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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확실하지 않아도 돌이켜보면 야구는 항상 내 삶과 함께였다. 출범 당시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정열을, 온 국민에겐 건전한 여가선용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한국프로야구는 내 삶 속에서 '꿈'이었고, '정열'이었으며, '여가'였다. 어린 시절 야구는 내게 우정의 상징이었고, 학창시절에는 안식처이자 탈출구였다. 사회에 나가면서는 때로는 기쁨이었고, 때로는 위안이었다. 마치 "Always B with you (야구는 늘 여러분과 함께합니다)"라는 현재 한국프로야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내 삶 속에는 언제나 야구가 있었다.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You can't measure heart with a radar gun.)
메이저리그 통산 4,413이닝과 305승을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톰 글래빈이 남긴 유명한 야구 명언이다. 글래빈은 커리어 기간 동안 다승왕 5회, 사이영상 2회,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90년대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톰 글래빈의 백넘버 47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300승을 거둔 이 위대한 왼손 투수와 동일한 백넘버를 공유하는 투수가 일본 프로야구에도 있었다. 세이브 라이온즈의 레전드 쿠도 키미야스다. 통산 224승 142패 3세이브 평균 자책점 3.44를 기록하고, 11번의 일본시리즈 우승과 2번의 일본시리즈 MVP, 투수 유일의 양대리그 골든 글러브 수상한 이 대투수는 47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며 야구에 대힌 열정을 불태웠다.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이승엽의 요미우리 시절 동료로 또, 이대호의 소프트뱅크 시절 감독으로 친숙하게 기억되는 이름이기도 하다.
미국과 일본, 각각의 리그를 대표하는 이 두명의 선수와 동일한 백넘버를 공유했던 왼손투수가 한국프로야구에도 있었다. 이 세 명의 대투수는 왼손 투수, 47번이라는 백넘버, 자국의 야구리그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47번을 달았던 야구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던 선수의 이름은 본서 <야구하자, 이상훈>의 주인공이기도 한 LG 트윈스의 레전드, 야생마 이상훈이다. 이상훈은 선수생활 11년 중 6년 남짓의 기간만 한국프로야구에서 뛰었지만, 선발로서 두번의 다승왕과 한번의 승률왕,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고, 마무리투수로서도 구원왕을 수상하며 보직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였다. 야구팬들에게는 90년대 LG 트윈스 신바람 야구의 상징 (그는 LG의 마지막 우승인 94년 우승멤버이다, 벌써 어언 25년전 일이다 ㅜㅜ)으로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했던 좌완 파이어볼러로 기억되고 있다.
2004년에 은퇴한 이상훈 선수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본서 <야구하자, 이상훈> 이전에 2018년 스포츠 투데이를 통해 연재된 <김태훈의 불꽃 ?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이었다. 이 칼럼은 스포츠팬들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지나간 불꽃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수많은 불꽃 중에서도 첫 번째 인물로 이상훈 선수가 선택된 이유는 그라운드의 야생마로 불리며 야구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던 추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상훈 선수 그 자신이 불꽃같은 열정으로 야구와 인생을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총 20회로 구성된 칼럼에서 항상 시작을 장식했던 문구가 아직도 기억난다.
”불꽃 같은 존재는 어떤 면에서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인생을 대신 살아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과 꿈을 짊어지고 대신 그 길을 걸어가는 제사장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는 꿈을 이루어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끝내 좌절해 함께 슬퍼하기도 한다. 불꽃들 덕분에 인생의 마루와 골을 대신 체험하며 삶의 의미를 알아간다고 할까?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불꽃 인생들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 그 빚을 갚는 방법은 그들의 순간들을 오롯이 '기억'하고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는 게 아닐까?“ - 김태훈의 불꽃 중에서 -
김태훈 작가는 20회의 칼럼을 마치면서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아직 많으며 혹시 다른 매체를 통해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 더 보강하겠다고 밝혔었다. 작가의 말처럼 20회 분량의 칼럼은 야생마 이상훈과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지만 그를 그리워하고 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갈급하는 야구팬들에게 좀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야구하자, 이상훈>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예약판매 기간에 몇 권을 구매하여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한 이유는 과거 이상훈 선수와 공유한 추억과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 저자 김태훈의 칼럼 덕분이었다. 저자는 칼럼에서 한 약속대로 <야구하자, 이상훈>을 칼럼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내용을 보강해서 이번 책을 펴냈다.
사실 야구는 가장 대표적인 기록경기로서 야구의 역사는 숫자를 기반으로 한 기록과 분석, 수학과 통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야구의 이러한 특징은 “야구팬은 모두 마약중독자다. 그들의 마약은 바로 통계다.”라는 야구명언이 잘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라는 종목이 숫자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스포츠라면 누가 결과가 뻔한 승부를 흥미를 가지고 볼까?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요기 베라의 전설적인 야구명언은 마치 인생과도 같은 야구의 드라마틱한 속성을 대변하고 있다. 야구는 숫자와 우연, 그 두 시소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방랑자 같은 스포츠라는 것과 성적 예측의 불완전성이 야구를 더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라는 걸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바로 야생마 이상훈이었다.
“팬들은 감동을 원하지 기록은 원하지 않는다.” (311쪽)
이는 이상훈이 현역시절 자신의 수첩에 써놓은 문구라고 한다. 선발 20승, 최다승, 최고 방어율, 최고 승률 같은 타이틀에 그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무엇 보다 팀이 승리하는 게 중요했고, 그 이전에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감동과 기록이 부딪히는 순간 그는 언제나 감동을 선택했다. 그는 개척자였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도 그는 항상 낮은 자세로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한국 현역 프로야구 선수로 일본 무대를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였다. 자유계약 선수 신분도 매니지먼트사가 없을 때 혼자 힘으로 얻어낸 성과였다.
“야구하자. 18.44미터에 공을 던질 수 없는 그 날까지”
일본과 미국을 거쳐 4년 반만에 한국에 복귀할 때 그가 팬들에게 남긴 진심이 담긴 메시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울 수 있는 단 한가지 방법은 그라운드에서 야구로 보여주는 것 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방법도,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도 오로지 야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선수시절 그는 이러한 다짐을 여러차례 팬들에게 내비쳤고, 은퇴 이후에도 투수판과 홈플레이트의 거리를 의미하는 18.44미터는 그를 상징하는 문구로 그의 사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본서 <야구하자 이상훈>의 부제도 18.44미터의 약속이다.)
”빨리 옛사랑은 추억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줄거예요. 첫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게 할 겁니다. - 다큐멘터리 <야생마의 로망스> 중 -
“서울은 LG, 승리는 트윈스!” LG 트윈스의 팬들은 옛사랑을 잊지 못한다. LG 트윈스는 팀 창단 첫해였던 1990년의 첫번째 우승과 1994년의 두번째 우승 모두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를 직행하여 내리 4연승으로 시리즈 스코어 4연승으로 스윕 우승을 달성했다. 이 두번의 우승 경험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다가왔기에 그 후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승을 못하리라곤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추억은 추억으로서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만, 새로운 사랑을 꿈꾸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위안을 얻는 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야구하자 이상훈>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났고, 새로운 사랑의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야구는 기록의 경기지만 진짜 감동은 기록 너머에 있다는 야구 격언처럼 선수와 팬 모두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고 즐겼던 그 시절의 신바람이 다시 불어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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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야구가 아니다.“ - 조 디마지오 -
현역시절 투구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마운드를 향해 전력질주했던 기억, 2002년 유난히 추웠던 날씨 속에서 열린 포스트시즌에서 반팔을 입고 투구했던 기억, 항상 자만하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기억, 이상훈 선수를 떠올리면 야구를 향한 불타는 열정이 먼저 떠오른다. 그의 이런 모습들에 매료되어 그를 응원하면서도 그의 불타는 열정의 기원은 무엇일지 항상 궁금했었다. 본 도서 <야구하자 이상훈>을 읽으면서 그의 가슴 속에서 불타고 있는 불꽃의 시작을 살짝 엿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상훈 선수의 야구를 대하는 자세였다. 그것은 야구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야구를 시작하고 야구를 하는 과정에서 만난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린시절 야구를 함께 시작한 친구들과 산에 가서 김치찌개 끓여 먹고, 도룡뇽 알도 잡아먹고, 홀딱 벗고 수영하던 기억들이 야구는 즐거운 것이며, 이러한 즐거움은 동료들과 함께 할때 더 배가될 수 있음을 그는 무의식중에 깨달았던 것 같다.
<야구하자 이상훈>의 모태가 된 스포츠투데이의 칼럼 <김태훈의 불꽃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도 이상훈 선수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기억과 그 시절 만나게 된 아마추어팀의 감독과 동료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김태훈 작가가 이상훈 선수와 인터뷰를 할때 제일 먼저 언급한 것도 그 시절 감독이었던 조상진 감독 이야기였다고 한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거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등 야구를 시작한 동기는 선수마다 다 다르겠지만, 야구의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야구를 시작한 것이 상훈 선수가 야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유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이러한 그의 열정은 현역시절은 물론 은퇴후 지도자 생활과정, ‘떳다볼‘ 선수들과의 우연한 만남에서도 엿볼 수 있다. 10년 남짓의 짧은 프로생활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오랜시간 많은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수 있었던 건 그가 남긴 기록을 넘어선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팬들이 감동으로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물론 데이터가 도움이 돼요.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인 양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 - Yes24 채널 예스 인터뷰 중 -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야구에 적용된 통계학적 접근방식은, 과거에는 매우 풍부한 경험을 지닌 현장야구인 일부만이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던 야구의 전문화된 부분들을 수치화하여 현장의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적 분석방법들로 인해 선수도, 코치도, 기자도 아닌, 그야말로 '단지 야구와 수학이 좋았을 뿐'인 일반인들도 야구를 더 깊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로 대표되는 통계적 분석방법은 분명 현대야구가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얼마전 2018년 SK의 우승에는 통계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을 접하고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여러 분석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비 시프트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2016년 SK구단의 땅볼타구 처리율은 64.4%로 전 구단 중 최하위였다고 한다. 하지만, 1년뒤 2017년에는 74.2%로 SK구단은 단 1년만에 약 10%p 상승된 수치로 1위를 극적으로 탈환하였고, 이어 2018년에도 1위를 수성하였다. 2016년부터 3년 동안 내야진의 변화는 거의 없었음에도 이 같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일수 있었던 것은 트레이힐만 감독의 부임으로 인한 적극적인 수비시프트 전략의 활용 덕분이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데이터 기반의 분석야구의 장점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밝혀진 법칙 보다 그 원리가 명확하지 않지만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는 항상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고, 쉽사리 승부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경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다. 요즘 야구를 지켜보면서 데이터에 의존하는 부분이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야구공은 둥글고, 경기는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라는 야구명언 처럼 야구는 의외성이 지배하는 경기이기도 하다.
“팬들은 감동을 원하지 기록을 원하지 않는다.“ (P. 311)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이상훈 선수의 말처럼 기록의 이면에 존재하는 감동을, 그 열정을 경시하게 만들어 결국 야구 본연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것 아닐까? ‘옛날에는 야구를 했고, 지금은 게임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이상훈 선수의 채널예스와의 인터뷰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도 좋고, 공 회전수가 전광판에 찍히는 것도 좋아요. 선수의 행위가 숫자로 구분되어서 연봉과 연결되잖아요. 프로는 나를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긴 한데요. 점점 그 쪽으로만 간다는 게 조금 아쉬울 뿐이에요.“ - Yes24 채널 예스 인터뷰 중 -
그의 말처럼 통계는 야구의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한다. 야구의 즐거움을, 순수한 열정을, 팀케미스트리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세이버메트릭스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야구하자 이상훈>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된 사실 중 하나는 2002년 포스트시즌 반팔셔츠의 진실도 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잠깐 언급 했지만, 2002년 플레이오프 때,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이상훈 선수는 반팔을 입고 경기를 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냥 반팔을입고 경기했다고 표현을 했었는데 그 행위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언더셔츠의 소매를 잘라 반소매 차림으로 경기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언더셔츠의 소매를 잘라 승부에 임하는 결기를, 야구를 향한 열정을 보여준 그 행위 앞에서 통계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의 현역시절에서 팬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모습은 구원 등판을 할 때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불펜에서 마운드로 전력질주하는 모습일 것이다. 야생마라는 그의 별명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팬들은 열관했고, 상대 선수들은 기가 죽었다. 투수는 야구라는 스포츠 안에서도 가장 예민한 보직일 것이다. 리듬을 유지하며 한구한구에 집중해야 할 투수가 전력질주로 인해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거리거나 심장이 쿵쾅거리면 투구에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다. 당사자인 그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리 없다. 하지만, 그가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복귀하면서 한 말인 ‘18.44미터에 공을 던질수 없는 그 날까지‘, 또 현재까지도 그가 사인에 남기는 문구인 동시에 본 도서 <야구하자 이상훈>의 부제이기도 한 ‘18.44미터의 약속‘은 마치 전력질주와 같은 팬들을 향한 그의 진심 아닐까? 객관화된 분석은 무의미하고, 수치화할 수도 없는 그와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 말이다.
※ 추신 : <야구하자 이상훈>을 읽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미처 몰랐던 어린시절의 영웅에 대한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글과 함께 추억의 장면을 담은 사진들이 같이 구성되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 독자들은 <야구하자 이상훈>의 모태가 된 스포츠투데이의 칼럼 <김태훈의 불꽃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을 참고하면 더 좋을듯 하다.
[ST칼럼-김태훈의 불꽃]'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http://stoo.asiae.co.kr/article.php?aid=44658048950#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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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처 2004년 6월의 시작, 그해 트레이드된 베테랑 선수가 우리팀(SK와이번스)에서 은퇴를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 야구를 제패한 최고의 좌완투수이자 좌완 20승, 주니치의 삼손, 그리고 모든 영광을 뒤로하고 꿈을 쫒아 메이저리거, 2002년 코리안시리즈에서 보여준 진심에 두 손을 치켜들게 했던 진정한 야구인, 그는 등번호 47번 이상훈선수였습니다. 그날 은퇴 발표 기사를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놀람은 곧 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2군으로 내려보냈다고 야구를 버리다니... 조웅천선수도 있는 우리가 어렵게 받아줬는데 우리 팀은 그렇게 막 떠나도 되는 팀이야?' 언론 탓도 있었겠지만 믿었던만큼 미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음악방송에서 뽀글머리 락커로 무대에 선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미움마저도 싹 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힌 나머지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가 제스타일이 아니라 더 그랬을껍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김성근감독님과 고양 원더스를 꾸리시다가 엘지 아카데미 원장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음악하다 안되니 또 야구하나 보다' 했습니다.
2. 그리고...미안함 아이가 하루만에 다 읽었다며 꼭 읽어보라는 아들의 부탁에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장한장 넘기며 내가 알지못하는 이상훈선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 속엔 생각보다 행복하지 못한 유년시절과 늦게 찾아온 질품노도의 대학시절, 그리고 계속되는 부상과의 싸움, 은퇴 이후 받았던 여러 상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순수한 야구를 햔한 18.44미터의 열정이 오롯이 담겨있었습니다. '아, 이 미안함은 뭘까?' 마지막 페이질 넘길 때쯤 마음 한구석엔 미안한 마음이 가득찼습니다. '이렇게 야구를 사랑한 사람을 내가 몰라보다니... 오해와 선입견, 그리고 우리 팀에 대한 애정 이상훈 선수를 덕분에 미워하고 욕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3. 마치며...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은퇴 이후 이야기를 영화를 만들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밤새도록 듣고싶을 만큼 웃고 울렸습니다. 특히 떴다볼 야구단 감독님이 되신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신파로 빠지지도 않고 어쩌면 가장 스포츠 영화다운 스포츠 영화가 나올 듯 합니다. 톰행크스가 나오는 그들만의 리그보다도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승까지의 이야기가 사실적이면서도 경쾌한 리듬이라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직접 쓰셨다는 글 중에 있습니다. '종이 한 장 차이를 너무 가볍게만 알고 있지 마라. 그 종이 한 장 만들려면 수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최고의 좌완 투수의 말이니 그 차이를 만드는 비결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아마 제가 힘들고 외로을 때면 자주 되네일 듯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상훈 선수의 새로운 마운드 18.44m인 해설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알 수 없는 남은 야구 인생의 걸음 걸음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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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린시절 난 서울에 살았음에도 LG트윈스라는 팀은 큰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긴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단 한선수.. 이상훈만큼은 뇌리속에서 잊혀지질 않았다. 그렇게 타팀 팬마저 응원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사나이. 늘 당당한 자신감으로 세계 무대에서 공를 뿌려댔던 사람.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하던 그시절.. 후배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섰던 사람. 친정팀을 상대로 도저히 공을 던질수가 없어 6억을 내려놓고 미련없이 마운드를 내려온 사람. 그렇게 끝내 팬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사람. 이상훈. 그는 강했지만 정말 따스한 사람이었기에 팬들의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는것 같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을때 주저없이 주문을 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훈이라는 선수를 더 알고 싶었고 그를 통해 야구를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훈 선수. 당신의 야구를 볼수 있어서 그리고 당신의 흔적을 소장할수 있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2433695213515985&id=100006265901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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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스타그램에서 소식을 듣고 바로 검색해서 목차를 보며 목차만으로도 이렇게 설레이는 책을 어제 드디어 만났습니다.
일찍 만나고 싶은 마음에 회사로 배송을 걸어놓고, '야구하자 이상훈' 책한권 손에 들고 퇴근하는 퇴근길이 집에가서 읽어볼 생각으로 설레임이 가득했습니다.
이상훈 삶, 김태운 글.... 이것만으로 야생마 이상훈 형님의 삶을 조금은 엿 볼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득해졌습니다.
첫장에 나오는 형님의 글을 보며 나도 다음에 비가오면 비나 웅덩이를 피하지 말고 걸어보자 생각하고, 팬으로서 글을 써주신 김태훈님의 글을 보며 내가 이런 영광을 받았다면 어떤 기분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아직은 시작부분을 읽고 있지만 처음 소식을 들었을때, 목차를 봤을때, 받았을때, 한장 한장 소중히 넘겨가며 한글자 한글자 정독할때 느낀 감정은
95년 상훈 형님의 20승을 기대하며 TV앞에서 응원하던 그때. 02년 상훈 형님의 일본, 미국 생활을 마치고 LG로 전격 복귀하던 그때. 15년 LG트윈스 코치 및 피칭아카데미원장으로 복귀하던 그때. 느꼈던 그 감정과 동일한 그것이었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다시 예전에 그 역동적으로 투구하시던 모습, 기타를 멋들어지게 치시던 모습, 야구에 관해서는 어느누구와도 타협없는 모습 하지만 후배 선수들을 아끼던 형님의 모습 등을 기억하며 읽어내려가겠습니다.
다시 우리 곁으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표지 디자인) 돌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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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p/B3q1_fhBMHi/?igshid=1cvjqdgf02n3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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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마 이상훈. 남자가 봐도 멋진 인간 이상훈을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잠실야구장 가까운 곳에 살았던 학창시절 시험끝나는 날엔 친구들과 야구장 가서 야구보는게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엔 늘 당당한 야생마가 혼신의 힘을 다한 투구를 펼치고 있었죠. 그렇게 언제나 잠실벌을 지켜줄 것만 같았던 야생마 형님이 잠실을 떠난 후,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쓰지 못하 듯, 더 이상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구심점을 잃은 엘지트윈스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줄무늬 유니폼으로 돌아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상처도 많았지만 그게 제일 이상훈다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해설도 좋지만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셔서 후배들의 멘토가 되어주세요. 당신은 이 시대가 필요로하는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PS.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엘지트윈스의 우승입니다.
http://www.instagram.com/p/B3rsD4Tpg_E/?igshid=16lv9c9gvjfz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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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팬인 아버지를 갓난아기일 때부터 따라 잠실구장으로 야구를 보러갔던 나는 언제부터 LG팬이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LG트윈스의 골수팬이다. 야구를 볼 때 특정 선수를 좋아하기 보다 LG라는 팀 자체를 좋아하지만 이상훈 선수 만큼은 야구선수가 아닌 인간 이상훈을 동경했다. 마운드를 오를 때 항상 씩씩하게 뛰어 올라가는 모습, 마운드에서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타자를 직구로 승부하는 모습, 그리고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어퍼컷 세레모니를 하며 포효하는 모습. 나는 이상훈 선수가 LG트윈스로 복귀해서 기아와의 잠실 홈경기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뿌리는 순간에도 그 현장에 있었다. 그 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에게 동점 쓰리런 홈런을 맞고 우승을 내어주어야만 했을 때 TV로 생방송을 지켜보며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SK로 이적을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과 얼마 후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LG 선수들을 향해 차마 공을 던질 수가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연 은퇴를 했을 때.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사건들. 이 모든 기억들이 이 책을 읽으며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또한 매스컴을 통해 들으며 어렴풋이 ‘이런 사정이었구나.’ 추측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책을 읽으며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야구를 진심으로 대한 이상훈 선수에게 그렇게 한번도 아니고 무려 세번이나 홀대한 LG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상훈 선수는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에게 LG트윈스는 이제 마냥 좋아하는 팀이라기 보다는 오랜 가족과 같은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이상훈 선수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나는 야구를 한번도 배워본적 없는 일반인이지만 야구를 보면서 인생도 배운 것 같다. 특히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1할2푼5리의 승률로 살아가는 모두에게...’라는 문구는 내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니 이상훈 선수의 인생 철학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LG트윈스가 언젠가 다시 우승하는 순간이 온다면, 현재 차명석 단장과 이병규 코치, 박용택 선수, 노송 김용수 등등 94년 영광을 함께했던, 그리고 그 이후 LG트윈스를 위해 뛰었던 수많은 선수 및 관계자들이 그 현장에 함께하는 순간을 꿈꾼다. 그리고 현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훈 해설위원도 그 순간을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나도 현장에서 지켜보고 싶다. 이상훈 선수의 앞날을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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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말 유익한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 SNS(페이스북) 인증샷 링크 :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700773350407398&id=10001424217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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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한구석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야생마 이상훈 형님. 18.44를 대하는 이상훈의 진지함 그리고 열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있다. 트윈스의 에이스로 94년 엘지 우승의 초석이 된 한국시리즈 1차전과 4차전 등판 그리고 승리, 일본과 미국 진출에 대한 소회, 그리고 다시 엘지로 돌아와 마무리 투수로 팀을 구원하던 이상훈.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SK로의 트레이드와 은퇴, 이후 밴드 'WHAT'에서의 활동까지. 이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내가 사랑했던 야구선수 이상훈, 그리고 인간 이상훈의 인생과 신념을 글로 통해 더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었다. 내 어린시절 히어로 이상훈을 추억하며 형님과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94년 우승 후 어린이 회원으로 받았던 야구공과 96올스타전에서 작은 두 손으로 받았던 형님이 멋지게 싸인해 준 야구공, 미국으로 유학을 간 야구광 친구를 졸라 얻어 낸 보스턴 시절 친필 싸인카드까지. 오늘 밤 다시 한번 책을 읽어 내려가며 그를 기억하고 회상하며 잠들 것이다. 이상훈의 팬으로 소중한 책이 출간되어 감사드리며 긴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추가)북콘서트를 다녀와서.. 주인공과 작가님을 함께 만나는 좋은 시간이였습니다. 책에 다뤄졌던 내용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책제목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 이상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작가님이 글로 담기 위해 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팬들과 함께 공감하며 행복했습니다.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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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LGTWINS의 팬이 되었을때 원년 팬들에겐 그리운 대상이자 레전드이시던 분.. 그를 알고 싶어서 SNS에서 책 소식을 보자마자 겟! 그는 따스한 사람이다. 그 자신이 (LG)이자 야구는=이상훈의 전부 라고 말하는 팬들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가보다. 아직은 3분의 2정도 읽었지만 오늘이면 정독 끝날듯 . . 내가 LGTWINS의 팬이 되었을때 원년 팬들에겐 그리운 대상이자 레전드이시던 분.. 그를 알고 싶어서 SNS에서 책 소식을 보자마자 겟! 그는 따스한 사람이다. 그 자신이 (LG)이자 야구는=이상훈의 전부 라고 말하는 팬들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가보다. 아직은 3분의 2정도 읽었지만 오늘이면 정독 끝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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