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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에너지원은 전적으로 땅속에서 캐낸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와 석탄, 가스 등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는 그 매장량이 유한할 뿐 아니라, 환경오염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로 인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피해는 이제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산유국들의 지엽적인 정치적인 문제나 세계 경제의 변동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넘어가고 우리가 사용하는 화석 에너지의 매장량이 한계에 미쳤다는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전 세계는 대체 에너지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대체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게 태양열이나 풍력을 이용한 재생가능 에너지이다. 거기에 최근에 대체 에너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원자력등도 포함이 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유가가 조금만 하락하거나 하면 그런 대체 에너지의 생산비가 현 유가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대체에너지 개발은 뒤로 밀리곤 한다. 하지만 이 책 『에너지 명령』은 그러한 우리의 일상적인 판단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지 않으므로 인해 그 도래가 우려되는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각 대체 에너지별로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이 책 『에너지 명령』의 저자 헤르만 세어는 독일의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로서 유럽 태양에너지 학회 의장과 세계 재생에너지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내고 독일의 연방의원을 여덟 번이나 연임한 재생가능 에너지 전문가이다. 2010년 갑작스런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그의 직함처럼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중심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와 관련된 혁신적인 구상들을 주도했다. 이 책은 재생 가능 에너지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고 신망이 높았던 그가 이전에 저술한 《에너지 주권》의 후속 작이며 《에너지 주권》의 연장선상에서 좀 더 진보된 주장을 전개하면서 그간의 시대적인 변화와 성과의 간극을 빠짐없이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은 190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가 1912년에 출간한 혁신적 저서《에너지 명령(Der energetische Imperativ)》에서 비롯되었다. 오스트발트는 칸트의 정언 명령을 차용해 제목을 붙인 이 책에서 “화석 연료라는 뜻밖의 유산이 지속적인 경제의 원칙들을 당분간 놓쳐 버리고 되는대로 살아가게” 유혹했으며, 또 화석 연료는 필연적으로 고갈될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는 전적으로 태양 복사(solar radiation)의 규칙적인 에너지 공급에 근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인식을 부득이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9쪽) 헤르만 셰어는 오스트발트 자신이 에너지 혁명에 부여한 ‘도덕률’을 넘어 ‘자연법칙적’ 의미를 강조해 그 급박함을 지적한다. “도덕률의 준수 여부는 도덕적인 문제이다. 이 물음은 사회적 공동생활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러나 자연법칙은 우리에게 어떤 선택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법칙의 무시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와 결국 칸트의 윤리적 원칙들 역시 실현할 수 없게 될 것이다.”(40쪽) 2010년 6월에 그린피스가 내놓은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까지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는 연간 13.2 테라와트 일것이라고 가정하는데 그중 95%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족될것이라고 본다. 재생 가능 에너지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풍력(24.7%)이고, 그뒤를 이어서 태양열 발전소(20.5%), 태양광 전지로 생산하는 전력(15%) 수력(11.6%)., 지열 에너지(9.7%) 해양에너지(4.4%), 바이오 에너지(4.2%)순이다. 그린피스 연구서는 대체적으로 ‘에너지 공급 법률’ ‘탄소 배출권 거래제’라는 유연한 도구, 화석/핵에너지에 대한 에너지 보조금의 종결을 권한다(66쪽) 이처럼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와 그 미래는 밝다. 하지만 정책은 그에 따르지 않고 아직도 수많은 화석연료에 보조금등의 지급을 통해 화석연료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석탄사업에 많은 지원금 및 보조금을 지급함으로 인해 화석연료의 사용을 제한하기는커녕 더욱 권장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재생가능 에너지로 급격히 부각되고 있던 핵에너지와 CCS 발전소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핵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는 원자력 사고이다. 이미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로 인해 핵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대두된바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경제적인 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는 핵에너지는 향후 처리해야 될 핵폐기물의 처리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수백 년이 지날 때 까지 폐기물에 책임을 질 정권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핵에너지의 사용이후 제기되는 핵무기로의 전환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핵발전소를 짓고자 하는 나라들 중 핵무기의 개발을 위한 핵발전소를 원하는 나라도 있는 건 사실이니까. 저자는 핵 폐기물의 유산은 ‘원자력 시대’의 도래가 얼마나 오만 불손했는지를 보여준다(320쪽)는 한 문장으로 핵발전소의 폐해를 주장하고 있다. CCS(CO2 Capture and Storage) 발전소도 핵발전소와 무관하지 않다. CCS발전소는 석탄이나 가스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분리해 지하의 지정된 저장소나 심해에 보관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현재의 오염원을 원칙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오염원의 처리를 단지 21C이후의 미래로 연기한다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식은 되지 않는다. 또한 이산화탄소를 보관한다는 것은 핵폐기물의 보관과 같이 엄청난 비용 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로 인해 향후 발생하게 될 사회적 비용은 현재 거론되고 있는 CCS발전소 비용에 포함되지 않고 있으니, 시장논리로 접근하는 기존의 환경이론가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라는 것을 저자는 과학적인 논리를 들어 조목조목 지적한다. 또한 2009년 세계기후회의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협의된 이산화탄소 배출제한제도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에 대한 허구에 대해서도 기술되어 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제한의 기준이 되는 현재 대기권의 온도인 섭씨 0.7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대기권의 온난화가 2도를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준으로 협의되었다. 또한 ‘총량 제한 거래제’로 합의된 상한선 내에서의 탄소배출권을 거래하게 함으로 인해 탄소배출을 억제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탄소배출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게 했다는 오류가 존재 한다. 그래서 저자는 독일연방 의회에서 2004년 7월에 의결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즉 향후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의결된 탄소배출에 대한 의결이 기후변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구상이라고 선전된 것 자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이렇듯 현재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대체 에너지 및 환경을 위한 논의들이 그 실상을 벗어난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에너지 명령』의 저자 헤르만 세어는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되는 우리의 사명이며 “생존 가능한 미래”를 위한 최후의 해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100%의 전환을 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에 대한 해부와 진단을 담고 있다. 탄소 이데올로기의 포장된 거짓 합의, CCS 발전소의 눈속임과 불안한 미래, 데저텍과 시텍의 태생적 한계와 이면의 이전투구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격적인 전환을 방해하는 에너지 카르텔의 방해전략까지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저자 헤르만 세어는 재생 가능 에너지의 목표는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교체하는 것이어야 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제한된 몫만 믿는다면, 전략적으로 스스로 묶이는 셈이 되어 정당화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심지어는 정치적으로 계속 뒷받침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어느 특정시점부터 서로 방해가 되는 상이한 두 가지 에너지 공급 시스템을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3쪽) 라고 주장한다. 거기에 더불어 재생가능 에너지를 지원하면 동시에 환경 친화적인 전기가 생산되고, 과학 기술의 발전이 자극받고, 미래의 과학기술로 새로운 비용감소의 가능성이 열릴뿐만 아니라 화석 에너지의 수입과 여타의 외부 비용도 방지된다.(102쪽) 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확실한 대안도 제시한다. 즉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화석 에너지의 유한한 매장량을 대신해 모색하게 된 대안이 아닐 뿐 아니라, 그것에 전적으로 좌우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자연 법칙적 인권과 합리성에 따른 생존 가능한 미래를 위한 유일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마땅히 실천되어야 한다. 최근까지도 피크오일에 대한 예측이 엇갈리고 더군다나 정치적 특성까지 내포한 석유의 고갈 시점은 공공연히 발표되지도 않는다. 고갈 시점에 따라 재생 가능 에너지의 전면 대체 시점도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재생 가능 에너지의 자생적 합리성뿐 아니라 경제적 논리를 넘어서 사회구조적 정치적 윤리적 논리로 그 당위성을 설득한다. 헤르만 셰어는 1부 ‘현재에 대한 점검’을 통해 재생 가능 에너지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여 방해 전략을 비판하고, 2부 ‘100퍼센트를 위한 “창조적 파괴”로의 도약’에서는 시스템 전복과 대안 체제 마련에 실용적인 구상이 될 몇 가지 방안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최후통첩’으로 규정하며 마지막 경고를 전한다. “인간을, 특히 ‘정치’와 ‘경제’를 재생 가능 에너지를 위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정치 문화적으로 전례 없는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 앞에 닥친 도전 또한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다. 적극적인 대응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극복은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12쪽) 헤르만 세어의 주장은 명확하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서 기존 에너지와의 ‘공존’이나 ‘상생’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변화와 관련해서는 승자 독식의 전면적인 체제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생 가능 에너지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다 실천해야 한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단언처럼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월리엄 깁슨의 말이 적절한 응수가 될 듯 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해서는 이 말처럼 현실과 맞는 말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우린 아직 이르지 않다. 그리고 이제 머무를 시간은 없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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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재생가능 에너지(그린 에너지)라는 용어와 기술이 근래에 들어 대두된 이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게 현실입니다.(하긴 저도 이 책을 접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용어와 기술이 제기된 시점은 한창 핵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1950년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는 마치 중세의 교권집단에 의해 자행되었던 천동설 지지 같은 에너지집단(에너지 콘체른)의 교묘한 책략에 의해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올바른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故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명령> 은 꼭 필요한 에너지이자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 에너지인 재생가능 에너지에 관한 숨겨진 진실을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명령> 이 재생가능 에너지 즉 그린 에너지의 장점이나 필요성 그리고 향후 어떻게 개발해야 인류를 위해 득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담론으로 이루어 졌다면 그저 그런 미래 에너지 대책론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뭐 이런 논거들을 지금도 그렇고 몇년전에도 그렇고 왠만한 사람들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겠죠. 각 국가의 정상들의 선거공약에 버젖이 한 자리를 메우고 청정재생에너지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은 이제 세살먹은 어린애도 아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헤르만 셰어의 <에너지 명령> 이 눈에 띄고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일반론적인 담론들과 사뭇 다른 사유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재생가능 에너지라는 개념 자체가 최 근래에 대두된 형상이라는 점 그러니까 최신 기술설비가 필요하고 개발하는데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점등 대부분의 일반대중들은 그런식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회자된 것 역시 최근래의 일이다 보니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기회비용은 아직은 너무 크고 경제학의 제1법칙인 '희소성의 원리' 에 위배되기 때문에 분명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너무 먼 그런 그림의 떡같은 사유로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입니다.
결론부터 보자면 이렇게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막연하고 부담스러운 논거들이 실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보면 사실과는 사뭇다르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고 거대한 에너지콘체른(화석/핵 에너지로 인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들) 과 이들과 연계되어 있는 권력집단에 의해 마치 최근의 담론인양 부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태동이 최근이 아닌 핵개발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시기인 1950년대부터 대두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개 이익집단에 의해 인류의 미래가 순식간에 바뀌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 재생가능 에너지만 이렇게 왜곡되고 감춰진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고 알아왔다는 사실과는 사뭇다른 진실들이 상당히 당혹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체르노빌 사태와 얼마전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일본원전의 위협성 뭐 멀리 가지 않겠습니다. 허구헌날 매체에 오르내리는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문제들 그야말로 위기측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계로 비유하자면 11시 55분 운명의 시계바늘위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 동안 몇몇 이익집단에 의해 파생된 얼토당토하지 않는 담론은 폐기처분하고 남은 5분을 되돌리기 위해선 재생가능 에너지외는 대안이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확대만이 보다 나은 미래상을 열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잊지말아야 하고요. 그 동안 아니죠 지금도 수 없이 많은 핑계로 인해 재생가능 에너지사업은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지천에 깔려있는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활용방안을 이제는 더이상 미룰수도 없거니야 범세계적인 차원에서의 관심과 개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비록 늦은 감은 있더라도 늦었다고 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할 때인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의 <에너지 명령> 과도 같은 논거들이 빠른 시일내에 세계인에게 확산되어 에너지 문제의 실상을 적확하게 보고 그 대안을 심사숙고하게 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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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에너지 공급의 미래는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온다고 말한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는 현재의 에너지 공급에 대한 보완과 더불어 에너지 문제를 구체적이로 광범위하게 커버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재생가능에너지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과학 시간에 늘 화석 연료의 부족에 대해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석탄과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은 매장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 자세히는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의 남은 기간도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늘 써오듯 그런 에너지원 등을 쓰고 있다. 별 걱정 없이. 그야 물론 우리 세대는 별 걱정 없이 그런 에너지원을 마음껏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우리는 그렇게 천연자원의 매장량에 대해 걱정을 하면서도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늦게 생각해내고, 그 재생가능에너지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고,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생각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재생가능에너지의 좋은 점에 대해 알고 있고, 그런 에너지원을 사용하고자 한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석탄이나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가진 시간은 이미 많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천연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세계적 에너지 기업들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재생가능에너지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바람과 물 등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판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비방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규모 프로젝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등 우리의 에너지를 교체해야한다는 주장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환경과 관련된 책을 읽다보면 많이 보이는 것이 그 환경과 관련된 자원 등을 공급하고 있는 세계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공익과 자연을 망치는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아이, 혹은 손자가 자랄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과연 모를까? 아니면 그만큼 벌어서 물려준다는 생각에서일까. 그리고 계속해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단지 막연하게 미래를 위해서는 언젠가는 이런 에너지 체계로 교체를 해야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로 지금 100퍼센트 재생가능에너지를 실현하지 못 할 이유는 없다며 재생가능에너지가 극복해야하는 모든 실제적 장애물들에 대해 알려준다. 그 장애물들에 어떤 배후가 있고 그 배후가 어떤 이해관계와 의도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려주며 재생가능에너지를 지금 당장 실천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도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미래로 가는 과도기가 아니다. 바로 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라도 재생가능에너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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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조력, 태양력 등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현재의 석유, 석탄등의 에너지원이 고갈되고 나면 이 세계를 이끌어나갈 에너지원으로 배웠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 나아진 것 없으 그저 그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이런 것들이 된다면 좋겟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에너지 명령은 앞으로 발전 될 재생 에너지가 처한 입장과 그에 관련된 여러가지 사안, 그리고 시급하게 도입되어야 할 재생 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지금 당장 재생 에너지의 발전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기존의 에너지와 앞으로의 재생 에너지가 공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한 주장에 나 역시 재생 에너지는 그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저자의 주장이 너무 급진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 대안을 차근차근 제시하는 저자의 설명에 책을 덮었을 때는 정말 그렇군 이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놀라웠던건 기존의 에너지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에너지 콘체른들이 재생 에너지를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람, 태양열등을 원료로 사용하는 재생 에너지는 그 원재료를 독점할 수도 없고 더불어 원재료가 고갈되지 않는 무한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석유, 석탄처럼 판매할 수 없고 채굴권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지도 못한다. 특히 중동의 기름부자들, OPEC으로 대변되는 석유판매자들이 과연 그 이익을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환영할까. 분명히 재생에너지라는 것은 소비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재생 에너지의 분명한 전체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보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무슨 짓을 할 것이다.
그 존재감이 매우 희석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하자고 협의했던 교토의정서등 기후와 환경을 위한 여러가지 협약이 존재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오히려 재생 에너지의 발전을 늦출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과학 기술 혁명도 국제적 협약에 의존한 바 없었다. 몇몇 혁명은 심지어 정치와 비교적 무관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남들보다 빠르다는 것은 항상 정치적이거나 기업가다운 좌우명이었다. 자국의 국민 경제나 자신의 기업을 위해 우위를 점하기 바쁜 그들이었다. "-p.100
이러한 지적을 통해 저자는 재생 에너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적 협약같은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재생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대중적인 관심, 그리고 기업자체의 노력등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혁신적인 하나의 기술이 탄생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몇개의 국제적 협약보다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당연시 되어버린 스마트폰과 와이파이도 국내에서 처음에는 그 세력이 매우 미미했으나 아이폰이라는 하나의 혁신적인 세력이 나타나자 너도나도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은 엄청난 시장을 형성 했듯 말이다. 또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이 선풍적인 관심을 끌며 통신사와 첨예한 대립을 펼쳤던 것처럼 기존 에너지와 재생 에너지가 대립할 것 역시 예상된다.
하지만 에너지라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거대하고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주제에 대해 그러한 대립이 이어졌을 때 과연 그것이 단순히 평화적으로 해결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우려도 되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큰 세력이 가족 있는 이기심으로 발전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다.
기존 에너지원의 고갈은 피할 수 없는 저명한 사실이고, 언젠가는 분명 재생 에너지로의 발전 역시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기에 보다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평화로운 방법, 아래로부터의 자연스러운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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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정치인이 에너지주권에 대해서 부르짖고 있다. 그는 헤겔이나 마르크스처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사회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더불어 독일사회민주당(Social Democratic Party of Germany) 일명 사민당에서 연방의원으로 활약한다. 그의 이름은 헤르만 세어(Hermann Scheer)이다. 그는 이미 2010년 10월 14일에 작고하였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그의 블로그 http://www.hermannscheer.de/en/ 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사후 그의 주장을 모아서 Routledge.출판사에서 출간한 <에너지 명령>(2012)는 그의 이론을 조금이나마 들여 다 볼 수 있는 창문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각국정부와 에너지 콘체론(자본적 제휴를 기초로 하는 기업 집중의 양상으로 독점의 상위 형태를 뜻한다)들의 감칠 맛 나는 고백은 재생 가능에너지를 위해 온전히 투신 할 것 같은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실천을 우위에 놓는 판단이 흐려진다. 에너지 콘체른들은 재생기능 에너지에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일차적으로는 기존의 에너지를 믿는다. 할 수 만 있다면 마지막 남은 1세제곱미터의 천연가스마저 바닥날 때까지 말이다. 석유, 석탄, 우라늄, 천연가스 등은 에너지 콘체른에게 더 가치 있는 에너지들이다. 태양열이나 바람은 자원으로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에너지 독과점 현상에 대해서 매우 우려하는 시선을 보낸다. 더불어 그는 “핵/확산 에너지로부터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변화를 단편적으로 아주 천천히 실행한다면, 세계 문명은 모든 인간과 사물이 망연자실한 위기에 처하는 상황으로 돌진할 개연성이 커진다. 극적인 기후 변화로 모든 생활공간이 생명체가 살 수 없게끔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수억 면의 인간이 거주지를 옮길 수밖에는 없는 처지에 몰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결과, 피해를 축소하기 위해 사회에 부과되는 노력과 비용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변화에 필요한 것보다 더 커졌다." 라며 에너지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왜, 언제 그리고 어떻게 라며 질문을 거시적으로 던진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정치/경제적 상황에 처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우리들이 말로 호모이코노미우스 존재들이 아닌가? 단 하루도 돈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 경제적 인간들에 커다란 특징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오류로서의 결집체로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기를 켰다 끄고, 물을 틀고 껐다가, 보일러를 작동 하고 그러는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관습 때문이다. 궤도를 일탕하는 삶의 반복은 우리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득,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윌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2007)생각나는 이유는 미국의 역사가 이 석유의 발굴/채취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미국은 동부에서 서부로 그 문화 혹은 도시의 중심이 계속해서 우리들의 시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또는 변화하면서 그 영토를 무한대로 보일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확장하면서 그 땅의 소유권 또는 채굴권을 자본으로 획득하거나 무력으로 강탈하다 시피 할 때, 그 미국의 경제적 성장은 대단히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경제 성장의 기적, 그런데 그 이면에는 에너지 주권의 소유는 언제나 거재한 클러스트 혹은 메머드급형태의 기업이었다. 록펠러, BP, 엔론 서구의 유명한 회사들은 모두 에너지를 독과점형태로 시장적 약탈적 위치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역사의 혼란에서 빠져나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한 형태로서 에너지를 개발하고 보존하며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신념어린 고백으로서의 자기정화만이 가능할 수 있을까? 그렇치않다. 정치가를 활용해야 하며, 행정부의 감시견제를 매우 디테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들의 세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