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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완독했어요!! 박수!! (완독 보고가 핵심이니까 밑의 내용은 안읽으셔도 무방 ㅋㅋㅋ)
평생 가도 나는 못읽을거야 라고 생각한 책들이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리나, 죄와 벌, 몬테크리스토 백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고 여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까지. 가만 보니 죄 러시아제 프랑스제 두꺼운 고전들입니다. 꼭 고전을 읽어야 해? 재미없잖아. 무겁고 어둡고 지루하고 진지하고 러시아 작품인 경우 이름부터가 헷갈리고. 읽으면서 엄청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았거든요. 웬걸. 어떻게 된 게 근간의 장르소설보다 고전이 더 재미납니다. 지루한 거 참고 읽는다 이런 느낌 아녜요. 부족한 건 시간과 수면뿐. 돈끼호테,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합본판을 읽고 난 후여서인지 전3권 1천 6백 페이지가 이제는 큰 장벽 같지도 않습니다. 좀 읽어봤다 이거죠>_< 고전 계의 막장 오브 막장이 주는 흥미진진한 전개! 등장인물 전원이 정신병자인가 싶은 캐릭터의 강렬함! 배 뚫고 저장될 것 같은 장황한 문장!(퓨ㅜㅜ) 좋아요 좋아. 아주 좋습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걸레같이 방탕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멍청한 인간의 전형인데요. 제 잇속 차리는데는 선수라 땡전 한 푼 안들이고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커다란 부를 축적합니다. 둘 다 일종의 도둑 결혼을 했는데 부인들은 돈만 뺏기고 불운하게 살다가 죽었구요. 아들들은 그러니까 첫째 드미트리와 둘째 이반, 셋째 알렉세이는 일찌감치 아비한테서 버려져 땅거지처럼 살다가 각각이 찢어져 먼 친척들 손에서 성장합니다. 다 큰 어른이 된 후에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재회를 하는데 싹싹하고 인정이 많은 알로샤를 제외하고는 남은 형제들이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살아요. 돈만 아니면야 일절 얼굴 볼 일도 없을 사람들인데 하여간에 돈이 웬수지요.
카라마조프가는 집구석이 콩가루 같아서 원래도 도시 안에서 유명했는데요.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모이기만 하면 이 집안 얘기로 쑥덕쑥덕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창부라 소문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멱살잡이를 하는 막장이 어디 흔한가요. 참 푼수도 없죠. 딸뻘 여자를 좋아하는 일까지야 그렇다쳐도 아들이 좋다고 쫓아다니는 여자를 안겠다고 돈을 3천 루블이나 봉투에 담아서 기다린다는 게요. 정작 아들한테는 모친의 유산도 안주고 빼돌리려고 하면서요. 표도르에겐 욕망은 있어도 부성이라곤 밀알 한 톨만큼도 없는 게 확실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큰아들 미챠도 표도르에 지지 않아요. 그루셴카가 표도르를 찾아올까봐 아버지 집 옆에 초소를 마련해서 집안을 감시하구요. 아버지를 밀쳐서 발로 차고 머리통을 찢어놓지요. 약혼녀인 카체리나의 돈 3천 루블을 그루셴카와 음주가무 하는데 다 써버리는 건 또 어떻구요. 정작 그루셴카는 이들 부자에게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이 5년 전 덴마크 장교에게 버림받은데에 대한 분풀이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죠. 아휴 바보들.
형의 약혼녀를 사랑하는만큼 미챠를 경멸하는 둘째 아들은 무신론자 지식인이라 어려운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실은 이반이 종교 얘기 할 때마다 졸았어요. 3권에 가서 이반이 제 흥미로운 성격을 폭발시키기 전까지는 카라마조프가에서 심심함을 담당했지요. 셋째인 알로샤는 착해요. 착한 게 개성인 청년. 미남 ㅎㅎㅎ 어쩌면 넷째, 거의 확정적으로 넷째라 보여지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는 아버지에게 성을 받지도 못하고서 카라마조프가의 하인이자 부엌데기로 종살이 중이에요. 이반과 대화하는 걸 보면 엄청 똑똑한 청년인데 간질병을 앓고 있고 당연하지만 사회에 불만이 많은 무서운 청년입니다. 동물학대 등 벌이는 일 하나하나를 보면 사이코패스 같기도 해요. 이들 형제 앞에 닥친 최대 난제는 아버지 표도르의 죽음입니다. 역자님의 설명을 고스란히 옮기자면 "죽이고 싶었으나 죽이지는 않았는데, 혹은 죽이지는 않았고 그저 죽음을 바랬을 뿐인데, 이것이 왜 죄가 되는가?"(p565) 더불어 누가 죽였는가??가 총제적인 문제지요. 추리소설 같은 맛이 가미된 죄와 벌, 구원의 이야기랄까요. 도스토옙스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작품 해설에 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작품해설을 먼저 읽고 소설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자만하고 무절제한 속에서 갖은 죄를 지으면서도 정말이지 이해가 안될만큼 사랑하고자하고 사랑받으려 하는 19세기 후반 소도시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가축시장) 속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도시 속 민중의 면면에서 저는 카라마조프적인 무언가를 느꼈는데 가만 생각하면 그들의 기질 중 일부는 분명 제게도 닿아있어요. 어쩔, 피가 통했나?? ㅎㅎㅎ 저는 기회가 되는대로 못읽겠다, 안읽겠다, 불가능 도장 쾅쾅 찍었던 러시아 소설들을 죄다 찾아볼 거에요. 읽을 책이 지금 엄청 많아요. 24시간이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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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잔인하게, 그리고 가장 따뜻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신의 부재를 논리로 증명하려는 이성과, 신의 존재를 믿으려는 영혼의 몸부림이 맞부딪히며, 그 충돌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인간이라는 이름의 심연 속을 헤엄치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곳은 어둡고 무겁지만, 동시에 구원을 향한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공간이었다.
세 형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단순한 인물 구성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세 축을 상징한다. 드미트리는 욕망과 충동의 화신이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결국 자신 안의 악을 부정하지 못한 채 죄의식과 열정 사이에서 무너진다. 이반은 이성의 인간이다. 그는 신의 정의를 부정하면서도, 그 부정의 결과로 자신이 만들어낸 ‘무신의 세계’에 스스로 짓눌린다. 알료샤는 신앙의 인간이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순진한 맹목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 속에서 신을 발견하려는 고뇌의 신앙이다. 이 세 인물은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실은 한 인간 안의 내적 분열을 드러낸다. 욕망과 이성, 그리고 신앙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은 가장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답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이 셋 중 어디에 서 있는가?” 그러나 곧 깨닫게 된다. 우리는 셋 모두의 조각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이반의 논리는 냉혹하다. 그는 신의 부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하지만, 그 결과는 곧 도덕의 붕괴로 이어진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이반의 명제는 단순한 철학적 가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예언이다. 자유는 신이 부여한 선물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이다. 이반의 논리는 스메르쟈코프의 살인으로 구체화한다. 그는 이반의 말을 실행으로 옮기며, 논리가 현실을 오염시킨다. 이때 도스토옙스키가 보여주는 것은 철학의 실패가 아니라, 이성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이다. 이반은 신을 부정했지만, 그 부정 속에서 신을 가장 절실히 그리워한 인물이었다. 그는 신을 죽였으나, 결국 그 죽음의 공허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한다. 논리는 완벽했지만, 영혼은 무너졌다.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철학적 정점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세상에 내려오자, 인간은 그를 반기지 않는다. 대심문관은 그리스도를 가두고 말한다. “인간은 자유보다 빵을 원한다.” 이 한 문장은 문명 전체를 관통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자유가 두렵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신을 버리고, 다시 다른 권력과 질서에 자신을 맡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 장면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신의 침묵이 곧 인간의 시험이라는 사실이다. 신은 인간의 자유를 위해 침묵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침묵을 ‘부재’로 오해하고, 결국 신을 부정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묘한 전율을 느꼈다. 신의 부재가 아니라, 신의 침묵을 견디는 용기야말로 인간이 감당해야 할 진정한 자유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표도르의 살인은 사건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구조를 드러내는 장치다. 드미트리의 분노, 이반의 냉소, 스메르쟈코프의 열등감이 얽혀 폭발한 결과이다. 즉, 범죄는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몫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악을 미워하면서도 그것을 끌어안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다. 알료샤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악을 몰아내려 하지 않고, 악과 함께 울어주는 자다. 그의 신앙은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속에서 신을 찾는 눈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알료샤를 통해 구원의 본질을 말한다. 구원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용서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철저히 논리적인 작품이지만, 그 끝은 이성의 승리가 아니라 사랑의 회복으로 끝난다. 이반의 논리가 무너지고, 알료샤의 믿음이 남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교조적 신앙이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의 눈물 위에 세워진 신념이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마음 그 자체라는 것을. 신은 철학으로 증명되는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눈물이 머무는 자리에서 발견되는 진실이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신을 부정하면서 신을 향해 절규하는 인간의 초상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과 분열을 끝까지 보여주며,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만 참된 믿음이 태어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 작품은 내게 하나의 사상적 결론보다 더 깊은 체험을 남겼다. 신의 존재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신이 없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그 답을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사랑하라. 그것이 신이 침묵 속에서 남긴 마지막 언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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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책을 구매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전 위주로 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고전을 읽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는 다른 고전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 같이 글을 공부했던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 그는 추천도 모자라 종종 이 책을 언급하고는 했다. 아이유도 읽었다고 하니 괜히 더 읽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움직인 것은 리뷰 포인트 만료 임박이었다. 서둘러 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한 권도 아니고, 세 권을 어찌 시일 안에 읽을 수 있으랴. 그래서 리뷰부터 쓰기로 했다.(물론 다 읽고 나서 리뷰를 다시 쓸 생각이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는 소설이 펼쳐지기 전에 작가로부터 메시지를 받게 된다.
나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전기를 시작함에 있어 나는 다소간 의혹에 빠져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가 비록 알렉세이 표도로비치를 나의 주인공이라 부르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전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다음과 같은 종류의 질문들이 불가피하게 튀어나올 것임이 미리부터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즉, 당신의 주인공 알렉세이 표도로비치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뛰어나단 말인가, 당신은 왜 그를 주인공으로 골랐는가? 그가 무슨 그럴듯한 일을 했단 말인가? 누구에게 무엇으로 유명하단 말인가? 독자인 내가 왜 그의 인생의 사실들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p. 11 작가로부터)
아마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지 않다. 소설의 주인공이 꼭 위대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직 초반을 읽고 있는 단계지만, 벌써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을 만났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란 심지어 악인들조차도 우리가 대략적으로 단정 짓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순진하고 순박한 법이다. 이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p. 23)
이 소설도 대략적으로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순진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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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다가 완독하지 못한 책이었는데 갑자기 급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했네요... 아 너무 기분좋게 설레이는 맘으로 택배를 열었는데... 아니 이건 배송이 문제인지 제작자체에 문제인지 암튼... 책이 1권이 어디바닥에 짓눌려있던걸 배송하신 것 같아요...ㅠㅠ 전 러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시작으로 푸시킨까지 완독해보려고합니다... 명작은 괜히 명작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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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최고의 작품은 당연히 그의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일 것이다. 오랜만에 먼지 묻고 바랜 카라마조프를 찾아 날짜를 보니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두 권으로 86년12월 26일에 읽기 시작해서 87년 1월 3일에 마친 기록이 있다.(이번에는 1월29일부터 3월 2일까지 읽었다.) 2단 세로줄이고 총 800쪽 분량인데 아름다운 삽화도 간혹 있고, 작가 관련 사진과 부록자료도 꽤 충실하다. 그 중 한 컷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율 브린너가 출연한 영화 한 장면인데 찾아보니 58년 작으로 그가 드미트리 역할을 했고 마리아 쉘이 그루셴카로 분했었다. 나 역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둘의 분위기는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기억으로는 책의 한 쪽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 작은 사진이라 놀라왔다. 그만큼 분위기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게 했기 때문일거다. 겨울이 되면 다시 읽고 싶어지지만 계속 마무리 짓지 못하던 죄와 벌, 하권을 이번에는 비로소 끝내고 바로 형제들 읽기에 돌입했다. 3권에 들어서는 남은 분량이 줄어가면서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깝고 아쉬어 일부러 중단하고 내일로 미룰 때도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자유롭고 거리낌 없는, 치밀하면서도 끝까지 내지르는듯한 문장은 경탄과 카타르시스, 통쾌함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1권에서 가장 인상깊은 곳은 5편의 ‘Pro와 Contra’중에서 이반의 서사시 ‘대심문관’이다. 대심문관인 추기경에 의해 종교재판으로 화형의 불꽃이 연일 오르던 16세기 에스파냐 세비아의 광장을 방문한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상상으로 시작되었으나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울림을 준다. ‘네가 그자냐? 정말로 그자인 것이냐?...(중략)도대체 뭣 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527쪽)’ ‘자, 머리를 짜내어 세 가지 물음을 만들되, 사태의 규모에 상응해야 되는 건 물론이고 그저 세 개의 단어, 사람이 만들어낸 세 개의 어구로 세계와 인류의 미래의 역사 전체를 표현할 만한 그런 물음이어야 된다 하고 말이야(531쪽)’ ‘너는 네가 선택한 자들을 자랑스러워하겠지만 너에게는 오직 선택받은 자들뿐이고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을 줄 것이다. (544쪽)’, 서사시의 마지막은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며 그리스도를 풀어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입맞춤은 노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예전의 이념을 고수하는 거지.(554쪽)’라고 이반은 덧붙인다. 알료샤와 이반은 서로를 아낌에도 대척점에 있고 이것이 알료샤는 가슴아프다. 이반은 ‘카라마조프의 힘.....카라마조프적인 저열함의 힘이지.(555쪽)’라고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근거’로서 이를 꼽는데 3권의 마지막에서 ‘카라마조프 만세!’를 부르기까지 어두움은 회복할 수 없이 깊어지고 요동친다.
3권에서는 4부 11편 중 ‘악마, 이반 표도르비치의 악몽’에 나오는 ‘1000조 킬로미터 일화’가 인상적이다. 12편 ‘오심’에서는 증인들의 증언이 이어지는데 때론 아슬아슬하게 또는 답답하게 이어지고 여기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적인 기량을 펼친다. 성경을 비롯해서 인용되며 녹아든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찾아보고 싶어진다. 사건의 진행은 몇 일 동안 일어난 것인지, 동일한 장면이 형제들의 시점에서 다시 복기될 때의 공통점과 차이점, 선명함과 아쉬움은 무엇인지, 등장인물의 접점에서 부각되는 성격적 특징과 미래에 거둘 힌트와 씨앗으로서의 장면들도 정리해보고 싶다. 이전에 읽을 때는 이반에게 매료되었었다. 이반은 자유를 상징했고 모태신앙이며 정체성 불안의 여전한 현재 진행형인 내게는 닿기 어려운 지점에 있었기에 더 근사하게 다가왔다. 다시 읽으며 작가가 알료샤에게 기울이는 애정, 그 따스함이 좋았고 알료샤에게서 내 막내동생이 겹쳐보여 더 특별한 인물로 새기게 된다. 미워할 수 없는 드미트리는 또 어떤가. 천방지축 열혈청년 미챠를 어리석다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카라마조프 가가 당면하고 있는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느 순간에 어떤 사건이 조금씩만 빗겨 간다면 이 모든 불행은 온전한 형태로 재 정렬될 수 있을 것인지, 불행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완전한 허구 속 이 가족만의 블랙코미디적 연극일 뿐인지, 그저 소설인지....생각은 꼬리를 무는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감정의 충돌과 폭발, 그 잔영이 슬프게도 너무 현실적이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본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흙수저라 부르면 될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수저’자체가 아닌, 부모로서의 자연스런 어떤 온기도 찾기 힘든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마디로 표현한다.1권의 2편에서 ‘저런 인간은 도대체 왜 살까!’라고. 한 푼트의 호두를 잊지 못했던 미챠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그에 사로잡혀 또 다른 인물 스메자르코프에게 의도치 않게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이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야 했던 알료샤까지 그들의 힘겨운 삶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구상했던 다음 작품은 써지지 못해 안타깝다. 책을 덮으며 미쨔와 그루셴카는 무사히 탈출하겠지만 그 후 어떻게 살아갈까, 이반은 그렇게 사그라드는 것일까, 알료샤는, 그리고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그려본다. 두 번째 읽었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도 한 번 더 첫 장을 펼치고 싶어질 도스토예프스키의 빛나는 유산이다. 책 속에서; --알료샤가 콜랴에게 -‘더욱이 요즘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 다 자기가 우습게 보일까 봐 끔찍하게 두려워들 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중략) 요즘은 거의 애들조차도 이런 걸로 괴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거의 광기입니다. 악마가 이 자존심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나서 전 세대 속으로 기어 들어간 꼴이죠. 정말 악마의 짓이라니까요.(101쪽)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할지라도, 당신 하나만이라도 그렇게 되지 말아야죠.(102쪽) -하지만 어쨌거나 전체적으론 삶을 축복하세요.(103쪽) --스네기료프가 일류샤를 생각하며 ‘좋은 아이 같은 건 싫습니다! 다른 아이 같은 건 싫다고요!’(중략)‘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예루살렘이여,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110쪽)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너무도 비교되는 부자관계..) --형제들 “단 한순간도 형이 살인자라고 믿은 적은 없어.” 알료샤의 가슴속에서는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고, 그는 자기 말의 증인으로 하느님을 부르는 듯 오른손을 위로 쳐들었다. 순간, 한없는 행복이 미챠의 얼굴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고맙다!” 그는 꼭 기절을 했다가 정신이 들어 첫 숨을 내쉬는 것처럼 말꼬리를 길게 빼며 말했다. “나는 지금 네 덕분에 부활한 거야..... 안 믿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금까지 너한테 이걸 물어보는 것이 두려웠어. 다름 아닌 너, 너한테 말이다! (중략) 그래, 가 보렴, 이반을 사랑해라!” 미챠에게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186쪽) -2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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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세트중 1권을 읽고, 두번째 책을 접어들면서, 이 책을 사람들이 극찬하고,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인물들의 중심에 카라마조프가가 중심이 된다. 그리고 각 인물들마다 중도를 지치기 보다 오히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서로간의 갈등이 커져보인다. 책속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에서 종교의 힘이 쇠퇴하면서 인간 그 자체를 중시하고, 국가의 힘이 세지는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신에 종속되어 살아온 인간들의 삶이 좋은것인가라고 자문도 하게 만든다.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비판, 성경의 다각적인 해석, 그리고 결혼이라는 것이 단지 사랑때문이 아니라 명예와 재산으로 더욱 치우쳐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 나름대로 안심하게 된다. 나의 죄악된 모습이, 이 소설속의 나오는 어떤 인물들보다는 더 악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론 이런 생각 나도 해봤는데 하며, 나외 죄된 속성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결국 도스토예프스의 소설이 주는 느낌은 인간을 너무 적나라게 표현했다라고 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점이 오히려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구나 하고 보편성을 얻어가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아주 귀중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신분제가 가득한 중세사회나, 금수저론으로 떠들썩한 현대사회나 법으로도 제어가 되지않는 탄생의 차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외에도 아버지가 누구라서, 또는 어머니가 누구라도 그 자녀들도 그 속성으로 인식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일도 발생한다. 카라마조프가의 셋째인 알료샤는 승복을 입고, 수도원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속성을 사람들은 그 아버지로 판정하고 만다. '나는 너를 관찰하고 있거든. 너도 카라마조프야, 그것도 완전히 카라마조프지. 고로 어떻든 간에 피는 못 속인다는 거야' 라고 셋째 아들 알료사에게 말하는 라키친의 말은, 그것이 라키친의 말이었지만, 그 마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인식인 것이다. 아버지때문에,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그 형제들과 아직도 사건을 일으키고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는데 아낌없이 살아가는 카라마조프의 이야기가 2권에서 계속된다. 수도원을 나오게될 알료 그의 형제들을 화합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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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3명의 여자로부터 3명의 아들을 낳고 1명의 사생아를 낳는다. 성인이 된 장남은 약혼녀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다. 둘 사이에 암투가 벌어진다. 차남은 형의 약혼녀를 사랑한다. 막내만 모범생이다. 사생아는 집안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증오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은 친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는다. 내가 아는 드라마 중 최고의 막장이다. 이 막장 드라마는 일본 TV에 방영되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막장의 인기는 국경이 없나 보다. 그런데 원작이 놀랍게도,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한 집에서 그야말로 막 자랐다. 어린 시절 접했던 문화와 책들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 '죄와 벌'에도 가난, 폭력, 살인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B급 감성이 성격이 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이 생생하다. 책을 읽다 보면 '마동석'만 한 팔뚝이 책 밖으로 나와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멱살 잡히기 전까지는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우선 말이 너무 많다. 작가도 말이 많고 모든 캐릭터가 말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수다쟁이들로 둘러싸인 느낌이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죄다 수다쟁이로 채우다 보니 소설은 자연스럽게 2천 쪽에 달하게 된다. 게다가 그 많은 등장인물 대부분은 이름이 길고 어렵다. 읽다 보면 '이노무스키', ‘저노무스키’ 하는 러시아 이름들이 계속 나오는 데 왠지 욕 같기도 하고 누가 누군지 헛갈린다. 사실 이야기 구성은 단순하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만 파악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구조다. 우선 러시아식 이름과 호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러시아 이름은 본인 이름 + 아버지 이름 +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에서 표도르는 이름이고, 미하일로비치는 아버지 이름, 도스토옙스키는 성이다. 가까운 사이는 이름만 부르고 공식적인 관계는 부칭과 이름을 같이 부른다. 정말 친한 관계는 애칭을 부른다. 애칭은 꼭 외우지 않아도 본명을 파악하면 뉘앙스가 비슷해 대충 누군지 알 수 있다. 이야기보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관전 포인트다. 그래서 캐릭터를 구체화시키고 표면으로 드러내기 위해 '내 마음대로' 캐스팅을 해봤다. 재미는 덤이다. 우선 아버지 표드르다. 그는 자식도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와 돈만 좇는 파렴치한이다. 아마 죽을 때도 돈만큼은 무덤까지 싸 갖고 갈 양반이다. 정말 본능에 충실하다. 모든 게 단점인 그에게 굳이 장점을 찾자면,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너무나 솔직해서 체면도 모르고 예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광적이면서 완벽히 자기밖에 모르는 완전무결한 이기적 캐릭터를 소화할 배우로 임채무 아저씨를 캐스팅한다. 다음은 장남 드미트리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았다. 즉흥적이고 망나니에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 유흥을 즐기다 보니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버지처럼 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면에는 분명 순진한 구석이 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 큰 남자가 십자수를 취미로 하는 느낌이랄까. 감성이 풍부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며 어설프지만 자신이 가진 도덕률을 끝까지 숭고하게 지키는 인물이다.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역할에 오지호를 캐스팅한다. 차남 이반. 똑똑하긴 하나, 잘난 척 대마왕이다. 재수 없고 싹수없고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놈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캐릭터. 그래도 내면에는 나약한 구석이 있어, 막판에는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이다. 유지태를 캐스팅한다. 막내 알렉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최후에 도덕적으로 지향하려는 곳에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모범생 그 자체다. 화도 잘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착한 마음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원천적으로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마치 신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인격이다. 그래서 재미없다. 평면적이고. 임시완이 생각났다. 다음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다. '스메르자'는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다. 태어날 때부터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가장 불운한 사내다. 자신의 출생 자체가 불행이었고 삶 자체가 분노였다. 그 분노는 카르마조프 가를 향하고 있지만 가장 증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추악한 감정을 평생 억누르며 카르마조프 가의 시중을 드는 부억데기 하인으로 산다. 영화 '형'에서 조정석의 동생으로 출연했던 엑소의 디오(도경수)를 캐스팅한다. 듣자 하니 요리도 수준급이라 하고. 다음은 카체리나. 엄청난 미인이다. 그만큼 자존심도 세다. 자신이 차인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집착의 화신이다. 체면을 지키면서 조용히 폭발하는 역할에 '수애'를 꼽는다. 마지막으로 그루센카다. 그녀는 예쁘고 애교가 많다. 변덕이 심하고 왈가닥에 말괄량이다. 그러면서 순박한 백치미 같은 느낌이 있다. '리턴'에 출연했던 윤주희를 캐스팅하겠다. 소설은 독자를 냉탕에 담갔다 온탕에 담갔다를 반복한다. 애초에 인간이 냉탕과 온탕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인간 개개인은 다양한 선과 다양한 악이 열렬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자신의 삶 속에서 싸우고 투쟁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캐릭터들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탄생시킨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고전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읽었다. 카르마조프적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며 내 안의 악마와 천사를 동시에 마주하게 하는 막장 장편 소설,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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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박스 아니고 주황색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1~3권까지 들어있고 추가로 노트도 있어요~~)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읽는거 보고 주문했습니다. 1권 읽고 있는데 재밌네요~~~ 3권까지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천천히 완독해 보려구요~~~ 요즘 책 값이 많이 올라서 부담스러웠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요거 완전 득템한 기분 들면서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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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박스 아니고 주황색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1~3권까지 들어있고 추가로 노트도 있어요~~) 효리네 민박에서 아이유가 읽는거 보고 주문했습니다. 1권 읽고 있는데 재밌네요~~~ 3권까지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천천히 완독해 보려구요~~~ 요즘 책 값이 많이 올라서 부담스러웠는데 민음사에서 나온 요거 완전 득템한 기분 들면서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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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 선과 악 등 서로 모순되는 원리들이었다.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켜서 신성(神聖)의 의미를 더욱 높이고, 구원과 부활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삶의 영역에서 구체화했다. 이를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인 등 범죄 사건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사건 자체가 아닌, 이러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살해된 표도르 주위의 인물들이 사건을 전후로 겪는 심리적 갈등에 주목하였다 신과 인간, 선과 악 등 서로 모순되는 원리들이었다.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켜서 신성(神聖)의 의미를 더욱 높이고, 구원과 부활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삶의 영역에서 구체화했다. 이를 위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인 등 범죄 사건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사건 자체가 아닌, 이러한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살해된 표도르 주위의 인물들이 사건을 전후로 겪는 심리적 갈등에 주목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