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한 이후, 고향은 가끔 들르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서울을 떠나 첫 직장 생활을 강원도의 소도시에서 시작했고, 이제는 다시 전라도의 중소도시에 정착을 했다. 한때는 은퇴 이후에 정착할 곳으로도 고향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현재 직장이 있는 순천에서 지인들과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 계획이다. 고향과도 그리 멀지 않기에 간혹 들러서 친구들을 만나고, 종종 방문하여 옛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어릴 때 자랐던 집들도 다 사라지고, 지금 현재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은 이처럼 아득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지만, 그곳을 떠난 지 오래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현실’보다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고향인 제주도 서귀포로 돌아가, 제주 올레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인물이다. 한동안 올레길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여, 많은 이들이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도를 찾게 만든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서귀포에 정착하여, 고향을 가꾸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이 책은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이 고향 서귀포 산책길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제주도를 여행했던 경험이 적지 않기에,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소개하는 서귀포의 여러 장소들이 때로는 익숙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저자만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세세한 장소들에 대한 설명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아름다운 수채화가 곁들여진 책의 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읽을 거리’와 함께 ‘볼 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기도 하고, 현재 머무는 곳곳의 풍경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또한 가슴 아픈 현대사의 질곡을 들춰내어 다시 억울한 넋들을 위로하는 진혼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도 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 기념일로 정착된 ‘4.3사건’에 대한 의미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억울하게 수장된 ‘남영호’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던 내용이었다. 저자는 해가 바뀐 금년에 50주년이 되는 ‘남영호’의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진혼이 이뤄지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아마도 다시 제주도를 찾는다면, 이 책을 들고 저자가 안내하는 서귀포를 자세히 돌아보고 싶다. 고향을 생각하는 저자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쳐 지나는 곳이 아닌 의미를 찾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아름답게 펼쳐진 수채화와 평화로운 글이 잘 어울러지는 책입니다. 여유롭게 책 한 소절을 읽고, 책장을 넘기다 드넓은 제주의 절경을 감상하고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여행을 좋아하는 제 마음을 두근거리게도 합니다. 수년전에 마지막으로 가본 제주도가 문득 그리워져 한번가보고싶네요. 이 어수선한 시국이 지나가면 저도 제주에 한번 다녀와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