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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탈코르셋'의 정신과 의미를 음미하다!
"'탈코르셋'의 정신과 의미를 음미하다!" 내용보기
코르셋(corset)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허리를 가늘게 조이는 몸매 보정용 속옷을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대략 16세기 경부터 사용이 본격화되었다고 하는데, 여성들의 코르셋 착용은 당시 사회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미적 인식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즉 잘룩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대비시켜, 그러한 조건을 갖추는 여성이야말로 바로 아름다움의 기준인듯이 통용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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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corset)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의 허리를 가늘게 조이는 몸매 보정용 속옷을 일컫는다서양에서는 대략 16세기 경부터 사용이 본격화되었다고 하는데여성들의 코르셋 착용은 당시 사회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미적 인식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즉 잘룩한 허리 그리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를 대비시켜그러한 조건을 갖추는 여성이야말로 바로 아름다움의 기준인듯이 통용되었던 것이 코르셋 사용을 유행시켰던 요인이라 하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코르셋은 여성들의 활동을 저해하는 장치로 여겨지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일각에서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최근의 탈코르셋 운동은 바로 이러한 연장선에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맞서는 행동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책은 탈코르셋 인문학을 표방하면서방탄소년단(BTS)의 페이크 러브(Fake Love)’의 가사가 수동적인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인식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페이크 러브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꽃보다 불꽃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여성들도 이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수동적인 존재인 '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불태우는 불꽃처럼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그동안 적지 않은 페미니즘 서적을 읽고 많은 공부를 했다고 자부해 왔으나이 책을 읽는 내내 여전히 남성인 나로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자각을 하게 되었다그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적 규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결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여성들의 미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중국과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름다움을 우월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항상 누군가와 비교를 하면서 누가 더 나은가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따지고 보니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 흔히 보아왔던 내용이며일반 대중들은 그것을 당연한 듯이 무비판적으로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사람은 누구가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법인데왜 누구와 비교를 하면서 자신의 우월감 혹은 열등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일까방송과 인터넷에 만연해 있는 이른바 ‘K 뷰티라는 것이 결국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일 터인데많은 이들이 왜 그렇듯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일까? 그러한 방송이 모두 다 그릇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듯한 방식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모두 5장으로 이뤄진 목차에서저자는 그동안의 사회적 통념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장에서는 아름다움의 반란탈코르셋새로운 사회정의를 꿈꾸며라는 제목으로최근 거세게 일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의 의미와 그 지향점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아름다움’ 특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만들어낸 것이기에그에 대한 인식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실제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실질 내용도 기존의 제도와 관습이 만들어낸 허상일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심리학과 진화론 아름다움 다시 읽기라는 제목의 2장에서야구장의 치어리더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논의를 이끌어나가고 있다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심리학이나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3장에서는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못생긴 꼴페미의 외모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어느 미남대회 수상자의 인터뷰를 통해서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 대한 문제 제기를 던지고 있다. ‘남성을 위한 존재로서 여성성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어느 철학자의 관점은 그저 판타지일 뿐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4장에서는 남성의 시각 훈련 음란물과 몰카 속 아름다움 감각이라는 제목으로음란물 혹은 몰카에 대한 집착도 역시 그릇된 남성중심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이제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음란물에 대한 접근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능해졌지만여전히 그 향유자는 남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한다이제는 여성들이 너의 성적 대상물이 아니라고 외쳐야 하며저자는 포르노에 탐닉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일컬어 남성적 식인(食人)의 눈이라 명명한다마지막 5장에서는 아름다움과 남녀 몸의 감각적 분배라는 제목으로기존에 통용되었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 대한 인식을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이에는 여기에서 나아가 탈코르셋으로 상징되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여성다움/남성다움의 지각구조를 뒤흔들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그것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근본적으로 남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성중심적 문화와 관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왔기에여성들이 경험한 바를 충분히 공감하기가 힘들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한편으로는 그렇게 형성된 기득권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페미니즘을 통하여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나의 형제 혹은 나의 자식의 삶을 결정짓는 것일 수 있다면여전히 남성/여성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차니)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i*****n 2019.10.23. 신고 공감 1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입니다.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입니다." 내용보기
한류가 다방면에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K-뷰티로 불리는 미용 산업도 그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여성들의 화장과 관련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지라 가타부타 할 말이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 여성들의 화장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부를 보호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내 관점에서 보자면 꾸밈보다는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입니다." 내용보기

한류가 다방면에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K-뷰티로 불리는 미용 산업도 그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여성들의 화장과 관련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지라 가타부타 할 말이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 여성들의 화장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부를 보호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내 관점에서 보자면 꾸밈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고픈 생각은 없다. 화장을 어떻게 하든 혹은 어떤 옷을 입든 그것들 모두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탈코르셋 인문학’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턴가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들어본 적이 없어 그냥 단어가 의미하는 대로 생각했다. 다만 코르셋과 하이힐에 대해서는 오래전 대학 새내기 때 토론을 했던 적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무슨 책을 읽고서 그 토론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는 기억밖이지만, 코르셋과 하이힐의 기원이 여성을 보다 섹시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도구들이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우월성의 잣대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선택할 때 능력이나 인성 혹은 개성보다는 외모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늘 그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은 우월성을 토대로 사회적 이익이나 혜택을 얻으려하지만 결과적으로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부정적이고 강박적인 감정으로 고통 받는다고 한다. 2018년 여름, 혜화역 시위에서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입니다’라는 피켓을 보고 그것을 모티브 삼아 썼다는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성차별과 여성의 아름다움이 내포하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통해 탈코르셋 운동의 내용과 방향을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탈코르셋이란 모든 화장과 꾸밈, 아름다움과 섹시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책은 각 장마다 사례를 제시하고 그 사례를 이용하여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내포하는 의미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춘향전]을 그 남자의 이야기와 그 여자의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은 아름다운 여성이 모진 고문에도 정절을 지키기를 바라는 그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춘향전]은 분명 그 남자의 이야기 임에도 마치 공동의 가치이자 결정이었던 것처럼 전해 내려왔고, 이것은 가부장사회 남성의 입장과 가치판단과 그 판단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의미와 실천들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몽룡 버전의 아름다움과 정절이야기를 그 여자의 이야기로 바꿔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여성 스스로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기존에 일부가 독점한 문화적 의미와 배치에 대해 불편을 유발하지만, 새로운 사회정의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그녀는 강조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성 자신이 원하는 여성의 본성이라기보다는 남성지배사회에서 남성이 부여한 이미지로 현재까지도 강력하게 남아있는 사회적 정치적 구분이며, 남녀 간 외모의 질서는 차이가 아닌 차별적 질서로 사실상 남녀의 위계질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코르셋은 남성이 누려온 권력적 외모의 모방을 통해 남성이 독점해오고 여성을 지배해온 남성권력에 도전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여성을 오로지 성적인 대상으로만 평가하고 칭찬하고 배제하는 남성들의 성적판타지에 여성의 삶과 일상, 감정과 이성을 올인 하게 만드는 문화’가 바로 여성비하이고 여성혐오라며, 치어리더들의 꿈과 현실, 게임 속 여성캐릭터들의 모습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여성의 아름다움이 번식의 조건이었기에 이제는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한 심리학자의 책을 통해 심리학과 진화론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비판하고,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에서 아름다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기도 한다. 자신의 시선이 자연스러운 시선, 누구나 동의하는 시선이라는 확신은 주변의 암묵적 동의를 필요로 하고, 그 암묵적 동의는 권력을 낳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규정하고 시선을 장악하는 자는 권력을 갖는다고 한다. 음란물과 몰카에 익숙한 문화는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선이 자연스러운 시선, 누구나 동의하는 시선으로 바로 자신들이 시선의 주체라는 잘못된 관점을 익숙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들은 욕망의 주체로써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 중심적인 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여성의 ‘아름다움’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는 물론 진화론과 심리학이라는 이름아래 숨겨진 우리사회의 외모정치학의 모습을 파헤친다. 어려서부터 역할놀이를 통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온몸으로 뿌리 깊게 내면화하는 가운데 외모에 대한 집착과 외모강박증은 더해간다. 저자는 이러한 남녀의 성역할이 더욱더 강화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영역이 바로 외모와 패션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녀 외모의 구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남녀불평등이 심하고, 이것이 바로 사회적 불평등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탈코르셋은 위계적인 남녀 이분법의 해체를 가장 명확하게 이루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중 최선의 방법일 확률이 높다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함께 힘을 내고 강해지자’며 책을 마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편하다. 그(녀)들은 남성이, 사회가 여성에 대한 부정의와 불평등을 줄곧 외면해왔기에 여성들 스스로 나선 것이라 말하지만, 간혹 그(녀)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물론 나 역시도 어려서부터 가부장제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라왔기에 은연중 차별이나 불평등에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 모두가 맞고 그러기에 동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은 나 또한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우리사회의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탈코르셋이 단지 외모나 패션의 남성화가 아닌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운동으로 지속되길 기대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여성들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누이이고 딸이란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고정관념을 내면화해 온 수많은 남성들이 한번쯤은 이 책을 읽고서 탈코르셋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1 2019.10.12. 신고 공감 16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왜 탈코르셋 운동인가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왜 탈코르셋 운동인가" 내용보기
집이 중고등학교 근처에 있어 하교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짙게 화장한 여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똑같은 화장법이다. 엄밀히 말하면 화장이라기보다 여장이라 해야 할 듯하고, 탈을 쓴 듯 어색하고 풋풋한 얼굴들을 보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 맨 얼굴이 훨씬 아름다운 10대의 나이에 독성분을 얼굴에 잔뜩 바른 채 진짜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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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중고등학교 근처에 있어 하교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짙게 화장한 여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똑같은 화장법이다. 엄밀히 말하면 화장이라기보다 여장이라 해야 할 듯하고, 탈을 쓴 듯 어색하고 풋풋한 얼굴들을 보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 맨 얼굴이 훨씬 아름다운 10대의 나이에 독성분을 얼굴에 잔뜩 바른 채 진짜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니! 어떤 주의보다도 강력한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성형천국 대한민국의 일면이다. 그렇기에 미투 운동이 몰고온 탈코르셋 운동이 더욱 반가웠다. 예뻐야 하고 예뻐보이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젊은 여성들이 미투운동을 계기로 화장도 꾸밈노동도 자신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주체로서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열렬히 응원한다.

 

 저자는 2018년 여름 혜화역 시위에서 본 피켓을 모티브로 삼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입니다."라고. 책에서 저자는 탈코르셋 운동이 우리 사회의 어떤 면을 비판하는지, 낭만적인 남성 파타지의 서사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고, 여성성이나 아름다움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적 남성권력이 여성을 지배해온 주요한 정치임을 밝히고 있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2018년 한중일 3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한중일 여성들이 왜 아름다움을 원하는지 조사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밝히는 연구다. 그 결과 한국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우월성'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중국 여성들은 '자기발전'의 관점에서, 일본 여성들은 '개성'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우월성'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은 한국 여성들의 속 내용을 보면 외모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편협한 미적 기준을 두고 무한 경쟁을 하다보면 여성 모두가 패자가 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한국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주장하게 된 이유라고 분석한다.

 

 그러면 한국 여성들은 왜 아름다움의 개념을 편협하게 잡고 남과 비교하며 강박적으로 우월하려 애쓰고, 열등감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되었을까? 문제는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 있다.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들은 여성을 선택할 때 여성들의 능력이나 인성 혹은 개성보다는 여성들의 외모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특히 유교적 가부장제가 오래도록 계속되어 오면서, 여성의 고정된 남녀 위계적 성역할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어 왔고, 그에 따라 순종적이고 복종적인 여성,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주목을 끌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연구에 참가한 한국 여성들은 여성의 외모 정도에 따른 남성의 선택에 따라 결혼 후 여성의 계급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인 이상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옛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21세기 한국은 구습 남성 국가라는 점이다.

 

 "이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무엇보다도 20,30대나 40,50대 모두 하나같이 여성을 선택할 때 '외모'를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 남성들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 남자가 다 그런 게 아니고, 그게 남자란 동물의 생리가 아니고, 그게 다 한국 남성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조선시대 가부장적 사고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젠더권력에서 동등하지도 우위를 차지하지도 못하는 한국 여성들은 이러한 남성들의 요구에 맞추느라 아름다움이나 외모라는 것을 일본이나 중국 여성들처럼 개성이나 자기발전의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하는 그 무엇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편협한 아름다움의 잣대와 인식이 한국 여성들을 거의 비슷한 화장과 패션, 성형으로 이끈다는 분석이다. 덕분에 한국의 미용산업이 발전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이렇게 발전한 미용산업은 다시 여성들로 하여금 외모의 무한 경쟁으로 몰고간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케이트 밀레트나 부르디외의 통찰을 빌어 아름다움이나 외모는 단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 정치적 문제라고 본다. 

 

 "즉 여성의 성역할을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남성의 성역할을 이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고 향유하는 자(주체)로 나누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에 따른 구조가 아니라 사실상 정치적인 것, 남성중심의 정치적인 권력 지배방식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권력은 오로지 수동적 신체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래왔다. 그리하여 권력은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달콤한 칭찬과 찬미, 희망과 쾌락, 과시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절망과 공포를 조장하면서 복종을 이끌어 왔다. 그 권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의 규범과 질서, 언어가 작동할 수 없는 능동적인 신체, 자유인이다. 탈코르셋과 같은 능동적인 신체다. 탈코르셋에 공격의 포화가 쏟아지거나 무조건 무시하려는 이유다. 오빠가 페미니즘도 가르치려 들면서."  

 

 책에서 저자는 우리 민족 모두의 이야기로 알고 있던 <춘향전>이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이야기임을 밝히고, 여성을 아름답고 순종적인 존재, 오직 성적 대상이길 원하는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가 오늘날 포르노물과 게임 속 여성 캐릭터와 몰카, 성관계 인증샷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또 남성의 성 충동과 아름다움이 여성의 본능이라는 남성중심 성 고정관념을 합리화하는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더 나아가 남성들의 성적 욕망과 배출 방식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학습되며 변화한다는 연구를 통해 음란포르노물에 길들여진 한국 남성의 시각이 현실 속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외에도 우리 사회의 아름다움에 얽힌 이야기들을 통해 아름다움의 추구가 단지 여성의 자기만족적인 것이거나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남녀의 이분법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학습되고 사회화되고 강화되는 문화 속에서" 여성을 한계 지우고 종속시키는 방식으로 배치되고 지배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탈코르셋은 위계적인 남녀 이분법의 해체를 가장 명확하게 이루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 즉 여성성과 아름다움이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개념에 불과하므로 그 이분법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최선의 것일 확률이 높다."

 

 

 

 

 

- 이 리뷰는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a*******5 2019.10.29. 신고 공감 10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연희원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연희원" 내용보기
프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연상케 하는 이 책의 제목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보다는 '탈코르셋 인문학'이라는 표현에 나는 더 이끌렸다. '탈코르셋'은 최근 페미니즘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운동이지만 그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만큼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한 차분한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연희원" 내용보기

 프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연상케 하는 이 책의 제목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보다는 '탈코르셋 인문학'이라는 표현에 나는 더 이끌렸다. '탈코르셋'은 최근 페미니즘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운동이지만 그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분명 배울 것이 있다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만큼 다소 민감한 주제에 대한 차분한 설명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책은 '탈코르셋'을 중심으로 어떠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Why do women want to be beautiful? A qualitative study proposing a new "human beauty values, concept.] 라는 논문을 참조하여 한중일 3국의 여성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즉, 일본 여성은 아름다움을 개성으로, 중국 여성은 자기개발로 받아들이는 것에 비하여 한국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우월성의 잣대로 보는 경향이 크다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자인 나를 포함하여 누구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만한 주제라 보여진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유교 문화권의 가부장적인 체제를 유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그러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저자는 "중국, 일본 여성들과 비교해서, 한국 여성들(한국사회)은 여성에 대한 가치를 오로지 외모의 우월성이라는 척도로만 평가받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단호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움이나 외모가 단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것임을 이 연구만큼 잘 보여줄 수는 없다라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젠더권력에서 우위를 지닌 남성들이 여성을 선택할 때 외모로만 판단하는 사고와 행동, 습관을 멈추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여성들이 여성인 자신을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관점과 실천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일상에 스며있는 뿌리 깊은 사회적 관습과 관행의 끈을 붙들고 있는 여성들 자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사고와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 p. 25 中에서 -

 아름다움과 외모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뒤이어 등장한 이 내용은 본문에서 다룰 '탈코르셋'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점에 대하여 남성들의 자각과 반성을 통한 변화를 주장한 기존의 입장보다는 오히려 여성의 적극적인 인식과 행동을 주장하는 부분이 우선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바꾸어 말하면 여성의 입장에서 여전히 가부장제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하는 남성에 기댈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성취하자는 내용이어서 이 책은 그러한 주장을 주로 여성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춘향전]을 그들의 이야기로, [박씨전]을 그녀들의 이야기로 예를 들면서 아름다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 폭 넓은 행동영역과 사회적 성취와 자부심과 힘을 강조한 이야기는 남자로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대의 문학과 예술을 아우르는 문화 자체는 분명 기득권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품들은 과거 가부장제 체제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여성 자신이 원하는 여성 본성이라기보다는, 남성지배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부여한 여성 이미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여성의 아름다움으로서.

 - p. 41 中에서 -

 따라서 이러한 저자의 설명은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일상의 사소한 미시적 의미를 변경함으로써 기존의 표준에 도전하고 파괴하고, 그럼으로써 여성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문화적 의미들을 바꾸고자 하는 것탈코르셋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또한 개화기의 쓰개치마 거부 운동을 통하여 이것을 일종의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비록 그 시기에 그러한 운동에 참여한 인물들은 극소수였지만, 그로 인하여 쓰개치마 거부 운동이 거둔 성과는 단순히 쓰개치마가 주는 불편함이 아니라 여성의 지위와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함께 주장한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을 바로 쓰개치마 거부 운동에 비교하면서 그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현재의 페미니즘과 그들이 말하는 탈코르셋 운동의 의미를 찾는 대목이어서 꽤 높게 평가되는 대목이다.

 외모가 개인적 취향이나 자유 이전에 지배세력의 사유와 통치방식이 가장 먼저 들어가 있어서 한 사회에서 외모는 성별, 계층별 위계 질서를 그 어떤 영역보다 잘 보여준다라고 말하는 부분과 탈코르셋 운동은 쓰개치마 거부 운동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부분은 저자의 기호학패션이라는 분야에서의 지식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여기에서 좀더 나아가서 아름다움에 대한 생물학적인 본능마저도 부정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내용 중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여성 본성이 아니라는 말을 내비췄는데, 아래의 내용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하여 어떠한 전개를 벌일지 예고하고 있다.

 남성의 모습은 여성의 외모와 비교할 때 위협적이거나 폭력적 혹은 권위적이다. 지배세력의 외모나 패션은 곧 권력의 연습이거나 행사였기 때문이다. 만일 탈코르셋의 결과가 그와 같은 결과라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꽃이 아니라 불꽃이니까!

 - p. 72 中에서 -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탈코르셋의 당위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심지어 여성 역시 아름다움을 생물학적인 본능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저자는 그것을 아예 부정하기 위한 자신만의 논리를 펼치게 된다. 아름다움이 완전히 사회화와 학습에 의한 것이어야 탈코르셋을 통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음을 주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그러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문제는 과연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찬미하는 것을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 또는 욕구라는 점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남성 중심적 여성성과 아름다움이 덧씌어진 가면, 여성에 대한 정치적 지배의 가면을 마치 생물학적 여성의 본성처럼 가장해 왔다라고 주장을 하였지만, 도대체 이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일까? 우선 진화심리학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먼저 등장한다. 구석기 시대 인류의 뇌가 잘룩한 허리와 날씬한 여성의 몸에 반응했던 것이 현재까지 지속되었다는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여성의 아름다움만이 번식능력과 관련된다는 어떠한 통계적인 수치나 생물학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서 그들의 주장은 과학도 인문학도 아닌, 신뢰할 수 없는 상상적 가정에 불과하다라는 날선 비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이후에 '발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아이를 많이 낳아 유방도, 허리나 배둘레햄도 아주 널찍하고 큼직한 비너스상이라고 말하면서 진화심리학자가 말하는 여성의 번식과 관련된 아름다움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저자 역시 통계적인 수치나 생물학적인 물증없이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후 내용들을 통하여 나는 사실 저자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특히 한국의 남성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너무나 편향적이다. 소년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실천이다"라는 제목으로 다루면서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을 그러한 시각으로 몰아가는 것은 과연 '탈코르셋 인문학'을 표방하는 이 책에 걸맞는 표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이 제목은 외국의 페미니스트 작가의 것이라는 출처를 밝히고 있긴 하고 있다. 또한 "특히 여성을 보는 대한민국 남성의 시선이나 초점은 음란물의 초점과 거의 동일하다. 여성을 볼 때 가슴, 다리, 성기 등으로 성적 특성만을 보게 된다."라는 저자의 설명 역시 별다른 출처가 없기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앞서 다른 사람이나 학문의 주장에는 통계와 객관적인 수치가 없다라고 비난을 하였으며, 정작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객관적인 증거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은 내심 이 책의 내용에 불편함마저 느끼게 된다. 남성들의 시선이나 초점이 음란물과 동일한지 정말 저자가 확인한 것인가? 음란물을 자주 접한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을 동원하여 실험한 결과인가? 여성이 남성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왜 다루지 않는가? 자극적인 제목에 대한 출처를 밝힌 것처럼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한 출처도 밝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아쉬움이 이 책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되려 역풍을 맞고, 지금까지 합리적이라 생각했던 아름다움에 깃든 의미와 탈코르셋의 필요성에 대한 부분마저도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 여고생이 오래 전 여자사병을 제도화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냈던 사실에 대하여 자체적인 토론을 통하여 남성들이 누리는 권력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여학생들 대부분 기꺼이 군대에 가겠다는 입장이었고, 남학생들은 가지 말아달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언급한 부분 역시 과연 이 책에 실을만한 내용이었나 싶다. 자신 스스로도 그 남학생들이 모든 남성의 생각을 대변하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면서도 왜 그 남학생들의 속마음이 한국 남성들이 속마음인 양 말하는 것일까? 또한 패션에 대한 예도 그 해석에 있어서 한 쪽으로 치우치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군인으로 참전했던 남성들이 사회로 복귀하면서 그 임무를 대신하고 있던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전환기에 여성성을 강조한 패션이 유행했다는 점을 들어서 패션에 담긴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 및 강요를 설명하는 부분은 확실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의 군복을 가부장제를 자랑스럽고 충성스럽게 유지시켜 나가며 가부장적 지배와 권력을 합법적으로 정당화해주는 권력 패션이라고 해석한 부분이다. 하지만 평상시 자유로운 사회에 있다가 단시간 내에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 있음은 물론 전쟁이 벌어지면 민간 사회에서 곧바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전장에 투입되던 사람들이 입는 것이 바로 군복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 또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지 않은가? 가부장적인 권위와 그에 따른 차별을 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에서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의무에 대하여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의 본문에서는 서두에서 언급한 왜 한국만이 유독 여성의 아름다움을 우월성의 잣대로 보는 성향이 강한지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다. 애초 중국과 일본과는 달리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한 의문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정작 그러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저자가 인용한 논문을 찾아 보았다. 영문 논문이었지만, 한국에서 쓰여진 논문이었다. 일단 논문에서는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하여 총 60명의 여성을 참여시켰으며, 그 구성은 한국 18명, 중국 25명, 일본 17명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문답지를 배포하여 그에 대한 답변을 참고로 하여 각국의 여성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과 일본의 여성들은 모두 한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하여 체류중인 인물들이었기에 정말로 이들이 그들의 국가를 대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실제 논문의 저자 역시 수집된 데이터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각 문화의 일반적인 인식을 나타내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연구의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향후 연구에서 각국을 대표할 수 있는 더 큰 샘플을 가진 통계적인 수치를 포함하여 정량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논문의 저자는 한국 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중국과 일본 참가자들이 자국 문화를 완벽하게 대표한다고 결론 내리기 어려우며 남성의 참여를 통하여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논문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확인해보니 애초 저자가 말한 한중일 여성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일반화하여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하여 유달리 한국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부정적인 특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은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이로 인하여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저자의 지극히 합리적인 부분들마저 희석되는 느낌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물학적인 본능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범주 내에서 받아들이고 그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기란 정말 어려웠을까? '탈코르셋' 운동의 활성화에 대한 저자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를 위한 저자의 편향적인 느낌의 일부 주장은 다소 감정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기에 이러한 부분들은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진전이 되면서 더욱 가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g*******7 2019.11.04. 신고 공감 9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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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연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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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을 규정 당하며 살고 있다. 아이답게, 어른답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나답게, 너답게, 대한민국 국민답게, 지구인답게, 등등. 이런 규정은 질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당연히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여러 가지 규정 중에서 남자와 여자, 특히 여자답게라는 말로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 규정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을 위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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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을 규정 당하며 살고 있다. 아이답게, 어른답게, 남자답게, 여자답게, 나답게, 너답게, 대한민국 국민답게, 지구인답게, 등등. 이런 규정은 질서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당연히 억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여러 가지 규정 중에서 남자와 여자, 특히 여자답게라는 말로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 규정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양성평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성과도 해마다 높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처럼 눈에 띄는 차별은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성차별은 존재한다. 남녀차별이 아닌 남녀차이로 서로를 존중하기까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100년 전, 쓰개치마 벗기 운동을 한 소수 여학생들의 용기가 사회전체를 바꾼 것처럼 현재도 코르셋에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자유를 위해 더 용기를 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성, 여성성 그 어떤 것도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지배와 정복, 여자는 순종과 희생 등으로 성역할을 고착한 것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것이므로 남성이 만든 이분법에서 벗어나 여성 스스로 자신을 위한 여성성을 만들어가자고 한다.

 

 남자아이들이 자동차, 로봇, 중장기 등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사회의 여러 분야로 눈을 돌릴 때, 여자아이들은 공주인형 옷 입혀주기나 화장하기 등 외모 가꾸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레 그 역할이 좁혀지고 있다고 보았다. 남자가 능동적인 인간으로 성장해나갈 때 여자는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동성을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더 남자답게, 여자는 더 여자답게라는 규정의 억압을 받으며 남자는 일등, 여자는 이등인 등수 매김이 자리 잡게 되는데, 이런 구조는 생애 전반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폭력을 휘두르는 쪽은 남성이고 여성이 그 희생자가 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꼽는다.

 

특히 최근에는 몇몇 업체들이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뷰티 전용 서비스로서 '공주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5~8세 여아를 대상으로 리본놀이, 걸음걸이 연습, 영국식 티 매너 수업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것은 업체마다 수업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공주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모두 공주풍 드레스를 입고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38

 

저자는 이렇게 여자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공주 캐릭터에 감정이입 되어 외모강박증에 시달리는 청소년으로 성장한다면 성인이 되어서 당당한 사회인이 될 것인가에 회의적 시선을 보낸다. 남성이 만든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는 여성이 활동하기 불편한 모습이다. 비정상적으로 큰 가슴과 가는 허리, 높은 하이힐. 이제 이런 남성이 만든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여성이 자신의 자신감을 위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는 내용이다. 다소 과격한 내용도 있지만 현재의 여성다운 외모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는 관점은 수긍이 되었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를  강요하기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아름다움이 번져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t******e 2020.01.23.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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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에고..내 허리야..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에고..내 허리야.." 내용보기
1.언제나 외모는 정치의 전면에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듯이 여겨왔지만, 계급적, 성별 불평등에 따른 외모의 구별은 필수이므로, 개인의 자유나 취향이라는 것은 아주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외모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개인의 자유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이 전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한 내에서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cm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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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제나 외모는 정치의 전면에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듯이 여겨왔지만, 계급적, 성별 불평등에 따른 외모의 구별은 필수이므로, 개인의 자유나 취향이라는 것은 아주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외모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개인의 자유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인이 전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제한 내에서먼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cm가 아닌 1mm를.

- pp.62~63

 

솔직히 말해보자. TV나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를 보고 한번도 눈길도 안 주고 단 한번도 멈춰서 본 적이 없다는 사람, 발을 들라!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어릴 때부터 예쁜 것 잘난 것들을 너무도 잘 모셔왔다. 특히 여성의 외모는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왔다. 문제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에 여성은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진히 외모를 가꾸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외모가 볼품 없는 사람은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 그래서 오히려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 이 아이러니한 삶의 극접점에서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탄생한다. 아, 참, 이거, 참.

 

 

 

2.

이 모습은 정장이나 셔츠 차림, 짧거나 삭발한 머리가 남자로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성의 모습은 여성의 외모와 비교할 때 위협적이거나 폭력적 혹은 권위적이다. 지배세력의 외모나 패션은 곧 권력의 연습이거나 행사였기 때문이다. 만일 탈코르셋의 결과가 그와 같은 결과라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꽃이 아니라 불꽃이니까!

- pp.71~72

 

 이 책은 여성의 외모와 꾸미기에 관한 인문학 서적이라 볼 수 있겠다. 남성은 다양한 차림을 통해 힘과 권위를 내세우는 게 가능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 책의 핵심내용다. 여성은 성상품화가 되기 쉽상이며, 그러므로 인해 오히려 권위보다는 상업적으로 이용되기 쉽다. 말하자면,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인문학 책으로 여성의 아름다움과 외모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3.

아름다운 원피스나 낭만적인 여성복은 권력의 기능을 지니거나 권력을 연습하고 행사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성정장처럼 공격이나 방어 기능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여성 외모는 여성 몸에 자유를 주는, 여성 자신을 위한 아름다움이나 외모라고 보기 어렵다. 권력이 전혀 없는, 아니 권력에 속하지 은 외모는 곧 지배층의 외모 기능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 p.153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아는 분야도 아니어서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을 살짝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쉬우면서도 워낙 재미있어서 금방 읽어버렸다. 그리고 여성의 외모, 그리고 남성이 가진 권력적 외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사실, 얼마나 많은 매체에 얼마나 많은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성상품이 있는가. 우리는 이 성상품화된 여성의 외모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외면하려 애를 쓴다 해도 언제 어디서 그런 상품들이툭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4.

진실은 소년과 남성, 그리고 소녀와 여성의 성적 호기심과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의 사회화가 성차별적으로 다른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한 가부장적 성의식과 성차별의 사회화 환경에서 몰카물 제작유포 행위는 분명 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이므로, 남성들의 이러한 여성 몸에 대한 시선을 단순히 관음증이라 명명해선 안 된다. 음란물의 홍수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마치 청소년 사춘기의 청소년들의 자연스러운 과정인양 인식되기 때문이다.

- p.215

 

사실, 이 작품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남자들의 성적욕망이나 판타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성적욕망은 여성들에게도 있으며 성욕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성의식을 다루는데 있어서 남자들의 권위의식. 가부장적 사회에서 드러나는 폭력성. 그래서 성적도구로서 여자를 지배하려는 자세를 문제삼는다.

 

 

5.

사실, 재미는 있었지만, 약간의 불편함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남자들의 여성의식에 대해서 다루지만, 사실 바꾸어서 여자들도 남자들을 억압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인정한다. 남자들의 경우가 가부장적 성의식에 몰입되어 실수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 그래서 나는 결론을 못 내리겠다. 어떤 게 옳은 것인지. 이 책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도. 먼 훗날, 아주 먼 훗날. 내가 여성에 대해 잘 알게 되면 그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그때를 위해 오늘 좀 판단을 유보해둔다. 나 먼저 좀 잘 살고 나서... 에고..내 허리야....

 

- 이 리뷰는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h******o 2019.10.29.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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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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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책은    이 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탈코르셋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연희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세종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미학, 예술사회학, 페미니즘을 연구하면서, 일상에서 가장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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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 책은 

 

이 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탈코르셋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연희원,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세종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미학, 예술사회학, 페미니즘을 연구하면서, 일상에서 가장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론 눈에 보이지 않게 차별을 드러내는 외모와 패션의 정치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는 다수의 미학과 패션철학 관련 논문과 패션철학 관련 저서를 발표했다.

 

이 책의 내용은 

 

외모와 패션의 정치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의 통찰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책이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외모의 정치적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고마운 일이다.

다음과 같은 발언은 외모 지상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아름다움이나 외모가 단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는 것이다. (24)

 

권력은 외모와 패션의 위계서열을 통해 사회 전체의 계급, , 직업에 따라 외적인 질서를 가장 먼저 정리하고 배치한다. (61)

 

외모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정된 구별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지표이다. (62)

 

외모는 정치의 전면에 있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듯이 여겨왔지만, 계급적, 성별 불평등에 따른 외모의 구분은 필수이므로 개인의 자유나 취향이라는 것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외모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개인의 자유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62-63)

 

결과적으로 개인의 외모는 개인적이고 사적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개인이 위치하는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위치나 서열, 위계를 가장 크게 실감하는 정치적 영역에 속한다. 언제나 후자가 먼저이다. (64)

 

관점을 달리 해서 읽어보자.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 아니 ’- 가 얼마나 편향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 남여관계에 있어서.

 

예컨대 ,우리나라 고대 소설인 춘향전이 완전이 그 남자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것,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춘향전은 분명 그 남자 이야기였음에도 마치 공동의 가치이자 결정이었던 것처럼 전해 내려왔으니 말이다. 그 남자 이야기 춘향전에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데도 마치 그 남자 그 여자 모두 포함한 걸작처럼 이야기되기 쉽기 때문이다. (33)

 

그러고 보니, <춘향전에서 춘향의 목소리는 오로지 정절을 지키는 데만 소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도령과의 관계에서는 오로지 수동적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러네이 엥겔른 저)에 대한 비판

 

97~ 108 쪽에 걸쳐 펼쳐지고 있는 위의 책에 대한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우리가 잘못된 주장을 비판적으로 걸러내지 못하고 받아들일 때에 더큰 화가 된다는 것, 이 비판부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이런 용어 알아두자

 

타자 존재

타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존재 (Being - for- other)

여기서는 여성이 남자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163)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자체존재(Being - for - self), 또는 대자존재다. (164)

 

가스라이팅 :

요즘 이 말이 자주 보인다. 이 책에서도 역시 보인다.(171)

그러나 그 말을 설명해주고 있지 않아, 별수 없이 찾아보았다.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그 뜻이 무시무시한 말인데,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탈코르셋 운동의 정의

이 책을 읽은 김에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좀더 알아보았다.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을 말한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여성성이란 남성들이 남성성의 타자, 즉 남성들 안에 있는 타자로서 부정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여성에게 투사한 것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70)

 

(여성들이) 나의 꿈과 환상인줄 알았는데 사실상 남자들의 환상을 마치 나의 것처럼 꿈꾸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88)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예쁘고 아름다워지면, 그로 인해 받는 대우는 사람답게가 아니라 한낮 꽃과 같은 여자의 역할,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상으로서 끝없는 무시로 이어졌다.(139)

 

여성의 아름다움이 지니는 효용은 기껏해야 남성을 위한 번식이나 성적 대상화로서의 가치로만 전락시키는, 그래서 여성의 가치가 다양한 능력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 )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44-145)

 

시선의 비대칭성에서 권력이 발생한다. 나는 바라볼 수 없는데 누군가 나를 은밀하게 바라보고 있다면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따라서 나는 그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다. (216)

 

시선은 타자와의 관계이고, 나와 세계를 맺어주는 기본적인 매체이다. (224)‘

 

다시, 이 책은 

 

탈코르셋 운동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나,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저자에게 아주 적절한 분야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저자가 외모와 패션의 정치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과 관련된 많은 논문과 저서를 발간했기에 그렇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부분은 경청해야 할 발언이라 할 것이다.

 

한 사회나 문화권마다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관념과 성역할은 우리의 일상 생활 전 영역, 구석 구석에서 나타난다. 특히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외모를 통해 가장 명백하게 기호화되어 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성다움/ 남성다움으로 약호화된 기대 체계가 형성되어 있어 그 체계가 우리로 하여금 여성/남성의 외모로 구분된 한 사회의 의미적 세계에 들어가게 허용해준다.> (265)

 

우리가 이미 진입해 있는 이 사회가 어떤 체계로 구성이 되어 있나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체계를 지탱하는 한 기둥이 바로 외모라는 것, 여성은 여성답게 차려입고 행동 또한 그에 걸맞게 하라는 요구,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 외모지상주의를 낳게 했고, 더 나아가 남성주의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바라보게 하고,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 굳이 페미니즘 시각이 아니더라도 백번 공감이 된다.

남학교에서 공부 잘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라는 급훈이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한 자랑이 되는 세태에 이 책이 그런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데, 한 몫을 하면 좋겠다.

 

아,참!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전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해서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백여 년 전 당시 탈코르셋 운동이라 할 수 있는 쓰개치마 거부운동이 벌어졌는데, 그 시작을 전주 기전여학교에서 했다. 쓰개치마를 거부하는 운동을 시작하여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는 등 여러 고초를 겪었으나 결국 성공하여 그 뒤로부터 여성들이 쓰개치마를 안 쓰고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 여기 적어둔다. (49)

이달의 사락 s***h 2019.10.29.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탈코르셋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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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인문학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이려 들거든 속지 말아라.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단조로운 단어에 현혹될만큼 삶은 그렇게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것이 결코 아니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태동 비화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문명의 발생지인 그리스시대에선 오직 남성만이 아름다움을 향유했고 대상이 되었으며 적용할 상대였다.(p 90~)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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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인문학을 읽으면서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이려 들거든 속지 말아라.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단조로운 단어에 현혹될만큼 삶은 그렇게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것이 결코 아니다. 저자도 말했다시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태동 비화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문명의 발생지인 그리스시대에선 오직 남성만이 아름다움을 향유했고 대상이 되었으며 적용할 상대였다.(p 90~)

그렇다면 현대심리학인 진화심리학에서 바라본 생물학적 고정관념은 모든남성은 예비 범죄자이거나 타자존재로 바라본 모든여성은 어리숙한 존재라는 시각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 맞게 본 것 일까?

그런 아름다움이 언제부터 그 속성을 수동적이고 복종적이며 타자를위한 마법의 단어(p 144)로 이해됐을지, 언제부터 정치적이며 권력의 지배방식으로 이해하는 대상이 되었던가를 생각하게 했다. 음베르토 에코 기호학으로 박사를 한 저자의 시선은 한마디로 외모는 단독으로 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p 161) 기호는 언제나 한사회의 전체 의미연관 속에서만 도출되는 것이라며 독자적으로 형성되는것이 아니라는 애기다.


다만 그것이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아름답고자하는 여성적 욕구, 여권적 표현으로 억압과 족쐐의 시대적인 변화과정을 걷고 있게 된데는 나름의 권력적 색을 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여성운동의 한 부문으로 언급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라는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막연히나마 본질적인 그 고통과 입장을 이해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하필 탈코르셋일까, 

개인적인 코르셋의 기억은 과거 외국영화속 여주인공의 잘끈한 허리조임이나 유럽 왕정시대에 의복을 착용하기위한 2중 3중의 족쐐들을 지켜보면서도 어린마음에서도 참 애쓴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생각으로는 성인들의 삶을 모를때니 남자주인공을 향한 노력이 아닌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출하기위한 의도로 이해했다. 어린 마음에도..., 자신의 신체적 제약을 컨트롤 하기위해 자기필요에의한 도구 정도로 이해돼 신기하면서도 필요성에대해 내심은 의아했었다. 권력적 시선인 현실에서는 그것은 일종의 개화기 시대 조선의 쓰개치마(p 46~)였고, 19세기의 불루스타킹(p 172)이 의미하는 사회상을 내포한 권력적 블랙죠크라는 생각과 아울러서 21세기, 지금도 존재하는 아랍의 히잡과 히잡 트루퍼스 등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때문이다. 


또한 본문에서도 등장하지만 페미니즘의 일환으로 탈코르셋의 현대적인 주장으로 브레지어 등을 벚어던지자는 여성들이 늘어난다고 하는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다양한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는 미래 장신구 등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두 던저버리고 몸뚱아리로만 다니는 시대가 되는것은 아닐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러서는 사고하기가 멈칫하기도 했다. 


탈코르셋 운동이 한마디로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기위한 노동을 하지않겠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사회적인 시선의 저항으로 자신을 맞추지 않으려는 시대적 변화와 권리앞에 잠자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삶 자체가 어느정도 바뀔지, 또는 얼마많큼 변화할지 나름의 나아갈 길이 보이기도 한다는데엔 다는 아니겠지만 공감이 간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사회 전반의 주장과 논쟁, 권리 등 다양한 이해충돌의 쟁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여성운동의 한 형태적 발전 양상을 띠고있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탈코르셋은 이러한 다양한 시대적 변화상과 아울러서 여성적 이데올로기가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변화할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또한 됐다. 물론 혹자들은 여성들이 지금까지 자발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외모적 무기를 가지고 누려온 수헤나 헤택들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것인가를 가시돗게 반문하기도 한다.


본문에서처럼 코르셋에서 탈, 글자를 한자 붙이고 띰으로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끌고 있는 시대에 점점 상당한 논쟁의 중심에 선듯한 탈코르셋, 시대적 양상이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아닌 상호간 존중과 인정, 긍정적인 여권신장의 이해로 부정적인 아름다움에대한 절대적인 관점을 멈추고 진정한 내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나아갈 바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길목이 될지 지켜볼 수 있는 책인듯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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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 2019.10.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꽃보다 불꽃을 원하는 여성들의 날개 짓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꽃보다 불꽃을 원하는 여성들의 날개 짓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내용보기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SNS에서는 #탈코르셋 #탈코르셋인증 해시태그와 함께 화장기 없는 민낯의 사진,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 갖고 있던 화장품을 모두 버린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코르셋은 배와 허리둘레를 졸라매
"꽃보다 불꽃을 원하는 여성들의 날개 짓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내용보기

*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SNS에서는 #탈코르셋 #탈코르셋인증 해시태그와 함께 화장기 없는 민낯의 사진,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카락, 갖고 있던 화장품을 모두 버린 장면 등을 담은 사진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코르셋은 배와 허리둘레를 졸라매 날씬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는 교정용 속옷이다. 근래 들어 코르셋은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가부장적 시선을 일컫는 말로 주로 미용 때문에 여성을 옥죄는 ‘꾸밈 노동’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즉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꾸밈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 새로운 사회정의를 꿈꾸며,,, 아름다움의 반란, 탈코르셋 >>

시련이 닥치더라도 살아남아라. 절대로 희생자가 되지 마라.

누가 너를 때리면 너는 그 사람을 더 세게 쳐주어라.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 아름다움 다시 읽기,,, 아름다움의 심리학과 진화론 >>

여성성과 아름다움은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들로부터 원하는 성적, 감정적, 재생산적 서비스를 얻어내기 위해 가하는 물리적 테러와 폭력의 공포아래 남성을 기쁘게 해주려는 행동들이다. 비록 그 위협은 낭만적인 외양을 띄기에 알아 차리기 쉽지 않지만,,,,

<< 꽃처럼 아름다운 여성,,, 외모정치학 >>

여성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낭만적 사랑은,,,,

남성이 여성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한 정서적 조작 수단이다...

기사도 매너는 가부장제 성격을 모호하게 하는 효과만 가져왔으며,,

여성을 아주 협소하고 제한적인 행동영역에 가두었다...

<< 음란물과 몰카 속 아름다움 감각 >>

감각(시각)은 보편적인 것이나 천성적인 것이 아니다.

시각을 비롯한 감각적 지각이나 인식은 물리적인 행위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행위로서 특정한 사회, 역사적 정황 하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시각은 눈 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회계급이나 남성적(여성적) 습관에 의해 습득되며,, 그들의 결정적 특성을 반영한다.

 

<< 아름다움과 남녀 몸의 감각적 분배 >>

세상은 여자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자신을 낮추라고, 내세우거나 설치지 말라고,

야망을 가지되, 지나쳐선 안된다고,

성공을 하기 해야 하지만, 너무 크게 성공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왜 남자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까요??

세상은 여자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부추깁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커뮤니티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심하다. 한쪽에선 ‘여성이 화장하고 자신을 치장하는 건 자기만족의 하나이므로 사회적 억압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꾸밈 노동에 시달리도록 세뇌당했기 때문’이라고 맞선다.
여성 화장은 세뇌당한 '꾸밈 노동?'...탈코르셋 운동 둘러싼 페미니스트들의 설전인듯하다.

 

추천합니다. 강추 !!!

h*****6 2019.10.2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속지 말아라, 그러나 확증 편향은 위험할지니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속지 말아라, 그러나 확증 편향은 위험할지니" 내용보기
외모 지배 /피지배 불평등은 전근대사회 뿐 아니라 특히 남녀에 있어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외모나 아름다움까지 남녀를 비교하고 대결을 하게 하느냐는 물음에 하나의 물리적인 형식의 기호로서 외모는 단독으로 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한 사회의 전체 의미연관 속에서만 도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즉 외모나 패션은 여성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당
"아름다움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속지 말아라, 그러나 확증 편향은 위험할지니" 내용보기

외모 지배 /피지배 불평등은 전근대사회 뿐 아니라 특히 남녀에 있어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외모나 아름다움까지 남녀를 비교하고 대결을 하게 하느냐는 물음에 하나의 물리적인 형식의 기호로서 외모는 단독으로 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한 사회의 전체 의미연관 속에서만 도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외모나 패션은 여성 독자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남녀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원하는지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모의 형식이란 언제나 남녀의 권력 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의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남성의 권력이 강할수록 남성의 성적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남자를 행여 위협하는 여성의 그 어떤 몸짓이나 외모도 여성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외모 지배/피지배 불평등은 남성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외모의 편향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사실 남성이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는 사회문화적으로 또는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다시 말해 본능적으로 외모에 끌리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오스틴대 주디스 랑글루아 교수는 아기들이 매력적인 얼굴과 그렇지 않은 얼굴을 잘 구별했으며 외모에 따라 행동 또한 달라졌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유모의 외모가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기까지 했다.

랑글루아 교수는 결론적으로 “(여아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남자 아이들은 유모가 예쁜 경우에 더 자주 접근했는데, 이것은 훗날 아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파티나 다른 사회적 환경에서 일어날 법한 상호작용의 전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오랫동안 외모나 신체적인 매력은 사회적으로, 유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돼 왔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모 지상주의는 진화 탓이라기보다 남성 중심의 사회적 위계 질서 속에서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이 갖는 외모 선호는 원인이 본능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어쨌든 합리적 이성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모계 또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된다면 남성에 대한 신체적 특성이나 외모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과연 저자가 말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할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더 나은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남성이 여성을 볼 때 가슴, 다리, 성기 등으로 성적 특성만을 본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은 사춘기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페니스파시즘을 학습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여성을 보는 대한민국 남성의 시선이나 초점은 음란물의 초점과 거의 동일하다. 여성을 볼 때 가슴, 다리, 성기 등으로 성적 특성만을 보게 된다.” (224쪽)

 

이에 반해 여성은 남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훈련을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받아온 것이 아니어서 그것이 습관화되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일까?

2011년 시장 조사기관 '아이 트랙 숍'(EyeTrackShop)에 따르면 연구진이 남녀 50명씩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키니 여성을 볼 때 남성은 얼굴, 여성은 몸매에 가장 먼저 시선을 두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은 이어 가슴과 허벅지 등 신체부위로 시선을 옮기는 것으로 나타났고, 여성은 몸매 다음으로 얼굴과 비키니 가격을 살피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영국 브리스톨대 펠릭스 머서 모스가 이끈 연구진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회화 등의 다양한 사진을 19~47세의 남녀 두 그룹(26)에게 제시하고 그 시선을 기록했다. 그 결과 주목하는 장소나 시선을 이동하는 범위가 남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시선은 1~5개소의 핫스팟에 모였는데 주로 사람의 얼굴 중 눈과 신체 일부로는 손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보는 영역이 좀 더 넓고 남성이 주시하는 위치보다 약간 아래쪽 얼굴과 이외의 부분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녀의 시선 차이(남성 파란색, 여성 붉은색)

 

는 저자가 말한 대한민국 남성이 여성을 볼 때 가슴, 다리, 성기 등으로 성적 특성만을 본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문 어디를 봐도 근거가 없으며,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의 연구를 봐도 남자가 성적 특성만을 본다는 결과도 나와 있지 않다. 대한민국 남성이 영국 등 외국 남성과 다른가? 나는 오히려 저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확정적으로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책은 탈코르셋 인문학이라고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고 있으니 그리 한 것은 알겠지만, 인문학적 식견이나 통찰에는 부족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자신이 보는 것만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내가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어보니 대다수 고발적인 성격이 짙었다. 다양한 화두를 거머쥐고는 있으나, 급한 마음에 얼른 이슈로 꺼내려다보니 섣부른 글이 되고 만다. 어디, 아동심리와 정신분석을 전공한 미국 오하이오대 스티븐 컨 교수가 프랑스 인상파 그림에서 발견한 것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라. 이것은 하나의 예시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9.10.13.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