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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책에 올라 있는 무협영화는 몇 편이 되지 않는다. 이 책에 무협영화를 한 편도 올리기 어려운데, 어떤 감독은 두 편이나 올렸다. 1966년 작품인 <방랑의 결투 / 대취협 大醉俠 / Come Drink with Me>와 1971년에 만든 <협녀 俠女 / A Touch of Zen>다. 그 감독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으나 타이완의 타이뻬이에서 죽은 후진취안(호금전 胡金銓 / 킹후)이다.
후진취안 감독이 1967년에 만든 <용문객잔 龍門客棧 / Dragon Gate Inn>은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끝내 살고, 나쁜 짓을 하는 이는 죽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무협영화였다. 겉보기에는 판에 박은 듯이 보이는 이야기를 담았지만, 엉성하거나 싱겁지 않았다. 감독이 영화 속에서 그려낸 무술과 칼싸움이 볼만 하고, 짜임새도 괜찮았다.
2. 중국 명나라의 경태제 18년인 1457년, 환관인 왕진(바이잉 / 백응)은 나라를 쥐고 흔들었다. 황제의 정보기관인 '동창'과 호위부대인 '금창위'를 마음대로 부렸으며,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벼슬아치들을 잡아다가 죽였다.
병부시랑 우겸도 왕진의 눈에 들지 않아 죽었는데, 그 핏줄들은 '용문' 밖으로 쫓겨났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죄를 지으면 서울에서 멀리 있는 섬이나 산골로 귀양을 보냈듯이, 중국에서도 아마도 그들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쫓은 듯하다.
"우겸의 기백이 살아있다. 살려두는 건 나중에 앙갚음을 부를 뿐이다...(저들을) 모조리 죽여라."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왕진은 우겸의 핏줄들을 그냥 두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동창'에서 일하면서 무술을 잘 하는 이들을 용문으로 보낸다. 거기서 해치울 생각으로.
3. 용문 들판에 덩그러니 홀로 서있는 집, '용문객잔'. 1층에는 밥 먹고 술 마실 수 있게 해놓았고, 2층엔 방이 있어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다. 요즈음의 호텔이나 옛날의 주막집 같은 곳이다. 찾는 이가 몰려와 이젠 북적이려 한다.
동창 무리들은 형조에서 죄인을 잡으러 왔다고 속이면서 우겸의 핏줄이 오는 길목인 주막집에 자리 잡는다. 그에 맞서 죄 없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우겸의 핏줄을 살리려는 이들이 용문으로 모여든다.
혼자서 찾아온 소소주(시천 / 석준)는 동창의 우두머리 비소탕(묘천)이 어떤 일을 하냐고 묻자, "그저 한량일 뿐입니다. 얻어먹을 데가 있으면 거기서 지내지요. 일을 구해도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한다. 옛날 장군이었던 주막집 임자 우닝은 마을에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추 씨와 그 아우(상관링펑 / 상관령봉)는 동창 무리들이 들어오지 말라는 데도 집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주막집을 사이에 두고 우겸의 핏줄을 죽이려는 이들과 살리려는 사람들이 큰 싸움을 벌인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들의 끝은 뻔하다. 나쁜 놈들은 작살이 나고, 착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4. 그냥 시간 때우기 영화로 만들고 싶지 않은 감독의 마음은 영화 속에서 소소주의 말에 담아 놓았다. "왜 우리와 맞서는 건가? 우리와 함께 하시게...세상이 좋음과 나쁨만으로 있는 건 아니네..." 하며 조선을 세울 무렵 이방원이 고려를 지키려는 정몽주를 꼬드기듯이 동창 무리의 우두머리가 달래지만, 소소주는 망설이지 않고 뿌리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감독이 말하고 싶은 대목일 것이다. "나는 이름과 돈을 쫓기보다 충신의 핏줄들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오."
주막집 임자인 우닝이 다친 동창 무리들에게 약을 발라주면서 낫게 해주고는 돌려보내는 꼭지가 나온다. 그러자 성마른 추 씨는 입이 튀어나온다. "저들은 낫고 나면 다시 우리한테 싸우러 올 겁니다." 그런 말을 듣지만 우닝은 제 생각대로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는 일을 풀지 못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감독은 말하고 있는 듯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싸움을 보면 남다른 감독의 솜씨가 돋보였다. 60년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주막집 안에서 국수를 먹으려 하던 소소주한테 동창 무리의 똘마니가 집 밖에서 화살을 쏘았을 때, 저걸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는데 소소주가 정말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머리가 참 좋다.
동창 무리가 술을 시킨 소소주한테 독을 탄 술을 갖다주었을 때나, 뒤늦게 주막집에 들어온 추 씨 형제(오누이?)와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동창 무리가 술에 독을 타서 추 씨한테 건네줄 때, 보기에 아슬아슬한데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어김없이 나아가거나 둘러싼 이들이 그 장면에 맞는 얼굴이나 몸짓을 해서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감독의 솜씨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5. <협녀>에서는 무술을 하지 못하면서 책만 읽고 그림을 그리던 사내인 고성제로 나왔지만, 이 영화에서 소소주를 맡은 시천은 칼을 잘 쓰고 싸움을 잘 하는 이로 나온다. 말할 때 앞니가 조금 삐어져 나온 탓에 잘 생긴 사내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왕진과 목숨을 걸고 싸울 때 왕진한테 한 대를 얻어맞고 휘청이는 꼭지에서, "어릴 적부터 닦은 솜씨군...이쯤 되려면 연습만 했겠군...까딱하면 자네처럼 될 뻔 했어..." 하며 왕진이 일찍 불알을 깐 탓에 다른 계집에게 눈 돌리지 않고 무공만 닦은 것을 비꼬고, 그한테 잘못 맞았으면 내시 같은 사내가 될 뻔 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좋았다.
칼싸움하는 모습으론 다른 이보다는 추낭자로 나온 상관링펑(상관령봉)이 으뜸이었다. 주막집 밖에서 모청센을 비롯한 동창 무리와 1:7로 칼싸움을 벌일 때는 사내들보다 더 다부지게 싸웠다. 저한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면서 달려드는 사내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게 멋졌다.
마지막 무렵에야 무술 솜씨를 보여주는 왕진 노릇의 바이잉(백응)도 보기에 괜찮았다. 소소주와 타타르 사람인 토라 형제, 추 씨까지 네 사내가 빙둘러싸면서 덤비지만 왕진은 꿋꿋하다. 하지만 앓고 있던 천식 때문에 달려나가야 할 때 기를 끌어올리지 못해 당황스런 얼굴을 보여주는 건 이런 영화에서도 꾸미기 쉽지 않은 대목이었다.
동창 무리의 둘째 우두머리인 모청센으로 나온 배우는 <협녀>에서 양혜정 무리들을 잡으려 애쓰는, 무공이 뛰어난 석진 부사로 나왔다. 거기서 양혜정을 돕던 혜원 대사한테 몹쓸 짓을 하는 바람에 제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좋은 쪽에 서지 못하고 나쁜 사람으로 뽑혔다. 같은 감독의 작품에선 한 번 어떤 사람으로 박히면 다시는 다르게 나오기가 어려운가 보다.
싸움을 잘 한다는 동창 무리에 속한 이들 가운데도 죽는 이가 많은데, 그와 맞서 싸우는 소소주를 비롯한 이들 가운데는 죽는 이가 거의 없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나쁜 놈들보다 늘 더 잘 싸우는 것은 아닐 텐데...짜임새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용문 밖을 지키는 병사들의 윗사람인 쾌우창 장군의 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동창 무리들이 제 아랫사람들을 죽였다면 힘으로 맞서야 하는데 왕진한테 말로 맞서다가 험한 꼴만 본다. 나쁜 놈들한테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걸 감독은 잊은 걸까? 아니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창 무리와 왕진이 나쁘다는 것을 보는 이들한테 나타내고 싶었을까?
6.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처음에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고, 싸움이 어떻게 끝이 날지도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보아야 했으며, 꼭지마다 나오는 이들의 움직임이나 얼굴을 카메라가 서로 견주어 잘 맞춰 보여주므로 드러내는 느낌이 바로 와닿았다. 오래된 무술 영화이지만 요즈음 나온 영화에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뒤에 나온 영화인 <신용문객잔>에 눈에 익은 홍콩 배우들이 잔뜩 나와 가깝게 느껴졌지만, 영화로만 보면 짜임새나 연기에서 이 영화가 더 윗길로 보였다.
이 영화를 다시 만든 1992년 작품인 <신용문객잔 新龍門客棧 / New Dragon Gate Inn>과 2011년에 쉬케(서극) 감독이 만든 <용문비갑 龙门飞甲 / Flying Swords of Dragon Gate>마저 나왔으나, 가장 먼저 만들었던 이 영화는 오랫동안 디뷔디로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예스24에 얼핏 보였다. 보기 어려운 영화가 디뷔디로 나왔다. 얼른 수레에 올리고 바로 사버렸다.
나온 지 마흔다섯 해나 지난 영화 디뷔디라서 그런지 화면은 깔끔하지는 않았다. 디뷔디 집에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4:3으로 풀 스크린이라고 적혀있으나, 집에 있는 디뷔디 기계와 잘 맞지 않는지 텔리비전 화면에 꽉 차지 않고 가운데 네모난 칸으로만 보였다. 우리말 옮김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덤으로는 예고편조차 없었다.
9,900원이 아니라 더 비싸도 사야 하고, 컬러에다 이렇게 나온 것만도 고맙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오랜만에 나왔기에 감독이나 배우들이 이 영화를 찍을 때 있은 이야기들을 넣어서 좀 더 잘 만들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