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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남도의 어느 관광지에서 동백꽃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몹시 화가 났었다. 어떤 심술궂은 사람이 멀쩡한 꽂을 모조리 뜯어 땅바닥에 흩뿌려 놨다고 확신했기에. 이제 막 피어난 듯 그 선명하고 예쁜 꽂을 무참히 뜯었을 알카에다 같은 놈(년)은 그정도로는 성에 안찼는지, 기이하게도 내가 가는 곳마다 동백이란 동백은 싸그리 따다 사방에 뿌려 놓았다.. 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 일말의 미련도 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동백의 생태를 몰랐기에 나는 여행내내 분노하고 슬퍼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작가의 동생.. 그 애의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유사한 이유로 분노하고 또 슬퍼했었다. 작가의 말처럼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그 젊고 영특한 애가 왜 그런 을씨년스런 곳에 차갑게 누워있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고, 도대체 어떤 심술궂은 무언가가 그 애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손아귀에 잡을 수 있다면 분자단위로 쪼개 주고 싶었다. 스스로 삶을 등졌다는 이유 하나로 장례식 집전을 거부한 교회의 태도도 실망스러웠다. 그저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미신같은 공허한 소리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근거랍시고 점잖게 포장되어 유가족 앞에 던져졌다. '최소한 신자들의 자살만은 막고 싶다'는 예방교육 차원의 상황에서나 어쩌다 통용될 소리를, 이미 벌어진 사실 앞에 버젓이 들이미는 그 잔인하고 냉담한 맹신은 최소한 내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집 나간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라는 부모의 입버릇이 자식의 가출을 막고자 하는 것이지, 집 나간 자식을 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님을, 이미 가출한 자식이 있다면 늘 현관문을 열어두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하나님을 인간부모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시킨 그 한심한 행태야말로 불신앙과 무엇이 다를까. 최소한 내가 아는 하나님은 좌절한 영혼을 보듬어 주시는 분이고, 그 아이의 장례식장에 지체없이 달려와 함께 슬퍼하고 울어주실 분이니까. 나는 이 책이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언니의 아픔과 고뇌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 '성장소설'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 작가의 빛나는 문장과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너무 리얼해서 진짜라 믿어지는 그런 허구였으면 차라리 좋겠다. "야 니네 언니 미쳤나봐, 쓰다쓰다 이젠 니 얘기를 소설로 썼어!"라며 작가의 동생과 깔깔대며 수다를 떨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 실제로 일어난 생생한 사건이고, 깔깔대며 수다 떨 그 아이는 더이상 우리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이순간에도 그런 안타까운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생겨나고 있다. 이 두가지 사실이 바로 이 책이 가진 힘이자, 진정성 있는 위로가 발휘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이의 솔직한 경험담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으니까. 몇달 전 작가로부터 이 책을 준비 중이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들었을 때, 동생을 잃은 아픔을 오랫동안 지병처럼 앓아오다 결국 미쳐버렸나 싶었다. 그도그럴것이 장례식 이후 13년간 그 사건은 물론 동생의 이름조차 결코 입밖에 내놓아서는 안되는 '금기어'로 여기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고, 온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금기어로 도배된 책을 공개한다는건 너무나 의아하고 충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비로소 책을 받아보고야서야 알게 되었다. 소중한 동생을 잃었을 당시 작가가 몸부림치듯 썼던 글과 동생이 남긴 편지와 일기는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다정한 설명이자 위로라는 것을. 애끓는 기억으로만 남은 그 아이의 마지막을 이제는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할수만 있다면 "괜찮아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살다보면 그런건 잘못 축에도 못끼어, 넌 정말 눈부시게 멋진 사람이고, 하나님은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셔"라며 그 아이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난 그 아이의 마지막 인사를 꼭 듣고 싶었는데. 여기.. 13년만에, 그 애의 작별인사가 세상에 나왔다. 이제는 괜찮다며 더이상 아파하지 말라며 특유의 묘한 표정으로 위로를 툭- 하고 건네는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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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서둘러 구입했지만, 한문장 한페이지 쉽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마치 저자와 함께 그 고통과 아픔을 느끼며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몆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자책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 죽음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 같았다. 그러다 20대 후반, 똑똑하고 신실한 단짝친구의 죽음(암) , 30대에는 유학을 앞둔후배의 죽음(교통사고)을 보며 이렇게 젊을때 세상을 떠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댜. 그러다 스스로 생을 마친 친구, 후배의 소식을 몇번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랬을까?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그랬을까?? 하나님은 왜 내버려 두셨나?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큰 슬픔과 상처로 아파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은 답을 찾은것 같다. 남겨진 동생의 흔적을 읽으며 자책과 지독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저자를 보며 정말 감사했다. 어느날 꿈에 나타난 동생이 "언니야! 이제 그만 울어라..." 라고 나타나준 동생이 너무 감사했다. 나 역시 나약한 나 자신에게 깊이 실망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때가 있었고 가장 가까운 이와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보면 가까이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우울하고 무기력함에 빠진 이들도 많이 있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더 아픔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손을 잡아주고, 네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 주길... 아파하는 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길 기도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픔의 흔적을 가지고도 뚜벅뚜벅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저자의 손을 잡고 함께 동생을 그리워하며 같이 울어주고 싶다... ※ 오늘 하루도 37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2018년 1만3,670명, 전년대비 9.5% 증가, 통계청 보도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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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적힌 유가족이란 단어는 한 손에 꼭 쥐어지는 이책이 향하는 곳을 알려준다. 이 책은 신학적인 논쟁이나 누구를 설득하려는 책이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동생을 잃고, 그 슬픔을 직면하고 오랜 기간 동안 몸부림치며 아파하던 언니가 발견한 위로와 소망에 대한 글이다. 그녀가 낡은 예배당에서 경험한 하늘에서 오는 위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단순히 신비하다기보다 그녀가 믿는 신이 그녀의 아픔의 자리로 직접 찾아와서 위로해 주는 감격이다. 부디 그녀가 쓴 글을 통해 이 책이 가고자 하는대로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니 그녀가 경험한 위로의 감격이 있기를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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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서둘러 구입했지만, 한문장 한페이지 쉽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마치 저자와 함께 그 고통과 아픔을 느끼며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몆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자책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 죽음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 같았다. 그러다 20대 후반, 똑똑하고 신실한 단짝친구의? 죽음(암) , 30대에는 유학을 앞둔후배의 죽음(교통사고)을 보며 이렇게 젊을때 세상을 떠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댜. 그러다 스스로 생을 마친 친구, 후배의 소식을 몇번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왜"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랬을까?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그랬을까?? 하나님은 왜 내버려 두셨나?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큰 슬픔과 상처로 아파할까?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은 답을 찾은것 같다. 남겨진? 동생의 흔적을 읽으며 자책과 지독한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위로받고 회복되는 저자를 보며 정말 감사했다. 어느날 꿈에 나타난 동생이 "언니야!? 이제 그만 울어라..." 라고 나타나준 동생이 너무 감사했다. 나 역시 나약한 나 자신에게 깊이 실망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때가 있었고 가장 가까운 이와의 관계에서 생긴 갈등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보면 가까이에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 우울하고 무기력함에 빠진 이들도 많이 있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더 아픔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손을 잡아주고, 네가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 주길... 아파하는 이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길 기도한다. 그리고 여전히 아픔의 흔적을 가지고도 뚜벅뚜벅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저자의 손을 잡고 함께 동생을 그리워하며 같이 울어주고 싶다... ※ 오늘 하루도 37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2018년 1만3,670명, 전년대비 9.5% 증가, 통계청 보도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