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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야만 하는가 아니면 재미있었으니 그걸로 된 셈이라고 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아무런 계획도, 의무감이나 책임감도 없던 시절 되는 대로 읽어 내려갔던 책이 머릿속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다던 어느 소설가의 말에 동의한다. 어쩐지 성인이 되기 전에 읽은 책을 떠올리면 파편적인 장면이긴 하나, 각각의 장면에서 강렬한 이미지가 동시에 구현된다. 잘 몰랐기에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읽을 수 있었고, 때문에 단 한 권의 책을 고르는 데 나의 안목과 결단력을 총동원해야 했다. 워낙 기억력이 형편없는 탓에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자세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흡수하기 바빴던 그 시절 독서 습관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 나름대로 형성한 독서 습관이 좋으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 확신하기 어렵다. 말머리가 이토록 구구절절한 이유는 노희준 『넘버』를 읽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감상’을 밝히자면 읽는 내내 속이 안 좋았고 머리가 아팠다. 속이 안 좋았던 이유는 살인 장면을 정밀하게 묘사해서 그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고, 머리가 아팠던 이유는 작품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희준은 자신이 쓴 글을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길 바랐던 걸까. 습작을 해본 사람으로서 작품을 완성하는 내내 독자를 의식한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쓰는 사람이 만족하면 그뿐이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 또한 없을 것이다. 이런 점까지 감안하니 더욱 머리가 아파온다. 내 생각에, 그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의내리기란 여전히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글을 읽을 때면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장편은 호흡이 길기 때문에 독자가 읽다가 쉽게 지쳐서는 안 된다. 여러 번 나눠 읽더라도 덮었던 책을 다시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희준의 이번 장편은 그런 기대에 살짝 못 미친 점이 아쉽다. 소설 속 화자는 일란성 쌍둥이이다. 둘 중 한 명인 ‘김대현’에게 예기치 못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면서 자신에게 쌍둥이 존재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쌍둥이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나는 여기서부터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독자를 헷갈리게 만들 의도였던 건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설사 그럴 의도였다 하더라도 내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노희준의 『넘버』는 덜 삶은 달걀 같다. 원형대로 익은 흰자 덩어리를 보고 다 익었다고 생각해서 반 토막 냈다가 하나도 익지 않은 노른자를 발견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도 단순히 ‘추리소설’이라는 측면으로 접근했다가는 가중되는 혼란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 물론 ‘추리’라는 단어의 사용 폭을 넓힌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넘버』는 연쇄살인사건과 그 사건의 주동 인물을 파헤치는 식의 추리라기보다, ‘나’는 누구이고 동시에 ‘너’는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 존재증명의 압박과 위협 속에서 ‘기억’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접근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고 화자는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분열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독자가 느끼는 혼란도 극에 달하는데 노희준은 끝내 그 모든 것을 명확하게 밝혀주지 않고 마무리를 짓는다. 마지막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작품 내용이 좋았다거나 기억에 남는다고 할 수 없지만 몇몇 부분에서 괜찮은 서술이 발견되었다. 그것들을 모아서 쭉 정리해보니 비로소 그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을 싣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 해야겠다. 놈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건, 그와 그녀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건, 당사자가 아니면 지울 수도 되살릴 수도 없는 기억이 세상에는 있게 마련이었다. 그가 놈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그의 기억도 같이 죽는 거였다. 그 기억이 타인의 소유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 사실이 그를 한없이 의기양양하게 만들었다. (191) 모두 사실이냐고? 글쎄. 세상에 사실이라는 게 있을까? 우리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허구가 아닐까? 세상에는 두 가지 거짓말이 있을 뿐이지. 훌륭한 거짓말과, 조잡한 거짓말.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거짓말과,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거짓말. (209) 누구나 상상에 갇혀 살지. 현실은 상상 밖에 있는 게 아니야. 상상한 만큼만 보면서 살아가는 거지. 자신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불행한 게 인간이다. (215) ―노희준, 『넘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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