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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여행, 안중근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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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자세히 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도 한반도에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고 더구나 의거후 하얼빈에서 남쪽 뤼순으로 호송되어 간 거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의병 활동 중 국내 진공 작전에서 승리를 한 적도 있었지만 패전을 한 뒤에는 천신만고 끝에 연해주 크라스키노라는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크라스키노, 포시에트, 블리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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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자세히 보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도 한반도에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이고 더구나 의거후 하얼빈에서 남쪽 뤼순으로 호송되어 간 거리도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의병 활동 중 국내 진공 작전에서 승리를 한 적도 있었지만 패전을 한 뒤에는 천신만고 끝에 연해주 크라스키노라는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크라스키노, 포시에트, 블리디보스토크는 안중근에게 있어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이미 그곳에는 한인 사회에서 명망이 두터운 최재형과 이범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안중근의 독립 운동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크라스키노에는 단지동맹비가 세워져 있다. 안중근의 손도장 기념비다. 단지동맹은 1909년 2월 7일 안중근을 포함한 12명의 동지들이 대한독립을 위해 뜻을 모은 날이다. 안중근,김기룡, 백남규, 황길병, 조순응, 강기순,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오늘 우리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함으로써 한마음으로 단체를 이루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어떻소?" (16쪽)

 

"고향에서 사서(논어,맹자, 중용, 대학) 삼경(시경,서경,주역)을 공부한 안중근은 세 가지를 먼저 생각했다. 이천만 동포,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신앙이었다" (70쪽)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신문사 <대동공보> 편집장 이강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가 특급열차로 하얼빈역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신문사 <대동공보>는 하얼빈 의거 당시 안중근이 소지하고 있었던 총기, 그리고 경비를 제공해 주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안중근은 블라리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우수리스크, 포그라니치니, 쑤이펀허, 하얼빈으로 이동한다. 함께 동행한 이는 우덕순이며 하얼빈에서 조덕순과 우동하를 만난다. 우동하는 러시아 통역을 위해 함께 한다.  참고로 안중근의 세례명은 도마(토마스)이며 한자로 다묵이라 표기한다. 

 

'무링'이른 곳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후 안중근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창호 선생이 앞장 서 그들의 가족들을 '무링'으로 피신시킨다. 무링에서 일본의 밀정에 의해 안중근의 장남 분도가 의문사를 당한다. 낚시터에 놀러갔다가 그곳에서 낯선 이로부터 받은 과자를 먹고 죽음을 당한다. 아마도 안중근의 가족을 놀린 일본 밀정에 의한 행동인 것 같다. 

 

'창춘'은 안중근이 호송되면서 하루 저녁 정차한 곳이다. 관동 헌병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뤼순'은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항구 도시로 일전에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뤼순'에다가 청,일,한국 3개국이 공동 경제구역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가 있다. 뤼순 형무소, 뤼순 법정에서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후 안중근의 남은 가족 김아려 여사와 두 아이는 상하이로 이주하며 독립 운동을 하러 온 많은 청년들이 잠시 머물다가 가는 안식처로 사용되었다.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한국 근대 독립운동의 발자취와 일맥상통함을 느낀다. 기회가 닿는다면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 고려인들의 독립 운동 흔적지, 하얼빈과 뤼순 지역을 탐방하고 픈 마음이 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까지는 780킬로미터. 국경이 가까워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중근은 우덕순과 미리 의견을 나눴다. 첫째,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쏠 것. 둘째, 달아나지 말고 총을 내던진 다음 코레야 우라(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외칠 것. 셋째, 산 채로 잡혀 우리의 억울함과 정당성을 세계에 알릴 것." (84쪽)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행한 뒤 권총으로 자살을 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법정에서 대한국민의 억울함과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인만큼이나 러시아 정부도 내심 고려인 추방을 반겼다는 점이다.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내쫓을 수만 있다면 두 가지 계획은 분명해 보였다. 황무지 개발과 군량미였다. 실제로 스탈린 정부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고식을 러시아 혁명군 군량미로 사용했다." (88쪽)

 

안중근과 동시대를 살았던 연해주 지역에 있었던 우리 한인들은 러일전쟁 후  6000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지게 되었다. 일본이 스탈린 정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연해주에 있었던 우리 동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우리 한인들이 까레이스끼가 되어 집단 이주하게 되었으니 지금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우리의 후손인 셈이다. 

c*******9 2022.12.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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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길을 따라걷다 - [안중근과 걷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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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알지 그의 자세한 인생과 그 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설령 사전 등을 통해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걸은 길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르포 작가가 쓴 이 책은 그의 길을 담담하지만 꼼꼼하게 돌아보고 있다.그의 여정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되어 있다.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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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사실만 알지 그의 자세한 인생과 그 여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설령 사전 등을 통해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걸은 길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르포 작가가 쓴 이 책은 그의 길을 담담하지만 꼼꼼하게 돌아보고 있다.


그의 여정은 주로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되어 있다.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혹독하게 진행된 일제의 탄압 때문에 조선 내에서는 독립운동을 하기가 힘들었고 만주를 비롯한 중국으로 많이 빠져나갔다.천주교도이면서 국제법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안중근의 거사 이전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는 신부가 되고자 했고, 국제공법에 호소해서 독립을 지켜내려 했다.

 

하얼빈에서의 거사는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위국헌신의 정신이었고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조선의 군대에 속한 군인으로서의 본분이었다.그의 거사 뒤에는 가족들의 결기가 있었다.독립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겠다는 남자 뒤에는 그것을 용인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여정을 마치 소설처럼 알기 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것은 큰 장점이다.비록 세부적인 근거는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길을 명료하게 그려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끈다.또 그가 걸었던 길이 (비록 현재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땠는지 알 수 있도록 많은 도판을 넣은 것도 칭찬할만한 일이다.먼 거리에 있는 영웅이 아니라 비록 의기는 남달랐지만 그도 하나의 인간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재삼 알게되었다.재판에서의 당당한 모습과 담담하지만 비장함이 서려있는 최후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 사람의 아들, 천주교인, 의인, 인류애가 가득한 국제법의 지지자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a*******2 2019.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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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걷다, 역사 평전 기행이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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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걷다, #역사 평전 기행이 만나다         책<안중근과 걷다>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전 그리고 그 사건과 인물을 따라 떠나는 기행이 함께 어우러진 책이다. 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가 있는 곳으로  1909년 안중근 의사를 비롯 12명이 조국의 독립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한 장소다. 기행을 떠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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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걷다, #역사 평전 기행이 만나다
 
 

 
 
책<안중근과 걷다>는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전 그리고 그 사건과 인물을 따라 떠나는 기행이 함께 어우러진 책이다. 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크라스키노 단지동맹비가 있는 곳으로  1909년 안중근 의사를 비롯 12명이 조국의 독립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한 장소다. 기행을 떠난 저자는 시인이자 르포작가인 박영희 그리고 사제서품을 받고 현재 조촌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는 최종수 신부다.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것을 알게된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훌륭한 독립운동가이자 나라를 위해 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훗날 기념이 될 수 있다는 건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의사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 아닐까? -9쪽-
 
안중근의 삶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가톨릭 세례와 독립을 향한 열망이었다. 그에게 있어 예수의 삶은 독립운동가가 가야할 험난 한 길을 앞서 걸어간 선배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동시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고통의 길을 함께 걸어간 동지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가톨릭 사제가 저자로서 기행에 참여하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머리말에 안중근과 함께 걷는 길에서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말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안중근 의사와 함께, 또 저자들과 함께 책속의 기행을 떠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거사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며 순국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은 위인전이나 관련 서적을 통해서 접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의 마지막 발걸음인 여다섯 번째 발걸음 속 안중근의 가족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 김아려는 상하이에서 생애를 마쳤으며 도시 개발로 인해 유해마저 유실되어버렸다고 한다. 책에 실린 아이 둘과 찍은 사진 속 김아려의 모습이 쉬이 넘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가는 이미륵 작가가 유일하다고 하다. 앞서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생을 마감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족의 이야기는 이즘으로 하고 기행기에 맞게 그들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가 되짚어 보면 앞서 크라스키노에서 동맹을 세웠다면 하얼빈 거사를 기획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다. 사실 천주교인으로서의 안중근의 독립활동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가 꺽이지 않게 붙들어준 것은 그의 어머니와 신자로서의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에는 반대하였지만 종교 자체는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의 몸에 묵주와 같은 성물을 지니고 있으면서 평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그의 성품이 거사의 저격수로 낙점된 이유라고 대동공보 편집국장 이강은 말한다. 물론 안중근의 사격술이 뛰어났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거사를 두고 경비문제로 안중근 의사의 형편이 좋지 않았으며 이강에게 편지를 띄우고 난 후에는 울분이 치솟았다는 내용을 옥중에서 집필한 <안웅칠 역사>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과정(장소)을 거쳐 영웅이 되어가고 그 영웅의 가족들이 어떤 고초를 겪게 되었는지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의 서신으로 책이나 다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들려준다. 그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이라는 단 한줄의 묘사로는 고마움을 대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책을 읽으며 잊히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i********g 2019.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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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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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지어느덧 11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독립투사들의 후예들은 가난하고 친일파 후손들은반성 없이 잘 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독립투사들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서 그들을 잊지 않고자 하는 바람들이 있어서 그나마다행이다 싶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일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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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지

어느덧 11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독립투사들의 후예들은 가난하고 친일파 후손들은

반성 없이 잘 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으로

독립투사들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서 그들을 잊지 않고자 하는 바람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일본제품은 안 쓴다는 노재팬 운동의 열기와 함께

일본과의 외교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중에 읽어서 그런지

누구나 알고 있는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의 여정조차도 너무 생소하고

겨우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웠다.

안중근 의사의 활동과 행적을 따라 크라스키노, 포시에트-빨치산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포그라니치니, 쑤이펀허, 무링, 하얼빈, 차이자거우, 하얼빈, 창춘, 북간도,

뤼순, 상하이이 순으로 밟아 나간 기행기인데 흔적이 남아 있는 곳도 있고 사라진 곳도

많아 씁쓸했지만 그의 정신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스키노에 있는 단지동맹 기념비를 직접 보면 가슴이 정말 먹먹할 것 같다.

동양평화가 유지될 때까지 조국을 위해 진력하자는 뜻으로 손가락을 자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쓸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증거이자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징표였다는 단합과 실천의 의지에 비장함의 그의 굽히지 않고

완고함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천주교를 믿기 전 안중근 의사에게는 친구와 의리를 맺는 것,

술과 노래와 춤을 즐기는 것, 총으로 사냥을 하는 것, 날쌘 말을 타고 마음껏 달리는 것이 

삶의 목표였지만 세례를 받은 후부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데도 없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요즘에 블라디보스토크가 2시간만에 가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며 각광받는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는데 아르바트 거리 부근이 예전에는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동포들이 최초로 거주한 개척리였다고 하니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장소였는지 알고 가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발효된 후 개척리는 러시아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단다.

하바롭스크 거리 또한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를 근절한다며 철거 명령을 내려 다시 이주한

신한촌이었단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으로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란 걸 알고 나면 하바롭스크 거리가 단순히

이쁜 유럽풍 건물이 있는 인증샷 찍기 좋은 거리로만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신한촌에 있는 기념비인 세 개의 기동은 남과 북, 해외동포를 상징하고

여덟개 의 돌은 한반도의 팔도를 의미한다니 그 앞에서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는 문장을 읽으면 콧끝이 정말 찡할 것 같다.

3.1 운동을 기리기 위한 신한촌 독립문 터는 가로수 숲으로 변했고, 상하이 임시정부로

떠나기 전 묵었던 이동휘 집터에는 상가 건물이 들어섰고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바닷가 옆 기찻길 언저리에 '세울수카야(서울 거리)2A' 명판이 유일한 연해주 독립운동의

흔적이라고 하니 안타까웠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사형을 구형받은 아들에게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했다는

그 위대한 어머니 조성녀 마리아 여사의 무덤도, 아내 김아려의 무덤도 없어진 것 또한 씁쓸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가 이어지는 게 두려웠던 일본인들이 불과 7살에 불과했던

장남 분도를 독살한 것은 그 시절이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했었는지를 가늠하게 했다.

한 사람의 삶은 죽음으로 끝을 맞지만 그 사람이 남긴 역사는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친일잔재를 타파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t******1 2019.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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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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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 <안중근과 걷다 (박영희, 최종수 지음/숨쉬는책공장)> #역사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2019년 여름은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극일의 물결이 넘쳐나는 시기였다.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그 이웃 나라의 야욕에 비참하게 희생당한 우리의 선조들의 역사는 다시 살펴봐도 비분강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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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 <안중근과 걷다 (박영희, 최종수 지음/숨쉬는책공장)> #역사

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2019년 여름은 일본의 경제 침략으로 극일의 물결이 넘쳐나는 시기였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 이웃 나라의 야욕에 비참하게 희생당한 우리의 선조들의 역사는 다시 살펴봐도 비분강개할 뿐이다.

 

의롭지 못한 시대의 흐름에 자신의 일생을 한 줌의 지푸라기처럼 던져버린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언제나 질문은 나라면 저렇게 나의 인생을 던질 수 있을까?’였다.

유관순, 윤봉길, 백범 김구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인 안중근.

너무나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독립투사들이지만 그들의 인생을 천천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

 

르포작가와 신부, 두 분이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그 의의를 살피고 변화된 오늘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안 의사의 높은 기개와 결단력이 페이지 페이지마다 잘 묘사되고 있었다.

또한, 안의사와 함께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동지들의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웅들로만 기억되는 역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와 행동이 얽히고설켜서 형성되는 역사.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확인하며 오늘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묵묵히 역사적 소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의사 안중근으로 알고 있는 인간 안중근의 변화에 저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말타기와 사냥을 즐겼던 안중근의 변화는 어디에서 온 걸까? 천주교 입교는 안중근을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바꿔놓았다.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 그의 가두선교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안중근의 두 번째 변화는 한반도 외교권을 박탈한 일본의 을사늑약이다. 북간도와 상하이를 다녀온 안중근은 연해주로 망명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그는 시종 한반도의 독립과 아시아 평화를 주창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다. 한반도에 초대 통감부로 부임한 이토를 제거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머리말 중에서

 

190711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후 연해주 의병부대에서 안중근은 우군영장에 선임된다. 우군영장은 의병부대에서 참모중장을 의미했다.

몇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에 그친 국내 침공작전.

연해주 의병부대 활동도 공황상태에 빠져들어 돌파구를 모색하던 안중근.

이 책은 크라스키노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단지동맹 기념비가 세워진 곳이다.

19092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동지 김기룡, 백남규, 황길병, 조순응, 강기순, 강계찬,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19091019, 크라스키노를 떠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접한다.

이에 바로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한다.

19091021일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행 우편열차에 몸을 실었다. 쑤이펀허에서 러시아어를 통역할 유동하가 합류했다.

 

안중근이 세 자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3년 전(1907)이었다. 장녀 현생은 여섯 살, 장남 분도는 세 살, 차남 준생은 아장아장 돌이 막 지난 때였다. -p137

 

19091022일 저녁 915. 안중근 일행은 최종 목적지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러시아에서 넘어온 조도선까지 이제 네 명.

 

25일 밤 11시 창춘역에서 출발하는 이토를 창춘에서 처단할 계획을 세웠지만, 경비 문제로 결행하지 못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동선을 확인한 안중근은 차이자거우역으로 우덕순, 조도선과 이동하였다.

하얼빈에 남은 유동하의 전보를 통해 전달받은 정보에서 불길한 예감을 받은 안중근은 차이자거우역에서 이토를 저격하려는 계획을 수정한다.

이토가 탄 열차는 아침 6시 차이자거우에, 하얼빈역에는 9시경 도착 예정.

우덕순과 조도선이 차이자거우역에 남아서 1차 작전을 펴고 자신은 하얼빈역에서 2차 작전을 실행하는 계획을 세우고 홀로 하얼빈역으로 이동했다.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난 후 차이자거우역은 경비 태세가 대폭 강화되었다.

러시아 군인들이 역사 주변을 에워싸고 검문검색이 강화되었다.

6시 이토가 탄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 우덕순과 조도선은 역사에 진입도 못 하고 1차 작전은 실행도 해보지 못하게 됐다.

 

운명의 날. 아침 7시 새 양복으로 갈아입은 안중근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은 아침 기도를 하고 하얼빈역으로 향한다.

일본 거류민단 틈에 끼어 대합실 찻집으로 들어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했다.

19091026일 오전 930, 벨기에산 브라우닝 권총 그리고 여섯 발의 총성, 코레야 우라.

 

안중근의 사격술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세 발은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배에, 나머지 세 발은 남만주철도 총재 나카무라 제코와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고, 이토의 수행비서관 모리 야스지로를 쓰러뜨렸다.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임무를 마친 안중근은 손에 쥔 권총을 승강장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코레야 우라를 외쳤다.

여섯 발의 총성과 세 번의 함성이 울려 퍼진 거사 현상을 찾았다. 하얼빈역 1번 플랫폼에 두 개의 보도블럭이 설치되어 있었다. 삼각형은 안중근이 총을 겨눈 자리, 사각형은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자리다. -p174

 

19091030.

자신의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온 안중근은 일본 검찰관 미조부치 앞에서 마침내 포문을 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15개 항의 죄목이었다.

1 한국의 왕비를 살해한 죄

2 190511월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든 죄

3 1907년 정미 7조약을 강제로 맺게 한 죄

4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

5 한국 군대를 해산시킨 죄

6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7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8 한국의 교과서를 불태운 죄

9 한국인에게 신문 구독을 금지한 죄

10 제일은행권을 강제로 발행한 죄

11 국채 2300만 원의 빚을 지게 한 죄

12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3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14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 죄

15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사형 집행관이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동양평화를 위한 만세삼창과 기도를 올리고 싶다.”

사형 집행을 알리는 백포가 머리에 씌워지자 안중근은 묵도와 함께 기도를 올렸다. 감옥의監獄醫가 안중근의 절명을 보고한 시간은 1910326일 오전 1015분이었다. -p246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된 후 마차에 실려 북문으로 빠져나간 안중근의 유해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j********4 2019.11.0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중근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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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본 순가 정말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느끼면서 걸을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책을 펼치는 첫장 대부분 머리말이 나오는 반명 안중근의사의 발자취에 맞춰서 지도가 나오는것을 보고책 읽는 동안 다른나라로 옮길때마다 여기 위치해 있구나 이해할수 있게 계속 위치를 확인 할수 있어서 좋았다.안중근의사가 나와 같은 천주교 신교라는 부분도 이 책을 통해서 알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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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를 본 순가 정말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느끼면서 걸을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을 펼치는 첫장 대부분 머리말이 나오는 반명 안중근의사의 발자취에 맞춰서 지도가 나오는것을 보고

책 읽는 동안 다른나라로 옮길때마다 여기 위치해 있구나 이해할수 있게 계속 위치를 확인 할수 있어서 좋았다.

안중근의사가 나와 같은 천주교 신교라는 부분도 이 책을 통해서 알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요즘 같이펀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준상씨와 테프콘씨가 같이 상해에가서 윤봉길의사의 발자취를 찾아보지만

없어진곳이 대부분인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 책도 사진을 통해서 곳곳을 보여주고 있다. 윤봉길의사의 발자취를

찾을때처럼 안중근의사님의 발자취가 없어지지 않도록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안중근의사 주위에 이름 알려지지 않은 여러분들의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이 책을 통해서 보다더 많은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관심이 많았던 안중근 의사님의 발자취에 맞춰서 한발 한발 나아간것이 너무 좋았다.

나보다 어리셨던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하며 한자 한자 읽어 나갔다.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없을지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입장에 되면 어떻게 할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였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더 크면 꼭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l*****4 2019.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안중근과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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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많은 분들의 이름이 나열하게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 나오는 분은 안중근일 것이다. 그의 의의로운 행동은 우리나라의 역사속에 깊이 있게 자리하는 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새로이 바라 볼 수 있도록 한것은 그가 걸었던 그 시간을 조금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그 시대를 전부 이해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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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를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많은 분들의 이름이 나열하게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이 나오는 분은 안중근일 것이다. 그의 의의로운 행동은 우리나라의 역사속에 깊이 있게 자리하는 분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새로이 바라 볼 수 있도록 한것은 그가 걸었던 그 시간을 조금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같다. 그 시대를 전부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살았던 그 장소 시간을 간접적으로 느끼면서 생각 할 수 있게 하면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을 안중근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도 역사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받는 것이다. 크라스키노에서 상하이까지 길고 먼 길이지만 그가 느껴을 그 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보게도 하면서 그를 느끼게 하는 것 같다. 단지 동맹 기념비, 손바닥 도장 고려인의 한이 서린 라즈돌리노예 기차역 등 그가 걸어갔을 그 길에 다양한 장소들이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그 시대의 시간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는 이러한 장소들이 새로이 다가온다. 지도로써 그 길을 바라보면 정말 광대해 보이는데 이렇게 다양한 장소의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생각을 이해 하면서 또 다른 역사의 시간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안중근이 느꼈을 힘든 시간을 우리나라의그 시대의 의미를 말이다. 지금과는 다른 장소의 시간을 안중근의 시간을 통해서 새로이 생각하게 한다.

g****2 2019.10.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