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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사 새옹지마라 했다. 세상일 돌아가는 것이 어찌 내 마음대로 되기만 하겠는가. 한 때 일본 열도 전체를 호령했던 덕천가강도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음을 알면 오히려 불만 가질 이유도 없다'는 유훈을 남기지 않았던가. 옛사람들의 겉모습과 문화는 지금과 사뭇 달랐을지라도 사람 살아가는 도리는 매한가지가 아닐까.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을 거스르지 말고 물 흐르듯이 살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불과 수백 년 전인 조선 시대를 돌이켜보면 순리에 따라도, 따르지 않아도 돌부리에 걸리고 차이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듯하다. 붕당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반복되었던 모함과 사화들로 조정(朝廷)에 몸담았던 수많은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정든 고향이나 조정을 떠나 귀양을 가야 했다. 생소한 유배지에 도착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책의 제목처럼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는 것 말고 무엇이 더 있었을까.
서포 김만중의 남해유배문학관이 있는 경상남도 남해군. 박진욱 작가는 류의양의 유배기《남해문견록》을 읽고 남해를 찾아가 가방 하나, 짚신 하나의 단출한 행장으로 그 발자취를 하나씩 더듬어 간다. 유배객들이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뿌렸던 나루터,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언덕을 넘어가는 작가의 시선을 좇아가다 보니, 어느덧 내 가슴에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뒤안길이 쓸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생필품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하는 유배생활은 궁핍하고 애처롭기 짝이 없었을 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밭을 가는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생업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취미가 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유배객들에게는 그것들이 취미요, 일상이며, 생업이자 그 안에서만 위안을 얻고 기쁨이 찾아야 하는, 차분하면서도 절박한 일이 되었으리라.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디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이들은 그 끝과 마음조차 다 닳아 없어져 끝내는 객지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응어리진 한을 잠시 내려놓고 무소유와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했던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 사건명은 지금껏 내게 외워야 할 사건 프로파일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진욱 작가를 따라 떠나는 여행은, 맨발로 부드러운 흙을 밟은 감촉을 떠올리는 것처럼 역사책 읽기를 즐거운 일로 탈바꿈시켰다. 시골집과 논밭두렁에서 어르신들과 나누는 생생한 대화가 참으로 맛깔나고 구성지다. 역사에 눈이 어두웠던 이십여 년 전 친구들과 다녀온 남해. 그때는 상주해수욕장과 친구의 시골집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기억 뿐......이렇게 유서 깊은 곳이었던 줄을 왜 진작 알지 못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과 역사의 강에 흠뻑 빠지고 싶을 때가 오면, 다시 이 책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으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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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이란 고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유배’ 혹은 ‘귀양’은 그러한 단절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개의 경우 유배는 자신의 과오보다는 군신간 정치권력의 변화 혹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경우가 많았다. 어쨌건 권력의 상층부에 있다가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뒤로 하고 하루 아침에 낯선 유배지로 떠나야만 했던 만큼 단절의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이나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예에서 보듯, 유배를 통해 더 깊고 성숙해진 내면을 갖게 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는 200여년 전, 남해로 귀양갔던 류의양의 <남해견문록>이라는 유배기행문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저자인 박진욱은 무더운 여름날, 밀짚모자에 반바지와 샌들 차림으로 <남해견문록>을 따라 가는 자전거 여행에 독자들을 불러모은다. 저자는 충무공 이순신의 한이 서려있는 노량앞바다를 시작으로 슬프다 못해 쓰라린 역사를 간직한 가칭이, 그 옛날부터 왜구가 얼마나 극성을 떨었을지 짐작케하는 임진산성을 거쳐 아름다운 금산과 미조항과 어부방조림과 죽방렴 등 남해의 풍경들을 두루 보여준다.
원래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다녀왔던 금산과 미조항 등 남해 일대의 풍경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다녀온 답사 여행이었지만 금산 보리암에서 맞은 일출과 가천의 암수바위와 다랑이논, 색다르면서도 신기했던 죽방렴 등이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기억들과 함께 아직 가보지 못한 남해의 구석구석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게 된 셈이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지만 유배기행을 따라가는 여행지는 훨씬 더 깊이있게 들어간다. 읽다보면 각다귀같은 왜구의 극성, 예나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정치권의 싸움과 알력,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을 쌓아야만 했던 안타까운 민초들의 삶이 엿보인다. 또 중종이나 숙종, 최영과 김만중 등에 얽힌 역사 속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힌다.
423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를 보면 사실 읽기에 만만한 분량은 아니다. 그럼에도 털털하고 수더분한 말투로 전해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가 훌쩍 넘어간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저자의 여행은 더디고 느리지만 오히려 한결 편안하다. 천천히 돌아가는 여행이지만, 그 걸음이 더디기보다는 여유있게 느껴진다. 서문의 말처럼 빠름과 경쟁이 미덕이 되어버린 탓에 모처럼의 여유가 반가운 것이다. 풍경만으로도 아름다운 남해. 저자는 200년전 선조의 유배기행을 따라가며 “물러남의 아름다움, 돌아감의 지혜, 멈춤의 여유”를 물 흐르듯 보여준다. 저자가 류의양의 유배기행을 따라갔듯이, 그의 자전거 여행을 천천히 한 번 따라가 봄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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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는 참 편안한 여행서이다. 400 페이지 넘게 두툼한 책이지만, 저자따라 남해를 두루 여행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수 있었다. 200여년전의 역사를 따라 걷는 남해길~~ 그들은 유배지에서 또다른 삶의 기회로 여겼던 모양이다. 역사속 당쟁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던 유배지의 생활상~~ 이책의 작가를 따라 마치 동행하듯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우리나라의 남해의 색다른 멋을 찾게 된다. 머나먼 섬나라 남해... 개경사람들이 살기엔 외로운 곳이지만, 세상을 등진 사람이 살기엔 풍요로운곳, 권세와 부귀영화도 멀어졌지만, 음모와 권모술수도 멀어진곳이 이 섬나라 남해인 것이다. 그러기에 좀더 편안히 여행길을 즐기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류이양이 남긴 유배 기행문인 <남해 견문록을 >따라 걷는 여행길~~그속에서 노량나루의 이순신의 모습도 보이고 남해 노도에서 서포만필을 쓴 김만중, 화전 별곡을 쓴 김구도 만나볼수도 있었다. 역사적 기술도 군데군데 쓰여져 있어서 유배지 생활하던 곳의 과거의 뒤안길을 보는 듯 하다. 거기다 과거의 유배지 였던 그곳의 현대에서는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변모된모습이 책 속 실사진으로 담겨있기도 하다.
노량나루를 시작으로 남해를 걷고 또 자전거를 타면서 유배지에서 생긴 일화를 소개 하면서 남해 곳곳을 둘러 보기도 하고 또 현지주민과 만나면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게 된다. 대국산성, 임진산성, 고진산성, 비란산성 등.. 조선의 역사적 상황을 알게 되는데 ...어떤곳은 전쟁이 치러진 곳이라니~~바라보는 느낌이 사뭇 남다르게 느껴지기도한다. 특히, 남해 충렬사를 지나면서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때는 참 서글퍼졌다 . 이순신은 바다에서는 왜구라는 적과, 조선땅에서는 선조와 조정이라는 적과 동시에 싸우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들었다. 전쟁이 끝나면 영웅도 역적이 되는 시대였던 조선 선조의시대.... 노량 해전에서의 이순신의 죽음은 정말이지 스스로 의도 된것이 정말일까?? 이순신이 죽은 후 사당 조차 허락하지 않은 선조....34년이 지난후에야 그것도 백성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충렬사를 지었다는 것을 알고는 참 씁쓸해졌다. 그리고 서포 김만중의 이야기에서는 김만중의 계보에 정말 놀라웠다. 불행한 어린시절에 비해 아버지의 의로운 죽음 덕에 자손이 번창한 케이스 인데 그야말로 조선중기 최고의 권문 세도가 집안으로 성장 했다는 점이다. <사씨남정기>라는 목적 소절이 탄생하기까지 이야기, 그리고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지은 <구운몽>의 이야기~~등 서포 김만중의 이야기와 유배지였던 노도섬에 대한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낸 여행기인 <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언제 한번 남해를 꼭 여행 해보고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책 한권을 가지고 역사여행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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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 알마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지누 작가의 전라남도 폐사지 답사기행,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를 감명깊게 읽은터라, 박진욱 작가의 유배지 답사기가 나왔다길래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집어들었다. 조선시대 유배지로서 인기(?)가 좋았다던 남해섬, 볕이 한창 따가운 8월에 작가가 직접 발로 걷고, 자전거를 타고 남해섬을 샅샅이 돌아보며 써낸 기행문이다. 첫장을 펼치니 섬 모양이 엄마가 무릎에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남해섬의 지도가 나타났다. 남들보다 우리나라 지도를 자주 들여다 보는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해섬의 모양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보니 정말로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해서 지도를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여행은 진주에서 남해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노량나루까지가서 배를 타고 남해섬의 노량에 닿으면서 시작된다. 남해로 건너자마자 첫번째로 들른 충렬사는 이순신 장군 사당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한다. 충렬사를 기점으로 작가의 발길은 서쪽 해변의 이락사, 늑동사, 관음포를 돌더니 이내 동쪽해변으로 와 대국산성을 돌아보고, 내륙의 망운산을 향해 달려간다. 내처 걷기만 하기에는 샌들이 말썽이라 헌 자전거를 하나 사서는 애마 취급을 하면서 남해섬을 종횡무진한다. 남해읍을 지나 다정리의 고인돌을 돌아보고, 찾기도 힘든 마을 깊은 곳에 숨은 삼층석탑을 기어코 찾아내기도 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조선시대 임금들과 신하들의 이야기, 붕당정치 이야기, 선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곡사를 지나고, 용문사도 지나고, 금산도 지나니 어느덧 마지막 여정인 단항까지 오게 되었다. 한곳 한곳을 직접 자전거를 타고 체험하면서 가는 길마다 마주친 마을 아주머니들의 구수하고 정감있는 사투리가 여행의 맛을 한층 돋우었다. 또, 여행에서 사진이 빠질 수 있으랴. 자전거를 세우는 곳마다 찍은 사진은 무엇을 찍든 예술작품이 되었다. 늑동사도, 바란산성도, 앵강만도, 그냥 마을 처마밑에 걸린 마늘을 찍은 사진조차도 아늑하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모슨 사진들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함께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를 온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을 맞이하는 남해섬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문화를 생겨나게 했을 것이다. 420여장에 속하는 조금은 두꺼운 분량임에도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다. 역시 알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알마가 오래도록 이런 좋은책을 많이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올 여름휴가때에는 친구를 꼬셔서 꼭 남해를 가 볼 생각이다. 나도 작가님처럼 남해를 이곳저곳 실컷 돌아보고 싶다. 경판의 목재가 되는 자작나무, 산벚나무, 후박나무가 지천으로 자라 팔만대장경을 남해에서 만들었다는 학설이 재기되었다고도 하니 더욱 흥미가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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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더운 여름날에 남해로 떠나서 조선시대 정치인들에 유배지를 따라 간다
영조47년때 남해로 귀향와서 기록한 <류의양의 남해견문록>을 읽고 그 기록을 찾아가게 된다.
저자는 13일동안 도보로 걷다가 자건거 로 험한길을 오르내리면서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던 장소들을 찾아간다잠자리나 먹는 것도 대충하면서 남해 곳곳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유배흔적지들을 찾아가면서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제일 먼저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관음포를 찾아간다 그리고 충렬사,이락사를 찾아간다
그외에도 이순신 장군의얽힌 많은 이야기들을 알려준다. 노량해전에얽힌 이야기,후손들에대한 이야기,등을 알려준다.
치열하게 경쟁하던 조선시대 정치가들이 남해로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긴 수많은 시와소설등 을 통해 멈춤과 돌아감의 지헤를 얻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시와 소설들이 유배생활 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작품이였음을 알게된다. 자암 김구<화전별곡>을 지었고 13년 동안긴세월을 남해섬에서 살면서 수십수의 시를 남겼다. 정철은 <사미인곡>을 지었고, 악천 남구만은 동창이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시를 지어 귀양살이의 흔적을 남겼다김만중은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시로 <구운몽>을 지었고.목적소설로 <사씨남정기>를 지었는데 그대로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귀양살이를 하다 죽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사약을 받거나 화병으로 죽기도했다고 한다 특히 남해에는 조선시대에 많은 정치인들의 유배 을 왔던 곳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남해에 많은 사람들의 유배 흔적들은 찾을수가없고 김구의격려비와 이이명의 묘정비가 귀향살이 자취를 전해주고 있다고한다. 반가운소식은 남해유배문학관이 생겼다고 하니 꼭 방문을 해야 할것같다 그곳에 가면 자세히 유배의흔적들을 볼수있을 것같다는 생각을 한다
유배생활에서오는 고독이나 외로움을 문학으로 달래며 때를 기다렸던 사람과 유배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에게 노자는 지지불태.."멈출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라고 했다
저자는 마지막 으로 최영장군의 넋을 모신 무민사를 찾아가고,봉화마을 에 문화재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찾아간다.
험악한 고개를넘어 죽방렴이 설치된곳을 찾아간다.세상천지에 이별난고기잡이 틀은 오직 남해에서만 볼수있다고 한다죽방렴은 순리를 따르는 고기잡이 방법이고 몇천년을 이어 올수있던 것은 이치를 거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역사는 살아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조선시대의정치가들이 대대로 그들의업적을 평가받고있듯이정치가들은 역사앞에서 항상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할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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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이 책은 과거 유배지였던 남해에 관한 책이다. 첫 장에는 남해 지도에 저자가 걸었던 장소를 점선으로 표시해 두었다. 저자가 직접 그곳을 방문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고 느낀 점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남해로 귀양 온 수많은 유배객들 중 몇몇 사람들은 다시 관직에 복직했겠지만, 서포 김만중처럼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있다. 저자는 남해 곳곳을 자전거와 함께 여행하면서 유배자들의 흔적을 찾아 글과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여정 순서는 남해대교에서 출발하여 충무공 사당 충렬사, 탑동 마을의 정지석탑, 비란산성을 거쳐 삼혈포, 임진산성, 금산, 죽방렴까지 다다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순신, 김만중을 떠올리기도 하며, 오며 가며 만난 남해 사람과의 구수한 사투리를 그대로 옮겨 대화체로 실어 생동감이 나타난다. 삼천포 항구에서 작가는 자신의 자전거를 파는 것으로 13일에 걸친 여행은 끝난다. 저자는 서문에서 빠름과 경쟁으로 인한 폭력성과 파괴성을 비판하고 있다. 이 둘은 현실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를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느리게 살았을 것 같은, 삶의 여유를 즐기며 살았을 것 같은 옛 사람들도 사람들도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살았다. 당쟁이 그 단적인 예다. 옛 사람들은 형벌 같지 않은 형벌 유배를 통해 ‘물러남의 아름다움’과 ‘돌아감의 지혜’, 그리고 ‘멈춤의 여유’를 자연스레 배웠다. 물론 교통과 통신이 수월찮았던 시절, 주류에서 밀려나 언제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귀양 가는 것은 권력을 탐하던 벼슬아치들에게는 무서운 형벌이었겠지만 그럴수록 물러남과 멈춤과 돌아감을 가르쳤던 게 바로 유배라는 형벌이었을 것이다. ‘유배’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삶에 대한 철학이 녹아있기에 기행문 이상으로 한편의 인문서적을 같았다. 이 책은 조금 더 느리게 그러면서 조금 더 알차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조금이나마 용기를 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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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참으로 독특한 여행서를 읽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 소개하듯 느리게 살았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당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되어 형벌 같지 않은 형벌을 받으며 생의 치열함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그 시간 속에 아름다운 공간으로 존재 했던 남해를 안내하는 책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의 유배는 권력 쟁탈에서 멀러졌을 뿐 알고 보면 요즘 말로 하며 안식년 휴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남쪽의 따듯한 곳에서 좋은 경치를 보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을 터이니 말이다 물론 치열한 권력 다툼에서 멀어진 것 자체로 보면 권력을 잃은 자체로 패배감에 휩쌓일 수도 있으나 한 인간의 일생을 두고 보면 그렇듯 사색의 시간을 가진 것이 결코 나쁘진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책의 구성도 재미있다 본문 중 봉천사 묘정비 단락에서 이이명이 처음 귀양 왔을 때 봉천 가까이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30년 뒤 두 번째 귀양을 왔을 때도 처음 살던 집을 수리하여 살았다는 내용을 서술한 후 ‘ 일찍이 부군(김만중)이 귀양살이 하면서 초당에 매화를 두 그루 심었는데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부군이 돌아가시자 두 그루 매화 또한 쓸쓸히 말라 죽어 갔다 이때 이 공(이이명)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부군의 귀양집에 들렀다가 시들어가는 매화를 보고 자신의 귀양집 뜰에 옮겨 심었다 그랬더니 매화는 다시 무성하게 자랐다 ’ 라는 김만중의 후손이 지은 ‘ 서포연보 ’ 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작가가 이이명의 집터를 찾으려면 두 그루 매화나무를 찾아야 한다 매화나무의 수령이 500년도 더 되었지만 200년 된 매화 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언덕을 내려오니 노인이 물었다 “집터를 찾았는가?” “예, 겨우 찾았습니다” “그래, 그거 찾아갖고 뭐할 끼고?”.. 이렇게 과거의 유배 흔적과 그 흔적을 찾는 현재와의 만남을 소개하고 여운을 남기며 한 단락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 읽으며 깊은 감흥에 빠지게 하였다 이처럼 여러 일화를 소개 하고 유적지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현지주민을 만나기도 하고 어우러지면서 남해 곳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실제 독자가 여행을 하는 듯 하기도 하고 옛 이야기에 빠져 유배된 자의 심정에 감정을 이입해 보는 상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삶과 면면을 보면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자본주의와 물질 문명의 홍수 속에 느림의 미학을 찾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미학을 남해라는 자연과 유재된 자가 가지는 심성의 느림을 접목시킨 것이다 하루하루 때우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인 우리가 한 번쯤 읽고 언제가는 나도 이런 여행을 해야지 하는 마음의 결심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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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의양이 배에서 내리면서 본 남해 노량이다. '언덕에 대나무 숲이 많이 있고'라는 말처럼 언덕에 대숲이 보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름드리 고목들이 우거지고, 그 속에 검은 누각 들이 보일 듯 말 듯하다.-27
너무나 낭만적인 제목이란 생각을 하면서 책을 선택했었는데 의외로 조선시대, 충정을 바쳤건만 당파싸움에 밀려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가족들과 떨어져서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머나먼 오지로 낙도로 떠나야했던 떠났던 유배지 이야기였다. 쉽게 떨어지지 않았을 그들의 운명과 걸음걸음을 따라 저자와 함께 천천히 돌아보는 길이었다. 이순신, 정약용, 정철, 송시열, 김춘택, 이진유, 김만중... 남해로 귀양 온 수많은 유배객들 중 임금의 부름을 받아 다시 복귀하기도했지만, 누군가는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것이다. 남해 곳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겼고, 이들은 시, 소설, 사당, 탑, 비석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목민심서' 등 500여 권의 책을 쓴 다산 정약용, '사씨남정기'를 쓴 김만중처럼 유배지로 떠나야했던 그들은, 원치는않았지만 치열한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난 시간을 갖고 시와 글을 짓고 서당을 열기도 하며 언젠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개발이란 미명하에 지형이 바뀌었고 도로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이제는 지역주민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만큼 잊혀지고 흐릿해져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고 더듬으며 다니면서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다.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다면 더 좋았을텐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우리것에 대해 알고자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다. 우리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니 곁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채 무심코 지나치는 것은 아닐런지...
정겨운 동네 이름, 그 속에 담긴 뜻, 곳곳에 남아있는 사당과 나무, 탑, 집터 혹은 절터나 돌하나 까지도 반가웠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대세인 세상에서 저자는 오래된 옛길, 희미해졌거나 없어져버린 길을 헤치고 다니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값진 유산들을 찾아 확인하고 기록을 남겼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자리 역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무너지고 또 지었을것이다. 답사 여행, 옛길을 찾아 걷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 동네 할아버지 말씀처럼 짜다라 볼것도 없고 유명한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오래전 유배지로 떠났던 그들의 행적을 따라 역사와 인물, 소중한 유물을 듣고 보러 쉬엄쉬엄 걸어보는것도 의미있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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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저자 :박진욱
저자는 국어교사를 하다 귀농해 농사를 짓다 지금은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여행 중이라고 한다. 이번 남해 유랑기는 류의양(1718-?)의 ‘남해견문록’에 적힌 흔적과 현존하는 여러 유적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라 할 수 있는데, 작년 여름 다시 사진을 찍었다는 걸로 봐 원래 책 내용은 그 전에 나온 듯하다. 유배라고 하면 사실 왕이 내린 벌이라 할 수 있는데 현대의 나에겐 그리 나쁜 어감으로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일단 유배지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시골이라 일단 경치는 좋을 것이란 예감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야 뭐 어딜 가든 풍광이 아름다웠을 시대니 그런 걸 만끽할 기분은 고사하고 오히려 소외감과 패배감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저자는 일단 순함과 격함을 동시에 지닌 노량나루를 건너는 것으로 남해섬 일주를 시작한다. 처음엔 무작정 걷기로 시작했으나 샌들의 접착제가 떨어진 데다 무더위에 지쳐버린 탓에 자전거로 돌아보게 된다. 충렬사의 영검함은 이 지역 주민들조차도 삭정이 하나 손대지 않을 만큼 성스럽게 여기는데, 일제시대 때는 부임해온 일본 순사가 1년을 못 버티고 무서워 나갔다고 한다. 근데 1971년 남해대교 건설 때도 일본기술자들이 여기 근처는 얼씬도 못한 채 숙식을 여수로 정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순신의 혼이 이 지역을 아직까지 지켜주고 계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왜적이 침입이 잦았던 탓인지 지금까지 여러 산성들이 남아있는데, 저자가 본 것만 대국산성, 임진산성, 고진산성, 비란산성, 남해읍성, 고현산성 등이고 그 밖에도 몇 더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 봐도 마치 그 시절 주민들의 설움이 그대로 돌이끼와 검은 그림자로 내려앉은 듯하다. 선소에는 장량상의 동정마애비가 있어 중국의 진린이 조선을 도와 왜적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비석에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때부터 일본이 동아시아의 공공의 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서포 김만중이 귀양 왔다 ‘구운몽’을 썼다는 노도에는 유배 초당이 복원되어져 있는데 옆에는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노도에서 바라보는 바다에는 김만중이 글로도 남긴 작은 섬들이 보이는데 하늘과의 경계선처럼 이어져 있다. 미조항은 사진으로 보기엔 아담하니 소박한 분위기인데 저자는 러브호텔과 항구가 부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우리에게 독일마을로 유명한 물건이란 곳에는 1만여 그루의 나무가 해안선을 따라 초승달 모양으로 심어져 있다. 이곳이 바로 파도와 해일을 막아준다는 어부방조림이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본 방조림도 사진도 멋있지만 그 숲 속은 온통 초록으로 환상의 나라로 이어질 것 같다. 창서면 대벽리의 왕후박나무는 나이가 무려 500살이나 된다는데 그 숫자만큼이나 풍채도 큰 나무다. 위로 뻗은 게 아니라 옆으로 가지를 뻗쳐 나간 게 사진 상이지만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단항에서 삼천포로 가는 것으로 여행을 끝맺는다.
여름 땡볕에 자전거로 다니며 더위를 먹기도 하고 시골이다 보니 식당이 없어 끼니를 제때 챙겨먹지도 못하기도 하고 잠자리도 많이 불편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구경하며 선조들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것도 뿌듯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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