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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도 압도적인 인물이다.
- 해럴드 블룸
잘 아는 대로『리어 왕』은『햄릿』, 『오셀로』, 『맥베스』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예스24에서 ‘리어왕’을 검색하면 무려 72종의 책이 검색된다. 그만큼『리어 왕』이 국내에 많이 소개됐고 익히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셈이다.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세계문학전집’ 시장을 살펴보더라도 민음사, 열린책들, 펭귄클래식, 을유문화사에서 공히 이 작품을 출시했다. 그런데 또 굳이 하나의 번역본을 추가할 이유가 있을까? 왜 셰익스피어인가 왜 RSC인가? 이번에 시공사에서 나온『리어 왕』은 시공 RSC 셰익스피어 선집의 일환이다. RSC(Royal Shakespeare Company)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최고 권위의 정통 셰익스피어 극단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연기파 배우들, 예를 들면 제러미 아이언스, 케네스 브래너, 로렌스 올리비에 등이 RSC 출신으로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 하면 자연스럽게 RSC를 떠올릴 정도라고 한다. 이번에 시공사 번역『리어 왕』은 RSC에서 직접 편집한 RSC 셰익스피어 판본을 정식 계약해 우리말로 옮겼다는 점에서 기존 번역본과 차별성을 가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구태여 또 한 권의『리어 왕』을 국내에 소개한 것이 아니라 RSC와 정식 계약한 유일한 판본이다. 이 작품의 번역을 기존 번역서와 비교해보자. [제1막 1장]
리어 왕 (전략) 언니들 것보다 더욱 비옥한 셋째 영토를 받기 위하여 너는 무어라 말하겠느냐? 코델리아 아무 할 말도 없습니다. 리어 왕 아무 할 말이 없어? 코델리아 네,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리어 왕 할 말이 없으면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이니, 다시 말해 봐라. 코델리아 불행하게도 저는 제 망므을 발할 수 없습니다. 아버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저의 본분이옵니다. 그것뿐이옵니다. 리어 (전략) 언니들보다 비옥한 삼분의 일을 위해 [제5막 3장]
목차를 살펴보자.
368쪽이라는 분량을 보고 왜 그렇게 책이 두꺼워졌는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텐데, 텍스트 뿐 아니라 리어왕과 셰익스피어를 총망라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학술적으로 리어왕이나 셰익스피어를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나, 원문에 가장 근접한 셰익스피어를 감상하려는 독자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리어 왕』인가? 왜 셰익스피어 중에서도 RSC 판본 중에서도『리어 왕』인가라고 묻는다면 리뷰의 가장 앞 부분에서 인용한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인 해럴드 블룸의 말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말은 사족에 불과할 뿐이다.『리어 왕』은 소포클레스의『안티고네』와 더불어 서구 문학의 가장 위대한 성취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작품은 크게 리어왕과 딸들의 메인 스토리와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아들들의 서브 스토리로 이루어지는데, 앞에서 지적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특징—인간의 이중성과 배반, 질투, 증오, 욕망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려낸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리어 왕』이다. 『리어 왕』은 인물 간 혹은 인물 내부의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지혜와 어리석음, 운명과 자유의지 간의 갈등과 긴장 등을 통해 인간 본성과 내면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런데『리어 왕』이 500년간 계속 읽힐 수 있었던 것은 역으로 시공간에 따라 재해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럴드 블룸이『리어 왕』을 사랑한 것은 늙고 고독한 리어왕에 자기를 대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리어 왕이 아닌 코딜리아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본다면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블룸과는 분명 다른 시각에서 이 작품을 보게 될 것이다. (대선 이후 한국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세대 간 갈등이나 세대 간의 견해 차이일텐데 그런 측면에서 읽어도 재밌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찬가지로 코딜리아의 입장이 아닌 두 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작품에 대한 이해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세대라해서 반드시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순수성이나 불멸성을 추구하거나 옹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도 견해는 달라질 수 있다. 계급이나 인종, 젠더에 따라 충분히 다른 읽기와 해석이 가능하다. ‘고전’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가치와 더불어 어쩌면 이것이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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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도 많고,읽어달라 아우성 치는 책들도 많건만,읽은 책을 또 다시 꺼내 들었다.'리어 왕' 포스터를 보는 순간 예매를 하게 된 것이 이유다.비록 스크린을 통해 보는 거긴 하지만,믿고 보는 NT Live라서...
처음 <리어 왕>을 읽었을 때는 누가봐도 알 수 있는 '탐욕'만이 오롯이 보였을 뿐이다.그런데 우연히 어느 책을 통해 코딜리아에 대한 주역 해석이 흥미를 끌어-무망괘 라는 것이 있는데,요약하자면,진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나 지나치게 알아서 좁게 보거나 무례할 경우 재앙이 될 수 있다 -다시 읽게 되었는데 저자의 '사랑'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는 쉬이 공감하지 못했지만,진실을 바로 말하는 것이 늘 옳은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애둘러서 말할수도 있었을 텐데..그리고 2015년 연극으로 만나게 된 '리어 왕'은 몹시도 재미있지 않았다.극의 딸로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그럼에도 기회가 오면 또다시 읽고 보리라 생각했다.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다시 읽게된 '리어 왕'은 달랐다,아니 리어 왕만 보인 것이 아니였다.막이 끝날때마다 나름의 정리를 하다 보니 더욱 선명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1막1장..판도라를 열다,라고 정리했다.애초에 사랑을 확인하고 달콤한 거짓에 속아 넘어간 리어의 마음..판도라를 열지 말았어야 했다.(다시 읽어도 여전히 이 불행의 시작은 리어..가 자초했다는 생각이다.)1막3장에서 바로 모든 이들의 본심이 드러나지 않던가.그리고 또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1막4장에서 리어의 후회와 절규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일반적이지 않은 점은 자신을 탓하기보다 자식들에게 저주와 악담을 그리고 싸울 결심을 하는 리어의 모습이였다. 2막에서는 글로스터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백작역시 가벼운 귀와 의심으로 인해 소중한 것을 보는 눈을 망각한 죄로 장남 에드거를 믿지 못하고,에드먼드의 거짓에 속아 넘어간다. 그러고 보니 리어와 글로스터가의 인생이 비슷하게 흘러간다.진실을 보는 눈이 없었던 거다.그리고 2막2장에서 리어의 절규는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이 작품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리어 왕이 가장 크게 절규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부분이다."(...) 신들이여,여기 이 불쌍한 노인이 보이시지요.나이만큼 슬픔으로 가득 찬 불쌍한 신셉니다.두딸의 마음을 흔들어 이 아비를 배반토록 한 게 당신들일지라도(...)이 천륜 어긴 마녀들,내 너희 두 년들에게 엄청난 복수를 퍼부어 그걸로 (...) 온 세상이 벌벌 떨게 될 거다! 너희는 내가 울 줄 알지? 아니다,난 절대 안 울어.울 이유야 너무 많지만(...)"/137쪽 리어..의 후회와 용서 반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적어도 내가 잘못해서..라는 깨우침...꼼꼼히 읽는다고 했으나 미처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글로스터 백작이 후회하고 죽음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러고 보니 리어..에게는 사랑스런 딸 코딜리아가 곁에 없었고,글로스터백작에게는 장남 에드거가 여전히 아버지를 지키면서 정신을 바로 차리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상황을 한없이 비관만 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리어 왕..과 비교 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사실 리어 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만...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애초에 당신이 뿌린 씨앗이라고 책망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악담과 저주를 퍼붓지만 그 자신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헤아리기란....이성을 지키고 있는 것 같으나 이미 이성이 안드로메다..로 나갔다면,이 모든 비극이 내탓이오..라고 말할수 없을 터..그래서 더 슬프고 비극적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애초에 사랑을 확인하지 않았으면 될텐데..그러나 결핍이..그에게는 애정 결핍이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왕으로써 아비로써 인정받고 싶은 무엇이..)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이 불행의 시작은 결핍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리어..는 딸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고,에드먼드는 서자라는 컴플렉스가 이성을 마비시켰으며,고너릴은 애정 없는 남편으로 인해 최고의 권력을 잡고 에드먼드와 사랑도 하고 싶었던....인간은 어리석어 비극을 자초한다지만..현실에서 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다.그러나 <리어 왕>이 비극이지만 묘한 카타르시스가 전해진 건 어리석은 인간들의 최후가.탐욕으로 가득찬 이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를 마주했기 때문이다.리건과 고너릴도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아직은 딸들의 시선으로 보기가 쉽지 않다.결핍이 있다고 모두가 탐욕스런 발톱을 내세운다면 그 끝은 비극으로 끝나게 될 것이 너무 뻔하니까 말이다.
이제 <던바>를 읽어 봐야 겠다. 작품을 읽을 때마다 출판사를 달리해서 읽으려고 하는데,생각처럼 쉽지가 않다.민음사것이 읽기에 너무 편하다 보니..그런데 셰익스피어 작품을 재해석한 시리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요 네스뵈의<맥베스>를 찜해 놓고만 있었는데 '리어 왕'을 재해석한 <던바>부터 읽어 봐야 겠다.작가는 리어 왕을 어떻게 재해석 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