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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판이지만 초판이 아니다. 혹시 지금으로부터 4년전 쯤에 [섬세] 라는 책을 구해본 분이 계시다면 그 책의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터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은 [섬세]의 증보판이다. 자연과학의 진화와 SNS로 대표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통해 한층 성숙된 작가의 철학적 고민과 사유가 인류의 미래를 향한 철학적 메시지로 오롯이 담긴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무엇보다도 우선 동서양철학과 역사에 대한 깊은 안목에 더해, 자연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의 변천에 대해 갖고 있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다독, 다상량의 흔적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든다. 나같은 경우는 책을 많이 읽기보다 한 권을 읽더라도 깊이 읽는 편이긴 하지만, 멋진 글귀나 표현을 보더라도 오래 기억하거나 굳이 기록을 해두지는 않는다. 그런 탓에 여기저기서 얻은 다양한 지식들을 자신만의 얼개 속으로 빨아들여 채로 거르고 고운 가루만 다시 솎아내는 작가분들의 탁월한 재창조 능력을 보면서 늘 감탄하곤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런 감탄의 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책 242쪽에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사회적으로 최약자인 이주노동자나 콜센터 직원들, 혹은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이나 국가로 분노의 화살을 향하게 한다는 표현 속에서 불현듯 내 자신의 행태 또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스스로로 되돌아보게 되었고, 283쪽 <친일인명사전> 대신 <친일행위사전> 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저자의 말 속에서 또 한번 내 자신의 정신수준 또한 천박한 '복수와 보복'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 전체적인 문장의 깊이나 흐름이 그 자체로 너무 섬세하여 나같이 거친 심성을 가진 사람이 서평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거나 자격미달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자면, 전체적으로 동서양의 철학 흐름이나, 자연과학적 진화론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이나 전문가들에게 꽤 어필하고 일정한 호평을 받을 만큼 "사색의 수준"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대중성"이라는 잣대를 통해서 비추어 보자면 책의 확산이 쉽지 않을 것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살짝 든다. 특히 불교의 기본원리나 노자-장자를 비롯한 중국 사상의 흐름은 여기저기 지면을 할애하여 적지 않은 사례들을 직접 인용해서 이해를 돕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마치 [명심보감]이나 [채근담] 같은 고전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라 할만 하다.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는 책의 부제가 보여주듯이 상당히 철학적인 사색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으려면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데, 묘하게도 일단 책을 한번 붙들면 쉽게 내려놓기는 어렵다. 정보기술(IT)의 진화를 인류의 진화나 철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섬세"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스마트 혁명이나 SNS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와 프레임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트위터의 집단지성이 모이는 작동 방식을 신경세포의 명령체계 작동원리에 비유한 대목이나, 조지오웰의 소설 내용을 통해 정보 문명의 발전이 인류를 위해 더 좋은 쪽으로 갈지 반대일지를 묻는 질문에서는 정보 혁명의 양면성을 제기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한두 가지 더 보강이 되었더라면 싶은 점은, 지금 전체적인 SNS의 대표주자가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으로 무게중심이 바뀐 상태이기 때문에,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를 설명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일반화의 함정으로 비칠 염려가 있다는 점이다. 트위터의 집단 의식(공감)의 확산 구조에 못지 않게, 페이스북 공간에서 하나의 포스트에 대해 다양한 추가 의견과 댓글이 상호 토론 방식으로 덧붙여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집단적 의식과 경험이 덧붙여지면서 확산되는 원리를 보강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또, 인류 진화의 방향에 대한 확신과 관련해, 원숭이도 진화하면 도덕과 양심을 가질 것이라는 논리에 확신을 갖는다면, 조지 오웰의 [1984] 에서 제기하는 부정적인 정보화의 미래상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틀렸다"고 주장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금, 북아프리카와 아랍에 걸쳐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감수하면서도, 아랍 민중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수십년에 걸친 왕정독재 타파를 부르짓는 혁명의 물결이 멈추지 않는 것은, 바로 인류 정치의 진화 방향, 즉 개인의 보다 큰 자유와 공동체의 더 많은 공유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흐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정보화 혁명의 미래가, 조지 오웰이 보았던 것처럼, 거대 권력의 전 국민에 대한 정보 독점과 감시라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거꾸로, 다수 국민(시민)에 의한 정보의 공유와 실시간 확산, 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국가권력이 시민들에게 견제받고 투명성을 요구받는 방향이 사회 진화의 기본축이 아닐까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런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자신의 현실에 대한 둔감함을 다시 한번 깨닫도록 하기에 충분할 만큼 섬세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차분히 그려주는 책이라는 점에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일독을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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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는 활짝 피고 싶다. 활짝 피어나고 싶다. 이 우주에 탄생한 모든 존재의 바람, 그것은 ‘활짝 피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우주의 작은 먼지, 꽃, 나비, 아기… . 나무의 새싹은 활짝 피워 꽃이 되고 또 빛이 된다. 그렇듯 모든 존재는 피어나고자 한다. (p. 355 에필로그)
섬세함을 향한 여정이었던 지난 몇 년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전 30여 년간 있었던 변화의 총량보다 그 후 몇 년간 일어난 변화가 더 크고 심층적이었기 때문이다. 민감함,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더 건강해졌고, 창의적이 되었고, 생산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p. 12 프롤로그)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은 2008년 <섬세>의 개정판이다. 개정판이 나왔다는 책은 왠지 시간을 들여 읽어보고 싶다는 믿음부터 간다. 이 책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은 시종일관 섬세하다.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는 위로를, 지친 사람에게는 용기를, 깨닫고 싶은 사람에게는 영감을, 그리고 세상의 다수를 차지할 그냥 머릿 속이 복잡한 사람에게는 고요한 생각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섬세(纖細)는 섬(纖)과 세(細)로 이루어졌다. 섬(纖)은 가늘다, 부드럽다, 가는 베, 고운 비단의 뜻을 가진 글자다. ... 세(細) 역시 ‘가늘다, 자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섬세(纖細)는 작고 가늚, 고운 비단처럼 날줄과 씨줄로 연결되어 있음, 비단처럼 부드러움, 결이 있음을 의미한다. (p. 13 프롤로그) 책을 펼쳐들기 전부터 '섬세'라는 그 단어 한 마디에 매료된 나는 이토록 섬세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흡족함에 몇 번이나 휘리릭 뒤적이며 엿보았는지 모르겠다.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되내며 다시 한 번 '철학 에세이'란 말에 은근한 감동을 받았다. '저자의 다채로운 이력 덕분에 이 책은 인문서와 자기계발, 경제경영서가 한데 만나는 지점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는 한겨레의 언론평을 읽고 열 번 쯤 공감했다. 인문서와 자기계발, 경제경영서에 덧붙여 명상서랄 수 까지 있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명상하는 고고한 수행자 그 언저리쯤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저자가 377페이지에 이르는 내내 말하고 싶은 단 한 문장 '우리는 섬세해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홀려 마치 저자의 고요한 내면의식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책을 넘기며 푸른 숲 속 나무와 하늘의 구름, 벌목공의 땀을 생각한다고 한다. 밥 한 숟가락에 담긴 대지의 포근함과 농부의 정성을 느낀다. 불교에서 깨달은 자는 연(緣)하여 일어나는 현상, 즉 연기(緣起)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p. 120)
수행의 핵심은 자아를 투명하게 해 진실을 보는 데 있고, 세계평화의 핵심은 국경을 넘어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인류의 길과 한 인간이 걷는 길이 다르지 않다. 중중무진(重重無盡), 한 송이 꽃에 핀 우주. (p. 373 각주 61)
태허(太虛) 무(無) 도(道) 의식(Consciousness) 정신(Spirit) 브라만(Brahman) 존재(Being) 전체자(the All, the One) (p. 133-134)
성장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무한경쟁으로 치닫던 지난 몇 십 년의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 인간 마저도 한없이 거칠어지고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점차 무심해져 갔다. 인간은 더 나은 존재를 향해 빛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을까? 아니면 신의 세계에서 쫓겨나 깊고 어두운 벼랑으로 추락하고 있는 걸까? 혹은 무한한 평행선을 그리며 춤추고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p. 290) 질문에 그 누구도 100% 확신하는 정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침체로 포화기에 놓인 현재 우리 인간 스스로는 깨어있는 소수의 몇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착한 마음, 섬세, 근원적인 것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를테면 착한 소비, 동물 보호, 환경 보호 같은 나 한 사람이 아닌 전인류에게 도움되는 것들이다. 착한 소비에는 다른 존재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밑바탕에 있다.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다른 인간에 대한 배려다. 동물들이 오직 고기를 생산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지금이 순간의 나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위해서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환경에 대한 배려로 이어진다. (p. 88-89)
이처럼 단기간에는 폭발적인 힘을 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망치는 마음의 에너지가 있다. ‘성급한 마음’ 혹은 ‘탐욕’ ‘집착’ ‘분노’ 이런 것들이다. … 반면 단기간에 큰 힘을 내지는 못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들이 있다. 마음에서는 여유, 배려, 사랑, 관용의 마음이고 물질에서는 파도, 태양, 바람과 같은 청정 에너지다. (p. 158)
책은 이처럼 보편적이고 어느 정도 추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와중에 우리처럼 하나라도 더 깨치고자 하는 독자들을 충족시켜 줄 구체적이고 훌륭한 예시도 해준다. 유명 한국 작가들을 비롯해 당대 내로라하는 세계 유수의 인물들의 섬세하면서도 어쩌면 민감하달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버무려 놓았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 김훈은 ‘꽃은 피었다’로 썼다가 고치고, 또 고치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은’과 ‘이’라는 작은 차이를 놓고 고민한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대해 만약 ‘저’가 빠져 ‘흙 속에 바람 속에’라고 했다면 80점짜리 글이 되어버릴 뻔했다고 말한다. 좋음과 위대함은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물은 100°C에서 끓는다. 99°C와는 오직 1°C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p. 113)
괴테, 톨스토이,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링컨, 처칠, 니체, 베토벤… . 이들은 모두 미국 정신질환자협회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려 만든 액자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 예술가들은 민감하다. 너무나 민감하기에 마음이 작은 것에도 흔들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 입기 쉽다. (p. 200-201)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P&G의 앨런 래플리 회장, 이 세 회장 모두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전략을 보면 선 수행자의 방 풍경이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인 디자인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단순함과 비움 그리고 연결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아이팟을 개발할 때 그가 디자이너에게 주문한 것은 단순함이었다. 시각적 단순함은 물론, 최종 목표까지 세 번의 버튼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 단순함이었다. 단순함과 비움, 그리고 연결은 하나의 곶감대에 꽂혀 있는 곶감이다. (p. 61-62)
나는 ‘결’이라는 말이 참 좋다. 숨결, 살결, 물결, 바람결, 나뭇결… . 결을 느낀다는 것은 맑고 청명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음이다. (p. 25) 길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바라보면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섬세해진다면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햇빛, 바람, 파도, 새 소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음을… .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결’을 느껴보라고. (p. 351)
자신이 지구에 머무는 동안 이 거친 세상이 섬세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그와 관련된 글들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삶의 궤적들, 정치, 철학과 수행, 경영의 점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세상과 공명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앞날개)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며 그가 의도한대로 거친 세상이 섬세하게 되는 데 조금씩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독자들이 함께 한다면 조금은 더 빨리 섬세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길고 어둔 밤이 지나고 이윽고 동쪽 산 위로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곧 맑고 밝은 햇살이온 천지를 환하게 비출 것이다. 한 인간 그리고 인류가 어쩌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 아침 해가 기다리고 있다. ‘밝은 아침 햇살(朝撤)’, 인류의 성숙한 마음이 사회를 환하게 비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철이 들 시간, 인류의 조철이 다가오고 있다. (p. 309)
흔들리지 않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없다. 하늘에서 땅을 향해 자를 대듯 떨어지는 눈은 없다. 흔들림 없는, 오차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세상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아가는 것이다. 현자란 불완전하고 더러운 세상, 그래도 그 속에 희망을 보는 사람이다. 성인(聖人)이란 그 희망을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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