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 국가」는 오늘날 이스라엘 건국의 사상적 뼈대가 된 책이다. 19세기 말, 유럽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 속에서 헤르츨은 유대인 스스로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유대인들이 유럽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차별과 핍박을 피할 수 없다고 본 헤르츨은 유대인 문제가 하나의 독자적인 민족 문제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국제적인 승인을 받은 유대인만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유대인 협회를 조직해 정치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담당하도록 하고, 유대인 회사를 설립해 이주와 정착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과 경제적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영토 후보지로 팔레스타인과 아르헨티나를 꼽았다. 팔레스타인은 역사적 상징성이 깊었고,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다. 헤르츨의 이 책은 시온주의를 현실적인 정치 운동으로 탈바꿈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막연한 몽상이 아니라, 하루 7시간 노동제 도입, 현대적 건축물과 복지 제도를 갖춘 근대 국가 등의 상세한 조건을 걸며 유대인 국가를 설계했다.
막연한 몽상이 아닌 구체적인 계획. 이 책에 담긴 그의 꿈을 현대 이스라엘은 얼마나 담고 있는가. 헤르츨의 핵심 목표였던 유대인 주권 국가 건설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가 꿈꿨던 유대 국가와 현대의 이스라엘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는 평화로운 중립 국가를 꿈꿨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은 그에 걸맞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헤르츨은 철저하게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세속 국가를 꿈꿨다. 랍비는 회당에, 군인은 병영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로 종교 지도자들이 국가 정책에 왈가왈부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현대 이스라엘은 정교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극정통하 유대교인 하레디 정당들이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고, 네타냐후 총리는 이들을 통해 정권 연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치 외적으로도 일상생활과 법률 곳곳에 종교적 교리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헤르츨은 궁극적으로 스위스와 같은 대외적 중립국을 구상했다. 외부의 위협이 없는 유대인들을 위한 평화롭고 안전한 도피처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현대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 군대에 징집되는 강력한 군사주의 사회다. 첨단 무기 개발과 막대한 국방비 지출이 국가 운영의 최우선 순위이며, 중동의 화약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수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헤르츨의 구상과 현대 이스라엘은 상당히 다르다. 홀로코스트라는 참극, 그리고 중동의 복잡한 갈등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이 겪었던 나치 독일과 흡사할 만큼 폭력적이고 기형적인 국가가 되었다. 헤르츨의 펜대는 유대인 주권 국가를 만드는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변모했지만, 그 움직임은 헤르츨의 구상을 따르지 않았다. 과연 헤르츨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