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0%
  • 리뷰 총점8 2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나는 이제...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나는 이제...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내용보기
20대 초반 시절, 내 마음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책을 향한 애정도 없었고 아주 가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면 펼쳐 들지 않았던, 책과 내외(?)하던 시절이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우연히 듣고 제목이 너무 와 닿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여행기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 시절만 해도 무척 비밀스러운 미지의 나라로만 비췄던 인
"나는 이제...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내용보기

 

20대 초반 시절, 내 마음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책을 향한 애정도 없었고 아주 가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면 펼쳐 들지 않았던, 책과 내외(?)하던 시절이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 우연히 듣고 제목이 너무 와 닿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여행기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 시절만 해도 무척 비밀스러운 미지의 나라로만 비췄던 인도라는 나라가 궁금했던 게 세 번째 이유라고 갖다 붙이면 될까. 그날로 당장 서점을 찾아 내 품에 고이 안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김태형 시인의 여행기가 내 눈에 띈 건 운명 같았다. 한동안 책의 홍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아.....' 말을 잇지 못할 만큼 파문이 일었고 나는 당장 예약구매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넬 것 같은 고비 사막의 여정이 궁금했고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시인의 글이라는 건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의 감성이 차갑든 뜨겁든 쓸쓸하든 따뜻하든 그 온도에 맞추면 되는 거니까. 지금 나의 온도는 너무 차가우므로 적당히 데워주고 높여준다면 고마울 일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즐기면 되는 거니까. 고비사막에서 '자신의 별을 만지다'는 의미는, 진정한 내면과 외면의 합일, 자신을 온전히 바라본 시간을 말하는 걸 테지. 어디라도 좋다. 고비사막이 아니라도 좋다. 떠나자, 나를 만나러. 바람의 영혼이 되어. 그.러.나. 지금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건 고비사막과 북극의 오로라와 내 뒷모습뿐이다.

 

갓 스무 살이 넘어 시인이 되었지만 마흔 살이 넘은 지금 그의 시집은 세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과의 소통이 두려워 꽁꽁 싸매고 감추려 한 그의 이야기가 이 책을 통해 전해진다. 타인의 시선, 칭송이 부담스러워 드러내길 거부했던 은둔자이자 방랑자의 고비 사막으로부터 온 이야기, 한 시인은 그렇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다. 어떤 이의, 누군가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 있는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그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보인다고 생각한다. 경쾌한 발걸음이든, 축 처져 내려앉은 어깨든, 종종걸음치는 모습이든 뒷모습에는 그 혹은 그녀를 나타내는 인생이 담겨있다. 부모님의 뒷모습은 짠한 슬픔을 몰고 오고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은 오지 않을 이별에 괜히 쓸쓸함이 묻어나고 친구의 뒷모습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실어온다. 김태형 시인의 뒷모습은 고비사막으로부터의 자신을 나에게 보여준다.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걷는다는 말이 있다. 사막과 낙타. 뙤약볕이 내리쬐는 모래벌판과 느리나 방향을 잃지 않는 낙타의 조합은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 말했을 때 누군가는 사막이 어떻게 여행지가 될 수 있느냐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닌가 라고도 했다. 맞다. 모래벌판과 암석과 마른풀들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시인의 말을 빌자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의 길일뿐 아무것도 없다. 대신 자신을 보는 시간만이 있을 뿐. 이런 시간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가? 철저하게 고독해지는 개인적인 시간이 욕심나서인지 나는 마주하고 싶다. 사막의 밤, 게르의 천장 아래도 별들이 무수히도 쏟아지는 사막의 밤도 한 번쯤은 내 두 눈에 담고 싶다. 잃어버린 것이 있는 사람은 찾게 될 것이고 잃을 게 없는 사람은 그곳에서 보게 될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온 한낱 가녀린 영혼의 실체를.

 

 

 

 

사막은 모호한 곳이엇다. 랭보의 표현처럼 이곳에 들어서는 일은 '형이상학적 여행'이었다. 사막은 이미 그 허구가 실현된 공간이었으며,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시간들로 충만했다. -8p(작가의 말 중)

 

슬픈 단어도 문장도 아닌데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단지 구름 숭배자를 좇았을 뿐인데...초원이라는 단어를 눈에 담았을 뿐인데... 내 옷에 묻은 바람 한 자락, 사막으로 날려 보내기를 염원해서였는지 눈물은 왈칵 쏟아졌다.

 

어떤 삶은 상실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사라져 버린 것은 사라졌다는 그 사실만을 공허하게 남겨 놓는다. 삶의 결락된 부분, 그것을 대체하는 무수한 침묵들. 무엇인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내가 언덕에서 밤하늘에 떠오른 별을 그리도 오래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상실감 때문이었다.-220p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인간과 상징)라고 한 이는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 내 격정과 분노는 내 그림자가 사라진 곳에서 유일한 나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발가락이나 까딱거리듯 함부로 지껄여 대는 사악한 말들을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검은 말들을 집어치워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남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를 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115p

 

언젠가부터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 마냥 나는 그렇게 침묵했다. 피곤해서라는 그럴듯한 변명을 덧씌운 채 주변 일에서 초월한 사람이 된 것처럼 무관심한 내가 있었다.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도, 누군가를 추궁할 것도 아니었다. 지키지 못한 내 탓이었다. 믿어버린 내 탓이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내 속에서 지워진 이름은 무덤덤함을 가장한 채 눈으로 좇았던 모래사막에서 사막과 하나가 되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잊은 자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이 내게 도끼는 되어주지 못하나 보다. 깨어나는 건 뒷전이고 침묵하는, 고요의 장막 속으로 내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책은 나에게 침묵의 방의 열쇠를 건넨 것인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상의 온갖 소음과 시기와 아집과 욕망은 단절된 채 내 몸뚱어리 하나 간신히 놓일 수 있는 작고 네모난 정사각형 침묵의 방. 나는 누가 꺼내줄 때까지 그곳에서 몸을 뉘일 것이다. 아니, 누가 꺼내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니, 때를 기다릴 것이다. 열쇠 구멍을 찾을 날을.

 

지금 기다리는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이다. 지금 기다리는 사람은 말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바람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기다리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다.-160p

 

기다림은 아픔이다. 기다림은 눈물과 동의어다. 하지만 기다림은 기쁨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왜, 기다리겠는가. 생의 충만함을 깨닫기 위해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음지에 있는 사람은 양지로 올라설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기다림은 고통과 함께 오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기에 기다릴 뿐이다. 기다리는 이에게 왜 기다리느냐 물어도 '기다려야 하니까 기다릴 뿐' 그 이상의 대답은 들려오기 어렵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고 돌아온 몽골, 고비사막과의 시간은 그를 철저한 '자신'으로 거듭나게 한 시간이다. 고비사막을 다녀온 후 작가는 많이 앓았다고 했다. 누구라도 이 아름다운 모래사막과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을 눈에 담은 자들은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별빛에 눈이 멀고 사막의 고요함에 귀 먹고 외로움에 마음이 멀어 버릴 것이다. 사막에 동화된 심신은 현실의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기에 누구라도 앓고 말 테다. 시간은 사막 안에서 멈춰 있었을 테니. 내가 있는 이 자리, 이 공간, 이 시간으로 돌아오기 쉽지 않을 일인 것은 분명하다. 고열에 시달려 사경을 헤매더라도 이 별빛을 눈에 담을 수 있다면 그쯤은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고행에 마음 앓이를 하는 것이 세상의 풍파에 쓸린 생채기를 더듬는 것보다는 몇 곱절 나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너무 외로운 거야. 나에게서 가장 멀리 뒤돌아선 곳을 걷는다는 것은."-224p

 

다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난 사막으로의 여행. 별이 길잡이가 되어주어 자신의 별을 만나고 돌아온 시간. 시인의 별이자 탄생과 소멸의 별 북두칠성의 향연 속에서 나는 외로웠다. 아름다움을 찾아서, 아름다움이 되고자 했으나 황량한 사막을 마주했던 시인의 마음 앓이가 쓸쓸해 보여서 그 외로움의 크기는 더 가중됐다. 그곳에서 형체를 드러내는 거라곤 모래바람, 암석, 마른 풀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다라고 하지만 아니다. 두 번째 찾은 사막에서 그전의 자신의 흔적을 바람과 별과 모래로 확인받고 돌아온 이의 여행이었기에 그 사막에 실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사막에는 시인이 있었다. 냉소적이나 사람을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흔적이. '시인답다' 이 책을 읽으며 줄곧 따라다니던 한마디다. 시인의 에세이 답다. 그렇다는 건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다는 거다. 편하게 읽히지만은 않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사유의 세계를 엿보는 시간은 더 욕심나게 하기 때문이다. 내 뒷모습을 확인하고 싶게 하기 때문이다.

 

.... 나의 뒷모습을 봐줄 이, 누.구.신.가.

 

 

 

 

* 세상에 단 4권뿐인, 작가님이 직접 그리신 그림.

게르. 낙타. 사막의 모래. 쏟아지는 별.

작가님의 한마디는 나만 보련다.

 

 

 

 

 



w*****8 2013.01.07. 신고 공감 24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폐허에서 길어낸 시인의 노래
"폐허에서 길어낸 시인의 노래" 내용보기
별을 바라본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석양을 보았던 적은? 하다 못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것도 무척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당장 내 눈 앞에, 내가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만 눈 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고비사막을 향해 여행을 떠난 시인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가서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그는 끝없이 이어진 자갈길 2천 5백여 킬로미터를
"폐허에서 길어낸 시인의 노래" 내용보기

별을 바라본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석양을 보았던 적은하다 못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 것도 무척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당장 내 눈 앞에내가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만 눈 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고비사막을 향해 여행을 떠난 시인이 있다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가서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그는 끝없이 이어진 자갈길 2 5백여 킬로미터를 달렸다이것은 흔히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그가 지나간 길은 폐허의 잔해들로 가득했다그러나 시인은 사막이라는 황량한 폐허에서 길어낸 아름다운 문장들을 가지고 돌아왔다그것은 결코 멋진 유적이나 관광지를 보고 쓴 것이 아니었다우리가 매일 만나지만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것하늘과 별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코 석양은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내일 저무는 석양은 오늘의 석양이 아니듯이 지금 내가 보는 석양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멀리 건너다보아야 하고 저 멀리 지평선까지 애타게 부를 수밖에 없는 광활한 황무지가 붉게 타올랐다.”

 


 바로 오늘지금이 그가 만날 수 있는 풍경의 전부였기에 그는 모든 것을 보았고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그것은 오직 고비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막은 누군가에게는 어디를 가든 다 똑같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또 어떤 이에게는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공간일 수도 있다모든 것을 잃은 자는 그 자리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오랜 경전의 시편들은 그렇게 노래하고 있다그러나 사르트르는 상실감 뒤에 오로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신과 나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마주할 수 있는 곳그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시인은 왜 같은 곳을 두 번씩이나 간 걸까무언가를 찾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그러나 시인은 말한다놓고 와야 할 것을 들고 왔고후회를 남기고 왔기 때문이라고두 번째 여행에서 그는 잃어버린 자하염없이 그리워하는 자의 이야기를 노래한다당신도 나도아마 느낄 수 있으리라시인의 노래로 담은 고비의 민낯을그리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당장 지금부터처음이자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법을.



(사진_고비의 별) 

YES마니아 : 로얄 v********o 2012.12.05.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 중 누군가가 사막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사막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내용보기
자기 자신을 내어놓고 세상 만물이 되는 자. 그게 바로 시인이다. 시인이 사막에 간다면, 무엇이 되는 걸까? 입 언저리에 남아있는 텁텁한 모래가 되는 걸까. 귓가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되는 걸까. 이름만으로도 사막 한 가운데에 자리할 것 같은 햇빛머리사막도마뱀이 되는 걸까. 살아있는 매 순간이 되는 건 아닐까. 이렇게 사막의 모든 것을 자신의 온 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우리 중 누군가가 사막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내용보기

 

  자기 자신을 내어놓고 세상 만물이 되는 자. 그게 바로 시인이다. 시인이 사막에 간다면, 무엇이 되는 걸까? 입 언저리에 남아있는 텁텁한 모래가 되는 걸까. 귓가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되는 걸까. 이름만으로도 사막 한 가운데에 자리할 것 같은 햇빛머리사막도마뱀이 되는 걸까. 살아있는 매 순간이 되는 건 아닐까. 이렇게 사막의 모든 것을 자신의 온 몸으로 받아내기 위해 그는 고비사막으로 갔다.

 

 

이름이 없는 너를,

 

 

  우리가 무엇을 마주했을 때,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흔하지 않다. 자신과 함께 사는 강아지가 아니라, 자신의 마주친 순간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 그것 또한 시인이다. 그는 사막에서 유독 멀리서 빛나는 산 하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세상 모든 것과 마주한 셈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것은 그 이름으로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 될 것이다. 온 세상에 맺어 있는 것들이 단지 내 눈앞에 초라하게 사그라지고 있는 한 줌의 먼지가 될 것이다. 이름이 있지만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내가 부르려는 그 이름은 이미 특정한 것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름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었다. "

 

 

'노래하는 모래', '아름다움에 병든 자', '소행성 랭보'

 

 

  시인은 떄때로 재미있는 순간을 남기기도 한다. 누군가 사막을 죽음의 땅이나,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하는 황무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시인은 '노래하는 모래'라고 칭한다. 또 자신을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아름다움에 병든 자'라 칭한다. 사막에서 만난 목동을'소행성의 랭보'라 일컫는다.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감각을 통해 아름다움을 스스로 구한다.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던 고비 사막에서의 신비한 경험 덕분이다.

 

 

'바람의 묘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발견한 운동화 한 짝은 시인에게 방향을 잃고 잠시 주저앉은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마른 모래조차 주인이 되지 못한 신발'자신의 신발과 대비되면서 모래가 신고 있는 신발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버려진 신발 앞에서 자신의 걸음과 마주한다.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면서.

 

  일년 후 시인은 버려진 신발을 찾아 고비사막으로 돌아간다. 낙타 새끼가 죽은 곳으로 낙타 어미가 찾아가듯이. (몽골에는 사람이 죽은 뒤 간단히 땅에 묻고, 가까이에 있는 몇몇 사람만 모여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묘지는 데리고 다니는 새끼 낙타를 같이 묻어 새끼를 찾아가는 어미 낙타를 통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한다.) 어미 낙타와 같은 마음으로 시인이 신발을 찾아 사막에 다시 갔을 때, 그가 찾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막의 버려진 신발이 오히려 흩어짐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사진 한 컷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거리만큼 신발은 흩어져 있었다. 진화론에서 그랬던가. 모든 것은 흩어진다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라면, 나 역시도 지난날로부터 멀어져 흩어지는 중일까. (중략)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다. 찾고 싶었을 뿐이다. 잊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

 

  바람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것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그저 우리를 지켜보고 싶었고, 찾아보고 싶었고, 잊지 않으려 했던 것 아닐까. 시인은 사막에서 온전히 바람의 영혼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고요의 바다'

 

 

  사람들이 별똥별을 바라보는 이유가 뭘까? 별이 될 수 있었지만 되돌아와서 죽음의 여로에 기꺼이 자신이 몸을 내던지는 별똥별을. 시인은 별똥별의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별을 보고싶어 하는 간절한 그리움. 적막밖에 남지 않은 고요함. 그 고요함이 그리워 앞으로도 시인은 고비 사막을 찾을 것이다.

 

 

 

 

 

 

 

류근 시인의 말대로 그는 이미 스스로 사막이 된 자이고,

 

 

 

 

 

바람이 되어 별을 만져 본,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막의 황량함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순수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h******6 2012.12.04. 신고 공감 5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길을 벗어나기. 시인이 여행한 사막 이야기.
"길을 벗어나기. 시인이 여행한 사막 이야기." 내용보기
어제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점심 무렵에 당도한 초원에서처럼 내게 잠시 안식이 찾아왔다. 그 초원에서 양과 염소와 말들이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모여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어디에도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말들이 서로 바짝 모여 서로의그늘이 되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집단을 이루는 게 자연의 순리였다.그런데 오히려 무리로부터 벗어나서 안식을 얻는
"길을 벗어나기. 시인이 여행한 사막 이야기." 내용보기



어제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점심 무렵에 당도한 초원에서처럼 내게 잠시 안식이 찾아왔다. 그 초원에서 양과 염소와 말들이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모여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어디에도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말들이 서로 바짝 모여 서로의그늘이 되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렇게 집단을 이루는 게 자연의 순리였다.


그런데 오히려 무리로부터 벗어나서 안식을 얻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어제 보았던 초원의 말들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언어라는 것은 사실 나누는 것이 아닌가. 비록 새로운 언어가 기존 사회의 규율을 가르치는 암묵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느 고독한 이에게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자칫 그 언어는 소통 부재의 벽을 쌓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 새로운 언어는 초원의 말처럼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도, 그 해석 불가능의 파괴된 언어의 파편도 실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잘못 쓴 언어가 소통을 방해할 뿐, 위대한 언어는 아무리 난해하다 하더라도 읽을 수가 있다. 그때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조금 길게 인용했지만 이 부분이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서문이다. 서문에 불과한 부분이다.

김태형 시인이 자신의 고독한 사유를 언어로 나누기 위해 어떤 긴 여정을 떠났는지 알기 위해서는 꼭 이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시를 공부하는, 소설을 공부하는, 언어를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s********9 2012.12.10.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너에게...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너에게..." 내용보기
고비사막... 작가님이 떠나셨던 여행지라고 한다. 그래서 고비사막에 대해 찾아봤다. 몽골에 있는 사막이라고 한다.     예전에 제자녀석이 몽골에 잠시 자매결연한 학교로 여행을 간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었다. 그때 녀석이 이것저것 학용품을 챙기는 것을 보고 "왜 그런걸 챙겨" 했더니. "거긴 학용품이 귀하다고 해서 챙겨 주고 싶어서요"락며..마니또 친구라나..그런 것이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너에게..." 내용보기

고비사막...

작가님이 떠나셨던 여행지라고 한다.

그래서 고비사막에 대해 찾아봤다.

몽골에 있는 사막이라고 한다.

 

 

예전에 제자녀석이 몽골에 잠시 자매결연한 학교로 여행을 간다는 소릴 들은적이 있었다.

그때 녀석이 이것저것 학용품을 챙기는 것을 보고 "왜 그런걸 챙겨" 했더니. "거긴 학용품이 귀하다고 해서 챙겨 주고 싶어서요"락며..마니또 친구라나..그런 것이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녀석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이쁜 녀석이니까..

그런 녀석이 몽골에 다녀와서 더욱 어른스러워졌다는 것도 알았다.

그 아이들은 뭐든 다 알아서 한다나..

사실 가보지 않아 나도 공감은 못했지만..녀석의 반짝 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꼭 한번쯤은 여행을 가봐도 좋겠다란 생각을 했는데..

 

그런 곳을 작가님이 다녀오셨단다..

처음 작가님의 책을 폈을땐 내가 지금 산문집을 읽고 있는걸까..시집을 읽고 있는 걸까..란 의문이 들었었다..

뭔가 아주 추상적인 단어들의 조합을 읽고 있는 듯한..느낌...

첫느낌이 그랬다는거다..

계속적으로다가 그렇다는게 아니라..^^;

 

 

그래..

그렇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어느 순간..나도 그 사막에 작가님을 따라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고 있고...사막의 비바람을 맞고 있었으며..

게르의 천정을 통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고..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서글픈 울음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별에 소원도 빌어보고 싶은 듯 하다.

 

왜 떨어지는 별을 향해 소원을 비는지 안다.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별은 이렇게 떨어진다.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되지 못한 나와 당신과 바람과 황무지와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마저 한순간 별이 되어 떨어진다. 모두가 저 별의 파편을 품고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무엇인가 떨어진 것이 있다면, 다 타고도 남은 그 무엇이 있다면 당신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간절히 소원하는 한가지를 이젠 절대 이룰 수 없지만..왠지 위의 말을 읽고 있으면..

그 떨어지는 별에 그 소원을 빌면 꼭 이뤄질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 말이 가슴에 확 와 박혔다...

이제 원해도 부를 수 없는...

 

유난히 하늘사진이 많았다.

밤하늘..그리고 낮의 하늘...

개인적으로 밤하늘을 찍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작가님의 사진을 참 유심히 봤던 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 두컷 찍어 옮겨봤다..나머지 하늘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작가님은 처음 갔던 사막을 잊지 못하고 다시한번 그곳에 다녀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첫번째 시집을 바치셨단다..

아마도 자신이 바칠 수 있었던 가장 큰 보물이 아니었나 싶다.

첫번째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애착이 가게 마련인 것이니..

 

어쩌면 그 고행길을 다시 가신건 자신을 더 깊이 돌아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이런 좋은 만남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지 않나 싶다.

 

문득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부를 수 없었던 어떤 사람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렀던 기억도 난다.

그가..좋은 곳에서..편안하기를 바란다...

k********y 2012.12.3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외로운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
"외로운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 내용보기
작가는 좀 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외로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고비사막으로 갔다. 온 세상이 모래로 뒤덮이고 인적 드문 곳. 세상의 끝과 다름없는 데서 그는 여전히 혼자이지만 외로움을 토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고비사막을 여행한다. 땅 위에 서서 하늘의 별을 카메라에 담듯이 조금 물러서서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이는
"외로운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 내용보기

작가는 좀 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외로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고비사막으로 갔다. 온 세상이 모래로 뒤덮이고 인적 드문 곳. 세상의 끝과 다름없는 데서 그는 여전히 혼자이지만 외로움을 토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고비사막을 여행한다. 땅 위에 서서 하늘의 별을 카메라에 담듯이 조금 물러서서 자신과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살아온 시간과 인간의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의 답을 내기 위한 작가 고유의 자세이기도 하다.


왜 사막이 그곳에 있는 것인지, 어찌하여 우리는 끝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는지, 별똥별은 왜 자진하듯 한순간 떨어지고야 마는지, 노래는 무슨 이유로 검은 허공에 새파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되어 불려 나오는 것인지, 바람은 어디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고, 방랑자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던 것인지. 나는 알고 싶었다. 아름다움은 왜 그토록 슬픈 것이었는지. 어찌하여 내 눈빛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나는 구하고 싶었다. 지켜보고 싶었다. 가만히 그 앞에서 침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산문집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존재와 아름다움’이다. 이 가볍지 않은 주제는 작가의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섬세한 언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멀리 있지만 늘 들여다보고 싶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 자꾸 올려다보게 되는 고비사막 위의 별이 된다. 그동안은 일상의 모든 것과 닿아 있고 관계하고 있었다면 사막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과 조금 떨어져서 큰 그림을 그리고 맥락을 살피는 일이었다.


황무지를 걷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곳을 걷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내 정체성이고 내 살아 있음의 증거일 것이다. 말하고, 걷고, 숨 쉬는 그 모든 것만으로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주체가 되었을 때, 오직 그 순간에만 나는 존재한다. 이때 나는 내 안의 어떤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내 그림자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_ ‘내 그림자를 따라가면’ 중에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하고 사유하는 데에 목적을 둔 그의 관찰력은 힘이 세다. 그런 사유를 녹여낸 그의 문장은 깊고 넓다. 그래서 그의 첫 산문집에는 인간 내면의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파고드는 끈기와 사랑스런 집요함이 있다. 





우리는 모두 별이 되지 못한 존재들……

사람과 문화, 문학에 대한 사유를 기록으로 옮기다


9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읽게 되는 글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때 그곳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이 맑고 밝은 사막의 사람들, 바람이 쌓아 올린 모래산, 샘물이 떨어지는 바위, 모래쥐, 도마뱀, 어제보다 밝지 않아 타박 받는 별, 그늘 한 점 없는 황무지의 바람, 고비사막 사람들의 금기, 6등급의 별들을 나안으로 보는 경이로운 날의 기록에서는 그 짜릿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때때로 작가는 정제되지 않았던 존재에 관한 물음들을 수첩에 적어내려 갔고, 그 물음에 답이 되는 순간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거의 매일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하면서 사막을 횡단했다.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가 좋았다고 고백한다. 외롭고, 슬프고, 설레고, 기쁘고, 즐거운 감정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작가의 마음을 건드렸다.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는 문학, 신화, 사회, 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을 펼치면서 독자들을 문학적, 문화적 세계로 이끈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작가는 그동안 써 온 시 평론이나 시와는 다른 호흡으로 산문을 써야 했다고 고백했다. 개인의 감성과 사적인 생각의 비중을 조절해 가면서 문장을 완성하는 일은 작가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자 작업이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땅 사막이라는 곳에서 작가가 느낀 여러 종류의 아름다움을 글로 옮겨 적는 데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쏟았는지 책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막의 별 아래에서 검붉은 시간을 꺼냈다. 와인이었다. 잠시였지만 내게 느린 시간을 허락해도 되는 시간이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사사로운 것일 뿐이었지만, 와인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느린 시간을 너무나 빨리 소진해 버리고야 말았다._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지명이 최소한으로만 적혀 있다. 어느 여행서처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산문의 목적은 낯선 공간이 시인에게 미학적으로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시인으로서 세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옮기게 되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래서 독자는 때로는 함께 여행하는 동무가 되고, 때로는 이 여행을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a****k 2012.12.11.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위샘물로 두 눈을 씻고
"바위샘물로 두 눈을 씻고" 내용보기
이미 사막에 다녀온 사람과 언젠가 한 번쯤은 사막에 다녀올 사람.   그리고... 아직은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 그 모두를 위로하는 산문이다.   오랜만에 쓸쓸한 일상에서 위안이 되는 글을 만났다.   오늘 밤에는 바위샘물에 눈을 씻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싶다.     "누구나 사막의 거대한 공허 앞에서 실망감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에야 비로소 다
"바위샘물로 두 눈을 씻고" 내용보기

이미 사막에 다녀온 사람과 언젠가 한 번쯤은 사막에 다녀올 사람.

 

그리고... 아직은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 그 모두를 위로하는 산문이다.

 

오랜만에 쓸쓸한 일상에서 위안이 되는 글을 만났다.

 

오늘 밤에는 바위샘물에 눈을 씻고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고 싶다.

 

 

"누구나 사막의 거대한 공허 앞에서 실망감을 가장 먼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사막이 나타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314

 

 

 

t***q 2012.12.10.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람... 별들... 그 곳을 느끼고 싶다...
"바람... 별들... 그 곳을 느끼고 싶다..." 내용보기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로의 초대... 그것이 물리적인것이든... 정신적인것이든... 호기심으로 다가오고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것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주는것이 여행책이 아닐까...   마음의 숲... 출판사에서 이번에 나온 신간 책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제목만으로도 무엇인가 심오하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물론 다 읽어보진 못했
"바람... 별들... 그 곳을 느끼고 싶다..." 내용보기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로의 초대... 그것이 물리적인것이든... 정신적인것이든... 호기심으로 다가오고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것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주는것이 여행책이 아닐까...

 

마음의 숲... 출판사에서 이번에 나온 신간 책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 제목만으로도 무엇인가 심오하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물론 다 읽어보진 못했고... 이제 틈나는대로 읽어보려 한다... 김태형 시인이 고비사막에서의 경험들을 풀어낸거라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일것은 같으나... 글과 함께 곁들여져 있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고비사막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더없이 황량한 사막... 밤하늘에 수없이 쏟아지는 별들... 저 곳에 잠시라도 누워 있으면 자연의 거대함 속에 작은 한 인간... 내 안에 소중한것이 무엇인지를 절로 느껴질거 같다... 얼마나 자연이 때묻지 않았으면 하늘... 별들 좀 봐... 와~~~~ 감탄이 절로 난다... 근데 작가가 여행하면서 무척이나 외로웠을것도 같다... 그 외로움속에서 건져올린 보석같은 글들... 사진들... 너무 멋지다...

 

나도 저자를 따라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한... 아니... 결코 가기 쉽지 않은 고비사막을 유유히 걸어가봐야겠다... 어떤 여행이 될지 몹시도 궁금해진다^^

 

 

 

 

y***4 2012.12.10.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막여행에 대한 기대치와 상상을 상당부분 충족할 수 있었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를
"사막여행에 대한 기대치와 상상을 상당부분 충족할 수 있었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를" 내용보기
그러고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때는 나도 사막여행을 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오래 전 일이지만 후배가 중동에 갔다가 사막에도 갔었는데 정말 좋았다고 특히나 밤에 별자리는 평생 잊지 못할만큼 황홀했다는 말을 듣은 적이 있었다. 사막을 여행지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말을 듣고는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었다. 그뒤 아랍쪽 고적을 둘러본 뒤 낙타를 타고
"사막여행에 대한 기대치와 상상을 상당부분 충족할 수 있었다-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를" 내용보기

그러고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때는 나도 사막여행을 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오래 전 일이지만 후배가 중동에 갔다가 사막에도 갔었는데 정말 좋았다고 특히나 밤에 별자리는 평생 잊지 못할만큼 황홀했다는 말을 듣은 적이 있었다. 사막을 여행지로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말을 듣고는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올랐었다.

그뒤 아랍쪽 고적을 둘러본 뒤 낙타를 타고 모래 바람을 뚫고, 모래언덕을 지나는 여행을 상상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아랍쪽에 전쟁이며 내전이며 흉흉해지는 바람에 나중에 가야지하고 미뤄두다가, 어느새 내 기억 속에 사막여행을 가겠다는 꿈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렇기에 애써 시인의 고비사막 여행을 동반이라도 한 기분으로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을 읽어갔던 같다. 읽으면서 과거 상상만 했던 사막여행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간접체험할 수 있었고, 상상만 했던 사막여행에 대한 내 기대치를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은 황량한 사막과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과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지평선이며 붉게 물든 노을이며 하늘을 꽉 채우고 있는 양털같은 구름은 사진 속 모습만으로도 문명사회에서 보이는 그것과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은 더 빛났을 것이고,  네온과 불빛과 공해에 가려져있다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리라.

탁트인 사막벌판에서 펼쳐진 자연경관은 경건해보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졌다.

 

깨알같이 박혀있는 별들은 그중에서도 단연 내 시선을 빼앗았다. 저렇게 보석같이 빛나는 별들을, 저렇게 솜뭉터기처럼 포근하게 떠있는 구름을, 저렇게 곱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매일 보고 살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덜 감동을 느끼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저 별들이, 저 구름이, 저 석양을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가는데 어찌 마음이 삭막해질 수 있을까. 사악해질 수 있을까.

 

이렇게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모래 벌판에서라면 작가가 말한 것처럼 적막을 마주 대하고,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마트 폰이나 IT산업의 등장이후에 잠시도 혼자 있는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이렇게 오롯하게 혼자 자신과 조우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적막하고 고독하기까지 한 사막에서 홀로하는 시간은 문명사회에서 아등바등 살아오느라 지친 영혼을 달래고 정화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중간중간 문명생활이 그리워서 괜히 왔다고 후회할 때도 생길 것이고, 사막의 적막이 심심하고 지루해서 권태감에 시달리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막에서 겪게 될 모든 경험들을 피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 속에서 느껴진 사막의 모습은 불모(不芼)하지만 그럼에도 황폐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모래 바람이 불 때면 갇혀 있어야 하고, 또 물이 부족해서 갈증에 시달리는 때도 있을테고..여러 불편함이 존재하겠지만 그건 사막을 건너는 인간이 견뎌내야 하는 숙제라는 것을 안다.

반면 폐타이어에 빈 술병같은 문명의 잔재가 인간들의 흔적들이 눈에 띄지만 그건 사막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것 또한. 

그럼으로써 인간은 사막을 횡단할 수 있다는 강한 생명력을, 사막은 인간사의 흔적쯤은 품어줄 수 있다는 포용력을 서로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유치환의 '생명의 서'의 한 구절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지식이 독한 삶의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아마도 이 책의 필자인 김태형 시인 역시나 이런 심정으로 사막을 건넌 것은 아니었을까.

사막에 버려진 신발 한짝을 발견하고는 다른 한짝을 찾아 나선 필자의 행동은 굉장히 인상에 남았다. 멋진 자연경관이나 고색창연한 유적, 예술품이 아닌 삭막하고 고독하기 이를데 없는 이 기나긴 사막에서의 장정을 택했던 작가, 자신의 신발도 아니고, 신을 것도 아닌데 애써 찾았던 것, 그것은 이 사막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작가의 다짐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내가 후배의 그 별빛 예찬에 대한 선입견에 지나치게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나하는 의문도  들었다. 별에 사로 잡혀서  내 스스로 시야를 너무 좁혀 버려서 작가의 성찰과 많은 사색들을 제대로 좇아가지 못하는 우를 범했고, 사막을 너무 낭만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사진 속 별의 아름다움만큼은 잊혀지지 않았다. 정말 깨알같이 많은 별들, 일일히 셀 수 없는 별들이 떠 있는 사진을 보고는 그 후배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하면서 이렇게 서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별들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을 채우고 있는 볼 수 있다면, 비록 별자리 이름은 모른다해도 그렇게 별에 홀려서 기꺼이 사막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중간 문명생활이 그리워서 괜히 왔다고 후회할 때도 있을 것이고 사막의 적막에 무료하고 지루해서 권태감에 시달리기도 하겠지만, 별이 내게는 사막으로 떠나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0 2015.12.11. 신고 공감 3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외로움, 그 사무친 아름다움의 기록
"외로움, 그 사무친 아름다움의 기록" 내용보기
그리스에서 이탈리아까지, 버스를 타고 18시간을 이동한 적이 있다. 국경을 넘은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거름에 묻혔다. 취침 시각이 되자 기사는 실내등을 껐다.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르스름한 하늘빛과 간간히 있는 주택들, 그리고 숲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숲은 계속해 이어졌다. 마치 영원과도 같았던 그 순간의 푸른빛을 보고 내가 느꼈던 것은 지독한 외로움, 그것
"외로움, 그 사무친 아름다움의 기록" 내용보기

그리스에서 이탈리아까지, 버스를 타고 18시간을 이동한 적이 있다. 국경을 넘은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거름에 묻혔다. 취침 시각이 되자 기사는 실내등을 껐다. 보이는 것은 오직 푸르스름한 하늘빛과 간간히 있는 주택들, 그리고 숲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숲은 계속해 이어졌다. 마치 영원과도 같았던 그 순간의 푸른빛을 보고 내가 느꼈던 것은 지독한 외로움, 그것이었다. 터키 궁전 밑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때나, 시골 어느 기차역에 내려앉은 노을을 볼 때. 그런 외로움은 더러 찾아왔다. 오직 풍경과 나만 존재하는 느낌. 어쩌면 지독한 외로움은 지독한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풍경을 다 담기에는 나의 존재가 너무 벅차게 느껴져서. 이런 벅참을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 그리 사무치게 외롭고 하릴없이 고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순간의 절경 앞에는 깊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자가 우두커니 서 있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슬픔을 나는 마주하려고 했다.

...

아름다움을 따라가는 것이 일생이라면, 그 일생이 비로소 아름다움이라면 내가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자신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책 속에서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외로웠다. 페이지마다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 광활했다. 차마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세계가 거기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여행인 동시에 고백이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은 고독해지기에, 무언가를 물을 곳도, 대답할 곳도 결국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서 가장 멀리 뒤돌아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는 여행이었다.

 

"사라진다는 것은 매혹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매혹은 오직 그 순간에 삶을 변화시킨다. 건너가지 않아도 이미 다른 세계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돌아오지 않는 것이 여행이라고 누군가 말했으리라.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다른 삶을 꿈꾸어 본 적이 없다. 다른 삶이란 저 너머에 있지 않다. 나는 이곳에 있다. 나는 매혹되는 자다. 이곳에서 꿈꾸는 자다." - 책 속에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와 맞닿는 여행.

외로워지기가 힘든 세상 속에서, 해야 할 일들과 응답해야 할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는 당신이라면, 권한다. 외로워지기를. 그리하여 힘껏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를!

 

k******9 2012.12.1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