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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는 무슨 일로 울기라도 하면 사내가 눈물이 흔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로부터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라는 말이 내려온다고까지 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할 때야말로 남자가 울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릴 일을 당해도 겉으로 표현하지 말고 속으로 삭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행에 나선 연암선생이 요양의 백탑이 모습을 드러내는 산모롱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는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박지원 지음,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 135쪽, 그린비, 2008년; http://blog.yes24.com/document/7244292)라고 외쳤다는 것을 읽고는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전송렬교수님의 <옛사람들의 눈물; http://blog.yes24.com/document/4383704>을 읽으면서 분명해졌습니다. ‘조선의 만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옛사람의 눈물>에는 모두 35편의 만시(挽詩)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시(挽詩)란 죽은 자를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말합니다. 이 책에 실린 만시 가운데 허난설헌과 남씨 부인이라는 두 사람의 만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조선의 사대부라는 남성들의 작품입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에는 아내를 위해 지은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 외에 스승과 제자, 선배, 심지어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해서 지은 만시, 나아가 자기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고 배워온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유배 가있는 사이에 세상을 하직한 아내를 위하여 지은 만시입니다. “那將月姥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나장월모송명사 내세부처역지위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뉘라서 월모에게 하소연하여 / 서로가 내세에 바꿔 태어나 / 천 리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 이 마음 이 설움 알게 했으면”(전송열 지음, 옛사람들의 눈물 105쪽, 글항아리, 2008년)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안타까움, 미안함 그리고 원망 등 복잡했을 심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전송렬교수님은 시는 때로 긴 호흡으로 설명하는 산문보다도 더 애절하게 우리의 감성을 흔들어놓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 만시에서 오히려 깊이 농축된 한없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만시(輓詩)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다른 형식으로는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문화사학자 신정일님의 <눈물편지>에서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선인들은 특히 사람이 죽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피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의학수준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던 옛날에는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히 슬퍼할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지극한 슬픔 뒤에 찾아오는 눈물이 나를 서럽게도 했지만 살게 했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라고 서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슬픔으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눈물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하지만 정작 슬픔이 아름답다고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뒷일지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슬픔에 굴복하여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애도하는 과정에서 슬픔을 승화시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의 감정을 가슴에 담아 억누르기보다는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눈물편지>의 저자는 어린 자식,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벗과 스승을 잃은 슬픔을 담은 시, 제문 혹은 서한문 등 산문을 통하여 그 슬픔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담은 글들은 윤선도가 막내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지은 시의 한 대목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를 제목으로 하여 모았습니다.
첫 번째 글은 다산 정약용이 네 살 된 막내아들 농(農)이 죽었다는 소식을 유배지에서 듣고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다산은 남양 홍씨와 결혼한 뒤 19년 동안 10여명의 아이를 두었지만,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외에는 모두 요절했다고 합니다. 편지에 쓴 농은 여덟 번째 아이였던 모양입니다. 농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 다산은 ‘오호라, 내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 이처럼 잔혹한 일이 벌어지니 이를 어찌할거나’라면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으면 참척(慘慽)이라고 하겠습니까? 전염병에 속수무책이었을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도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다산은 자신의 애달픔도 가누기 어려운 지경이었을 터임에도 아내가 겪고 있을 고통에까지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생사고락의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다는 나의 애달픔이 이러할진대 하물며 네 어머니야 뱃속에서 직접 낳은 애를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었으니 그 애가 살았을 때 어리광부리던 말 한마디, 귀엽던 행동 하나하나가 기특하고 어여쁘게 만 생각되어 귓가에 쟁쟁하고 눈앞에 삼삼할 것이다. 더구나 여자들이란 정이 많아 이성에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 십상인데 얼마나 애통하겠느냐?(19쪽)”라며 두 아들에게 어머니를 잘 모시도록 당부한 것입니다.
다산은 여자들이 감성에만 의지한다고 보았지만, 심의당 김씨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열여덟 살에 죽은 큰딸을 위해 심의당 김씨가 지은 제문에서 그녀는 슬픈 심사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아, 슬프다!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을 누군들 원망스럽고 한스럽게 여기지 않을까마는 어찌 너처럼 장성하여 요절함만 같음이 있겠느냐. 사람의 부모라면 누군들 비통하지 않을까마는 어찌 나처럼 후회하면서 슬퍼함과 같겠느냐.(82쪽)” 슬픔이 지극함에도 불구하고 심의당 김씨는 “어쩔 수 없구나! 세월은 지나가고 이승과 저승의 길은 다르니(…) 아아, 슬프다. 운명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오직 편안하게 거처하기를….”이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슬픈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다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과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드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을 꽃피우게 했던 송강 정철은 남다른 면모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기축옥사에서 많은 동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송강 역시 정쟁에서 밀려 유배를 가야했습니다. 유배 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은 제문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네 배필을 가릴 때 애혹(愛惑)에 빠짐을 면치 못하여 병이 든 사람에게 출가시키어 두어 달 만에 네 남편이 죽으니 나이가 겨우 스물 둘이었다. 유약한 네가 이런 참혹한 변을 당하여 곡벽을 절차 없이 하며 죽기로 작정하고 먹지를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절을 하니 이 소식을 들은 나는 차마 가까이 할 수조차 없었다.(55쪽)” 송강이 애달파한 것은 사위가 될 사람의 건강을 미리 챙겨보지 못해 딸이 청상에 과부가 된 것이었고, 남편을 앞세운 딸이 먹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면서 천식을 얻어 병이 깊어져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모두 자신의 잘 못이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혹(愛惑)이라 함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 눈이 멀었다는 의미인 바, 딸의 결혼을 앞두고 젊은 여인과 사랑에 빠져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또한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남편들은 아내가 죽으면 울다가도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우스갯말이 있습니다. 이런 우스갯말을 주고받을 정도의 세태가 되었나 싶으면서도 옛날에는 어떠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물편지>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보면 대체로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긴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순조시절 지방관을 역임한 심노숭이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는 자는 세상에서 비웃는 까닭에 아내를 잃은 자는 풍속을 두려워하여 그 슬픔을 숨긴다.(심노숭 지음, 눈물이란 무엇인가 17쪽, 태학사, 2002년; http://blog.yes24.com/document/4585497)”라고 적은 것을 보면 조선 말기 이르러서야 남자의 눈물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모양입니다.
명종 때 사간을 지낸 권문해는 마흔아홉이 되던 해 후사도 없이 아내가 죽었습니다. 30년을 같이 산 부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칭송했습니다. “엄전한 모습과 아름다운 덕을 지녀 집안을 화평하게 하고, 부녀의 도리를 다하여, 짜증을 부리거나 시샘하는 것을 우리가 부부로 맺어진 이래 30년 간 나는 한 번도 보고 듣지 못하였소.(95쪽)” 며느리의 수의를 시어머니가 직접 지었다니 고부간의 사이도 아름다웠던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여든 노모가 생존해계서서 봉양은 물론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하는 권문해의 걱정은 오히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에둘러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라고 애달픈 심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그의 슬픔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권문해는 아내의 죽음 이후에 슬픔에 빠져 울면서 지내느라 일기마저도 쓸 겨를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앞서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남편이 있었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된 남자의 허리춤에 이가 서 말이라는 옛말처럼 혼자된 남편의 모습은 아무리 잘 보아주려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심노숭의 아내는 죽음을 앞두고 ‘공연히 지아비 잠깨우지 마세요. (…) 가군께 인사를 못 드리니 죽어가면서도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115쪽)’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아프면서 멀리 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는 심노숭이 아내 완산 이씨의 영전에 바친 제문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슬픔과 눈물에 대하여 천착한 심노숭은 무려 26제의 시와 23편의 문을 남겨 아내를 애도한 것도 공연한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심노숭은 파주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사도 하기 전에 아내가 죽음을 맞았던 모양입니다. 덩그렇게 큰 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길가는 나그네 같은 느낌이 들었던 심노숭은 “불교에 원업이란 말이 있다. 말하자면 인과라는 말인데, 당신은 낙토(樂土)로 갔는데, 나는 악도(惡道)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네(113쪽)”라고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만시에 함축적으로 담았던 김정희는 아내에 바치는 제문에도 절절한 마음을 담아냈습니다. “아아, 나는 강 앞에 있고 산과 바다가 뒤를 따랐으나 아직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낱 아내의 죽음에 놀라 가슴이 무너지고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 무슨 까닭인가. 아아, 대체로 사람마다 죽음이 있거늘 홀로 부인만 죽음이 없을 수 없으리오. 죽을 수 없는데 죽은 까닭에 죽어서 지극한 슬픔을 품게 되었을 것이고 기막힌 원한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차 품어내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공부자(孔夫子)의 마음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기에 지고보다도 더 심하고 산과 바다보다도 더 심함이 있는가 보다.(120-1221쪽)” 유배에 처해졌음에도 흔들림 없던 마음이 아내의 부음에는 황망해질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고,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마치고서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예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인륜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천붕지통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지극한 슬픔을 담은 글은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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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식에 관한 책이 나왔다. 문화사학자이자 작가로서 역사적 관련 저술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신정일씨의 눈물편지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책은 슬픔과 눈물 그리움으로 얼룩진 주옥같은 문장들 77편이 소중히 수록이 되어있다. 우리 조상들의 편지를 볼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손편지를 쓰는 일들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달 그리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하여 메일로 편지를 쓰게 되었으며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지인들과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손편지의 정성은 스피드하게 쓰여진 글들과는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는 우리 선조들의 손편지를 통해서 그들의 감정을 손쉽게 드러내려 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은 방대한 문헌들속에 나와있는 글들을 참고하였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내려갔다. 1장은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 2장은 아내와 남편을 여윈 슬픔, 3장은 형제자매를 잃은 슬픔, 그리고 마지막장인 4장은 벗과 스승을 잃는 슬픔에 관환 편지들이다. 그중에서도 허균에 관한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메이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현대사회사 각박해지고 힘들어졌다고 해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저달되는 가족들을 잃은 슬픔들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다고 생각이 된다. 허균의 부인 안동김씨는 첫아들을 낳은지 3일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임진왜란으로 피난다니느라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극히 사랑한 부인을 그리워하며 쓴 망처(亡妻)제문 이라는 글은 그의 슬픔을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이 든다.
많은 편지들을 읽어보면서 우리곁에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아픔은 견디기 힘든 일들이 아닌가 싶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가족 그리고 친구, 지인등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들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 할 것이다. 그 만큼 나를 좀더 알며 이해해주는 사람들인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한평생 해봤자 100년안팎이다. 그들에게 평소에 전하고 싶은 말들을 아낌없이 전하도록 노력해보자.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편지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보자.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책을 통해서 내 자신이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에게 평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금씩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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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직 바라기를 그대를 꿈속에서라도한 번씩 만났으면 싶네, 하지만 그대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났건만 이제까지 한 번도 내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네. 무정하여 그런가, 바람처럼 떠도는 영혼이 갈 곳을 몰라서 그런가? 아하! 지난 10년의 사랑이 한 순간인 것 같은데 슬픔은 한평생 동안 남아있을 것 같네. 기뻐하던 시기는 어찌 그리 짧고, 슬퍼해야 할 시간은 왜 이리도 길다는 말인가?-126
사랑하는 부모, 가족, 친구를 잃고 비통에 빠진 마음이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기면서 만나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에 오래 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믿을수 없을만큼 당황했고, 황망했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던 그 때, 그저 목놓아 크게 엉엉 울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이후,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에게 원망하고 투정하며 혼자 중얼거리던 시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진즉에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 그리고 추억과 그리움으로 한참을 앓았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나면 마치 곁에 계신 듯 말을 건네보곤한다. 아마도 듣고 계시겠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내려다 보고 계시겠지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긴 버릇이다. 함께 눈을 마주치지도 따스한 온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우리들의 가슴에 기억에서 함께 할거라 믿기에.
엄마와 같은 누이를 잃고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슬픔을 묘지명에 썼던 박지원, 아내의 부음을 듣고도 유배지에 있는 몸이라 달려갈 수 없었던 정철은 내세에 다시 부부로 바꾸어 태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제문을 지어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자식을 떠나보내고, 평생을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아내와 남편을 여위고, 한 배에서 난 형제자매, 벗과 스승을 잃고 말로 형언할 수 없었을 애통함과 괴로움, 간절한 그리움을 담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하고 소중했던 사람의 죽음 앞에 북받치는 설움과 쏟아지는 눈물을 토하듯 통곡하며 써내려간 글에서 우리는 살아남은 이들의 애끓는 마음과 가슴 절절한 그리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시대를 거슬러 위인들의 사사롭고도 애달픈 정과 사랑, 인간적인 모습들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죽음과 이별 뒤에 밀려오는 슬픔과 그리움, 회한에 관한 우리 선인들의 글에서 함께 겪은 동병상련의 슬픔과 눈물을 나누고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까맣게 깊어가는 긴~긴 겨울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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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것은 내 옆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단어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물며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곁을 떠난다면, 게다가 자신이 세상에 내어 놓은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인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떠나보내는 슬픔을 글로 적은 내용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저 제목만으로는 무슨 연애소설, 아니면 슬픈에 몸서리치는 한 사람의 수필정도일 것이라 착각한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에게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학자로 알려진 다산 정약용의 아들 잃은 심경을 적은 글을 시작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을 글로 적은 내용들이 약 20편정도 적혀있다. 과거 결혼하기 전에는 그래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경우는 부모가 덜 슬플 것이라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며 나이가 어리고 많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라는 것이 모든 부모에게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자식이 어느 날 곁을 영원히 떠났으니 그 슬픔이야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윤선도의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라는 글에서처럼 눈물이 마를 날이 있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효를 중시하는 조선시대였지만 부모의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이 자식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아내와 남편을 잃은 슬픔을 적은 글들이다. 특히 예전 역사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연을 읽고는 그 내용이 들어 있던 책을 사기도 했던 <원이엄마>라는 여인의 <4백년을 두고도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사연과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글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글들이다. 그리고 나의 남편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들이다. 다음으로 형제자매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글, 친구와 스승을 잃은 슬픔을 적은 글들이 소개되어 있다.
슬플때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즐거운 음악을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슬플 때 이런 슬픔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뛰어난 글들을 읽으면서 눈물을 쏟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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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쉽게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많은 남자들이 참으려 참으려 하면서도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 그런걸까? 당연히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서럽고 안타깝고 자신의 목숨을 대신할수만 있었으면 더 좋았을거라 한탄하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슬픈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오고 있다. 이런 모습들을 말로하기보다 글로 마음을 다스리면서 억누르는 가운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는 내용이다. 정말 그 편지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낄수가 있고 입장이 바뀌어 본다면 어떠할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이 어떻게 할수도 없는 상황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죽는것보다 더 큰 아픔일수가 있을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도 편지를 통해서 다시 전해들을수가 있는데 유배지에서 이런 비보를 전해듣고 가슴을 치는 내용이 책에 실려있어서 그런지 함께 안타까워해 보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지원이나 정조 그리고 이순신과 허균등의 편지도 함께 읽을수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가족과 벗 그리고 스승을 잃고 글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슬픔이 너무 과하여서 눈물을 참아도 참아도 끝이 없이 흘러내리는 모습들 상상해 보면 정말 뭉클해지는 것을 느낀다. 너무 아팠으리라 생각이 된다. 나의 가족과 나와 가장 친한 벗들과 이웃들 그리고 부모형제까지 모두가 함께 있어야 제대로 세상을 살아갈수 있을것이다. 누구하나 기약업이 예측하기 어렵게 그렇게 한순간에 곁을 떠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속이 탈것인지 알수가 있다. 이렇게 편지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다독여보게 되는 책이었다. 그리고 함께 있는 가까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이라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인내하고 조금이라도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줄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게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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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토하듯 통곡하며 쓴 슬픔과 눈물, 그리움으로 얼룩진 주옥같은 문장' '죽음을 통해 풀어낸 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감정이 무뎌지고 슬픈 영화를 봐도 시큰둥해지는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어색하다.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차가워진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어디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만나게 된 <눈물 편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앞에 두고 처절하게 슬퍼했던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슬픈 글, 편지 등이 담긴 책이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눈물 한 번 흘려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표 성공이다.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 아내와 남편을 여윈 슬픔, 형제자매를 잃은 슬픔, 벗과 스승을 잃은 슬픔 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이 책에 담긴 사연 하나하나가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내가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에 첫 장에 나오는 '눈물은 수저에 흘러내리고'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은 눈물콧물을 다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된 입장에서 아이를 먼저 보내는 슬픔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아닐까.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뚝뚝 떨어져내릴만큼 슬프고 애절하다. 아이들이 조금 다치거나 아파해도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데 아이를 떠나보낸 슬픔이야 오죽할까. 게다가 귀양을 가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지도 못하고 소식으로만 전해들은 이도 한둘이 아니니 그 슬픔이 얼마나 컷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40대가 넘어가면 하나둘씩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간다고 하던데... 나는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내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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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편지 : 죽음을 통해 풀어낸 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
'나는 이 수 일 동안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백치처럼 인간 만사를 모두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형의 유골을 받들고 돌아가 선영에 장사를 지낸 후 다시는 벼슬을 구하지 아니하고 여행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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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잃고 비어져 나오는 슬픔과 절제된 슬픔 사이에서 어금니를 물로 흐느껴야 했던 선인들의 슬픔과 눈물, 그리움으로 얼룩진 주옥같은 문장..
책을 읽는 동안, 책을 다 읽고나서도 먹먹한 아픔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가 없다. 소중한 사람이 옆에 있을때는 정작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나면 비로소 그 소중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들일 경우 더 그런것 같은데 이 책<눈물편지>에서는 옛 성인들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죽음 그리고 그 뒤에 밀려오는 슬픔을 글로 쓴 것들을 모은 책이다. 글마다 시대적 배경을 소개하고 있어 역사의 배경을 함께 알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앞에 무너져 내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대동운부군옥>이란 백과사전을 편찬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권문해는 30년을 살다가 먼저 간 아내 현풍 곽씨를 잃은 슬픔을, 어린 시절 일찍 부모를 잃은 그에게 있어 큰누이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죽고 만다 그 슬픔이 어땠을깨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겠다. 아들 면의 죽음에 목 놓아 통곡하는 이순신, 아내의 죽음에 대해 내세에는 꼭 바꾸어 태어나 홀로 살아남은 슬픔을 알게 하겠다는 추사 김정희,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 형 약전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정약용,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날의 아픔을 고스란히 글로 담아낸 혜경궁 홍씨,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규보 등 모두 77편의 글들을 통해 소중한 가족을 잃고 아파하며 절망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평소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던 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낸다는 것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더해져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일 텐데 그래서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떠나 보내고 다음 생에는 아내에게 홀로남는 슬픔을 알게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많이 표현하고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들이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지는 않을테니 떠나고 아무리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옆에 있을때 감사함을 고마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서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끝도 없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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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답다는 말을 <눈물 편지>라는 책은 잘 표현하고 있다. 누군가를 잃은 속상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이토록 구구절절 눈물로 편지를 썼다니 놀라울 뿐이다. 여기에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그 중심에 있는데 배우자. 친구, 딸의 죽음 등으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는 글이 눈에 띄는데 이는 그런 기억이 있는 분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나마 이 편지들을 읽다보면 그 아련하고 절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문화사학자답게 역사속 인물들을 면밀히 조사하여 매우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미 국사 등을 공부하면서 자주 접했던 인물이 있기도 하고, 처음 대하는 인물들도 있지만 눈물로 자신들의 아픔을 정리했다는 것에 공통점을 이루고 있다. 총 77편의 문장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특히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 많은 공감이 갔다. 당장 내 곁에서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간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애잔함이 스며들기도 한다. 죽은자들은 떠나가고 말이 없지만 산 사람에게는 텅빈 가슴과 빈 자리만이 남아 있기에 이런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랬던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구성을 본다면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 아내와 남편을 여윈 슬픔, 형제자매를 잃을 슬픔, 벗과 스승을 잃은 슬픔으로 각 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비록 슬프지만 그 속에는 애틋함과 그리움, 사랑이 있어 아름답게 승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픔은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후세에 전해져 내려옴으로 인해 그 시대의 사건과 인물들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지금 내 곁에 소중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더욱 사랑을 베풀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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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서 알아 더 슬픈 참척(慘慽), 고분지통(敲盆之痛), 할반지통(割半之痛), 백아절현(伯牙絶絃) 모두 죽음과 관련된 말이다. 아이들, 부모와 배우자, 형제자매 그리고 벗과 스승 모두 자신과 지극히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이 말들 속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인간의 감정은 슬픔이다. 슬픔이 지극하면 동반하는 것이 눈물이기에 눈물은 자연스러운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슬픔의 눈물은 가슴 깊숙이 쌓인 고통이 더 이상 담기지 못하고 흘러넘치는 것이리라.
논리적으로야 죽음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생과 사를 가름하는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 결 같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현대사회에 들어 이런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조금 달라져 옛 선인들의 그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우리들의 선조들은 이런 지극히 슬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슬픈 감정을 표현한 글을 남겼다.
이 책 죽음을 통해 풀어낸 더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주제로 한‘눈물편지’는 ‘열하일기’, ‘지봉유설’, ‘난설헌집’, ‘여유당전서’ 등 수많은 문헌자료들 속에 남아 있는 글을 통해 죽음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게 하는지를 살펴 인간의 상처와 슬픔 그리고 그리움까지 읽어낸다. 정약용, 윤선도, 강희맹, 이항복, 허난설헌, 정철, 이순신, 송시열, 이규보, 허균, 이덕무, 정약용, 정조, 김정희, 기대승, 박지원, 홍대용, 김시습, 윤휴, 최익현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선조들의 솔직한 속내가 담긴 글들 속에 그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살필 수 있다.
“내가 다행히 눈이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내가 다행히 귀가 있다 고해도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내가 다행히 입이 있다고 해도 누구와 함께 맛을 볼 것이며, 내가 다행히 코가 있다고 해도 누구와 함께 냄새를 맡을 것이며, 내가 다행히 마음을 지녔다고 해도 장차 누구와 더불어 나의 지혜와 깨달음을 함께 나눌 수 있단 말인가?”(박지원, 벗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 중에서)
죽음은 한 생명이 맞이하는 삶의 마지막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간절함을 남긴다. 쏟아지는 북받치는 설움과 눈물, 피를 토하듯 한 통곡이 살아남은 자의 마음에 남아 살아생전 죽은 자와 함께 한 시간들이 오롯하게 떠오른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슬픔을 더 슬프게 안타까움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 옛 문헌 속에서 고른 77편의 글마다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소개하고 글쓴이들의 간략한 약력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
공기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지만 공기의 존재를 시시때때로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죽음 역시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맞이해야한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그러는 사이 우리들은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살아가다 결국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고서야 알게 된다. 너무 늦게 알아 어쩌지도 못하고 고통스런 눈물만 흘려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인간이 가지는 존재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