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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파졸리니라는 인물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파졸리니를 연구하면서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삶과 행적을 직접 찾아보겠다고 나서 그 여정을 이 책에 담아냈다. 처음에는 저자와 그 상대인 파졸리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책에서 소개한 내용들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도중에, 파졸리니에 대해 먼저 알아본 후에 계속 읽어나갔다. 파졸리니는 이탈리아의 예술가로,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영화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밖에도 진보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시와 문학 비평을 출간하여, 보수적이라 평가를 받는 가톨릭 교단과 갈등을 빚었던 인물이었다.
이탈리아의 비평가이자 혁명가였던 그람시를 추종하기도 하는 등 진보이라 평가를 받는 파졸리니의 성향에 매료되어, 저자가 그의 행적을 따라 답사를 하는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생전에 파졸리니와 연관되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저자는 이제는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젊은이들을 만나 파졸리니의 삶을 각인시키기도 한다. 프랑스인으로서 이탈리아의 작가의 삶을 좇아 답사를 떠나는 적극성을 띠는 것에서 저자의 열정이 충분히 느껴졌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저자의 모습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작가와 관련된 유적이나 지역을 답사하면서, 깨닫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파졸리니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영화를 제작하는 등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예수의 생애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으며,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를 제작해서 보급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피난지에서 농부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에 대해 공감하여, 후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기도 했다고 한다. 하층민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으로 그의 소설이나 영화에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루어졌으며, 이러한 그의 관점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수파와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파졸리니라는 예술가를 새삼 알게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의 행적으로 좇아 답사를 나선 저자의 열정이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는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파졸리니의 삶과 예술 작품들에 대해서 상세히 조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답사 여정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직접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특히 저자가 이 답사 여행을 떠난 것이 20대 초반이었다고 하니, 이 길이 자신의 젊음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직 이탈리아를 직접 다녀온 적도 없고, 그 지명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답사 여정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정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때로 잠시 책을 덮고, 나의 젊은 시절 열정을 가지고 답사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책으로만 보던 장소를 직접 답사하고,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가 감격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저자에게 이 책에 소개된 여정이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파졸리니라는 예술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으며, 나중에라도 그의 영화나 문학 작품들을 직접 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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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제인 오스틴을 읽다가, 나의 나이가 오스틴을 넘었음을 알고 살짝 탄식한 적이 있다. 얼마전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지금 내 나이임을 알았고, 몇 년 후에는 신해철의 나이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가, 가수. 그들의 길지 않은 삶에서 눈부신 것들을 남기고 떠난 것을 알면 대중문화와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자극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본인이 어떤 예술에 종사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반추를 하게 하는 점이 분명 있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울로 파졸리니.
피에르 아드리앙 이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스물세살의 푸릇푸릇한 청년이다.
파졸리니에 대한 책을 언젠가 찾아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될 예감에 사뭇 설레였다.
특별히 파졸리니의 팬인 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 같은 걸 살짝 품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우라 라는 말을 붙인다면, 세계 영화사에서 그에게 딱 어울리는 그런 느낌의 감독이었다.
작가가 스물세살의 새파란 젊은이라는 것도 무척 새로웠다.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었고 문학계에서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련함 세련미 이런 것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푸릇푸릇함, 싱그러움, 열정과 패기가 갈피 내내 느껴지는 Young 한 에세이다.
파졸리니가 영화 감독이었을 뿐 아니라, 시인이고 글을 썼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책과 간행물을 여러 권 펴냈고, <파졸리니의 글>을 통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아가게 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한적한 전원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죽기 전까지 30년은 로마에서 살았다. 그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에 반기를 들며 대량소비주의 사회를 경고하는 투쟁가의 삶을 살았다. 1970년대 이탈리아는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훌륭한 전통과 유산이 많이 소실되어 가고 있었다. 파졸리니의 동생은 1945년에 정치 투쟁 활동 중에 살해를 당했다. 파졸리니도 훗날 같은 운명을 맞이하니 참 비극적인 형제였다.
이는 당시의 이탈리아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정치 투쟁을 겪었는지를 상징하고 있기도 했다.
<살로 소돔의 120일>을 만든 이와 <마태복음>을 만든 영화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파졸리니의 영화들은 어느 하나 무난한 것이 없고 격렬한 쟁점을 담았다. 가톨릭 신자로 자라서 죽기 전까지 신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공개적으로 그는 교황청에서 배격을 당했고 반교권론자로 통했다.
그러나 파졸리니는 신을 믿고자 번민하였고, 그리스도의 삶을 동경했다. 마태복음의 차기작으로 ‘사도 바울’을 만들려고 준비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서 놀라웠다. 그가 일찍, 폭력으로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 영화가 제작되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안타까웠다.
책을 통해서 파졸리니가 살았던 1960년대, 7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를 알 수 있어서 놀라웠다. 1991년생인 저자도 미처 잘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를 독자로서 같이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파졸리니의 생애, 영화들, 책들, 죽음까지도 그냥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 피에르 아드리앙은 불안증을 겪고 있어서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주기적으로 먹는다. 그가 불안증을 안고 있으면서 그랬기에 더욱 수십년전의 파졸리니라는 예술가에 이입함을 알 수 있었다.
파졸리니의 세계관과 이탈리아, 로마에 대해서 이 책으로 완전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충분히 자극과 충격을 던져주었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고뇌하고 번민하는 신학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다. 교리에, 성당이라는 공간에, 절기라는 명절에 박제된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흔드는 신앙으로서의 종교에 대해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한 예술가를 동경해서 그의 발자취를 쫒는 책으로만 알았는데 한 영혼의 신을 향한 갈망과 질문들을 담은 책이어서 놀랐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감독, 작가였던 파졸리니의 생애와 죽음과 겹쳐져 절묘하게 표현되고 있다.
여러 가지, 신학적인 이야기까지 생각해 보게 한 의미심장한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청춘의 순수함이 느껴지고 투박하면서 정직한 표현들이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 한 책 <파졸리니의 길> 이었다.
책 중에서
믿음도 희망도 없는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사랑 없는 믿음과 희망은 흉측해질 수 있다. (파졸리니의 글에서 148쪽)
참고 견디는 메마른 씨앗: 주여, 저 또한 당신을 찾는 이들 가운데 있습니다.
자비를 베푸소서. 제가 당신의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늘의 은총을 사랑하는 저는 마치 박쥐처럼 당신의 빛에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틀거립니다. 제 손은 건전치 못한 사랑을 어루만지고 끝내 상처입습니다.
당신을 불러봅니다 어색하고 차가운 말로 식어버린 마음으로.
얼어붙은 제 기도를 다시 덥혀주소서; 이 영혼을 거둬주소서. 이 말을 음절로 끊어 당신의 그 가련한 지옥도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동료들의 죽음을 아파하게 하소서. 새벽이 어둠의 장막을 드리울 때 여명의 천둥이 울릴 때 기쁨에 취해 마시게 하소서. (140쪽)
신앙은 불안과 비겁함, 부인 否認을 잉태하고 있는 싸움이다. (146쪽)
나는 40년전 죽임을 당한 이 사람에게서 내가 오늘의 지성에게 기대했던 삶의 규칙을 많이 발견했다. 나는 그 시절 청년들에게 주는 그의 조언 하나하나를 나를 위한 것으로 간직한다. 그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청춘들에게 답장을 했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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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구나 삶속에서 인생의 책 한권을 만나게 된다. 내가 비강,사강,슬리마니의 책을 통해 느낀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와 작품에서 느낀 그들만의 생각을 숭배하듯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책에서 보여 준 치열한 삶의 고뇌를 이해하기 시작된 짝사랑일지도... 이 책의 저자인 피에르 아드리앙 또한 모든 클리셰를 거슬러 산 파졸리니의 삶에서 자신에게 무엇을 건드린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작가와 혼연일체가 되려면 그의 언어가 스친 장소들을 확인하고 접촉해야만 한다고 ... 저자는 파졸리니의 시나 작품을 통하여 그에게서 무엇인가 그를 이끈 영혼의 울림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따라 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며, 이 책의 어둡고 우울함에 가까운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멈추지 않고 따라 갈 것이다. 인간에 대한 매혹,책을 통해 내 안에 고통스러운 감동을 안긴 한 시인에 대한 매혹이 아닌 파졸리니에게서 자기번민 그리고 그를 경멸하는 이들에게 내맡겨진 작가의 모습을 저자는 역설의 인간이요,생각을 뒤흔드는 자요,달력에 없는 성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저자의 영혼을 건드린 사랑하는 또는 존경하며,애처로워하는 스승같은 파졸니리를 절대 포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로등 아래서 책을 덮는다.가로등의 불빛이 꺼지면 주위는 어두워지고 나의 눈도 어두워진다.하지만 전구의 필라멘트는 아직 꺼지지 않고 붉은 빛을 가지고 있다. 마치 전구의 영혼처럼... 한 영혼을 찾아 떠나는 저자의 길에 간접적으로 동행을 하게 된 책으로 나의 영혼의 책..나의 스승이 유난히 그립고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스승의 길의 책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에서 빠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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