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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뷰를 볼 때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은 아마도 그 책이 정말 재미있냐는 것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 책이 일단 "재미"있어야 구매할 기본적인 마음이 생겨날 테니까 말이다. 가끔은, 논어와 맹자같이 아주 어려우면서도 고지식한 책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읽기란 어느 정도의 독서 내공이 생기지 않고서는 좀처럼 손이 안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이 소설이냐 에세이냐 시이냐도 구매의 판단기준이 될 수도 있다. 소설을 좋아하느냐, 시를 좋아하는냐에 따라서 읽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는 장르는 다르기 마련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일단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재미로만 말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죄책감이 든다. 리키라는 아동성추행범이 수감생활을 하다 개과천선하여 사회에 나간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아동성추행범이 되고, 살인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리키라는 인물이 성추행범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변호하려는 또 다른 인물이 있으니, 그녀는 아동 때 할아버지로부터 성추행범을 당한 여성 변호사다. 과거의 트라우마와 얽혀 있지만, 리키를 용서하고 리키를 변호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복잡한 마음들이 글로 써졌다. "글"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은, 이 글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자료와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에세이이긴 하지만, 거기에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있을 법한" 이야기도 같이 자신의 상상으로 엮어낸다. 그러므로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설 같은 창작을 통해 에세이를 써내려갔으므로 창작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왜' 한 아이가 물었다. '왜, 왜 나한테 그랬어?' 그러자 다른 아이도 물었다. '왜 나였어? 왜 우리였어?' 그가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건 바람뿐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유를 말해줘야 할지 몰랐다. 자기 자신에게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혈관 속 피가 맥박 치듯 아이들의 질문이 고의 고막을 때려댈 때까지 아이들은 계속 물었다. 그가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그가 뛰쳐나갔다. 원에 있던 남자아이 한 명을 손으로 잡아챈 다음 뛰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숲속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둘만 있고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다다랐다. 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킬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손바닥으로 아이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머리칼이 시원한 붓 같았다. 그는 바지 지퍼를 내렸다. 아이의 머리를 자기 몸으로 당겼다. 잠이 깼다. 그는 땀에 절어 덜덜 떨고 있었다. 토할 것 같았지만 공책에 꿈을 적었다. 치료 시간에 그 공책을 가지고 가서 치료사에게 보여주었다. "저를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게 해주세요." 그가 말했다. 치료사가 말했다. "리키, 당신 삶이 달라지기 바란다면, 바로 당신이 당신 삶을 다르게 가꿔야 해요." - pp.242~243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한 가해자에 대해 우리가 분노하는 경우는 너무도 뻔뻔스럽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일 것이다. 가해자가 정치인이든, 살인자이든, 단순범이든 그가 진정성을 띄워 반성의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가 그를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가 전혀 반성의 빛이 없다면 절규하는 피해자들의 음성이 들려올 것이고, 그 가해자는 온갖 비난과 지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리키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아주 복잡한 글이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이다. 리키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를 것을 두려워하여 석방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결국 석방되었고 범죄자가 되었다. 과연, 여기서 우리는 어떤 점을 비판해야 하는 것일까? 제도적 모순일까, 리키의 통제력 부족일까.
3. 로렐라이는 분명 리키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을 것이다. 불안할 때면 눈썹을 찡긋거리는 버릇. 손을 내려다보는 버릇. 리키는 살인자였다. 그가 그녀의 아들을 죽였다. 때때로 그는 그걸 자랑삼아 말했다. 때때로 그는 화를 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깨질 듯 유약하게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녀가 한 가지 더 물었다. "리키, 내 아들을 성추행했나요?" "아뇨." 그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스스로도 놀랄 행동을 했다. 원탁 너머로 손을 뻗어 리키의 손을 잡았다. 자기 아들을 죽인 손이었다. 그의 손은 마르고 가벼워서 마치 겁제 질린 짐승 같았다. 그녀가 기다리자 이윽고 리키의 손이 잠잠해졌다. "리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을 위해서 싸워줄게요."
이 말. 이 약속. 내가 처음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나는 이 말이 너무 힘들었다. 그가 그녀의 아들을 죽였다. 그는 소아 성애자였다. 아이들을 성추행했다. 그런데 그를 위해 싸우겠다고? - PP.370~371
그녀가 싸우곘다고 한 것은 그를 용서해서가 아니라, 그를 살려주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구형된 "사형"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로렐라이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리키를 위해 변호를 자처한 화자인 "나"의 마음도. "나"는 할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추행당해온 트라우마를 가진 변호사. 그런 그녀도 리키를 용서하기 위해,사형이란 제도에 반대하며 법정싸움에 뛰어든다.
4. 내 맞은편에 리키가 앉아 있다. 오늘의 과제, 이 만남의 과제, 내 안에 있던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과제, 그 과제를 끝낼 길은 이 말밖에 없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은 한 인간이다. 그는 절대로 이것 아니면 저것, 어느 한 가지로만 규정될 수 없다. 이야기만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과거에 등 돌리는 대신, 과거에서 도망가는 대신,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과거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같이 가자, 내가 사는 동안엔.' "안녕하세요, 리키." 내가 말했다. - PP.492~493
사람을 한 가지로 -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저 놈은 무조건 나쁜 놈!- 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마무리로 이 책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마무리다. 가해자를 용서하기는 힘들다. 용서는 못할 수도 있다.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은 가해자라도 내가 겪은 피해의 경험과 결합하면 용서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우리는 한 사람의 깊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람이 저지른 죄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저지른 죄에 그 사람을 가두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있는 흔한 실수 중의 하나가 아닐까.『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그녀들("나"와 로렐라이)의 삶과 리키의 추행을 통해 밝혀지는 진실을 통해 그녀들이 겪은 삶을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서 아들을 살인한 리키를, 또한 그녀("나")를 성추행한 할아버지를 용서하기 위한 마음의 여정을 실화를 통해 그려낸다.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잘 짜여진 소설을 본 것 같기도 한 이 창작에세이를 통해 나의 마음을 돌아본다. 내 마음에 "용서"란 화두가 떠오르기 바란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욱 더 평온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소설 같은 창작에세이가 평온의 메시지가 되어 어느 날 기쁜 기억으로 떠오르기 바란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가 아니라, 나는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평온한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리뷰는 책세상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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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감형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로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예컨대 이른바 ‘묻지마 폭행’으로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음주운전으로 상대방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는데, 가해자가 심신 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신미약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보고,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오히려 더 강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비싼 수임료를 지불하고 대형 로펌의 변호를 받는 경우가 많기에,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변형된 사례라 치부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무고한 6살 아이를 죽인 범죄자와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법조인들의 법리 다툼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요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어린 아이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소아 성애자’로 6살 어린이를 살해한 리키 랭글리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법대 재학 중 방학을 이용해 로펌에 실습을 나가, 우연히 비디오테잎을 통해서 가해자인 리키 랭글리의 사연을 접하게 된 것이다.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저자는, 가해자가 무고한 어린애를 살해한 죄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후에 문학을 공부하면서, 리키 랭글리가 재심을 받게 된 과정에 관심을 갖고 법조인이 아닌 작가로서 그 사건을 검토하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재심 과정에서 리키의 행위를 정신이상에 의한 행위로 몰아 무죄를 받아내려는 변호인들의 변론 전략은 미국의 사법 체계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이해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가해자인 리키 랭글리의 사건과 자신의 삶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러한 교차 서술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 자신도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았던 경험으로 가해자인 리키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나는 1부의 내용이 다 끝나는 부분에서 저자의 교차 서술 방식에 대해 어렴풋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딸들로부터 할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난 이후에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했던 부모들의 태도는 저자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리키 랭글리의 삶과 범죄 행위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에 관해 다양한 기록들을 통해 나름의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가족사와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다양한 심리 상태를 리키 랭글리의 이야기와 교차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왜 법조인으로서는 외면했던 이 사건에 대해서, 저자는 작가로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이 지난 후 피해자의 어머니인 로렐라이가 리키를 위해서 법정 진술한 것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법대 재학 시절 로펌에서 처음 리키의 녹화 진술을 보았을 때는 할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행위가 떠올랐고,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저자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가 죽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끔찍한 성적 학대를 당했던 자신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되면서, 단순히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리키의 삶과 정신세계를 탐구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소아 성애자’인 리키를 통해서, 저자를 비롯한 손녀들에게 성적 학대를 가했던 할아버지의 정신세계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부부 법조인이었지만, 할아버지의 명맥한 성 범죄에 대해서 침묵하고 괴로워했던 부모들의 입장은 또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법대에 진학을 결정하고, 스스로 ‘다른 집 애들이 종교 안에서 컸다면 나는 법 안에서 컸다’고 자부하였다. 하지만 리키의 진술을 녹화한 테잎을 보고 사건을 맡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했던 자신의 신념과 리키의 범죄 행위라는 현실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피해자의 어머니가 리크를 위해서 변호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사건을 법조인이 아닌 작가로서 마주치게 되었다.
법조인으로서 사형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사건을 맡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잊고 지냈지만, 저자는 시간이 흘러 이 사건과 리키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건 자체보다는 가해자인 리키와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삶의 여건 등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벌의 유무라는 결과보다는, 저자는 리키의 행위와 범죄 동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심리에 관한 자료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이해된다. 이 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피해자의 어머니 로렐라이의 행위를 ‘그녀는 그를 용서한게 아니었다. 다만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리키의 삶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입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치유의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법대를 졸업하였으면서도 법조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했으며, 오히려 작가로서 이 사건을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라 이해된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법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뿐이다. 그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그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든 다음, 사람들은 그걸 진실이라고 부른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즉 '법적 진실'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다양한 기록들과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서 채울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그렇다면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라는 부제는 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 역시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오직 기록과 관련 인물들의 진술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되었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임.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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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심하면 뉴스화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응급실에서 의사를 폭행하거나,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장면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강력한 처벌을 원하지만 대개는 주취감경으로 인해 경미한 처벌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한결같이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누가 강제로 먹인 술도 아니고, 스스로가 좋아서 마신 술임에도 말이다. 음주운전 역시 마찬가지 일 경우가 많다.
#2. 간혹 폭행죄 혹은 살인죄로 기소된 자들이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풀려나거나 형을 경감 받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같은 경우에는
청와대 민원에도 등장하여 수많은 사람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거나
혹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면 그것을 이유로 처벌을 경감 받기 일쑤다. 그것이 과연 사법정의에 맞는
것인지 의아할 때가 많다.
사형제도와 관련하여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형제도는 폐지되거나 사라진지 오래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사형이 10년이상 집행되지 않으면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형제도가 존속하지만 1997년이후 집행되지 않았다고 하니 실질적 사형폐지국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각 개인마다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단 조건이 있다. 감형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강제로 뺏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죽는 것으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범죄를 저지르고 주취감경을 받거나 심신미약을 이유로 형을 경감 받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리뷰를 쓰면서 범죄와 법에 대해 이런저런
사설이 길었던 것은 이 책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를 읽고서
감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소아성애자의 살인범죄에 대한 재판기록이자 저자가 어렸을 때 외조부에게 당한
성추행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긴 여정을 그린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인간의 범죄와 그것을 심판하는
사법정의가 현실이라는 영역과 겹쳐질 때 과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법은
때로는 인간이 생각하기에 비이성적이고 편파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하버드 법대 대학원 재학당시
루이지애나의 한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아동살해범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여섯 살 난 아이 제러미를
목 졸라 죽인 리키 랭글리라는 죄수에 대한 범죄내용과 재판기록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변호사인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확고한 사형 반대자였다. 인턴으로 처음 출근한 날 리키의 범행자백 테이프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일이 생각난 그녀는 그 남자가 죽기를 바랬다. 그래서, 법조인이 되겠다고 법대에 들어갔지만
학교를 졸업하고서 법을 떠났다. 사형을 반대하는 마음이 원동력이 되어 법대에 진학했는데 그 남자가 죽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특정범죄가 자신의 개인의 일이 되자 마자 감정이 변하는데 어떻게
신념을 위해 싸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고 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재판과정, 그리고
유년시절 외조부에게 당한 성추행과 그것을 알고도 묵인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는 가운데, 저자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가 아이들이 믿고 따르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일상에서 비근하게 반복되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범죄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범죄자인 리키의 성장과정과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서 풀어나간다.
소아성애자인 리키는 제러미를 죽인 살인범으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9년후 재심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된다. 저자가
리키를 알게 된 것은 바로 종신형으로 감형된 직후였다. 이후 그녀는 10년도
넘게 리키의 이야기를 끌어안게 된다. 방대한 사건기록과 재판기록 모두를 조사하다가 현실은 증거물이 말해주는
것보다 더 복잡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거와 마주친다. 결국 그녀는 리키의 삶 전체를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삶을
엿본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 부모와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속에 묻어둔 고통과 내밀한 곳에 안고 있던 상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하는 저자. 그녀는 리키의
어머니 베시에게서 그리고 리키를 용서할 수 없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고 증언하는 제러미의 어머니 로렐라이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읽고 있었다. 한번도 찾아가본 적 없는 외조부의 묘지를 찾은 그녀. 그녀가 기나긴
고통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고서 생각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주취나 심신미약이 형을 경감할 때 사람들이 분노하듯, 나 역시 법은
행위만을 가지고서 판단해야지 범죄를 저지른 인간의 살아온 과거와 배경을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살아온 과거와 배경이 그 사람의 범죄를 정당화시켜 주어서도 안되고,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얽혔는지도 모르겠다. 법이 과연 현실에서 일어난 진실을 모두 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법과 현실에 대한 생각들을 떠나서 저자가 리키의 삶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엿보며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은 감동으로 남는다. 여운이 오래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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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로서의 몸The fact of a body. 하지만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p. 379)
이 책의 원제는 바로 ‘팩트로서의 몸The fact of a body’이다. 한국에서는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실 아이러니하다. 저자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의 ‘기억’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의문은 많은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풀린다.
이 이야기에 내가 끌린 이유는 공백 때문이었다. 이상한 캄캄함, 이상한 기억상실이 때때로 나를 급습했다. 나는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어떤 것이 있음을 그래서 알았다. 그런 공백의 경험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곳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p. 325)
이 책은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가 가장 피하고 싶은 곳을 직시하고 쓴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혹 정말 기억상실이라 할지라도 몸이 기억하기에 외면할 수 없다. 그녀는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잘라내고 싶다. 여전히 그 기억에서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매여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사람은 자기를 자기로 만든 경험을 지니고 다닌다.(p. 492) 그렇기에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은 핵심을 건드리면서도 반어적이다. 더불어 기억하지 못한다며 침묵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외침이기도 하다.(읽다 보면 처음에 나왔던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라는 문구가 얼마나 예사롭지 않은지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할 무렵 나는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남자 때문에 내가 글을 쓰게 됐다고 생각했다. 리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서 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로렐라이 때문에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p. 134~ 135)
잠깐 리키에 대해 설명하자면 소아 성애자로 여섯 살 제러미 길로리를 죽였다.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의 할아버지 역시 소아 성애자로,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손녀들을 추행했다. 굳이 이들을 이해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해를 하게 되면 사람을 보는 관점이 확연히 달라진다. 로렐라이는 제러미 길로리의 엄마다. 리키로 인해 아들이 죽었지만,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부 알게 되면서 배심원단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아이가 질렀을 단발마의 비명이 제 귀에 쟁쟁합니다만, 마찬가지로 저는, 리키 랭글리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비명 또한 귀에 들립니다.” 그녀가 편을 들어주는 쪽은 리키였다. 그녀는 리키를 살리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가 법정에서 한 말을 읽었다. 내게 보이는 건 할아버지 손을 손가락으로 감싸주던 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손의 무게를 당신 손 안에서 가늠했다. 아버지가 그 노인을 잡고 부축해서 차에 태운 뒤 다리 건너편으로 데려왔다. 할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다시 데려왔다.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이해해야만 했다. (p. 136)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결국 이해에 관한 책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 과거에 대한 이해, 가만 보면 이해할 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과거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텍스트의 행간을 읽으려고 애썼다. (p. 95)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는 자신뿐만 아니라, 리키, 자신의 할아버지의 과거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철저하게 기록을 기반으로 하는 상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기초 자료로 삼았던 문서들을 참고하면서, 내가 없던 사실을 만들거나 있던 사실을 변경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과거의 기록이라는 뼈대에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여러 겹의 상상을 펼쳐 넣었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참고 자료에 명확하게 밝혔다. 어떤 경우든 이 책의 내용은 기존 사실들을 내가 해석하고 다듬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보려는 시도의 결과다. 그런 연유로, 이 책은 과거에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이다. 동시에 과거의 일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책이다. 나아가 이 책은 살인에 대한 책이고 내 가족에 대한 책이자 그 살인 사건 때문에 삶에 영향을 입은 또 다른 가족들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가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과거를, 또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대한 책이다. 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만든다. (p. 15 원본 자료에 대하여)
이해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랑이다. 용서나 화해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고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는 말한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이해를 전제로 하는 것 같다. 물론 사랑을 전제로 이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제러미가 입고 있던 옷들, 이 모든 증거물에는 각각 사연이 있었다. 증거라는 것들을 모아놓으면 삶이었다. 그녀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삶. (p. 126)
그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목도한다. 이 책에서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가만히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이해해야만 했다.”, 라는 문장을 들여다보자.(p. 136) 전체적으로 문장이 훌륭해서 여러모로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고로 그녀를, 그녀가 이해한 것을 이해해 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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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정체성을 되찾는 이야기다. 저자 알렉산드리아와 가해자 리키가 어릴 때 받은 학대의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열두 살때까지도 침대에 오줌을 쌌다. 침대가 축축하게 젖으면 누구도 자신을 찾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할아버지는 자신을 무릎 위에 앉히고 입을 맞추고 몸을 만졌다. 쌍동이 오빠 앤디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로렐라이는 리키에 의해 살해된 제레미의 엄마였다. 그녀는 재판정에서 리키가 사형 선고를 받을 때
재판정에 가지 않았다. 대신 길 건너 모텔 방에 앉아서 기다렸다. 오빠 리처드가 그녀에게 재판 결과를 알려주었다. 다
끝났어.
제레미의 엄마는 리키를 살리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알렉산드리아는 할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5년간
성추행한 사실을 떠올렸다. 로렐라이는 왜 그런 걸까?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이해해야만 했다."
저자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레즈네비치(Alexandria Marzano-Lesnevich)
리키의 아버지 알시드는 어느 날 운전 중에 교각 받침대를 들이받았다. 앞 유리가 깨지면서 아들
오스카의 목이 잘렸고, 막내 딸 비키가 죽었다. 엄마 베시는 밖으로 튕겨나가 골반이 박살났다. 딸 셋은 살아남았다. 베시는 향후 30년 동안
오른쪽 다리만 서른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다리를 절단했다. 사고 후 베시는 발목부터 가슴 팎 위까지 석고를 한 채 누워 있어야 했다.
그사이 거짓말 같이 아이가 생겨 제왕절개로 분만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리키였다.
아버지가 남자아이의 머리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리키처럼 갈색 머리에 리키처럼 짙은 눈동자, 목이 잘린 주변으로 동그렇게 피가 흘러 있었다. 리키는 알았다. 남자 아이가 자기처럼 다섯 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남자 아이는 고개를 돌리더니 갈색 눈을 뜨고서 리키를 빤히 쳐다보고 웃었다.
어느 날 오후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리키는 엄마에게 그 남자아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엄마는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형 이야기를 해 주었다. 리키는 죽은 형이 자기 옆구리를 찌르는 기사와 같은 존재여서 자기는 형을 없애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홉 살이나 열살 때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추행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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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하사탕'. 이 작품은 주인공이 철로에 서서 돌진해오는 기차를 피하지 않는 장면, 그러면서 '나 돌아갈래'하고 절규하는 장면이 너무나고 강렬했다. 그리고 이렇게 그 사나이가 자살하게 되기까지 이야기를 과거로 과거로 시계바늘을 돌려 보여주고 있다. 내 생각에 '박하사탕'이 아주 빼어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내가 자살에 이르기까지를 역진적인 구성을 통해 보여준 데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과거를 더듬어가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지금의 그가 됐는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역시나 과거를 더듬어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작품인데,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과거를 동시에 더듬어가고 있었다. 소아성애자로 어린이를 살해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리키 링글리의 과거와 그의 재심을 변호하는 알렉산드리아의 과거, 현재가 교차되면서 링글리와 알렌산드리아의 상처와 고통에 다가가고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범죄인의 병력이나 심리상태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범죄인의 조현병이나 심리미약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고 그로인해 양형에서 선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에서는 '근인(近因)'을 찾아나서고 있다.근본적인 원인. 설사 범인이 극악무도한 소아성애자라고 할 지라도 그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이 범죄를 저지르는데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를 따져묻고 처벌할 때 감안하는 것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리키의 과거는 실증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서술되고, 거기에 작가다운 상상을 덧붙이고 있는데, 아주 성실하고 차분하게 자료를 검토했다. 거기에 뒷부분에서 자료부분과 상상부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법조인 작가답다고 할까.
솔직히 말하면 리키의 범죄보다는 작가의 과거가 더 충격적이었다. 소아성애자 리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애써 부정하고 묻어뒀던 끔찍한 상처를 되새기는 것. 리키의 근인만큼이나 자신을 움츠리게 하는 근인을 드러내지 않고선 결코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했던 것이리라. 소아성애자를 통해 소아성애자, 그것도 친족으로 인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자신들 돌아보는 것은 자신에겐 한없이 잔인한 일이지만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는 알렉산드로의 결연한 의지의 표방이었으리라.
주의할 점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것. 6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루이지애나나 뉴저지, 인디애나, 매사추세츠 등 그 동선과 시대를, 리키의 가족과 알렉산드로의 가족, 성장과정을 살피고 있기에 여차하면 내용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소아성애자의 리키의 과거를 왜 이리 좇는건지. 그 의도와는 달리 범인에 대한 동정을 유발하게 되고 엄벌하지 않음으로써 범죄의 심각성을 간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근인을 추적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을 줄이고, 범죄 예방,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책을 세우는 토대가 될 것이다.
사실 작가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그 부모의 대응방식도 끔찍했다. 두 사람 다 법률가였음에도 만상 사랑하는 딸이 피해를 당하고 범인이 누구인지도 그것이 중죄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을리는 없고, 그 상처는 부모나 알렉산드로의 내면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리키의 근인(近因)을 찾아나선 과정은 알렉산드로의 상처의 뿌리를 파고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사실 그녀가 할아버지를 대하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해가 됐다. 리키를 범죄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 그것도 어느 한가지로만 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등돌리지 않겠다고 손내밀겠다고.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제목은 결코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역설(逆說)이었지만, 변호사로서의 자각과 고통을 겪은 한 여성이 더 이상 과거를 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그녀가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 좋은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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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로렐라이가 전체 질문에 문을 닫아버리고 자기 아들이 추행당하지 않은 쪽으로 믿어버리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좀 더 쉽게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원했던 그녀를 내가 어떻게 나무랄 수가 있겠는가? 좀 더 깔끔한 이야기를 선택한 그녀를 내가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 본문 중에서
나는 원래도 아동범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이었다. 아동에게 위해를 가한 이들이 술이나 약 등으로 심신미약으로 풀려날 때, 너무 어이없는 법의 안전망안에서 빠져나갈 때, 넘치는 분노를 느꼈고,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음이 화가 났다.
그런 배경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나면, 몇날며칠을 잠도 들지 못했다. 나는 원래도 그렇게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아이들은 굶기고, 아프고, 힘들게 하지말자는 생각이었고 그런 취지에서 학생시절부터 적은 돈이기는 하지만 용돈을 아껴, 아이들의 분유값을 지원하는 기관에 기부를 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난 유니세프 등의 국제구호기관에서 못먹어 말라가는 아이들 광고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고 있노라면 잘먹고 잘사는 내가 마치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아져서.. 먹을 게 넘쳐나는데, 안먹어서 버리는 내가 미친여자 같아서.
임신을 확인하고, 첫번째 초음파사진을 받아나오던 나는 길에 서서 한 아동복지재단에 새 기부계좌를 열었다. 아이의 태명으로. 내 아이처럼 소중한 한 생명에게,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태명으로 시작했던 기부는 어느새 아이 이름으로 바뀌었고 진급한 덕에 금액도 조금 늘었지만 내 아이가 어른이 될때까지는 유지하자는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원래도 아동범죄를 대상으로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터라 엄마가 된 후에는 나는 아이들이 나쁜 짓을 당하는 책이나 영화, 그 어떤 것도 열어보지 않았다. 감정이입이 너무 심해서, 정신적으로 괴로울까봐.
따지고보면 이것은 위안부 배경의 영화 이후 몇년만에 보는 아동범죄 소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페이지를 펼치는 것도 힘들었고, 아동범죄를 쫒은 건지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아예 읽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의 서평단을 신청했고, 읽어야만했기에ㅡ 무겁고 힘든 시작을 했다. 그리고 끝 페이지까지, 나는 한순간도 움직이지 못한 채 책을 읽어내렸다. 정확히는 리키의 불행을 보기 위해. 귀한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벌 받는 것을 보기 위해.
이 책에는 리키와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리키는 이웃에 사는 아이를 살해하고, 성추행한 뒤
알렉산드리아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변호사로
리키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본인이 어린시절 학대를 받았기에 그렇게 길고 긴 추적의 끝에,
만약에 이게 소설이었더라면
아이가 죽었고, 성추행을 당했다.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라는 부재가 아닌
하지만 나는 분명히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인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나, 난 절대 잊지 못한다는 제목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도 절대 아이가 당한 아픔을 잊어서는 안되고, 세상도, 법조인들도 잊으면 안된다. 모두가 기억해야하고, 마음 깊이 세겨야한다. 그래야 비슷한 범죄가 쉽게 재발하지 않을테니.
그리고, 범죄자는 절대, 죽는 순간까지도 잊어서는 안된다. 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본인이 저지른 죄를 잊는다는 말인가. 매일매일, 한순간도 잊지말고 떠올라야한다. 괴로움에, 본인이 저지른 짓에 대한 괴로움에 힘겹게 눈감는 순간까지 절대 잊지말고, 수없이 되세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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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성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것인지 아님 그동안 감춰지기만 했던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오늘 읽은 이 책은 저자가 법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10년 동안 준비한 책입니다. 그 흔한 장르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은 순간 사고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책은 소아성애자이고 현재 살인자로 사형선고를 받은 리키 링글리 그리고 저자의 과거과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야기' 라는 단어가 맘에 들진 않지만 저자는 리키의 재심을 변호인으로 죄수의 현 사건의 내용보다는 어린 시절 즉 과거까지 하게됩니다. 과거 죄를 지으면 그저 심판을 내렸지만 이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기 시작했졌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리키와 저자가 성장해온 과정을 소개하고 그 와중에 저자인 알렉산드리아아 겪었던 상처...그 상처보다는 믿었던 부모로부터 외면당했던 것이 본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죠. 법조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도움은 커녕 그저 흘러버렸다는 사실이 영원히 저자를 따라 다니게 되었죠. 사형 선고를 받고 모두가 사형에 찬성했지만 피해자의 엄마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피해자의 엄마는 가해자가 죽으면 자신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가 생길거라는 말에 ..사고가 멈춰 버리게 하네요.
가해자 리키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알렉산드리아 상처를 만나게 했지만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고 마주 보겠다는 심정을 강하게 만들었답니다. 한편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상처를 더 이상 가둬 두지 않는 다는 점과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는 마약범죄 다음으로 성범죄 특히, 아동 성 범죄는 같은 범죄자 사이에서도 최악의 인간으로 본다고 하는데 국내는 이들에게 변호사를 주어 오히려 변호를 맡게 하니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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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비밀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내 주위에는 온통 말 못할 비밀뿐이었다. 할 수 있는 말 밑으로 어둠에만 속하는 울림이 있었다. 내 여동생들과 나는 지난 5년간 밤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함구했다. 그 세월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울부짖던 때도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기론 그건 낮에 부모님이 시내 사무실에서 보내는 삶과는 별개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부엌에 내려가서 맞닥뜨린 아버지가 이제는 더 이상 다정하지 않고 외려 화가 나 있더라도, 내게 혹은 삶에 화가 나 있더라도, 그리고 내게 저주를 퍼부으며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더라도, 그 모든 일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p 165 "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읽기 어려운 책이다. 거기에 분량도 적지 않다. 이는 1990년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이를 다룬 법정 공방을 그려내면서 저자 자신의 어린시절을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하면 모호함이 떠오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소설보다 분명한 사실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인가가 매우 모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소재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에는 꽤나 고약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허구가 섞여있겠지 하거나 섞였기를 기대하게 된다.
" "나는 어린 남자애를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안 그러려고 무척 애를 써도 그래요. 성적으로요." - p233 " 읽는 도중에 계속해서 리키라는 인물이 왜 아동을 대상으로 욕망하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극악스러운 범죄 뉴스를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왜?" 하고 매번 품는 의문이지만 어떤 사고와 계기로 행동과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인지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거기다 함께 다룬 어린 손녀들을 대상으로 한 할아버지의 친족성폭력 또한 그 이상의 거부감이었다. 마땅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리키의 불우했던 출생과 성장기 같은 것들을 읽으며 그게 어떤 이유가 되는지 반문했다. 할머니와 오빠 같은 다른 가족들이 알아선 안된다고 입막음을 당하는 지점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 나는 화면 속 저 남자를 구제하는 일을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저런 남자를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과거 내게 일어난 일로부터 내 이상과 내 실제가 별개로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둘은 별개여야만 했다.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스크린 속 남자를 보자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만지던 손길을 다시 느꼈고, 그래서 알았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훈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일하러 온 명분에도 불구하고, 내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리키가 죽기를 바랐다. p 311 "
아동성폭력의 피해자가 왜 가해자인 리키의 사건에 파고들었을까. 비슷한 사건은 마주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일텐데 굳이 지난 사건을 집요히 파고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극복했기 때문일까 혹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얽매여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극복과 긍정이 그 안에 자리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도구를 위해 마땅한 죄를 지은 범죄자의 삶을 동정하여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리키가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다 석방된 후로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제러미가 죽었다. 그애의 엄마인 로렐라이 마저 그를 편들어 증언했다 하더라도 그는 이미 생명을 죽였고, 또 기회만 주어진다면 능히 죽일 것이다.
더구나 로렐라이가 니키의 재판에 굳이 찾아와 사형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인상적인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마이클 샌들 교수의 강의에서 나온 질문과 비슷하다. 간략히 옮기자면 '선로에 있는 다섯 사람이 곧 다가올 기차에 치일 위기에 쳐했다. 그 앞 길목에 한 뚱뚱한 사람을 밀어 희생시키면 그로 인해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그녀가 니키의 사형을 반대했던 이유도 용서보다는 사형 집행 영장에 남을 자신의 서명이 싫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석된다. 덧붙여 할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딸에게 그 사실을 함구시켰던 부모의 결정처럼 묻어두거나, 여동생처럼 자신에게 아예 없던 일로 하기 위해서 사실을 외면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읽는 동안, 그 후에도 마음은 불편했다. 평소 범죄수사물 미드를 즐겨보는 편인데도 시각으로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범죄 장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무거움이 있는 책이었다. 우리-보편적으로-가 원하는 결말은 없지만 지독한 현실이 있고, 군상들이 존재했다. 범죄물을 좋아한다면 색다른 느낌으로 읽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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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루이지애나, 싱글맘의 외동아들이었던 여섯 살 제러미 길로리는 유치원에서 돌아와 비비총을 들고는 친구들 집으로 간다. 친구인 조이와 준은 아빠와 낚시를 하러 호수로 간 상태였고,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스물여섯 살 리키 조지프 랭글리가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소아 성애자였던 리키에 의해 제러미는 살해 당한다. 나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금까지 10년도 넘는 세월을 끌고
있다. 내가 전혀 몰랐을 수도 있는 그 이야기에는 조금씩 다르게 진술된 사실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저 자백 테이프에 해당하는 녹취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그의 또 다른 자백 녹취록도 읽었다. 내가 쓴 글보다 그가 한 말을
더 잘 알 정도였다....이 테이프 때문에 나는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반추해보게 되었다. 법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내 과거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했다. 차라리
그 테이프를 보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보다 단순하던 그 이전 시절에 머물렀더라면. p.23
![]()
저자인 알렉산드리아는 하버드 법대 재학 당시 여름방학 동안 루이지애나의 한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막 재심을 끝낸 남자의 자백 동영상을 보게 된다. 9년
전에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이번에는 배심원들이 그에게 종신형을 주었다. 그때 그녀가 그 테이프에 등장한 남자의 얼굴을 보지 않았더라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설명하는 그 남자 목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로펌에서 테이프를 본 그날 이후로 12년이 흘렀다. 그가 살해한 아이는 이미 죽었고, 그 남자는 이미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뒤처리는 벌써 전부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테이프 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을 반추해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는 20여 년에 걸쳐 진행된 리키 랭클리의 재판 과정을 10여 년 동안
추적하고 정리했다. 이 책은 90년대 미국에서 실제 벌어졌던
아동 성범죄와 법정 공방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리키의 이야기와 저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로 교차 진행되고 있다. 저자의 과거 이야기는 리키 랭글리가 제러미 길로리를 죽이기 9년 전, 그가 아직 열여덟 살이고 그녀가 다섯 살일 때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처럼 보였던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우리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했던 것이다. 그 끔찍한 일은 그녀와 그녀의 어린 동생들에게 몇 년간 지속되었고, 이후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부모는 모든 걸 알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하는 게 과연 옳았을까?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들은 말을 할아버지에게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고, 어떤 식으로도, 뭔가 잘못됐다는 표시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 대신 더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집에서 주무시고 가라고 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학대는 어느 누구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끝나버렸다. 그녀의 부모님은 기억을 마치 법률 사본처럼 조심스럽게 정리해 버렸다.
![]()
그 말뜻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나는 사형제도에 반감이 생겼다. 나는
죽음이 두려웠다. 죽음이 언니를 앗아 갔으니까. 오빠가 죽을까
봐 어른들이 두려워했으니까. 나는 죽음에 관한 악몽을 꾸니까. 어머니의
책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헌법이 희망의 문서라고 나는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사랑하는
법이 죽음을 언도할 수 있단 말인가? 법률 서적에 나오는 이유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 모든 것이 시작된 지점은 두려움이었다. 그때 그 순간부터 나는
언제나 사형제를 반대해왔다.
p.161~162
이 책은 과거에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이다. 동시에 과거의 일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그 끔찍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알렉산드리아는 어른이
되어 법을 공부하게 된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형제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가는 일을 어째서 잔인하다고,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지, 그걸 알고 싶어서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형 반대 로펌에 지원했고, 사형수 변호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방학 동안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한 남자의 자백 영상을 보게 된다. 아이들을
추행하던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화면 속 저 남자를 구제하는 일을 돕겠다고
이곳으로 왔다. 저런 남자를 돕겠다고. 그녀는 스크린 속
남자를 보며,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자신을 만지던 손길을 다시 느낀다.
과연 과거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그녀의 이상과 실제가 별개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녀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곳에 일하러 온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크린 속 그 남자, 리키가 죽기를 바랐다. 알렉산드리아는 리키의 모습에게서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녀는 이해하고 싶었다. 그녀는 제러미의 엄마 로렐라이의 행적을 추적하고, 제러미의 묘소와 리키 부모의 묘소를 찾아가고, 리키를 면회하고, 그의 재판을 직접 취재한다. 리키의 첫 재판 후 10년 뒤, 그가 받은 사형 선고가 뒤집힌다. 게다가 증인으로 등장한 죽은 제러미의 엄마는 리키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과연 리키는 나쁜 사람, 즉 죄 없는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악당인가? 아니면 평생 악마와 싸워온, 자기 자신과 싸워온, 결국 그 싸움 때문에 정신병자가 되어 한 아이를 비극적으로 죽게 만든 사람인가? 알렉산드리아는 이해하고 싶었다.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취재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이제는 당시 배심원의 평결이 달리 보인다고 말한다. 그 평결은 법리적으로는 진실이 아니지만, 삶에서는 진실일 수 있는 어떤 것을 알려준다고. 리키는 책임이 있지만 또 동시에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주어진 법에는 이런 중간 지점이 자리할 틈이 없지만, 그들이 그 틈을 만들었다고. 법 안에 새 공간을 열어서 그때까지 없던 범주를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기록의 힘이 너무나 생생한 대목들이 있다. 실제 일어난 일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사실이 상상을 초월하는 대목들이 있다.
이 책은 이 시대의 가장 참혹한 사실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럼에도 우아하고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실제 있었던 기록을
바탕으로 그려진 범죄 논픽션이지만, 법의 세계에 속해 있는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이야기'라는 방식이다. 딱딱한
법률이 아니라, 마치 소설처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과거에 등 돌리는 대신, 과거에서
도망가는 대신, 오히려 손을 내밀고 과거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여타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서사를 보여주고 있는, 정말 뛰어나고 완성도 높은 책이다. 논픽션으로서 감동적이고, 문학적으로도 아름답고 비범한 작품이다. 사실이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 우리는 이런 책을 읽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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