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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가 새로워지는 길은 스스로 종교개혁당시의 개신교 정신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지금의 패왕적 권위를 지닌 목회자의 과잉대표성, 교계 중심의 패러다임을 기독교 사회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 그 길임을 이야기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주의, 성직주의, 승리주의는 교계 중심의 패러다임이 나은 오해의 산물이다. 책을 읽은 뒤,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매우 절박한 순간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서울의 한 중대형교회에 속하는 나의 교회는 1만 성도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한쪽에서는 1만성도 파송운동(분당00교회)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1만 성도의 비전을 갖고 있다. 무엇이 부흥이고 무엇이 진리인가. 이런 현실이 말해주듯이, 지금처럼 성장을 이뤄낸 목회자가 존재가치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되는한 부흥이란 단어를 쓰더라도 교회의 성과를 수량으로 측정하는 지금의 상황은 회사경영과 다를게 없다. 요즘 기업도 그런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경영을 말하지 않고 Spritual value를 추구하는데 하물며... 나의 교회도 크기만 작을뿐 동일한 욕망과 문제를 안고 있을뿐이다. 한쪽은 대형교회가 되어서 문제라면 다른 한쪽은 대형교회가 되지 못해서 문제인게 차이일뿐,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이제는 작은교회가 아름답다는 주장조차 조심스럽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에 절망적이지만 객관적인 진단에 환자가 저항하듯이, 우리는 늘상 이러한 일에 인간들이 왈가왈부하는것이 주제넘은 일이며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심판하신다, 심지어 이런 현상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해서 막지 않으셨으니 결국은 허락하신 것 아니냐라는 반론에 부딪히는데, 이는 인간들의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비열한 자기변명일 뿐이다. 정말 개인의 죄에 관심을 갖는것이 복음주의자의 태도일까. 이대로 연대책임을 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간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인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또 다시 노력하고 개선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 상황은 그럼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 회사야 무너지면 나라든 채권자든 회생시켜주지만, 교회가 무너지면 누가 회생시켜주나. 신앙이 세상과 만나는 좀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겠다. 직접적인 권력의 추구가 세상에 더 나은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지난 5년의 역사가 말해주었다.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내가 어떻게 제 2의 인생을 판에 박힌 삶을 살지 않고 살아가야할지 고민하고 "참여"해야 겠다. 지금 통과 하고 있는 이 막장같은 상황도 결국 종착지는 아닐테고 벗어나기 위해선 누군가의 힘이 필요할테니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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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종교개혁을 꿈꾸는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
이 책을 읽은 소감을 일곱 가지 동사를 통해 간략히 표현해 보고자 한다.
1. 재밌었다.
2. 즐거웠다.
3. 놀라웠다.
4. 위로가 됐다.
5. 공감했다.
6. 아쉬웠다.
7. 필독서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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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아카데미.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그곳에서 진행되는 강의들을 들어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있다. 뭐 이런 책과 관련없는 사견이고.. 사실 어떤 현실이나 상황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이것이 정확한 진단이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희송 대표의 진단은 가혹하다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하다. 저자가 포스트 2007 시대라고 명명한 시대 속에서 개신교의 위치는 복음의 능력보다는 세력을, 복음의 능력보다는 큰 덩치를 자랑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부흥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목사로써 부흥이 전부다라는 말이 현실적이기도 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다. 왜냐하면 아무리 진리 안에 머무르며,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교회라도.. 또한 그렇게 살고자 고민하는 목사라 할지라도 작은 교회에 있다는 것 하나로 그들의 작은 외침이 영향력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를 교회되게"라는 기치를 들고 교회 밖의 활동을 나서면,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니 교회나 부흥시켜라. 그리고나서 말해라"고. 안타깝지만 세력이 없는 자의 말은 귀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뼈져리게 느꼈다. 목사는 부흥으로 말해야 한다. 이것은 나라는 사람에게 어쩌면 냉혹하고 치열한 현실을 깨닫게 한 명제였다. 저자가 지적하는 성직주의와 성장주의, 승리주의는 이미 개신교 안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개신교회를 지탱하는 기둥들로 자리잡고 있기까지 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힘이 빠져간다. 성장을 쫓을 때 가장 먼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진리에 대한 타협이기 때문이다. 죄로부터의 벗어남, 가슴이 찔리는 설교와 삶의 각성과 도덕적 갱신을 요구하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십상이었다. 또한 세상과 교회를 분리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그런 분리를 통해 집단화, 세력화, 정치화되어가는 교회는 결국에는 개혁이 필요한 대상으로 낙인찍혀버렸을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비판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복음과 말씀에 집중해야한다는 원론적 대안부터, 도덕성의 회복을 요구하는 대안까지. 저자가 요구하는 대안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느꼈다. 복음을 영화롭게, 복음이, 말씀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답게, 크리스천답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는 세상 속의 거룩한 사람.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대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가 세상과 분리되는 거룩이 아니라 세상 사람 앞에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평화가 기쁨을 누리는 자, 거룩을 따르는 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제 2의 종교개혁의 방식이어야 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거룩은 세상 속에 살아갈 때 반드시 영향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통로가 되어진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자리에 그리스도인으로(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도, 세속성자)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 과정은 그냥 구원받았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내고 자 하는, 삶으로 믿음을 증명해 내고자 치열히 내 안에 잔재하는 죄와 싸우는 싸움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너무 힘들고 혹은 귀찮아서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그 싸움 말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진단과 대안들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계속 출판되고 읽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잊혀지기 때문에.. 하긴.. 이런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그나마 성도로써의 삶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겠지. 욕망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라면 지루하기만 한 이런 책 읽지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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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줄고 있다. 그렇지만 전체 종교인은 줄지 않았다. 그 만큼 기독교에 대한 신뢰가 줄었다는 말이다. 기독교와 달리 무섭게 성장하는 종교가 있다. 바로 천주교다. 물론 아직까지 기독교(개신교)가 천주교보다 많지만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순위가 바뀔 것이다. 왜 기독교가 비호감이 되었을까? 대형교회의 세습, 무늬만 신자들, 성공과 성장에 대한 초지일관적인 태도, 다른 종교에 대한 폭력성, 기존 정치 세력과의 결탁,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획일화된 교회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닌 교회들이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지역교회는 편파적이다. 무슨 말인가? 한 교회가 완전한 교회다움을 다 보여 줄 수 없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각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조각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교회는 대형, 성장, 성공이라는 목표로 달려왔다. 이제는 이 것 외에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야 할 때다. 다양한 모습은 특정 지역에 강한 기독교를 전국에 골고루 인정받는 기독교로 탈바꿈 시킬 것이다. 물론 단기간에 이런 일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런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성은 지적 관심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지식을 통해 자신을 갱신하는 가운데(로고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파토스). 그럴 때 우리는 움직인다(에토스). 존 스토트의 말대로 비전은 로고스와 파토스의 결합이다. 이러한 비전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다양한 사람의 출현은 다양한 교회를 가능하게 한다. 다양성은 다양한 건물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이다! 아직까지 이런 움직임은 “목회자 따로 평신도 따로”라는 느낌이 든다. 둘은 경쟁대상이 아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동역자다. 함께 고민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교회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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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입니다. 신학생인 동생이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덕분에 좋은 책을 보게 되네요. 기독교,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고 기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성찰은 발전을 도모할 뿐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기도 하는데 그런 면에서 훌륭한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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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로테스탄트는 청어람아카데미의 양희송 대표의 첫번째 책이다. 사실 저자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가끔 그분의 글을 다른 사람들이 공유해서 읽고 공감되는 것이 있어서 찾다보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은 느낌은 이 글 제목처럼 현재의 한국 교회를 거시적으로 잘 바라본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대표적인 현상을 논리적으로 적어놓았다. 책이 제시하는 대안도 그다지 구체적이지 않다. 한 두개의 대안을 던지기 보다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그림은 읽는 독자들이 이루어 가길 제안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아버지에게 한 번 읽어보시라고 드렸더니 한 시간정도 지나서 다 읽었다고 돌려주신다. 그래서 대충 읽었네라고 했더니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라고 하신다. 사실 책의 큰 그림은 이미 우리가 다 느끼고 알고 있는 내용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해서 이미 느끼고 있고 알고 있지만 왜 변하지 않는가? 예전에 이런 글을 본적이 있다. 사람이 죄를 저지를 때 모르고 할 때도 있지만 알고 할 때가 더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다든지 다른 사람을 때린다든지 수업시간에 떠드는 것은 그것이 잘못인줄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는 것과 삶의 불일치가 생긴 것이다. 도덕 시험 100점 맞은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인가 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의 하지 않을 것이다.
양희송 대표가 책에서 우리에게 제안한 것처럼 책의 완성은 큰 그림을 앎에서 끝나지 않고 세부적인 그림을 우리 삶에 그릴 때 완성될 것이다. 그것은 현재처럼 비오는 구멍난 지붕을 바라보며 언젠가 고쳐지겠지 하는 막연한 낙천주의나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책 제목처럼 다시 Protestant(반항자, 항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종교 개혁은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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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과 입시에 전적으로 매여 있는 10대들에게 '대학 잘 가라' 고 기도회를 열어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구조에서 아이들이 놓여나도록 해주는 실제적 역할을 과감히 해내지 못하면 , 자살과 왕따로 얼룩진 10대들과 그 부모들의 가슴속에 개신교는 부재한것이다. 청년들의 삶을 옥죄는 현실적 고민을 단지 청춘의 가슴앓이로 간주하는 낭만적 태도는 그 세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입증하는 것일 뿐이다. 20대와 30대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없는 개신교는 이제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누구의 가슴도 뛰게 할 수 없을 것이다. ..38p 좀더 개신교 전통에 출실하고 현재의 상황에도 부합하는 대안을 '기독교 사회 중심 패러다임'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여러 영역에서 전문적 소양을 갖고 있는 성도들이 자기 영역에서 대표성과 발언권을 갖게 하는 것. 목회자가 모든 영역에서 자동적으로 최종 발언권을 갖는 방식이 아니라 그 영역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개신교 성도들로 하여금 책임있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구조일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신학 등의 각 영역에 출적된 역량을 전면에 배치할 수 있고,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신앙적 숙고가 결합된 내용을 한국 개신교인들의 대답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 76p 한국 개신교의 '성직주의'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실체는 '소명'의 문제만이 아닌 '지겅ㅂ'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는 본질상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몸살고 ㅏ다르지 않다. 소형교회와 부목회자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는, 외국에 비해 기형적으로 팽창한 '자영업자들'의 위기이자 언제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의 문제다. 신학생들을 사역지가 없는 상태에서 마구 배출하는 것은, 대학 교육산업은 번창하지만 고학력 '청년실업' 으로 부글부글 끓어보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 그 자체다. .....100p ... 이렇게 형성된 자기확인은 쉽게 '성직주의'와 결탁해서 목회자의 상황판단에 거역할 수 없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런 경우 '민주적 절차' 란 공연한 논쟁을 유발하고 원하는 결과도 얻어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 탁상공론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내몰리는 경향이 많다 우리는 종종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신본주의(theocracy) 다" 라고 설교 강단에서 자신 있게 되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 말은 종교개혁이 근대 민주주의 형성에 끼친 사상적 영향이 얼마나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중세교회에서 개신교가 교회론적으로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반개신교적 발언이기도 하다. ...... 104p .......... 계속 커지도 있는 초대형교회에는 이런 이들이 수평이동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는 재정의 투명성, 목회자의 윤리, 합리적인 의사결정 등 그렇게 대단한 요규가 아닌 것을 거부당한 경우가 많다. 충분히 내부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에서 촉발된 갈등이 점점 큰 문제로 옮겨붙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적지 않다. ...... 124p .... 사회적 엘리트 그룹, 특히 사회적 위상이 높은 특정 직업군에 탄탄한 개신교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그 영역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란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왜 기독의료인들이 무료 진료를 통한 선교와 전도에 힘을 쏟는 것 이상으로, 한국 의료계와 부조리한 관행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양심적 개혁집단으로는 자리매김하지 못했을까? .... 151p .. 왜 이 모든 성공은 자신의 조직에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신우회를 하나 만들거나 이따금씩 자원봉사를 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한 채 , 여느 산악회나 조기축구회 정도의 사회기여 수준에 머물고 마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개신교 신앙인으로 공론장에 참여할 때도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또 하나의 이해 당사자로 임할 뿐, 개신교 신앙이 '공적 영역'을 지탱하고, '공론장'의 핵심적 지지자로 기능하는 것은 거의 생각해 보지 못하는 것일까? .... (152p) .... 가장 나쁜 방식의 기독교 정치는 어느 것이 '성경적' 이라거나 '기독교적' 이라고 일반적으로 맹목적으로 선언ㅇ해 버리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정치에 기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어떤 정치 세력에게는 긴장감을 불어넣고, 그들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를 비추어 평가할 기준을 제공해 주고, 그들의 성과에 대한 심판 노릇을 엄정히 하는 것이다. 가장 나쁜 방식은 특정한 세력을 기독교적으로 치장해 주는 역할로 전락하는 것이다. ... (앞에꺼 바로 근방) '유체도시를 구축하라' - 이와사부러 코소 . 185p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이런 삶으로 초청하는 부르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이들을 '세속 성자' 라고 부르고 싶다. 성자, 혹은 성도로 부름 받은 삶은 근본적으로 '세속과 뒹구는' 것이다. 영원과 무한과 궁극을 다음에 담고, 찰나와 유한과 사소한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다. '거룩'을 추구하는 순수한 삶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며 세속과의 거리를 벌려 갈수록 거룩에 근접한다고 생각하거나, 거룩의 이름으로 세속을 정복하고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는 말씀을 서늘하게 기억해야 한다. ... 220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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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프로테스탄트 』
저 자: 양희송 출 판: 복있는 사람 / 발 간: 2012년 11월 5일
Q1 오늘 소개하여 주실 책은 어떤 책입니까? A 한국개신교를 총체적으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 다시 프로테스탄트>입니다. 부제가 <한국교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입니다.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가 썼고요 <복있는 사람>에서 만들었습니다.
Q2 양희송 저자에 대하여 소개하여 주시죠 A 월간 「복음과상황」 편집장 및 편집위원장을 지냈습니다. 한동대학교에서 7년간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쳤습니다. 2005년부터 한국교회와 사회의 다음 세대를 위한 인재발전소 ‘청어람아카데미’의 대표기획자로 있으면서 인문학, 정치사회,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500여 회가 넘는 대중강좌를 기획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기독교 잡지와 일반매체에 기독교관련 현안들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CBS TV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학력>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BA)와 런던 신학교(MA)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뜻 : 청어람은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가 나타난다. > 의 줄임말입니다.
Q3 < 다시 프로테스탄트 >는 전체적으로 어떤 책인지 소개하여 주시죠? A 청어람아카데미 양희송 대표가 제안하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책은 한국 개신교에 대한 소란스러운 진단과 부적절한 처방에 대한 하나의 항의로 쓰여졌습니다. 복음주의 운동가인 양희송 대표는 "한국 개신교가 의지했던 지난 30년간의 패러다임은 그 시효가 다했으며, 2007년이라는 상징적 해를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개신교가 처한 상황을 여러 종류의 연구자료와 사건들을 통해 묘사하며 현재 위기에 처한 한국개신교에 해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한국개신교 현실을 초래한의 세 가지 대표적 '오해'에 대해서 규명하려고 합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내부고발자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 복음이 교회와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목회자는 물론, 한국교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그림을 제시하며, 더욱 구체적이고 풍성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양희송 저자의 산고의 산물이 본서입니다.
Q4 <다시 프로테스탄트 >의 책 구성은 어떤 방법으로 쓰여 졌나요? A 큰 틀로 3단계를 제시합니다. 먼저 < 현실 > 이라는 주제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이야기 합니다. 양희송 저자가 보기에 최근 30년 사이에 한국 개신교는 급격한 성장과 신속한 쇠락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합의된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 당연한 귀결로 대안이나 미래를 전망할 논리나 언어도 갖고 있지 못하다라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Q5. 구체적으로 어떤 <현실>을 이야기 합니까 ? 대표적인 예를 알려주십시오 A 양희송저자는 최근 30년간 한국개신교를 객관적 근거로 분석하는데 <종교인구 센서스>의 자료를 인용합니다. 1985년 1995년 2005년 이제 2015년 십년마다 종교인구센서스를 한국 전체 가구를 통계로 낸것을 이야기합니다. 한국개신교는 감소했습니다. 특별히 1995년과 2005년사이 타종교인 불교는 소폭상승 천주교는 무려 74%상승 그런데 개신교는 감소했습니다. 이런 외적인 면 말고도 내적인 면으로 한국사회에서 개신교회는 이 기간 교회내부에서는 불신, 이단논쟁, 안티세력이 급성장했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요? 교회가 약자의 편에 서기보다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자본주의 적인 모습을 한국개신교가 그대로 교회내부로 가져왔다라는 인식이 교회의 내부와 외부에 모두 공감하게 되었다라는 것이지요 한국개신교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이동형 강남스타일을 지향하여 발전해 왔다라는 것입니다. 소득의 양극화구조안에서 교회를 다니지만 박탈감이 심한 현상은 결국 교인들을 감소시켜왔습니다. 천주교는 1995년 -2005년 사이 전국에서 골고루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이제 도시에서 조차 급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5년이 걱정됩니다. 어떤 통계가 나올지 말입니다.
Q6 <현실>이 심각하네요 특별히 어떤 면을 지적하고 있나요 A한국개신교는 20-30대 층이 교회를 비판하고 빠져나간다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미래가 불투명하다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천주교는 젊은사목들의 활동이 급증하면서 안정적 성장추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신교회는 40대이상의 연령층이 교회를 구성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20-30층은 진로 연애 결혼 육아 취업등의 갈등과 고민에 개신교회가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주지 못하는 이유가 교회를 등지게 만든다라는 것입니다.
Q7 <현실>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요 양희송저자가 이야기 하는가요? A 개신교회의 도시중심 중산층이상 지식층의 강남스타일을 벗어던져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밑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 교회는 있는자들의 자기변명의 공간이 되어 버린것입니다. 돈없어서 교회가 못나간다라는 말이 통계로 증명된것이라고 하네요 교회와서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교회라도 나간다고하네요 대표적인 예가 2007년 mb 정부출범시 상징적이지만 <고소영>내각이라는 것입니다. 한 예로 <아버지 학교>는 있는데 주일학교, 신혼부부학교, 대학부학교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힘있는 40대 이상을 위한 대안은 있지만 소리를 못내는 계층은 소외시킨다라는 것이지요. 교회안에서 입시생들을 위한 수능기도회는 가지지만 <무한 경쟁 잘못된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개신교회는 아무말도 못합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 백주년으로 2007년 어게이1907이라는 행사를 대단하게 했지만 행사로서 끝났지요 개신교만의 잔치였지요 한국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은 - 죄고백로 촉발되어 도적질, 간음 투기, 온갖죄를 회개하는 평양시를 완전히 새롭게하는 사회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2007년은 교회안에서 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2007년 기독교대표기업이라는 이랜드 비정규직사태가 있었습니다. 2007년 사립학교법이 다시 개정되어 개신교의 잘못된 힘이 사회속에서 나타났습니다. 또한 2007년에 샘물교회의 아프카니스탄선교에서 성도들 23명이 탈레반에게 피납되어 2명이 죽었습니다. 원인이 무례한 전도선교였습니다. 사회에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07년 선거가 있었는데 < 장로대통령만들기 >로서 한국개신교의 정교분리 신앙은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지나친 선거개입을 가져왔습니다.
Q8 한국개신교가 변해야한다고는 합니다. 방향은 어디인가요? A. 양희송저자는 첫째 교회내부 즉 교계에서 교회외부 사회중심으로 변화해야한다라는 것입니다. 시각을 확대해야한다라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교회안에서만 만족하면 만사 ok였는데 지금은 아니지요 교회세습을 이제는 교회내부보다 교회외부에서 더 반대하지 않나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것입니다. 교회가 공공재라는 인식입니다. 교회를 다니든지 안다니든지 장로교든지 감리교든지 교회는 이제 한국사회 공적자산이라는 것입니다. 경찰서나 소방서와 같은 역할을 한국교회가 해달라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한기총이라고 하죠 얼마나 비판을 많이 받습니까? 현재 한국개신교회를 대표할 기구가 없습니다. 물론 대표할 분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한경직목사, 강원룡목사, 옥한음 목사 하용조 목사 같은 분들이 모두 하늘나로 가셨습니다. 한국교회는 거의 원자 수준까지 쪼개진것이지요 그래서 단합할 명분과 신학, 신앙도 없습니다. 교회는 거의 7만개 가량되는데도 대표기구 대표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양희송저자의 대안방향은 - 정체성을 물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 교회가 무엇인가?> < 목사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 교회가 어떻게 한국사회와 만날것인가?> 다시금 깊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Q9 두 번째 큰 틀은 무엇입니까? A. <오해>로서 한국개신교 스스로 잘못 생각( 착각)하는것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근원적 문제가 여기서부터 오늘날 한국교회의 어려운 <현실>을 자초했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위기의 본질은 핵심 원인을 직면하지 않는 데 있다고하네요. 1) 목회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왜곡은 ‘성직주의’를 낳았습니다. 2) 교회의 목적과 존재방식의 왜곡은 ‘성장주의’를 낳았습니다. 3) 이 둘의 결합은 세상을 싸워서 굴복시킬 대상으로 보는 ‘승리주의’로 직결된다고 합니다.
Q10. 한국개신교 성직주의란 어떤 문제가 있나요? A 개신교신앙의 특징은 만인제사장주의입니다. 목회자 즉 목사는 존재론적 필요가 아니라 기능적 필요입니다. 성직주의는 사실 중세 천주교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성도간의 대리자라는 것이지요 종교개혁의 원리는 성직주의를 폐지한것입니다. 루터나 칼빈은 목사를 포함하는 모든 직업이 소중하고 성직(聖職)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개신교가 몰래 성직주의를 되살려 놓은 것입니다. 이런 호칭 <주의 종> 목사는 주의 종이라는 것이지요 목회자만 설교할 수 있다든지, 축복권을 가졌다든지, 목사만이 교회를 대표한다든지 모두 성직주의입니다. 한국개신교의 잘못된 대표적인 페단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성직주의가 교회를 개척한 담임목사가 그래서 아들에게 사위에게 교회를 세습시킬수가 있는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이니까요? 존경은 서로하는 것입니다. 목사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는 따로 특별히 없습니다. 모두 성도들은 성직자입니다.
Q11 <성장주의>는 왜 문제가 되나요 ? A 한국개신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소수일때 교회성장을 통하여 복음전도를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성장의 선봉장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30년 교회성장은 오직 목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그곳에 있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목사는 교회를 성장시켜야 존재의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시 성직주의 카리스마를 발동시킨것이지요. 목사는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교회짓고, 교인채우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일반직입니다. 특수직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을 하기위하여 부른 직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일반적 직업입니다. 아직도 잘못된 불(火)계시 소명을 운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는 소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 살고, 아이들 가르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일반사회에서도 소방관이나 경찰관은 소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국가에서 생계를 책임져 주니 기본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이 개척교회나 비정규직처럼 교회안에서 되어 있습니다. 생계의 위험 때문에 소명감을 발휘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신학이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교회성장시키면 자식에게 세습시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Q12 그러면 개신교회의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에서 대안은 어떤것입니까 A 양희송저자의 대안은 목사는 회사 ceo가 아닙니다. 목적없는 성장은 중단해야 합니다. 외형적으로만 커지는 교회가 문제입니다. 승리주의는 패권주의입니다. 교회만 성장하면 어떤 방식이든지 다 좋다라는 것은 교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엄청난 성장을 했는데 한국사회속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데 왜 이리 안티세력은 증가하고 공룡처럼 작은기후 변화에도 적응못하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신세로 전락했습니까? 교회는 철저하게 개인의 회심으로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삶으로 증명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교회입니다. 입으로 교리로서만 증명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성도가 더 줄더라도 삶으로 증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부터 윤리적 삶을 살고 시민공동체의 필요에 교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과거처럼 소수가 아닙니다. 약자가 아닙니다. 강자이며 다수입니다. 철저하게 한국교회에게 주어진 힘을 잘 사용해야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한국사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타자를 위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인문학적 힘을 넓혀서 교회가 사회에 구체적으로 신앙적 윤리적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좁디 좁은 사고는 사회를 설득할 수없습니다. 신학과 인문학적 대안을 가진 다양한 평신도계층들이 활동할수 있는 공간을 한국개신교회가 만들어야 합니다.
Q13 마지막 단계 3번째는 어떤것입니까?
A 한국교회의 <전환>을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 역사를 마음대로 연출할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그렇다고 역사를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것이 대안일 수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한국사회의 변화의 방향을 내다보고 한국교회가 바람직한 흐름이 형성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겸손히 지켜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측면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결핍되었는지를 깨닫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 필요합니다. 나 혼자 공룡이 되어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니라, 미생물도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새로운 ‘개신교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전력질주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이러한 꿈을 꾸는 ‘세속 성자’들이 등장할 때에야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Q14 한국교회의 대안으로서 전환 어떻게 해야 합니까? ? A 구체적인 대안으로 3가지 헬라어를 사용하여 전환을 요구합니다. 첫째 로고스logos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서를 거룩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 이런 것들이 과연 바른 성서적인 시각에서 출발한것일까요? 비판적 사고로서 현대한국사회에서 하나님말씀은 무엇을 말하는지 의심의 해석학을 통하여 답을 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파토스 pathos 입니다. 열정입니다. 기도에 열심인 파토스는 한국사회에 충분합니다. 이제 정의에 대한 파토스가 필요하지요, 가난한자들을 대변하는 파토스입니다. 압박받는 자들 즉 노동자들, 이민자들, 경제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한국교회의 파토스가 요구됩니다. 한국사회에 이제 마틴루터킹이 나와야 합니다. 루터는 열정으로 자국어 성경번역을 시작하며 종교개혁을 완성했습니다.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 열심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해방시킨 월버포스의 파토스를 생각하십시오.
셋째는 에토스 ethos입니다. 일상에서 쌓아 올린 신뢰를 이야기합니다. 자기 편리하게 교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성서중심의 삶의 일관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개신교 성도들은 차분히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성도들에게 이상적 모습과는 가장 거리가 먼것 처럼 여겨졌습니다. 성도들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어떻게 성도는 꾸며야 하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는가? 를 양희송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Q15 <다시 프로테스탄트>란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네요? 저자는 책 전체를 정리하면서 첫째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의 정신을 동시에 실행하자 둘째 연합운동의 장을 소중히 여기자 초교파적 운동으로 한국사회와 함께 작은 혁신적 모엄에 투자하라고 합니다. 셋째 기독교사회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교회 생태계 고체(固滯)(교회외형)가 아닌 유체(流體)(교회인맥, 내부)의 연합를 만들어라 다양성속에 일체감이 있는 라브리 공동체, 떼제공동체, 스피링하베스트 리디머장로교회, 높은뜻숭의교회 - 교회건물 없고, 교회분리하여 더욱 성장 철저하게 지역속의 사회 필요한 교회- 교회안지식생태계협력사업-청어람 시민사회를 껴안자, 교회헌금의 넓고 큰 효율적활용 사회속에서 기독교인문학적 인재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