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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사람은 몸의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석은 죽음 연습 혹은 죽음 공부를 강조한다. 다석은 사망 가정일을 11년 전에 정해놓고 1년 전에 선언했다. 1955년 4월 26일에 자신이 1년 뒤 1956년 4월 26일 목요일에 죽는다고 YMCA 연경반 모임에서 선언하였다. 이 날은 44살로 요절한 김교신을 추모하는 뜻이 있다. 다석이 도반 김교신의 부음을 받은 날이 바로 4월 26일이다. 사망 가정일을 선언한 1955년 4월 26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다석일지]가 다석의 유일한 저서인데 우리말 시조가 1700수, 한시가 1300수로 모두 3천 수 정도가 된다. [다석일지]는 1955년 4월 26일부터 1975년 1월 1일까지 19년 동안의 기록이다.
다석은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 이른바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의 철학으로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종교의 핵심은 죽음이다. 죽는 연습이 철학이요 죽음을 이기자는 것이 종교이다. 다석은 죽음 공부가 삶의 최고의 공부요 마지막 공부라고 했다. 죽음 공부는 죽지 않는 생명인 얼나를 깨닫고자 하는 공부다. 제나는 몸삶밖에 모르는 짐승의 생명, 생로병사에 갇힌 몸나, 몸과 맘의 짐승 바탈을 좇아 사는 짐승살이, 여느 이(속인)다. 반면, 얼나는 얼삶에 도달한 참나, 다르마(법), 생사를 초월한 나, 깨달은 이(각인, 붓다),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신앙생활은 제 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의 수성을 죽이는 것이다. 톨스토이와 간디, 류영모 세 사람은 짐승 성질과 싸워 이긴, 성자에 이른 20세기 금욕주의자들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금욕의 삶을 살고자 했던 류영모는 50살 무렵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항상 무릎을 꿇고 앉았으며, 얇은 잣나무판 위에서 생활하고 잠도 그 위에서 잤다. 새벽 3시면 일어나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모은 [다석일지]는 그가 쓴 유일한 저술로 남았다.
다석의 하루살이, 즉 오늘살이의 중심은 가온 찍기다.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며 가고 오는 시간의 한가운데를 뜻하며 하늘과 땅 사이의 가운데, 우주의 한가운데, 사람 마음의 한가운데를 뜻하기도 한다. 가온 찍기는 마음을 한 점으로 만들어 그 점의 가운데를 찍는 것이다. 중용의 삶이 바로 가온 찍기다. 다석은 대학의 격물치지를 마음과 물건을 주체로서 실현하고 완성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인간의 완성과 물성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다석은 모름지기(모름직이)를 강조하면서 이를 '모름을 지키는 이'로 풀이한다. 모른다는 알고 싶은데 능력이 없어서 앎에 이르지 못함을 나타낸다. 모름지기는 참나의 기초가 된다. 다석은 물건 속에 신이 있다고 했다. 다석은 물체의 본성, 물질의 주체, 물건의 가치와 본질을 '머사니'라고 불렀는데, 머사니는 참, 뜻, 신이다.
다석은 민중 시민 국민이라는 말 대신에 '씨알'이라고 표현했다. 민중을 씨알로 본 것은 민중을 사회적 지위나 소유, 명예나 재주와 기능, 겉모습과 주장으로 보지 말고 속생명과 정신의 마음속 씨알맹이로 보자는 것이다. 다석의 민중 이해는 민중을 피치자로서 돌봄과 배려의 대상으로 본 유교의 민중 이해와도 다르고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 계몽철학의 민중관과도 구별된다. 다석에게 민중은 무지몽매한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받들어 섬길 주체이자 주인이며, 다스릴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의 주체이고, 가르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지혜와 경험을 배워야 할 어른이고 어버이다. 민은 정치 교육의 대상이나 혁명의 동원 대상이 아니라 끝까지 주체이고 주인으로 남는다.
다석은 1890년 3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웠다. 15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1910년 20살 때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의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 기독교를 전파하여 일제 강점기에 오산학교가 기독교 운동의 중요한 인물들을 길러내는 계기를 이루었으나 정작 류영모는 이 무렵에 톨스토이를 읽으며 정통 기독교 신앙에 의심을 품었다. 또한 불경과 [노자]를 접하면서 성경만을 진리로 받들고 예수를 절대화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 석가, 공자, 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다석이 현대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한 이는 톨스토이와 간디였다. 그리고 다석이 어른으로 받든 이는 삼성 김정식과 남강 이승훈 두 분이다. 김정식은 15살의 다석에게 예수를 가르쳐준 은사였다. 당시 김정식은 캐나다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의 권유로 연동교회와 YMCA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석은 '맨발의 성자' 이현필이 이끄는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을 아끼고 높였다. 동광원 사람들이 몸소 보여준 간이 생활, 노작 생활, 봉사 생활, 금욕 생활, 신앙 생활 이 다섯 가지는 다석이 늘 바라던 이상적 삶이었다. 그것을 순 우리말로 하면 바로 줄임삶, 일함삶, 섬김삶, 그늠삶, 믿음삶이다.
다석 어록을 모아본다.
▶있을 것이 있을 곳에 있는 것이 참이고 선이고 아름다움이다. 밥알이 밥그릇 속에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얼굴에 붙어 있으면 좋지 않다. 똥이 똥통에 있으면 괜찮지만 옷에 묻으면 더럽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이 참나가 아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인 얼이 참나다. 영원한 생명인 얼의 나를 깨달아 생사의 제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야 한다. 얼의 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몸과 마음의 제나가 살거나 죽거나 상관없이 영원히 빛난다. 이것을 모르면 사람이 빛나고 힘 있게 살 수가 없다. 사람은 빛나고 힘 있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의식 않은 것 우리 집 자랑이요 명리를 웃보는 게 내 버릇인데 아직껏 바람 물 줄여 씀이 죄받는 듯하여라.
▶인생이 무력한 세 가지 원인: 과거 일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현재 일을 비판하지 않고 장래 일에 신념이 없는 탓이다.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그것이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천명이다.
▶세상에 나타나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깊이 숨으려고 하자. 숨는다는 것은 더 깊이 준비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사람은 결국엔 하느님 아버지께 배워야 하는데 하느님 아버지는 은밀한 가운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