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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타락한 것일까, 우유부단한 본성이 드러난 것일까 <맥베스>는 ‘잔인한’ 코도의 영주 맥도널드와 손잡은 노르웨이 국왕 스웨노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를 ‘용감한’ 맥베스가 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개선하는 길에서 만난 세 마녀의 예언에 홀려 국왕 던컨을 시해하고 왕좌를 찬탈했지만, 결국은 던컨의 아들 맬컴 등의 반격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렇게 <맥베스>는 줄거리만 보면 영웅의 몰락이라고 볼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요소가 보인다. 먼저 맥베스에게 욕망의 불씨를 일깨워준 세 마녀의 첫 번째 예언부터 살펴보자. “맥베스, 만세! 글램즈의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코도의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장차 왕이 되실 분이여, 만세!1)” 아버지의 죽음으로 승계한 글램즈의 영주와 반역자를 토벌한 공으로 하사 받은 코도의 영주까지는 맥베스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였다. 그러나 세 마녀의 첫 번째 예언의 마지막 부분, 즉 스코틀랜드의 국왕이 되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신은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말처럼 맥베스는 전쟁터에서는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정치판에서는 우유부단하고 어린애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튼튼히 하고 사후처리까지 준비를 한 후에 왕을 시해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품은 욕망만큼 당신 자신의 행동과 용기를 보이는 것이 두려우신가요? 당신은 생의 귀중한 장식품이 될 그것을 갖길 원하시나요. 그러면서 속담 속의 가련한 고양이처럼 ‘갖고 싶어’ 하면서도 ‘못하겠어’ 라고 하면서 당신 스스로도 겁쟁이처럼 사실 건가요 2)”라는 부인의 충동질에 그냥 일을 저질러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던컨 왕이 그의 장자인 맬컴을 후계자로 지명, 장자상속의 원칙을 확립3) 4)한 것에 대한 반발과 조바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행적을 보면, 마치 욕심에 일을 저질러놓고 감당이 되지 않자 나 몰라라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드러난다. 만약 내가 맥베스였다면 이렇게 뒷감당할 준비가 감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차라리 신뢰하던 신하들에게 잇달아 배신당한 던컨 왕을 몰락시키기 위해 다른 신하들을 몰래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제압하는 방식을 거듭하여 신하에 대한 왕의 의심을 고조시켜 스스로 고립되어 무너지게 만드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테니까. 맥베스만 세 마녀의 예언에 현혹된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그의 부관 뱅쿠오도 “이제 당신은 마녀들이 약속한 대로 모두 손에 넣었소. 허나 당신의 후손이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고 내가 많은 왕의 뿌리이자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했으니 맥베스, 당신에게 마녀들의 말이 비추듯 마녀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아니, 당신에게서 확인되었듯이 그 말은 내 신탁일 수도 있으니 내게도 희망이 있지 않겠소 5)”라고 하여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드러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학원을 땡땡이 치는 것도 처음이 어려운 법이지 한 번 성공적으로 하게 되면 그 다음은 아무런 저항감 없이 쉽게 저질러버린다. 그렇기에 전쟁터에서 숱하게 살인을 저지른 맥베스는 던컨 왕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면, 맥베스 부인은 차츰 스스로 무너져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히려 맥베스를 힘들게 한 것은 예언이었다. 왜냐하면 세 마녀로부터 “스스로 왕이 되지는 못해도 왕을 낳으리라6)”라는 예언을 들은, 자신의 부관이었던 뱅쿠오와 그의 아들 플리언스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맥베스는 “내 자식은 왕위를 이을 수 없다니. 만약 그렇다면, 뱅쿠오의 후손을 위해 내 마음을 더럽히고 그 놈들을 위해 자애로운 던컨 왕을 살해한 셈이니 내 평온한 마음의 술잔에 원한을 담은 것도 그들을 위한 것이고, 내 영혼을 인간의 공통된 적에게 준 것도 그들을, 뱅쿠오의 씨앗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7)”하고 절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로 인한 불안은 맥베스가 자신의 부관이었던 뱅쿠오와 그 아들을 암살할 것을 지시하게 한다. 나아가 세 마녀의 두 번째 예언에서 자신의 대적자(對敵者)로 등장한 파이프의 영주 맥더프도 제거하려고 한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맥베스가 운명을 거스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뱅쿠오는 암살했지만 그의 아들 플리언스가 살아남아 훗날 그 후손들이 스튜어트 왕조를 열었고, 여자가 낳은 자에게 죽지 않을 것을 약속 받은 맥베스는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맥더프에게 살해당한다. 운명의 굴레에 순응하면서도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맥베스의 모습에서 욕망에 순응하여 악인(惡人)이 되지도 못하고, 반대로 절제하여 선인(善人)이 되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여 씁쓸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이원주 옮김, (시공사, 2012), p. 61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앞의 책, p. 82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앞의 책, p. 32에 의하면 던컨의 아들인 맬컴이 성인이 되기 전에 던컨이 죽는 경우 맥베스가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관습을 타파하고 던컨이 자신의 아들을 계승자로 임명, 장자상속을 확립하였다고 한다. 4) 실제 역사에서는 맥베스의 모델이었던 스코틀랜드의 왕 맥베스 맥 팬드렉(MacBheatha mac Fhionnlaigh, ? ~ 1057)은 던컨(Duncan, ? ~ 1039)과 왕위 계승의 경쟁자로, 왕위계승 서열도 맥베스가 던컨보다 상위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달리 17년간의 통치기간 중, 맬컴이 세력을 모아 그를 위협하기 전까지는 정의롭고 공평한 군주였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앞의 책, pp. 107~108 6) 윌리엄 셰익스피어, 앞의 책, p. 62 7) 윌리엄 셰익스피어, 앞의 책, p.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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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읽는 책을 언제 또다시 읽을수 있을까..라고 '마흔 살의 독서'에서 윤희상시인은 말했다.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뜻이 될수도 있겠고,좋은 책들만 골라 읽어도 시간이 모자랄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이렇듯 한 번 읽은 책을 또다시 찾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다시 또 찾아 읽게 된다는 건,읽고 또 읽어도 찾고 싶고,궁금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여기 <맥베스>도 그러하다.시작은 주역의 관점으로 맥베스를 소개한 글이 흥미로워 찾아 읽게되었다.두 번째로 찾아 읽게 된 건 오페라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고,세 번째로 찾아 읽게 된 건 영화로 만든 맥베스와 비교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우연히 나남출판사에서 멕베스 공연 관련 이벤트에 응모를 했는데 덜컥(?) 당첨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물론 나남에서 출간된 책으로 읽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이미 시공사에 나온 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공사에서 나온 것으로 읽게되었다.그리고 연극이나,오페라였다면,공연을 보고 난 후 맥베스를 읽어보았을수도 있겠지만,춤으로 맥베스를 공연한다고 해서,복습차원에서 읽고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거다.그리고 책을 읽고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으로 전하는 맥베스의 감동을 느껴보라는 멘트가 나를 유혹했다.그러나 무용의 세계는 워낙 모르는 터라 덜컥 예매할 용기가 나지 않아,이벤트에 한 번 응모를 해본건데 당첨이 되었고,욕망과 피로 가득한 맥베스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했다.오페라의 경우는 극보다 음악에 몰입하는 바람에 맥베스 자체에 크게 몰입하지 못했었다.영화는 오페라보다 더 재미가 없었고..해서 무용에 살짝 기대를 했던 것인데.무용은 나의 이해도가 떨어져서 인지,혹은 맥베스를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가 있어서였는지 매우 감동적이었다고는 말할수 없을 정도였다.길지 않은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으니 말이다.복습(?)을 하고 간 덕분에 춤의 언어를 조금 이해할수는 있었는데,아쉬웠던 건 텍스틍에서의 그 강렬함이 무춤 사위에서는 전혀 느낄수 없었다는 거다..욕망으로 가득한 맥베스와 맥베스부인을 그렸다기보다 인간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춤에 대해 아는바가 없어 조심스럽긴 한데,감정을 표현하는건 이해가 가능하나,품성,성격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춤의 언어는 한계가 있을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원작을 이해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본다면 저들이 괴로워 하는 것이 보이지만..그렇다고 해도 맥베스를 읽으면서 인간적인 맥베스보다는 욕망으로 가득찬 맥베스가 우선 보이기 때문에,또 다른 시선으로 맥베스를 보았다는 점은 좋았으나 아쉬움은 많이 남는 공연이 되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춤으로 공연된 맥베스를 보면서 공감하지 못했던 건 공연에 가기 전 읽게 된 맥베스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그동안 맥베스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공감대라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선이었던 거다.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그리고 그 끝에 어떤 결말이 자리하고 있는지 정도였으니까.그런데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매일 막장드라마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읽게된 맥베스는 달라도 너무 다르게 보였다.읽는 내내 소름이 돋고 그야말로 맨붕 같은 기분에 빠져든다고 해야 할까? 막연히 그럴수 있지 라고 생각하면서 읽을때와 세익스피어가 쏟아낸 말 한마디한마디에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어진다는 건 공감의 깊이에 엄청난 차이를 느끼게 만들었다. 시공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낸 RSC전집으로 읽어서 더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단순히 디자인만 이쁜 것이 아니라 맥베스에 대한 여러 해석부터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서문부터 밑줄을 긋게 만들어주었다.<영시의 아버지인 제프리 초서는 "오래된 책이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듯 비극은/엄청난 영화를 누리다가/높은 위치에서 떨어져/비참하게 몰라해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사람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 이라고 썼다.높이 올라갈수록 더 맹렬히 떨어진다(...)등장인물의 위대함의 원천이 되는 바로 그 특징이 그가 몰락하는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19쪽 맥베스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동시에 권욕과 욕망의 끝이 반드시 비극의 결말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 문장이었다.맥베스와 햄릿을 비교해주는 설명도 흥미로웠고,작품에대한 전체적인 특징들을 읽는 맛도 즐거웠지만,다시 읽은 맥베스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보인건 맥베스가 아닌 맥베스 부인이었던 거다.상황에 따라 눈에 크게 보이는 지점은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 싶다.오페라에서는 맥베스가 부인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나약함과 욕심에 대해 후회를 했고,춤으로 그려낸 맥베스에서는 자신 속에 있는 천사와악마의 대결 그리고 갈등 정도로 그려졌다면,다시 읽은 맥베스에서는 욕망으로 힘겨워하는 맥베스 보다 그 욕망을 조종하는 맥베스 부인이 몇갑절은 무섭게 느껴졌다.그녀가 쏟아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과거의 언어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말들이라서...그런가하면 맬컴의 대사는 "맬컴...그러나 왕에게는 그런 미덕이 나한테는 없소/정의,진실,절제,안정/박애,인내,자비,겸손/헌신,참을성,용기,결연함/나한테그런 건 전혀 없다오/다양한 방식으로 저지르는/각각의 범주에 속하는 건 가득하지/(...)/156쪽 지금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인지 맬컴은 누가 적인이 아군이지를 알수 없어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이지만 지금 우리 국민들은 거짓말이 아닌 진심으로 고백을 듣고 싶을 거니까.맥베스를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아닌,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읽게 될 줄은 몰랐다.조금은 뜬구름 잡는 듯한 욕망이란 거대한 화두로만 이해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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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희곡으로 본 작품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희곡 작품이라고 해도 작품에 더하여 간단한 작품해설이 덧붙여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시공사에서 지난해 ‘시공 RSC 셰익스피어 선집’으로 발간한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햄릿 등 비극작품들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한국어판 서문, 텍스트에 관한 사실, 그밖에 해당 작품에 관한 주요 사실들이 나오고, 극본을 소개한 다음, 장면별 분석, 공연으로 본 해당 작품이라는 제목의 해설이 이어진 다음,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연극, 셰익스피어 작품연보, 참고문헌 및 출처가 공통적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맥베스>는 이번에 예스24 북켄드 이벤트에서 상으로 받아서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옮긴이는 <맥베스>가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가장 짧고 빠른 비극이며 색깔은 검정과 빨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부 성주의 반역을 업고 노르웨이가 침입한 왕국의 위기상황을 막아낸 구국의 영웅 맥베스가 개선하는 길에 만난 세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 국왕을 시해하고 왕좌를 찬탈했지만 결국은 선왕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구세력의 반격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오면서 시대적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해석되어 무대에 올려져왔다고 합니다.
<맥베스>에 관한 주요 사실들에서 보면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인 것은 맞지만 토머스 미들턴에 의하여 일부가 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사실 연극을 공연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대본은 작가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되지만,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은 연습하는 과정에서 일부 장면을 삭제하거나 개작하기도 합니다. 다음에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이 원전을 구하지 못하고 이처럼 개작된 대본을 바탕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전이 소실되고 개작된 대본만이 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나온 작품들의 경우에 필사로 대본이 전해졌을 터이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세상사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정해진 틀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니 말입니다. <맥베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불행한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노르웨이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개선하던 맥베스와 뱅쿠오의 앞에 세 마녀가 나타나 예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언이라고 하지만 “변덕스러운 우리 자매들, 손을 맞잡고 바다와 육지를 쏜살같이 내달리며 그렇게 돌아다닌다. 그렇게. 네가 세 번, 나도 세 번, 다시 세 번, 그래서 아홉 번. 쉿! 이제 주문이 다 걸렸다.(61쪽)”라고 했으니 저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3막 5장에서 세 마녀의 마법의 주신이 “건방지고 뻔뻔한 노파들 같으니? 감히 어떻게 수수께끼와 죽음에 관한 일로 맥베스와 거래하려 들다니?”라면서 이들을 꾸짖는 말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맥베스에게는 ‘맥베스, 만세! 글램즈의 영주, 만세!, 코도의 영주, 만세! 장차 왕이 되실 분이여, 만세!’라고 돌아가면서 축하를 하고, 뱅쿠오에게는 ‘맥베스보다는 못하지만, 더 위대하리라. 그만큼 운은 없지만, 훨씬 더 큰 행운을 누리리라. 스스로 왕이 되지는 못해도 왕을 낳으리라.’라고 던진 예언의 미끼를 맥베스가 물었다는 것이 화근의 시작인 셈이지요. 아무리 생각이 단순한 무장이라고는 하지만 왕을 시해하는 반역을 행하는데 있어 주저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망설이는 맥베스를 반역의 길로 몰아세우는 역할은 맥베스 부인의 몫입니다. 최근에 끝난 드라마 <야왕>에서는 아무런 시골 한 구석에서 아무런 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지만 주변사람들을 속이고 끊임없이 변신하여 영부인의 자리에 오르는 한 여성의 구역질나는 욕망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역시 음모에는 여자가 주역을 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왕재(王才)는 하늘에서 내는 것처럼 강력하게 지지하는 세력이 없으면 왕위찬탈은 꿈도 꾸지 못할 터임에도 맥베스가 왕을 시해하고 간단하게 왕좌에 앉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부담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혹은 유령을 보게 되는 유약한 것으로 그려지는 것은 작품의 길이가 짧아 설명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처음에 왕손을 낳을 것이라는 뱅쿠오에 대한 예언이 어떻게 되었는지 미지의 상태로 남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맥베스>가 무대에 올려지면서 나타난 해석상의 독특한 점에 대하여 별도의 해설이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혹시 연극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극을 직접 관람하는 것이며, 이상적인 방법은 공연에 참여해보는 것이다.(217쪽)”라는 권유에 공감이 간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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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천국에서 겪는 지옥
<맥베스>는 꿈이 어떻게 악몽이 될 수 있는지, 낮이면 둥지를 트는 새들의 유쾌한 자리가 밤이면 음산한 기지가 넘치는 문지기가 문 앞을 지키는 지옥 그 자체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관한 극이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극이다. 던컨 왕이 살해된 다음 날 아침에 태양은 떠오르기를 거부하고, 다른 이상한 현상들은 자연 질서의 혼란으로 해석된다. - p.24
운명인가 의지인가. 능력 있는 영주였고 왕의 총예를 받는 충신이었다. 부도 충분하였다. 그러나 맥베스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던컨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다.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고, 야심 가득한 부인의 부추김도 있었다. 원하던 천국을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밤, 하늘에서 곡소리가 들리는 등 온 세상이 이상해진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짧고 빠른 비극 <맥베스>, 천국에서 지옥을 겪는 사내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기도 했던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에게 바쳤다. 그는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한 지 몇 주 만에 셰익스피어의 극단을 국왕 극단으로 격상시킨 이였다. <맥베스>에서 잉글랜드 궁정이 피난처이자 축복의 장소로 제시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스코틀랜드의 실존 인물이었던 던컨과 맥베스의 이야기를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재해석하였고, 1906년 초연하였다. 각색의 아이디어 전부 셰익스피어의 것은 아니고 라파엘 홀린셰드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의 연대기(1587)>에서 상당 부분 차용하였다. - 맥베스에게 - 마녀1: 맥베스, 만세! 글램즈의 영주, 만세! 마녀2: 맥베스, 만세! 코도의 영주, 만세! 마녀3: 맥베스, 만세! 장차 왕이 되실 분이여, 만세! - 뱅쿠오에게 - 마녀1: 맥베스보다 못하지만, 더 위대하리라. 마녀2: 그만큼 운은 없지만, 훨씬 더 큰 행운을 누리리라. 마녀3: 스스로 왕이 되지는 못해도 왕을 낳으리라. - pp.61~62/1막 2장
그래서 <맥베스>는 결말을 아는 상태에서 보는 희곡(연극)이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인데다가, 마녀의 예언과 엮여 극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맥베스>에는 '변덕스러운 자매들'로 언급되는 세 명의 마녀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을 심술궂은 숙녀들이라고 한 라파엘 홀린셰드와 달리 셰익스피어는 무척 수다스럽고 턱수염 난 노파로 설정하고 있다. 마녀들의 예언을 정리해보면 크게 네 가지다. 맥베스는 코도의 영주가 된다(1막 2장), 맥베스는 왕이 되지만 왕을 낳지는 못한다(3막 1장), 뱅쿠오는 왕이 되지는 못해도 왕을 낳는다(1막 2장), 여자에게서 태어난 어떤 자도 맥베스를 해치지 못한다.(4막 1장)
맥베스 부인: 얻은 것도 없이, 힘을 모두 써버렸군. 욕망은 달성했지만 만족은 없는 셈이지. 없애버리고도 이렇게 불안한 기쁨 속에 사느니 우리가 없애버리는 그것이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 - p.115/3막 2장
맥베스: 괴상한 망상에 휩싸이는 것은 단련하지 않은 풋내기의 두려움이오. 우린 그 일을 하는 데에 아직 미숙한가 보오. - p.130/3막 4장 中
맥베스: 그걸 치료해 주시오.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할 수 없다면 뿌리박힌 슬픔을 기억에서 뽑아버리시오. 머릿속에 기록된 괴로움을 잘라내고 감미로운 망각의 해독제를 써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저 해로운 물질을 답답한 가슴에서 씻어내시오. - p.174(5막 3장 中)
맥베스가 왕이 된 이후 맥베스 부부는 행복도 금슬도 모두 잃어버린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을 뿐이다. 특히 전령과 환영을 계속 겪는 맥베스는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듯 했으나 곧 폭군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뱅쿠오도 제거한다. 슬슬 맥베스를 경계하기 시작한 다른 영주들, 그 중 맥더프는 던컨 왕이 죽은 후 잉글랜드로 도피한 던컨왕의 아들 맬컴과 연합해 맥베스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이들이 살인귀로 변한 맥베스에게 크게 실망해 맥더프-맬컴 연합과 함께 한다. 맥베스는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파멸을 부정하지만, 맥더프는 어미의 배를 가르고 태어난 인물이었고 맥베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맥베스>에서 맥베스 못지않게 주목 받는 인물은 맥베스 부인이다. 작품이 발표되고 나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극악무도한 악녀로 그려진다. 맥베스보다 연상이자 스스로 남편을 바꾼 아내고, 아이를 잃고도 슬퍼하지 않은 어머니이다. 맥베스의 악행을 부축이고 그가 약해지는 것을 막는 인물이다. 어떤 남자보다도 독한 야심가이다. 맥베스 부인 뿐 아니라 마녀들의 여왕 헤카네와 마녀 세 자매, 맥더프 부인 등 시대를 앞선 매력적인 여성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비중이 상당하다. 보통 연극 분량이다. 330여 쪽인 이 책에서 <맥베스> 대본 자체는 14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작품 해설이 풍부하다. 시공사의 RSC(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셰익스피어 선집은 2012 런던올림픽 특수를 염두하며 나왔으나, 그 전후로 출간된 다른 출판사의 완역본도 수없이 많아 크게 주목 받지 못하였다. 2015년 4월 말 현재도 1쇄 분을 팔지 못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일반 대중들에게 셰익스피어 완역본이나 연극이 크게 소비되지 않다는 점도 판매 부진의 한 이유이다. 일찌감치 마니아들 사이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선집, 지금이라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꼭 고려했으면 좋겠다. 강력 추천하는 완역본이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이면서 직접 무대에 올라 가 연기한 적이 많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텍스트로 읽기보다 연극을 보거나 직접 연기하는 것이 이상적인 감상법이라고들 한다. RSC 셰익스피어 선집은 극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즐기는 데 어떤 판본보다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RSC는 주디 덴치, 제러미 아이언스 등 수많은 명배우를 배출한 전통 있는 극단이자 셰익스피어 연구와 교육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주기적으로 공연하는 것은 물론 시대별로 새롭게 재해석한 극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RSC의 <맥베스> 대본은 처음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 제1이절판(1623)을 기초로 최대한 원전에 가깝게 복원하였으며, RSC판본 번역본은 시공사본이 유일하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까다롭게 판본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전작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물론, 남아 있는 작품 역시 완전한 원본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사후 수세기 동안 서지학자들과 편집자들이 정리해 출간해온 텍스트란 점이다. <맥베스>의 경우 토머스 미들턴이 개작한 부분이 있다. RSC판본 95% 운문, 5% 산문으로 이루어진 <맥베스>의 음률을 그대로 살리고 풍부한 주석과 꼼꼼한 지문 처리로 독자들이 셰익스피어의 진가를 알도록 돕는 최상의 판본이다. 심지어 배역별 비중 분석에, 장면별 요약까지 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영어극시의 이상적 형식인 약강오보격(열 개의 음절, 다섯 개의 강세, 그리고 두 번째 음절마다 강세)를 기반으로 후기로 갈수록 운문 형식이 느슨해지고 운문과 산문 사이의 변화가 빈번해진다. 그런 셰익스피어의 섬세한 언어를 가장 섬세하게 편집한 판본이 RSC본인데, 번역 과정에서 언어적 차이로 그걸 다 살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시공사본이다. 번역진 역시 쟁쟁한데 <맥베스>의 경우 한국셰익스피어학회와 현대영미드라마학회 이사를 역임했던 한국방손통신대 영문과 교수 이원주가 번역을 맡았다. <맥베스> 연극 연출과 연기에 대해 풍부한 인터뷰와 사진을 곁들이며 서술하고 있는 대목도 있어 여러모로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며 읽기에 굉장히 좋은 선집이었다. 5대희극과 <템페스트> 정도만 해서 2차 선집도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읽는 데 무척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어려워서 그렇다기보다 작품 속에 빨려 들어가 읽고 또 읽으며 헤어 나오질 못해서였다. 어둠과 피의 희곡이라는 둥 셰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외롭다는 둥 하는 이유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맥베스 부부는 분명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 인간적 감정과 악을 저지른 후 시달리는 고통들이 충분히 공감되었다.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천국에서 지옥을 겪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파멸에 자신 있게 통쾌하며 손가락질할 수가 없었다. 산 자의 해피엔딩을 죽은 자의 비극이 완전히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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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운 양장본 까만표지와 붉은 커버가 셰익스피어 비극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어려서 셰익스피어를 만날때는 삼중당문고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고 귀엽고 몇권은 도톰했던 문고판책들을 그래도 작가별로 사서 읽고 모으는것이 중요한 취미생활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잊혀졌지만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는다면 정말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국내 유일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 정식 계약본은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만나기 위해 긴 시간 기다려온 내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한편의 희곡을 만났다기 보다는 <맥베스 분석집>을 읽은 기분이라서 너무나 소중하다. '비극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되는 '작품 소개'와 '텍스트에 관해서' 편에서 다양한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다. 희곡 본편이 실려있고, 그 뒤에는 장면별 분석이 실려있는데 이중적이고 암시적인 대사가 무엇을 은유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행간의 의미를 찾아보며, 상징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니 비로소 온전한 맥베스를 만나는 듯 하다.
'공연으로 본 맥베스:RSC와 그 너머'도 흥미진진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극을 직접 관람하는 것이며, 이상적인 방법은 공연에 참여해보는 것이다.-217p>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연극, 영화화 되어온 역사, 무대에 올려졌던 RSC공연들, 공연했던 배우들 이야기가 실려있다. 주요 연출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얼마나 다양하게 작품이 해석되는지 깨달으며 무척 흥미로왔다. 어디에 더욱 의미와 중점을 두는지에 따라 극의 색깔과 맛이 달라지며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작품으로 남게 되는것 같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맥베스,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자 영주인 그가 세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탐욕에 눈이 멀어 변해가고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주저하는 듯 했지만 아내의 다그침과 종용으로 비극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부부의 관계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 후회와 두려움, 돌이킬수 없는 진행등..깊이 몰입하며 읽는 시간이었다.
연극사가들이 액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확정판이라고 간주하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과 비비언 리의 공연을 화면으로나마 볼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나머지 RSC 셰익스피어 선집을 읽어보아야겠다. 소장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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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 시공사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든지 책의 출간 소식은 이러한 그의 명성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햄릿', '베니스의 상인', '리어 왕'과 같은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각종 매체를 통하여 자주 접하다보니 마치 책을 읽었다는 착각이 들면서 실제로는 그의 작품을 정독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입장에서 시공사에서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티(이하 RCS)의 정식 판본을 번역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출간 소식은 반갑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나의 눈길을 끈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였다. '햄릿'과 '리어 왕'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1606년에 초연된 <맥베스>를 읽기 전에 나의 머릿속에서는 또다른 인물이 연상되었다. 바로 태조왕의 뒤를 이어 차대왕으로 등극한 고구려의 수성이라는 인물이다. 146년에 왕위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에 대한 기록은 역사에서는 짧막하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항간에서 떠돌던 그의 이야기가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즉, 태조왕의 친동생으로서 유능한 장군으로 명망을 떨치던 수성은 자신의 형인 태조왕을 암살하고, 조카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이후 실정을 거듭한 끝에 대신인 명림답부로부터 시해를 당하는 인물인데, 수성의 생애는 바로 맥베스의 그것과 놀랄만큼 유사함을 보여준다. 고구려와 영국이라는 공간의 차이, 그리고, 1500여년의 시간의 차이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하여 볼 수 있다는 점은 문학적인 측면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에 묘한 흥미를 갖게 된다. 마치 고구려 수성의 이야기를 하나의 극으로 창조를 한 느낌이 든다. 셰익스피어가 수성의 삶을 모티브로 하여 이 <맥베스>를 집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이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사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재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의문점은 바로 왜 <맥베스>가 비극으로 분류되는가 하는 점이다. 대략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책의 첫장을 열기도 전에 문득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니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짧은 분량으로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모든 장면과 대사를 곱씹어보게 된다. 국왕을 잔인하게 시해하고, 왕위에 올라 폭정을 거듭하면서 자신을 반대하던 인물들을 살해하는 맥베스, 그리고, 이러한 맥베스가 결국 반란군에 의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비극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권선징악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햄릿>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숙부와 어머니의 간계로 인하여 고통을 받다가 결국 국왕의 복수를 하면서 자신의 연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되는 햄릿의 이야기에는 모든 면에서 비극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의 이야기는 오히려 결말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언뜻 이 작품이 왜 비극이라 불리우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맥베스의 행적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국왕인 던컨의 사촌 동생이자 글램주의 영주인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반란을 분쇄하고 코도이의 영주와 결탁한 노르웨이 군마저 격파를 하게 된다. 이 짧은 설명에서 우리는 그가 고귀한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군사적으로 유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성스러우면서도 능력있는 이 인물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비극으로 될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숲에서 세 마녀와의 만남은 바로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채우게 만든다. 곧 코도이의 영주가 될 것이며 후에는 국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 맥베스의 심리 변화가 이야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맥베스와 같이 마녀들의 신탁을 듣게 된 뱅쿠오는 마녀들의 모습에 대하여 '남자같이 생긴 여자'와 같은 기묘한 표현을 보여주는데 이는 곧 마녀의 신탁을 한 귀로 흘려버릴 수도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 자신의 후손이 왕위에 오른다는 신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맥베스는 코도이의 영주가 되면서 마녀의 신탁을 믿게 되면서 점차 야망을 꿈꾸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국왕인 던컨이 자신의 아들인 맬컴을 왕위 계승자로서 컴벌랜드 공작으로 칭하는 장면은 이러한 맥베스의 야망을 폭발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된다. 코도이의 영주의 자리는 예언대로 자연스럽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신탁과는 정반대로 왕위의 자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제 맥베스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마녀들의 신탁이라는 암시에 의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비극적인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똑같이 신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뱅크오는 마녀들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거나, 맥베스에게 충고를 하면서 맥베스의 마음을 돌리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맥베스는 이제 그 신탁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고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게 된다. 이제 명망있고 유능한 맥베스가 왕위 찬탈을 통하여 비극의 길로 빠지게 됨을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더 비극적인 요소는 바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맥베스의 우유부단한 심리적인 상태임을 볼 수 있게 된다. 정작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맥베스의 아내로부터 조롱을 받게 된다. 또한 국왕이 자신과 같은 핏줄이면서 주군이라는 생각으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명장이라는 겉모습에 감추어졌던 그의 나약한 존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왕위에 대한 욕심과 유약한 그의 심리는 이제 이 작품이 왜 비극이 될 수 밖에 없는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는 국왕을 시해하고, 같이 신탁을 들었던 뱅쿠오를 암살함에 따라서 결국 마녀들의 신탁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기는 선택을 하게 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계획대로 왕위에 올랐지만, 왕으로서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망령에 시달리면서 신경쇠약에 걸리는 초라한 모습의 맥베스만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폭정을 일삼는 맥베스의 주위에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을 격려하던 아내 역시 신경 쇠약으로 사망을 하고, 모든 영주들은 시해된 국왕의 아들인 맬컴을 중심으로 반란군에 가담한다. 맥베스가 애초에 군사적으로 재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이러한 반란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두번째로 들은 마녀들의 신탁에 모든 것을 내맡긴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여자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버남숲이 움직여서 성 근처에 다가오지 않는 한 지지 않는다.'라는 신탁은 맥베스로 하여금 자만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이 신탁은 여지없이 깨지면서 맥베스는 그가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놓고 보면 어쩌면 세 마녀의 신탁은 인간의 욕망을 시험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곧바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맥베스의 비극적인 결말은 이미 그 신탁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트로이의 전쟁을 촉발시킨 세 여신, 아프로디테와 헤라, 아테네도 황금 사과를 놓고 다투었던 장면을 떠올린다면 맥베스가 그러한 유혹을 쉽사리 떨쳐내기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그 유혹의 과정에서 뱅쿠오를 등장시킴으로 해서 그러한 유혹의 과정을 떨쳐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맥베스의 비참한 결말은 더욱더 비극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비록 맥베스가 왕위라는 커다란 유혹에 흔들려서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인물로 묘사가 되지만, 우리도 일상에서 유혹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극적으로 전개가 되지 않더라도 그러한 유혹을 바라보며 갈등하는 경험을 자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의 맥베스에 언뜻 동정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가 만약 마녀들의 신탁을 듣지 않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실제 맥베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녀들의 의지에 의하여 신탁을 접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인간의 운명이 한 순간에 신의 장난으로 뒤바뀔 수 있음을 통하여 '인간의 삶은 비극이다.'라는 것을 이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시공사의 RCS 판본인 <맥베스>는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각 장면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말 그대로 희곡은 연극을 상영하기 위하여 쓰여진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책으로 읽는 것은 아무래도 무대에서 연극으로 직접 만나는 것보다는 생동감이 다소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이 책에서는 각 장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맥베스>의 공연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비비안 리가 연극 <맥베스>에서 맥베스의 부인으로 등장한 사례처럼 극을 둘러싼 배우들의 이야기 및 상영 분위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이야기를 넘어서 무대의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한번 이 책을 통하여 이야기를 정독해보고 실제 무대의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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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강인하게 버틸 수 있을까. 맥베스는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한 인간일 뿐이었다. 셰익스피어 비극 중 가장 짧고 빠른 비극인 맥베스는 [예언]으로 시작해서 [예언]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오던 맥베스는 운명의 세 여인을 만나게 되고 "마녀"로 통칭되는 그녀들의 말에 귀가 솔깃한다. 한 나라의 장군이던 그가 여인들의 예언에 솔깃한 것을 보면 그 역시 운명 앞에선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겠다.
유혹은 순차적이었다. 글램즈의 영주가 되고 코도의 영주가 되었다가 왕이 될 존재. 처음에는 아내와 함께 코웃음을 쳤던 맥벱스도 글램즈의 영주가 되고 코도의 영주가 되면서 왕이 되는 예언의 실현을 마음 속으로 꿈꾸게 되었고 종국엔 그 스스로 손에 피를 묻혀가며 예언을 실현하고야 만다.
잔인하고 대담하고 과감하게. 그는 전쟁에 선 장수처럼 용감하게 왕을 제거하고 왕좌에 올랐으나 그와 아내는 그때부터 좌불안석이 되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남의 자리를 빼앗았으니 다른 이가 또 자신들을 제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왕자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해져 그는 다시 운명 앞에 섰고 또다른 예언을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언에는 함정이 있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어떤 자도 맥베스를 해치지 못한다"라는 예언은 여자의 배를 가르고 나온 맥더프에 의해 처참히 깨져버렸다. 왕이 되는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한 남자의 이야기는 5막 7장의 짧은 길이지만 빠른 전개와 반전을 거듭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몇백년전의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롭고 생동감 있을 수 있다니....셰익스피어라는 이야기꾼이 얼마나 재담이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 몇몇만 읽어보아도.
1590년에 태어나 37편의 드라마와 2편의 장시 시집{소네트}를 집필했던 이야기꾼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 중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인 [맥베스]가 사랑받는 이유를 소설이 아닌 희곡을 읽고서야 더 극명히 알게 되었다. 그 재미는 누군가에 의해 풀어진 이야기보다 그 본질에 가까운 구조로 읽혀져야 더 생동감이 사실화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놀라운 것은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언 리가 1955년에 이 작품을 함께 공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몰랐던 일이라 신기했으며 단 한 컷 뿐인 사진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그 공연을 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