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인간이 수호해야 할 최후의 전선
"인간이 수호해야 할 최후의 전선" 내용보기
'침략전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참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전선은 양 진영이 대치하며 쉽게는 판가름 안 날 전황을, 대체로는 기다란 지형에서 유지할 때 쓰는 말인데(기상학에서도,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공기덩어리가 마주할 때 씀), 그게 '침략'과 호응이 잘 되는 개념일까? 하긴 침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사후에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긴 하다. 침략하는 입장에서는 '
"인간이 수호해야 할 최후의 전선" 내용보기

'침략전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참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전선은 양 진영이 대치하며 쉽게는 판가름 안 날 전황을, 대체로는 기다란 지형에서 유지할 때 쓰는 말인데(기상학에서도,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공기덩어리가 마주할 때 씀), 그게 '침략'과 호응이 잘 되는 개념일까? 하긴 침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사후에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긴 하다. 침략하는 입장에서는 '전선의 형성'이 결코 달가울 리 없고(전선 따위의 형성이 없이 빨리 끝나야 '침략'한 보람이 있으니까), 당하는 입장에서는 '방어전선, 격퇴작전'을 생각했으면 했지 자측이 침략하는 것도 아닌데 저 말을 쓸 일이 없다.

1964년에 개봉되었다는 이 고전의 타이틀은 한국 수입(아마 꽤 지나서였겠지만) 후 우리가 멋대로 붙인 제목은 아니고, 일본인들이 멋대로(ㅋ) 걸어 놓은 간판 이름이다. 그들도 이 어구를, 문예물에서말고 다른 경우에 두루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말은 얼마든지 신선하고 전례 없던 용도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절묘한 재치를 발휘했다거나 여튼 구조에 내재한 규칙을 준수해야 그게 생명력이 긴 법이다. 저런 말을 (엉터리 번역 제목 말고) 달리 어디서 쓰는 걸 봤나 이거다. 내 생각에는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 '전선(영어 원제와는 무관하게)' 자가 들어가는 게 유행(물론 먼저 일본에서)을 탔고, 이 영화도 원제에 '침략'이 있겠다 후렴구처럼 막 갖다붙여 쓴 것 아닌가 싶다.

죄수에게 사면,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러시아 등의 '형벌 부대'와는 개념이 크게 다르고, 최고위층의 특권을 활용해서 능력 좋은 전과자들에게 필사적인 동기를 부여하여 가망 없어 보이는 미션을 수행케 한다는 스토리는, 이 영화가 시초격도 아닌데다, 문예뿐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거래를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자주 이용해 온 방법이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추억 속에 담고 오래 곱씹으며 추억의 매개로 삼을 법한 층이라면 꽤 나이가 많을 텐데, 그저 이 영화를 B급 오락물의 틀에만 고정시키고 감독의 의도를 애써 축소하려는 감상 태도가 대부분이다. (누구처럼) 무리수를 둬 가며 있지도 않은(ㅋ)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가며 작품에 깃든 지난 시절의 아련한 감상을 곱게 단장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아 뭐 본인이 싫담 어쩔 수 없지만.

주인공들(죄수들)이 왕년에 한가닥 했다면서 화면 속에서 개인기를 보여 주는 게 너무 없지 않나 싶다면, 저때(1960년대)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의 개성, 화려한 왕년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실연을 화면에서 구현하는 게 일종의 금기였다. 폭력, 성애씬, 심지어 단순 노출이라 해도, 홍수처럼 무분별하게 표현의 자유를 빌미 삼아 스크린에 쏟아져 나온 건 이때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야 한다. 하물며 저 점잖으신 스튜어트 그렌저가 화면 중심에 떡 버티고 있는데 사정이 오죽하겠는가. 다만 이 영화에서 요즘 관객들에게 충격을 줄 만한 건 밀라(스펠라 로진 扮)가 모유수유하는 장면이 유두 노출(안 되게 할 수 있었는데)까지 포함해서 나온다는 점이다. 요즘 일각에서 '許하라'를 외치는 이슈이기도 해서, 와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명작이라 재평가 받을 만한 대 업적... 은 전혀 아니고 그냥 무개념의 소치이다.

두렐 역의 헨리 실바가 아기와 그 엄마를 빤히 보는 건 어떤 음흉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자신도 그런 모습이 대체로 꺼려지는 문화권에서 왔기에 일종의 컬처 쇼크이고, 다음으론, 이게 감독의 진짜 의도라고 봐야 하는데, 그게 일종의 감동이자 영혼 갱생의 계기이다. 이 타락한 자(전문 암살자였다가 수감됨)가 (현지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양육 활동의 일부인) 그 장면을 보고 뭔가 선량한 초심이 확 각성되었음을 감독이 표현한 것이다('와, 휴머니즘의 대가일 뿐 아니라 페미니즘의 선구자 맞았네?'). 여기에 대해 밀라의 반응도 꽤 자연스러운데, 시선이 당혹스럽다거나 부끄럽다는 쪽이 아니라, 마치 여자 머리에 꽂은 장식을 빤히 보는 남자한테 '너(당신), 그게 뭐라고 정신이 팔리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 표정이라서이다. 물론 이 밀라 캐릭터가 각별히 성격이 대범해서일 수도 있다.

이 고전에서 꽤 유명한 장면이기도 한데, 나치 병사들에게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아기(생후 몇 개월 안 된 진짜 갓난아기)의 입을 꽉 막고 몇 분을 기다린 후, 상황이 호전되자 다시 아기를 들여다 보는 두렐이 비로소 아기가 질식해 죽었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탄에 빠져 몸부림치는 씬이 나온다. 헨리 실바의 경제적이고 절제되었으면서도 심도 있는 감정 표현이 참 일품이었는데, 내 개인적 평가로는 <대부 3>에서 딸 메리(소피아라고 쓸 뻔)를 잃고 오페라하우스 계단에서 오열하는 알 파치노의 그것보다 훨씬 나았다는 느낌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여기서 이 감독의 진짜 장기는 액션이 아니라(그의 주전공은 여태 B급 액션이었지만) 이런 휴머니티, 확고한 기반과 진정성을 가진 주제의 표출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두렐은 '여태 그렇게 살아온 내가, 운명의 장난으로 여기서 아무 죄 없는 생명을 또 죽였단 말인가!'라며, 마치 그리스 고전 비극의 주인공처럼 '위대하고 고결한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여기서 밀라 역의 스펠라 로진도 꽤 인상적인데, 그렇게 힘들게 얻은 자식이자 비명에 간 남편의 유일한 흔적인 아기를 잃었음에도, 이 사람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과 아기를 살리려다 그리되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자신의 슬픔은 오히려 꾹 누르며 두렐을 위로하는 것이다(위로도 천박하게 하지 않고, 정말 자신의 마음만 딱 전달하는 식으로 함). 요즘은 배우의 이런 연기를 찾아보기 힘들고, 감독조차 이런 식으로 연기를 지도하는 이가 없다. 중국어로 영화감독을 '도연(연기의 지도)'이라고 하는데(전도연 아님), 개인적으로 이 깊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까지 말하겠다. 혹 오해하는 (아주 못된) 관객이 있을까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밀라의 두렐에 대한 감정은 '새 연인(이라면 뭐 전남편의 애가 죽든 말든)'에 향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모성애에 가까운 것이다. 즉, 지금 키우는 아기의 '다 큰 버전'이 바로 두렐이겠으며, 그래서 모유 수유 장면에서 '뭘 보고 그래?' 같은 표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했겠다. 이 표정은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박물관이...> 1편에서 아주 키 작은 영감이 성격은 제일 더러운 코믹 연기로 많은 이들이 기억할 만한, 지난 시절의 명배우 미키 루니(몇 년 전 고인이 됨)가 여기서 폭발물 전문가로 나온다. 스튜어트 그렌저가 여기서 머리 뿌리가 희끗희끗한 노소령(저 나이에 대령도 아니고)으로 나오는데, 강직하고 신실한 마스크에 여튼 동시대인들의 존경과 공감을 부르는 (비록 틀에 박힌 것이지만) 연기와 외모가 새삼 눈길을 끌었다. 사람은 그 내면에 뭐가 들었건 간에 일단 생긴 것만으로도 팍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신사가 그런 케이스 아닌가 싶다. 사실상 주인공이자 이 스쿼드의 리더라고 봐야 할(정신적 지주이자 세부 작전을 자기가 다 짬) 캐릭터는 '로카'인데, 그렌저와 비슷한 또래인 대배우 랄프 발로네가 나온다. 이 사람을 모르는 세대라 해도, <대부 3>에서 진실된 추기경, 나중에 교황이 되는(그리고 마피아 세력에 의해 독살되는) 성직자 역을 맡은 바로 그 사람이다. 이게 그때로부터 근 27년 전인데, 기본적인 이목구비가 그대로 있는 데다(반면, 전성기가 같은 데다 <대부 3>에 함께 나오기까지 한 일라이 왈락은 같은 또래인데도 팍 늙어서 완전 노인인 모습이라는 게 신기), 사실 장기처럼 보이는 표정 연기 패턴이 완전히 같아서, 어 이거 그 교황 아냐? 하며 바로 알아들 보지 싶다.

(스포일러)
이 영화는, 이른바 '미션 임파서블'을 실현하는 레니게이드 크루의 그 아기자기한 스릴러성 진행에 진짜 매력이 있다기보다, 앞서 지적한 휴먼 드라마 요소, 그리고 불과 종료 5분을 남겨 두고 확 줄기를 틀어버리는 일종의 반전성 결말에 (혹은 기발한 갈등 해결) 무게중심이 놓인다. 힘들여 구출해 온 요인이 알고보니 '닮은 가짜'였다는 설정은 역시 이 영화 말고도 여러 전쟁 배경 작품에서 자주 채용되는 편인데, 주인공들은 이 가짜를 총구로 위협하여, 저 병사들(이탈리아군)에게, 태도를 바꿔 나치에 항거하라고 연설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가짜 역시, 매우 성공적으로 진짜 흉내를 낸 후 좌중을 장악하고는, '니들이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제 키는 내가 쥐는 거다'라며 비열한 웃음을 짓는다. 마치 해방 직후 소련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평양에서 연설한 김일성이, 온전한 신분과 권위와 자격을 취득하듯. 이러면 주인공들의 사명은 불발되는 건데...

간단한 모션 하나만으로 외통수에 몰렸다 장군을 부르게 된 '가짜'의 한 수에 맞서, 두렐은 영원히 이 자를 순교자로 만들고 올바른 대의의 향방을 항구히 굳혀 버릴, 말 그대로 '신의 한 수'를 눈깜짝할 사이에 두고 만다. 이 대목에서 각본의 엄청난 깊이와 내공이 느껴졌는데, 물론 원작 소설 같은 건 본래부터 없는 기획이다. 살인자로서 살아 온 삶에 대해 조용하면서도 절절한 통회를 보여 주는 두렐의 행보가, 마치 평생 B급 연출자로 생을 낭비하다 간만에 대작 기획을 맡아 진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감동과 인간애를 빚어내는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s****o 2017.06.11. 신고 공감 0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