았다.
세상의 부적응자가 되어도 좋았다. 유령처럼 세상 밖으로 쫓겨나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살아도 캔버스를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아무리 사는게 고달파도 내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캔버스를 채우는 일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만 실존했다.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유령처럼 그림에 대한 애착과 미련 또한 그러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화가 김동유, 그는 50만 원의 생활비로 가족이 축사에서 살면서 그림만 그렸던 그때, 힘들었던 그때를 늘 기억했다. 그래서 물감을 꼭 짜서 쓰게 되고, 물감을 갈라 끝까지 사용할 정도로 절약해서 쓰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이중그림을 그렸던 이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알려진 까닭에 작품의 페이스로 발탁했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사라진 이미지를 다시 불러오게 하고 각기 다른 추억을 건네주는 것이다. 우리를 추억에 젖게 하고 그들이 마치 환생한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그림인 것이다. 비록 책이지만 그의 이중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던 마릴린 먼로와 아픈 삶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또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의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살아있는듯한 느낌을 가질수 있었다. 작가는 우리들에게 그런 추억들을 선사하고 싶었나 보다.
Marilyn Monroe & Mao Zedong, 2007 Oil on Canvas
Audrey Heopburn & Gregory Peck, 2008 Oil on Canvas
어찌보면 내작업 또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인물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다시 한번 풀어놓는 과정이다. 이중그림을그릴수록 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의외로 죽음이 아니라 영원에 대한 소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60페이지)
![]() Van Gogh & Marilyn Monroe, 2005 Oil on Canvas
지독하기 그림만 그리던 그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듯 그의 그림이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에 작품을 출품하게 되면서 그는 유명해졌다. 묵묵히 그림만 그림만 그리던 그의 진가를 비로소 알아준 것이다. 폐교에서 그림을 그렸고, 낡은 축사를 개조한 집에서 살았던 그의 힘든 삶에 여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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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사진속에서 보니 자기 키보다도 훨씬 큰 캔버스 앞에서 작은 사진들을 색칠하고 있는 모습,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경건함까지 느꼈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지만 우리에게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는 그의 그림이 참 좋았다. 그의 그림 그리는 이야기를 하는 삶까지도 좋았다.
눈물로 피어낸 그림들이 꽃을 활짝 피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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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고 그림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좋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느끼기. 내가 느끼고 내가 감동받으면 더 좋고, 남들이 좋아해도 내가 싫으면 그 또한 그걸로 끝이다. 김동유 작가님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한가지 그림만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판화로 찍었으리라 생각했다. 판화로 찍고 명암을 주어 그림을 완성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모두 직접 그린 거라고 하니 정말 감탄이 절로 난다. 한 그림을 그리기도 힘든데 몇 백 개 혹은 몇 천 개의 작은 그림을 일일이 그려야 작품이 완성되다니! 다른 책들보다 크기도 좀 넓고 묵직해서 북 커버를 씌우지 않고 그냥 들고 다니며 읽었다. 덕분에 앞 표지와 뒤 표지를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괜찮은 책 읽기였다. 비록 좀 구겨지고 커버에 내 손톱자국이 남아있지만.
‘그가 세상에 내놓는 첫 원고를 읽으며 또 한번 깨닫는다. 이렇게 눈부신 그림꽃을 밀어올린 궁극의 뿌리가 남몰래 삼켰던 눈물밥의 힘이었음을’
‘집념과 열정이 응집된 나만의 지독한 그리기! 외로움으로 채워온 나의 캔버스, 나의 그리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지인들의 권유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자신만의 세상에 숨어사는 유령처럼 자신을 숨기려 했던 고통스런 시절을 생각하고 자신처럼 현실적이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보상도 없이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이 좋아서 숨어사는 은둔형 유령들의 열망과 노력이 언젠가 세상 속에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 김동유님을 검색해봤다. 이중얼굴 화가, 픽셀 모자이크 회화. 두 사람의 이미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고 도장 혹은 판화처럼 보이지만 직접 그린 그림들.. 홍콩 크리스티 국제 경매회사에 출품되어 사회적으로 더욱 시선을 끌게 된 그가 한 그림을 아니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였는지 바로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떻게 그렸나 상상하게 된다. 내가 상상한 모습과 같은 모습의 그를 보니 정말 인내심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기억하고 표현하는 그의 작업과정 중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꽃과 여인’이 그림 시장에 나왔다고 하자 거금의 돈을 주고 되찾았다. 같은 제목의 그림이 또 있는데 난 꽃이 더 많은 이 그림이 더 좋다.
가정환경이 넉넉해서 물감과 캔버스를 풍족하게 사용하며 불편함 없이 훌륭한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있지만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분은 더 존경스럽다. 가난 속에 허덕이고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고흐가 생각났고,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이 공간이기에 새로운 중심이 되는 변방을 말해주는
글도 좋지만 김동유님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 책은 참 소중하다. 그의 초창기그림부터 지금의 그림까지 비슷한듯 다른 그림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그를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에 너무 기대지도 말고, 현실에 충실 하라’ 85페이지 ‘언제나 스케줄을 짜서 실천해보십시오. 저 또한 그렇게 하는 순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7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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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서버」의 미술비평가 로라 커밍은 『화가의 얼굴, 자화상』(원제: A Face to the World)에서 뒤러부터 워홀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의 다양한 모습을‘눈’ ‘무대 뒤편’ ‘거울’ ‘자기애’ 등의 주제별로 묶어 보여주면서왜 자화상이 시선을 끄는지 그리고 화가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내밀한 모습을 자화상이 어떻게 드러내는지, 거기에 더해 자화상이 실제 삶에서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모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의 머리말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화상은 자아를 드러내야 하는 작가에 대한 요구이면서 풍부한 자아 인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화상은 예술에서 가장 뿌리 깊으면서도 가장 앞선 회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주제가 되는 인물의 겉과 속을 오가며 그 두 개의 자아를 불가분의 영속적인 존재로 재창조한다. 즉, 자화상은 한 편의 예술작품이면서 그것을 빚은 창조자의 이미지이며 그가 자신에 대해 느끼고 상상하고 믿었던 것이 무엇이며 그 가운데 무엇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진실의 요체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언제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김동유를 수식하는 표현들은 매우 다양하다. 전세계에 현존하는 100대 화가, 생존하는 한국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 시장에서 거래량이 가장 많은 화가. 그러나 그의 자화상들을 살펴보면 인간 김동유가 이렇듯 화려한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이 자화상 외에도 그의 초기 자화상을 비롯한 꽤 많은 자화상이 실렸다. 이 책에는 그의 대표작 중에서 추린 140여 점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화가 김동유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이 자화상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자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였다. 당연히 주눅들과 조용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졌다는 상처가 매우 컸고 그의 속엔 늘 공포와 불안이 내재했다. 지금의 김동유는 화려한 수식어구들이 따라다니는 잘 팔리는 화가이다. 그러나 그런 김동유를 기대했다면 이 책을 읽고 적지 않게 당황하고나 실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인간 김동유의 솔직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고흐의 편지를 읽으며 그렇듯이, 그의 군더더기 없는, 가감없는 이야기를 읽어내려갈수록 그의 예술혼에 깊이 감명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다. “아버지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그림이에요. 이거라도 안 하면 어디 맘 둘 데가 없습니다.” (p.205) 그림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마음 둘 곳이라고는 없던 아이가 자라 화가가 된다. 그러나 지방대를 나온 무명의 화가에게는 가난하고 지난한 고통스러운 삶만이 있었다. 심지어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을 생각하기까지 할만큼 그 가난은 몹시도 지독했다. 재능이라는 것이 빛과 같아서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어느 순간 틈을 비집고 나오는 것이라면 내게는 왜 그것이 없는 것일까?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삶을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재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림을 그리려고 일분일초를 다투며 일하고 돌아와 캔버스 앞에 앉는 것은 무의미한 것일까. (pp.100-101) 사람들은 말한다. 재능은 노력일 수 없는 타고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음을 믿는다. 재능이라는 것은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해내는 능력일 뿐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많은 이들이 너무도 쉽게 이런 말을 건네곤 한다. 당신은 행운아라고. 한국 미술계를 주름 잡는 대학 출신도 아니고 국전에서도 수상한 경험이나 배경이 없는 작가로서, 하루아침에 유명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만한 운이 어디 있느냐고 말이다. 나는 과연 행운아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지난 18년 동안 나는 주변의 질책과 충고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그거 꿋꿋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림 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나를 내버려두었다. 욕심도 포기했고 육신의 안일도 포기했다. 마냥 자리를 지키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나의 진짜 재능이었다. 어찌 보면 조금 다른 의미에서는 진정한 행운아인지도 모른다. 견디고 견디는 재능을 가졌으며, 참고 또 참는 끈질긴 생명력을 타고났으니까. (pp.105-106) 이렇게 어머니와 분리되고 아픈 몸을 추스리면서 내가 보았던 것은 환상, 혹은 허깨비 같은 벽지의 그림들이었다. 어지러움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내가 가진 심약함이 어우러져 벽지는 여러 가지 형상으로 그려지고, 사라졌다 다시 합체되곤 했다. 그것은 내게 어머니와 떨어져 있던 충격만큼이나 강한 이미지로 구축됐다. 그때부터인가, 나는 철저하게 시각적인 데 의존할 때가 많았다. 이중적인 것, 겹쳐지는 것, 두 가지의 상이한 것들이 접목되는 것, 평면적이던 이미지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리저리 움직이며 춤추듯 나부낀다. 그것은 부유하며 떠돌다가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또 그 형상이 곧 사라질 듯 움직이며 제각기 돌아다닌다. 여기에는 그림이 가지는 정서나 이야기의 연관성, 클라이맥스가 없다. 모든 상상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벽지의 그림이 나왔다 다시 사라지는 것처럼 숨바꼭질이고 착시이다. (p.260) 예술가는 상실을 즐기는 사람이자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그래서인지 자기 상처를 껴안고 버리지 못한다. 내가 유독 그런 편이다. 나는 작업 도중 컬트적인 상상을 한다. 상상해서도 안 되는 끔찍한 그림들. 기억을 돌이켜봐도 민망하고 불쾌한 순간들. 이런 상상과 기억들이 발전하고 과장되어 도를 넘어선다. 그리고 구체적인 영상이 현실처럼 확 느껴지면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와 순간 캔버스 뒤로 물러날 때도 있다. (p.222) 주로 수치와 모멸감, 상처에 대한 것들일 때가 많았고, 자존심이 제대로 뭉개진 상황,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필름처럼 반복되어 미럿속에 떠올랐다. 굳이 꺼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잊고 싶은 과거말이다. 나는 일종의 자괴 파괴를 안고 작업하는 걸까? 스스로 자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꺼내는 유년의 자아는 기억 속에서 찢기고 상처로 얼룩져 있는데 말이다. (p.225) 이런 콤플렉스 덩어리가 화가로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은 환쟁이의 부록이다’, ‘광기는 순간을, 끈기는 영원을 차지한다’, ‘고통은 사람을 죽이거나 질기게 만든다’와 같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슴 쓰라린 유년의 경험들이 그의 예술의 밑거름이 된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불행이지만, 남과 달랐기 때문에 유니크한 그의 작품 세계가 존재할 수 있었다. 가난은 불편하다. 사람의 가치를 우습게 추락시킨다. 가난함은 초라함이고 쪽팔림이며 사람의 운신의 폭도 좁디좁게 만드는 공포이다. 그래서 모두들 가난을 탈피하고 싶어한다. 가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진정한 가난이란 더러운 축사에 산다는 사실도,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형편도 아니었다. 가슴 복참이 없는 공허함이 나에게는 가난이었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쥐고 권세를 누린들, 가슴에 와 닿는 짜릿한 순간이 없다면 나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비록 누추한 인생일지라도 밤새워 그린 캔버스 앞에서 피식 웃을 수 있는 순간이 좋아 죽겠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pp.59-60) 그러나 이런 개인의 집념이나 노력만으로 그가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현재의 김동유는 그도 인정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좋은 화가와 작품을 발굴하려는 눈 밝은 이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짓기가 예술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를 부패하게 하고 좀 먹게 하는 병폐이다. 주류와 비주류의 세계도 그런 것 같다. 주류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하고, 수상하고 낯선 비주류의 침입을 막으려고 한다. 변화보다는 현재 자기들의 안위를 생각할 때가 많다. 또한 매우 배타적이다. 그렇게 지낼 때 주류의 세력은 비대해지고 잔치를 화려해지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새로움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진정한 주류라면 새로움도 받아들이고 정착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발전이 있고 다양성도 보장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오늘도 수없이 많은 아웃사이더들이 사장되고 폐쇄된 문 앞에서 뒤돌아서고 좌절을 맛본다. 이것이 배타적인 우리 미술계의 현실이다. 아니,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병폐인지도 모르겠다. 무명작가 김동유. 나는 지방에서 활동하며, 지방대학교를 나왔다. 학연도 지연도 없었다. 그런 내가 주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란 힘들었을 뿐더러 그런 희망 또한 일찌감치 버렸다. 이제 와서 어찌어찌 인맥을 만든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래서 내가 결심한 건 내공을 쌓는 일이었다. (p.338, p.340) 학연이나 지연, 혈연과 같은 인맥이 없어도 실력으로 승부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페어 플레이’가 가능한 사회가 좋은 사회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화익 씨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슷한 길을 밟았지만, 젊은 나이에 결국 죽고 만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과 비교해보더라도(김동유와 ‘달빛요정’은 많은 부분 닮았다. 심지어 말을 더듬었던 것까지. 이 부분은 다음에 『행운아』 리뷰에서 언급하겠다.) 김동유가 실로 행운아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역으로 이화익 씨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김동유는 그저 무명화가로 축사에서 더위와 추위와 벌레와 싸우는 무능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걸 생각하면 씁쓸할 수밖에 없고.
꼭 내 그림이 아니더라도 나는 모든 부분에서 그 성질이 어떠하냐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동안 그렸던 나비 그림에는 이러한 생각이 담겨 있다. 이중섭의 형상을 닮은 나비, 반가사유상을 그려내는 나비. 그러나 정작 나비에게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형상이 이중섭의 모듭이든 반가사유상이든 무슨 상관이랴. 나비들이 곧 날아갈 것인지, 모여들 것인지는 또 무슨 상관이랴.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마음대로 상상하고 느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날아가든 날아오든 나비의 문제는 나비의 문제일 뿐.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사소한 데 목숨을 걸었던가.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흔들리곤 했던가. 남의 눈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을 그 안에서 해석하려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p.247) 그러나 어느 순간 이것조차 무의미해지자 나는 모든 교류를 끊고 철저하게 혼자 즐기는 작업으로 돌입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말든 나는 내 스타일대로 내 것을 만들고, 내 안에서 증식하고 복제하며 복습에 답습을 거듭했다. (p.281) 그림을 그린다는 것도 일종의 수행임을 깨닫곤 한다. 그것은 큰바람, 작은 바람이 무수히 지나가는 길과도 같다. 그 바람이 언제 나를 뽑아 내동댕이칠지 모르지만, 뽑히지 않기 위해 끝내 견뎌볼 참이다. (p.288) 화려한 명성도 그를 변하게 하지는 못했다. 사실 예술가로서 김동유가 존경할 만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유명해진 후에도 이전과 동일하게 구도자처럼 예술을 한다는 것. 그가 지속적으로 지독하게 그림 그리기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할 것이다. 수행처럼 예술하기. 개인적으로 그러한 김동유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구겨진 명화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이 작품들을 보면 이전에 단순히 이미지로 보이는 것들 이면에 예술가로서 김동유가 가진 그의 철학과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덧붙임] 인터넷 서점의 해당 도서 페이지에 올라온 미리보기이다. 보시다시피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올컬러로 실려서, 화집으로서의 성격도 갖는다. 무려 수록된 작품이 140여점이니 사실 그것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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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카테고리를 어떻게 정해야 할 지 살짝 고민했다. 자기계발서 느낌의 강력한 의지표명이나 구구절절한 자기이야기를 필가는대로 정리한 에세이라는 느낌도 있고 직업이 화가인지라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고 멋진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여백도 주어진 예술서의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상 화가였던 저자의 남모를 고난과 땀의 무게를 여지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며 미술계에 이름을 남긴 점이나 작품에 임하는 태도등을 눈여겨 볼 때 각자 개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머리나 가슴에 생각만 담아둘 것이 아니라 몸소 행하고 그 일을 향해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서의 의미가 무척이나 강해보인다.
흔히 "예술"이라는 쟝르를 옆에서 지켜볼 때 하늘이 부여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환경과 개인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거기에 추가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광기"이다. 미쳐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특히나 예술분야에서는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광기만 갖추었다고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가만히 있어도 마구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그 누군가가 결과를 얻는 이유는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분명 무슨 일이든 했기 때문에 합당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일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독 예술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기는 이유는 편견때문이 아닌가 싶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서도 현실에 부합하지 못해 미쳐가는 두뇌와 뜨거운 가슴이 열정을 만들어내어 작품으로 나온다는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예술은 재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열정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 재능과 열정을 빛내줄 수 있는 것은 숨쉬는 동안의 성실함과 지루하고도 고된 시간을 견뎌내며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감을 불어넣는 자기만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변함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예술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예술은 잔인하고 가혹한 행위이다. 이해하기 힘든 것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행위가 예술이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모른 체 해야 한다.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예술에 생활이 끼어들면 예술하는 이들은 견디지 못한다. 취미로 하는 예술말고 자신의 본업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위의 말들이 틀린 말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야기도 내가 생각하는 예술에 대한 소견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화가나 음악가들이기에 그렇다. 그렇게 잔혹하게 자기를 누르고 주변을 누르고 몰입해야만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낡고 오래된 물건들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만성질환인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지속적인 치료를 고사하는 점이나 아이들이 아프면 귀찮아하는 게 먼저인 사람이 아주 오래된 처음 시판된 낡은 코란도에 대해서는 얼마의 돈으로든 구매하려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철없이 행복한 저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 내 주변에 존재하는 그런 비숫한 부류들이 생각나 피식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생활인이라 그렇다.
무명이었던 기 드 모파상이 위대한 작가 플로베르를 찾아가 자신이 쓴 글을 봐달라고 청했다. 그러면서 묻기를 "선생님, 제가 재능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플로베르는 " 글쎄, 나는 재능이 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만, 글 쓰는 일처럼 지루한 일을 오래도록 견뎌내는 능력은 있어야 한다고 보네." 하였다. 이런 글을 읽으면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게으르고 나태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남보기에 부러운 일만 눈요기로 좋아하고 실제는 실천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은 일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화가가 되려면 그림을 그려야 하고 작가가 되려면 글을 써야 한다. 생각으로 그림이나 글을 쓴 적은 없었던지.... 재능이란 바로 끝까지 견뎌내며 수많은 시간들을 한 가지로 쌓아간 성실함과 우둔함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리라. 북독일의 디자인 예술관련 학교들은 학생들을 선택할 때 자신이 선택한 예술과목에 어떠한 노력을 어떻게 해왔는지 그 과정을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싶어한다. 학생들의 예술에 대한 변화와 과정과 개성을 심사대상으로 삼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평소에 자신이 그린, 자신이 찍은, 자신이 만든 설치물등을 입학심사조건으로 제출한다. 자신이 만든 포트폴리오는 규격과 형식에 상관없지만 작품을 그리고 만든 날짜는 정확하게 적혀있어야 한다. 쪽집게 실기과외나 벼락치기 포트폴리오는 꿈도 꿀 수 없다. 이를 통과한 학생들은 이후 1일에서 3일동안 실기시험을 치룬다. 제출한 포트폴리오가 자신이 그린 것인지 그렇지 아니한 지를 알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재능과 성실함과 광기를 테스트하는 포트폴리오와 실기시험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학창시절 엉덩이 붙이고 하는 공부가 힘들어서 예술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고3때 급작스럽게 성악을 선택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이 부쩍 많았던 것 같다. 대학만 들어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우선이었고 예술은 그렇게 하찮고 쉬운 것으로 생각하고 이를 묵인하고 인정하는 대학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유럽에 유학온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예술학교에 포토폴리오를 제출했는데 담당교수가 하는 말, 한국의 학생들은 왜 그렇게 비슷한가. 비슷한 그림만 낸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새삼 생각난다. 분명 열심히 성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미래의 화가들이 있을진데 나의 이야기는 한갖 단순한 일화이기만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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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화가 김동유님의 책입니다.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라는 말처럼 김동유님의 삶은 정말 평탄한 삶을 아니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는 말을 하긴 정말 여러 가지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수식어가 현존하는 100대화가라던지 한국 화가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 던지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지만 그의 말처럼 칼날 위에 선 것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동유님이 이러한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하나의 길에서 굳은 집념을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았기에 김동유님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폐교 그리고 그의 집이라고 불리는 축사등 이러한 삶이 있기에 김동유님이 그림인생을 포기했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삶은 아마도 없었겠지요 지금은 아마 좀 편해 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정말 존경하게 됩니다. 비유가 안 될 경험일지 모르지만 뭔가를 했을 때 사람들의 기준에서 이야기합니다. 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하면 좋은데 그땐 벌써 나의 색을 버리고 그들이 말하는 색을 찾아서 나도 모르게 쫒아갑니다. 그럼 조금 좋아진 것 같다 아직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에서는 벌써 지쳐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기준에서 좋은 색은 좋은 것이지만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벌써 모든 걸 부정적인 색으로 봐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쩜 지금의 나의 색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책에서 보면서 느낀 건 늦었을지 모르지만 나의 기본 의지대로 한번 밀고 나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버려놓았던것을을 다시 주위 담긴 힘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김동유님처럼 같이 하나둘 해쳐 나가본다면 나의 본래의 색을 찾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힘든 상황 힘든 일 힘들어지는 생각에서 보면 난 김동유님보다 부유한 상황 일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럼 늦지 않게 하나둘 해쳐나갈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며 택시운수업에 갔을 때 느껴봤을 그 망설임 그리고 그로인한 교훈 등이 삶에서 포기를 모르게 한건 아닐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나도 쉽게는 힘들겠지만 나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김동유님의 책은 많은걸 생각하게 하고 그림에서 좋아하는 오드리햅번에서 새로움을 찾았으며 아리랑성냥 가물가물 추억까지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볼 것 생각할 것 등을 준 연말 연초계획에 많은 도움이 될까 같아서 벌써 설렙니다. 김동유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 희망을 준 것 책이어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생활하니 같은 하늘 같은지역이여서인지 왠지 반가운 친구를 만난 느낌 이였습니다. 즐거운 책에 한번 빠져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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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책은 낯설고 거북한 무엇이었다. 한국의 미술은 근대성에 이르기위해 대중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이상적 세계로 가버렸다는 것이 내 관점이었기 때문이며, 포스트모던 또한 미술가들의 자기만족적 예술관의 추구라는 점에서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나를 지배하는 인식이었다. 예술이 동시대의 삶을 말하지 않고, 더구나 보이지 않거나 외면당하는 삶의 형태들을 대중에게 인식케 함으로써 삶을 사유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은 채 자기들만의 리그에 빠져 젠체하는 허위의식이 가소로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선입견은 이 책에 시선을 맞추는 데 망설임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독한 그리기”, 그리고 “나의 그리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라는 저자의 고뇌가 느껴지는 집념과 수줍은 듯한 고백의 언어가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조잡한 인문학적 식견을 첨삭한 미술작품의 독해 따위나 화단이 축조한 경계 내에서 편협한 위세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별하게 되었다. 특히 천박하고 탐욕스런 기득권 유지를 위해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아 배척하는 자들의 얘기가 아님을 뒤늦게 알아차리곤 외려 호감과 동지적 이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 하겠다.
또한 지면의 모든 글들에 드러나는 진솔한 작가의 면모는 불신과 가면의 장벽을 완벽하게 거둬들이게 한다. 그래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닮은꼴의 고민과 갈등, 망설임과 외로움의 면면들과 이를 이겨나가는 슬기와 희망의 원천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아마 한국 사회처럼 모든 분야에서 왜곡과 아집으로 뭉쳐진 기득권 집단과 같은 배타적인 곳은 없을 것이다. 이 폐쇄적인 그룹이 해당 분야의 주된 흐름을 좌우하다보니 다양성이 도태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러하다보니 정작의 예술가는 기회조차 갖기가 힘겹고, 어렵사리 자신의 예술세계를 지탱하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망각해야 가능한 지경이다. 결국 진짜배기는 도태되고, 남의 흉내만 내는 아류들, 엉터리인 가짜들이 주류입네하고 설쳐댄다. 이러한 토양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일궈내고, 세계의 화단이 인정하는 화가가 된다는 것은 굳이 그 사람의 행로를 추적치 않아도 그 고통의 시간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있다.
활동무대가 그 흔한 파리나 뉴욕은 물론, 서울도 아닌 지방 소도시인 공주를 터전으로 삼은 지역화가, 더구나 지방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가난뱅이 화가, 회화의 소재 또한 키치적이고, 한물간 대중적 과거의 조야한 사물이나 그려대는 화가는 한국적 토양에서 당연히 배척된다. 그러함에도 그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결코 그리지 않고서는 삶의 지속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사람임을 처절할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처절함의 기억들이 많은 지면에서 펄떡인다. 가난으로 병을 얻은 아내와 어린 딸을 안고 시골의 축사를 거처로 삼아야 했던 화가로서의 좌절과 번민, 어려운 가계의 큰 아들임에도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대에 진학함으로써 부자의 정을 단절했던 야속하기만 했던 기억, 빈정거림과 조롱이 밴 화단의 시선들, 가장으로서 생계를 위해 택시회사에 달려갔다 퇴짜를 맞고 돌아서야 했던 인생의 변곡점이었던 순간의 고뇌들이 자신만의 삶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무엇을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를 목격하게 한다.
이처럼 집념을 잃지 않고 자기만의 삶의 길을 위해 거친 지난한 곡절들이 결국은 어떤 것을 우리 사람들에게 선사하는지를 공감케 하기도 하지만, 화가‘김동유’로부터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인이란 어떠한 태도여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느끼고 생각게 되는 것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이다. 해외의 트렌드를 추종하며 모방하기에 급급한 기능자들, 그래서 자기 것을 지니지 못하는 한국 주류의 일천한 의식, 게다가 예술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없이 지적 허영과 탐욕만 가득 담겨 시대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미술이 지역의 이름 없는 화가, 아니 정말 예술을 삶으로 살아낸 화가만이 뛰어 넘을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의 실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읽기가 된다.
남들의 성공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얼마나 흔하디흔한가! 진짜배기 자신의 영토를 만드는 화가는 또 얼마나 생존하기 힘든 풍토인가 말이다. 포스트모던의 성공이 확실해지면 너도 나도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되어 그 익숙함의 이득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어중이떠중이 화가들이 주류를 이끈다. 그러니 일류의 아류에 불과한 이들이 세계의 미술품 시장에서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예술이란 낯설게 하기, 비로소 보이게 하기, 새롭게 하기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들의 삶이 새로이 해석되고, 막혔던 문제를 해결하는 사유의 확장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런 인맥도 없던 화가의 작품을 알아보고 그가 고집스럽게 지탱하던 그림의 세계가 바로 예술이라고, 길을 마련해준 갤러리의 대표까지 사랑스러워 진다.
‘이중 이미지’라는 그만의 화풍으로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된, 화가 김동유의 삶, 그의 예술의 세계가 더욱 든든한 지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또한 고단한 삶의 시련, 그 시간들이 그림에 녹아 우리 대중의 삶을 대변하고, 생각을 더욱 키워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림에 삶의 희망이 있고, 가능성의 실현이 있는 그러한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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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동유의 치열했던 삶과 그림을 만나다 - 그림꽃, 눈물밥 _ 스토리매니악
올해엔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나 읽은 것 같다. 일종의 멘토를 컨셉으로 내세운 책들이 예년에 비해 많이 출간된 탓도 있겠지만, 한 사람의 성공 여정을 더듬어 보는 이야기가 유난히 내 마음을 울렸던 탓도 있다. 덕분에 잘 모르던 분야의 이야기, 생소한 이름의 전문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더불어 세상을 사는 지혜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열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김동유'라는 이름도 내겐 생소했다. 미술과 관련해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나다. 기본 지식도 부족하고, 솔직히 크게 취미를 붙이지 못한 분야기도 하다. 때문에 작가의 이름이 낯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의, 인생 여정과 성공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이 어떤 재미와 의미로 다가올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어떤 스토리보다 재미난 인생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다.
이 책은 화가 김동유의 에세이다.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가족과 함께 축사에서 살아야 했던 고단한 세월, 그리고 그 인고의 세월을 거쳐 세계 화단에 이름을 알리기까지의 화가의 삶이 녹아 있다. 눈부셔 보이는 성공 뒤에 그토록 고단하고 슬픔과 고민, 열정이 어우러진 치열했던 삶이 있었음을, 담담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는 작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화가라는 길을 걸어온 그에게 남은 140여점의 작품들,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완성하며 고민으로 다져지고 열정으로 발전한 화가로서의 작가를 볼 수 있었다. 책에는 그의 작품들이 올컬러로 담겨 있다. 미술 작품을 제대로 보는 눈도 없고, 화가 김동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지만, 작가의 이야기와 더불어 보는 그의 작품들은 그가 그 작품들에 쏟은 열정이나 진심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화가 김동유의 대표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중그림에 대해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느낌 보다는, 한 인간이 예술에 쏟는 고달픔을 먼저 느낄 수 있었다. 책에 실린 사진에는 작가가 이중그림을 작업하는 사진들이 몇 장 있는데, 하나하나 캔버스 위에 그림을 채워나가는 과정이 참 대단해 보였다. 독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그야말로 예술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로 보였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그 자신이 걸어온 세월에 동참하며 함께 그 고단함을 느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작가의 화가로서의 인생을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난 이런 사람이다, 난 이런 화가이다..를 알게 해준다고나 할까?
화가 김동유의 작업실을 한 바퀴 돌아본 느낌이다. 그 그림에 이르렀던 길을, 옆에서 살짝살짝 이야기 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림을 좋아하든 아니든, 화가 김동유를 알든 모르든, 그의 이야기는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 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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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화가가 그린 그림안에 담겨 있을 암울한 수많은 눈물빛을 생각했다. 지방의 무명작가가 홍콩크리스티 경매에 그림이 낙찰되면서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김동유화가.
배곯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아버지와도 의절했던 그의 열정이 고진 눈물의 길을 통과하게 했나보다. 한가지를 끈질기게 붙들고 놓지 않으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독한 그리기의 달인 그는 자신을 [오페라의 유령]에 빗대어 세상에 숨어사는 유령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숨겨 놓고 그림을 지독히 사랑하며 지내온 세월들이 이제는 실존하는 유령 김동유룰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에는 지금의 김동유가 되기까지의 내용들이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 그림을 그릴 때만 자신의 실존을 느꼈던 그가 짝사랑를 하는 사람처럼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련과 애착을 화폭에 담아 가슴앓이처럼 표현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수백가지 작은 형상의 그림이 모여져서 어떤 한 인물을 표현해 내는 기법의 그림에서 그의 가슴의 통증과 애환이 묻어 나는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500만원짜리 축사에서 그려진 그림들이 빛을 발하기까지 수많은 형상의 고뇌들이 그의 손놀림과 붓을 통해서 표현되었을지 가늠해 본다.
김치가 숙성되고 효모가 오랜 시간을 통해서 맛나는 것으로 탄생되듯이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 안에서 고뇌가 절절이 배어 나는것 같다.
자신처럼 이름도 없이 돈도 안되는 일에 몰두하면서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여기며 묵묵히 일에 몰두하고 있을 사람들을, 숨어사는 은둔형 유령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언젠가는 세상 속에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되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무엇을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돈을 쫓기 보다는 자신의 예술성을 추호도 의심없이 믿었던 것 같다. 예술을 하면서 긴 시간을 가난과 무명과 끈질기게 싸워 이겼던 것은 고난이 그를 더 질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일에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늘, 거기에 당신이 존재하고 있엇다는 것을..
이 책은 이전의 김동유처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빛들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일을 좋아하며 열정을 갖고 매진하는 사람들... 은둔형 열정의 사람들에게 바치는 시사(示唆) 적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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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꿈으로 이어질지 아님 현실이 될지는 자신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몇명이나 실현을 하고 살아갈까요. 그만큼 도달 할 수 없기에 인간에게 '꿈'은 잡을 수 없는 행복중의 하나가 되고 맙니다. 본인에게도 포부는 있습니다. 다만, 언제 이루어질까 아니 현재 그 길을 준비하고 있는지 조차 의문이 들때가 많답니다. 쉽게 잡을 수 없기에 더욱더 갈망이 짙어지는 가운데 오늘 <그림꽃 눈물밥>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과연 이 책을 읽으면 이해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예술 관련 서적을 읽다보면 설명을 하더라도 때론 그 자체만으로 어려운 것이 많기 때문에 난해할 때가 종종 있었기에 '과연' 하면서 먼저 책을 펼치기 시작했네요. 그런데, 한장한장 넘기다 보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눈에 들어오기 했고, 미술을 지독히도 끊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인생 고군분투기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미대생'은 대학을 다닐때에만 멋지고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마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언젠가 국제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지인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그녀의 작품이 팔려 대학금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잘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도 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앞으로의 미래를 보고 이런 학생들의 작품을 사고 격려를 해준다는 애기에 놀라웠답니다.
이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갈때 누군가가 격려 해주고 위로해 줄때 비로소 힘을 얻게 됩니다. 자신의 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림에 푹 빠져 가족 돌보기를 두번째로 했다던 저자의 마음이 어떤것인지를 아시나요. 타인이 본다면 가족은 힘들어하는데 왜 그림에만 묻혀 사느냐 하겠지만 이 또한 살아가기 위한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답니다. 힘든 과정이 있었고, 그때 마다 넘어지려고 했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끈을 놓지 않았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더는 깍을 것이 없는 손톱을 기를 쓰고 잘라냈다.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고,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그녀는 그 일이 하고 싶고, 그래서 그저 그렇게 할 뿐이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의미 또한 같지 않을까. 인생에서 바닥을 칠 시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시기를 넘어서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할 때면 '난 언제 바닥을 쳤을까? 아니 아직도 전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바닥까지 갔던 저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반대하던 미대를 가게 되면서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그 의지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미술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외한 이지만 이 에세이는 미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지독히도 사랑하고 진행중인 한 사람이 그 힘들고 외로운 과정을 보여주고 타인에게 격려를 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 속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 있습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잠시 일을 할때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어느 부인의 이야기인데요,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담기 원했다 생각을 했는데 진실은 결혼 전 사랑했던 남자에게 주기 위함이었어여.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나머지 이야기들은 그 남자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고, 그 초상화와 함께 묻히고 싶었다는 남자의 소원이었다 합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으나 여전히 그녀의 맘속에는 그가 남아있던 것이죠. 너무나 애달팠는데 초상화를 무사히 전달을 했을지..무사히 전달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얀 스케치 위에 색깔을 입혀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희망을 주고 때로는 슬픔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더 알게 된 부분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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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다. 훌륭한 예술은 뒤늦게 진가가 드러나고, 그래서 훌륭한 예술가도 뒤늦게 인정받는다. 훌륭한 예술가라면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고난의 시기에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여기 힘들게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이제 찬란하게 진가를 인정받으며 세계 시장에 작품을 내놓는 예술가가 있다. 이 책의 작가 김동유이다.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가난은 함께 가야할 동반자다. 김동유도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 그리다 시골 축사로 이사하기에 이른다. 그곳에서도 그는 아내에게서 받는 원망과 자식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까지도 모두 캔버스에 옮긴다. 그렇게 치열한 세월을 지나 그의 그림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 시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외롭게 오직 그림만을 그리던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정신으로 끝까지 살겠다고 한다. 누구라도 이렇게 변하지 않는 집념을 가진 이는 아름답다. 그의 작품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의 손재주가 아니라 그의 집념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감동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굳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념을 쏟아 흔들리지 않고 매진해야 뭐가 되더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는 김동유 작가의 초기작 부터 최근 작까지 많은 그림이 나와있어 전시회를 보는 듯 하다. 작가의 삶 이야기와 작가의 마음이 글 속에 있으니 그와 함께 그림이 자연스레 이해되어서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