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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책에서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들었으며 알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자세히 모르더라도 대강은 나를 비롯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허나 '아테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아테나가 처한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테네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왜 그들은 위대한 철학자로 불리우는 소크라테스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이 무엇인지 들려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나가 가장 번성하던 시기에 태어났다. 그는 시대의 철학자들이 걸었던 길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인물로서 그런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좋았던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에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적으로 대했던 사람도 많았다.
소크라테스를 둘러싼 아테네의 상황을 이토록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은 접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의 독배를 마실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오래도록 지켜져 온 관습, 공개재판은 물론이고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안좋은 사건들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특히 제자 플라톤의 향연에 소크라테스의 친구로 등장했던 아리스토파네스는 당시에 많은 선도적 사상가들을 아테네의 극장에서 호된 비난과 풍자로 풀어냈지만 유독 그의 희극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공개적으로 풍자하고 조롱하며 아테네 사람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주지만 아테네가 계속된 전쟁에 패배 후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이것이 결국 소크라테스의 명성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멜레토스를 포함한 3인에 의해 재판에 회부된다.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에게 소크라테스 자신이 직접 변명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논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사상가들이 하지 않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하였으며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아테네가 인정한 현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지와 철학적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오랜 전쟁과 결국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인구는 급속히 줄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진 아테네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스파르타의 체제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곤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희생자가 속출하였는데 소크라테스도 그 중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베터니 휴즈는 유명한 다큐멘타리 마스터로서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이며 방송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그가 들려주는 아테네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역사속을 거닐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사람의 인물을 통해서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아테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란 인물을 통해서 아테네가 가지고 있었던 고민과 시대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네의 변명'은 아테네의 역사와 소크라테스란 위대한 철학자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으로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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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그의 죄명은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신을 받들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죄를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테네 민주주의 제도가 내리는 사형을 받아들이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으로 가는 때를 시작으로 재판하는 과정, 감옥에서의 생활, 그리고 독배를 마시는 순간, 죽음 이후를 큰 카테고리로 나누고 그 안에 액자 형식으로 당시 아테네의 국내외적인 상황, 특히 펠로폰네소스 전쟁 과정과 아테네 민주주의의 내용과 형식, 실체, 그리고 아테네인들의 사고와 생활 등을 매우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다큐멘터리 작가라서 그렇겠지만 당시 아테네와 그 주변에 대한 설명이 유적과 유물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현재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현장감이 있다. 더구나 저자가 직접 아테네를 비롯하여 그리스 각지를 직접 탐사하여 저술하였기 때문에 더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서양 철학자보다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년 전에 영화제목으로도 쓰여질 정도였으니 두말하면 잔소리겠다. 하지만 보통은 ‘네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철학자 정도로 알 뿐이다. 나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던 사실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글을 써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상이나 철학은 그의 만년 제자였던 플라톤의 저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논하자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철학에 대해서 옷이 물에 젖듯이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서기전 400년 즈음의 아테네는 대외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와 에게 해의 패권을 차지하여 제국으로 성장할 때이고,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전히 만개할 때였다. 하지만 제국으로의 팽창은 주변국의 저항을 가져왔고, 특히 민주주의 제도를 탐탁찮게 여기고 있던 아테네의 라이벌인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아테네의 팽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런 위태위태한 상황이 결국 전쟁으로 터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30여 년간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결과 아테네는 패전하고 고대 문명의 꽃을 피웠던 아테네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고, 민주주의는 점차 스러진다. 이 과정을 고스란히 겪은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대단히 물질만능주의적이었고,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보다는 육체적인 미를 추구하였다. 심지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은 심성도 아름답고 지적 능력도 훌륭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현실의 물질적 생활에 만족하였다. 당시 아테네는 주변 약소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고, 필요하면 점령하여 점령지 시민을 노예로 만들어 충분히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라는 외모가 정말로 볼품없는 사람이 나타나 물질적 생활에 안주하지 말고, 정신적, 지적, 영혼의 삶을 깨닫고 살라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설득하고 다녔으니 아테네인들의 눈에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테네가 아직 풍요롭고 패권을 잃지 않았을 때는 그런 소크라테스를 용납할 수 있었겠지만, 전쟁에서 패하여 속지들을 하나씩 잃어가고 스파르타 군대에 아테네가 점령당했을 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아테네인들은 점점 불안하고 신경질적이 되었고,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었다. 이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았다. 평생을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이모니온’에게 떳떳하게 살았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고, 죽음이란 그에게 또 다른 여행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라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이 말을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추구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리는 지금 아테네와 소크라테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구가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사실 인류 역사 상 익숙한 제도는 아니다. 지금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빚을 지고 있다. 또한 우리 현대 문명과 문화는 서양에서 온 것이 많다. 서양의 문명과 문화, 특히 종교와 사상의 뿌리를 쫓다 보면 고대 그리스에 이르고, 거기에서 플라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플라톤 철학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는 지금도 소크라테스와 만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논했던 최초의 사람이자, 최초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된 철학자였다.” (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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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변명-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의 불편한 진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책을 남기지 않았다. 현존하는 그의 말은 제자 플라톤이 정리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집필 당시의 대화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도넛 같은 주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의 책 이외에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실제가 없는 할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주인공 자리는 텅 비어있는 그런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역사학자이자 방송인인 베터니 휴즈는 무모한 도전을 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추적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살아있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를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당시 아테네는 매우 격변기였던 것 같다. 전쟁이 계속 일어났고 학살도 빈번했다. 그 드라마틱한 현장에 소크라테스는 서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전투병으로 또는 철학자로 현장에서 묵묵히 인간사의 비정한 모습을 꾸준히 관찰해왔던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마치 다큐를 보는 듯한 생생하게 상황을 묘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저자는 10년간 지중해지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책에는 당시 아테네의 지도도 남아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구두장이 시몬의 구두공방도 보인다. 당시 사법제도에 얽힌 이야기, 아테네의 의사결정에 대한 이야기,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당근즙에 대한 이야기,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관계, 펠로폰네소스전쟁 이야기 등등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은 저자의 꼼꼼한 관찰력으로 인해 저절로 책에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자는 고대 문헌을 인용하여, 당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역사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와 훌륭한 저술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도 폭넓게 인용하여 고고학 지식 뿐만 아니라 역사 지식을 같이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법을 전해준 사람이다.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법, 생각하는 법을 전해준 사람이다.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 주어 인류가 따뜻하게 되고 익힌 음식을 먹게 하고 불로 문명을 일으키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원전 5세기나 지금을 비교하면 과학문명은 발달했으나 나머지 영역은 비슷한 것 같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다른 도시국가를 점령하기 위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다. 그런 모순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하는 법을 깨달으라고 강조한 것이 아닐까? 기원전 5세기 살았던 소크라테스 그는 아직도 살아있다. 왜냐하면 어느 인문학 강좌에서나 그의 말과 철학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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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남지지 않은 ‘도넛 같은 존재’ 소크라테스에 대해 쓴다고 했지만(하지만 공자도 자신이 쓴 글이 아니라 제자들이 남긴 글과 역사 속에서 알려졌고, 스코라테스도 제자인 플라톤 등에 의해 알려졌다), 정작은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들여다보고 있다.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란 어떤 의미인가? 바로 현대 적지 않은 국가가 국가 구성의 기본 원리로 채택한다고 하는 민주주의를 역사상 최초로 구현한 것이 바로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다. 그러니까 베터니 휴즈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민주주의란 이념의 탄생과 소멸을, 그 이념의 화려한 긍정성과 추악한 소란스러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바로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불안정성을 직시한 소크라테스라는 독특한 철학자의 죽음까지 이르는 온갖 역사적 사실의 재구성을 통해 아마도 현대 민주주의의 성립 요건과 위험성까지 접근학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미디어를 통해 아테네를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운 평화롭고 활기찬 도시 국가로 칭찬하고, 현대의 민주주의가 결국은 추구해야 하는, 하나의 모범으로 배워 왔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 아테네도 180년 간 시도한 민주주의의 시기 동안에도 민주주의와 참주제(과두정) 사이를 수시로 오갔고, 또한 바로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다양성을 내세우고, 영혼의 구원을 얘기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들게 했다(베터니 휴즈는 소크라테스는 대표일 뿐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죽어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이자, 그 길로밖에 갈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 속의 아테네에 대한 변론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하게 한다. (매트 리들 리가 좋은 과학은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낸다고 했듯이, 좋은 책도 답을 제시해서 질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을 갖게 한다. 알베르토 망구엘도 『책읽는 사람들』에서 훌륭한 독자의 조건으로 그것을 제시했다.) 철학자의 죽음에 표를 던진 민주주의도 과연 목숨을 걸고 수호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정작 그 죽음으로 불멸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어쩌면 광적인 모습까지도 보였던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현대의 민주주의는 과연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른가? 더 좁게 질문하면, 민주정 수립이라는 명목으로 주변 도시 국가를 위협하고, 침략하고, 복속시켜 부를 빼앗은 아테네와 현대의 미국은 과연 다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은 별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또 정작 대답을 한다는 것이, 혹은 그것을 정답이라고 확정짓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적어도 나는) 어떤 혐의를 두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혐의에 기초를 둔 대답도 무척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불온한 의심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것뿐일 수 있고, 사실은 그 의심과 혐의가 우리의 삶과도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부시의 연설만으로 그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그 이면을 의심하는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속에 깊이 편입되어 있는 21세기 초입에 어찌 의미없다 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게 인문학적 질문의 힘이라 생각한다. 답이 힘든 질문을 던지는 것. 혐의를 두고 의심하는 것. 세상을 불온하게 바라보는 것. 비록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나이 70에 독배를 마셨지만. * 이 책에서 가장 놀란 것은 어떻게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가 이렇게 생생할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 때는 아직 삼국도 제대로 정립되기 전이다. (2013.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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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KBS개그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한손을 들고 "너~자신을 알라~-소크라테스"하는 꽁트를 본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개그 프로에 쓰일 정도의 사람이면 정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하는 바가 뭔지 알지 못하면...소크라테스가 누군지 모르면 웃을 수가 없다.
그런데 학교 다닐때도 동서고금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로 배운 소크라테스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면 더군다나 그의 생애에 대해 말해 본다면 나는 할 말이 거의 없다. 그의 악처이야기나 문답법 외에 몇 가지 유명 명언들 외에 내가 아는 바가 뭐가 있었나? 흔하디 흔한 위인전에서도 소크라테스를 접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그의 철학을 이해할 가장 중요한 문답법에 대한 이해도 전혀없이 그냥 우리는 '유명한 철학가'로만 알고 있었다.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는 사실 책의 두께에 압도당해 이 책 읽을 수 있을까...인문서라서 내용이 딱딱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대분분의 책이 그렇듯 시대상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읽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린 것 같다. 우려했던 바와 달리 우리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많이 노출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리스식이름이나 지명, 용어가 그다지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다큐작가의 글이라 그런지 묘사가 좋아서 2막부터는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제법 빨라졌다.
사실 번역본이라는게 내용도 내용이지만 번역가의 역량이 무척 중요한다.번역본을 읽다보면 부분부분 껄끄러울 때가 있는데 이 때 번역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외국어 뿐만 아니라 우리말에 대한 감각도 좋은 번역가가 참 드물다고 하는데 특히나 이 책처럼 묘사가 많은 책은 번역책은 더욱 힘들다고 알고 있다. 전반적으로 책장이 잘 넘어가고 내용에 비해 이해가 잘되는 면에서 볼 때 좋은 번역가가 번역을 읽기 좋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는 내내 힘들었던 점은 주석에 관한 문제다. 너무 많은 양의 주석이 미주로 나와있어서 찾기가 다소 번거로웠다. 개인적으로 미주보다는 각주를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궁금해서 하나 찾아보려고 하면 정신이 좀 없었다.
방대한 양의 독서 끝에 남는 한가지 생각이 있다면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 인가.'라는 의문이다. 삶의 방식이나 종교나 많은 것이 변하고 달라졌지만 권력을 잡은 인간들의 행태와 힘든시기의 군중의 심리라는 것이 몇 천년이 지나도 별 다를 것이 없는지...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희생양으로 내부의 불만을 덮은 그리스의 정치행태가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정치에 별 관심도 없고 선거철에만 반짝하는 관심이지만 대선을 치르는 오늘의 분위기와 더불어 한 번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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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끝내는 12월의 가장 만나고 싶었던 도서인 [아테네의 변명]. 위대한 철학자 하면 항상 떠오르는 이름인 소크라테스. 그의 사상은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쳣지만 저자도 말하듯이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전해듯거나, 저기에서 단편적으로만 만났기에 제대로 알지 못한다.항상 그의 대해 궁금했었다. 도대체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이러한 궁금증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옥당'출판사에서 그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반가운 책이 출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묻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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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와 민주주의, 소크라테스와 서양 철학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식 같은 것이지만 정작 그 내용에 대해 관심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뛰어난 제자인 플라톤이 자신의 책인 대화록에서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말하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이미지가 생성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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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변명> 학창시절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리스 아테네의 인물이라는 정도밖에 알 수 없어 습니다.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도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리스 철학자인 정도여서 우리의 인문학적 교육이 엉터리였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스는 아테네가 유명해지기 전만해도 보잘것없는 힘이 없는 소도시국가이고 페르시아의 막강한 힘에 억눌려 몹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서로 헐뜯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나라에 불과했기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화려한 그리스 문명을 떠올리기에는 다소 어려운 해석일 듯입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죽을 각오로 싸운 전쟁에서 그리스는 바다를 인접한 아테네로의 도시를 이전함으로써 막강한 세력을 이루었고 주변의 나라들을 점령하여 부흥을 일으키는데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자신만만한 그들은 너무도 많은 전쟁을 치렀고 많은 인원이 죽어버렸기에 지금의 찬란한 신전들과 도시들이 파괴되어 오늘날의 처참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찬란했던 아테네 문명이 꽃을 피우고 있던 시절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늙어갔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들이 토론으로 날이 밝고 밤이 저물 때까지 토론의 주제가 ‘왜?’라고 물었지만 그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살아가는 이유?, 왜 태어났는지?, 태양이 왜 뜨고 지는지? 등 도저히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토론의 장이었기에 요즘으로 이야기 하면 괴변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테네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영웅시하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당시 전쟁으로 인하여 아테네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말하고 다니지 않는 그에게 아무래도 호의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때국물이 줄줄 흐르고 맨발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과 몇시간동안 우두커니 멍한 모습으로 있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아테네는 젊은이들을 영웅시하고 아테네가 전쟁을 일으키고 있던 상황이기에 더욱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눈으로 보자면 화려하게 신전을 건설하고 시민 3명중 2명이 노예이었기에 일을 하지 않아도 호화스런 생활을 할 수 있었고 호화스럽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소크라테스의 눈으로 보면 다른 도시국가에서 약탈하고 조달한 물건들이었기에 심히 불편한 심기였을 것입니다. 그가 젊은이들과 아테네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법정으로 들어갈 때 그는 ‘내가 생명과 기력이 있는 한 나는 절대로 철학을 실천하고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 앞장서지만 ’지혜와 진실, 영혼을 고양하는 일에는 왜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진실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려야 했던 소크라테스였기에 그 당시의 모습 속에 오늘나의 소크라테스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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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굉장히 매력적인 책을 만났다.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는가? 동양에 공자가 있다면, 서양엔 당연히 소크라테스를 거론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는 과연 누구인가?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 학자? 정체가 뭔가?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인물이기보다는 하나의 상징, 이미지에 가깝다.
세상에 소크라테스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삶, 그리고 독배로 말미암은 죽음을 이해하려면,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아테네의 변명>은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 그가 숨 쉬며 살았던 그 아테네로 가서 그를 만나게 해 준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이자 격변기였다. 세련된 정치와 문화, 예술을 꽃피운 동시에 전쟁과 살육이 빈번했다. 그리고 이 시대에 특기할 만한 것이 소크라테스 외에도 플라톤, 소포클레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양문명의 한 획을 그었던 쟁쟁한 인물들이 함께 共存(공존)했던 시대였다.
아테네, 소송의 도시. 기원전 399년 아테네는 지나칠 만큼 소송이 많은 도시였다. 한 해 최대 4만 건의 소송이 있을 정도였다. 아테네인들은 법정 공방을 사랑했다. 법정에서 옥신각신 벌어지는 싸움은 운동경기만큼이나 관객을 끄는 구경거리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싸움이었다. 특히 오늘의 소송은 아테네인들을 술렁이게 했다. 기원전 399년 5월. 오늘 그들이 심판할 사람은 아테네 사회를 위협한다는 죄로 고소당한 인물로 그것은 사형을 받을 중죄였다. 그 사람은 바로 땅딸막한 칠순 노인 소크라테스다. 그는 당대의 유명인사였다. 지난 30년간 동지중해 지역의 많은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아테네로 몰려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날 아침 법정을 향하는 소크라테스의 동시대인들은 이제 이 골치아픈 괴짜 철학자에게 치욕을 안겨주고 싶어 했다. 심지어 그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아테네의 변명>은 바로 운명의 날,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던 그 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모든 저자의 저서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아테네의 변명>에는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바로 리얼리티, 생생함이다. 휴즈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년 동안 동지중해 지역, 소크라테스의 발길이 닿았던 곳, 흔적이 남았던 곳, 당대를 이해하는데 실마리가 될 만한 장소들을 직접 찾아서 두 발로 뛰어 다녔다. 이 책은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저자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려야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가치와 품격 등이 가득 느껴지는 매력적인 양서(良書)이다.
최근 세익스피어 원작의 <베니스의 상인>이란 책을 읽으면서 법의 잣대, 법의 해석, 법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과연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법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 법학자와 법관에 법의 해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지금의 법에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올초 3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진정 악법도 법인가?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과연 진짜로 이 말을 했을까? 소크라테스의 명성과 그에 관한 소소한 일화들은 제법 알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아테네의 법과 진실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한 번도 깊이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관한 의문과 궁금증들을 이 한 책 <아테네의 변명>을 통해서 밝혀 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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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변명 - (베터니 휴즈/옥당)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택한다. 재판내내 그에게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할 여러 방법들을 권유한 주변 동료나 제자들의 바램과는 달리 그는 육체로 부터 영혼을 해방시킬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담담히 받아들인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 대한 사유와 철학에만 집중하여 왜 그가 그런 재판을 받았는지 당시의 아테네 분위기는 어떠했을까에 대해서는 소홀한 편이다.
저자 베터니 휴즈는 다큐멘터리 작가답게 이 책을 소크라테스에 철학을 논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의 아테네가 소크라테스를 왜 죽음으로 몰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쓰여졌다. 직업적 경험에 힘입어 책은 역사적 유물과 사료를 근거로 직접 아테네를 방문하여 나래이터의 음성 지원을 받는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던 아테네의 시대적 배경과 그가 재판을 받던 법정절차 등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서기전 400년 즈음의 아테네는 대외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와 에게 해의 패권을 차지하여 제국으로 성장할 때이고,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전히 만개할 때였다. 하지만 제국으로의 팽창은 주변국의 저항을 가져왔고, 특히 민주주의 제도를 탐탁찮게 여기고 있던 아테네의 라이벌인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아테네의 팽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런 위태위태한 상황이 결국 전쟁으로 터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30여 년간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소크라테스가 유독 젊은이들과 어울리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책에 따르면 그는 길을 가는 도중에도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끌어 냈다고 한다. 혹자들은 그가 소아성애자라고 까지 비방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멘토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처럼 젊은이들이 더 많이 생각하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근 40-50년간 끊임없이 질문하며 아테네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잊게 한다'는 주장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호소하며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지 게으른 것을 넘어서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언제나 생각하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가 주는 교훈은 네 분수를 알아라 자만하지 마라, 과욕부리지 말라라는 뜻을 소크라테스는 역설적으로 이해했다. '너에게 커다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라','너의 내면을 알아라','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라' 민주주의에 관한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에는 이런 소크라테스의 파격적인 생각이 아고라에서 거침없이 논의되었지만, 아테네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테네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사회의 희생양이 필요해졌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법정에 들어선 70년 동안 민주주의가 번창하고 변화하고 시들고 다시 부활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법에 따라 죽음을 당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뿌리인 아테네에게서 이상적인 자유, 표현의 자유가 구현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어쩌면 당시에 도시국가 아테네가 그런 짐을 짊어지기에는 힘에 겨웠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