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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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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을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뒤이어 생각나는 대목은 그리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이 책의 키워드는 '폭력'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예 철학자로 불리우는 저자는 그의 중학생 시절 관리교육(강압적인 교칙을 통해 학생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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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을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뒤이어 생각나는 대목은 그리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이 책의 키워드는 '폭력'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일본의 신예 철학자로 불리우는 저자는 그의 중학생 시절 관리교육(강압적인 교칙을 통해 학생들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교육법)의 전성시대에 까닭없이 당했던 교사에 의한 체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폭력은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교사들이 체벌이라는 형태로 폭력을 행사하는 현장을 고발합니다. 


저자는 '폭력'에 대해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폭력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폭력은 경우에 따라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정당할 때도 있고, 정당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와 경우에 따라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이 어떠한 경우에 긍정되고 혹은 어떠한 경우에 부정되는 가를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헐리웃 액션 영화의 대부분은 폭력과 살인이 주제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중세때 교두보에서 처형을 받는 상황 또는 화형의 장면에는 세 부류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집행을 당하는 사람과 집행자와 관객들입니다.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민중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진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와 법학자 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서 폭력에 대한 불가피성과 폭력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그것을 인정 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다."    - 막스 베버


"인간을 폭력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위험한 존재로서 수용하는 것이 정치적 사고의 전제가 되며, 이러한 현실을 도덕적인 관념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 칼 슈미트


저자는 소년범죄 문제를 논의하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습니다. 토론장에 있던 한 중학생이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겁니까?" 라는 질문을 하자, 패널리스트인 전문가들 모두가 대답을 제대로 못했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저렇게 걸리고, 저렇게 이야기하면 이렇게 걸리는 현학적인 대답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그 해답을 '언어'에서 찾고 있습니다. 언어의 여러 기능 중에서 언어가 사실관계를 기술함으로써 일정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행위'를 수행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비록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는 없지만, 상대방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도덕을 정당하다고 납득해줄 때 언어는 성질상의 본분을 다했다고 봅니다. 

   

이어서 저자는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론을 통해 폭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를 때와 경우를 불문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라", "~하지 마라"는 정언명법(定言命法)과 '신용을 잃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을 하지 마라'라는 가언명법을 예로 듭니다. 그러나 저자는 칸트의 정언명법 즉, '여하한 경우에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 무너진 사례를 그(칸트)가 사형을 인정했기 때문에 이는 크나큰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폭력(전쟁)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은 흐른다"는 말을 남긴 헤라클레이토스(BC 530~470)는 또한 전쟁이야말로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아테네를 비롯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숨을 쉬었던 당시의 도시국가들은 전쟁이 삶의 일부라고 할 만큼 군사적인 사회였습니다. 무기로 무장하여 도시를 방어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시민의 자격을 가졌다고 합니다. 시민은 곧 무사였으며, 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철학에 등장하는 용기, 절제, 정의, 지혜 등은 공허한 탁상공론의 산물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현실적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아울러서 국가와 폭력, 그 불가분적 관계와 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해 논지를 펼치면서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 중에 행사된 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무정부주의를 주창하는 아나키즘에 대해선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을 억제하려면 역설적이게도 반드시 폭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땅에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는 국가를 통해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2) 합법성은 갖지 않으나, 그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폭력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음으로써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3) 스스로 폭력을 조직하고 행사함으로써 자력으로 범죄나 외부의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 등입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제안중에 당연히 1)번을 택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비록 폭력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과다 세금 징수와 특권층이나 특정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도 폭력의 일부로 본다면) 국가를 인정하고  국가, 위정자들이 제대로 된 마음자세를 갖고 책임감있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게 되길 기대해야겠다는 생각만 남습니다. 

 

'폭력'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삼은 책을 읽다보니, '폭력'에 대한 다른 생각을 통해 정화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푸코가 20세기는 그의 시대가 되리라 예언했던 들뢰즈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사유가 작동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상태에서 우리의 사유는 좀처럼 작동하지 않고 잠들어있습니다. 휴면상태입니다. 이 때, 우리의 사유를 일깨우는 것은 뭔가 충격적인 것, 들뢰즈 식으로 표현하면 사유에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것, 경이로운 것 앞에서 우리의 정신이 사유를 작동하는 '착한 폭력'과 만나는 일상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달의 사락 s******5 2012.12.24. 신고 공감 10 댓글 68
리뷰 총점 종이책
도덕적으로 부인한다고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부인한다고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용보기
폭력(暴力)이란 단어에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느낌을 갖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상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또는 “무기로 상대를 억누르는 힘”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처럼 자기 이외의 존재를 억누르고 제압하려는 무력적 수단이나 힘을 마주했을 때의 불쾌한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폭력’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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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暴力)이란 단어에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느낌을 갖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상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또는 “무기로 상대를 억누르는 힘”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처럼 자기 이외의 존재를 억누르고 제압하려는 무력적 수단이나 힘을 마주했을 때의 불쾌한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폭력’그 자체를‘나쁘다’ 거나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지 도덕적 당위성에 매몰되어 실제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폭력의 성분이 선(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주장은 굉장한 도발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폭력이 나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저자는 이를 설명하는 배경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는 폭력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 현상 - 정당방위와 같은 자기 생명의 구제를 위한 불가피한 폭력의 행사 등 - 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악을 처벌하기 위한 폭력이 없다면 드라마 사극의 재미는 반감”될 것이라 하면서 이것은 폭력을 동경하는 인간의 본성, 즉 인간 존재란 본디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라고 단정을 내린다. 인간은 폭력을 떠나서는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인간’ 존재의 존립기반으로서의‘폭력’, 인간이 지닌 것에 어찌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라는 도덕적 함의를 지닌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하는 인간 중심의 오만한 반문일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도덕적 가치를 지닌 언어로 분별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얘기이리라.

 

정언 명령의 충돌, 도덕의 상대성

 

이러한 주장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도덕에 무언가 이유를 부여한다면 특정 조건이나 가정에서만 그 도덕을 지키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칸트의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의 모순관계를 통해 도덕이란 상대적인 것임을 역설(力說)한다.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요구는 이미‘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정언명령에 이유, 즉 조건을 전제하는 것이 되어 답이 불필요한 당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을 죽인 사람은 사형시킬 수 있다’라고 하는 또 다른 정언명령인 사형제도는 분명히 전자의 정언명령에 배치된다. 결국 장소와 때에 따라 도덕이란 것은 이처럼 변하는 지극히 상대성을 지닌 것이라는 개념이다. 그런데 전자(前者)의 정언명령은 보편성을 지니지만, 후자의 사형제도 조차 보편성을 지닌 것일까? 사형제도는 인정되기도, 부인되기도 하는 보편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예시는 불완전하게 보인다. 더구나 칸트라는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저자는 이와 같은 인간의 본성, 그리고 도덕의 상대성이라는 두 토대 위에 폭력이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주장을 달성한다. 폭력은 인간 존재 그 자체의 기반이다라는 것이다. 때문에 폭력을 도덕성에 입각해 이해하려는 입장은 폭력에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폭력은 도덕성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살인자에 대한 사형, 전쟁에서의 적군 살해, 정당방위(자력구제)로서의 살인 등등,‘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주장이 무수한 경우의 변수에 따라 허물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상대주의적 발상이다. 이렇게 도덕을 해석하기 시작하면 도덕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도덕을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도덕이란 것이 본래 이현령비현령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비판의 싹을 없애버리기 위해서인지 “도덕적인 기준에서 폭력을 고찰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폭력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 가치로서의‘도덕’을 아예 배제해 버린다.

 

국가는 유일한 합법적 폭력의 원천이다

 

이러한 비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가장 커다란 주체, 나아가 폭력의 합법적 원천으로서의 국가의 정의에 이른다. 근대국가의 형성에 있어서도 저자는 루소보다는 홉스의 사회계약설을 논리의 원천으로 삼는다.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사회계약이 아니라 폭력을 수반한 즉‘획득에 의한 커먼웰스(commonwealth)’가 국가설립의 본질적 실질을 설명하는데 가깝다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불식시키는 압도적인 폭력으로서의 힘에 복종하고 그 보호를 받기로 하는 계약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일본 막부의 군사력 독점을 근대국가 설립의 사례로 사용하고 있음; 다분히 일본 근대국가 성립의 시기를 앞당기려는 의도로 추정됨)

 

이렇게 해서 설립된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게 되고,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주체가 되었다는 관점이다. 또한 아주 중요한 시사가 있는데, 이는 독일의 정치철학작인‘헤어프리트 뮌클러’의 『새로운 전쟁』에서 언급한 무기의 발전, 포병이란 존재와 같은 대량 살상 무기로 인한 전쟁 규모의 대형화, 전쟁비용의 비약적인 증가가 세수의 안정적 조달기반의 확립과 같은 현대국가 조직의 성립으로 정착되었다는 것과 일치하는 서술이다. 무기와 같은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인해 군사력 독점이 가능해진 시기와 근대국가 형성의 시기가 일치하는 것에 대핸 주목이다. 즉 폭력 독점 과정이 곧 국가의 설립이라는 것이며, 이로써 국가란 인간사회에서‘폭력의 권리의 원천’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이 논리를 더욱 밀고나가 국가의 세금 징수는 바로 합법적인 폭력의 다른 표현이라는데 이른다. 강력한 합법적 폭력을 가진 국가는 복종과 보호의 대가로 돈을 받는 데 이것이 바로 세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야쿠자와 같은 폭력 조직들이 보호비조로 상인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돈과 세금과는 그 성격이 같은 것이지만 다만 ‘합법성’이라는 법에 의해 유일하게 승인된 주체인가 아닌가의 구별만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법’을 통해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 의해 국가의 폭력만이 합법성을 띠게 되고 그 법에 의해 제한되고 견제되지만, 역사 속에서 이 법이 국가 권력의 부패로 인해 자의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려 실질적인 견제가 되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 다시금 도덕이라는 잣대가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존립기반 자체가 폭력인 이‘국가’라는 조직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의 목소리가 공감을 획득한다. 따라서 국가를 해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성적 요구로 들리게 된다. 과연 국가는 해체 가능한 것인가?

 

폭력은 인간과 국가의 본성이자 존립기반이다

 

책은‘불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이 역시 홉스의 획득에 의한 커먼웰스의 사고에 기초한다. 국가라는 유일한 합법적 폭력의 원천이 사라지면, 자연상태에 빠진 개인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는 곧 공포와 위험이 도사리는 세계에서 폭력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과 지역, 이해관계 속에서 강력한 폭력조직은 다시 설립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해체가 다른 국가의 설립으로 대체될 뿐, 결코 실질적인 해체는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면 개인들의 선택지는 지극히 한정된다. 그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폭력을 국가에 위임하는 방법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폭력 없는 상태가 인간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었다면 애초에 국가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는 홉스의 말처럼.

 

이처럼 이 불쾌하고 불편한 폭력이 인간과 국가의 존립기반 자체임을 인정한다면 우리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그것이 혹시라도 보편성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보상과 보호의 조화라는 평형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제도를 끊임없이 보완해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이미 폭력이라는 본성에 서있으면서 도덕적 당위만으로 폭력의 배제를 주장해봐야 아무런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폭력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폭력의 속성을 잘 이해하게 되며, 이로써 인간 개인 삶의 미래를 말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비웃지 않고, 개탄하지 않으며, 저주하지 않고, 단지 이해하는 일에 몰두하겠다. ~ 中略 ~ 비록 아무리 불쾌한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필연적인 존재이고, 일정한 원인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원인을 통해 그것들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라고 한 스피노자의 관점과 같은 것일 게다. 폭력은 인간의 존재 조건이며 도덕적으로 부인한다고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록 가혹한 현실이지만 그 본성을 수긍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주장일 게다. 그래야 폭력이 힘의 논리 이외에 법이라는 다른 방법으로 제어될 가능성이 열리고, 푸코의 말처럼“권력이 보편적인 것에 반하는 경우에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 한다”는 보다 성숙된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관점을 심화시킬 수 있게 되리라는 점이다.

 

사실 틈틈이 지적하였듯이 사례의 왜곡과 논리적 부당성이 곳곳에 자리잡고, 더구나 그것에 이론적 토대를 쌓아올려 주장의 당위에 이르는 불완전성, 또한 도덕성 배제의 이유가 충분한 동의를 얻기에는 미흡하지만 국가의 설립에 이르는 역사적 배경지식과 통찰이나, 국가 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실체적 탐색은 점점 은밀하게 행사되는 오늘의 국가폭력의 형태를 이해하고 견제하는 데 귀중하고 충분한 지침을 제시해 준다. 특히 폭력에 대해 “자신의 도덕적 입장 표명에 만족을” 느끼는 데 불과한 도덕주의로 인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개인적으로 내 도덕적 관점과 국가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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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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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가야노 도시히토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무얼까 궁금했다. 물론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는 앞과 반대되는 내용의 문장이 이어질 거라는 예측이 있었기에, 어떤 글이 이어질까 예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필요할 때가 있다.’ 내지는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또는 ‘그건 말뿐이다. 법은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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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가야노 도시히토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무얼까 궁금했다. 물론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는 앞과 반대되는 내용의 문장이 이어질 거라는 예측이 있었기에, 어떤 글이 이어질까 예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필요할 때가 있다.’ 내지는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또는 ‘그건 말뿐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등등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예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역시나 저자는 1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폭력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다. 폭력을 인정하지 않고는 폭력을 사고할 수 없다.’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장난으로 툭툭 쳤지만, 맞는 사람은 ‘이건 폭력이야!’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학교 폭력을 한 아이들 대부분이 ‘우린 장난이었어요. 그 애가 오버하는 거예요.’ 라고 말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 무엇이 폭력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후 저자는 왜 살인을 하면 안 되는가에 대해 말하기 위해 칸트의 ‘정언명법’을 얘기한다.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 안 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개인 간의 살인은 안 되고 국가의 살인, 그러니까 사형이나 전쟁에서의 행위 등은 왜 허용이 되는 지 말한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무조건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그렇기에 살인은 안 된다고 말한다. 속으로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때리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먹힐까? 맞고 오는 아이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받아들일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칙이 있는 건 사실이고, 개중에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그걸 어기는 족속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자들을 국가 권력에 고발하고 처벌을 하길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가끔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르게 판결을 내리는 국가 기관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어쩌면 국가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일 늦게 알아차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은 자연스럽게 국가와 폭력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서는 국가의 탄생에 대한 여러 철학가들의 이론을 보여준다. 국가가 어떻게 해서 개개인의 시비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권력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가졌는지 논한다. 그러면서 만약에 국가가 폭력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겠냐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 예로 저자는 야쿠자와 국가를 비교한다. 일본인이라 야쿠자가 나왔다. 미국인이었다면 마피아를 예로 들었을 것이다. 흥미 있는 건 누가 누구인지 이름을 지우고 하는 짓을 적어놓으면, 국가나 야쿠자나 비슷했다. 다만 국가가 하는 행위는 합법적인 폭력의 독점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폭력의 관리를 주장한다. 폭력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공생해야 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길만이 올바른 대처 자세라고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뭔가 속이 더 막힌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제목의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에 이어질 말은 ‘그렇지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니 사람들 개개인이 잘 생각하고 나름 올바르게 행하도록 노력해야한다.’라는 걸까? 이건 뭐랄까,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말 같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번만 더 그러면 고소하겠어요. 개인보다 국가 권력이 더 크다는 거 알지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애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남을 괴롭히는 건 도덕적으로 나쁜 거야. 집에서 그렇게 배웠니?’ 그러면 맞는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까? ‘폭력이란 사라지지 않는 거야.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라면, 너도 잘 이용하렴.’ 이렇게?

 

 

  난 실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답을 얻고 싶었는데, 저자는 원론적인 부분만 설명했다. 어쩌면 원론을 알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맡긴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기본을 제대로 알면 응용도 풀 수 있는 수학문제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문득 거의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지 않은 세상이라면, 폭력은 어떤 면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그러면 저자는 뭐라고 말할까?

 

 



v********0 2012.12.20.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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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자체가 우리의 존재안에서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불변의 현실을 보여준다
"폭력자체가 우리의 존재안에서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불변의 현실을 보여준다" 내용보기
내가 생각하고 있는 폭력이 아니였군요 어제도 끝까지 말을 안듣는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것을 밤새 반성하면서 솔직히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말때문에 될 수 있으면 폭력을 가하지 말아야지를 생각하는데 결국 ,,,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폭력에서부터 국가간의 폭력으로 전쟁등까지 너무나 다양한 폭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떨리기도 하고 사형또한 폭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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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고 있는 폭력이 아니였군요

어제도 끝까지 말을 안듣는 아이에게 폭력을 가한 것을 밤새 반성하면서 솔직히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말때문에 될 수 있으면 폭력을 가하지 말아야지를 생각하는데 결국 ,,,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폭력에서부터 국가간의 폭력으로 전쟁등까지 너무나 다양한 폭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읽으면서 떨리기도 하고 사형또한 폭력으로 생각하게되며 우리 삶 자체가 모두 폭력과 더불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사형은 나또한 반대하지만 그러나 너무 아닌것은 사형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네요 그런것까지 다 상세히 폭력에 대해 너무나도 잘 나와 있어요

폭력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 하고 있는듯합니다

폭력이 돈을 만든다고 하네요

정말 우리가 그동안 생각한 폭력과는 너무나 다른 우리 삶속에서 끝까지 이뤄지는것이 폭력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에 죄의 본질인것 같기도 하고 폭력이 제시되는 내용들이 철학을 생각하게 하고 그냥 한대 때린다는것이 폭력의 원천은 아닌듯하네요

읽으면서 나의 좁은 지식도 알게되고 더 큰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 또한 깨닫게되는 순간입니다

돈까지도 연결이 되는 것 세금까지도 ,,,맞아요

예전에는 세금을 돈으로 지불하지 못할 경우도 폭력이 동원되는것들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국가와 야쿠자간의 차이 좋은폭력과 나쁜 폭력으로 나뉘게 되네요

어떻든 폭력은 우리일상과 더불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좋든 나쁜 든 폭력은 우리가 이세상에 태어나 죽을때까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며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가져봅니다

폭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조차도  국가가 없어진다고 해도 결코 폭력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으며 폭력이 없는 상태가 인간 사회에서 당연한 상태였다면 애초에 국가 따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 국가가 없어져도 폭력의 문제는 남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국가는 폭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복종시키고 억압을 하게 된다 결국 국가가 없어진다고 해도 폭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있든 없든 폭력에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대처할지 않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폭력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판단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으며 폭력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친밀하고 동시에 위험한 삶의 조건이며  그조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에 직결되는 문제다라고 합니다

우리 삶속에서 폭력을 때고 살아갈수가 없군요

 

 

이달의 사락 k*****6 2012.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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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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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폭력에는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메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폭력이 신체적 폭력이라고 한다면 학교 등에서의 왕따를 정신적 폭력으로 들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폭력들이 나쁘다고 말들하고 주의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폭력이 우리곁을 떠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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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폭력에는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메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폭력이 신체적 폭력이라고 한다면 학교 등에서의 왕따를 정신적 폭력으로 들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폭력들이 나쁘다고 말들하고 주의한다고 하면서도 이러한 폭력이 우리곁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폭력에 강하게 저항하면 더이상의 폭력은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의 많은 의문이 생기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도서의 내용에는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폭력이 아닌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폭력과 이러한 폭력의 역사에 대해 논하고 있다.

폭력의 근본 원인은 자신의 보호, 더 나아가서는 우리 가족의 보호, 집단의 보호, 국가의 보호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리적 폭력과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수단으로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함으로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것이다.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일본의 예를 많이 들었으나 참고 자료에는 우리나라의 것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약간은 의아했던 부분도 있다.

그런데 폭력에는 우리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폭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아니 존재가 국가라는 것이다. 또 국가가 성립되는 역사가 500년 전에  확립되어 오늘날에 이러렀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준다. 현대 국가의 시초가 500년의 역사속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휘두르면서 오늘날의 국가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나 자신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기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신체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 국민의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국가? 무언가 아이러니 하면서도 사실이 그렇다는것을 천천히 책장을 느끼면서 알게해주는 책이다.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은 엄청나며 누구도 이러한 폭력에 대항할 수 없다는것이 어찌 보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 나라의 문제점이 아닐까? 합의하에 이루어진 폭력은 폭력으로 느끼지 못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폭력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와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것이 국민의 마음이기에 한편으로 보호를 받으면서도 폭력에 대항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l*****7 2012.12.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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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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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이책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란? 폭력이란? 그리고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것이 국가라는것 그것도 상위 1%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을... 권력의 힘이란 어떤것인지 권력은 돈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라는 것을 만들었고 거기서 규제라는 것을 만든것이 법이다 법은 상위 1%들이 만든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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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이책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란? 폭력이란? 그리고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것이 국가라는것 그것도 상위 1%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것을... 권력의 힘이란 어떤것인지 권력은 돈이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라는 것을 만들었고 거기서 규제라는 것을 만든것이 법이다 법은 상위 1%들이 만든다 그리고 법은 도덕으로 봐서는 안되다는 것 실제로 법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낀 나로서는 알것 같다 법은 도덕적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힘이라는 것을 돈이나 권력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책을 읽으면서 참 그렇구나 했다

폭력은 왜 생긴것인가에서 폭력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생긴것이다 혼자 만들어 1개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2명이면 2개이다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여 굴복시켜 2개중 1개반을 자기가 먹고 반을 자신이 편하기 위해 반을 피해자에게 준다 반을 받은 사람은 안죽기 위해 일을 하고 그것을 보호의 대가로 준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편해지기 위해 다수의 힘이 모여 집단을 만들고 그 크기가 커지면서 단체가 만들어지고 마을이 만들어지고 계급이 생겼다

이책의 1장에서는 폭력은 좋은 것인가? 나쁜것인가라는 말을 던진다 폭력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주는것 이것이 폭력이다 이것만 본다면 폭력은 나쁜것이다 하지만 예를 든다면 조폭들이 폭력을 행사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남을 괴롭히고 돈을 뺏는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국가가 조폭을 제압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좋은것인가라는 말을 하고 있다

2장에서는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가라는 주제로 말하고 있다 죄가 없는 사람을 자신의 이익 때문에 누군가 죽인다면 이것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고 생각할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을 당한다면 이것은 정당한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둘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럼 무엇으로 정당하다고 말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법 무슨말인지 잘모를수도 있고 논리 논박처럼 들렸다 읽으면서 지루함을 가장 많이 느낀대목이다 너무 이론적으로 이야기해서 말이다 그리고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리는 집단이라는 것이고 다른 조폭이나 개인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가라는 집단은 이익을 얻는것을 세금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한다고 이책은 말하고 있다 흥미진지했다 세금이라는 의미가 다른 세상을 만난 것처럼 머리를 사정없이 혼란스러웠다 세금은 당연한 의무라고 하였는데 생각을 다시 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그 국가의 수장이 되기위한 것이 선거이고 선거를 위해 남을 비방하는 것을 지금 현재 대선을 며칠 앞두고 바라보고 있다 참 한심한 짓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언론을 국가가 마음되로 조작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작을 한다고 해도 인터넷이라는 세상이 있어 한계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더욱더 언론을 조작하기를 원하는것 같다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조작한다는 것이 참 나도 상위 1%가 되어야 내가 만들어 갈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요즘 들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지배층(상위 1%)가 되기 위한 영화 드라마가 많다 왜라는 말은 그냥 나온다 내가 잘살고 행복을 가지려고 하는것이다 이책 재미있다 이책 마지막 부분에 국가를 만들면 안된다는 말을 한다 왜?라는 말에 국가가 강제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고 이익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공산국가라는 것도 나온다 공산국가의 이론은 이익을 골고루 분배하자는 것이다 그럼 이책에서 말한 정부가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망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를 만들지 못하게 할려면 국가보다 강한 힘들 가진 집단이 필요하고 그집단이 국가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책 생각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 책이라 재미있었다 이책 한번쯤은 폭력이란 어떤것인지 다시 다른 시각으로 느끼게 만든책이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까지 내려온 공산주의 체제로 내려온 진단의 언론을 제압하고 집단교육으로 생각을 압축시켰다 그러던중 과학이 발달로 인해 북한의 소식만을 듣던시대와는 반대로 전세계의 소식이 들어가면서 북한은 탈북자가 늘어나고 더 좋은 삶의 질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한으로 아니면 제3세계로 가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국경을 넘는다 모든 것은 이익을 위해서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다 이책에 숨어있는 내용이 아닌가 싶다

f******l 2012.12.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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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도덕적 차원에서 정치의 차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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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폭력에서부터 국가 혹은 인종간에 자행되는 폭력에 이르기까지 폭력이라는 것은 세계 도처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폭력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나쁜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폭력을 억제한다는 명목 하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폭력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순된 태도를 꼬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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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폭력에서부터 국가 혹은 인종간에 자행되는 폭력에 이르기까지 폭력이라는 것은 세계 도처에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폭력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나쁜 것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폭력을 억제한다는 명목 하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폭력을 대하는 인간들의 모순된 태도를 꼬집으면서 폭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우리는 폭력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만 폭력에 이끌리고 폭력을 동경해 왔다. 저자는 폭력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순된 태도의 이유가 '우리 존재 자체가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되었기 때문(p.18)'이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폭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폭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이 폭력을 바탕으로 권력의 개념이 생겨난다. 인간의 존재와 떼어낼 수 없는 폭력이기에 그것이 악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폭력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폭력을 고찰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음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저자는 이어서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우리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폭력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논리적으로 따져가다 보면 이러한 절대적 도덕처럼 여겨져 왔던 명제를 정당화시켜주는 완전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물었던 물음에 나 역시 완전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저자의 결론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결정적 이유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 결론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이와 같이 명확히 답을 하기 어려운 물음이 존재하는 이유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언어가 가진 본질적 특징 때문인데, 언어를 통해서 도덕의 내용을 완전히 정당화할 수는 없다. 어떠한 답을 제시해도 무한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언어를 통해서는 특정 도덕적 명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 가면서 저자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저자는 언어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 

 

  그렇다면 도덕이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칸트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도덕률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칸트가 말한 정언명법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정언명법이란 어떠한 경우나 상황에도 적용되는 무조건적인 도덕을 말한다. 즉 '안된다면 안되는거야'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정언명법을 주장하면서도 사형도 동일한 정언명법이라고 했다. 단 사형의 찬성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의 율법과도 같은 조건으로 한정지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칸트도 결국 두 가지 정언명법이 모순되는 문제에 직면하고 만다. 저자는 칸트의 모순을 통해 도덕의 정당성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즉, 무조건적으로 성립되는 도덕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폭력 역시 절대적 개념이 아님을 말하면서 폭력을 도덕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차원으로 전환해야 함을 말한다. 도덕과 폭력을 함께 생각해보니 저자가 말하는 차원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이어서 저자는 이와 같은 폭력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구조화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가장 대표적인 국가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국가란 무엇인가에 답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국가의 특징 중의 하나는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국가의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국가란 어디까지 법의 범위 내에 속하며, 어디부터가 법의 범위에서 벗어나는가를 끊임없이 확정하고 판단하면서 법에서 벗어난 행위를 폭력(물리적 실력행사)으로 단속하고 그에 따라 사회에서 권리관계(법적으로 인정된 행위의 가능성의 관계)를 설정해 가는 운동이다'(p.81)

 

  그렇다면 국가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저자는 국가의 형성을 사회속에 확산되었던 '폭력의 권리'가 국가라는 특정 기관으로 통합되는 것이라 보았다. 일반적으로는 사회계약설을 통해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보지만 이것 역시 국가의 형성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기적 존재로 자연상태에 있던 인간이 계약이 성립될 때에는 갑자기 선한 존재로 둔갑해 버리는 모순과 폭력의 권리가 어째서 근대에 이르러서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회계약설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저자는 국가의 형성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의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수립한 권력의 강압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폭력의 권리'를 포기하게 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진 무력 조직의 출현이 먼저였다는 주장이다. 이에 덧붙여 근대 국가의 형성에는 총화기라는 기술의 영향이 지대했음도 언급하고 있다. 

 

  국가의 형성을 논한 후 저자는 세금이라는 것에도 그 기저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다. 자연상태에서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에 대해 목숨을 건지려고 돈을 지불하는 경험을 국가의 형성과 연결시키면 그것이 바로 세금이 된다. 세금에 대한 아주 명쾌한 해설이다. 힘을 가진 누군가가 협박을 통해 강제한 돈처럼 세금 역시 국가에 의해 우리들에게 강제된 제도이다. 그러면 국가와 폭력 조직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둘을 구별하게 해 주는 것은 국가는 법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앞서 언급한 국가의 합법적 폭력 행사 독점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국가만이 합법적으로 돈을 강제 징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왜 국가는 사회에서 폭력의 권리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가 왜 합법화된 폭력을 통해 돈을 징수하는가를 고찰한다. 저자의 논리는 명쾌하다. 국가가 폭력으로 돈을 모으는 이유는 여러 가지 활동을 위해 필요한 돈을 손쉽게 모으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효율성의 문제이다. 부를 둘러싼 실력 투쟁이 국가와 사람들 사이의 세금 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편 권리는 폭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승인되어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권리를 폭력의 실천이나 승인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저자는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법이란 바로 승인된 권리의 체계임을 말한다. 

 

  저자는 지금가지의 논의를 통해 일반적으로 생각해왔던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 국가는 폭력에 근거해 형성된 조직이며 심지어는 강제적으로 세금을 모으기도 한다. 이러한 개념은 국가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국가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생각을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책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폭력 자체의 중립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러한 국가의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를 해체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설사 국가의 해체가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함을 저자는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저자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폭력의 문제에 대처해야 하므로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결국 합법적인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를 통해 폭력에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국가는 다른 폭력 조직과 다른 존재이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의 폭력을 법에 입각시켜야만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견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국가가 법을 통한 검토와 조절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의 문제는 영원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내가 속해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국가를 폭력이라는 관점으로 해설해 주는 저자의 관점이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사회와 국가의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옳고 그름의 도덕적 가치 판단에 머물러 있던 폭력에 대한 관점을 정치적 관점으로 확장시켜 준 이 책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음미해보고자 한다.

e*******7 2014.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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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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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에 대해선 무조건 안된다!! 이유불문 폭력은 정당화될수 없다!! 아이들을 체벌하는 행위는 잘못된 교육방침이다!! 등등에 대해 폭력에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며 혼날짓을 했으면 맞아야한다는 지론으로 키우셨기에 어릴때는 많이 맞았었고 그것은 나에게 어릴때지만 많은 충격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생각하면 서러울뿐이다  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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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력에 대해선 무조건 안된다!! 이유불문 폭력은 정당화될수 없다!!

아이들을 체벌하는 행위는 잘못된 교육방침이다!! 등등에 대해

폭력에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나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며

혼날짓을 했으면 맞아야한다는 지론으로 키우셨기에 어릴때는 많이 맞았었고

그것은 나에게 어릴때지만 많은 충격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생각하면 서러울뿐이다 

왜 무엇때문에 잘 못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욱하는 성질에 손찌검을 하는 것은

정말 아이에게 안좋은 기억만 남겨주기때문이다 

또한 내가 3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발로 차고 뺨을 때리는 등 어린아이들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겪었기에 나는 특히나 폭력하면 질색을 한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면서 폭력에 대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다는 걸까

나쁘다고 하지만 안나쁘다는 건가

아이들의 체벌이 요즘은 엄격히 제한되기에 오히려 아이들이 막나가고 선생님들이

피해보는 등의 이야기가 뉴스에도 나오고 하기에 혹시 이런 체벌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는 책은 아닐까싶은 생각이 가정 먼저 들었다

 

이책을 읽으면 맨 처음에 폭력이란 과연 나쁜것인가 좋은것인가에 대해 물어본다

사실상 폭력이란 그때 상황에 따라 누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나쁜폭력이 되고 좋은 폭력이 된다

 

왜 폭력이 불가피한지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또한 그렇고 이책에서는 이물음에 찬찬히 답해주고있다

폭력은 반대하지만 합법적 폭력인 사형은 왜 허용하는지, 왜 좋은폭력과 나쁜폭력인지에 대해

전혀 지금까지 이렇게 깊게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내가 생각한 폭력에는 국가란 없었는데 이책에서는 국가가 폭력에 기반을 두고

성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근대국가가 형성된 시기는 불과 400~5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전에는 사람들은 부락을 이루고 곡물과 재산 등을 침략을 통해서 얻고 침략에 맞서서

보호하기도 하면서 폭력을 이용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더 큰 폭력을 휘두르는 누군가가 나타나 이런 사람들의 폭력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게 되면서 국가가 탄생된 것이다

즉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한하면서 나타나게 된것이 국가인것이다

국가의 성립 자체가 폭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로써 폭력의 권리를 휘두르는 개인이 권리를 제한받게 되면서

국가가 허용한 범위의 폭력은 합법이 되고 그렇지 못한 폭력은 위법이된다

국가와 깡패는 무엇이 다른지 국가와 깡패와의 다른점은 국가는 법아래 합버적인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고 깡패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였다

여러모도 이 책에서는 국가와 폭력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혼란스러워 졌다 도대체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싶기도 했다

사회가 폭력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순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되고 

깊게 생각지 않고 무조건 안된다 했던 폭력에대해서도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q*******3 2012.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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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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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이야기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 정당화 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현실을 보게 된다.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제목 뒤에는 그 반대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인간이 정작 더욱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며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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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나쁘다,고 이야기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 정당화 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현실을 보게 된다.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제목 뒤에는 그 반대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폭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인간이 정작 더욱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며 그것을 '좋은 폭력'으로 정당화한다. (13쪽)

어쩌면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나보다. 이 책을 보면 "폭력은 나쁘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더 큰 폭력을 휘두르는 예로 학교체벌이나 포로를 학대하는 미군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이 책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폭력의 극치, 살인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소년 범죄 문제를 논의하는 TV토론 프로그램에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 토론장에 있던 한 중학생이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패널리스트인 전문가들 모두가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31쪽)

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생각하며 계속 읽어나갔는데, 나의 대답도 마찬가지로 논리적인 헛점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혼돈만 온다.

 

 이 책에는 칸트의 정언명법과 폭력, 국가와 폭력, 국가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보다 쉽게 와닿는 분량과 제목으로 유추해보았다가, 생각보다 범위가 커졌음을 느낀다. 연관된 내용이기는 해도 원했던 내용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이 아쉬워진다.

 

 이 책을 읽으며 세상 일을 단정지어 생각하지 않아야겠다고 느꼈다. 오히려 내용보다는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라는 제목이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각각의 경우에 따른 다양한 현상을 냉정히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a 2012.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폭력이 사리질 일은 없다지만
"폭력이 사리질 일은 없다지만" 내용보기
♨폭력은 나빠, 그런데 체벌은 필요해        소란스러웠던 학교 폭력의 문제가 다소간 잠잠해졌다. '일진'들이 완전히 축출되었기 때문일까. 말썽은 엄두도 내지 못할만큼 처벌이 강화되었기 때문일까. 다시금 교사의 '잃어버린' 권위의 제도적 증진에 대한 목소리도 들려 온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의 인권 따위 따지다가 교사가 제 노릇 못하게 되었고, 교육의 질이 하락되었다고 이
"폭력이 사리질 일은 없다지만" 내용보기
♨폭력은 나빠, 그런데 체벌은 필요해
       소란스러웠던 학교 폭력의 문제가 다소간 잠잠해졌다. '일진'들이 완전히 축출되었기 때문일까. 말썽은 엄두도 내지 못할만큼 처벌이 강화되었기 때문일까. 다시금 교사의 '잃어버린' 권위의 제도적 증진에 대한 목소리도 들려 온다.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의 인권 따위 따지다가 교사가 제 노릇 못하게 되었고, 교육의 질이 하락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꾸만 그들은 교육제도가 과거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과거의 교육, 교육의 과거는 정상적이었는가? 학생의 폭력은 없었고, 그들은 교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거기에 더해 권위적인 교사들의 체벌, 즉 합법적인 폭력까지 공공연하게 이뤄졌기에 폭력의 합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그것이 '합격률' 높이는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폭력은 학교의 일상이었고 문제제기를 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교과서는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교사, 학부모 모두 '폭력은 나빠. 그런데 체벌은 필요해'라는 식이었다.
 
       이러한 모순을 정면으로 파고드는 시선이 돋보이는 책이 한 권 출간되었다. 일본의 신예 철학자 가야노 도시히토의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이 그것이다. 그는 위와 같은 상황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폭력은 안 된다'고 가르치는 교사가 폭력을 휘두른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교사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폭력은 안 된다'고 외치면서 더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는 모순은 실제로 여기저기서 흔히 접할 수 있다."(12p)

       그는 이러한 모순이 학교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폭력은 안 된다고 중얼거리면서 은밀하게도 폭력은 사회 곳곳에 깊이 스며 있는 셈이다. 폭력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아직도 폭력은 흔하기만 하다. 폭력과 인간, 이 둘은 정녕 갈라놓을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교사들과 학부모, 심지어 일부의 학생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체벌에 대한 향수'가 이상하지만은 않다. '폭력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냉소 어린 전제가 떠오르면서 말이다. 근데 정말 폭력이 인간의 본성임은 물론 다수의 인간들이 폭력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국가, 폭력을 탐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폭력의 유형이 존재한다. 폭행, 살인, 전쟁, 테러 등은 물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거나 생명을 박탈하기까지하는 폭력의 목록은 작성을 끝마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폭력에는 희한하고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 예컨대 싸움을 잘하는 친구가 인기있는 경우, 적군을 쏴죽이는 FPS게임의 인기, 피 터지는 이종격투기에 대한 열광 등의 경우는 폭력에 대한 인식이 양면적이고 다층적이라는 걸 알려 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폭력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정리한다.
 
       폭력은 타인의 고통을 야기하기에, 역사적인 폭력 사건이 인간 문명에 커다란 재앙을 불렀기에 이것이 즐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소수의 지극히 윤리적인 인간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게다.
 
       혹자는 말한다. 폭력적인 영화, 게임, 스포츠 등의 문화콘텐츠가 허용되어야 실제의 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 본성이 폭력적이라는 이러한 전제는 성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폭력의 욕동도 정기적으로 생겨나며, 그때마다 해소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과연 반복적인 폭력에의 노출이 폭력성을 강화하지 않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흐를 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이는 또한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배태되는 폭력성의 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입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폭력성은 그저 인간의 본성이라고 읊조릴 수밖에 없다. '잠재적 폭력성을 해소하기 위해 폭력적인 문화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것이 그들이 요구할 수 있는 전부다. 이는 철저히 기계적인 해결공식이 아닐 수 없는데, 폭력을 조장하는 사회구조와 폭력이 부르는 파국에 대한 교육과 성찰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외면하기 때문이다.

       도시히토가 심도 있게 접근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폭력과 국가의 관계이다. 국가는 "역사상 최악의 폭력 소유자"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의 나라 일본은 물론, 미국, 나치, 소련, 북한 그리고 한국 등 어느 근대 국가도 피하갈 수 없는 촘촘한 규정이다. 국가는 정당한 폭력과 불법 폭력이라는 가상의 대립에 의존하여 폭력을 소유하고 행사한다. 사회학자 볼프강 조프스키는 <안전의 원칙>에서 "오늘날의 국가는 무엇보다도 안전국가다. 즉, 주도 이념을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라 안전에 둔다"고 말하지만 '안전국가'는 여전히 폭력이 안전을 압도하는 세계가 아닐 수 없다. 안전의 이름으로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치안국가가 그 '안전국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국가에 대한 도시히토의 규정은 몹시나 시니컬하다.

"국가란,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을 통해 폭력으로 폭력을 억제하는 '폭력의 체제'를 말한다."(172p)

       마사히로는 지난 이라크 전쟁에서 이러한 '폭력의 체제'로서의 국가의 모습이 명백하게 나타났다고 단정한다. 주인공은 물론 미국이다. 미국은 이라크의 폭력을 '나쁜 폭력'이라고 단정함으로써 자신의 폭력행사를 '좋은 폭력'이라고 '정당하게' 우기지 않았냐고 독자에게 되묻는다. 이 얼마나 정당한 전쟁이냐며 말이다.

       굳이 저 멀리의 사례를 찾아볼 필요는 없다. 아직도 팽팽한 사형제 논란, 최근에 발생한 연쇄적인 성폭력에 대한 응징을 위해 법률안으로 제출된 고환제거형벌(이에 대해 박권일은 반인권을 넘어 반문명적인 형벌이라고 일갈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시민에 대한 폭력(특히나 시위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등 한국에서도 국가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폭력이 사리질 일은 없다지만
       며칠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코네티컷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20대 청년으로 인해 28명이 사망한 비참한 사건이었다. 특히나 사망자 중 대다수가 초등학생이라는 점은 소식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을 분노케 했다. 결은 다르지만 21세기도 결국은 폭력의 세기인 걸까. 한국 사회에서도 묻지마 살인 사건, 아동 성폭력 발생 소식이 들려 온다. 거기에 자살이라 불리는 사회적 타살까지. 이를 전해 들은 사람들은 우발적인 폭력에 대비하여 일상적인 방어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폭력적인 것이 차고 넘치는 이 사회, 폭력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공기의 주요 성분이다.

       폭력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누구든 당장에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주변을 돌이켜보며 일상을 채운 폭력적인 것들에 대해 다시 묻는 일이다. '이것은 폭력인가?', '폭력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근본적 질문이 사유의 출발선이다. 도시히토의 <폭력은 나쁘다고 말하지만>은 우리가 다시 폭력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폭력은 나빠. 그런데 체벌은 필요해."라고 말하는 우리의 자기모순을, 아이러니를, 무의식을 수면 위로 길어내어 응시하게 도와준다.

       다만 아쉬운 부분, 우리가 사유를 모아 채워 나가야할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는 "우리 삶에서 폭력이 사라질 일은 없다."(180p)며 폭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 말한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속성의 분석을 철저히 하지 않은 채 우리는 폭력과 함께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싶다. 필요악의 폭력과 불필요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폭력,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력 등은 분명 다른 폭력일 텐데 말이다. 또한 '왜 폭력과 마주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만, '어떻게'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서술은 턱없이 부족하며, 그마저도 빈약한 아이디어로 채워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누락은 의도가 없다하더라도 이 책을 '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폭력과 함께 살아야 하는 지를 설득하려 쓴 책'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도시히토를 넘어, 폭력에 대한 성찰을 계속하려면 그것에 대한 대처를 넘어 예방의 차원까지도 고민해야 한다. 조프스키는 "인간을 협력하고 단합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물론 911사태 이후 미국의 주류적 반응,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돼!"라는 식의 배타적 협력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라는 끔찍한 폭력의 세기를 종료시키려는 의지의 표현하기도 한다.
 
       폭력에 대한 현재의 대처 방식은 도덕적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개인에게 폭력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을 아웃소싱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폭력 사태가 일어나면 도덕성을 결여한 한 개인의 사적인 폭동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게 폭력과 동행하는 불행과 고통, 그리고 파국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또 다시 직접 경험을 통해서만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폭력에 대한 공동의 관리와 예방,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대한 과잉의 성찰만이 폭력에 노출된 우리의 밑도 끝도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그래도 조금은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래도 불충분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q******0 2012.12.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