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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장자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렵다는 생각에 듣지 않았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장자의 사상을 만나면서 참으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사회 생활과 삶에 대한 성찰 사이에서 장자의 사상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장자는 도인같다. 아니 도인 중의 도인이다. 장자의 사상을 원문으로 읽는다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해설서를 만난다면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상을 지닌 사람인지가 중요한데 나는 이 책이 참 좋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언론계에서 신문 종합 편집장 및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하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글의 요지가 분명하고 알기 쉽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해하기 쉽게 세상사는 이야기가 곁들여져 배울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게다가 한 부분이 끝날 때마다 정리를 해주고 있어서 내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지만 순서대로 읽는다면 이야기가 연결되고 느낌이 더 잘오지만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다. 우선 나는 순서대로 읽었는데 종종 펼쳐지는 부분을 읽어가면서 내 마음이 복잡해질 때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세상 밖에서 노니는 장자를 보여주기 위해 집필하였다고 했다. 장자를 전하는 책으로 말이다. 저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책의 위력은 휠씬 더 위대할 것이다. 장자에의 몰입 요즘들어 마음 공부에 푹 빠져서 지내는 요즘 장자의 사상을 접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기분이다. 세상을 초월한 듯한 그의 모습은 그의 사상은 현실에 쫓겨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장자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저자의 해설도 일품이다.
세상에는 들리는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귀에는 들리지 않는 또 다른 소리들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다. 소리 없는 그 소리를 들으려면 또 다른 귀를 열어야 한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야 소리가 들리듯이 내 마음의 채널을 그것에 맞춰야 한다.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그대를 향하여 미소 짓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저편에서는 누군가가 그대를 향하여 울고 있다. 밤하늘의 모든 별들은 그대를 위해 음악 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별이고, 하나의 노래다. 장자는 우주에 가득한 그 노랫소리를 듣느냐고 묻고 있다. 그대는 하늘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대의 채널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는 그대의 귀도 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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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안정된 삶을 쫓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집, 사회적 성공, 돈 등을 위해서는 정신없이 바쁜 생활로 자신을 몰아넣고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다. 갖고자 하는 것이 많을수록 그만큼 자신이 감내해야 할 고충 역시 크고 힘들기 마련이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고 행복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내려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자와의 만남을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사는 것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하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 가장 내려 놓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 죄인가요? 하는 말이 있듯이 장자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마음의 연정을 품은 대상에게 해독이 미치고,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을 해치기 시작한다고 한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체가 상대방은 물론이고 자신 또한 해치는 일이 된다고 하며 의를 위하여 전쟁을 막고자 하는 것 역시도 전쟁을 부르는 일이 되며 뜻을 품은 마음은 무기와 같아서 어떤 명검보다도 날카롭기 때문이라고 정의 했다. 그럼 정녕 사람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옳은 것인가? 올바르고 바른 마음을 담은 사랑은 그렇지 않겠지만 지나치고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담은 사랑은 결국 자신과 상대방을 가두는 철창이 되고 만다는 의미를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장자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시공간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기 때문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삶도 죽음도 과거와 현재도 없어지며 몸은 땅에 매여 있는 현재에 살아도 마음은 시간 밖의 세상을 넘나들 수 있게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부족하면 자꾸만 채워려는 심리가 있다. 마음속이 허하면 물질적으로 채우려는 사람도 있고 사람에게 허기진 마음을 다른 사람으로 매꾸려는 사람도 있다. 허나 장자는 오히려 수레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 되는 빈공간이며 이 빈 공간을 가르쳐 '도'라고 한다. 텅비어 있어 고요하다고 표현한 '도' 도에 이르는 길은 결국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데서 시작한다.
얼마전에 장자에 대한 소설을 읽었었다. 장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 아니라 장자의 삶을 소설로서 풀어낸 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흥미로웠는데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는 자신의 삶보다는 그가 뛰어난 사상가요 학자로서 그의 지혜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는 책이라 우리의 불안전한 삶이 진정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의미있는 인생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진정한 도가 무엇인지 아직은 살날이 많고 눈 앞의 이익과 욕망에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하는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장자를 통해 '도'의 중요성과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였다. 장자의 이야기에 다양한 사례들을 첨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아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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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유쾌하게 날아다니다 보니 자기가 장주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깨어나자 틀림없이 다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주는 장주고, 나비는 나비이므로 그 사이에는 반드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일러 사물과 나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는 '사물로의 변화物化'라고 한다. - <장자> '호접몽胡蝶夢'중에서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이다. 짤막한 우화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바다처럼 크고 깊다. 그 깊이를 몰라 다들 장대를 들고 바다의 깊이를 잰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다는 것도 이처럼 호미 한 자루 들고 태산泰山과 상대하는 것일 것이다.
호접몽은 인류정신사의 하나의 폭풍이었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처럼, 장자의 작은 날개짓은 현실을 뒤엎고 인류를 뒤흔드는 태풍이 되었다. 장자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묻고 있다. 진짜 인생과 가짜 인생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나비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은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는 불교의 선禪으로 이어지고, 철학의 존재론으로 흘러간다. 또한, 시뮬라시옹simulation,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가상현실, 사이버스페이스, 아바타 등 21세기 디지털 세계의 용어들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는 구름을 타고 해와 달을 밟으며 우주 밖을 노닐었다. 그가 걸어간 길은 명리名利와 거리가 멀었다. 바다를 본 사람은 개울물에 연연하지 않고, 태산을 본 사람은 언덕을 결코 우러러보지 않는 법이다. 장자도 한때는 관직에 있었다. 하지만 그 물에 어울릴 수 없어 물러나 농사와 낚시로 삶을 영위하며 유유자적 자연을 벗 삼았다.
장莊은 성이고, 자子는 선생님이란 뜻이니, 장자는 '장 선생님' 정도의 호칭이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장자의 이름은 주周이고, 송宋나라 몽蒙지방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몽의 칠원漆園이란 곳에서 관리를 했다. 당시 박학하여 모든 서적에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장천마지莊天馬地'란 말이 잇다. 장자의 문장이 하늘이라면 사마천의 문장은 땅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 모두 천하의 명문장가로 손꼽힌다. 사마천이 인간의 심리를 통찰하며 험한 산과 큰 바다를 종횡무진했다면, 장자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바람과 구름처럼 자유분방했다. 사마천이 땅 위의 인생들을 살폈다면, 장자는 하늘의 도를 헤아렸다.
장자의 학문은 노자의 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의 저서는 10여 만 자에 이르는 대저大著인데, 거의가 우언寓言이다. 어부, 도척, 거원 등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난하고, 노자의 도를 밝혔다. .... 문장이 매우 훌륭하며, 세상일을 지적하고 인정을 유추하여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를 공격하였다. - 사마천의 <사기>중에서
<장자>는 본디 52편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곽상이 정리한 33편만 전해지고 있다. 33편에 나타나는 수만 개의 문자는 도道와 무위無爲, 그리고 지락至樂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인수분해 된다. 즉 존재론으로서의 도, 그 실천으로서의 무위, 그리고 가치관으로서이 지락으로 요약된다. 이 책도 '깨어라道', '놓아라無爲', '즐겨라至樂'의 3부로 장자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다.
헬렌 켈러(1880~1968)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가 꿈꿀 수 없는 기적이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1933년)이라는 수필을 발표했다. 당시 대공황을 겪고 있던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위로를 준 이 글은 20세기 최고의 수필 중 하나로 꼽힌다.
어느 날 헬렌 켈러는 숲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뭘 보았는지 물었다. 그 대답은 시큰둥했다. '뭐 별 거 없었어' 그녀는 친구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었는데 본 것이 별로 없다니 그녀에겐 기가 막혔다. 자신은 나무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새들이 노래하는 것을 느끼는 등 흥미로운 게 엄청 많은데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적이 일어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그녀의 소망은 소박했다. 첫째 날 그녀는 설리번 선생을 보고 싶었다. 다음엔 나뭇잎, 들풀, 석양을 보고 싶었다. 둘째 날 먼동이 트는 장관과 박물관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고 싶었다. 셋째 날 아침 일찍 거리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화나 공연을 감상한 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밤거리를 지나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 사흘간의 피날레다.
장자는 인생에 있어서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지만,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차이야 기껏해야 날랜 말이 문틈 사이로 홱하고 지나가는 일순간의 길고 짧음에 불과하다. 세상의 하찮은 미물을 하루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작은 곤충이 있다. 전설 속의 곤충 '초명'이다. 개천가에 살다가 모기 속눈썹에 집을 짓고 살아도 모기가 눈치체지 못한다고 한다.
달팽이 머리 위에 작은 뿔이 두 개 나 있는데 각각 하나의 나라였다. 왼쪽 뿔에 있는 나라는 촉觸이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蠻이라 불렀다. 이들 두 나라는 서로 땅을 빼앗으려고 수시로 전쟁을 벌였다. 워낙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죽어 널브러진 시체가 수만이나 되었고, 도주하는 패잔병을 쫓아 나서면 보름 후에나 돌아왔다.
촉만지쟁觸蠻之爭, 또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우화가 있다. 두 나라의 싸움이 비록 치열하지만 기껏해야 달팽이 뿔 위에서의 다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인간들의 다툼이란 티끌 속의 자웅 겨루기와 다름 없다. 이에 대해 장자는 우리 인간들에게 묻고 있다.
"무한한 우주에 비할 때 인간 세상의 전쟁이나 달팽이 뿔 위의 전쟁이나 뭐가 다른가?"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 이는 기하학의 공리다. 하지만 회화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평행선은 만난다. 철도 레일을 연상해보라. 평행인 두 개의 레일이 나란히 달리다가 시야에서 멀어지면서 결국엔 만나서 하나의 점이 된다. 이를 회화에선 소실점消失点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소실점이 평행선의 종착역인가? 아니다. 평행선이 끝나는 그곳에서부터 다른 세계가 펼쳐질 뿐이다. 즉 기하의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회화의 세계가 문을 연다. 졸업이 끝이자 시작이란 의미인 것처럼, 소실점은 끝이자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장자도 우리에게 소실점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다.
운로붕정구만리雲路鵬程九萬里 붕새가 되어 구만리 상공을 노닐다
<장자>의 지혜를 TV 프로그램, 스포츠 경기, 그림, 소설 등의 다양한 일화를 통해 인문학적 통찰과 에세이적 감성으로 표현했다. 장자를 만나면 세상살이는 고행길이 아니라 유유자적 거니는 소풍길이 된다. 장자를 품는다는 것은 자유를 품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복해지려면 자유가 있어야 하고, 자유를 가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매이지 않는 것이 자유요, 자기를 비우는 것이 용기다. 여기 장자의 자유가 그대 앞에 있다. 비우는 자, 자유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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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명시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을 꽤 많이 배웠지만.. 막상 생각나는 것은 별로 없다. 머리속에 남은 몇구절중 중 '왜 사냐건 웃지요'가 있는 것은, 그때 학교 친구들이 다 이 구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무슨 말만 하면..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했던 걸 보면 학창시절이 꽤 버겁기도 했던 것이 아닐까? 장자를 만나는 기쁨..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책을 읽으며 이상하게 그 시구절이 떠올랐다. 결국 김상용님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를 찾아보게 되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왜일까? 장자의 이야기를 이 시 한수로 이해하고 싶은 느낌은.. 장자가의 사상은 그렇게 쉽게 이해할수 있는 철학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나도 장자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어봤지만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철학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했다. 뭐랄까.. 우화같은 그의 이야기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일때도 있고 내가 받아들이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르게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참 어렵게 느껴지는 장자의 사상을 읽고 그나마 시 한수를 떠올릴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장자의 사상을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가?
그 중에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였다. 상상력이 병을 만든다는.. 장자는 달생편에서 귀신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 병에 든 제나라 환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환공은 그 귀신이 천하를 재패하는 자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말에 금새 병을 털고 일어선다. 즉 문제는 귀신이 아니라 그 귀신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서정주의 시, 어사 박문수의 이야기,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같은 텍스트를 통해서 풀어서 설명해준다. 바다 한복판에서 큰 풍랑을 만난 피론은 돼지 한마리가 태평스럽게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평온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 자체가 잡념이 참 많은 편이다. 스스로 생각의 늪이라고 칭하는 상황에 자주 빠지는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황을 내 나름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그럴때 필론의 돼지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문제는 결국 생각이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내가 장자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장자의 사상이 어려운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의 벽때문이 아니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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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고 지는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새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다. 패자부활전처럼 지난 일에 대한 후회, 절망, 아픔 등은 모두 씻고 새롭게 제로에서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을 선물해준다. 절기로는 새해, 책으로는 고전이 이런 힘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다.
고전의 중요성을 가끔 듣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또 고전이다. 장자를 쉬운 말로 알기 쉽게 해설해주는 이 책이 있어 그나마 장자를 다리 하나 건너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저자의 프로필에서 ‘고전의 바다에서 사물의 본질을 궁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자본주의의 폐해 등 현대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부작용과 한계를 동양에서 찾으려고 하는 붐이 일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생각만 약간 달리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점, 그리고 번민에서 해방되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점 등 이런 계기를 장자가 마련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무위로써 하지 않는 일이 없다
진정한 무위란 행동하지 않는 행동을 말한다. 행위의 정지나 포기가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도를 따라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p114
쉴 새 없이 바쁜 우리 일상에 이제는 행동하지 않는 행동을 결단하고 실천이 필요한 시점인지 모르겠다.
흐르는 물은 거울로 삼을 수 없다
사람들이 제 모습을 비춰보려면 고요히 멈춰 있는 수면을 찾아야 한다. 마음의 풍랑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때 사람들은 비로소 참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p148
조용히 스스로를 고요하게 돌아보는 시간. 쉬운 것 같으면서도 잊고 있었다.
자연에 순응하여 몸과 마음을 꾸미려 하지 않으면 피곤하지 않고 자유롭다
변하는 형체에 연연하지 않으면 심신이 소모되지도 않고 고요한 호수 같은 경지에서 노닐 수 있다. p152
그 경지, 참 끌린다.
아주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노자는 ‘아주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우주가 운행하는 소리, 별들의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마음을 텅 비우고 자기를 잊어버린 망아의 경지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하늘이 연주하는 대자연의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육체의 귀가 아니라 영혼의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없는 노래다. pp.162-163
이제는 영혼의 귀가 민감해지는 생활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잠잠하게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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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한비자와의 만남이 어렵지 않고 이해가기 쉽게 설명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같은 저자인 '김태관'씨의
기적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좀 더 멀리, 좀 더 길게 바라보면 낙망할 일도 좌절할 일도 없다.
첫 단추가 중요하듯 올해의 첫 책선정또한 개인적으로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 안주하고 시간에 쫓겨 목표를 잃은채 살아왔던 현대인들에게 마음속 큰 울림이 되어줄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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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둘째는 해석의 이해를 돕기위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예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세번째는 현대적 사람들이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아져 있었는지 그리고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보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즉 내가 살아가면서 발자취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왜 이리 바둥바둥거리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편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 고민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려운 상황이 다가온다면 다시금 책을 곁에 놓아두고 길을 찾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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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예지신’과 충효를 근간으로 하는 유가와 달리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노장사상은 ‘무위자연’으로 대변되는, 자연의 도, 즉 자연법칙을 이해하고 잡다한 인간적인 일들을 초월하는 평이한 생활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월과 달관할 것을 가르치고 실제 그런 삶을 살아왔던 장자는 자연에 묻혀 유유자적한지라 실제로 알려진 바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양나라 혜제와 제나라 선왕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정도로만 역사에 기록되어 질 뿐 자세한 바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는 장자의 사상을 전하는 책이다. 자연에서 도를 깨닫고 무위로써 자연과 합일하며,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연을 벗하는 지극히 즐거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어슬렁 어슬렁 거리며 노니는 소요유의 경지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현재에 TV프로그램, 스포츠 경기, 그림, 소설, 서양 고전 등 다양한 사례를 들며 장자의 사상을 전달한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위안은 세상에 어지러움에 대해 ‘놓음’으로서 근심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갈수록 삶은 팍팍해져가고 삶에 대한 사명과 가치를 잃어버린 채,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일상을 반복하면서 정신의 몫은 한없이 작아져만 간다. 우매한 민중의 행태에 실망하고 분노하며, 체념도 해보지만 곧 다가올 위기는 결코 의도하지 않았기에 한시도 진중하게 미래를 내다보거나 현실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족의 시간마저 앗아가 버린다. 이런 위태로움 속에 꺼내든 이 책의 장자는 요즘 출판가의 대표적 코드인 ‘힐링’ 그 자체였다.
자신이 의도했거나 적어도 바랬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인생과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을 것을 장자는 가르친다. 좀 더 멀리 좀 더 길게 보면 낙담할 것도 좌절할 일도 없으며 일년 뒤 오늘을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지금 현재에서는 좌불안석으로 살아가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장자는 지금 우리의 인생이 밤이라고 해서 절망할 것은 없다고 다독인다. 곧 따뜻한 낮이 찾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남루할 지라도 조금 더 가면 화려한 비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1%를 위한 세상이 아니라 99%의 민중을 위한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작지만 의미있는 첫걸음을 내딛는데 실패한 요즘, 이젠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 절벽 끝으로 밀려났다는 절망감이 지배하는 마음 속에 하나의 불빛이 되어준 이 책이기에 고맙고 또 고맙다.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끝이 아님을 깨닫게 해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자>는 원래 52편이었지만 곽상이라는 사람이 정리한 33편만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 책은 존재론으로서의 도, 실천으로서의 무위, 가치관으로서의 지락으로 요약될 수 있는 장자의 사상에 근거하여 ‘깨어라(도), 놓아라(무위), 즐겨라(지락)’으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시중에 출간되어 있는 장자 관련 저서들을 접해 보지 못해 감히 얘기하기 어렵지만 나와 같이 장자의 사상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읽는데 수월한 책이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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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면 작가, 출판사, 표지, 제목, 내용 등을 따져보며 책을 보고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가격을 확인하게 된다. 몇 권의 책들을 골라놓고 최후의 선택에서 결정하기 까지 같은 비용이라면 왠지 모르게 얇고 가벼운 책 보다는 두터운 책을 고르곤 했다.
얇은 책이라고 내용이 가볍고 그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책을 고를 때면 조금 더 두꺼운 것을 골라온 듯 하다. 만약 이 모습을 장자가 보았더라면, 아마 큰 꾸지람을 했을 것이다. 인생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하는 장자의 가르침을 읽으며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책을 고를 때의 모습만큼이나 닮아 있는 것을 느꼈으며 그 동안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만 판단을 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루의 삶이 80년보다도 더 값질 수 있으며 80년의 삶은 하루보다도 못할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상대적인 삶의 내용이 우리가 살아 온 인생의 무게를 논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년이면 서른을 맞는 나의 나이라는 숫자에 갇혀 있던 내 모습을 장자를 만나며 자유롭게 놓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2천여 년 전에 살았다던 장자가 지금 나와 함께 마주하고 이야기 해주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세상을 등지고 먼저 떠났을 때에도 대야를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어 노래를 하던 장자. 그래, 아마 아무것도 모르던 나와 같은 사람이 장자를 보았다면 나는 그를 미친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왜 기쁘게 노래를 불렀는지를 이해하고, 그의 생각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도리어 내가 그를 통해 치유를 받게 된다. 2012년 임진년의 해가 기울어지고 있고 2013년 계사년의 해가 눈 앞에 있다. 내 나이의 앞의 숫자가 변하는 2012년의 끝자락에서 장자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나는 올해를 보내야만 하는 하루하루가 야속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자를 만난 지금은 그러한 쓸모 없는 고민을 하며 오늘을 보내지 않는다. 앞으로 남아있는 하루하루 속에 얼마나 긴 나의 인생들이 담겨 질지가 오히려 기대된다. 장자를 만난 이후 나의 오늘은 참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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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장자는 뛰어난 사상가였지만 무척이나 가난했다. 하루는 식량이 모두 떨어지자 절박한 마음에 벼슬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당장 곡식을 빌려 줄 생각은 안 하고 장차 세금을 거두면 큰돈을 꿔 주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몰인정한 태도를 보인 친구에게 장자는 이런 말을 던졌다. “내가 여기 오는데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말라 죽어 가고 있었네. 물 한 동이가 필요하다고 사정을 했는데, 나는 마침 먼 나라로 여행을 가는 중이니 그 나라 강물을 끌어다 주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그 물고기는 차라리 자기를 건어물 가게에 내다 팔라고 하더군.”
자신을 한 동이의 물이 절실한 물고기에 비유해 서운함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수레바퀴에 고인 물의 물고기’란 뜻의 ‘학철지부’다. 누군가가 절박한 처지에 놓여 도움을 청할 경우 비록 적지만 제때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책은 언론계에 투신하여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및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역임하고, 한때는 술과 풍류를 즐겼지만 단주 후 세심(洗心)하며 저술에 몰두하고 있으며, 고전에서 삶의 본질을 파헤쳐 온 저자 김태관이 <장자>의 지혜를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과 에세이의 감성으로 버무려 들려준다.
장자는 유교의 공자나 맹자가 엄격한 사상으로 시대를 아우르는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사상가였다. 노자의 도교를 이어받았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무(無)를 실천하는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장자의 사상은 일체의 인위적인 것들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지향한다. 새롭게 등장한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지 않았다. <장자>의 첫 편 ‘소요유(逍遙遊)’에는 크기가 9만리나 되는 거대한 새 ‘붕(鵬)’이 된 작은 물고기 ‘곤(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 탓에 이 새를 포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를 두고 신정근 교수는, 국가가 권리와 의무의 체계로 자신을 포획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라 하였다. 장자는 변신을 꿈꾸었던 것이다. 국가라는 인위와 그것이 행하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변신이다.
그의 사상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인위적인 것을 멀리하고 무위(無爲)로써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도덕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인의예지’조차 본성을 그르치는 것이라면 악덕이라고 보았다. 둘째는 한정된 시간을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 그 어떤 삶도 짧지 않고, 헛되이 낭비하다 보면 그 어떤 삶도 길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상의 틀을 깰 수 있는 유연한 사고다. 삶과 죽음조차 모든 사람에게 다른 것이라며 아내가 죽었을 때도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상대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장자는 보이는 것은 도가 아니라며 우리의 생각을 뒤집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도가 비친 거울일 뿐이다. 도뿐만이 아니다. 그대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뭔가를 찾았다며 기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된 것을 알고 싶다면 이제 그대의 눈앞의 거울을 치워라. 한쪽으로 고정된 생각을 뒤집어라.”(p.52)고 말했다.
이 책은 장자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세상 밖에서 노니는 장자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자가 노래하면 그 노래에 대해 설명 하기 보다 직접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