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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걸쳐 만들어 가는 각자의 삶도 이 세상에서는 유일무이한 예술이다. 독창적인 예술을 이뤄 가는 내 삶의 여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과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자아실현에 대한 물음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리키는 생각의 나침반이다.-p 353
친구들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진로문제다. 한 아이는 3학년 1학기에 휴학계를 내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대학 1학년인데 준비하던 9급 공무원시험에 최종합격해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얘기들을 주고 받고 돌아와 읽은 이 책에서 만난 이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하기를 원하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이 된 지 오래다. 자기 밥벌이만이라도 하고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부지기수가 아닐까?
알폰스 무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사람이었다. 1860년 체코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프라하의 조형예술아카데미에 지원했지만 입학을 거절당했다. 법원 서기를 거쳐 빈의 공방에서 일도 하고,다시 체코로 돌아와 초상화 복원작업과 풍경화도 그리고,뮌헨 미술아카데미를 거쳐 파리로 가게 된다. 파리에서 고갱,나비파 예술가등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르메르시에 인쇄소에서 작품활동을 한다.그러던 중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포스터를 제작하게 되었고, 사라 베르나르와 본격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무하스타일은 아르누보의 동의어이자 무하의 브랜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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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동백꽃 여인','사마리아 여인'등 다양한 연극 포스터,인쇄소 캘린더,전시회 포스터를 비롯해 북일러스트레이션에 참여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다양한 상품광고에도 참여함으로써 예술을 생활속으로 끌어들여야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도 했다. 두 점이나 네 점의 연작으로 구성된 장식 패널 제작도 실용예술로서의 아르누보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특징의 비잔틴 문화를 작품 속에 응용하기도 했고, 일본의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선보였다. 회화의 영역을 벗어나 조각상을 제작하는등 토탈아트의 능력자임도 보여주었다. 이렇듯 상업미술로써 성공은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순수미술에 대한 염원과 슬라브 민족에 대한 신화와 역사를 그려내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그는 1904년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 체코인 커뮤니티와 활발한 교류를 했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창조적 영감의 원천과 그 궁극적 목적은 '고국과 슬라브 민족'이라는 명쾌한 답을 얻었고, 자신이 원하던 후원자도 찾았기에 1910년 체코로 영구 귀국을 하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작품들을 보면 파리에서의 작품들과는 확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업적인 작품보다는 슬라브 민족의 특징,그들의 신화,역사들이 그의 작품 속에 많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다.
귀국후 그는 파리와 뉴욕에서 누렸던 명성을 자신의 고국과 민족을 위해 쏟아부었다. 체코의 지폐와 우표 제작에도 참여했고,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했다. 많은 작품 중 걸작이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염원을 다 쏟아 부었던 작품은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었다. 귀국후 작업을 시작해서 1928년에 완성된 <슬라브 서사시>는 체코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에서 20점의 주요한 에피소드를 뽑아 그린 그림이다. 사실,알폰스 무하라고 하면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들이 뿜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가 자신의 고국, 슬라브 민족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작품으로 표현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창조적 근원인 조국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상업적인 미술을 통해 대중들 깊숙히 들어가며 예술적 성취와 부도 모두 거머쥐었고, 고국으로 돌아가 자신의 능력을 고스란히 쏟아부은 삶을 살았던 알폰스 무하였다. 그런 그가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부도 쌓았고, 자신이 목표로 했던 작품세계를 하나 하나 이뤄나갔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던 그. 그의 인생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었겠냐마는 이정도 인생이면 참 잘 살았다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아, 아들아,너희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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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폰스 무하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이주은 교수의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덕분이다. 책에는 무하가 대타(?)로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가 주연하는 〈지스몽다〉의 포스터를(아래 사진) 그리게 되면서 스타로 등극하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나는 책에 소개된 이 포스터를 보고 헉하고 숨이 막히는 감동을 느꼈다. 일찍이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했던 저자 김은해 마냥 나도 그러했다. 저자는 서두에 자신이 경험했던 것처럼 백여 년 전 당시 사람들도 무하의 그림을 보면서 그러했다고 평한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으로 르네상스(14~15세기), 바로크(17세기), 로코코(18세기) 등과 같은 예술 사조 중 하나로 정확히는 1880년에서 1910년 사이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국제적 양식의 예술운동이다.
특히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아르누보는 벨 에포크(bel epoque, 1871~1914)의 화려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매혹적인 꽃을 피웠다. 그리고 이 세기말 파리에서의 아르누보의 성장, 그 중심에는 체코 출신의 화가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가 있다. 알폰스 무하와 동시대이자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건축가 가우디, 가구 디자이너 찰스 맥킨토시 등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급 쥬얼리 브랜드 티파니의 공예품, 명품 루이비통의 로고 등은 모두 알폰스 무하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사계절(왼쪽부터 봄, 여름, 가을, 겨울), 석판화, 1896.
▲꽃들(왼쪽부터 카네이션, 붓꽃, 장미, 백합), 석판화, 1898.
▲무하가 그린 야로슬라바,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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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예술에는 전혀 관심없이 살아가다가 요즘들어 예술에 조금씩 눈을 뜨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주 유명한 예술가를 제외하고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셈이다. '알폰스 무하'도 마찬가지였다. 고흐와 앤디워홀 사이의 간극에 있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를 이 책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展]을 올 9월까지 한다기에 더욱 궁금해지는 작가와 작품세계였다.
이 책을 통해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프롤로그를 보면 '우리가 몰라봤던 예술가'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글을 시작한다. '나만 잘 몰랐던 것이 아니었군.',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잘 몰랐으면 어떠랴. 지금 이렇게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겼는데. 이 책을 통해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는 알폰스 무하에 대한 이야기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구성되어 있다. 알폰스 무하는 1860년 7월 24일 체코 남모라비아에 있는 이반치쩨에서 태어났고, 1939년 봄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며칠 동안 심문을 받은 후 석방되었는데, 이 여파로 7월 14일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풍요로운 삶을 살다 간 '알폰스 무하'라는 예술가. 예술적으로 자유로우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보여준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도 쉽지 않은데, 그 시대에 그렇게 살다 가다니! 멋진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과 소통하고, 예술적으로도 완성도를 위해 노력을 거듭했기에 가능했던 것일테다.
이 책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색상의 질좋은 사진이었다. 아르누보 작품의 특성을 잘 드러내며 독자의 눈길을 끄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르누보 작품에는 식물의 덩굴손, 줄기, 꽃과 잎이 흔히 나타난다. 비밀스럽고, 우울하고, 신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지닌 특성 덕분에 아르누보가 가장 애호하던 색이 보라색이었다고 한다. 몽환적인 분위기, 완전 내 맘에 쏙 든다. 100년도 더 지난 그 시기에 유행하던 양식인데,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어색함 없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전에 다녀와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또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작품을 보면 작가를 알고 싶고, 작가를 알게 되면 흘려넘겼던 작품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확실히 알폰스 무하는 우리가 몰라봤던 예술가이고, 알게 되면 작품을 더 깊이 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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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도망가지 않는다. 꿈에서 도망가는건 나 자신이다." - 짱구아빠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꿈을향해 달려가는 빛나는, 거침없이 꿈을 이뤄가는 모습 너무 부러웠다. 지금 꿈때문에 방황하는 나에게 무하의 이야기는 흔히들 말하는 치유의 한마디보다 더 소중한 이야기였다. 처음 무하를 접하게 된건 대학생때, 우연히 그의 작품 '황도궁'을 보게되었는데 그림의 아름다움속으로 단숨에 매료되어버렸다. 하지만 무하의 이름을 몰랐던 나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 작가가 누군지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지나 접한 무하의 자세한 삶의 이야기는 그림보다 더 나에게 위로를 해주었고, 만약 내가 성공하지 않아도 해야한다고 생각한일을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누군가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재능을 믿고 가는것. 그것만큼 소중한것이 있을까싶다. 지금 자신의 꿈에 흔들리거나 불안한 사람에게 말해주고싶다. 무하처럼 살아보라고 그리고 나는 꿈을 이뤄가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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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평전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이었다. 알폰스 무하에 대한 세세하고 꼼꼼한 기록으로서 이 책은 나쁘지 않다. 기록노동과 출판노동 등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도 익히 짐작을 할 수 있다. 저자는 감동적인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의 충격을 표현한 '스탕달 신드롬'을 거론하면서 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을 충실히 기술한다. 무하에 빠진 저자의 감흥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노동에 대한 평가와 결과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 내게 이 책은 알폰스 무하의 입문서 격이었는데, 저자의 감흥은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혼자 좋아서 블라블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감흥, 그 격정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채 내뱉고만 있었다. 즉, 독자와의 밀당에 실패한 셈이다. 좋은 평전의 조건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인물의 내면 풍경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시대나 당대의 사회와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 인물에 대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새로이 부각시키거나 비추면서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미시 생활사까지 복원해내는 것. 또 지엽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로 흥미를 자극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아울러, 읽기도 좋아야 한다는 조건도 붙을 것이다. 가독성 문제인데, 전반적으로 수식어가 많고 글이 길다. 아르누보의 특징인 '장식성'을 감안한 글쓰기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감흥만 따르기엔 지루하다. 뭐니뭐니해도 평전은 인물에 대한 깊은 연구가 선행되면서 인물의 철학이나 사유, 사상 등이 독자에게 잘 전달돼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같은 언어권의 사람이 유리하다. 역사와 문화 등을 공유하고 인물의 미묘한 뉘앙스까지 제대로 이해하고 붙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혹자는 주석이 많아야 한다는 점도 좋은 평전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주석을 통해 배우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면에서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 알폰스 무하》는 성공적인 평전은 아닌 듯하다. 책은 때로 현실과의 접목을 위해 억지를 끌어낸다. 작가는 가령, 청년 무하의 사회 진출을 위한 출발과 오늘날 젊은이의 것을 비교한다. 이것은 범주의 오류다. 시대적 상황이나 여건이 너무 다르다. 19세기나 21세기 모두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는 말을 돌고 있다며 단순 비교를 하는데, 과연 적당한 비유일까. 뭔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자극은 적절하지 못하다. 청년 무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와 사회적 배경과 지금 한국의 상황을 비슷하게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틈만 나면 그림 삼매경에 빠졌던 한 소년이 학창시절에 재능이 없다고 통보 받아 자신이 사랑하는 미술을 시작조차 못할 줄 알았건만, 타인들의 평가에 구속됨 없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결국 승승장구한 아티스트가 된 이야기"(p.20)라는 소개는 분명 흥미롭다. 안타깝게도 그런 소개만큼의 전개가 안 됐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훅~ 당겨서 당장 전시회도 보러갈 생각이 들 것으로 기대했다. 아니었다. 프랑스어로 신예술을 의미하며 19세기 최후의 예술사조를 뜻하는 '아르누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알폰스 무하라는 예술가를 만난 것이 소득이랄까. 아르누보의 전성시대였던 1890년~1910년이면,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 혹은 좋은 시대)'였다. 과거에 없었던 풍요와 평화로 인해 문화예술이 번창하고 우아함이 넘쳐났던 시대. 무하와 맞물려 벨 에포크의 시대상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도 아쉬움이다. 성공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렸으나, 책은 '성공한 평전의 초상'으로 남지 못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고야 말았다. 전시회를 당장 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진 못했으나 전시회에 가면 무하가 좀 더 잘 들어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았으나, 내 느낌대로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