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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문에 실린 서평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가, 두 가지 때문에 결국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조지 클루니의 네스프레소 광고이고, 다른 하나는 썬크림이죠. 조지 클루니가 등장하는 네스프레소 광고는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로맨스 그레이의 대명사라고 할만한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네스프레소 커피의 풍부한 커피 향(이라고 광고에서는 그러네요...^^;) 앞에서는 번번이 빛을 잃고 마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코믹하게 잘 그려져 있거든요. 가장 최근의 광고에서는 갑옷을 입은 멋진 기사가 되지만, 여전히 네스프레소 커피보다 저평가되어 여왕을 비롯한 커피 농부, 농학자, 바리스타(광고에서는 ‘최상급 바리스타’라는 의미인지 ‘커피 앰버서더(ambassador)’라고 표현했더군요.) 같은 이들에게 타박을 받습니다.
그런데, 광고는 재미있지만, 솔직히 커피에 관한 소양이 별로 없는 저는 네스프레소 커피에 그렇게 끌리는 편은 아닙니다. 광고에서부터 이미 가식이 느껴져서요. 네스프레소를 마심으로써 커피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든가 그들과 함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식의 뉘앙스는 제가 보기에 위선입니다. 우선 어마어마한 광고 모델료를 챙겼을 조지 클루니와 비교했을 때, 제가 아무리 네스프레소를 마셔대어도 커피 농부가 자부심을 가지는데 보탬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네스프레소 덕에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쪽은 어디까지나 조지 클루니와 네슬레 사(社)겠죠. 커피 농부들의 재정 상황이 어떤지 이미 이런저런 르포를 통해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들을 외면하고 그냥 커피 향과 맛과 분위기로만 승부하는 우리나라 커피회사들의 광고가 차라리 솔직해 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커피 농부들에게 커피 1㎏당 고작 2달러를 지불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엄청난 알루미늄 캡슐 쓰레기를 배출하게 하는 네스프레소 외에도,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폭발로 인해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를 유출하고도 뒷처리는 눈가림식으로 했던 영국 석유회사 BP, 극히 미미한 양의 해양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청바지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해양 생태계 보호의 선도자인 척 위선을 떨어대는 패션 회사, 나무를 함부로 자르고 숲을 불태워 종려나무 농장을 확장하고 있는 팜유 생산 대기업들, 노동 착취의 온상인 섬유산업, 육류 대량 생산을 위해 토지를 약탈하는 축산업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대기업들이 외치는 ‘친환경’이 얼마나 허울좋은 거짓말인지,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존’이 오늘날 어떻게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면죄부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되어버렸는지를 다양한 자료와 함께 전투적으로 신랄하게 성토하고 있죠. ...“나의 바다를 위해 너는 무엇을 하고 있어?” 이는 G스타의 컬렉션 ‘바다를 위한 원자재’에서 생산한 바다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이 문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즉 너는 파괴자이고, 나는 구원자다! 바다 패션의 아름다운 스토리는 그걸 입은 사람들을 고상하게 만들어준다. 요컨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제품 가운데 진짜를 구분하고 자신을 고상하게 만들 줄 아는, 이른바 작은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용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매자는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스스로 바다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인 것처럼 연출하는 반면,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함으로써 바다를 오염시켜도 되는 권리를 구매한 셈이다... (p.84)
...‘우리는 환경을 언급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복지를 이루고, 세계를 구하겠다는 약속 따위의 녹색 거짓말을 힘을 합쳐 물리쳐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이와 같은 녹색 거짓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거짓말을 유포하는 것은 ’사악한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녹색 거짓말은 시스템이다. 녹색 거짓말은 파괴적인 기업을 선한 기업으로 둔갑시키는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기업은 어떤 인식을 얻고 윤리적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양심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p.225)
각종 친환경 인증, 혹은 에코 마크를 부착하기만 하면 으레 가격이 2~5배까지 뛰는 현상(가끔은 그러고도 잔류 농약 함량이 일반 농산물이나 달걀과 별 차이가 없더라는 폭로가 나와 뒷목을 잡게 했던...)을 익히 보면서 의구심을 보냈던 저로서는 통쾌한 폭로여야만 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막막해졌습니다. 딥워터 호라이즌 호의 석유 유출로 인해 지역 수산업이 타격을 받고 주민들이 병들고 가난해졌음에도 정작 그곳의 유권자들은 석유 산업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으니 ‘소비자로서의 우리는 모두 공범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린피스를 후원하고 환경보호주의자를 자처하는 동시에 연비 낮은 스포츠카/중형급 이상의 자동차를 여러 대 보유하는 것은 모순적인 언행불일치일 테지만, 그런 류의 아이러니는 도처에 널렸습니다.
책에서는 ‘구세주 같은 해결책’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녹색 경제 성장’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구요.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마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고도 영원히 작동할 수 있는 영구에너지기관처럼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구세주 같은 해결책’이란 결국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개인의 재산과 특권만 보호할 뿐’인 아이디어라고 설명하면서, 특히 북반구 국가들의 번영이 남반구 국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북반구 거주인인 저 역시 딱히 반박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제가 마시는 커피 역시 (비록 네스프레소는 아니지만) 콜롬비아와 페루의 농부들이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넘긴 커피 원두로 생산되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친환경 마크를 달고 있는 제품을 소비하고, 공정 무역 커피를 마시고, 유기농 식품과 채식을 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며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칫하면 그것이 기업의 면죄부 마케팅에 불과할 수 있고, 뭔가 근원적인 해결책이랍시고 급격한 변화를 시도했다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과거로의 회귀'가 되는 것도 원치는 않는 터라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석유 회사와 정부를 상대로 법적 투쟁을 벌인 끝에 자신들의 숲에서 석유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게 지켜낸 키추아 족의 사례를 들어, 정당하고 공정한 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이상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모으고, 서로 배우고, 올바르게 인식하고, 소비를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이 책의 원제목은 ‘DIE GRUNE LUGE’, 영어로 바꾸면 ‘The Green Lie(녹색 거짓말)’ 정도 되겠네요. 간혹 오탈자가 보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한 ‘팜유’라는 단어 대신 ‘종려유’를 쓰는 등, 약간 덜 다듬어진 느낌은 있습니다. 그리고, 책 뒤 주석에서 정보를 얻고 싶어 펼쳐보면 우리나라에는 알려지지 않는 신문잡지의 제호나 보고서, 혹은 인터넷 주소를 소개한 경우가 많던데, 일일이 검색창에 넣지 않으면(심지어 넣더라도) 알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해야 했답니다. 그 많은 사건과 사례를 일일이 소개하고 책 안에 설명해두기에는 너무 방대했겠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는 점입니다.
덧붙임) 썬크림에 대한 사연은 다음에 포스팅해야겠습니다. 그것도 꽤 길어질 듯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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