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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생명표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대여명은 83.5년(남자80.5년, 여자 86.5년)입니다. 우리나라 기대여명이 80세를 넘긴 것은 80.2년을 기록한 2010년으로 여자의 기대여명이 83.6년으로 늘어난 덕분입니다. 남자가 80세를 넘긴 것은 2019년으로 80.3년이었습니다. 2022년에 나올 생명표에서는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늘어난 사망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기대여명은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식생활과 의료환경의 개선 덕분에 기대여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전해오는 고대인들의 평균수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왕 가운데 엔멘루아나왕은 43,20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나이든 사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노인들이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사회의 원로로서 대우를 받았습니다. ‘노인 하나가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아프리카의 격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누리망에서 구할 수 있으므로 나이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는 편이 수월할 수도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캐슬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친 피터 존스교수가 쓴 <메멘토 모리>는 고대 사료를 인용하여 노년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전합니다. 굳이 고대인들이 남긴 자료를 인용하는 것은 고대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그들의 시선은 늘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노년과 죽음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현대인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능력이 있을 것인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고 합니다.
인용된 다양한 자료 가운데 의사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전문분야에서 지배계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의사들 가운데는 14세이 수련을 시작해서 19세에 환자를 진료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의사들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대 플리니우스는 “확실한 것은 온갖 의사들이 저마다 새 치료법을 들고나와 널리 알리면서 우리 생명을 대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환자의 침대 맡에서 끔찍한 진단 경쟁을 낳고, 의사들은 실력이 부족해 보일까봐 두려운 마음에 다른 의사들과 협력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 불행한 비문에 ‘나는 의사 과다증으로 사망했다’고 적혀 있는 것이다.(109-110쪽)”라고 기록했습니다. 의사들이 노인의 생존을 돕는 일에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히포크라테스 조차도 “이런 환자(다발성 골절 노인 환자)들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혹시 수긍할 만한 변명거리가 있다면 진료를 피해야 한다.(110쪽)”라고 했답니다.
건강하게 늙어가는 지혜에 관한 언급에서 대 카토의 생각이 좋은 것 같습니다. 카토는 고령이 되면 기억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인정했지만 그 이유는 오직 훈련이 부족해서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노인들은 청년들과 교류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청년들은 언제나 노인들의 경험을 반긴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대사회에 들어와 다소 변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청년들은 더 이상 노인들의 경험을 참고하려 들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리망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조언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두로 전하는 조언에는 분명 온도차가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아직도 나이든 분들의 경험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아하게 늙어가고 아름다운 죽음을 맞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양하면서도 참고할 가치가 충분한 도움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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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ntoine Wiertz의 작품 중, Two Young Girls 또는 The Beautiful Rosine을 좋아한다. 이 작품은 1847년에 그린 그의 작품 중 하나로, 아름다운 누드 여성과 해골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골은 의학생이나 예술가들이 사용했을 수 있는 것으로, 두개골에서 철사로 매달려 있다. 해골의 발 아래에는 돌로 만든 머리와 발이 몇 개 놓여 있으며. 두개골에 붙어 있는 라벨에는 "La Belle Rosine"이라고 적혀 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누드 여성은 머리에 화환을 쓰고 있고, 그녀의 눈은 해골의 빈 눈동자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다. 그녀의 생각에 잠긴 표정은 그녀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녀의 왼손에는 옷을 느슨하게 잡고 있는데, 이는 아름다움과 삶의 일시성을 고민하도록 초대하는 죽음과 죽음에 관한 그림이다. 모멘토 모리의 또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모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으로, 인간의 삶이 일시적이고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도록 권고하는 말이다. 모멘토 모리는 예술,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제나 표현으로 사용되는데, Antoine Wiertz는 작품 'Two Young Girls’에서 아름다운 여성과 해골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삶의 일시성과 아름다움의 흔적을 고민하도록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모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삶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이 메멘토 모리에 대해서 로마인들이 생각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피터 존스에<메멘토 모리>였다. MementoMori애 대해 알아본다. 저자인 피터 존스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하고 이 대학과 뉴캐슬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치다 1997년 퇴직했다. [스펙테이터]지에 ‘고대와 현대’라는 제목의 고정 칼럼을 게재했으며 고전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썼다. 저서로 베스트셀러인 『라틴어 수업』과 『고대 희랍어 수업』을 비롯해 『베르길리우스 읽기: 아이네이스I·II』, 『카이사르에 투표하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유레카!』 등이 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장 수명 제2장 청년 대 노인: 짧은 여담 제3장 자식의 죽음 제4장 노년의 시련 제5장 죽음에 직면하다 제6장 모범적인 죽음과 수치스러운 죽음 제7장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제8장 죽음과 장례 제9장 비문과 사후세계 제10장 맺음말 고대 로마인들은 생의 유한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철학과 문화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난다. '메멘토 모리'라는 개념은 이러한 인식의 핵심을 이루며,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로마 사회에서 사람들은 짧은 생애 속에서 최대한의 성취를 이루고자 했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에 진출하고, 권력을 쥐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이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지배층은 젊은이들이 빠르게 성공할 수 있도록 체제를 설계했으며, 이는 그들이 생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키케로와 같은 인물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감추려 했지만, 결국 그 슬픔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강인함과는 반대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표현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메멘토 모리'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로마의 철학자들은 죽음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의 철학, 문학, 그리고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세네카와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살을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신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을 때, 영혼을 해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하는 것보다 조기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존엄사 논쟁과도 연결되며, 개인의 선택과 권리에 대한 논의에 대한 화두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종말이 아니라, 삶의 연속선상에서 중요한 선택으로 여겼다. 로마 사회에서는 자살을 통해 명예를 지키는 사례도 많았다. 소크라테스, 소 카토, 페트로니우스와 같은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특히 페트로니우스는 네로 황제의 압박 속에서 자결하며, 자신의 유언장을 통해 황제의 부도덕함을 폭로했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으로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 형태로 이행하거나 전환된다고 생각했고, 무덤과 장례의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 이들은 산자가 계속 기억해 준다면 망자는 영원히 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가족 뿐만 아니라 행인들이 죽은 이의 이름을 읽고 새겨진 형상을 보고 그를 기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무덤의 위치를 길에서 가깝게 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도록 호화롭게 꾸몄다. 유골함과 석관에도 글과 이미지를 새겨 죽은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로마의 장례 문화와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도 '메멘토 모리'의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로마 귀족들은 상속 문제로 인해 자식 수를 제한하려 했고, 이는 유산 사냥꾼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낳았다. 또한, 장례식 비용이 증가하면서 상조회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조직이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죽음을 둘러싼 로마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반영하며, 죽음이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키케로는 노년의 죽음을 여행의 끝으로 비유하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의 덧없음을 강조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아갈지를 고민했다. 로마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욱 품위 있는 삶을 추구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삶의 본질을 잊고,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을 외면하곤 한다. 그런 측면에서 ‘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삶의 유한성을 상기시키며, 매일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 같다. 고대 로마인들의 '메멘토 모리'는 단순한 죽음의 인식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철학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이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을 안겨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