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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근사해-염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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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풀다가 결별이라는 말의 뜻을 물어왔다. 잠깐 멍해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별이야.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거. 만났다가 헤어지잖아. 실없는 농담을 곁들였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함. 또는 그런 이별이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를 입안에 넣고 굴려 보았다. 누군가와는 기약 없는 이별을 했고 한 상태이기도 한 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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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풀다가 결별이라는 말의 뜻을 물어왔다. 잠깐 멍해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별이야.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거. 만났다가 헤어지잖아. 실없는 농담을 곁들였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다. 기약 없는 이별을 함. 또는 그런 이별이라는 뜻을 가진 그 단어를 입안에 넣고 굴려 보았다. 누군가와는 기약 없는 이별을 했고 한 상태이기도 한 어정쩡한 시간이다. 바람은 어제보다 오늘이 차게 불어오고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그 바람에 대해서도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염승숙의 단편 「충분히 근사해」를 읽으면서 결별, 바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같은 단어가 수시로 떠올랐다. 대학교에서 만났던 친구 조를 잃은 '나'의 감정에 한없이 침잠해 들어갔다. 한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한 시간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다. 이를테면 그날의 대기 상태에 따른 날씨의 기분을 공유하고 두서없이 나누었던 대화의 조각을 떠올리는 일 같은 것. 그와 함께한 시절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하게 떠올려지는 기억 때문에 우는 순간 같은 것. 아름다울 수 없는 것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간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기꺼이 감동한다.

'나'는 카드 만드는 회사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일한다. 함께 일한다고 쓸 수 없는 건 그들은 같은 공간을 쓰고 있을 뿐이지 홀로 혹은 따로 일하는 것처럼 유대가 없기 때문이다. 치마를 입었는지 바지를 입었는지만 관심 있어 하는 동료가 있고 따위, 나부랭이, 하여간 여자들이란이라는 말을 수시로 달고 사는 상사가 있다. 당장의 생계가 아니라면 차라리 결별하고 싶을 정도의 감정밖에 없는 사람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오래전 조와 함께 영화를 찍을 뻔했던 연극배우를 만나러 간다.

조가 죽은 줄 모르고 문자로 안부를 물어온 사람이었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가지지 못했던 그의 추억을 나누어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남은 생을 근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조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충분히 근사하지 않은 세계에 살면서 근사한 생으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든 내일에 대한 낙관과 기대로 삶이 지속되리라 믿었다. 균열은 미세하게 시작되고 결말은 파괴였다.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은, 남겨진 이가 나아가야 할 힘이란 대체 무엇일까를 「충분히 근사해」는 물어온다.

조각난 대화 속에서 겨우 건진 단어나 말의 분위기 일 수도 있고 일상을 버텨가다 안부가 궁금해 물어온 이와 바람이 부는 것을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떤 날의 분위기와 냄새가 떠오르면서 의미 없이 나누던 이야기를 순식간에 떠올리며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람을 볼 수 있는 건 흔들리는 순간을 목격할 때뿐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제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안간힘을 우리는 본다. 죽은 이도 마찬가지이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늘 곁에 있음을 우리 마음의 흔들림으로 머뭇거림으로 슬픔으로 찾아오는 기억과 때론 환희의 순간으로 인지한다.

기약 없는 이별을 감행하고 있지만 우리의 생도 조만간 기약 없음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머무는 순간까지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비루한 지금의 시간도 충분히 근사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고 아름다움은 기억이 될 수 있는 남겨짐이 된다면 충분히 근사한 일이 된다. 


s*****m 2019.10.08.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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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이든 진실은 어디로은 가버리고 시간에 마모된 인간만이 남아 있다.ㅡㅡㅡ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갖는다는 건 슬픔을 줘...일생 가닳을 수 없는 곳으로 가닿고자 하니까 인간은 슬프지....도달하고 싶지만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살면서 마음속에 품고만 있어야 하니까 인간은 슬프다.나도 그렇고.ㅡㅡㅡ나는 나를 일으켜세울 수 없고 결정적으로 내 안에서 뭔가가 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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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이든 진실은 어디로은 가버리고 시간에 마모된 인간만이 남아 있다.
ㅡㅡㅡ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갖는다는 건 슬픔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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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가닳을 수 없는 곳으로 가닿고자 하니까 인간은 슬프지....도달하고 싶지만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을 살면서 마음속에 품고만 있어야 하니까 인간은 슬프다.나도 그렇고.
ㅡㅡㅡ
나는 나를 일으켜세울 수 없고 결정적으로 내 안에서 뭔가가 죽어버렸다는 것만을 인지했다. 내 안에서 어떤 빛과 같은 것이 순식간에 꺼져들었고 나는 순순히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감길 반복하며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런 불길한 예감만이 비바람처럼 나를 휘감고 젖어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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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비극을 지렛대 삼아 양지로 건너온 나의 걸음을 돌아봤어야 했다고. 속죄해야 했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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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복원되어야만 한다. 거듭 반복되는 복원의 무한속에서 복원은 그저 한시적인 재현일 뿐, 소설이나 상실을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니 회복이란 더더욱 가능하지 않은 것.
ㅡㅡㅡ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 짐작에 짐작을 거듭해, 최선을 다해 오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그의 고통을 짐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그러니 어쩌면 짐작만이 삶의 전ㅂ이며 짐작하는 인간은 고독하다.
고독은 이미 저멀리에서부터 함께 온 것. 누구에게나 얻에서나 고독은 오래전의 것이었고, 이 순간의 고독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모두가 정처 없이 상처로 얼룩졌던 그때 그 순간의 고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ㅡㅡㅡ
진심을 알기 위해 짐작해야 할 테고 사랑하기 위해 오해해야 할 것이며 고통을 이해한다고 믿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사의 행과 불행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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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라고, 애쓸것 없다고, 인생은 그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목적지나 종착지도 없이 달려나가는 행위라고,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리며 인간은 누구나 끝내 지쳐버리고 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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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치지 않아볼게, 네 말대로 이렇게 되어오는 동안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모두 다 나의 탓은 아닐 테니까. 이건 자책이 아니야.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애. 이해하고 오해한 고독의 시간들을 내 것으로 그려 오려 한다.
ㅡㅡㅡ
기억은 때로 잔인한 구석이 있다.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처음인 듯 재생되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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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5년차의 작가지만 사실 염승숙 작가는 내겐 좀 낯설다.
그녀의 단편 하나정도는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단편집임에도 읽는 속도가 더뎠던 이유는 우리 시대의 상실과 아픔을 그려냈기에 묵직해서였다.
한편 읽고 며칠 쉬다 한편 읽고의 패턴이었달까.

등장인물들은 무심한듯 하지만 상대를 신경쓰며 배려하고, 시종일관 하나같이 쓸쓸해보인다.
소설속 사회는 우리사회와 다름없이 차별과 편견이 난무하고, 잔인하고 모욕을 주는 행위를 일삼는 곳으로 표현된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의우울함과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세계에서의 좌절감 속에서도 인간은 고군분투해가며 버텨내고 또 살아간다. .
.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라는 제목과는 역설적이게 소설속 내용은 어둡고 쓸쓸하고 아픔이 가득하지만 그에 반대로 작은 행복이나 아름다움을 곳곳에 세심하게 배치해두었다.
꾹꾹 눌러담은 섬세한 감정표현들이 먹먹함을 가득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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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a********g 2019.11.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