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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사전적 의미로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 만물(萬物)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①십 대 후반(後半)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人生)의 젊은 나이 ②또는, 그 시절(時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푸른 꿈을 안고, 내가 뭔가 노력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은 시절. 사랑에 대해 고민을 했고,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으며, 친구에 대해 고민을 했고, 구호(?)뿐인 대학생들의 학생운동도 생각해 봤지만 결국 나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던 청춘이었다. 어떻게 보면 시대적 배경이(?) 크게 힘들지 않아 사상적으로 고뇌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청춘. 지나고 보니 그 시절만큼 ‘욱’ 하지도 않고, 그 시절만큼 격하게 토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 우리가 아니 내가 청춘이란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끝난 ‘청담동 엘리스’라는 드라마에서 사랑을 어떻게 증명 하냐고, 사랑은 그냥 사랑인 거라고 눈물 흘리던 여주인공이 생각난다. 청춘은... 그냥 청춘이 아닐까?
결혼은 앞둔 연인을 구하려다 경찰관이 죽었다. 그 경찰관이 죽어가고 있는데 여인의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약혼녀는 그런 가사오카의 모습을 보고 이별을 선택한다. 경찰관이 되어 자신을 대신해 죽은 경찰관의 딸과 결혼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가사오카. 태평양 전쟁의 한복판. 그곳에서 인간의 다양한 군상을 보고 상처를 갖게 된 야부키. 실종된 사촌을 대신해 그의 약혼녀와 결혼한 준이치. 그들은 시간이 흘러 50대가 되었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청춘의 맨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막연한 불안과 무한한 가능성. 하지만 그 불안과 가능성이 훗날 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까? 인생의 단 한번뿐이 아름답고 순수한 청춘.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청춘이.. 화려하거나 순수하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비겁함으로 이별을 말한다면 또 어떤 생각이 들까? 가사오카는 그렇게 이별을 당했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와 결혼해서 살지만 행복하지 않다. 청춘을 담보로 자신의 어깨엔 맨 짐이 너무 가혹하다고나 할까? 또 어떤 청춘은 사랑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빠른 머리 회전으로 그 자리를 꽤 차는 청춘. 그 청춘이 과연 아름다운 것일까? 또 어떤 이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한다. 인간이지만 인간일 수 없는 특공기의 일부. 나의 몸이 곧 병기가 되는 청춘. 그 안에서 인간이기를 거부한 비겁한 군인들을 만나고 증오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청춘이란 더욱 순수한 동경에 가득 찬 것이어야 한다. 미지의 가능성이 펼쳐진 아득한 곳을 향해 출항하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담긴 것이다. 정열이라는 연료와 꿈이라는 나침반에 의지한 항해이다 (439) 우리는 청춘에 대한 동경을 가지지만 그 청춘이 추악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세상은 순수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는 순수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으니까.. 비겁함을 욕하던 여자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비겁함보다 더한 행동을 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소리치던 여자 또한 거짓된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다른이의 탓을 하기에 바빴다. 맨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진실을 확인하려던 부부는 파경을 맞고, 거짓으로 점철된 한 쌍만이 화목을 유지했다고. 삶이란 참 묘하다. 내 마음대로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만 약간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뿐..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그들에게 청춘은 더 아프고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청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프다. 어른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더욱.
청춘이 지나고 중년이 되어도 막연히 불안하다. 청춘일 때는 실수를 해도 용서되지만 중년의 나이는... 실패가, 실수가 쉽게 용서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까. 그러니 많이많이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그리고 그 안에서 힘이 되는 그 무언가를 거머쥐기를. 청춘은 그래야 아름답지 않을까?
다만... 책 안에서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그들에게 위안부를 상대로 성욕을 해소하는 건 조금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비상시국에 여학생과 사랑 놀음에 빠져 싸움을 기피하는 것은 군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치욕적인 행위였다 (264) 나는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 화가 난다. 그 위안부들은 강제로 동원된 우리의 언니, 누나, 동생들이 아니었나? 위안부를 상대로 성욕을 해소하는 건 당연하고 자국의 여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치욕적인 행위였다니... 그들은... 반성해야 한다. 아니라고 발뺌하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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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 선한가? 아님 악한가? 누구나 인간이라면 선과 악, 두가지의 양면성이 공존하고 있다. 어느쪽에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에 완전히 치우쳐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청춘의 증명'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시리즈 중 세번째 이야기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가 젊은시절 원했던 모습에서 시간이 흘러 중년을 훌쩍 넘겨버린 나이때에는 오히려 선과악이 모호해지고 어느순간 뒤바꾸어 있는 자신들을 보게 된다.
스토리는 총 6명의 남녀의 이야기와 그들의 자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순간적인 충동이든 계획된 행위든 사랑하는 두 남녀는 둘만의 은밀하고 농도 짙은 애정을 벌이더너 와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게 된다. 사랑하는 약혼녀를 구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의 몸은 이미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다. 이런 와중에 괴한을 쫓던 경찰관은 그만 괴한과의 싸움에서 죽고 만다. 이 모든 과정에서 경찰관을 구해줄 수 있었던 상황에 행동하지 못했던 남자와 그런 남자때문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경찰관이 죽었다는 사실에 심한 상실감에 빠진 여자는 결국 남자의 비겁함이 싫어 떠나고 만다.
전쟁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나라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응해야했던 남자는 전쟁터에서 사랑을 키운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이 담겨진 소중한 물건으로 인해 망설이게 되고 이로인해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인간적으로 심한 굴욕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남자는 마음속으로 칼을 간다. 그 남자의 무서운 복수에 기가 죽은 사람들 중 한 명은 삶에 대한 의욕마저도 상실하고 만다.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된 또 다른 남자는 자신을 대신하고 죽음을 선택한 사람을 목격하게 되고....
중년의 나이든 남녀의 모습은 시대상황이라는 특수한 변수가 어느정도 이해되지만 그들의 자식의 모습은 솔직히 허탈하고 안타까운 면이 느껴졌다. 진실, 참됨을 갈구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결말을 갖지만 자신을 속이고 상대방을 속이는 이중적인 모습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비겁한 남자가 싫어 떠난 여자, 죽음같은 공포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해 평생을 짐을 안고 살던 남자, 사랑하는 연인의 억울한 죽음과 그로인해 또 다른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에 대한 죄책감,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남자, 자신안에 거짓을 숨긴채 모든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자신을 기만한 여자, 거짓으로 일관된 인생을 시작하는 눈 먼 행복을 쫓는 사람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이 적나라 하게 드러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으며 증명시리즈 중 야성의 증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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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쓰모토 세이초와 모리무라 세이이치...
'청춘의 증명'은 1976년에 나온 '인간의 증명'으로 시작된 이른바 '증명 3부작'의 두번째 작품이다.
흔히들 마쓰모토 세이초와 이 작품의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를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양대 산맥으로 부르곤 하는데 그렇게 같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묶이지만 사실 이 둘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걸 전제하고 하는 말이지만, 마쓰모토 세이초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하여 되도록 거리를 두고 끝끝내 불편부당한 객관적 관찰자로서의 자리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그 대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자신의 견해마저 피력하는 등 작가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참여자로서 행세하려 한다. 그렇게 관찰과 참여, 바로 이것이 세이초와 세이이치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세이초의 주인공들은 관찰하고 듣고 해석하는 행위가 주를 이루는 반면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주인공들은 생각 보다는 먼저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들에 있어서는 명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들의 비중이 크지만 모리무라 세이이치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물론 기본적으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소설도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표면상 그런 역할을 맡는 형사 보다 그 범죄를 둘러싸고 얽혀있는 인간들의 애증 관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모리무라 세이이치에게 있어서 범죄란 수면 아래 잠자고 있었던 들끓는 인간들의 애증관계를 밖으로 노출시키는 계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범죄란 거짓과 탐욕 그리고 비겁함을 숨기고 있었던 개인들의 내면과 그것들을 양산하는데 일조했던 사회의 숨겨진 모습을 폭로하는 고발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소설들은 일종의 '재판장'과도 같다. 나타난 범죄가 고발하는 피의자들이 서로 자신의 혐의 없음을 증명하고 변호하느라 들끓고 있는 재판장인 것이다.
아마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제목에 '증명'이라고 쓴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범죄가 '당신이 과연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고발하면 피의자는 거기에 대해 자신의 인간다움을 증명한다. 이것이 '인간의 증명'이다. 이번엔 범죄가 '당신에게 과연 청춘은 있었는가?' 고발한다. 거기에 대해 피의자가 청춘에 대해 증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의 '청춘의 증명'인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3부작은 그렇게 범죄가 부정하는 것을 '그렇지 않다'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증명에도 어디까지나 조건은 있다. 진정한 증명이 되기 위해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전작 '인간의 증명'에서 제목의 이 말은 딱 한 부분에만 등장하는데 그 때가 바로 자신의 인간다움을 행동으로 증명했던 부분이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세이초의 소설들이 다소 건조하고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는 반면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뜨겁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자리 선점에서 비롯되는 차이는 다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더 나아가서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에게 마저도 영향을 미치는데,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어디까지나 객관적 관찰자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는 마츠모토 세이초는 사회가 만들어버린 한 개인의 비극적인 삶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작품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왠지 동시대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남의 일처럼 내버려둘 수 없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행동가적인 면모를 간직한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먼저 사회 이곳저곳에 양산된 여러 개인들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그 아픔과 비극의 태피스트리를 통하여 거꾸로 사회의 부조리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이다. 단순히 말해, 사회를 비판하는 형식에 있어 마츠모토 세이초가 연역적이라고 한다면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귀납적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마도 이런 차이, 그러니까 사회에 대한 기탄없는 비판, 참여자로서 그 고통과 대안의 형성마저 적극적으로 껴안으려는 의지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내는 부조리에 대한 마쓰모토 세이초와 구별되는 이러한 차별적 접근이 같은 사회파이지만 선배인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와는 또 다른 산맥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다.
2.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네 개의 청춘...
이러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독특성이 가장 잘 드러났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1977년에 나온 '청춘의 증명'이다. 파노라마식으로 인물을 배열하는 것도 더욱 확장되었고 2차 대전의 전범 국가로서 같은 국민들마저 파멸로 이끌어 갔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역시 더욱 통렬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그 어떤 작품보다 전면적으로 드러난 이 작품에서 모리우라 세이이치가 하필이면 '청춘'이란 주제를 가져온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청춘'이 상징하는 미래 역시 어떻게 물들여 버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파노라마식으로 펼쳐 볼 때 여기엔 모두 네 개의 청춘이 나온다.
전범국가로써의 과거에 대한 반성이란 측면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먼저 일본의 패망이 더욱 짙어지는 시기에 청춘을 보낸 '야부키 데이스케'. 다음으로, 군부가 이기적 욕망으로 일으킨 전쟁에 그저 가해질 위해가 두려워서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보다는 소극적으로 편승해 버렸고 내내 자신 또한 그 가담자 라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청춘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사오카 미치타로' 그리고 전범 국가의 기억을 괴로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런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사오카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를 비난하면서 더욱 커다란 이기적 욕망으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달려가는 망각으로 더 많은 과오를 쌓아가는 청춘을 대변하는 가사오카 미치타로의 아들, '가사오카 도키야'. 마지막으로 패전을 통해서도 아무 것도 반성하지 못하고 여전히 구태의 악습과 부조리를 답습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에 대해 냉소하지만 결국 행동으로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것으로 냉소를 표현할 뿐인 청춘을 대변하는 야부키 데이스케의 아들 '야부키 에이지'. 이렇게 넷이다.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굳이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청춘을 이렇게 병렬적으로 놓고 보여주는 것은 전쟁에 뛰어들었던 유일한 청춘인 '야부키 데이스케'가 묘사했던 일본과 그의 아들 야부키 에이지(그는 소설에서 유일한 '십대'이기도 하다.)가 살고 있는 일본이 과연 다른 것인가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는 소설에서 오로지 이 부자(父子)간의 대화만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입증되는데 자꾸만 일탈로 엇나가는 야부키 에이지에게 아버지 야부키 데이스케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스무 살이 되면 무조건 전쟁에 끌려 갔었다. 전쟁에 끌려가면 살아 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고작 이십년 밖에 되지 않는 인생이었어. 다른 길이란 존재하지 않았어. 죽음만을 짊어진 청춘이었다."(p.231)
그 전에 야부키는 아들에 대해 걱정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그만큼 고민이 많겠지. 우리 세대는 그런 고민은 전혀 없었잖아. 오래 살아봐야 스무 살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스무 살이 되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했지. 그런 사고가 머리에 박혀 있었으니 고민할 틈도 방황할 여유도 없었지.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인생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분명했어. 제 인생인데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져 있었지."(p.223)
이제 막 피어나려는 청춘에게 죽음만을 짊어주었던 전범국가로서의 일본. 하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청춘들이 믿었던 대로 거창한 이념에 있지 않았다. 결국엔 오로지 군부 자신들만의 권력욕과 탐욕에 있었음이 야부키의 전우(戰友)였던 아키토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칠 수 있어. 하지만 요즘 특공대(이 특공대가 바로 가미가제 특공대다. 야부키도 바로 이 특공대 소속이었다.)는 군부의 위안거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우리는 인간으로 죽는 게 아니라 일개 병기로서 던져져 죽는거야(p.258)"라고 곧잘 말했던 아키토가 자살 공격에 나섰지만 내내 기체 결함을 이유로 돌아오자 이를 의심했던 군부는 그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그리했던 것임을 밝혀내고 아키토의 약혼자 스미에를 조사랍시고 불러내어 자신들이 보는데서 비인격적으로 발가벗겨서 결국 그 성적 수치심으로 자살하게 만든다. 그리고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키토가 폭탄을 가득 실은 비행기로 복수를 위해 오히려 자신들을 공격해 오자 오로지 자기 목숨만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저격 명령을 내려 버린다. 이렇게 스미에에 대한 군부의 저열한 인면수심적 태도와 아키토의 저격 명령에서 나타난 오로지 자기 목숨만 구하고 보자는 치졸한 모습을 통해 모리우라 세이이치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성격을 단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어리석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목적을 위해 갓 스물의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일본을 또한 규탄하는 것이다.
3. 통렬한 속죄의 요구...
하지만 모리무라 세이이치에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과거에 그토록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통렬한 자기 비판과 반성이 없다는 것이다. 패전이 폐허 속에서 전쟁이 아로새긴 아픔을 그토록 절절히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그저 한국 전쟁이라는 경제적 특수가 가져다 준 과실에만 취한 나머지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고 모리우라 세이이치는 소설의 곳곳에서 피력한다. 그래서 그러한 무비판적 편승이 어떤 미래가 가져왔는가? 그것을 모리우라 세이이치는 특히 야부키 에이지의 눈으로 드러낸다.
일류의 덧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동안 계속될 치열한 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낙오된 것이다. 에이지는 부모님의 기부금으로 도내의 이류 사립 고등학교에 2차 모집으로 입학했다. 그래도 1학년 1학기 때까지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뒤쳐진 것을 만회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은 낙제생으로 '어차피 우리는 쓸모없는 녀석들'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어딜 가도 성적순으로 처음부터 선을 그어놓으니 열등감에서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교사들도 낙제생들을 격려해 새 출발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열정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학원이나 과외 아르바이트에 정신이 팔려있었다.(p.236 ~ 137)
반성없는 과거가 가져온 것은 이런 것이었다.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던 그 때의 선은 여전히 남아 이제는 학력이란 이름으로 청춘들을 가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 때의 청춘들이 신체적으로 죽었다면 지금의 청춘들은 낙제생이란 라벨이 붙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있었다. 그 때 비국민 스미에를 바라보았던 시선 그대로 낙제생으로 라벨 붙여진 오늘의 청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국민이 아닌 자들이 그대로 사물이었듯이 오늘의 청춘들 또한 한 번 낙인이 찍히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사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오늘의 일본에서 그대로 겹쳐지는 황당한 이상에 집착해 파멸로 향해가던 그 때의 일본을 본다. 그리고 그 오만한 독선과 잘못된 망상 아래 점점 주검이 되어가는 청춘들을 양산했던 그 때와 지금의 일본이 같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그건 과거의 과오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속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우라 세이이치는 바로 이러한 속죄가 현재 일본에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이 '청춘의 증명'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것도 한 때의 잘못을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는 가사오카 미치타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오카 미치타로에 대한 '비겁하다'는 그의 연인 아사코의 통렬한 비판은 사실 제대로 된 속죄없이 전범국가임을 오로지 망각하려고만 드는 일본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아사코조차 나중에 보여주는 모습처럼 정작 비겁하다고 비판하면서도 말로만 그리할 뿐 아무런 실제적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과거의 과오를 반복할 뿐이다. 참다운 속죄는 어디까지나 실천이 따라야 하는 것이며 모리우라 세이이치는 일본에게 바로 그런 속죄를 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가사오카에게 평생 속죄의 죄책을 짊어지도록 만드는 원흉인 구리야마는 결국 일본이 그런 정도의 속죄를 하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구리야마는 야부키의 전우였던 아키토의 스미에를 자살로 몰고간 장본인기도 하다. 야부키에게 비극을 주었던 구리야마가 다시금 가사오카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이 구리야마는 전범이면서도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같은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에게 과거의 향수를 일깨우는 존재가 되어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움을 구걸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또 다른 한 청춘의 삶마저 일그러지게 만든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병원균과도 같다. 곳곳마다 출몰하여 타인의 인생에 짙은 어둠의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그로 인해 비극은 내내 반복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그렇게 구리야마는 왜 속죄가 일본 스스로에게도 구원이 되는지 거꾸로 잘 보여주는 존재다. 그런 존재는 구리야마뿐만이 아니다. 가사오카의 처 도키코나 아사야마 유미코의 남편 기다 준이치도 과거에 대한 무반성적 태도와 망각에의 강요가 결국 어떤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될 지 잘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사실 소설 '청춘의 증명'에서 인물들이 구원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오직 단 한 가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바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것이다.
이렇게 실천에 기반한 진실된 속죄를 그토록 요구하는 '청춘의 증명은 오늘날 일본의 모습을 보면 더욱 의미심장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새로이 출범하는 아베 정권은 전범국가의 반성 속에서 규정되어진 자위대는 오로지 자국이 침범받았을 경우에만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상의 전쟁 포기 조항인 일본 헌법 9조와 전범들의 위폐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부터 들고 나왔다. 이는 다시금 저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던 시대로 가겠다는 무언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단 한 번도 진정한 속죄가 없었던 일본이 그대로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음은 결국 행동이 수반된 속죄가 없이는 과거의 악업을 반복할 뿐이다라는 '청춘의 증명'이 보여준 그대로가 아닌가 말이다. 어두운 과거가 교훈을 배울만한 역사로 남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속죄가 이루어졌을 때다. 그렇지 않으면 이웃 일본이나 또 우리나라에서 보듯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이 현재에 다시금 생생히 살아나는 시간이 된다. 어둔 과거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 반복을 원하는 자들은 구리야마처럼 오로지 그 어둔 과거 속에서 이권을 얻을 수 있었던 자들 뿐이다. 그 반복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청춘의 증명'을 통해 성찰적 무장(武裝)을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덧붙여,
'청춘의 증명'은 이번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때문에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 여기 적어둔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중에 '비트'가 있다. 청춘만화의 대표작으로도 평가받는 작품인데 처음 읽었을 때 인상이 강하게 남아 아직도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남주인공이 여 주인공에게 경매 노예로 팔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아르바이트 비를 받아가며 해 주는 것인데 그녀가 요구했던 것은 프로야구 경기장에 가서 관람하고 그 결과와 거기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기억해 오는 것이었다. 남주인공이 그렇게 보고 온 것을 여주인공에게 들려주면 그녀는 마치 자기가 그걸 진짜 가서 본 것인양 자기의 입시 경쟁자들에게 말하여 별로 노력을 안한다는 인상을 주어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는데 별다른 표현 없이도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느끼게 해 주어 참 대단한 에피소드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청춘의 증명'을 보니 그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소설 속 유일한 십대인 야뷰키 에이지가 같은 반의 수재를 위해 그와 똑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나온 것이 77년이니 90년대에 나온 '비트'가 이를 표절한 것은 분명하다. 나름 아주 인상깊었던 장면이 이렇게 표절의 산물이라니 씁쓸하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아직 소개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은 표절은 또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더욱 그 뒷맛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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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77년에 출간된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시리즈 3부작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이 책은 2004년 복간된 신장판을 번역한 걸로 보이네요.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해문판으로 읽은 『인간의 증명』 이후 두 번째 만남입니다. 소설은 일본과 연합군간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세 쌍의 청춘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전후 고도 성장기에 접어든 일본의 1970년대까지 대를 이어 이어집니다. 전쟁 세대인 세 부부와 전후 세대인 자식들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서사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가사오카는 데이트를 하던중 불량배의 급습으로 이를 구하려던 경찰관이 목숨을 잃자 여자는 도망갔던 그에게 "비겁하다"며 작별을 고합니다. 비겁함을 속죄하고 범인을 잡기 위해 그는 경찰관이 됩니다. 야부키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약혼녀의 여동생과 결혼합니다. 준이치는 약혼자의 실종으로 유명 요정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됩니다.
청춘 남녀 세 쌍의 얘기가 드라마 형식으로 번갈아 전개되다가 강변에서 변사체가 발견되면서부터 미스터리의 성격을 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가사오카 형사와 후배 시모타 형사의 수사로 인해 전혀 타인같았던 세 집안 사이의 접점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띠끌만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고 발품을 팔아 범인을 추적하는 두 형사의 집념어린 수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단서와 동기를 추적해 범인을 밝혀내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형식이지만 미스터리적 요소는 약합니다. '증명시리즈중 가장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만큼이나 순문학으로 접근하는게 좋겠네요. 그만큼 스토리와 캐릭터로 승부를 보는 소설인데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캐릭터의 본성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선하고 정의롭게 보이던 주인공들이 세월이 흘러가며 그들의 숨겨진 본성이 드러날수록 조금씩 선악이 바뀌게 됩니다.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전쟁 세대와 전후 세대의 가치관에 따른 행동 양식의 차이입니다. 가사오카, 야부키, 준이치로 대표되는 아버지 세대들의 청춘은 전쟁을 통한 생존 본능, 사랑과 결혼, 진로와 취업, 가족과 희생 등 보편적인 그것인데 반해 전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 시국이 안정되고 세월이 풍요로워진 그들 2세들의 청춘은 반항, 탐욕, 방탕, 기만등 지극히 개인적인 도덕적 해이로 물들어 있습니다.
2004년 신장판 후기에서 저자는 "스스로 청춘의 의미에 대해 반문해 보고자 이 작품을 썼다"라고 소회하며 청춘의 3요소로 굶주림, 무한한 가능성, 기성 권위에 대한 적의와 반감을 들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청춘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야부키같이 태평양 전쟁에 학도병으로 차출되어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불가항력적인 청춘도 있고, 가사오카같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경찰이 되는 능동적인 청춘도 있습니다. 아니면 준이치처럼 흠모하던 여성의 약혼자가 실종되는 바람에 대신 그녀를 차지하게 되는 운좋은 청춘도 있겠고요.
마지막 장에서 밝혀지는 반전과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 집안과 자식들의 결말을 보니 일말의 허탈감과 인생의 덧없슴을 느낍니다.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인간의 증명』과 인생의 씁쓸함을 맛 본『청춘의 증명』을 읽었으니 이제 좀 화끈한 『야성의 증명』을 읽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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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 지음 검은숲
지난 번에 읽은 <인간의 증명> 차례보다도 이전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표에는 세 쌍의 부부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순서에 입각해서 소개해보자면, 약혼 관계이던 가사오카 미치타로와 사사노 야사코는 마쓰노 다이조의 죽음으로 인하여 헤어지고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 즉 첫 번째 부부는 ① 가사오카 미치타로와 마쓰노 도키코이고, 두번째 부부는 ② 사사노 야사코와 결혼한 전 특공대원인 야부키 데이스케이며, 세 번째 부부는 ③ 유서 깊은 요정의 외동딸인 아사야마 유미코와 결혼한 기다 준이치 부부이다. 이들 세 부부는 먼 훗날, 구리야마 시게하루의 죽음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의 주인공이 된다. 구리야마 시게하루가 마쓰노 다이조의 살해범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죽음을 쫓아 수사에 매진하는 가사오카 미치타로, 마쓰노 다이조 사건을 비겁하게 대응했다는 이유로 가사오카 미치타로에게 이별을 고하고 다른 남자 야부키 데이스케와 결혼하였지만, 결국 아들인 에이지의 뺑소니를 비겁하게 덮으려고 하면서, 이를 자수시킨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는 이중적으로 변해버린 사사노 야사코, 구리야마 시게하루의 범인을 쫓아 야부키 데이스케와 사돈이 되는 기다 준이치에게까지 연결점을 찾아내는 가사오카 미치타로. 그러나 정작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시작은 30년도 더 이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너무나 유명한 일본의 가미가재 특공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천황을 내세워 특공대원인 군인들에게 무조건 충성과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킬 것을 과하게 요구하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청춘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전쟁없는 나라에서 태어나련다.'라는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하다. 이처럼 작가는 전쟁의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 청춘의 증명>은 <인간의 증명>의 커다란 성공 이후 모리무라 세이이치가 작가로서 청춘의 한가운데 있을 무렵 발표된 작품이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2004년 새로 쓴 후기에서 작가 자신의 청춘을 증명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청춘의 증명>은 증명 시리즈 중 가장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인간의 증명>에 이어 일본 대중문학에 한 획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등장하는 세 부부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인 가사오카 도키야와 야부키 에이지, 그리고 아사야마 유키코 간의 이어지는 인연은 다소 억지스러운 듯 하기에 다소 부자연스럽기는 하다. 중간에는 존 덴버의 'Sunshine on my shoulder'라는 존 덴버의 노래와 존 덴버 아버지로 추정하는 '붉은 거북'의 일화도 나오는데, 아마도 사실일 것 같다. 또한, 버거병 (Buerger’s Disease)은 폐쇄혈전혈관염 또는 폐색성 혈전 혈관염 등으로 불리며 주로 하지 또는 상지의 동맥 중에서 비교적 직경이 작은 중소 동맥에 염증이 생겨 동맥의 흐름 방해를 유발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2015.1.3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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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무라 세이치'의 '증명시리즈'의 완결편 '청춘의 증명'입니다.
전작들인 '인간의 증명'과 '야수의 증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인간의 증명'은 드라마로도 보고..'야수의 증명'은 영화로도 봤었는데
완결편인 '청춘의 증명'은 출간전이라...읽을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얼마전에 '검은숲'에서 '증명삼부작'이 전부 출간되었지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읽어야지 했다가, 밀린 책들에 잊어버린...ㅋㅋㅋㅋㅋ
시리즈가 '증명 삼부작'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는데...의외로...생각했던 종류와는 다르더군요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가도카와 쇼텐'의 사장인 '가도카와 하루키'가 '모리무라 세이치'에게
'작가'로서 '증명'할수 있는 작품을 써보라는 요청에서 쓴 시리즈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증명하죠...삼부작은 일본에서 엄청 팔리니까요...
'증명'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냐고 물으시면 NO입니다..
세 작품은 연결성이 전혀 없을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냥 맘 가는데로 읽으시면 됩니다..
'인간의 증명'이 추리적인 요소가 강하고
'야성의 증명'이 하드보일드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청춘의 증명'은 심리적인 요소가 많이 강합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복잡한 관계, 그리고 인연과 진실...
그래서 추리소설적인 요소는 나머지 두 작품에 비해 줄어들었단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잼나게 읽었어요^^
'개구리'가 '뱀'을 만나면 얼어버립니다...도망갈 생각을 못하지요..
그래서 '개구리'보다 느린 '뱀'이 '개구리'를 먹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지요...공포에 질리면 어는법..
'가사오카'는 연인인 '아사코'와의 식사후, 데이트를 위해 으슥한 공원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아사코'에게 키스하는순간...갑자기 누군가 나타납니다
그는 '아사코'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지만, '가사오카'는 연인을 구할생각도 없이 그대로 얼어버리지요
그때 경찰인 '마쓰노'가 출현하고 그들은 격투를 벌입니다.
범인이 흉기를 떨어뜨리자, '아사코'는 '가사오카'에게 도우라고 하지만
'가사오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다시 흉기를 주운 범인은 경찰을 찔러 버립니다..그리고 도망을 가죠
'가사오카'는 연인의 손을 잡고 도망치려 하고..
'아사코'는 안된다며 경찰에 신고하고....
비겁한 그의 행동을 용서하지 못해 결별을 통보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얼어도 남자가 저 정도는 아닐텐데..ㅠㅠ)
'가사오카'는 죄책감에 '마쓰노'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외동딸 '도키코'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철천지 원수를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눈...
'아사코'의 비겁자란 말과...'도키코'의 눈을 잊지못한 그는 '도키코'를 찾아가고
자신이 그녀를 책임지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좋은직장이 있었음에도 그만두고, 경찰이 되고, 얼마후 '도키코'와 결혼을 합니다
자신이 그 범인을 잡겠다는 약속과 함께....
'청춘의 증명'에는 세커플이 등장합니다..
자신때문에 죽은 형사의 딸과 결혼하고, 평생 범인을 쫓는 '가사오카'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자신을 살아돌아오게 한 여인의 동생과 결혼한 '야부키'
등산중에 실종된 친구의 약혼녀와 친구 대신 결혼한 '준이치'
세 커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모두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라는 거죠...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숨겨진 진실이 있고..
그들 세 커플은 그 진실을 찾지만...그 결과는 모두에게 파국을 맞이하지요..
'증명시리즈'답게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지만...그다지 유쾌하진 않았습니다
진실은 너무 어두웠고...세 커플...세가족이 무너지는 모습이 넘 안타깝더라구요..ㅠㅠ
그래도 다행인건 그들의 인연이 만든 새로운 커플은 잘사는 모습...
하기사 '증명시리즈'는 모두 결말은 우울하긴 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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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증명.
지금 청춘을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까요, 아니면 청춘을 산 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걸까요.
작가는 후기에서 청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청춘의 사냥꾼이다. 돌아보면 청춘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청춘의 공통 요소는 굶주림,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기성 권위에 대한 적의와 반감이다. 이 3대 요소를 잃어버린 자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청춘이라 할 수 없다. 청춘 그 자체가 발산하는 반짝임은 그런 것이다."
읽으면서 청춘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순수'입니다. 자신의 현실, 그 제약에 괘념치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생에 충실한 순수. 이것이 청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세 쌍의 등장인물들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가시오카와 아사코, 그들을 위협하는 괴한을 제압하다가 숨진 경관의 딸 도키코, 가미카제로 참전했다가 살아 돌아온 야부키, 약혼자가 산에서 조난당해 실종된 유미코와 그 약혼자의 친구인 기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세대까지 연결되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응? 미스터리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체가 발견되면서 각 등장인물이 관계가 연결되고 사건이 해결되어 갑니다. 미스터리 부분은 다른 증명 시리즈에 비해 조금 약할 수 있으나 문학작품으로서 읽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부모 세대에 해당하는 6명은 그 자녀 세대들보다 더 억눌리고 제한된 사회에서 살았지만 부모 세대는 청춘을 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결벽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일종의 부채의식을 지고, 삶을 통해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갚으며 살아가려는 점에서 푸릇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녀 세대는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제약 속에서 약삭빠르게 안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기존 질서에 편입되어 조로되어 버린 듯한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많은 '청춘'이 이렇게 스러져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얼굴, 자신의 삶,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요. 그것들이 나의 청춘을 대변하고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있지만, 자라면서 그 책임을 오롯이 져야 한다는 점을 느끼며 이 말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청춘의 증명을 읽으면서 이 말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의 울림을 더합니다.
먼 훗날 청춘을 살고 있다는 것, 청춘을 산 적이 있다는 것 모두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저의 얼굴, 생, 지금 사회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것들이 그 자체로 반짝반짝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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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인 '청춘'. 지금의 나는 다소 늦었을지 모르지만 청춘의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내 청춘을 돌이켜보면 방황의 연속이었으며 고뇌의 연속이었다. 밝고 즐겁기보다는 언제나 회의를 느끼고 떠나고 싶어했으며 그 바탕에는 즐거이 청춘을 즐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열등감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지만 20대의 끝무렵에 서 있기에 더 이상의 방황은 사치와 철 없음을 근거로 또 다른 조급함이 밀려온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시리즈 중의 하나인 <청춘의 증명>이다. 사실 작가의 스펙을 보노라며 왜 내가 이때까지 몰랐는지 놀라울 정도이며 책을 접해보니 내용의 전개 또한 대단했다. 보통의 일본 추리소설과는 달리 책을 다 읽고서도 제목과의 연관성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청춘'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 싱그러움 한편으로는 고통과 방황과 같은 아픔을 동반하는 등 다양한 감정을 자극하기에 추리소설의 제목으로서는 더욱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무한한 기대를 가졌으며 읽으면서는 무한한 흥미로움, 그리고 책을 덮고는 무한한 고뇌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의 전개는 특이하게도 여러 등장인물들 각각의 시점에 맞춰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인 '가사오카'인데, 형사가 되기 전 우연히 옛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에서 자신을 구해주던 형사가 피살당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그 후 형사를 구해주지 못하여 속죄하는 심정으로 피살당한 형사의 딸과 결혼하게 되고, 그 또한 형사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하나의 살인사건을 접하게 되고 과거 자신을 구해주던 형사를 피살한 범인을 우연히 접하게 된다. 이내 과거를 파헤치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극이 펼쳐진다.
1970년대에 나온 작품임에도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큰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지나친 우연의 발생이 다소 내용을 가볍고 독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서 아쉬웠다. 너무나도 드라마틱하여서 리얼함이 그만큼 결여된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 전에 나온 작품이기에 전쟁에 대한 묘사는 그저 책으로 접해도 피비린내가 나는 듯 했다. 일제의 잔악무도함과 가미카제라는 이름의 청춘의 몰살을 동원하는 군국주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증명>과 <야성의 증명>은 어떤 새로운 흡인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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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20대 꽃다운 나이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고 도전하는 시기입니다(난 군대에 있지만) 이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전쟁에 의해 잃어버린 청춘과 그들의 자식들이 만들어가는 청춘을 기묘한 우연과 우연들이 겹쳐서 이뤄가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전쟁에 청춘을 바친 세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참혹했던 사건들이 그들에게 아픔을 주었고(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선 뭐가 되었건 씹새끼들입니다) 조국은 그저 광기어린 수뇌부들의 모임이었으며 정부가 청춘들에게 강요한 '일본정신'은 허상에 불과한, 아무 의미없이 청춘을 가미카제로 희생시킨 명분이란 것에 불과하다고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작품의 전개는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의 끝이 어디인가?' 라는 의문을 계속 가지게 만들게끔 흥미진진 하였습니다. 기막힌 우연들이 사건을 만들어가는데 후반까지는 막장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졋습니다. 종장즈음 됫을때는 좀...심하게 막장스러워서 아침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좀 많이 짜증났습니다.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하지 않냐? 라고 느낄정도로..허나 그 전까지의 재미는 정말 최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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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입니다! 청춘입니다! 청.춘.입.니.까?!! 흔히 '청춘이다'라고 말을 할 때 그 가리키는 대상은 대개 20대 젊은이들이다. 아프니까 청춘인 사람들도 대개는 그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정말 그들만이 청춘일까? 그건 단지 물리적인 청춘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청춘'은 마음에 열정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어떤 것이라도 내 열정을 증명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내게는 청춘으로 보여진다. 하여 이 책의 주인공인 가사오카 미치타로는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말년의 그가 내게는 청춘으로 느껴졌다. 젊은 날의 과오를 잊지 않고 어떻게든 바로 잡으려는 그런 의지와 행동을 보여주는 가사오카가 그의 청춘을 제대로 증명을 해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도 청춘의 증명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싫은 말 중에 "그 때랑 지금이랑 시대가 다르잖아요!" 가 있다. 이건 내 조카가 내게 했던 말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부를 아예 손을 놔버린 조카에게, 나 역시도 그랬지만 그래도 학생이니까 최소한의 의무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앞으로 내가 뭘 하고 싶어질지 모르기에 갈 수 있는 방향을 최대한으로 열어놓게 공부는 어느 정도 해두어야 한다고.. 그랬더니 내 조카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 때랑 지금은 시대가 다르지만, 그 때보다 지금이 더 혹독하다는 걸 나는 알지만 조카는 그걸 모른다. 나 때는 대학을 가면 선택권이 더 넓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선택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으면서 어느 정도 밑거름은 다져놓는 게 좋을텐데.. 아직 사춘기라 그런가.. 그런 말은 귀에 들어가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 소설 속의 아들들도 내 조카 같았다. 선택의 길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 어린 청춘들.. 억눌려졌던 아버지 세대의 청춘보다 그들의 청춘이 더 아파보이는 것은 나 역시도 그들과 같은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갈 길은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나는 지금 청춘일까?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중일까? 나는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걸까? 가사오카처럼 극적인 사건이 없는 나는 그냥 살고 있다. 매일 그냥 아무런 사건도 없이.. 이런 나도 청춘이라 할 수 있나?
p.101 아침에 출격한 동료들은 거의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도중에 엔진이 고장 나거나 악천후로 비행을 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제각기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방향을 틀어 살아 돌아온 이들은 비겁자, 겁쟁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한번 특공대로 뽑힌 자들은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특공대가 살아 돌아오면 기껏 쌓아놓은 가미카제의 이미지가 훼손되어 군의 사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p.222 "그 애는 나름대로 자기 진로를 찾고 있는 거야. 너무 나무라지 마."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도 난 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어요. 에이지의 마음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져요." "그 또래 아이들이 다 그렇지. 인생의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도, 한편으로는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며 모순 속에서 괴로워하지." "너무 편하게 커서 그래요. 당신 젊었을 적에는 전쟁터에 나가든 공습에 불타 죽든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젊은 애들은 어디 그래요? 풍족한 사회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자랐잖아요. 부모한테 용돈을 타 쓰고,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든 뭐든 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죠. 여자 친구도 쉽게 사귀고요. 부족한 게 없어서 외려 불만이 생기는 거예요." "그만큼 고민이 많겠지. 우리 세대는 그런 고민은 전혀 없었잖아. 오래 살아봤자 스무 살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스무 살이 도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지. 그런 사고가 박혀 있었으니 고민할 틈도, 방황할 여유도 없었지.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인생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분명했어. 제 인생인데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져 있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요즘 애들이 안쓰럽기도 해." p.462 아사코는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에이지가 뺑소니를 냈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진 나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짓을 하면 당신이 가장 경멸하는 비겁자의 낙인을 에이지에게 찍는 꼴이라고!" "에이지는 달라요!" 아사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비겁함' 때문에 가사오카와 결별했던 과거는 이미 머릿속에 없었다. "그 애는 달라요. 당신과 내 자식이잖아요. 난 내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꼴은 죽어도 못 봐요." 매섭게 말하는 아사코의 눈빛에서 야부키는 여자의, 새끼를 가진 어미의 지독한 에고이즘을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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