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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면 백석과 윤동주에서 시간이 멈춘 후 10년도 더 흘렀다. 그동안 시를 멀리하며 살기 위해 다른 생활서에만 빠져들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들었다. 부쩍 쌀쌀해진 어느 늦가을 밤 전선용이라는 시인의 시집을 펄럭펄럭 읽어본다. 시집에서 어딘가 짠내가 난다.. 중간쯤 읽다가 갑자기 누군인가 궁금해서 저자 약력 페이지를 열었다. 음.. 쉽사리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만만하지 않다는 느낌이 온다.
좀 더 시집을 읽어본다. 백지수표를 지나 막노동을 지나 감방을 지나 달동네까지 오자 도대체 이 사람 누구인가, 이 모든 시가 상상인지 현실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어진다. 약력으로는 알 수 없으니 요즘 독자답게 시인의 뒷조사를 인터넷으로 한다. '아.. 전부 사실이었어!' 나는 시집을 읽다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른다.
'별別이 빛나는' 이 시는 처음 구절에서 빵 터졌다. '나타샤를 태운 흰 당나귀는 길상사로 갔고 나는 백석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이 대목이 너무 웃겨서 심지어 다음 구절이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길상사와 백석역을 둘 다 알고 있지만 시인처럼 나타샤를 흰 당나귀에 태워보낼 생각까지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시인이 후기에서 자신은 '낯설게하기'가 현대 시창작의 시류가 되어 버린 요즘에는 과연 좋은 시를 만들어내는 창작법인지 고민한다고 썼다. 하지만 그런 시의 방법론에 대해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읽을 때는 '별이 빛나는'의 반짝거림 역시 시인만의 '낯설게하기'라는 문학적 기법인 것 같다. 나타샤, 그녀와 뗄 수 없는 흰 당나귀, 길상사, 백석. 우리는 이 단어를 다 알고 있지만 그게 합쳐져서 백석을 사람이 아닌 백석역으로 바꾸자 나와 그녀는 만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백석역에서 전철을 타야 하므로. 나는 때르르릉 울리는 전철음을 들르며 플랫폼에 서 있고, 그녀는 당나귀를 타고 또각또각 걸어서 길상사로 가야 하므로.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야 별이 그 반짝거리는 하늘의 별이 아니라 이별할 때의 別을 쓴 이유가 보인다.
시인은 가난하다. 시인=가난이 공식은 아닐지라도 전선용 시인은 가난하고 가난을 아는 것만은 확실하다. '최후의 주거지, 고시텔'을 보자. '솜이불 같은 몸을 압축했다.' 나는 이미 이 구절에서 가난의 향기를 맡는다. 종일 일해서 지친 몸은 솜이불 같다. 솜이불은 이제 극세사 이불에 밀려서 과거의 화석 같지만 덮어본 사람만이 안다. 무겁고 포근하게 눌러주는 맛이 있다. 그리고 한 번 눌리면 좀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다음 구절, '진공되지 않으면 우주미아가 될, 며칠 굶은 낙지가 다리를 접고 부럿으로 들어간다'. 나는 낙지잡이를 30년 동안 한 어느 장인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분이 하는 말이 낙지 다리는 다 같은 길이가 아니고 2개가 특히 길다고 한다. 그걸로 찔러보면서 적을 탐지하기도 하고 이동도 하고 여러 역할이 있다. 아무튼 낙지가 그 긴 두개의 다리를 접고 자신의 숨구멍 부럿 속에 숨어든다. 나는 고시텔 그 좁은 방안에 마치 낙지처럼 몸을 구겨서 숨어드는 한 사람을 본다. 마지막 절에 '인생 고시에 낙방한 꼴찌가 꽁무니를 뺄 때 들 것에 실려 나오는 별 가난해서 그을음 투성이다.' 그렇구나. 요즘 고시원에 고시생은 없다. 하지만 인생 고시에 낙방한 꼴찌들이 산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시인의 시는 처음에는 웃다가 나중에는 울게 된다.
'봄을 재건축하다'에서는 재개발 지구에 사는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들과 다를 수 없는 시인의 처지도 한 줄 적어넣는다. 저 높은 타워팰리스에서 사는 시인이 하루 재개발 지구에 놀러왔다가 썼다면 이런 시가 나왔을까? 이자만 내던 시인이 감방을 살면서 영치금에 붙는 이자를 보며 놀라는 구절에서는 웃픈 감정을 느낀다. 또한 '반성의 계절'에서는 일용직 노동자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등포에서 새벽 버스를 탄 적이 있다. 일생의 한 번이었다. 나는 놀러가느라 이른 새벽 버스를 탔으나, 대다수는 늙수그레한 50대 아저씨들로 누가봐도 영락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자꾸만 고개를 숙이게 하는 현실이 따뜻한 전철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노동자의 모습과 겹쳐진다. 시인의 시는 나 같이 시에서 오래 떠나있던 사람도 읽을 수 있다. 시는 어려운 것, 난해한 것, 읽는 사람만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하게 깨고 저 천상 타워팰리스에서 지상 고시텔까지 내려온 시집이다. 시는 남루한 현실을 담아도 아름답기만 하다. 왜 낡은 현실의 옷을 입어도 시는 낡아지지 않는지 신기한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