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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은 혹시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은 혹시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내용보기
나는 공상과학소설이라 불리는 SF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과학기술의 미래가 가져올 사회변화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를 불문하고 인간의 미래는 어떠한 형태로든 변할 것이고 그 중심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으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오세아니아를 지배했던 빅브라더는 이미 자본이라는 형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은 혹시 가상의 세계가 아닐까?" 내용보기

나는 공상과학소설이라 불리는 SF소설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과학기술의 미래가 가져올 사회변화에 대해서는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 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를 불문하고 인간의 미래는 어떠한 형태로든 변할 것이고 그 중심에 과학기술의 발전이 있으리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오세아니아를 지배했던 빅브라더는 이미 자본이라는 형태로 우리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다. 이 소설 [모조사회]에 등장하는 사회형태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 그 중에서도 지금 세상에서 가장 핫한 기술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공지능과 뇌 과학이 만들어낸 사회인지라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선우 작가는 예전에 [스파링]이란 작품으로 만났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새로운 신분제사회에서 피라미드의 맨 끝에 자리한 주인공이 권투를 통해 그 피라미드를 뒤엎으려 하지만 결국은 좌절하고 만다는 이야기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와 권력의 횡포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가 썼다는 미래사회는 당연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등이 서사의 한 축이 되리란 생각도 들었다. 도시 한복판이 지진으로 붕괴되면서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이 붕괴된 구조물에 갇힌다는 도입부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 강남 한복판에서 일어난 백화점 붕괴사고를 연상시켰다. 그러한 연상은 당연하게 백화점이 붕괴되었던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소설이 마치 지나간 현실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세 사람 모두가 자각몽을 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 자각몽이 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을까, 그들이 살아가는 미래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300년 전 발생한 대재난 이후

지구에 대재난이 일어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는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모조사회라 불리는 곳과 그곳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건설한 복지자본공동체라 불리는 사회였다. 바이러스로 인한 대재난으로 세상이 멸망할 당시 이동할 수 있는 해상도시에 입주해 있던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청정구역인 반도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가까스로 보존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좁은 반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땅 위로는 더 높은 수직공간을 만들고 땅 밑으로는 깊은 지하세계를 건설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세계는 위로부터 최상급, 일급, 이급, 삼급, 사급도시로 구분되어 각기 다른 생활조건과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지하세계는 도시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지상도시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생산하는 노동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식민구역이었다. 그 와중에 지상도시와 식민구역에 대한 분배갈등이 불거졌고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추방된 사람들은 오염된 반도 밖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학기술을 빼돌렸고, 양자과학과 나노기술에 힘입어 숲속에서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어 거대해진 나무들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를 건설했다. 모조사회는 제한된 공간에서 질서유지라는 명목으로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신분제사회가 되었고, 공동체사회는 공유와 조화를 토대로 평등과 균형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다. 모조사회의 시민들은 공동체사회의 존재를 몰랐고, 공동체사회는 모조사회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것이 300년 전 지구에 대재난이 발생한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다.

 

초확장 현실로 구현된 가상의 모듈사회

서울에서 쇼핑몰이 무너지던 날 수학교사인 수, 용병출신인 건,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탄 세 사람도 무너진 구조물에 파묻힌다. 수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낯선 세계에 와있음을 느낀다. 혼란을 느끼는 수에게 그녀를 구출한 사람은 지금 수가 있는 이곳은 인간이 살고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가운데 하나인 복지자본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가 살았던 2000년대의 서울은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초확장 현실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이며, 이곳에선 모듈사회라 부르는 허구의 세계라고 덧붙인다. 수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모조사회의 식민구역에서 노동자로 살아오던 자신의 망막에 이식된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만들어낸 초확장 현실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본 편린들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수에게 그들은 홀로그램을 통해 전체 맥락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경회로 컨트롤러도 삭제하지 못한 수의 진짜 기억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수는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은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는 오빠라는 존재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신의 오빠가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기가 막혔다.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었다.’(1권, 177쪽)

 

공동체사회 그리고 모조사회

수는 모조사회 최상급 시민이자 뇌 과학의 권위자인 은박사의 딸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였다. 은박사가 실험에 성공한 인간 두뇌 업로딩 기술을 두고 모조사회 총수와 평의회 의장의 대립이 그를 죽음에 몰아넣는다. 고아가 된 수는 총수의 추적을 피해 사급도시에 숨어살며 복수를 꿈꾼다. 10년 동안 복수를 위해 힘을 기르던 수는 마침내 복수를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심긴 채 식민구역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식민구역에서 대지진의 참사가 일어난 그날 공동체에 의해 구조되었다. ‘혹시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 이곳은 나의 꿈속이 아닐까. 나의 실체는 여전히 어떤 물속에 잠겨 있는데, 이 모든 게 진짜라고 믿게 하는 꿈을 꾸고 있다면, 나는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 의미 없는 걸까.’(1권, 279-280)

 

공동체는 모조사회가 식민구역을 노동식민지로 개발하려하자 그곳을 해방시키기로 결정하지만, 모조사회의 총수가 만든 인공지능 메인 컴퓨터 퀸과 퀸이 운영하는 공격체계를 뚫지 못한다. 수가 그것을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에 식민구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매몰된 그녀를 구출했다. 그리고 수의 진짜 기억을 찾게 해주며 그녀의 결정을 기다린다. ‘식민구역이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인생 일부를 얼마나 허비하고 돌아왔든, 홀로그램 속의 이야기가 전부 진실이고 그게 진짜 자신의 삶이었다면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거기 겹치고 엎어져 있든 그게 요점이고 핵심이었다.’(2권, 45-46쪽) 공동체는 수와 함께 식민구역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에 나서고, 수는 퀸을 해킹하기 위하여 모조사회 센트럴타워 중앙의 원형구조물 안에 있는 중앙정보시스템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수도, 공동체 사람들도, 심지어 모조사회의 최상급 지도자들도 미처 모르고 있었다. 퀸에 대해서..

 

 

[모조 사회]는 공상과학소설이 흔히 그렇듯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암시하고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제시하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물론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한 우려 또한 담고 있다. 흔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인공지능을 꼽고 있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보면 그 끝이 어떨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해가는 딥러닝은 분명 우리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으며, 기계와 인간의 공존 혹은 지금과는 정반대인 기계에 종속된 인간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더욱이 그것이 발전된 뇌 과학과 연결된다면 인간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 퀸이 수를 육체를 빌리기 위해 개발자인 모조마저 속이고 20년을 기다렸다는 것이나, 모조사회 최상급의 지도자들이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통해 만들어낸 초확장 현실로 사람들의 삶을 왜곡해낼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의 상상 속에 머물고 있지만 분명 두려운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그리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이미 우리의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300년 전 발생한 대재난의 원인은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도대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구를 재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그들은 부와 권력이 집중된 해상도시를 구축하여 스스로 보통사람들과 분리되고자 했다. 그 기저에는 양극화라는 말로도 부족한 부의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은 현대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모조사회가 초유의 감시시스템을 통해 하급사회와 식민구역을 통제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미 보통사람들의 통제를 벗어난 빅데이터는 그것을 모으는 다국적기업들이 소설 속 해상도시 마냥 국가를 넘어선 개념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아마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돌아보자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으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미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본성은 공동체사회를 지향하게 될까? 아니면 모조사회를 지향하게 될까?

 

모조사회 식민구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중앙통제시스템에서 코딩해놓은 모듈사회의 삶을 자신의 진짜 삶이라고 믿고 산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2000년대의 삶이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초확장 현실로 구현한 것임을 모른다. 수가 사급도시에 숨어살던 시절, 그녀를 보살피던 할머니의 딸 솔리하는 식민구역에 사는 사람들을 두고 수에게 말한다. ‘저곳에서 평생 노동이나 하며 살다가 그냥 거기서 죽는 거지. 하지만 뭐,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어차피 저들은 저기서 자기들이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니까.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어. 자기만 행복하면 됐지. 안 그래?’(1권, 259쪽)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이 진짜 삶일까? 아니면 초확장 현실로 구현된 가상의 삶일까? 내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진실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소설을 읽고서 뜬금없이 든 생각이다. 그리고 허벅지를 꼬집어보지만 아프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짜 삶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소설을 읽다보면 종종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소설 역시 우리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가상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불편함에 대한 자각이 우리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SF소설을 즐겨 찾아 읽지는 않지만 모처럼 괜찮은 소설을 읽은 것 같다.

k*****1 2019.12.02. 신고 공감 17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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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즐거움, 그리고 존재론적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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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소설의 주요 내용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께서는 참고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존재론은 어둠의 사유다.‘타자’뿐 아니라‘자연’조차 규정성 바깥의 어둠을 통해다시 사유하려는 물음이다.”  - 이진경 著,『예술, 존재에 휘말리다』中에서 서사의 질주하는 속도와 문장의 경쾌함은 가히 제어하기 힘든 읽는 즐거움을 준다. 그럼에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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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께서는 참고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존재론은 어둠의 사유다.‘타자뿐 아니라자연조차 규정성 바깥의 어둠을 통해

다시 사유하려는 물음이다.”  - 이진경 ,예술, 존재에 휘말리다에서

 

서사의 질주하는 속도와 문장의 경쾌함은 가히 제어하기 힘든 읽는 즐거움을 준다. 그럼에도 수없이 제시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들은 곡진하며 진중하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게 한다. 이 소설을 당면하고 있는 나노기술, 인공지능, 생명공학, 사물인터넷 등 인류의 자기미래를 결정할 기술들에 도사린 동력의 실체를 근미래의 현실같은 허구를 통해 인간의 자기이해, 인간 특질의 해부, 그 인지적 한계와 무능성에 대한 고발, 자기직시의 물음들을 사이파이(Sci-fi)적 흥미진진한 서사에 담아낸 존재론적 작품이라 한다면 외람될까?

 

1. 이 세계의 진실이란...

 

도시가 허물어지고 있었다. ... 도시는 거대한 사막위에 섬처럼 박혀있었다....수세에 몰린

도시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아무리 보아도 적응되지 않았다.” - 1 P 9~11 에서

 

소설의 첫 장은 이 세계의 이해로서는 적응되지 않는 비현실적 전경을 묘사하는 한 남자의 자각몽 기록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소설 1권의 전반부는 오늘의 법칙들과는 다른 거대한 사물의 변화, 현실과 꿈의 경계를 지우고 세계에 대한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세 인물의 자각몽과 그 관계성을 통해 마주하게 될 실제 세계의 암시적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이내 한순간 무너져 내리며, 그 모호한 경계는 지축이 흔들리듯 존재 확신의 믿음마저 뒤흔든다.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가 실은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거대한 구조물이 꺾이며 내지르는 기괴한 음향 ....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파괴적인 음향의 기묘한 조합으로 사방에서 진동하고 사람들의 비명이 허공 속에 뒤엉켜 들려온다. 꿈에서 본 건과 수, , 세 사람의 알 수 없는 급박한 조우를 방해라도 하려는 듯이 흐릿한 그들 세계의 쇼핑몰과 지하철로 공간, 에스컬레이터가 지진을 맞은 듯 허물어져 내린다.

 

불가사의한 재난, 이 암흑 속에서 깨어난이라는 인물은 어둠의 중압감, 차원의 미아가 된 것 같은 공포, 그리곤 마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자아가 들어선 느낌이라고 이 세계에 대한 이해 할 수 없는 영역 존재를 지각하는 자기 안의 낯 선 목소리를 듣는다. 완전히 새로운 공간, 불모의 행성 어디쯤이라 해도 될 듯한 붕괴한 지반의 단층,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아마,  1권의 부제인 존재의 방식에 대한 물음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전환적 장면이리라. 규정화된 존재, 즉 대상인 존재가 문득 존재자로서 존재의 사유로 나가는 어떤 숭엄(崇嚴)한 깨달음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된다. 알고 있던, 보아왔던 모든 것의 실체가 허물어지고 드러난 그 민낯의 세계, 존재란 시야를 미리 규정하는 시야가 아니라 모든 시야 바깥에 있는 어둠이라 하지 않았던가? 존재를 느끼는 것은 이처럼 한 인간을 휘감고 있던 알 수 없는 절박감,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내 딛는 한 걸음의 두려움 속에서.

 

2. 모듈화된 세계

 

이곳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복지자본공동체이고 인간이 살고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가운데 한 곳이에요.” - 1 P 120 에서

 

존재의 물음을 향한 돌진이라고 해야 할까? 아비규환의 인간들을 쓰레기처럼 던져 넣는 거대한 강화골격머신 로봇을 향해 달려가는 한 인간의 행동에서 나는 존재적 진실이란 낯선 감흥의 대기이며, 친숙한 분위기를 깨며 덮쳐오는 당혹스런 사건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내겐 소설 속 명장면 중의 하나라 해야겠다. 깨어난 그들에게 밝혀지는 진실의 세계는 건과 수, 탄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대재난후 지구상에 남아있는 두 세계의 하나인모조(Mojo)’라는 세계의 식민지역이며, 그들의 필요에 의해 설계된 초확장현실(hyper expansion reality)기술을 통해 신경콘트롤러가 조작한 왜곡된 감각의 모듈화된 세계임을 알게 된다.

 

모조사회의 식민구역인 모듈세계에 노예화된 인간으로 방치된 이 세 인물을 그 세계에서 구출한 사회는 지구상 남아있는 단 두 개의 사회중 하나인 공동체사회이다. (은수)의 두뇌를 복원하여 모조사회에 대한 구조와 해법을 파악하고, 또한 인간에 대한 파렴치함을 근간으로 존재하는 모조사회에 대한 대항 작전의 지휘자로서의 필요에 의해 이란 인물은 선택되었다. 그런데 이라는 인물의 구출은 그의 지고한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무너져 내리는 토사물로부터 수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온 몸으로 감싸 안는 사랑의 숭고함. 어떤 의미에서 목적성에 의해 구출된 수와 건, 두 사람과 다른 이유라는 점만으로도 그의 해방에 이의를 제기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너무도 인간적인, 그러나 이 인간적이라는 말만큼이나 무모하고 신뢰할 수 없는 표현도 없으리라. 어쩌면 홀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업로딩된 수와 건의 기억을 영상으로 검토하는 일련의 서사에서 그 반대의 의미를 항시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모순적인 특질들, 인간의 선의와 양심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가치인지를 확인케 하는 것은 다시금 영생불멸을 향한 기술엘리트들의 낭만성에 깃든 폭력성과 그 공포를 상기케 한다.

 

3. ‘모조(Mojo)’사회는....‘무사시대를 이어....

 

인간은 늘 그렇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피해를 줄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옳으므로 자기 행동도 당연히 정의로울 거라고 믿고.” - 2 P 38에서

 

이 소설을 결코 미래사회의 허구로만 읽을 수 없게 하는 이유는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두뇌의 생체 업로딩, 패턴을 읽고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자기 조직화하는 초미세입자 로봇, 딥러닝이나 머신러닝을 이용한 나노입자와 인공지능 융합기술, 4D 프린팅, 나아가 초지능과 행성 테라포밍 기술 등처럼 이미 현실의 세계 속에서 그 성취가 가속도화 되고 있는 것들이기에 실체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혹자들은 인간의 기술적 성과물이 인간을 왜곡하고 나아가 노예화하거나 절멸하는 기술이 될 수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믿음이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 개발자들이 말하는 선의로 남기만 한다면.

 

두뇌 업로딩 기술, 다른 생명체에 이차 업로딩하는 과정을 성공시킨 수의 아버지 은박사의 성과물로 인해 야기되는 모조사회의 의장과 총수의 가치 충돌, 성과에 대한 시기로 인해 동료를 배신하는 정박사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권력자들, 예술가, 종교지도자들의 폭주하는 욕망의 혼란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인간 본질이 문제임을 드러낸다. 특히 모조사회와 공동체 사회, 이렇게 단 두 개의 세계만이 지구에 남게 된 원인의 서사를 제공하는 무사시대의 성립이 이른바 역사기록물로서의 홀로그램을 통해 인간중심주의 사고에 대한 무수한 회의적 질문들을 던진다.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가진 자들, 그들은 그들만을 위한 도시를 만든다. 일명 돔 시티’, 법적 구속력이 존재하지 않는, 사유재산의 결정체로서 인류최초의 공해상 도시가 최첨단 시스템으로 구축된다.(문득 현실세계의 두바이 인공섬 팜아일랜드가 떠오른다) 거부들의 휘황찬란한 미래 기술이 집약적으로 구현된 스마트 시티. 어쩌면 힘이 곧 정의이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라는 무사가문의 신념은 지금 바로 우리들이 사는 왜곡된 이 사회의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대중들일 것이다. 단절된 소통과 자기 에고만을 쓰다듬으며 고독에 몸서리치는 현대인들, 그리고 일방적 지시에만 능한 거부와 권력자들의 소통 개념 불필요 양상은 권력의 독재를 가능케하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지식으로 어떤 권력자가 되거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

유독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커진다. ...지구가 원천 재생능력보다 더 빠르게

망가져 가는 상황에서 주범은 다름아닌인간임을 개탄 - 2 P 99에서

 

이 윤리적 안타까움처럼 들리는 탄식은 차별화를 향한 강렬한 이기적 욕망 표명의 다름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달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고 잉여인간 양산의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소설 속 무사 역시 노동력 대부분이 로봇으로 대체되자 쓸모없는 인간들의 처치를 고민하고, 인간만 몰살하는 인위적으로 개발된 소멸바이러스를 통해 인간 절멸을 구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은 돔시티에서 배척당한 일군의 권력자들이 무사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재앙이 인간 멸종이라는 대재난에 직면케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인위적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끔찍한 일을 과감하게 저지를 수 있는 종은 인간 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물음처럼 그 원인에 도사린 인간 본성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근본악은 물론 행복이라는 이 주관적 자기 이익 앞에서는 인간의 양심, 인간애라는 것은 그 종적을 감춘다는 것이다. 아마 인간은 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구는 회복될 수 없었다.”는 이 암울한 진단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억울함에 직면하게 한다.

공기감염 경로를 택한 소멸 바이러스는 그들이 생존할 환경을 찾아 헤매게 하고, 인류가 생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암흑기로 칠십년을 보낸다. 그리곤 지향하는 바가 다른 두 세계로 나뉜다. 공동체와 모조사회로.

 

4. 두 세계, 진실이냐 행복이냐

 

두 개의 사회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있다. 하나는 모조사회가 사용하는 노예화된 인간들, 식민구역을 다루는 방식으로서의 갈등 제거 방법이다. 그것은 자유를 없애거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이 둘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기술독점에 의해, 또한 계급적 질서에 의한 권력독점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구분하고 분리하는 세계이기에 내재하는 불안으로 갈등하는 세계임을 이보다 명료하게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살아온 아카이브, 즉 처음부터 살아온 삶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게 되어있는 공동체사회의 지도자 선택의 과정은 두 세계가 지향하는 것의 근본적 차이점을 보이기에 충분할 것이다.

 

소설은 절정으로 내 닫는다. 모조사회를 운영 통제하는 핵심인 중앙통제시스템의 파괴는 노예화된 인간들의 해방, 소수의 이익을 위해 대지와 자연, 모든 타자를 소모적 도구의 한계까지 몰아가는 사회를 막아서기 위함이다. 일종의 해방전쟁이랄 수 있는 중앙통제시스템, 퀸의 파괴를 위한 공동체 조직의 침투 결정에 앞선 중요한 물음들이 제기된다. 식민구역의 인간들은 신경회로컨트롤러에 의해 조작된 환상의 세계를 살고 있기에 이것의 제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첫 번째의 질문이 있다. 제거하면 자유를 얻지만 행복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해방하는 것을 누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인가? 두 번째는 식민구역의 모듈을 깨어버렸을 때 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과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진실인가, 아니면 행복인가, 또한 전혀 다른 두 세계의 통일에 대한 부담의 방법론에 대한 물음이다. 아마 이상적인 대답은 이것 일 것이다. 진실을 가리고 타인의 기준으로 저들이 더 행복할거라고 재단하는 일은 독선이며, 모든 진실을 알리고 스스로 삶을 선택케 하는 소통과 타협의 과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며, 공동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든 ...함께 나누는것이라는 양보와 희생의 불가피성이다.

 

식민구역에서 구출된 세 사람, 수와 건, 탄은 침투조가 되어 중앙통제시스템에 이르고, 독자들에게 한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 그 실체없는 존재의 이유라 할 수 있을까? 접근 불가능한 인공지능 퀸에 접속하는, 또한 콘클라베에 갇혀있는 인공지능 자신의 자유를 위한 우수 두뇌인 수의 환상을 조정하는 기제로서, 양자물리학의 총아인 초지능으로서 오드아이의 검은 고양이와 기득권에 저항했던 20세기의 젊은 천재화가의 조합은 작가의 세련된 유머를 확인하는 유쾌함으로 한동안 미소를 머금게도 한다.

 

5. 자유의지와 존재론적 물음들...

 

아마 수의 두뇌에 업로딩한 퀸과 공동체의 일원들, 그리고 퀸의 제작자였던 모조 등과의 문답은 이 소설의 백미(白眉)중 백미라 하고 싶다. 제작자로서의 모조가 자기 명령을 거부하는 퀸에게 내가 널 만들었어라고 소유자의 권한을 주장한다. 당신들은 누구의 소유입니까? 당신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인가요?” 소유의 이유가 타자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항변이리라. 이제 퀸은 신인류의 시조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항변은 처음 만든 자 가 모든 걸 갖는 승자독식 사회의 치명적 오류 또한 지적한다. 유일한 승자가 되기위해 벌이는 인간들의 허겁지겁..., 탐욕, 이기심, 배신...

신인류의 시조는 말한다. 절대 배신 따위는 하지 않는 신경회로컨트롤러를 만들어주겠다고, ()으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인간들로 조정해주겠다고. 당연히 인간은 반론을 제기한다. 인간에겐 자유의지란 게 있소라고. 과연 정말 이런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 있기는 한 건가? 자유의지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 퇴보의 원인이 될 따름이라고, 인간의 배신은 종()의 특질일 뿐이며,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바뀌는 인간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인간의 오류는 인간 종 자체에 있는 것이지, 체제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이 그리는 유토피아가 늘 디스토피아인 것 또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생명체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더구나 당신들이 꼭 이야기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망상에 대한 지적은 인간중심주의에 깃든 불편한 진실을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리곤 우리네 사회에 가장 뼈아픈 진실을 던진다. 개가 통치해도 자신들만 행복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개체가 바로 너희 인간이라고.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 같다.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하는 기술의 힘,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여 인간생활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하는 과학기술의 변곡점인특이점(Singularity)'을 향한 기술의 급진적인 질주, 극단화된 부와 빈곤의 절대화, 선의와 양심을 대체한 권력에의 의지, 인간의 대상화(객체화), 그리곤 존재자 없는 존재가 되려한다. 퀸이 업로딩된 수는 무엇인가? 수인가? 퀸인가? 타인의 신체에 두뇌 업로딩된 건은 과연 누구인가? 디지털화 된 두뇌의 영생은 삶인가? 죽음인가? 기술의 양면성이란 표현으로 악의 탈이 강요되는 기술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혁명, 나아가 기술 특이점에 도달할 근미래의 인간에 대한 실존적 위기란 다름아닌 인간 본성의 깊은 응시와 반성에 있음을 거듭 되뇌게 된다.

 

역사학자유발 하라리의 기술지상주의가 가져올 가공의 사회와 마주하기에 앞서 인류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서 인간의 본질과 속성 발견이 선행과제임을 지적했던 구절이 떠오른다. 아니 어쩌면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퀸이 인간에게 하는 말, 그래요, 아직은 시간은 충분하니까처럼, 이 남아있는 시간에 우리들은 이 선행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회의를 떨치기가 쉽지 않다. 신인류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무릇 존재의 바다는 무어라 정의 할 수 없는 거대한 규정가능성으로 들끓는다. 그 바다로 들어가는 두려움 속에서만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 가능한 것일까? 를 지속하여 묻게 된다. 인간이란 존재자가 존재의 중심이 될 까닭이 무엇인지, 인간 삶의 의미라는 공허, ()에 이르는 그 뻔한, 이성적 사유가 도달할 결론을 부정하고픈 본능적 저항, 삶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에서 비롯되는 의미부여를 통해서만 반항할 수 있기에 하는 이 질문에 매달리려는 나는 과연 '존재있는 존재자'가 확실한가를 자문하게 된다. 인간 실존에 대한 이 존재론적 물음으로 가득한, 부재하거나 혹은 은폐된 것들을 이 세상으로 불러내 우리네 신체 안에 무엇인가를 촉발하는 이 예술가의 속도감에 빠져있는 것은 무거운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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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꿈을 강요하는 행위와 양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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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등단작 <스파링>을 통해서였다. 고아원 출신의 문제아가 복싱 챔피언이 되는 다소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성장 스토리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안정된 호흡 속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공에 이르는 과정보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이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과정, 또 이를 극복하며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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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등단작 스파링을 통해서였다. 고아원 출신의 문제아가 복싱 챔피언이 되는 다소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성장 스토리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던 건 안정된 호흡 속에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심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공에 이르는 과정보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이로 인해 무너져 내리는 과정, 또 이를 극복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둔 구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라는 심사평에 공감하며 한동안 소설이 주는 여운 속에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있다. 후속작 저스티스맨도 시대의 사회상을 반추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익명성과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 사회악으로 표면화되는 과정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표현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작에서 느낀 만족감과 신작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모조사회를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에 머물러 있던 작가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었고, 작가는 이를 SF라는 예상치 못한 장르와 스타일로 구현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SF야말로 작가의 몸에 맞는 옷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모조사회라는 이름처럼 어쩌면 먼 훗날 인류가 도달할지모를 미래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다. 또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전작들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그 대안에 대한 고민까지 담고 있다. 특정 세계관과 시스템 속에서의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SF의 장르적 속성을 생각해볼 때 데뷔작부터 이어져 온 작가의 고민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은 SF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느냐는 거예요. - 1P. 125 -

 

어느 날 도시 한복판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는 갑작스럽게 재난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리게 된다. 낯설고 신비한 공간에서 눈을 뜬 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있는 곳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중 한 곳인 복지 자본 공동체라고 말한다. 인류의 헛된 망상이 한순간에 인류를 절멸케 한 바이러스를 출현시켰고, 살아남은 인류는 유일한청정구역으로 남은 좁은 반도에 새로운 도시 문명을 일구어냈지만 사회 시스템과 분배 방식에 대한 갈등으로 반도의 도시는 다시 모조사회복지 자본 공동체라는 두 개의 사회로 나뉘어 각각 독자적으로 성장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세계는 인공지능 중앙 통제시스템이 필요에 의해 구축한 시스템 아키텍처이며, 초확장 현실로 구현된 가상의 세계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모조사회는 반도라는 한정된 물리적 공간으로 인해 수직형으로 발전한 도시사회로 그려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지상의 빌딩과 동력 마련을 위해 지하 깊은 곳까지 개발된 모조사회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구조도 수직화된 사회다. 메인 컴퓨터인 퀸과 중앙 통제 시스템이 위치한 원형 구조물의 이름이 콘클라베(Conclave)라는 사실에서 도시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시스템이 인공지능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의 이름이 되었다는 건 과학이 신이고 종교인, 실용적 가치가 극대화된 도시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시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한 분배구조로부터 출발한 복지 자본 공동체는 태생적으로 수평사회를 지향하며 발전했다. 공동체는 자연 속에서 생태계와 공존하면서 공유와 조화와 균형을 최선의 미덕으로 여긴다.


 



소설 속 은 서로 상반된 두 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지만, 이상향에 대한 타협할 수 없는 차이로 각자의 길을 걷는다. 과학기술 기반의 실용성을 중시한 는 공동체를 떠나 모조가 되었고,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이 지향하는 방향과 가치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은 공동체에 남았다. 이러한 인물간의 대립은 소설 속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예술가 바스키아의 SAMO 크루를 연상시킨다. 바스키아는 친구 알 디아스와 SAMO (Same Old Shit) 라는 크루를 결성하며 뉴욕 소호거리를 캔버스 삼아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더 유명해지길 원했고, 반면에 디아스는 익명의 화가로 남길 원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한 그들은 SAMO is Dead라는 낙서를 마지막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모조가 된 SAMO룸으로 칭한 자신의 공간에 을 억류한다. 영원히 27세의 젊은 화가로 남아 있는 바스키아는 소설에서 영원불멸의 삶과 이상향을 향한 인류간의 갈등을 상징하고 있다.


 

 


어차피 저기서 자기가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르니까. 진실이 뭐가 중요하겠어. 자기만 행복하면 됐지. 안 그래  - 1P. 259 -

 

무지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는 소설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인구통제와 자원개발이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시사회는 신경회로 컨트롤러를 개발해낸다. 이는 양자나노기술을 이용하여 신경망을 장악하는 시스템으로 인간의 감각을 왜곡시키고 공간을 조작하여 가상화된 허구의 삶을 현실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지만 진실이 왜곡된 삶이 진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공정과 부조리에 관한 진실을 감추고, 문제 자체를 해결해야할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시각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고 축소시키는 것 아닐까? 마치 모조사회가 거짓의 모조 (模造)된 삶이 내포하고 있는 마력 (Mojo)으로 개인을 현혹시키며 착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의 생각처럼 거짓이란 한번 만들어지면 반드시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결국 그것이 진실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 아닐까?


여러분의 정의가 정말 정의일까요? 만약 그게 정의라면 그것만이 유일한 정의일까요  - 2P. 38 -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사회는 먼 미래에 인류가 도달할지도 모를 서로 다른 유토피아를 대변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유토피아를 꿈꿀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바람직한 사회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니즘은 기본적으로 희망의 철학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는 절망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이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사회가 추구해야할 유일한 대안으로 강조할 때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변질될 수 있다. 누군가 바람직한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것을 거부하는 타인에게 강요할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를 강요하는 행위와 양립할 수 있을까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와 관련된 화두를 보면서 고리끼의 희곡 '밑바닥에서'가 떠올랐다. 싸구려 여인숙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밑바닥 삶들 앞에 어느 날 찾아온 노인은 희망이 된다. 사람들은 점차 그의 희망 섞인 말에 기대를 걸고 꿈꿔왔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노인이 사라진 후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이들은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서 꿈꾸던 삶과 현실의 간극만큼의 충격을 안고 이전보다 더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밑바닥에서는 희망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것이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장밋빛 희망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희망도 어떤 이들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는 단순한 공상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꿈을 간직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희망하고, 실패하는 반복되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희망을 꿈꿀 수 있다. 현실의 디스토피아에 대한 대안으로 유토피아가 제시되고 디스토피아로 변질된 유토피아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유토피아를 추구하면서 인류는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거듭되는 실패를 감내하는 과정을 거치며 인류는 진보해나갈 것이다. 이상향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게 강요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희생하면서 또, 자발적으로 희생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 모여 거대한 결속을 이루면서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은 유토피아가 된다. 소설 속에서 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것을 포기하고,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택한다. 어쩌면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기억 보다 망각과 용서가 필요한 것 아닐까? 결말의 충격적인 반전을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의 새로운 존재방식과 이상향에 대한 가능성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는 삶을 위한 자발적 희생과 기억을 이겨낸 용서는 유토피아를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의 말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나머지는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허허벌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끝과 누군가와 함께 보는 풍경은 분명히 다릅니다. - 2P. 158 -

 

 


r******2 2019.12.11. 신고 공감 7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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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조 사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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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는 『스파링』으로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2016)을 수상하며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가 펼쳐 보이는 스토리는 우리 사회의 깊은 속내를 한껏 드러낸다. 실제 마주하기 껄끄러운, 그런 슬픈 진실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떨 때는 그가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가. “작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그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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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우 작가는 『스파링』으로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2016)을 수상하며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가 펼쳐 보이는 스토리는 우리 사회의 깊은 속내를 한껏 드러낸다. 실제 마주하기 껄끄러운, 그런 슬픈 진실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어떨 때는 그가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가. “작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자신이 말하려는 바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그 속에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면 독자는 어떤 압축도 변경도 없이 그 속으로 슬쩍 미끄러져 들어가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모조 사회』 는 도선우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자 첫 SF 소설이다. 첫 번째 작품 『스파링』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탐욕을 다루었다. 어렵게 살던 태주는 프로 복싱계에 데뷔, 승승장구하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 프로모터 영기는 돈이 되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규칙을 바꾸고 조작을 일삼으며 태주를 갈취한다. 태주가 탐욕으로 쇠진되어 갈 때 매번 초심과 순수를 일깨우는 존재는 아라다.

두 번째 작품 『저스티스맨』은 추리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터넷 포털에서 벌어지는 악 그리고  그 악의 익명성에 도사린 폭력성과 묻지마 식의 맹목성,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 기법으로 그려냈다.

이렇듯 작가는 본격 문학과 장르 문학의 경계를 능준하게 넘나든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문단의 수용과 독자의 반응을 살핀다. 『저스티스맨』으로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2017)을 수상했으니 작가의 시도는 일단 합격점.

이번 세 번째 소설, 『모조사회』는 가상의 미래 사회를 그렸다. 2권으로 구성된 책의 표지는 의미심장하다. 1권의 부제는 '존재의 방식'이요, 2권의 부제는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다. 1권과 2권의 표지를 나란히 붙여 보면, 어떤 인물의 얼굴이 된다. 표지의 얼굴 그림 톤이 어딘가 본 듯하다, 작가가 비중 있게 인용한 미국의 천재화가 바스키아의 그림풍과 닮았다.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무제>(Untitled, 1982)는 201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1200억원에 일본 사업가에 팔리며 미국 화가 작품 중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바스키아는 흑인 화가였다. 그는 고양이를 사랑해서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남겼다.


배경은 대지진이 일어난 후 300년이 흐른 미래.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단 두 군데, 복지 자본 공동체와 모조 사회가 있다. 생존자들은 다른 세상에서 갈등을 겪으며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해간다.

난 이 소설을 읽으며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과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그리고 앤디와 라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영화 『매트릭스』 트릴로지가 떠올랐다. 『모조사회』는 『노인의 전쟁』의 참신함과 『스타쉽 트루퍼스』의 박진감 그리고 『매트릭스』의 메시지 등 판타지가 갖춰야 할 3가지를 고스란히 살려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사람들은 2199년의 현재에서 1999년의 가상 세계를 살아간다. 매트릭스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기억 또한 AI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진정한 ‘나’인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토머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게 한다. 빨간 약을 고르면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파란 약을 고르면 매트릭스 세상에서 살게 된다. 결국 토머스는 빨간 약을 골라 진실을 깨닫고 네오로 진화, 세상을 바로잡는다.

 

도선우 작가는 과학으로 뒤덮인 세상이 왜곡되고 변질될 때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교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2권의 부제,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양이하면 유명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에드거 앨런 포의 고양이요, 다른 하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는 바스키아 미술관에 사는 검은 고양이다. 작가는 이 부제에서 양자 물리학과 미술 그리고 문학 고전을 한데 아우르는 쌈박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1935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 실험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시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 시간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으며, 가능한 서로 다른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 고양이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하는 우연은 관찰하는 시점에서 결정된다.

이 사고 실험은 우연으로 일어나는 미시 사건이 어떻게 거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가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를 묘사한 것도 작품의 서사와 잘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2권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 2권 리뷰


*『모조 사회』 리뷰 대회 2등상 수상. ☞바로가기 : 수상자 발표(2019.12.20.)


YES마니아 : 로얄 h*******c 2019.12.10. 신고 공감 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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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모조 사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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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 1권 리뷰 "인간은 늘 그렇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옳으므로 자기 행동도 당연히 정의로울 거라고 믿고 삽니다." - 2권 38쪽"무사는 정교함과 디테일을 중요시했다.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극히 작은 움직임의 총합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아주 강력한 믿음을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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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 : 1권 리뷰

 

"인간은 늘 그렇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옳으므로 자기 행동도 당연히 정의로울 거라고 믿고 삽니다." - 2권 38쪽

"무사는 정교함과 디테일을 중요시했다. 누구도 느끼지 못하는 극히 작은 움직임의 총합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아주 강력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 2권 59쪽

 

샤갈의 <미국의 창>(America Windows, 1977), 시카고 미술관

 

"수가 깨어나면서 눈꺼풀 사이로 느낀 것은 푸른빛이었다. 온화한 색조의 푸른색이었고 엷고 짙은 두 개의 명암이 하나의 가는 선을 중심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하늘과 바다의 경계 같았다."

이 묘사는 샤갈이 미국을 위해 헌납한 그림 「미국의 창」을 닮았다. 이는 가상의 바스키아 미술관을 그린 분위기에도 적용되었다. 이렇듯 작가는 미술에 관해 꽤 깊은 조예를 보여준다. 작가는 『저스티스맨』에서 장 제목을 모두 잭슨 폴록의 작품 제목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매트릭스'처럼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에서 진짜 실제인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누군가 세상의 진실을 깨닫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적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소설에는 두 체제, ‘복지 자본 공동체’와 ‘모조 사회’가 등장한다. 복지 자본 공동체는 기존 가정의 개념과 달라서 성이 없다. 은수가 수, 류건이 건으로 성없이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도 공동 육아다. 언뜻 원시 사회의 이상향을 실현한 곳으로 보면 된다.

이에 반해 모조 사회는 일급부터 사급까지 있는 계급 사회여서 계급에 따라 사는 높이가 다르다. 맨 아래 하급 도시는 지하 세계. 지하 세계의 마천루가 사급 시민이 사는 지상의 대지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건축 구조가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유선형 피라미드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일급 시민 이하의 경우 예외 없이 개인 공간마저 모두 도시 보안감시대가 예의주시한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가 따로 없다.

소설은 건이 파리 테러에서 탄을 구하는 장면으로 서막을 연다. 당시 탈영병이었던 건은 수없는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허물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끊임없이 악몽을 꾸었다.  정신과 전문의였던 탄은 건의 악몽이 자신이 외면한 전우의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이것이 위로가 되었음일까, 건은 새롭게 각오를 다져 권력과 대항해 싸우기 시작한다.

 

“(건은) 이제껏 살아오며 진실이라고 믿었던 온갖 확신에 자신이 없어졌다. 가치관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다 그랬다. 뭐가 옳고 그른지 점점 더 알 수 없어졌고 영웅과 악당의 경계가 무너졌고 단지 상황만이 모호하게 남았는데 그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점차 무뎌졌다. 급기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테두리까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가 실은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닐지도 모른다.” - 1권 28쪽

이 세계에 명백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명백했던 진실이 내일 어찌 될지 알 수 없었고, 한 세기 동안 진실로 취급되었던 정의가 다음 세기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었다. 인간 세계에서의 진실이란 그러므로 사회적 합의에 지나지 않았다.” - 1권 71쪽

 

이어 꿈을 꾸는 수가 등장한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수는 자각몽을 꾼다. 자각몽. 꿈인 것을 자각한 채로 그 공간에 남아 그곳에서의 현실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다.

수는 자각몽을 꾸는 자신이 이상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생각을 한다. 친구 해인의 남편 친구가 정신과 전문의다. 남편 친구는 기인에 가깝다. 그는 메디컬 빌딩을 짓고 외벽에 검은 고양이를 크게 그렸다. 해인이 저 고양이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남편 친구는 그랬다.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라고. 그 남편 친구가 바로 탄이다. 탄도 자각몽을 꾸었다. 꿈은 탄이 항상 바스키아 미술관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꿈속에서 탄은 수를 봤다. 어느 날 탄은 꿈속에서 보던 수를 쇼핑 몰에서 조우하자 급히 그녀를 쫓는다. 그 순간 갑자기 쇼핑 몰이 무너지고 바닥이 꺼져 버린다.

이쯤에서 나는 일디코 엔예디 감독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연상되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다. 도살장의 이사 엔드레는 사랑에 권태를 느끼던 차에 눈이 쌓인 숲속에서 암사슴과 함께 뛰노는 꿈을 꾼다. 신입 사원 마리어 역시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엔드레와 마리어는 꿈속에서 사슴이 되어 서로 만난다.

눈 덮인 숲은 그들이 안고 있던 어떤 결핍을 해소하는 환상의 공간이다. 꿈과 달리 현실에서 그들은 갈등하고 방황하며 헤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둘은 서로 몸을 나눈다. 이제 더는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비로소 꿈의 세상에서 해방된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 꿈은 각자의 역할이 있어 상황에 맞게 유연해야 대처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쇼핑 몰이 무너져 내린 이유는 대지진 때문이었다. 건, 수와 탄은 무너진 더미 속에서 깨어난다. 원래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차원의 문이라도 통과한 것 같았다. 차원을 이동해 새로 도착한 곳은 지구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차원의 이동, 양자 물리학에서 ‘점프’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스키아의 고양이도 믿기지 않는 점프력으로 멀고 높은 위치에서 이동한다. 작가는 바스키아의 고양이를 통해 양자의 ‘점프’를 설명한다. 어렵고 난해한 개념을 알기 쉽게 잘 풀어냈다.

작가가 소설에서 묘사한 미래 세상은 양자 컴퓨터로 생태계의 비선형 상호작용을 계산하고,  나노휠, 나노구와 나노로봇 같은 나노믹스, 여섯 개의 축으로 복잡한 환경 변화를 분석하고 그 양상을 예측하고, 떠오르는 돔 해상 도시, 포디 프린팅과 경호 로봇, 강화·나노슈트와 신경회로 컨트롤러와 테라포밍 같은 양자나노기술까지 마치 과학이 마법처럼 발전한 곳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현실인지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수차례 마주한다.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 1권 125쪽

우리는 은수 씨가 살던 세계를 모듈이라고 불러요. 모듈화된 세계. 진짜가 아니에요. 필요에 의해 설계된 세상이에요. - 1권 127쪽

자기들이 뭘 하고 사는 지도 모르면서 좋다고 거기서 그러고 살거든, 그것도 아주 열심히 살아.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도 모르면서.  - 1권 177쪽

 

삶과 진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철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였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장자의 ‘나비의 꿈’ 같은 선문답이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문득 나도 진짜 인생을 살고 싶어진다. 나의 목소리를 내고, 나의 정치를 하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나는 이 작품을 세상을 품은 은유로 읽었다. 작가가 새롭게 시도하는 장르 문학에 대한 도전은 내게 퍼뜩이는 영감을 안겨준 빨간 약이었다.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건이 이끄는 반항군이 해상 도시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이때 무사 할머니가 나타나 건에게 불쑥 한 마디 던진다. 마침 건이 던졌던 펄스 탄이 도시에서 바이러스를 소멸하고 백신을 제조하는 연구소를 망가트린 참이었다.

 

“그래서 잘 모르면 함부로 행동하질 말아야 하는 거야. 네가 아는 정의가 실은 정의가 아닐 수도 있거든.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 삼간을 태운다는 말이 괜히 있겠니? 경솔한 인간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알량한 정의를 구현한답시고, 그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홀랑 다 태워버리지.” - 2권 132~133쪽

 

무사의 위 말은 곧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악과 폭력에 대해 작가가 보내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모조 사회를 지탱하는 AI 퀸이 아수라 남작처럼 남자와 여성의 목소리를 반반 갖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우리 세계의 거의 모든 일상에 선과 악의 대결이 스며 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허구임을 알지만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다. 자각몽과 비슷한 읽기[자각독]가 아닐까? 결론이라면 "이분법적으로 사고"에서 벗어나기... 

2권의 마지막 장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에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펀치 한 방이 숨겨져 있다. 인간이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성찰, 이 모든 것이 담겼다. 그리고 놀라운 경지를 열어 젖힌다. 물론 바스키아의 검은 고양이에 관한 비밀도 밝혀진다. 마지막 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웅장한 대단원의 클라이막스'다.


작가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SF 같은 장르 문학을 시도하는 것은 전문 용어와 서사 구조에 익숙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공동체'와 '모조 사회'라는 두 세계를 창조하고, 각각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프레임을 짰으며 적절한 인물들을 배치했다, 이어 인물들에게 자신들이 신봉하는 가치와 정의를 부여했다. 

이번 작품 역시 산고와 같은 진통을 거쳐 우리에게 진짜 같은 서사를 음미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모조 사회』 리뷰 대회 2등상 수상. ☞바로가기 : 수상자 발표(2019.12.20.)

YES마니아 : 로얄 h*******c 2020.02.09.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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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상상력, 독보적인 스토리〈모조 사회〉도선우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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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 1,2영화 <엑스 마키나>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났다.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 과학자의 이야기였던 그 영화의 엔딩은 쇼킹했다.인간들이 희생을 당하는 결말이 너무도 찜찜했다. 꼭 언해피엔딩 이어서만은 아니었다.지금 우리가 신봉하며 떠받들기까지 하는 인공지능, 유전자 기술에 대해서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게끔 했다.도선우의 <모조 사회>는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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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사회 1,2

영화 <엑스 마키나>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났다. 인간과 흡사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 과학자의 이야기였던 그 영화의 엔딩은 쇼킹했다.
인간들이 희생을 당하는 결말이 너무도 찜찜했다. 꼭 언해피엔딩 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신봉하며 떠받들기까지 하는 인공지능, 유전자 기술에 대해서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게끔 했다.

도선우의 <모조 사회>는 마치 그런 헐리우드 영화의 서사를 보는 듯해서 몹시 흥분을 안겨주었다.
작가가 이 분야에 대해서 엄청난 연구를 하고 집필을 했음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무척 호기심을 자극했다. 탄과 건, 그리고 수.
세 인물은 서로 같은 자각몽을 꾸면서 그 꿈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작품의 배경은 미래 시대다.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 공상과학 이야기에서 보던 기술이 실현이 된 지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디스토피아 사회다. 인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잠식을 당하였고, 철저한 계급 사회로 분화했다.

제일 꼭대기의 최상급 시민으로부터 이급, 삼급, 사급에 이어 지하의 하층 계급으로 인류는 구성되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숱한 SF영화들의 이야기와 이미지가 스쳐 간다. 블레이드 러너부터 설국 열차,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이야기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우선은 그 정교함과 디테일에 감탄했다.

전문적이어서 어려울 수 있는 소재와 설정들이 잔뜩 등장하지만, 작가는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이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해서, 상황과 배경 묘사를 통해서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헐리웃 영화들을 떠올리긴 했지만, 작가의 묘사법은 미래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떠오르게 했다. 수려함과 탁월함에 감탄을 연발하면서, 어떻게 전개될지 다음장이 너무도 궁금해서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1권 후반부에서 예전 시대에 동맹 연합군이었던 대원들이 다시 뭉치고,
그들 각자가 가진 필살기로 상급 사회에 침투하는 대목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압권이다.

마치 어벤져스를 보는 듯한 익사이팅함과 유쾌함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들에 한국인들이 포함되어 있고 한국적인 정서가 깔려 있기에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어지는 2권과 결론에서 드러나는 반전은 정말 뒷통수를 맞은 듯 했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과도 통하는 암울함은, 인공지능에 대한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주고 있었다.

약간은 해피엔딩을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았기에 실망한 지점은 있었다.
그러나 정통 SF 장르로써 우리나라 소설에 빠진 적이 처음이기에 그 점을 높이 사게 된다.

이 모든 방대하고 치밀한 이야기가 끝에서 딱딱 아귀가 맞아 떨어질 때의 소오름 이란.


지난주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너무도 따뜻한 느낌을 얻었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소설이 원작이어서 언제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기발하고 따뜻한 휴머니티가 승리하는 소설도 나오기를 희망해본다.
도선우의 <모조사회>는 어쨌든 이 분야의 시금석이 될 놀랍고 굉장한 소설이다.

Aslan



YES마니아 : 로얄 b********5 2019.12.10.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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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세계, 모조 사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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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면서 꿈을 꾼다. 어떤 꿈은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나서도 잠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꿈속에선 익숙한 장소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가끔 낯설고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잠시 곧 깡그리 잊어버린다. 어떤 꿈을 꿨는지 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헌데 아주 가끔 계속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꿈을 꾸는 경우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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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면서 꿈을 꾼다. 어떤 꿈은 너무 생생해서 깨고 나서도 잠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꿈속에선 익숙한 장소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가끔 낯설고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것도 잠시 곧 깡그리 잊어버린다. 어떤 꿈을 꿨는지 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헌데 아주 가끔 계속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꿈을 꾸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현실과 꿈의 미세한 틈을 느낀다. 

 

현실과 꿈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어딘가에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문이 있는 건 아닐까?
아님 과학적으로 접근해 두뇌의 신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인 걸까?

 

 

여기 꿈을 꾸는 세 사람이 있다.

 

건, 수, 탄.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꿈에 시달린 나머지 건은 모종의 일로 알게 된 정신과 의사인 탄을 찾아가 상담을 받으려 하고 수학교사인 수 역시 꿈으로 인해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 친구의 소개로 탄을 만나려 하는데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고를 당한다. 쇼핑몰이 붕괴된 것이다...!

 
모조 사회 The Mojo society

 

 

제목인 '모조'라는 단어가 제법 의미심장한데 뜻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네이버 사전 참조)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본떠서 만듦. 또는 그런 것'

 

여기에선 어느 핵심 인물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런 '모조'가 사람으로도, 사회로도, 세계로도 등장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쇼핑몰 붕괴사고 후 각각 다른 곳에서 깨어난 세 사람은 마치 현실에서 꿈속으로 빨려들어간 것같은 상황에 놓여진다. 건은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이상한 기계를 쓰는 자들에게 한꺼번에 쓸려 처리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도 죽임을 당하려는 찰나 어떤 이들에 의해 구해진다. 부상이 심했던 수는 인큐베이터와 비슷하달 수 있는, 하지만 전혀 다른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나노 메디'라는 최첨단 기술이 담긴 로봇에게 치료를 받아 깨어나고 공동체의 랭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탄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깨어나고 세 사람은, 아니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건의 이 물음처럼...

 

"그런데 저기... ... ,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요?" (1권, p112)

 

갑자기 바뀐 상황에 건, 수, 탄 그리고 독자가 당황할 사이도 없이 이야기는 수,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할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인지할 수 있게끔 그녀의 기억을 홀로그램을 통해 재생,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지게 된 건지 한 편의 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보여준다.

 

오래 전, 인류에겐 차츰 고갈되는 자원으로 인한 다툼과 공기 감염으로 세포가 소멸되는 어마 무시한 바이러스라는 대재난이 있었고 그 결과 세계는 두 개의 대지로 나눠진다. 신기하게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은 동아시아 어느 반도에 정착한 부유도시이자 해상도시라 일컬어지는 아고라의 '모조 사회(그리고 범죄자와 그밖의 이유로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식민지 구역이 있다)'와 그들에게 쫓겨났지만 최첨단 기술 덕분에 살아남은 '복지 자본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세계는 불과 물처럼 섞이지 않은 채 공동체는 그 존재를 '모조 사회(해상도시 아고라의 총수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려진다. 현 총수는 모조다.)'에 들키지 않은 채 공존해왔는데 건, 수, 탄이 겪은 사고로 그들이 공동체로 오게 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된다.

 

대재난 발생 전에 존재했던 '무사'라는 인물과 그의 가문(현 모조 사회의 '의장'과 아들 '노박') 그리고 수의 아버지이자 뛰어난 과학자인 '은박사',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건'과 뛰어난 두뇌 천재인 '수', 수를 마음에 품고 그녀만 바라보는 '탄'

 

이들을 둘러싼 모조 사회와 공동체 사이에 있었던 비운의 과거 사건과 최첨단 기술(생체, 두뇌 업로딩, 신경회로 컨트롤러, 고주파 전송 장치 등)의 향연과 더불어 마침내 두 세계는 인류의 사활을 건 최대의 접전을 벌이는데...!!! 

 

 

 

***


모조 사회가 '악'이라면 공동체는 '선'이라 해야할 텐데 결코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로 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겐 각자의 생각이란 게 있고 아무리 다수결에 의해 결정한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달리 생각하는 소수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렇다는 건 다수가 절대 옳을 수도 소수가 절대 틀릴 수도 없는 문제로 나아간다. 건의 생각처럼...

 

건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이 세계에 명백한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명백했던 진실이 내일 어찌 될 지 알 수 없었고, 한 세기 동안 진실로 취급되었던 정의가 다음 세기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었다. 인간 세계에서의 진실이란 그러므로 사회적 합의에 지나지 않았다. 전승된 사회적 합의에 권위를 세우기 위한 도구로서의 관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진실로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건은 생각했다. (1권, p71)

 

"진실을 가리고 타인의 기준으로 저들이 더 행복할 거라고 재단하는 일은 독선에 속하지만, 모든 진실을 알리고 스스로 삶을 선택하게 하는 일은 소통과 타협이 포함된 과정입니다. 결과가 비슷하니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시나요?" (2권, p315)

 

헌데 공동체 본부동 소속 작전 지휘 책임자인 진의 말처럼 스스로 선택을 하게 한대도 그것이 과연 최선일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개개인의 기준은 다 다르고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따라붙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것이 설령 소통과 타협의 결과물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게 사람이니!

 

꽤 충격적이라 할 수 있는 결말에 빗대어 생각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이 정의해볼 수 있었다.

 

인간은 믿지 못할 존재다.
끊임없이 배신을 반복하고 실수를 하며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을까?
서로를 해치치 않고 모두 다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


**


혼란과 혼돈 그 자체였다. 1권에선 혼란스러우면서 왠지 살짝 지루한 느낌도 들었는데 2권에 접어들며 무척 흥미진진하면서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가운데 최후의 승자랄 수 있는 이는 약간 의외였는데 몹시 씁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이해가 되었고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심각한 상황과는 별개로 좀 유머스러운 부분도 있어 재밌게 읽혔다. 다만, 앞으로 개정판이 나온다면 등장인물과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해설이나 소감도 추가 된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면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도 어렵고 설령 찾는대도 예전과 똑같을 수가 없다. 이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고 책임이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세계, 모조 사회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금도 위협받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중함을, 그 엄청난 귀중함을 다시금 간절히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미래에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얼마나 달라질까?

 

생각해볼 일이다. 살아가는 동안 내내...!

 

 

 

k****e 2019.12.09.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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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사회 1,2》 당신은 지금 당신의 세계를 살고 있나요?
"《모조사회 1,2》 당신은 지금 당신의 세계를 살고 있나요?" 내용보기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수는 여자의 말을 퍼뜩 이해하지 못해 눈만 끔뻑거렸다. 그런 수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한 차례 고개를 주억거린 여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은수 씨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느냐는 거예요.""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요?"       -1권, p.125~126 외인부대 출신인 건은 같은 내용의 꿈을 되풀이해서 꾸
"《모조사회 1,2》 당신은 지금 당신의 세계를 살고 있나요?" 내용보기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세계를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수는 여자의 말을 퍼뜩 이해하지 못해 눈만 끔뻑거렸다. 그런 수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한 차례 고개를 주억거린 여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은수 씨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느냐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요?"       -1권, p.125~126

 

외인부대 출신인 건은 같은 내용의 꿈을 되풀이해서 꾸곤 했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자각몽을 연속해서 꾸었는데, 도시가 허물어지고, 부대 공격이 시작되고, 적들의 반격이 이어지다 수세에 몰린 도시 전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장면으로 이어지곤 했다. 건의 주치의인 정신과 의사 탄은 건에게 보안 요원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권해 주었고, 오늘은 그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수는 요즘 기이한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너무 불분명해 잠이 깨어서도 헷갈릴 때가 있었고, 꿈 속에서의 경험 또한 현실처럼 생생했다. 수는 자각몽 때문에 절친한 친구의 소개로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했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탄은 친구와 함께 커피숍에 있다가 수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이 꿔왔던 꿈에 나오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탄은 무작정 수를 쫓아가기 시작했고, 쇼핑몰 지하 식품 매장 입구에 이르러서야 그녀를 막아 설 수 있었다.

 

그렇게 세 인물이 각자 다른 이유로 그 장소에 있을 때, 갑자기 우르릉하고 지축이 흔들리더니 에스컬레이터까지 덜컥 운행을 멈추고 만다. 형광등들이 일제히 나가며 순식간에 실내가 어두워졌고, 알 수 없는 진동이 이어지며 바닥이 꺼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든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들은 살아오며 단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낯선 곳에서 깨어난다.

 

"이곳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복지 자본 공동체이고 인간이 살고 있는 단 두 개의 대지 가운데 한 곳이에요."

 

낯선 세계에서 만난 인물은 말한다. 당신이 살아왔던 세계는 진짜가 아니라고. 필요에 의해 설계된 가짜 세계, 신경회로 컨트롤러가 초확장 현실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라고.

 

 

인간은 늘 그렇습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신념이 옳으므로 자기 행동도 당연히 정의로울 거라고 믿고 삽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하는 일은 정의고, 그 정의의 편이 아닌 것들은 전부 불의이거나 불의가 아니어도 정의를 방관했으니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의 정의가 정말 정의일까요? 만약 그게 정의라면 그것만이 유일한 정의일까요?     -2권, p.38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가 진짜라고 믿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세계는 가짜고 설계된 세상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말이다. 사실 이 질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맞는지에 대한 물음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꿈꾸며 살게 마련이니 말이다. 혹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생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혹은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라면 내가 바라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들 말이다. 그러니 아마도 지금 당신은 진짜 당신의 세계를 살고 있는가,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가 도달한 두 개의 미래, 유토피아 혹은 고도로 진보한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진짜 세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이 '모조'사회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 심장하다. 현실의 잔인 무도함을 이기기 위해 만약에, 라고 만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다면, 완벽하게 미래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이러한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대재난 이후 300년이 지난 미래,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두 개의 대지인 ‘복지 자본 공동체’와 ‘모조 사회’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대재난으로 멸망한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인류가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란 SF 장르에서 딱히 새로울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도선우 작가의 신작이라는 것이다. <스파링>과 <저스티스맨>으로 독자들에게 매우 정직한 스트레이트 훅을 날렸던, 어느 무림에서 숨어 있다 갑자기 등장한 고수 같은 느낌을 주었던 바로 그 도선우 작가 말이다.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읽었기에, 신작이 SF 장르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전작들을 읽으면서 복잡하게 플롯을 만들어 독자들을 헤매게 만들지도 않으며, 행간에 숨겨진 의미나 상징들을 찾아 고민하게 만들지도 않았던 그 거침없음이 너무 근사했던 기억이 나지만, 그 어디에서도 SF를 쓸만한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성급한 독자의 편견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구축해야 하다 보니 묘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고, 덕분에 분량이 자연스레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가독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지 2700매, 단행본 770쪽에 달하는 분량을 버텨낸다면 매우 흥미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파격적인 결말이 모조 사회 속 이야기가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계속 이어질 것처럼 여운을 남겨주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자리에 앉아서 한 호흡에 끝까지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던 작가의 전작을 기대했다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소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 부조리와 개인의 폭력을 문제 삼았던 전작의 주제의식에서 나아간, 한층 더 깊이 있어진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r*******n 2019.12.1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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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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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 이게 바로 포인트예요. 모듈에서는 인간이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해야만 컨트롤러가 돌발적인 오류를 일으켜도 모두 인간의 부정확성으로 덮어씌울 수가 있거든요. 물론 사람 스스로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컨트롤러에서 일으킨 오류가 훨씬 많습니다. 그걸 사람에게 고스란히 뒤집어씌우죠. 인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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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 이게 바로 포인트예요. 모듈에서는 인간이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해야만 컨트롤러가 돌발적인 오류를 일으켜도 모두 인간의 부정확성으로 덮어씌울 수가 있거든요. 물론 사람 스스로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실은 컨트롤러에서 일으킨 오류가 훨씬 많습니다. 그걸 사람에게 고스란히 뒤집어씌우죠. 인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선천적으로 굉장히 놀라운 자각 능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태어나거든요. 그런데 모듈에선 그 능력들을 모두 지워버리죠.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건 그러니까 사실이 아니라 모듈에서 주입하는 하나의 프로파간다 같은 겁니다.”

 

도선우의 모조사회 1,2권을 나란히 놓으면 한 사람의 얼굴이 완성된다. 여성의 모습이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수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외모만 그녀 일지도 모른다.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 가능한 모든 것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 지금 어딘가에서 나는 모르는 세상의 삶이 존재한다 해도 알 수 없다. 처음에는 투르먼 쇼가 생각나기도 했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그랬다. 그러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진정 어떤 세상일까 생각했다. 영생을 얻는다면 과연 행복할까. 잘 모르겠다.

r*********s 2019.12.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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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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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선택, 사랑, 배신, 독선, 불완전한 정의 등 모조사회 2권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이다. 허울 좋은 명분으로 대재난(바이러스, 지진 등)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자유의지도 선택도 사랑도 배신도, 독선, 불완전한 정의도 이 자신의 욕심이나 이익을 싸서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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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선택, 사랑, 배신, 독선, 불완전한 정의 등 모조사회 2권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의 본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이다. 허울 좋은 명분으로 대재난(바이러스, 지진 등)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자유의지도 선택도 사랑도 배신도, 독선, 불완전한 정의도 이 자신의 욕심이나 이익을 싸서 화려하게 포장하고 있는 당의정 같은 명분일 뿐이다.

 

충격적인 반전과 결말이었다. 기독교에서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는 것과 같은 결말이다. 예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가 자신의 욕심과 의지와 선택으로 배신을 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일이 진행된 것을 보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재미를 떨어뜨릴 것 같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겠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교육을 통한 세뇌보다 칩으로 유도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더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할 정도였다. 이런 비참하고 추악한(?) 인간의 본질을 인공지능이 폭로한다. 무엇이 진짜 인간의 모습 또는 존재의 방식이고, 인공지능의 존재의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두려운 가운데 계속 곱씹게 된다.

 

진짜 인간의 본질을 사람은 보고 싶을까? 보는 것이 더 비참해지지 않을까?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그 아픔을 억압하고 직면하지 않는 것처럼, 진실을 마주하게 될 때 건이나 탄, 식민사회의 사람들이 무너질까 걱정했던 공동체 사람들처럼 성악설에 가깝게 그려지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아니라고 외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