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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프롤로그, 저자의 첫마디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입 밖으로 선뜻 나오는 말은 많지 않다.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대답밖에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사물이나 음식처럼 확연하게 취향이 나뉘는 것들에 한해서는 시원스런 선택과 답변을 할 수 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모호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자신도 자신을 다 알 수 없다 말하는 것처럼^^ 다만 이동근 작가처럼 착한 사람은 아니나 솔직한 사람이라는 말에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나도 그렇다. 착하진 않지만 내 삶에,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 솔직함이 나 혹은 타인에게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으로 전해질 수도 있지만 자신이 솔직해지지 않는데 어떻게 타인이 나에게 솔직해지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않나. 사람들의 관계란 하나를 포기하면 하나를 얻고 반대로 하나를 얻으면 포기해야 하는 게 있는 법이다. 당신이 진실하게 다가온다면 나 역시 진실할 것이고 내가 진실하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당신 역시 그럴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런데도 어긋났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은 진실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너'의 기록에서 '너'는 인칭 대명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 사물, 풍경. 이 모든 것을 통칭하는 하나의 포괄적 개념이다. 타인에게는 어떤 한 치의 틈도 허용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나를 위로해줄 '대상'을 찾는 여행을 한다. 두 발로 직접 땅을 밟고 하늘을 담고 자연의 풍광을 몸으로 체화시키는 진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나의 내면 깊은 곳으로 떠나는 고독한 심연으로의 여행일 수도 있다. 사람은 외로울 때, 그것을 희석해줄 것이 간절하다. 책, 영화, 친구(사람), 자연, 이 모든 것으로부터 추출해낸 처방약으로 외로움이라는 마음의 빈곤상태가 채워지기를 바라고는 한다. 알고 보면 내 주변의 대부분이 나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 기준과 내 관점으로 맞춰져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롭.다. 나를 중심으로 한 내 세계에서 죽는 날까지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이의 생각과 사상과 관심에서 촉발된 '소통'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사람과 풍경의 만남이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194p
잊었던 추억을 찾아가는 여행. 이동근이 떠나는 여행은, 이름 있는 멋진 장소가 아니라 하루하루 발로 뛰며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흔적이 깃든 공간으로의 여행이다. 시장 골목, 여관 골목, 상가 골목, 주택가 골목...... 버스 뒷자리.... 세상에는 참 다양한 여행가가 있다. 지구별 여행자, 사막 여행자, 그리고 골목 여행자. 이동근은 골목 여행자다. 여행은 멀리 떠나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자 이동근 역시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를 기점으로 흐르고 있는 무수한 찰나의 의미가 선명하게 재생될 수 있는 공간으로의 여행이라면 그 또한 한 편의 영화고 드라마인 나의 '여행'이다.
'나'에게서 '너'로 이행되며 다채로운 의미로의 순환이 가능하듯 여행의 의미도, 정의도 내리지 않는 길을 잃으며 떠나는 여행을 한다 말하는 그다. 목적지가 없다. 길 위에 섰는데 목적지가 없다. 무작정 걷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게 걷다 걷다 당도한 곳이 초라하고 낡았으나 온기가 있고 '정'이 살아있는 '골목'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곳, 그러나 어린 시절 내가, 저녁노을이 산너머에 걸리도록, 엄마의 '밥 먹자' 소리가 들릴 때까지 동네 아이들과 뛰고 구르며 휘젓고 다녔던 유년 시절의 놀이터이자 친구인 골목. 골목 안에 사람이 속해 있으므로 소중한 공간이자 안식처라 말하는 그에게 필요한 건 소형 디지털카메라 하나와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두 발이면 충분하다. 너무도 소탈하고 가난한 여행자(사실, 여행자 대부분이 그렇지만)라 그의 궤적을 따라가는 시간은 일상과도 같았다. 누군가의 여행을 엿보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 친구 같은 사람의 일상을 엿보는 시간이었기에 편안하기도 했다.
골목 하니까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그 시절 친구들과 사람 간의 정이다. 나는 뭔가를 잘 흘린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잘 흘리고 물건도 잘 잃어버리고 어디에 뒀는지 잘 잊어버리며 의외로 잔정도 많은 편이다. 정이라는 것도 흘리는 것의 범주로 넣자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한 번도 싫었던 적은 없다. 조금 더 현실적이 되라는 핀잔을 듣고 사람에게서 기인하는 상처에 아파했던 날도 너무 많았지만 나는 사람 대 사람 간의 '정'을 믿는 사람으로 남는 게 좋았다. 나 또한 내 삶에 잠깐이나마 머무르다 갔던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겪은 고통은 이유 없는 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유 있는 고통이었다.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던 때가 분명 있었다. 학창시절이 특히 그랬는데, 그때는 무조건 겉돌기만 하는 나였다. 그래서 다가오는 많은 친구들에게 뒷모습만 보여 주곤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앞모습이 아닌 내 뒷모습만을 봐야 했던 그시절 친구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언젠가 타임머신이 발명돼서 정말 돌아가고 싶은 때를 묻는다면 나는 딱 한 번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따뜻하게 내 곁을 내어주고 싶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었어. 시간을 느리게 쓰지 못했던 것은 바로 나였어. 바쁘다고 여유 없다고 피곤하다고 생각만 했지, 하루에 한 시간조차 나를 위해 온전히 쓰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지겨웠던 거고 따분했던 거고 우울해진 거지. 나의 청춘은 십대도 아니고, 이십대도 아니었어.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만 쓸 수 있는 삼십대로 접어든 이 순간이 바로 청춘이야. 나의 청춘을 멋있게 소비해야지.-188p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찾아온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골목으로 떠났다 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잃어버렸던, 잊고 있었던 삶의 소실점을 하나하나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의 여행과 함께하며, 주어졌기에 잊고 있었던 내 삶의 소중함과 지난 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는 시간을 갖느라 그와의 만남이 조금은 더디게 흘러가기도 했다. 골목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사람들의 소통도 좋았지만 더는 외롭지 않을 만큼의 지독한 외로움이 가장 좋았다고 말하는 이 남자는 마음이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해준 것보다 해주지 못한 소소한 것들을 기억하며 다음 만남을 대비하는 따뜻한 사람, 그의 골목 여행이 1,825일, 5년을 넘어 3,650일, 10년을 향할 때까지 계속되기를 마음으로 바란다.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작가와 공통점이 꽤 있다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즈음, 그건 확신으로 굳어졌다. 여전히 어른이라 말하지 않는 사람, 프라모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무엇보다 혼자 있기를 즐기는 사람. 나도 그렇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공상에 잠기는 때이다. 물론 책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책 말미에 그가 추천한 음악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데, 내가 즐겨듣는 가수의 음악이 많아서 무척 반가웠다. 지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그가 추천하기도 한 'Not alone'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동네, 학교 담벼락...
휴일 오후, 이 책을 보고 있다가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대충 후드를 덮어쓰고 귀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이어폰을 꽂고 『너 1,825일의 기록』을 옆구리에 끼고 대문을 열고 무작정 나섰다. 평소에는 출퇴근 시간에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이 스쳐 가는 공간이었을 뿐인 나의 동네를 아주 천.천.히. 눈에 담고 두 발로 내디뎠다. 맑은 공기도 마음껏 들이마시고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좋아하는 하늘도 올려다보고, 그러는 새에 당도한 곳은 중학교였다. 원래는 남중이었지만 아랫동네에 있던 내가 졸업한 여중과 통합되면서 공학으로 바뀐 곳이다. 졸업했던 그때 그곳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 후배들이 다니는 곳. 이곳까지 발걸음이 이끌린 건 벽화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저자 이동근의 골목 여행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각 동네 골목의 벽화들을 보며 우리 동네 벽화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벽화가 그려진 건 내가 20대 초반 때지 않았나 싶다. 종종걸음으로 학교 골목을 지나치는데 며칠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형형색색의 '어린 왕자' 벽화를 보며 시선이 한 번 더 머물렀던...기억.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오늘(2013.2.24)에서야 처음보다는 많이 바래고 여기저기 금이 가있는 벽화를 다시 마주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대학생들과 중학교 학생들이 함께 그렸다고 들었던 것도 같다. 비상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것 같아,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아무도 오가지 않던 그곳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우리 동네, 너무 좋구나.. 하면서.
당신은 어떤 풍경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자신을 위로해 줄 풍경을 찾았을까? -47p 나를 위로해준 풍경은 '하늘'이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 언젠가부터 가을 하늘이 유난히 좋아졌다. 그 풍경 속에 그리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 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가을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가을 하늘이 참으로 그립다. 오늘의 하늘은 겨울 하늘답지 않게 유난히 푸르렀다. 봄이 오고 있다는 반가운 손짓 같기도 하다. 동네 골목을 느릿느릿 걷고, 학교를 휘~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고개가 아플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쩌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말하면서 사실은 돌아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내 추억이 깃들어 있던 곳, 내 지난 시간이 잠들어 있는 곳, 나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 사물, 사람들로의 회귀, 오늘 난 그렇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내 모든 것, '너'에게로 잠시나마 회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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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쌓인 먼지, 따스하게 흐르는 시간의 조각들, 그리움 속의 그리움, 그 그리움 안에 있는 또 다른 그리움. 그대로여서 반갑고,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마운 골목
지역 민방에서 [포토 에세이-골목] 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카메라 하나 어깨에 둘러맨 작가가 유난히 골목이 많은 우리 지역의 곳곳을 누비며 사진도 찍고, 그 곳의 주민들과 만나 그 지역의 유래와 사는 형편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깨방정 웃음소리 넘치는 예능 프로그램도 아니고,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난 가끔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늦은 밤 시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 속에는 어릴 적 나의 고향도 등장하였고, 가끔씩 찾는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나왔으며, 수정동 산복도로도 등장하였다. 유난히 골목이 많은, 근현대사의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산의 골목골목을 이 책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저는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솔직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프라모델을 좋아하고, 혼자 심야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 걷기를 좋아하고, 한적한 카페 2층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당신은 여전히 ‘어른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당신과 나의 닮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교실 뒤 게시판에 아이들과 나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붙여 놓았다. 나의 사진 메모엔, ‘어른 아이 선생님’ 이라고 매직으로 쓰여졌다. 당신의 발걸음을 따라 굽이굽이 골목길을 돌아선다. 이 길을 돌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내게는 익숙한 금이 간 벽면의 유치한 낙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 모녀와 외부인에게 도무지 경계심도 보이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뒤따르는 강아지 한 마리. 그리고.. 학교 간 손자가 이제나 오려나 기다리는 할머니의 주름진 이마가 있다. 허름한 일바지에 십 수 년은 입었을 듯 한 하얀 카디건, 그리고 고무신으로 기억되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이 골목 어귀를 돌아서면 그 곳에.. 반드시 있다. 그리운 나의 할머니.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를 뒤로 하고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그 바다를 오랜 시간 가로지르는 영도다리. 영도다리는 갖가지 사연과 눈물이 넘쳐흐른 시대의 상징이다. 시대가 바뀌고 영도다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이 사라져 간다. 기억에서 잊혀 가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영도다리는 피난민의 상징이었다. 그 곳은 만남과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그 곳에서 흘린 눈물은 고스란히 부산 바다의 한 점을 이루었다. 아, 이 책에서 보여주는 풍광이 부산만은 아니다. 북촌 한옥거리도 있고, 전국 곳곳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골목길을 그의 조리개는 담아내고 있다. 수줍은 듯 그의 젖은 감성과 함께.. 다만,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내 눈이 고정되는 사진들이 부산의 골목길이니 어찌하랴..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은 비록 불편한 여행일지라도 그 불편함이 당신과 나만의 추억이 된다는 것을 이동근, 그가 찾아낸 1825일의 기록. 그 지난한 날들의 기억을 단 몇 시간 동안 쫓아간다는 것은 무리이며, 배신이다. 나는 이 겨울, 이 책을 들고 유년 시절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골목길을 돌아다닐 것이다. 아마도 독자가 가장 원하는 독서는 발로 걷는 독서일 것이기에.. 단 3일의 기록이 될지언정, 한 손엔 그의 책을, 한 손엔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길을 헤맬 요량이다. 지금, 당신도 함께..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 매고 길 위로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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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에는 아직도 자라지 못한 '내'가 머물고 있는듯 보입니다. 어렴풋이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 말이지요. 나의 기억과 나의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인지 문득 문득 작은 편린들이 하나의 큰 공허함과 간절함으로 범벅되어 버렸어요. 이 한 권의 에세이로 인해서. 유난히 '낡은' 또는 '오래된' 그 무엇과도 잘 어울립니다. 호화스러움이 아닌, 감성으로 젖어버린 색감의 사진들이 아니라 꾸밈이 없으니깐, 있는 그대로 그 곳에 한 발자국씩 걸어가는 그가 보입니다. 그 낡은 돌계단을 지나, 매끈한 포장된 지면이 아니라, 울퉁 불퉁 한발 한발 딛기도 힘겨워 보이는 그 좁은 골목에서 그가 돌아 보네요.
유난히 그는 '그리움'과 '추억' 그리고 '소통'을 원하고 있어요. 현실에서 재촉하듯 고개를 슬며시 들어 한곳을 바라 볼수 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흘러가는 '지금'의 건조해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는 어쩌면 소소했던 그날들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그러해요. 현실에 물들지 못하고, 자꾸 맴돌고 겉돌며 치기어린 그 날들로 스며들어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지니까요.오래전 그러니까 각박한 세상속에 스며들지 않았던 그날, 부지런히 끄적이지 못한 채 결국 채워지지 않은 오래된 일기장에서는 지나간 토막의 기억이 희미하게 번진 짓눌림으로 뜨문뜨문 적혀 있을 뿐 공허하게 백지로 남은 수많은 날들의 나는 어떠한 하루를 보냈을지, 채우지 못했던 수많은 그날의 '내'가 문득 궁금해 집니다.
1825일동안 서성였던 수많은 골목 사이 사이에서 그는 오롯이 혼자의 여행을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묻어 버립니다. 실컷 외로워하고 실컷 아파하고 실컷 행복해 하라며 그는 우리에게 , 외로움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도 해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때로는 사람과의 소통으로 치유하길 바랍니다. 내 여행은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며,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본 것들을 당신이 본다고 하여,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도 없다. 나에겐 의미인데 당신에겐 하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것들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여유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의 여행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163
그가 찍은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자꾸 그곳에 서 있는 그가 보이는듯 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와 함께 골목 골목의 사람 냄새 나는 그 곳을 지그시 한발 한발 내 발자국에 새기고 싶어져요. 1825일 동안 79곳의 관광지 그리고 어딘지도 알수없을 정도로 오래된 골목들 속을 거닐며 그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요. 우연히 마주 한 어린 아이들의 천진한 미소에서, 나이 지긋한 분들의 따스한 손길에서 그는 계속 자신의 노트에 순간의 감정과 느낌과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어렴풋이 떠올랐던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써 내려갑니다. 그는 말해요.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 말이에요. 누구나가 외로우니까, 나만 그러한건 아니라고,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진솔함을 느낍니다. 미사여구로 뒤범벅된 텍스트가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그러니까 '너'에게 전달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말입니다.내가 당신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 보며, 당신의 이야기에 진심을 담아 들어 줄수 없으니 그저 안타깝고 무력하다. 내가 그대에게 보여 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은 진심이 담긴 나의 마음 한 가지다. -20
저는 이렇게 단촐한 사진과 꾸밈없는 텍스트로 가득 찬 <너, 1825일의 기록>이란 에세이가 꽤나 마음에 듭니다. 아마 나에겐 '용기' 이겠지요 . 아니면 '공감' 이었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희망'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이 에세이를 읽어 내려감에 있어 순간 순간 느꼈던 그 때의 감정과 감성들이 말입니다. 말하지 못한 사연 한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는지요.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는지요.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고, 견뎌 보라고 쉽게 말을 건넬 수도 없습니다. 좋은 말로 위로할 필요도 없고, 이해한다고 안아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건 가만히 들어 줄 누군가일지도 모르니까요.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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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라는 제목이 끌려서 읽게된 책. 사진과 감성 돋는 글들로 이루어진 여행에세이다. 음...외로울 때 읽었다면 참 좋았다고 느꼈을 만한 책이다. <너> 는 저자 이동근 사진작가가 국내 여행을 다니며 찍은 골목길 사진들과 그리운 모습들을 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마지막에 적혀있는 저자의 추천곡들을 한 곡, 한 곡 듣고 있다. (전자책으로 이 음악들이 챕터마다 자동으로 흘러나왔다면 참 좋았을텐데...) 음악은 여행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다.
연애시절 아내를 부르던 호칭은 "당신" 이다. "당신" 이라는 단어는 "여보, 당신" 일 때는 사랑스런 호칭이지만, "이봐, 당신!" 이 되면 반말로 부르는 기분나쁜 호칭이 된다. 바로 "언제 봤다고 당신이야?" 라는 답변이 돌아올만한...
아무튼 "당신" 이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에 골목길들이 참 많구나, 그 골목길에 그림들이 참 많구나 생각했다. 난 어린시절 절반은 주공 아파트 단지에서 또 절반은 골목길 주택단지에서 보냈다. 아파트에 살다가 처음 주택으로 이사왔을 때 미로같았던 골목 골목들이 떠오른다. 친구집에 갔다가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한참을 헤매이기도 했고.(절대 내가 멍청해서는 아님.) 사실 내겐 골목길보다 아파트가 더 아련한 추억의 동네이다. 그렇게 각자 자신만의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책을 덮으면서, 여행에세이라는 장르는 누가 시작했던 것일까? 문득 궁금증이 든다. <너 1825일의 기록>은 겨울여행에 어울리는 책이다.
*주의* 감성이 매우 많은 책. 남자독자는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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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1,825일간 여행을 가록한 에세이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익숙한 그래서 질리지 않는 그런 느낌을 골목에서 찾아 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어느 골목길 빨간색 벽돌의 담길을 거닐면 기억에서 사라졌던 어릴적 동네가 떠오릅니다.
매 페이지마다 사진이 듬뿍 담겨있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큽니다. 과거의 흔적을 느껴보고 싶으면 책장에서 이책을 집어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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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여행에세이"
1825일... 5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저자가 보고 느낀것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젊고 화려해야 할 시절에 무엇을 찾기위해 그토록 긴 여정을 선택한 것일까? 저자는 '착한사람이 아니라 솔직한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수식어를 찾았다고 말한다.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표지부터 군더더기 없이 참 깔끔하다.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도 마음에 든다. 오랜시간 저자가 가슴에 담아두었을 사색과 이야기들... 그리고 어디에선가 본듯한 정겨운 사진들... 잊고지냈던 내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언제든 꺼내보며 웃음짓는 이야기부터 잊고 싶어서 기억 저 깊은곳에 쑤셔박아 두었던 옛이야기 그리고 한번쯤 사색에 잠기며 곱씹어 보았던 이야기까지... 그의 사진과 이야기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한번씩 꺼내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79개의 이야기와 그보다 더 많은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언가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아련해지기도 한다. 추운 한파가 아닌 나에 대한 무관심으로 꽁꽁 얼어버린 머리를 녹여줄 수 있는 따뜻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인 것 같다.
사진과 사색이 함께하는 여행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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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친구 여행사진을 본 적이 있다. 외국으로 간 모양이었는데 기념사진을 찍으려고하는 찰라 외국인 남자 세명이 무작정 같이 찍자고 하면서 해괴하거나 대담한 포즈를 취하더니 사진을 찍기가 무섭게 사라졌다고 했다. 사진을 보거나 보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낯선 동양인 여자사이에서 사진을 찍는 것의 의미가 무얼까 생각해본다.
친구도 그리고 친구와 같이 여행을 떠났던 친구의 친구도 상기된 표정이었고 얼떨결에 같이 찍은 외국인의 표정은 말할것도 없었다. 여행이 주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기대감일까? 아니면 낯선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대담함일까? 어쨌든 여행을 가면 힘들어서 발에 땀이 차도 웃음이 나온다고 하니 정말 사진에 모두 그런 표정이었다.
그 사진을 보기전까지는 나는 나의 여행사진만 재미있는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의 그리고 갑자기 끼어든 외국남자들의 표정을 보니 꽤 재미있었다. 그 당시의 흥분됨이 사진 한장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책도 그때의 친구 사진을 본 느낌이다. 여행으로 1825일을 보냈던 흔적의 사진과 단상이 담겨있다. 다만 약간 차이점은 이 책은 설레임 흥분됨보다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주변의 낡고 오래된 공간을 곱씹어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런 여행도 멋진 것 같다. 누군가의 일상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생각해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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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히 여행서적, 여행에세이의 천국이라 할 만 하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여행서적은 해외와 국내여행을 막론하고 그 다양함과 개성을 뽐내고 있다. 깨끗한 순백의 표지에 깔끔한 캘리그라피, 화려한 여행서적들 사이에 이 책 <너 1825일의 기록>은 지나치게 소박하여 오히려 눈에 띈다. 여타의 여행 서적을 펼치면 '우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나?', '아니, 내가 사는 곳이 이렇게 멋있었단말야?'할만큼 멋지고 화려한 사진이 빼곡한데, 이 책은 표지의 소박함 만큼이나 수수한 사진들로 가득하다. 어지럽게 얽힌 전신주의 전선, 달동네의 초라한 골목, 곧 철거될 것 같은 다세대 주택, 재래시장 골목,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싶은 판자촌... 처음 이 책을 가득 채운 사진들을 보며 '이런 사진들은 왜 찍었을까'했는데 사진들을 구경하다보니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작은 골목에 살았던 기억, 그 곳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일, 가족들과의 추억, 동네 헌책방에서의 추억 등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이 책이 꼭 나의 앨범같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한 장도 빼놓지 않고 담겨있는 풍부한 사진을 몇 번이나 들추어 본 후에야 글을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 지금껏 살아 온 이야기들이 조곤조곤 들려오는 것 같다. 아홉살 첫사랑 이야기, 게스트 하우스의 추억, 국수집 할머니와의 재회 등.. 소소하고 섬세한 이야기가 마치 여자친구와의 대화같이 편안하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머리가 아팠기에 내 머리에 휴식을 주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어보니 내 선택이 괜찮았던 것 같다.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온 것 같은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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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여행에세이! 이 책은 왠지 "끌림"의 느낌이 나서 더 좋았던 책이다. 우리나라 이곳저곳의 골목을 여행한 이야기인데.. 느낌이 색다른다. 보통과는 좀 다른.. 여행지로 쉽게 떠올리기 힘든 골목을 여행한 이야기라니..
사진 속 골목 모습과 담벼락들, 지금은 보기 힘든 간판들과 가게들의 사진을 보면서 옛날 정말 어렸을때 골목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생각이 떠올랐다. 행복했던 그 시절.. 미소가 절로 나오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고마운 책..
그때의 그 추억 속의 골목들이 지금은 많이 없어지기도 하고, 많이 변했다. 지금도 없어지거나 변하고 있는 골목들이 때때로 아쉽고 안타깝기도 하다. 좁은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인연과 그 속에 담겨있는 삶의 모습들이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서..
우리나라에 이런 모습들이 아직 남아있구나.. 골목의 모습이 이랬었구나.. 생각해보니 골목과 함께 했던 추억이 나에게도 있었구나..
추억 속에 빠져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없어지는 골목의 모습에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읽었던 에세이였다.
어떤 고민이든 당사자에겐 고민... 과연.. 나도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 했던가? 급급하게 마무리 지었던 일들이 떠올라 미안함이 불쑥 찾아들었다.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는 방법도 있구나.. 처음 알았다. 하지만 한두번 하고 말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아야한다. 그 한두번 만남으로 그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끔 내 삶을 돌아보기도 하게 된다. 이 책도 역시 내게 그런 시간을 안겨주었다.
나는 지금 바르게 가고 있는지.. 내가 내 삶에서 진정 원하는건 무엇인지..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해답을 찾게되겠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복잡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지 말아야지.. 최대한 뭐든 단순하게 생각해야지.. 잡념아 없어져라~
맞다.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제일 위로가 되는 건 어쩌면 그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옆에 있어준다는 것.. 그게 제일 그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헌책방.. 내가 참 좋아했던 장소 중 하나였다. 중,고등학교 때 진짜 거의 매일 가다시피했었더랬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책이 들어왔을까 싶어서..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많이 친해진 헌책방 아저씨에게 제목을 알려주고 책이 들어오면 얘기해달라고 부탁도 하며 열심히 책 삼매경에 빠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헌책방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게됐다. 헌책방을 보면 그때의 안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도 내 마음 한켠에선 헌책방의 묵혀있는 책냄새가 남아있다. 지금은 서점 구경을 하며 만족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발을 들여야지..
다양한 동네 골목의 모습들이 이런 느낌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추억을 여행한 느낌을 주었던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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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825일의 기록> 1825일이라면 근 5년여의 여행에세이라서 대단한 관찰력과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린 골목과 풍광들이 이 책속에 나타내어져 있습니다. 과거 어릴적 우리들은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금은 잊혀저버린 놀이를 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남습니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듯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삶의 목적이 잘살고 풍요롭게 사는게 제일이었고, 한방에서 모든식구들이 함께 자고 먹고 하다보니 가족의 소중함과 애틋함을 더 없이 느꼈습니다. 언젠가 갑자기 생각이나 그시절을 돌이켜보려 어릴적 자라고 놀았던 동네와 집을 찾으려 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변해버린 모습에 가슴 한켠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아스라함에 왠지 모르게 우울해져왔습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중급의 도시였고 동네여서 공장이 많았습니다. 특히 건전지공장과 통조림 공장에서 나오는 상표를 가지고 다양한 놀이를 했었고 통조림 캔으로 시도 때도 없이 불놀이를 했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이 남습니다. 요즘 담벼락은 세련되고 낙서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지만 그당시의 담벼락은 시멘트 블록과 돌가 흙으로 버무려서 만든 재료가 대부분이어서 욕설과 재미있는 낙서로 담벼락을 채워서 지저분함속에 낭만과 웃음이 절로 나오는 말도 안되는 글귀와 어설픈 그림들이 주된 테마이었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서정적인 글들과 사진들이 꼭 어릴적 내가 놀던 동네와 같아서 눈물이 맺히고 동화와도 같은 여행지의 선택에 대해 작가의 취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도시에서는 자취를 감추어버린 그림들이기에 이러한 곳들을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는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도시나 시골의 풍광들이기에 더욱 정답고 고맙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서울의 어느 동네 계단에 그려진 꽃그림과 천사의 모습을 한 날개를 어느 누가 소개를 해서 더욱 유명해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고 합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추억을 담아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음이 되고 나만의 공간이 침해되어 불편을 호소하고 나의 생활이 침해되는 것 같은 피해의식으로 사로잡힐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추억이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기에 모두가 공존하는 추억의 장소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연탄을 배달하는 차를 보면 지금도 있나싶지만 아직도 산동네와 골목어귀의 사람들은 기름가격과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기에 불편하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어느누가 갈수 있겠습니까? 추억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에 점점 없어지고 줄어드는 그러한 장소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