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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박한 파국> 읽기를 마치고, 나는 무엇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 지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부터 쓴 글들은 나의 오독의 절정을 보여주는 결과물이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도 모를 그런 오독.
책을 읽으면서 찾아왔던 생각들로 빼곡하게 채워넣은 여러 문장의 글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정확한 개념을 옮겨놓고 싶다는 오기가 생긴다. 아주 넓은 터널 입구를 활개치며 돌아다니지 못하는 편협함과 부족함이 스며든다. 공부가 필요하다.
2. 우리는 이야기한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그런데 사실 이건 웃기는 소리다. 그러므로 지젝의 의견은 옳다. 특히, 우리나라의 실정은 이데올로기의 끝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가 나뉜 휴전상태다.
승자의 위치에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정치적인 이름으로 우파 보수는 자신들에게 위치가 찾아올 때마다, 패자의 역습을 경고한다. 이런 경고를 학습해온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우파, 좌파, 중도에 상관없이 승자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이 스며들어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의 자극이라는 약발이 기가 막히게 잘 먹힌다.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더 이상 없다. 이 말 자체도 이데올로기적인 말이다.
3. <임박한 파국> 중에서 지젝이 말하고 있는 ‘함축적인 거짓말’이라는 요소. 즉, 일반 대중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아프리카 빈민을 돕는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나, 분리수거를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는 오류들을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잘 활용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선거 하루 전날. 도올 김용옥 선생은 인터넷 공간에 <혁세견문>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민생은 스스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했었다. 정치는 민생을 해결하지 못한다.” 즉, 대통령 한 사람의 능력으로 절대 민생을 살리지 못한다. 진실은 국민이 스스로 민생을 살린다.는 뜻의 문장이 있었다. 이것은 참말로 여겨진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은 국민에게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민생을 살리겠다는 메시지에 호응하여 과반수의 사람들이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쩌면 투표한 이들이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는 순간 내 손으로 민생을 살렸다는 ‘함축적인 거짓말’이 발현되었을 것이다.
4. 인간은 절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의 체제 유지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평등의 간극은 점차 벌어지고, 질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박한 파국>이다.
5. 이 세상은 희망과 절망이 궤를 함께하여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세상은 무조건적인 비판과 체제 부수기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이라면 비판적인 관점으로 현실을 조망하고,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 허상과도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가장 중요한 현실에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정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실용정신다운 실용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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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위험한 철학자라면 우리에게도 위험한 철학이 필요하다 1부 <임박한 파국, 어떻게 맞설 것인가> - 홍세화와의 인터뷰 - 홍세화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질문에 지젝은 말한다. 유럽은 집단적인꿈을 꾸고 있는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허황된 꿈을 꾼다고 말한다. 모든 나라들은 미국의 대외 무역적자에 기반한 경제구조를 가졌으며 자국이 수출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외국으로부터 수입을 한다. 그것도 수입 물품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돈이 매일 10억달러에 이른다고 미국의 경제학자는 말한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한 공식으로는 달러가 기축통화로군림해야 하고 월스트리트 등등의 역할에 의지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지난 30~40년 동안의 전 지구적 시스템인 것이다.
미국은 끔찍한 중세시대의 신같은 존재이고, 우리들은 이 신을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 희생해야 한다는 지젝. 또한 그는 1970년 부터 현재까지 약 40년 동안 미국은 인위적으로세계 교역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위험한 철학자 지젝의 말에 귀를 모아야 하는 이유들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기 보다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미국을 향한 도그마의 정서들을 국가적으로 주입시켜 왔고 멈출 줄을 모른다. (앤드루 바세비치의 '워싱턴 룰'을 참고하면 미국이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를 꿰뚫을 수 있다.) 정부의 몰염치함은 현재 그 수위를 넘고 있지 않던가. 시스템의 오류는 아주 작은 한 부분에서 시작되어 계속 오작동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성'이란 기존 체제를 변혁하려는 이들을 가리켜 왔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또는 '좌파'라는 이름으로 과거 시대의 프레임을 들이댄다. 언제 이 언어프레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그 유효기간은 다 했다고 본다. 폐기 처분할 수 없다면 스스로 폐기될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해야 된다.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동력으로 지젝은 혁명을 위해 교육받은 학생들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만으로는 혁명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식인은 대학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야만성으로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공부를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 '개혁적'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서야 이른바 '민주정부하의 10년'을 경험하면서 이 기간 동안 신자유주의 질서로의 재편이 가속화 되었고, 이것을 '민주화의 역설'이라 홍세화는 말한다.홍세화는 IMF 구제 금융기와 함께 시작된 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질서로 빠르게 재편된 시기와 일치하는데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에 따른 하나의 필연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지젝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경향인 신자유주의는 어느 정도까지는 이데올로기라 본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과 부시가 실제로 한 일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는 정 번대의 일을 했는데 국가에 반대하면서 국가를 강화한 것이다. 레이건은 가장 원시적은 케인지언 방식으로 수출지향의 방어적 무역을 내세워 더욱 더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젝의 글에서 확인하곤 하는 현실 문제들은 끔찍하리만치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확신으로 다가왔다. 현재 한국의 경우에서도 속속 드러나듯이 수출 주도는 결국 국가는 성장하지만 국민은 더욱 더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일 따름이다. 신자유주의는 실천 가능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지젝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거다. 여기에서 더 비극적인 문제로 지젝은 좌파의 무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좌파의 위기이고 좌파가 주도해온 모든 비판적 운동이 소용이 없다며 자본주의를 신롸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결책이 없는 좌파는 추상적이고 도덕적인 것들에 그쳤다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 '좌파'가 있기는 하던가? 외부에의해 심어진 민주주의에 쓰이는 말들은 그 의미가 제대로 이식되진 못한 듯하다.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하게 경제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짚고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지젝의 말들에서 나는 한국에서 좌파의 의미가 시대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탐욕과 야만의 시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유럽의 현재와 한국의 현실이 처한 상황에서는 비슷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토대 위에 있음을 주시할 필요도 있다. 사회구성원들의 경제지상주의에 대한 강박을 벗어날 수 있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기를 앞당길수록 국가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다만 전반적으로 위기의 전환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총체적으로 일어나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한 개인으로서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기 위해, 책장을 넘기며 숨이 턱턱 막히고 만다. 병든 사회, 시들어진 민주주의, 미래의 불투명한 이 세계를 느끼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너무 무겁다. 이백쪽이 넘는 이 책을 다시 곱씹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 주변의 공기가 나를 짓누른다. 이런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낙천주의 덕분이라기 보다는 이 인터뷰에서 지젝이 남긴 한 마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희망이란 모든 가능성들에 열려있는 순간입니다. 한국은 공산주의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마음에 새겼기 때문에 희망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긴 이것들에서 내 나라는 그 어떤 치유의 노력도 바른 인식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미 사라진 이념에 매달려 현재를 잠식하고 가능성이 열린 공간에서 그 가능성을 막으려는 이념 놀이로 먹고사는데 탐욕적으로 매달린 과거의 망령들이 떠돌며 발길질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 좋은 말이다.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되는 사회, 역시 좋은 말이다.
시트템과 상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본질을 들여다 보면 너와 나의 자리가 보이면서 그 시스템이 가리키는 부위가 얼마나 부분에 집중되었는 가를 나와 다른 삶의 시간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생존하기 위한 피곤함으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당장 이루어질 수 없기에 나만 왜, 그래야 하지? 그럴싸한 자아ego의 미학이 필요한 것일 게다. 후일을 기약하며 체제에 몸 담고 살아온 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지.
[출처]경희대, 슬라보예 지젝 강연 /뉴시스
2부 <지금, 여기, 무엇을 할 것인가>
"산타클로스를 믿으세요?" "내가 바보냐?"
지젝은 그럼에도 어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머리맡에 놓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신념들이 사회적인 연결고리로 작동하지만 실제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람들이 믿어야 하는 이 대상이 상상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일인칭으로는 믿지 않지만, 우리의 신념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투영했을 때는 믿게 되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신념은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책에서 말한다.
지젝은 해결책보다는 문제의 발견을 말하는데 지식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도록 해야 하고, 따라서 대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의 큰 위기를 모면하고, 시스템에 많은 도전을 가함을써 자유로운 사고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이미 제 역할을 상실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존재가 바로 대학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지금, 대학의 도서관에서 열나게 수험서를 들여다 보고 있는 광경들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부와 5부는 청중들과의 대화로 이루어 졌다.)
4부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선을 위한 소명>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에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민주주의 행위가 점점 공허해지고 집권 세력을 합법적으로 인준해 주는 의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임을 말한다. 선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실상은 아무 것도 없다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결정적인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는 점이라 말한다. 지젝은 우리에게 중요한 결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 놓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생기는 역설을 말하는데 희망과 염세주의는 같이 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염세주의는 우리가 지금 위험한 시기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며,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첵을 읽으며 지젝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치 대한민국을 향해 준비되었던 것은 아닌가 싶을만큼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염세주의적 상황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개입의 기회를 쥘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위험은 곧 더 나은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을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근혜정부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총괄적으로 심하게 뒤틀리고 있는 정국에 슬그머니 올라오는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염세주의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안간힘을 쓰던 중에 참으로 반가웠다. 지난 9얼에 방문한 철학자 알랭 바디우와 맥을 같이 하는 지젝의 특별한 강의는 파국으로 가는 대한민국을 위로하고 있는 셈이다.
자, 이제 우리는 어느 곳에 시선을 향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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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번역한 책은 아니다. 올해 6월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갔을 때 지젝의 강연과 대담 등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지젝에 대한 입문서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추천을 받고 읽었다. 지젝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왠지 그의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잘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을 떠올렸다. 지젝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고, ‘환경의 위기’, ‘지적재산권 문제’, ‘생명공학의 문제’ 등을 여러 번 지적할 때마다 계속 김종철 선생이 생각났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접하거나, 직접 강연을 통해 들은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도 대개는 비슷한 내용이었다. 일찍부터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진단에는 환경의 위기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문제가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지젝과 김종철 선생의 생각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바로는 매우 비슷한 면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지젝은 주로 일상생활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면들은 김종철 선생도 종종 지적했던 부분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이 우리에게 작동하는 지점들을 짚어주곤 했다. 지젝이 ‘스타벅스’를 강조했다면, 김종철 선생은 ‘학교 교육’을 강조하곤 했다. 지젝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은 주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설명했지만 그 중에서도 ‘믿지 않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간다. 예로 든 것이 ‘건물에 13층이 없는 것’이나 ‘산타클로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4층이 없거나, 13층이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산타클로스에 대한 부분은 나도 평소에 참 우습다고 여겼던 점이라 특히 공감이 간다. 빨간 옷을 입고, 길고 흰 수염을 붙인 가짜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설정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산타라는 거짓 이미지를 강요할까? 동심을 지켜야한다는 말로 그런 우스운 연출을 정당화하는 현실이 한편의 거대한 코미디 같다. 어차피 아이들은 곧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맞춰 아이도 속아주는 것처럼 연극을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이다. 이해할 수도 없고 믿는 것도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또 행동하는 많은 일들이 바로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설명한 철학적 명제이다.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나열해보자. 하나, 우리가 (무언가를)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둘, 우리가 모르지만, 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셋, 우리가 모르고, 그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마지막이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지젝은 여기서 럼즈펠드가 누락시킨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바로 네 번째 명제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을 추천해준 이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지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앞으로 지젝의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그의 세계를 탐험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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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 서재의 대문을 통해 지젝이라는 사람의 이름정도는 알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이길래, 누군가의 대문을 차지하는걸까? 궁금하긴했지만, 왠지 나에게는 먼 사람 같은 생각에 가까이하지 못했죠. 그리고 가까이 하는 방법을 몰라 그냥 얼굴과 이름정도만 아는것에서 그쳤답니다.
그러던차에 지젝이 한국에 방문하고 일정 동안 가졌던 강연과 인터뷰를 담은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이지도 부담스럽지 않고, 면담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지첵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입문서라는 평에 솔깃했던것 같아요. 그리고 그 평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딱딱하지 않은 형식과 내용으로 약간은 부담없이 읽을수있었던것 같아요.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리뷰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답니다. 글의 잘써야겠다는 부담감보다는 그를 알게 되었다는 만족감이 더 커서인것 같아요. ^^;;
슬라보예 지젝은 좌파 철학자였네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좌파'에 자유로울수가 없는것 같아요. 그래서 그를 보고 위험한 철학자라고 말하지만 지젝이 말하는 '좌파'는 단순합니다. 답을 주는것이 아니라 질문하는것. 해결책보다 문제의 발견이 우선시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좌파는 질문하지 않고 비판만 한다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좌파보다는 차라리 해결책은 내놓지는 못해도 난국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렇기에 '이것이 문제다'라고 인정하는 진정한 보수가 질문하지 않는 좌파보다 낫다고 꼬집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왜 그가 '스타벅스 철학자'라고 불리는지 궁금했어요. 그의 철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자 스타벅스처럼 대중문화에 소비되는 철학이라고 일부에서는 비판했지만, 지젝은 그 비평을 자신의 특유의 유머로 쿨하게 받아들이네요.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죄책감을 2센트로 덜어내려는 우리의 얄팍한 심리와 기업을 상술은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을 지첵으로 인해 덜어내려한다고 말합니다. 어제 스타벅스 1+1쿠폰 사라진다고 아까워 평소라면 안마셨을텐데 구입해서 끝까지 마셔준 저로써는 살짝 찔립니다. ㅠ.ㅠ 판매금의 약 240원(2센트)가 아닌 커피 한잔 4400원을 직접 기부하는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텐데 말이지요.
처음엔 너무 어렵지 않을까? 너무 과격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평소 편하게 접하기 힘든 생각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고, 지젝을 처음 접한 저로써는 이 책을 만나 다행스러웠답니다. 혹시 저처럼 지젝에 관해 궁금하신분들이 있다면, 가벼운(?) 마음에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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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솔직히 이 책을 읽어보기 전까지 난 지젝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니 지젝과 나의 연결고리가 하나라도 나와 그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언젠가 랜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점령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의 내용은 월 스트리트의 시위 현장을 여러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적은 것이었다.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월 스트리트에서 꽤 오랫동안 시위를 벌인 모양인데 그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전혀 몰랐었다. 지젝은 그 현장에서 강연을 했던 모양이다. 그렇담 사화주의자? 공산주의자? 좌파? 난 우파도 좌파도 아니지만, 사실 딱히 관심도 없지만 굳이 편을 가르자면 좌파에 기우는 쪽이다. 그렇다고 좌파를 옹호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좌파에 대해 편견이 없다는정도?!
슬라보예 지젝은 꽤 유명한 철학자인 듯 하다. 아, 나의 무식을 폭로하고 말았다. ㅠ.ㅠ
책은 경희대학교와 건국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청중과의 대화내용, 전 국회의원이었던 홍세화씨와의 인터뷰, 임민욱씨와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지젝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듯 했다. 이 책이 지젝의 주장들을 펼친 책이었다면 무식한 내가 읽기에 무지 딱딱해서 전체를 다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학생들과의 질의 응답식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내가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조금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자선 활동이나 유기농 식품에 대한 호감이 어떻게 보면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 서방 세계에서는 유기농 식품이 인기가 많은데 그가 제시한 이유가 어느 면에서는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과보다도 볼품이 없는데도 유기농이라는 이유로 더 비싼 돈을 주고 그 사과를 구입한다. 그리곤 생각한다. 난 유기농 사과를 구입했으니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어.라고 자선활동도 마찬가지. 아프리카 아동과 결연을 맺어 약간의 돈만 기부하고 일 년 후에 그 아이들에게서 감사편지를 받으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젝의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보진 못했지만 책을 통해 왜 그가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사람들의 얼어버린 심장을 망치를 들어 깨부수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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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처럼 슬라보예 지젝이 서울을 방문한 후 가졌던 인터뷰와 강의와 대화 등을 엮은 책이다. 지젝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십 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실제 글로 만난 것은 최근이다. 하지만 진짜 지젝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지젝이라고 했지만 그의 책이 아니라 인터뷰 등을 통해서 만났다. 잘 된 인터뷰의 경우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홍세화의 인터뷰가 그렇다. 이 인터뷰를 통해 그리스 사태와 이집트 민주화의 실상을 좀더 알게 되었고, 이것을 통해 그의 철학 한 자락을 배웠다.
그리스 선거에 내가 주목한 것은 유럽 경제 위기의 한 축이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 사태는 우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왜곡된 채로 이용되었다. 본질보다는 피상적인 것에 더 집중하면서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이런 호도에 대해 그가 바로잡아준 몇 가지 사실은 놀랍다. 한국의 진보정당 정도의 지지율을 가진 시리자가 정권을 잡을 뻔했다는 것과 시리자의 정책 등을 어떤 왜곡으로 변질시켰는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실험장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제 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을 접어들었다고 할 때 고민이 시작된다.
이슬람 형제단이 집권한 이집트로 가면 우리의 87년 민주화와 08년 촛불집회를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수백만이 광장에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그것이 핵심이죠. 이 지점에서 좌파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43쪽) 이 문장은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좌파에 실용주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직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이 땅의 진보가 과연 이런 비전을 보여줬는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상술과 양심의 허접한 결합을 말할 때 순간 뜨끔했다. 없는 것보다 나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은 그들에게 마케팅의 수단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예를 들었는데 사실 커피 한 잔 사먹는 돈을 직접 보낸다면 나 한 사람이 스타벅스 구매자 백 명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은 현재 새누리당이 종북을 외치면서 이데올로기 논쟁을 그만두자고 하는 현실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될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우리 경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깊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했을 때 그가 겪은 참혹했던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한 단면은 자유와 파시즘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파시즘이 규율의 억압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잘못된 자유의 측면이 있다는 사실”(111쪽)을 직시하면서 놀라운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에 대한 지젝의 평가는 지금 김지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일정부분 동의하게 되었다. 아니 그가 보여준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고 변명할 수 있지만.
‘존재하는 모든 폭력을 보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이미 민족주의 혹은 이기주의에 휩싸여 있음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국민 사이에 일어난 대학살에는 관심이 없다가 그 나라의 백인 지주 등이 죽었을 때 흥분하고 여론이 들끓어 오르는 현실을 지적할 때 더욱 분명하다. 사람의 목숨이 모두 똑같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가치로 나누는 현실을 말할 때 폭력은 왜곡된 채로 남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런 유럽과 반대현상이 보이는데 그것은 대기업의 이익을 반영할 때다. 이것은 그가 ‘간디가 히틀러보다 더 폭력적이었다’(153쪽)고 말한 것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선택이 아닌 단순한 기호다. 문제 자체가 다르다. 역설적이란 말처럼 선택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은 진짜 선택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지젝이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든 것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여론 조사 과정에 선택을 가장한 여론 조작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 책을 모두 읽은 지금, 단 한 권의 지젝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렵다는 그의 철학책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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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슬라보예 지젝이 한국에 온댄다! 라는 이야기가 뜬소문처럼 퍼지고 있을 때 솔직히 나는 그게 나랑 뭔 상관이람? 하면서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방한은 유명 스타의 방한보다 더 한 인기몰이를 하며 인터넷을 달궜고 나는 뉴스 언저리에서도 그 소식을 봤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