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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스며들지만, 그 자리가 비어버리면 확연히 깨닫게 되는 게 사람의 빈자리다. 나도 모르게 물들어간다는 게 맞겠다. 물들고 동화되어 일체화되길 갈망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틈이 드러나고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멀어진다. 이때의 상실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시간이 지나면 물론 지워지겠지만,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빈자리는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는다는 게 명징한 사실이다. 가족, 지인, 친구, 애인, 모두 특정한 자리를 배정받는 이들이다. 가족을 제외하면 세월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각각의 자리는 채워지지만 그 사람의 고유성을 지닌 빈자리는 절대로 대체될 수 없다. 여전히 그 사람, 너의 빈자리로 남아있을 테니까 말이다. 꼭 한 번 이혜경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었다. 단편을 잘 쓰는 작가님으로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 책은 제목이 좋았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통렬히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아름다운 글을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상처럼 낭만적이거나 서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집이었다. 특히 빈자리를 이성에 국한하지 않고 가족, 친구 등으로 뻗어 나가며 다양하게 그리고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생겨나는 이유는 예상외로 많다. 사소한 다툼을 이유로 시작해서 죽음, 배반, 욕망, 거짓, 때로는 자연적인 관계의 소멸까지. 살아가면서 모두 한두 번쯤 아니 그 이상 겪게 되는 게 다반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의든 타의든 우리의 관계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이어지고 끊어지고 반복하며 주기적으로 삶을 훼방 놓는다. 그리고 이 자리는 비단 사람, 누군가의 빈자리로 한정되지 않는다. 내 안의 상처, 불안, 고통 등으로 치환되면서 현실의 빈자리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텅 비어버린 자리를 바라보며 한숨 쉬던 이라면, 공허한 마음에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던 이라면 분명 퍽 공감할만한 쓸쓸한 단편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가하는 고통의 무게가 말로써 오롯이 설명될 리 만무하다. 그저 우리는 경험해가며 알아갈 뿐이다. 무뎌지거나 또 무뎌질 뿐이다.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그늘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99쪽 <그리고, 축제>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길 바랐다. 그러나 엔딩으로 치달을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사실은 집착으로 점철된 짝사랑이었다. 진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여자의 서걱대는 속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사랑받고싶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자는 사실, 인정하지 않으려했던 게 아니라 인정하기 두려웠던 게 아닐까(너 없는 그 자리). 언니는 바람나서 나간 후 십 몇년 만에 돌아온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일상을 수화기에 대고 시시콜콜 토로한다. 순전히 혼자만의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되는 독백식 스토리는 여러 사람의 일상과 맞닿으면서 불통에서 소통으로 이행된다. 모두가 내 입장이었을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면 다름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를 현실적으로 자아냈다(감히 핀 꽃). 사랑이 스토킹으로 둔갑하다니. 여자는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남자에게 여자는 그저 불장난 상대 정도였다. 연애는 자신과 했지만 결혼은 재력을 보고 하는 남자의 이중성 앞에서 여자는 자신이 했던 게 과연 사랑이었는지 반문하게 된다. 2년을 만나면서도 자기 삶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 남자는 더 좋은 조건의 삶으로 들어가버렸다. 달콤한 말로 기헤를 속였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던 게 아니라 잠깐의 피난처가 필요했을 뿐이었고 쿨하게 새 삶을 찾아 떠나갔을뿐이다.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의 뒤에서 스토커라고 수근대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한갓되이 풀잎만).
잘 지낸다는 것,
그리고 괜찮다는 말쯤은 이제 우리에게 일상어가 된 것 같다. 그래야만 정말 괜찮은 게 될 테니까. 첫 만남이 아름다웠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그러란 법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기 때문에 빈자리를 메우길 주저하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짚어들었다. 이내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의 빈자리, 비어버린 공간은 나의 외로움, 고독과 닿아 있다. 여백이 깊어질수록 고독감의 무게도 한층 무거워진다. 작품집 속 누군가의 빈자리는 대부분 배신이라는 감정으로 발현된다. 믿음, 사랑, 의지, 기다림,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배.신이라는 단 두 글자로 각자에게 상흔으로 남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랬다. 배신이 없으면 삶이 이어지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깔맞춤을 하고 있었다.
알지 못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고 났을 때의 허무함이란. 어떤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들의 상실감이 헛헛함으로 드러나기에 읽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충격받은 모습으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을 진행한다. 배반하는 남자와 여자들, 복수하는 여자와 순응하는 여자(남자)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빈자리에 가슴 아파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하여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마음에 누군가를 들여놓을 것이다. 빈자리는 켜켜이 먼지가 쌓여 아스라이 잊힐 것이다. 아니 덜 꺼내보게 될 것이다. 서랍 속 깊숙이 자리한 낡은 공책의 한 페이지는 그렇게, 소멸해간다. 감정의 사그라짐이 점점 빨리지는 걸 느낀다. 죽을 것처럼 아팠던 게 엊그제 같은데 금세 괜찮아진 나를 보면서 자각하게 된다. 나이 듦으로 인한 무뎌짐인지 삶의 속도에 따른 잊음인지 정확히 분간할 수는 없다. 단지 아픈 시간을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해서인지, 아무튼 나는 괜찮다. 그대도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이것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겠지만, 뒤돌아 볼 일 없는 지나온 내 시간, 그 빈자리에 고하는 마지막 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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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고 있지? 난 한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 이제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전부라는 목적어를 지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마치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때마다 떨어진 내 생명의 일부들이 땅위에 떨어져 뒹글때마다 느꼈던 아픔과 외로움처럼, 이제까지 나를 스쳐갔던 인연들 중에 좋았던 기억보다 아픈 기억들이 더 많이 느껴져. 그리고 그 인연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목적어 ‘전부’를 사랑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못한 것도 그 목적어 때문이었어. 전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 조금만 사랑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너 기억하니? 내가 너에게 보냈던 무수한 편지들을, 그런데 넌 한 번도 답장해준 적이 없었어. 이 책 <너 없는 그 자리> 소설을 처음 본 순간, 네가 떠오른 건 편지 때문이야. 답장 한 번 받지 못하고 쓴 여자의 편지를 본 순간 네가 자연적으로 ..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랐어. 한때 내가 사랑했지만 잊혀 진 것들, 한때 미워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애틋해지는 것들 그리고 그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너’ 때문에...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여러 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져 있는 소설들은 모두 우리의 만남에서 비롯된 관계에 관한 이야기야. 이들의 관계를 통해 우리의 생을 관통하는 불가항력적인 데스티네이션을 느끼게 된 것 같아. 이 책의 표제작 <너 없는 그 자리>는 너무도 친근한 말로 시작해 . 당신 잘 지내지? 하는 애정 듬뿍 담긴 이 편지를 읽으면서 여자의 전부는 사랑이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야. 여자는 편지에 “당신 방으로 스며드는 아프리카의 꽃향기로 변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 몸을 내주고 꽃이 되고 싶어요” 썼어. 넌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을 정도로 사랑해봤어?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이 남자는 정말 행복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그런데 그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 심지어 외국으로 떠났다는 것도 거짓말을 한 거야. 참 웃기지 않니?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몸서리치게 싫은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이상했어. 그 남자에게 여자는 한 번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너도 그래서 내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걸까? 나는 그때 왜 너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걸까. 사랑도 때론 착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에야 알게 된 걸까? 인생은 참 이상해요. 언제 등 뒤에 감춘 도끼를 치켜들지 아무도 모르죠.
그래 나는 너를 지금도 생각해. <한갓되이 풀잎만>에서는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와 여자에게 배신당한 남자의 이야기야. 나는 배신을 한 번도 당해 본 적은 없어. 아니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 믿는다는 말은 상대방을 완전히 신뢰한다는 뜻이잖아. 신뢰한 적이 없으니까 배신도 당한 적이 없는 거야. 그렇다고 날 너무 냉정하게 생각하진 말아줘. 너무 잘 믿기 때문에 스스로 방어막을 친 것뿐이니까. M과 사내커플이었던 여자가 M의 약혼을 직장상사에게 듣게 되는 그런 심정을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했던 남자의 배신은 심지어 여자를 스토커로 몰아세우기 까지 하는 남자M. 배신당한 여자의 선택은 배신당한 남자를 만나는 거였어. 여자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두 가지 밖에 선택이 없었다고 하는데 , 누가 그러더라 여자는 죽을 때까지 사랑으로 먹고 사는 존재라고,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남자에게 배신당했어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이유가... 아마 그때의 나와 너는 나란히 서 있는 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나란히 서 있다가 어쩌다 분 바람에 살랑 실이 한 번 꼬이고 나면 걷잡을 수 없이 배배 꼬이게 되는 것처럼 꼬여버리듯이 우리의 인연은 미풍에도 이어질 수 없었던 가느다란 실이었던 게 아닐까해.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던 삶의 편린들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기분이야. 아주 사소한 꼬임, 한순간 외틀어진 마음이 한평생을 꼬아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촌>에 나오는 커플들은 조금 이해가 안 돼. 여자의 사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고,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그 화풀이를 세상 모든 남자에게 자신을 버리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굳이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치료하려는 방식은 오히려 자신을 더 아프게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말이야.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여자는 사랑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아. 나쁜 남자에게 도망치다가 우연히 북촌 한옥마을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남자를 만났는데 비록 이 남자가 가진 것은 없지만 성실하고 진실 된 사람이었어. 여자의 과거 따위에는 관심은 없지만 충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착한 남자 축에 속하는 그런 남자였어. 그런데 여자는 자신을 버리고 간 남자가 다시 돌아오자 착한 남자를 농락하지. 맞아 농락한다고 해야 맞는 말 같아. 그런데 이 남자. 여자의 농락조차 이해한다. 참 사랑이란 아이러니해. 근데 난 이 남자한테 사랑이란 목적어가 필요 없는 관계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면 그것으로 족할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사랑인가봐. <그리고, 축제> 참 제목이 근사하지 않니? 삶이 축제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 더 놀라운 건 이 단편의 주인공은 축제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삶이야. 단지 축제와 같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 여자가 늘 옴 샨티 샨티 샨티 옴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니겠어? 여자는 아직도 어렸을 때 꼬마시절 도시에 사는 숙모네 부푼 마음으로 놀러간 시골아이의 마음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은 채 살고 있어. 마치 그 시간이후로 마음은 멈춤이 되고 몸만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야. 어린 시절의 설렘이 지독한 감기로 변하여 평생 옥죄는 괴로움으로 살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발리에서 일어난 참사를 본 뒤에야 자신의 아픔이 여름감기에 불과한 것을 깨달아. 맞아. 때론 설렘이 계절이 바뀔 때 찾아오는 감기로 변하는 순간이 일생에는 수시로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그건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 옴 샨티 샨티 샨티 옴 <감히 핀 꽃> 은 사연 많은 집의 이야기인데 주인공이 말이 너무 많아. 꼭 내가 아는 사람과 똑같아.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 왜 아줌마들은 자기 말만 하는지 모르겠어. <금빛날개>에서도 마찬가지야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집의 남자 역시도 자신이 쌓아 온 견고한 벽 때문에 타인의 말을 듣질 않아. 마치 자신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을 것처럼, 동창생의 허망한 죽음 앞에서도 자신만은 피해갈 것 같이 완벽한 안락과 평온함을 꿈꾸지. 그리고 그런 삶을 아들에게도 똑같이 강요하고, 그러나 뜻하지 않게 찾아 온 아들의 죽음 앞에서 이 남자는 비극이 언제 든 다가오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 영화 데스티네이션에서 운명의 잔인함과 가혹함의 모습처럼. 우린 그런 운명의 잔인함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봐. <꿈길밖에 길이 없어>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해 “선생님, 저는 왜 미쳐지지도 않는 걸까요?” 이 말 참 재밌지. 미칠 만큼 절박함 심정에 빠져 본 적이 있어? 삶의 모든 신경세포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행위가 때론 자신을 삶에서 구원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던 이 남자는 미쳐서 정신병원에 갔다가 병세가 호전되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선 한 말이 왜 자신은 미칠수도 없는지 의아해하는 이 질문은 정말 너무 처절하지 않아? 결국 이 남자가 일상에 돌아와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어. 죽거나 미치거나, 차라리 미쳤더라면 이 사람은 그냥 살았을까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그늘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덧없이 죽을 운명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디까지나 겸허히 인간적인 것을 긍정하고 사는 것이 삶이라는 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 네가 그렇게 떠나고 난 뒤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어. 너 없는 빈자리가 내게는 그처럼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해해 어쩌면 그것은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의 힘 이었을 거야.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고개하나 돌리기가 무척 오랜 세월이 걸렸지. 너 없이도 가능한 삶을 살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사랑은 목적어가 필요 없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레 이 소설을 만나서 다시 상기하게 되었어. 마치 처음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어린 시절 늘 함께 했던 너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흐트러진 파편을 주워 소설과 함께 너를 기억해보는 것은 미안하지만 너를 지워내는 작업과도 같았어. 어차피 그때 나는 너를 목적어 없이는 사랑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번번이 어긋나던 관계로 나는 많이 아파해야 했어. 그래도 너로 인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아마도 이 편지가 네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오래 전 사랑했던 너를 기억한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지난 날을 보상받은 기분이야.
잘 지내.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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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호응하지만 막상 진실은 그와 반대일때 황당함을 넘어 이런 반전이 숨어 있었나 싶어 함부로 쉽게 판단을 하거나 호응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 없는 그 자리'는 조금은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의 내용들이다.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어느 한 것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깊이가 느껴지는 책 임에는 틀림이 없다.
'너 없는 그 자리'는 한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는 아프리카로 떠난 남자를 그리워하며 하루라도 빨리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마음을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데 서울 한 복판에서 우연히 아프리카로 떠난 남자를 보게 되고 이후 남자가 들려주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반전의 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감히 핀 꽃'에서는 같은 여자로서 아내을 접고 어머니로만 살아야 했던 여인에 대한 안쓰러움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화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통해서 병을 얻어 죽을 곳을 찾아 들어 온 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 언니의 수다로 시작한다. 그녀는 허우대 멀쩡한 시아버지란 존재로 얻었던 결혼 초 충격과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자 평소에 연락도 하지 않던 아내에게 들어오며 그런 남편을 미우면서도 자신을 찾아온 것에 은연중 안심하는 시어머니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이해되는 마음... 더군다나 늙으막히 자신을 간호하는 아내를 생각해서 들인 단정한 간병인의 모습에 가족 모두 마음을 열어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낄새도 잠시 이윽고 밝혀지는 간병인의 본모습과 이를 보면서 서로의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느 누구도 탓하기 힘든 마음에 흔들리는 언니의 고백은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공감이 갔다.
인터넷이란 특수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사람에 대한 호의.... 진정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섰던 사람과 이를 이용하는 못된 남자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다채로운 카페들이 운영되는 현실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남자에게 아낌없는 마음과 금전적 도움을 주웠던 여자의 주도면밀한 보복은 한편으론 속 시원했다.
이 책에서 가장 안쓰럽고 마음 아프게 읽었던 소설은 '꿈길 밖에 없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부탁을 충실히 지키고 싶었던 맏형의 모습이 마치 오래전에 많이 보아왔던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동생들의 사고를 수습하기에 바쁜 인생...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계획한 일이 해외여행이다.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상태가 좋아질수록 자신이 결코 이겨낼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마지막에 내몰린 남자의 선택이 안타까웠다.
쓸쓸함이 드는 이야기는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루하루 아무일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임에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저자 이혜경씨의 소설로 전부 이루어진 책을 읽는 것은 처음이다. 그녀의 다른 책도 이 책과 같은 느낌인지 궁금해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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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운이 좋게도 이혜경 선생님을 직접 뵐 기회가 생겼다. 어린 시절 초/중학교 때 한번쯤 만나본 인자한 담임선생님과 같은 모습에 홀딱 반해서 책에 대한 소개도 제대로 읽지 않고(사실, 나는 독서 전엔 그 어떤 소개나 리뷰도 보지 않는다.) 무작정 ‘선생님의 미소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내용 이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기대는 주말사이 무참히 깨졌다. 주말 동안 책을 읽다가 표지 사진과 함께 트윗을 적어서 올렸다.
「읽는 내내, 있지도 않았던 오래된 연인과 이별한 듯하여 맘이 참 별났다. 주말을 택해 가져오길 다행이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자 몇 시간 뒤 갑자기 리트윗 물살을 타더니, 많은 분들이 순식간에 즐겨찾기를 했단 알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그랬거니 하는 뿌듯한 마음과, 막연하게 ‘다른’ 기대를 했으면 어쩌지? 싶은 걱정이 교차해 조금 곤란하기도 했다.
(p.49) 일 년 만에 1급 속기사 자격증을 따고 배신과 사기, 음모와 속임수로 채워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녹음을 풀었다. 녹음되고 기록될 것임을 알았다면 뱉지 않았을 말들이 와글거렸다. 약속은 어긋나고 믿음은 배신당하는 게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의 맨홀로 들어가 하수구를 헤매는 것 같았다. 「한갓되이 풀잎만」 中 9편의 단편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 중, 책의 리뷰에 하필이면 두 번째 단편의 한 구절을 발췌한 이유는 ‘배신’이라는 메인 소재에 대한 감상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은 대목 이래서였다.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 속해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마음.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완전 절실하게 느껴졌다. 물론, 9편의 단편 중 내 기준에서는 ‘배신’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기 힘든 내용들도 더러 있었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은 것을 일방적으로 제공해놓고, 그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신’이라니……. 하지만 더불어 떠올린 것은 ‘나는 그런 적이 없었나?’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속이 쓰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따금 예기치 못한 문제를 직면할 때면 항상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제까지 내게 그런 불신이나 편견을 무의식중에 심어준 사람들처럼, 이 책도 당분간은 내게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남겨두게 될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를 수용하는 것도 그런 가치관을 마음에 심는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 극복하는 것 역시 내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싶었다. 책을 덮을 즈음엔, 이제껏 해오던 고민 중 일부에 조금은 태연해지고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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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았다 일어선 벤치에는 그 누군가의 자리가 묻어 있고, 그의 마음에는 눌러앉았다가 도망치듯 떠나버린 그녀의 흔적이 남았고, 시계바늘 위에 서서 시간의 흐름을 몸소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시계바늘 자국이 생긴다.
이혜경의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에서 '자리'의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었다. 대체로 그 '자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 주인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자리'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댔고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내기도 했다. 사랑, 이별, 슬픔, 동경, 무기력함, 우울함 등의 감정은 '자리'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람을 지배하는 공간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김애란의 '비행운'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에게 안녕을 물어보는 식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는 그녀처럼 이헤경도 독자에게 '당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거나 형편없지 않다'고 위로와 위안을 쏟아낸다.
내가 왜? 어째서 나만 늘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건데? 라고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던 시절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재의 이 '자리'의 주춧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래, 맞아. 끄덕끄덕. 위아래의 고갯짓. 이혜경의 세련되고 따뜻한 그 문장들 하나하나가 내 마음 한 켠에 '자리'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공감하기 싫을 만큼 시렵더라도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쩌면, 세상 또한 차가운 지구공으로 보일 뿐, 그 안은 온화한 숨소리들로 가득하다는 걸 이제껏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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