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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 리뷰] 비평의 오쿨루스, 김정남, 경진출판, 201910, #964
"[2022-22 리뷰] 비평의 오쿨루스, 김정남, 경진출판, 201910, #964" 내용보기
우와, 기어코 읽었다.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에도 없다. '비평'을 생각하며 구매했던 건 기억 난다. 다른 비평 도서들을 구매하며 함께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문학' 비평에 관한 책이다. 시와 문화를 주되게 비평하고 있는 에세이이다. 요즘 그 '화려한' 어휘들의 비평들과는 아주 쪼오오금은 다른 비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의 평
"[2022-22 리뷰] 비평의 오쿨루스, 김정남, 경진출판, 201910, #964" 내용보기

우와, 기어코 읽었다.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에도 없다. '비평'을 생각하며 구매했던 건 기억 난다. 다른 비평 도서들을 구매하며 함께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나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문학' 비평에 관한 책이다. 시와 문화를 주되게 비평하고 있는 에세이이다. 요즘 그 '화려한' 어휘들의 비평들과는 아주 쪼오오금은 다른 비평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요즘의 평론가들은 정말이지 화려하다. 보기도 전에 미리 겁을 집어먹을 만큼!

 

<비평의 오쿨루수>란 제목에 '오쿨루스'란 무엇인가? 저자의 말을 빌리면, "오쿨루스란, 라틴어로 눈(Eye), 시력, 관찰력이란 뜻과 함께 심안(心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로마 판테온의 돔 정상부에 잇는 원형의 개구부로 우주를 뜻하는 돔과 함께 태양을 상징한다. 창문이 없는 판테온은 오로지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내부를 밝힌다. 모든 예술은 벌러리라는 노드롭 프라이의 오래된 명언을 떠올린다. 비평은 작품의 입이 되어 무명의 어둠을 밝혀주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쿨루스와 같은 심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작품 속 캄캄한 우주를 밝히는 한 줄기 빛은 비평의 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평론집의 제목을 <비평의 오쿨루스>라 명명한 것이다." 저자의 설명으로 제목과 의미 비평의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현재의 문단에 대한 저자의 걱정에 대해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일이며, 현재 많은 문학작가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의 걱정이 함께 깃들여 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볼 수 있다. 초반부는 시에 대한 이야기와 비평을, 중반부는 문학자인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비평을, 후반부는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비평을 실고 있다. 문단의 현실과 비판과 비평이 저자의 눈과 귀와 감정에 삭여 나오는 이야기들이었다. 다시,  "시의 본질적인 물음에 답하고자 노력한 '시안을 벼리는 눈', 전통적인 시인론과 작품론의 '서정을 읽는 눈', 문학판에 대한 일갈을 담은 '문학장을 읽는 눈', 당대의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담은 '문화를 읽는 눈'을 덧대어 기존의 문학평론의 시각을 확"장시켜 보고자 하고 있다. 저자의 수고를 통하여 독자의 사고와 견문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겸손히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필자의 비평의식을 당신의 마음의 현을 살짝이라도 건드릴 수 있다면, 이 부질 없는 일에 조금의 위안이 될 수 있겠다"라며 바램을 밝히고도 있다. '오쿨루스'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싶은 것이고, 독자로서의 오쿨루스를 잘 완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평을 담은 비평집은 다양한 의미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결국은 책을 읽는 독자의 변화를 꿈꾸는 것이다. 책을 쓴 저자의 바램도 중요하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바램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안에서 독자가 찾아야 할 것들,을 잘 발견할 수 있도록 비평가는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평의 오쿨루스>는 그 역할을 나름 잘 감당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눈과 귀와 가슴을 열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비평의, 비평가의 역할이며 의무이다. 독자는 시를 바라보는 눈을 뜨고, 문학에 대한 욕구를 깨닫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동행이 될 것이다. 

 

요즘은 읽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이, 읽지 않는, 읽히지 않는 문학을 만드는 문학가들이 넘쳐 난다. 시대적인 요구가 변하기도 하였지만 맞물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단단히 채워진 것 같다. 아직도 종이 책을 찾는 과거의 시들과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변해간다. 비평을 통해 좀더 건강한 문학을, 시를 좀더 문학다운 문학을, 시다운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출판계를 죽이게 될 것이라 예견했었지만, 여전히 어떻게든 출판계는 돌아기고 문화는 향성되어 간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개발하려 애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엔 작가라는 사람들이 붙어 있다. 저자의 말처럼 쓰레기는 아니기를 바라게된다. 요즘은 인공지능인 AI가 지어내는 예술이라는 것들도, 문학이라는 것들도 있고, 현재 판매도 되고 있다. 그들을 평하기를 '그럭저럭' 이라는 내지 '이상' 이라는 인간적 표현을 쓰고 있다. 그보다도 못한 인간 작가들이 넘쳐나기에 이 말은 예술계를, 예술계를 지망하는 사람들 내면에 불안을 조장할수도 있다. 인간에 의한, 인류를 위한, 인류의 정신세계를 위한 문학의 역할이 멈춰질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다. 인류의 시작부터 예술은 함께 했었고, 미래는 미래를 그리는 어느 소설 속에 초 극 소수만이 담당하는 분야가 아닌, 어떤 형태로든 인류와 함께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비평은 앞으로도 그러한 것들을 식별하고 구별할 수 있는 오쿨루스-눈이 되어 줄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달의 사락 c*********e 2022.03.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