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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책 괜찮다. 너무 괜찮아서 심술날 정도이다. 딱 대중역사서와 전문 역사서의 중간 정도 수준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대중 작가가 이상한 에피소드 나열이나 해대는 대중 역사서의 단점은 없고, 목침만큼 두꺼운데다 불친절하게 전문 용어 돌직구로 읊어대는 이론서의 단점도 없다. 게다가 쉽게 읽히며 일목 요연한 정리를 해주는 친절한 대중역사서의 장점과 권위있는 자료를 근거로 최신 견해를 소개해주는 이론서의 장점은 다 갖췄다.
책 제목은 마치 중고생용 서적같이 보이지만 내용의 깊이는 상당하다. 어쩌면 배경 지식 없는 독자가 읽는다면 너무 많은 내용이 집약적으로 소개되어 있어서 뒷골 당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심술날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쟈크 르 고프라든가 로베르 들로르, 맛시모 몬타나리, 장 베르동 등등 내가 힘들게 한 책 한 책 구해 읽고 공부했던 내용들이 단칼에 엮어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진작 나왔더라면 나 그렇게 헤매며 개고생하지 않았을텐데! 아유, 심술나!
책은 서양사 서적답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생활문화 서술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3장과 4장의 중세 유럽과 근대 서유럽의 생활문화로 넘어간다. 이 중세와 근대 부분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5장은 도시 형성의 여러 모습과 생활상을 다루고 있는데, 거의 도시 형성의 자연적 조건과 도시명 유래 소개 위주이다. 이어서 6장은 미국의 생활문화를, 7장은 러시아의 생활문화를 서술한다. 그리고 이 책의 구성이 돋보인 부분인 8장의 에스파냐 · 이베로아메리카의 생활문화로 이어진다. 저자진은 에스파냐만을 서양으로 보지않고,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즉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침략해가서 현지 원주민과 강제로 납치해온 흑인들과 섞여 만들어진 남미 문화도 서양 문화롤 보고 서술하고 있다. 그 명칭도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이베로 아메리카라고 부른다. 이 점 정당하면서도 독특했다. 이어 마지막 9장에서는 헝가리의 생활문화를 다룬다. 각 장마다 기본적 의식주와 기독교 전래 이전 이후의 풍습, 관혼상제, 배설 등등의 생활 문화를 간략히 소개해 주고 있다. 러시아편에서,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 계급 격차를 더 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정확히 지적하는 등, 사관도 괜찮다. (우리가 대개 교과서에서 서구 위주로 배워서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 개혁의 장점만 외웠던 것이 생각나서 예로 들어 보았다. )
책은 고대 그리스 로마권과 서북부 유럽권 위주로만 서양을 다루는 다른 역사서들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듯하다. 그래도 분량상 충분하지는 않지만 꽤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 기본 틀을 잡고 뒤의 참고 문헌을 격파해나가면 나처럼 개고생하지 않고 편히 지식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다시 한번, 심술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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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상세한 사항을 살펴보려거든 시대별, 지역별 등의 기준으로 세분화 되어 있는 다른 책을 찾아보면 그만이다. '서양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단순한 의문에 답을 줄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너무도 일상적으로 느끼고 사는 주위 현상이나 현재 처한 환경이 더욱 친밀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존 서양사, 서양문화사에서 비중이 다소 작게 다뤄졌던 헝가리 문화에 대한 내용 등도 알차게 다루고 있어 매우 인상 깊었고 서양, 서양사람에 대해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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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소에 잘 접할 수 없었던 러시아나 헝가리에 대한 역사와 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대 순서로 잘 구성되어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깊이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기 위해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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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흥미있게 봤던 부분은 헝가리의 생활문화 편이다. 평소 유럽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 많이 알려진 나라의 역사만 관심이 있었는데 이책으로 인해 헝가리의 역사 및 문화를 알게되어 흥미가 있었다. 헝가리의 음식문화에 대해 나올때 특히 가장 재미있게 읽은것 같다. 소제목에 있는 '구야시 스프'는 진짜 한번 먹어보고싶었다. 또한 다른 풍습, 문화 등 다방면에서 헝가리에 대해 알 수 있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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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과거를 보면 어떤 경우는 허술해 보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꽤나 고증을 했다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과거를 재현하는 경우도 어차피 오늘날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인 만큼 완벽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경우엔 실망스러움과 함께 우려도 함께 자아낸다. 저걸 보고 저 시대를 저렇게 판단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사실 우리는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혹 안다고 하더라도 그건 아주 단편적인 것에 그칠 때가 많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시대라 하더라도, 나라별로도 아주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도 천차만별, 계급, 계층별로도 천차만별일 때가 많으니 과거의 삶을 어떤 하나로 규정짓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질문을 던져볼 수가 있다.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와는 어떻게 달랐을까? 그들의 삶은 현재의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호기심의 발로인 경우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한 방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거의 그들의 자손이며, 그들의 문화와 삶을 바탕으로 현재가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한반도의 조상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이 과거에 어찌 살았을까에 대한 질문도 의미가 있다. 바로 여기 우리 한반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과거부터 이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삶에서 이어져온 것은 분명하지만, 한 눈에 보더라도 우리의 삶은 서양의 문화와 정말 많은 재조합 과정을 거쳐져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서양의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서양을 알기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열 명의 우리나라 학자들이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서 풀어놓은 서양 사람들의 과거 삶은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저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현대와의 관련성에 의미를 두고 썼을 수도 있고, 서양의 삶의 모습에 우리가 상당히 익숙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또 그게 어느 정도이든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TV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서 단편적으로라도 알고 있었던 것들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왕조나 지배 계급의 다툼,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 등을 벗어난 생활문화 중심의 이 책은 사실 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무슨 옷을 입었으며, 어떤 집에서 잤으며, 어떤 옷을 입었으며, 어떤 기념일을 즐겼으며 등등이 아주 낯선 용어들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쉽게 스텍터클한 흥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이 단조로운 책을 읽으면서, 그것도 뒤로 가면서 느낀 것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이라는 것이 생활 문화에도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는가, 무엇을 터부시하는가, 어떤 옷을 입는가 등등이 그저 단순한 유행 차원이 아니라 어떤 종교와 어떤 사상이 그 시대를 휩쓸고 있는가에 대단히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별로 차이와 공통점이 공존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 그 시대의 한계와 공통점 안에서 그 지역의 특수성에 맞추어 잘 적응해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도주를 많이 마시든 프랑스 지역과 맥주를 즐겨왔던 독일 지역. 돌을 이용해 집을 지었던 유럽 남부와 목재를 이용해 집을 지었던 유럽 북부. 밀을 먹는 남부와 고기를 먹는 북부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사실 단조롭다고는 했지만, 모든 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부분들에선 잠시 멈추고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사회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흑사병은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충격을 주었지만, 그 후 인구가 급감하면서 오히려 식단에서 육식이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15세기에는 식량의 소비 인구가 즐어들면서 곡물 가격이 저렴해지고, 그 결과 고기, 포도주, 치즈 등과 같은 사치스러운 음식물의 소비가 증가했다.” (82쪽) - 나는 이 부분에서 “살아남은 자는 누렸다!”라는 시니컬한 메모를 남겼는데, 우리는 흑사병의 역사를 비극의 역사로만 기록하지만, 그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이들은 그 이전에 비해서 호사로웠다는 이 지적에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분히 이기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계몽주의 역시 다의적인 개념이고 각 나라마다 특색 있게 발전되었다. 영국이나 독일 지역의 계몽주의자들은 가톨릭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신앙심이 강한 데 반해,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신론이나 무신론자들이 대부분이었다.” (124쪽) 계몽주의를 한 뭉텅이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영국의 혁명과 프랑스의 혁명이 달랐던 이유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쩌면 답답한 일일 수 있다. 왜 저렇게 살았는지(예를 들어 오물을 그냥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 같은 것)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것은 그게 우리의 오늘과 다르면서도 닮았기 때문이다. 또한 서양의 과거 역시 마찬가지다. 닮은 모습과 다른 모습이 공존하기 때문에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는 미시사이면서도 개인의 삶을 정교하게, 흥미롭게 그려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모두가 그렇다. 학술적 콜로키움의 단점이다. 즉, 대중을 위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래도 읽고 손해본다는 느낌은 아니다. (2013.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