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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다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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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하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젊은 날의 기억들이 다방과 함께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다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엔 너무나도 흔한 것이 다방이었지만,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나 소도시 혹은 읍면소재지가 있는 시골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나마 예전의 다방과는 달리 허름하고 조금은 궁상스럽게 보여 선뜻 들어갈 마음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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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방하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젊은 날의 기억들이 다방과 함께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다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엔 너무나도 흔한 것이 다방이었지만, 지금은 도시의 변두리나 소도시 혹은 읍면소재지가 있는 시골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나마 예전의 다방과는 달리 허름하고 조금은 궁상스럽게 보여 선뜻 들어갈 마음이 나질 않는다.

 

   내가 처음 다방이라는 곳을 들어가본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들에게 성인이라는 증표는 다방과 당구장과 술집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만 보던 다방을 다른 이들의 눈치보지 않고 또 다방에 들어가서도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제일 먼저 했던 일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 다방은 생활의 일부였다.

 

   지금도 몇 개의 다방은 아련하게 생각난다. 광화문에 있었던 새문안다방, 종로2YMCA 건너편 종로서적 옆에 있었던 월광다방, 덕수궁 세실극장 옆에 있었던 성공다방이 그것들이다. 새문안다방은 처음 들어가 본 다방이자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2층에 있던 그 다방은 계단이 목재로 되어 있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자국소리가 운치 있었던 그곳에서 나는 연애의 환희도, 그리고 실연의 쓰라림을 맛보기도 했다. 월광다방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 들과의 연락처였다. 의례 약속은 그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번 약속을 하면 만나기 전에는 변경을 할 방법이 없었던 시절, 월광다방의 전화와 메모판은 지금의 휴대전화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다방이 꼭 약속이 있어서 가는 곳은 아니었다. 혼자서 아니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곳도 대부분 다방이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인생을 논하기도 했고, 쓸데없는 농담으로 시간을 죽이기도 했고, 그것도 지겨우면 성냥통의 성냥개비를 모두 쏟아 놓고서 탑을 쌓기도 했다. 저녁때가 되어 DJ가 출근을 하면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여 듣기도 했다. 그런 다방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방 갈 일이 줄어들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을 제 때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의 길 총서로 발간한 이 책 [다방]은 그런 다방의 성격과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부제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가 말해주듯 초기의 다방은 도시와 예술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책은 인천지역 다방의 변천사를 위주로 논하지만, 전국 어느 곳에 있던 지를 불문하고 그 성격과 역사는 거의 비슷하다.

 

   커피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구한말 개항으로 서구 문물이 수입되던 때였다. 서울에서 최초로 커피를 팔았던 곳은 프랑스계 독일여성인 손탁이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이었고, 최초의 다방은 1913년 남대문역에 문을 연 남대문역 깃샤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대적 의미의 다방이 등장한 것은 3.1운동 이후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커피와 함께 유성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방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일본인과 일부 조선의 상류계층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다방은 차를 마시고 한담과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때 드나든 사람들은 인텔리계층과 문화예술인들 이었으나, 1930년대 들면서 화가, 신문기자, 유한청년들, 그리고 배우, 여급, 기생에 이르기까지 다방을 출입하는 계층이 다양해졌다고 한다. 당시의 다방은 일반인들이 이용하던 차를 파는 다방과 소위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들던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으로 구분되었다.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팔던 다방에서는 미술전시회나 시집출판 기념회 등이 열려 일종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후, 해방과 전쟁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다방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다방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절망과 허무를 딛고 삶을 확인하고 위안하는 심리적인 장소역할을 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방은 우리가 젊어서 보았던 형태로 바뀌었다. 자본투자자인 여주인과 다방일선을 책임지는 마담, 그리고 차를 나르는 레지를 두고 영업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커피이외에도 레몬차나 쌍화차 등이 메뉴에 추가되었다. 커피에 달걀 노란자를 띄워주는 모닝커피가 등장한 것도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수많은 무직자들이 집을 빠져나와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회에서 다방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집합소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다방의 전성기는 1960~1970년대라고 한다. 특정한 다방에 근거지를 둔 다방회사들이 생겨났고, 거기에 맞춰 다방사장들이 범람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메모판에는 메모지들이 항상 빈자리없이 꽃여 있었고, 다방전화는 사람을 찾는 전화로 불이 났다. 다방마다 공중전화가 설치되어 있었고, 다방 이름이 들어가 있는 광고용 성냥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주기도 했다. 나도 한 때는 그런 성냥갑들을 모으기도 했는데 그렇게 모은 성냥갑들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런 다방들이 1980년대 들어 분화하기 시작했다.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고, 커피크림이 국산화 되면서 다방에 가지 않아도 다방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다방이 쇠퇴기에 접어든 것이다. 커피자판기는 이를 부채질했다고 한다. 다방들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형태로 변신을 시도했다. 종일 DJ가 있는 음악다방이 속출했고, 일부는 고전음악만을 틀어주면서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심야다방이 출현한 것도 그쯤이었지 싶다. 자주 가던 종로2가의 월광다방도 고전음악 다방이었다. 이어서 카페와 커피숍의 등장으로 다방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등장과 함께 다방은 우리 곁에서 사라져갔다.

 

   저자는 전통적 다방이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 배경에는 사회의 변화, 생활양식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방의 변천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사회의 변화, 도시의 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이기에 우리의 풍속사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다방, 그 다방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사회의 변천을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서민들의 고통과 애환을 느껴볼 수도 있다. 커피와 담배 그리고 환희와 쓰라림이 겹쳐지는 곳, 그 다방들이 그립기만 하다.

k*****1 2017.07.29.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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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예술의풍속화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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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고 쓸쓸해지는 주말 아침은 뭉기적뭉기적 거리게 된다. 10분만 더 이불 속에서 꼼짝하지 말자 혼자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리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모니터를 보니 택배 아저씨다. 기다리던 책이 도착한 것이다. 물렁한 이 아침은 택배 아저씨가 가져가고, 프롤로그, 에필로그부터 훑어 보는 동안 푸릇한 숨결은 다시 너울대기 시작한다.   어릴 적 프리마 맛이 우유 맛이 나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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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지고 쓸쓸해지는 주말 아침은 뭉기적뭉기적 거리게 된다. 10분만 더 이불 속에서 꼼짝하지 말자 혼자 머릿속으로만 중얼거리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모니터를 보니 택배 아저씨다. 기다리던 책이 도착한 것이다. 물렁한 이 아침은 택배 아저씨가 가져가고, 프롤로그, 에필로그부터 훑어 보는 동안 푸릇한 숨결은 다시 너울대기 시작한다.

 

어릴 적 프리마 맛이 우유 맛이 나는 것 같아서 어머니 몰래 먹었던 기억이 난다. 커피는 카페인 때문에 먹지 못하게 해서 그랬던 모양이다. 

커피를 마신다. 일요일 아침 다방 커피로 마음을 따듯하게 하고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이라는 책을 읽는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인천을 사랑하는 김윤식 시인의 신간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다방이라는 주제로 한 권의 책이 된다. 다방이란 공간은 언제 생겨났으며,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지금은 간간이 눈 크게 떠야 보일까 말까 하는 다방. 김윤식시인의 감성으로 엮어 놓은 책 다방의 발자취를 찾아가본다. 바쁜 삶으로 뒤돌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우리네 삶 속에서 시인이 엮은 다방은 왠지 설레고, 궁금하게 만들고 잠시 더 머무르게 한다. 옛 추억과 그리움, 따듯함, 그리고 미소 지을 수 있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다방의 변천사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정답게 채워가 본다.

 

끝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는 다방에서 미술 전시회나 시화전, 사진전이 열리곤 했다고 한다. 김윤식 시인께서 1970년대 말 어느 가을날 시 낭독을 어설프게 했던 다방이 은성다방이라는 점도 신기했고, 시인 이상이 경영하던 다방 '제비'의 성냥갑 표지 사진은 재미났고, 소설이며 노랫말에 등장한 커피 맛은 꽃맛도 있었을 것이고, 고독도 있었을 것만 같았다.

 

다방에 한두 번 가봤던 기억이 난다. 다방 세대가 아니라서 호기심 반으로 책을 읽어 보았다.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책은 1부, 2부, 3부, 4부, 5부로 나뉘어 다방의 변천사를 그렸다. 인천문화재단 '문화의 길' 총서는 역사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그려가는 새로운 문화지도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

 

어쩌다 '그 겨울의 찻집' 이란 노래를 들을 때면 '다방'이 생각날 듯 합니다. 올겨울 '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이란 책으로 추억을 되살려 보는 건 어떨까요?^^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l*****6 2012.11.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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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예술의 풍속화다방글.사진: 김윤식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일: 2012년 11월8일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하는 헌책방 ‘보물섬’에 갔다. 근래 주변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있어서 자주 방문하게 된다. 이 책을 사서 읽었던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헌책을 조용히 살펴본다. 몇 권의 책을 골라서 샀다. 가격은 1권에 겨우 3,000원에서 4,000원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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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예술의 풍속화

다방

글.사진: 김윤식 

출판사: 한겨레출판 출판일: 2012년 11월8일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하는 헌책방 ‘보물섬’에 갔다. 근래 주변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있어서 자주 방문하게 된다. 이 책을 사서 읽었던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헌책을 조용히 살펴본다. 몇 권의 책을 골라서 샀다. 가격은 1권에 겨우 3,000원에서 4,000원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가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들이 헌책에는 담겨 있다. 


시인 김윤식이 쓴 이 책은 원래 인천문화재단이 기획한 ‘문화의 길’ 총서의 하나이다. 처음 재단으로부터 다방에 대한 글을 의뢰 받고 그는 어떻게 글을 써야 되는가 참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시인이나 화가나 소설가 같은 예술가들은 오히려 술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그가 말한 대로 아마도 인천지역의 술집에 대해서 글을 써달라고 했다면 오히려 쉽게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그는 이 의뢰를 수락한 것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1947년생인 인천 출신의 시인에게 있어서 다방은 그의 인생 전성기를 함께 한 것을. 내 어린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드문드문 다방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유명했던 명동의 한 다방에서 미팅을 했을 때도 있었으니 나는 사라져가는 문화의 한 단편을 직접 체험했던 것일 것이다. 


커피는 구한말 서양의 선교사라든지 외교관을 통해서 유입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서양식 호텔인 손탁 호텔을 통해서 커피가 판매되었다. 초기의 다방은 영화감독, 시인, 화가와 같은 예술가들이 처음으로 운영했다. 요절한 천재 이상이 유명한 다방 ‘제비’를 운영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초기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었다. 예술가들이 담소를 나누었고, 이들의 작품을 위한 전시회장이 되기도 했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도 이러한 다방의 기능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예술가들은 여전히 다방을 중심으로 모였다. 70년대가 되면 이제 다방은 정말 많이 늘어나게 된다. 일반인도 애용하는 장소가 되고 이전과는 다른 영업스타일이 정착된다. 김윤식이 인용한 민병욱의 글을 보자. 


그곳은 거리의 응접실이었다. 만인의 사무실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다. 한편으론 문학과 예술을 불태운 아지트였고 맛선과 데이트의 중심이었다. 나이 든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대학생의 공부방, 직장인의 휴게실이기도 했다. 실업자의 연락처였고 회사없는 ‘사장님’의 둥지였다. 의자 깊숙이 들어 앉아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담소하는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다방의 전성시대는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과 새로운 스타일의 카페와 커피숍이 등장함에 따라서 급속하게 축소되게 되었다. 노령층이 가는 낙후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다방도 그 단골들이 점차 세상을 떠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황혼기의 다방은 그렇게 활발하게 기능했던 옛 기억을 담고서 빠르게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서 문득 나는 서글픔이 느껴졌다. 그렇게 어쩌면 사람도 그와 함께 했던 것들도 세상에서 아주 조그만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s****t 2019.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