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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우군 도이타의 등장으로 인해 쓰미키는 정체된 사건에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심지어 노름으로 돈을 잃고 학생들의 체육복 판매와 관련해 금품수수까지 행한 나쁜 이미지의 교사에서, 다혈질이기는 하나 정도 많고 재밌는 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가 가는 곳이면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유쾌하고 화통하고 코믹하다. 또한, 뜻하지 못한 비장의 카드를 찾아내 정의로운 승리감을 맛보기도 한다.
주요 쟁점은 집단 따돌림의 존재 여부,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학교의 주의 의무 위반인가?
교감은 다 알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탈취제, 쓰레기통 속에 처박힌 갈기갈기 찢어진 체육복, 장례식 놀이를 연상시키는 책상 위에 놓인 국화꽃, 의자 위의 압정, 물로 흠뻑 젖은 온몸,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아이, 잃어버린 교과서 ... 교과서를 사기 위해 가장 소중한 물건을 담보로 빌린 만 엔 짜리 전당표, 그리고 집단 따돌림의 주모자를 교감은 알고 있었다. 담임의 거듭된 보고에도 불구하고 교감은 아무 대책도 강구하지 않고 계속 방치했다. 교원에게는 학생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할 의무가 있다. 특히 학생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중대한 악영향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관련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키 교감을 위시해 나머지 교사들 또한 그 의무를 태만히 했다.
세상은 정말 제멋대로일까? 교감은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닌 학교를 지키는 게 임무라고 떠든다. 집단 따돌림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학생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했다고 했다. 집단 따돌림을 숨기지 말라고 하면서도 이를 인정하게 되면 그 학교는 다시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비난을 면치 못하는걸까? 하지만, 집단 따돌림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것은, 교사가 아닌 바로 학생들이라는 점이다. '제2의 아이자와 아스카'는 학교를 포기하고 이사할 결심까지 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사실 확인이나, 범인 수색 등 그 어떤 것도 행하지 않고 당장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학교가 아이를 포기했는데 어떻게 부모가 학교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나둘 학교를 떠나는 것이 과연 학교를 지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아메키 교감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고, 사건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교사들이 변하면서 학생들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단 따돌림의 주모자도 내면의 상처로 가득했다. 신발을 갖다버린 아이는 슈크림 빵만 보면 토하는 버릇이 있는데, 어릴 적에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슈크림 빵이 식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책상에 쓰레기를 넣는 아이는 여자아이들 중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지만 가끔 컴퍼스로 자기 허벅지를 찌르는 버릇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괴롭히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두둔하고 있다. 하지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어린 나이에 너무 지쳐버려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거짓 증언을 하라고 부추기는 모순덩어리 부모 밑에 자란 아이의 마음은 방향을 잃고 뒤틀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공격의 화살을 다른 누군가에게 겨누게 된다. 결국 집단 따돌림의 주범은 주모자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 간의 간격이 가장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감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아이와 마주보며 함께 싸우지 못하면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단짝 친구의 집단 따돌림을 대신한 아이자와의 말은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판다. "괜찮아. 난 슬퍼해 줄 사람도 없어."
검둥이를 보고도 검다 말을 못 하고, 흰둥이를 보고도 희다고 말 못 하는 게 어른이야. 그게 바로 나라고. -P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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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자와는 첫 날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조례 시간에 혼자 교정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자와는 힘들고, 어두워 보였다. 아이자와가 물었다.
선생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다음 날, 아이자와가 죽었다. 아이자와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이라고 밀어붙이는 학교 측과 학교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변호사 쓰미키 다마코가 대립한다. 아이자와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학교를 보호하려는 교감 측 교사들과 변호사 쓰미키 사이의 술래잡기가 시작되고 추악하고 안타까운 진실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학교 문제는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골이 깊고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가 얽혀 있다. 아이자와의 담임 가지는 애초 간파치 선생(일본 드라마에서 모범 교사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인물)처럼 되고 싶었다. 아니 그것은 모든 교사가 애초에 학교에 첫 발을 내딛으며 굳게 먹는 다짐이다. 이런 가지에게 동료 교사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책 1부에 학생 생활기록부 작성을 미처 하지 못하여 다른 선생님들의 학생 생활기록부까지 모두 훔쳐, 시간을 버는 선생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교사들의 잡무로 인한 업무 피로도를 잘 표현한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교사가 학생들 가르치고, 생활지도에만 온전히 100% 열정을 쏟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 왕따 등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는, 공교육은, 교사들에게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서류 작업으로 내몰고 있다. 과다한 공문을 자제하라는 상급기관의 공문까지 내려오는 실정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학교의 실질적 지배 권력인 교감은 학교의 일은 학교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더 많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교 폭력을 은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견 설득력이 있는 이 말에 다수의 교사들이 학교 폭력을 감추기에 급급한 상황이 되고 만다. 물론 학교에 경찰력이 공공연하게 들어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는 가르침과 배움이 공존하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때마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이나 TV에서 교사들을 배척하고, 소수 교사들의 잘못을 마치 대다수 교사가 다 그런 양 호도하는 것은 그만큼 교사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다수 의식 있고, 열성적인 선생님들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학교 폭력은 이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은 교사들을 존경하지 않고, 교사들은 학생, 학부모, 관리자 눈치를 보고 있다. 책에도 나와 있듯 학교 폭력은 모두가 피해자이다. 가해자도 피해자이고, 교사도, 학부모도, 사회도 피해자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또한 가해자이기도 하다. “신은 착한 사람을 골라서 상을 주지 않는다. 나쁜 사람을 골라 벌을 주지도 않는다.” 나쁜 사람들이 다 벌을 받지는 않는 세상이다. 솔직해지자. 오히려 악한 이들 중에는 세상사에 더 약아 더욱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넘쳐나고 있다. “상처를 받으면 안 되는 건가요?” 왜 아이들이 상처를 입으면 안 되는가? 아이들도 상처 입고 상처를 받아들이며 성장해나가야 한다. 학교의 임무는 상처받지 않는 무균질의 아이들을 양산해내는 것이 아니다. 상처 입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스로 면역력을 갖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학교와 교사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사로서 참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일개 교사로서 거대한 교육 시스템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학교 폭력 등의 일련의 학교 문제들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교육부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길게 보는 교육적 안목과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학교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교육부가 변해야 하급 기관인 교육청, 학교가 변하고 그런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학부모가 변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리지 않고 훈계하고, 교육하는 데 있어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의 자식을 사랑하고 관심을 쏟는다면 학교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가 얼룩을 지우고 모든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과서가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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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은 가능한가요?’ 아이자와가 가지 선생님에게 물어본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을 듣지 못하고 죽은 아이자와다 1권에서의 중요한 내용을 적지 못하였기에 2권을 마치면서 이 내용을 꼭 적고 싶은 말이다. 과연 세상을 바꾸는 일은 가능한가? 나도 그 정답을 잘 모르겠다. 세상을 바꾸기는 무척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 한사람 힘을 모은다면 아마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바꾸는 일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우선은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것이든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고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최고로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고 주변 환경도 물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가족의 중요함을 인식해서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졌다. 쓰미키 변호사는 혼자서라도 아이자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1권의 마지막에 나타난 도이타 선생님으로 인해 힘이 난건 사실이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 아군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되는 것 같다. 2권은 주로 아이자와의 죽음으로 인해 풀어가는 형식이다. 재판이 벌어지는 과정을 책으로 나타냈으며 거기에 진술하러 나오는 사람들 위주로 이어진다. 반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는 쓰미키 변호사 그렇지만 최고로 지목을 당한 가네요시는 엄마가 화가 나서 아들을 법정에 세웠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기 아들은 아니라고 법정에 세우고 싶을까? 아직 어린 나이라면 세우지 않고 그냥 믿어야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아이자와가 죽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왕따 학생 그 학생은 야마다 가즈코라는 학생이다. 야마다는 왕따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쓰고 선생님들에게 호소를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쓰미키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야마다를 위로해주고 구해주게 된다. 안 그랬다면 야마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 2의 아이자와가 되는 건 아닌가? 야마다 가즈코의 시 ‘검은 닭’ 나는 못생겼어 검고 못생긴 닭이야. 공작새가 말했다. 너의 날개는 징그러워. 잉꼬가 말했다. 너의 냄새는 너무나 고약해. 티티새가 말했다. 너는 친구가 아니야. 새들이 말했다. 너는 새가 아니야. 너는 하늘을 날지 못하잖아. 너는 새가 아니야. 너는 하늘을 날지 못하잖아. 나는 못생겼어. 검고 못생긴 닭이야. 하지만 날 수 있어. 나도 하늘을 알 수 있어. 야마다의 시를 잘 읽어보면 정말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야마다는 아이자와하고 같은 반이었는데 왕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학을 갔다. 최고의 안건은 아이들도 물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선생님들의 태도와 마음에 달려있는 것 같다.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에 점점 변화를 가져오면서 서서히 풀려가게 된다. 선생님들도 많이 반성하고 고민했었던 것 같다. 여기서 선생님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읽는 다면 아주 많이 나올 것이다. 특히 끝까지 부정한 교감인 아메키 선생님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해를 할 것이다. 처음에 많이 미웠던 교감선생님이 2권을 읽으면서 미움은 점점 살아들었다. 그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있기도 하고 학교를 지키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괴롭힘을 당한 학생도 슬프고 괴롭힌 학생들은 다들 자기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학생을 괴롭힌 것 같다. 자기 상처가 그랬다고 치유가 될지는 모르겠다. 아마 치유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든다. 더 큰 상처를 가슴에 쌓게 되리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절친 이었던 니시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아이자와는 진정으로 친구를 위한 선택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드니 참 가슴이 아프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인 것 같다. 일본판 도가니라는 문구를 보고 책을 읽었는데 도가니에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가니를 읽은 사람과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그 뜻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도가니나, 이 책 우리들의 교과서1,2는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학교든 어디에서든 일어나지 말기를 완전 소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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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구성이 참 잘 짜여져 있는데다 점 점 이야기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드는등 다이나믹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이미 일본에서 12회짜리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우리들의 교과서]를 소설화한 것이라고 한다. 짜임새가 참 탄탄하고 등장하는 캐릭터들 또한 그 이미지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이 책은 한소녀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어 처음 가졌던 생각에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누구나 다 그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집단 따돌림을 간과하려 했던 어른들의 잘못이 제일 크다.
혼자 힘으로 의붓 딸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던 스미키에게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 처음 아이들을 맡았던 담임이 아이자와의 진실을 알고 있음을 알려준다. 처음 아이들편에서 집단따돌림의 실체를 파악하려했던 가지는 기대와는 달리 진실의 눈과 귀가 막혀 버린채 교감편에 서서 학교를 옹호하기에만 급급하다. 스미키는 혼자 학교와 상대로 법정에 서게 되지만 번번히 당하고만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진실을 밝히려 하는 사람이 있고 친구가 있어 비록 작은 힘이지만 손가락하나로 구멍을 막을수 없듯 결국엔 어느순간 한꺼번에 진실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런 학교 폭력을 다룬 책을 보면서 정답을 찾으려 한다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사는 이 사회에는 갈등과 폭력은 존재해 오고 있다. 하지만 작은 힘이지만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밝히려 하는 그 힘 때문에 폭력이 낱낱이 밝혀지고 갈등은 원만하게 해결되기도 한다. 그처럼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 또한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사실이다. 다만 그것을 학교나 학생이나 부모가 쉬쉬하고 덮으려만 할것이 아니라 폭력을 당하는 아이도 폭력을 행하는 아이도 모두 우리 아이라는 생각으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방법을 모색하게 된다면 분명 뭔가 달라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들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 고집스러운 교감선생님도 아이가 집단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수 없다는 사실에 그저 몰래 도움을 주는 선생님도 나몰라라 하는 선생님도 그리고 친구의 따돌림을 주도하거나 동참하는 아이들도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방관하는 아이들도 모두 다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진실의 종을 울려야만 한다면 그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되어야할것이다.
'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내일의 내가 슬퍼할 거야, 어제의 내가 슬퍼할 거야, 내가 살아야 할 날은 오날만이 아니야,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사는거야, 그러니까 아이자와, 죽으면 안돼, 살아야 해' --- p275
이렇게 살아보려 애썼지만 결국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할수 밖에 없었던 아이자와를 생각하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이자와를 둘러싼 죽음의 진실이 담긴 책과 이 글을 읽으며 다른 누군가는 살아가는 힘을 얻을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아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고 함께 고민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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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미키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우군이 등장했다. 가지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겠다고 쓰미키에게 등을 돌리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쓰미키에게 등장한 우군은 뒷돈을 챙기다 걸렸던 기리오카 중학교의 체육교사인 도이타였다. 믿음이 확 떨어지는 도이타 선생이 아이자와를 죽인 사람이라며 지목한 인물은 더 하다. 아이자와의 담임선생님이었던 미사와 아키코. 그녀를 찾기 위해 차비를 요구하는 도이타와 함께 해도 되는 걸까? 어느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알수가 없다. 그래도 지목한 사람을 찾아가게 되는 것또한 작은 실마리라도 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혀 선생님같지 않은 미사와 아키코를 만나면서 쓰미키는 아이자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아이자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누구에 잘못이란 말인가?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모두들 몰라야만 했던 아이자와에 이야기. 이 아이는 왜 그런 일을 당해야만 했을까? 아이자와에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언제나 내성적인 구마자와 선생님에 이야기가 슬쩍 슬쩍 들려오기 시작한다. 학교 선생님이면서 자신에 아이는 어떻게 할줄 모르는 선생님. 구마자와 선생님과 그의 딸, 사쿠라. "어쩌겠니, 하교라는 게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아빠는 누구보다도 그 생리를 잘 아니까...? " "나는... 난 아빠가 그 선생을 때려주길 바랐어."(p.131.) 선생님이기전에, 학부모이기 전에 아빠이기를 바랬던 아이. 이 또한 누구에 잘못일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쓰미키에게 아이자와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2006년 11월 10일. 아이자와의 담임교사였던 미사와 아키코는 방과 후 4층 남자 화장실 옆의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체육복을 발겨함 / 2007년 1월 15일.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있던 아이자와가 한 양동이의 물을 뒤집어 썼다. / 교사 가지는 아이자와의 사물함안에서 '죽어'라는 말이 쓰여 있는 교과서가 든 가방을 발견함. 이 많은 증거들이 아이자와의 집단 따돌림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건은 집단따돌림이냐 아니냐에 문제가 아닌 아이자와의 자살 여부로 주목이 되어진다. 이 아이는 자살을 한것일까? 단순한 실수였을까?
자살과 단순한 실수인가를 찾아내려는 변호인들과 달리, 책을 읽는 이들에겐 아이자와의 집단 따돌림에 더 관심이 간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무엇이 잘못된것일까? 이야기는 모든 정황을 알려준다. 아이자와의 친구인 니시나. 그리고 니시나와 사겼던 가네요시. 어른들에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아이들 사이에서 힘이있던 가네요시에의한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하나로.. 아니, 들춰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드러나 버린 소년이 그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아이들에 세계. 그속에서 주검만이 남아 있는 소녀. 그 소녀에 죽음을 누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중학교 아이들에 이야기를 다룬 책들 속에 나온 이야기들은 아이들에 세계를 보여주지만, 그 세계를 보고 있는 어른들은 두렵기만 하다. 물론, 책들은 이 모든 잘못이 결국은 어른의 몫이라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몸은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게 진짜 어른들은 제대로 세상을 알려줄 수 있는 걸까?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는 딸아이를 보면서 아직은 사춘기를 겪지 않는 아이에게 감사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순하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두렵다. 아이가 맞서야 하는 세상에 나는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하는지, 그냥 그 바람을 아이 스스로 이겨내게 놔둬야 하는지도 알수가 없다. 교과서적인 것은 알고 있는데, 이 모든것이 아이 앞에 놓여질 생각을 하면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많은 책들을 통해서 아이들을 이해한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내 앞에 멈춰야지만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련다. 아이에 말을 들어주는.. 반드시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는 아이에 아군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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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부터 선생들은 하나 둘씩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기 시작하고 사건이 진전되기 시작한다. 2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평화로운 학교 생활을 보내며 소원하던 선생님의 상에 가까워졌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가지 고헤이의 일상과 집단 따돌림의 구체적인 실상을 하나 둘씩 파헤치는 쓰미키의 일상이 교차되듯이 전개되는 부분이었다.
1권에서 가지는 집단따돌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자신이 제대로 아이들을 보고 있는가 고민하며 쓰미키를 돕지만 교감에게 회유되자 집단따돌림의 뚜렷한 증거를 보면서도 장난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리고 2권에서 그는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마다라는 여학생이 다음 이지메대상이 되고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사건으로 가지는 다시금 학교 문제를 인식한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 선악으로 집단따돌림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다는 점이다. 가해자는 물론 악역(?)으로 나오는 교감도 읽다보면 그녀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 사건을 공표해봐야 학생들이 갑자기 집단따돌림을 그만둘 리는 없다. 오히려 학교 평판만 나빠지는 게 아닌가? 특히 그 학생의 집안이 좋거나 성적이 뛰어나다면 더더욱 감춰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이 그런 식으로 범죄자가 되었다면 더더욱 집단 따돌림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막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을 거같은데, 실제로는 그저 사건 자체를 덮어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그 부분이 좀 이해 안 간다.
그런데 그럼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다같이 대화로? 그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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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의문이 들었던 아이자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외면하는 학교과 교사들은 사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골치아픈 일에 말려들기 싫어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철저히 가해자편에 서고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의 세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자와의 죽음에 이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그 아이의 죽음을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그 아이의 죽음의 비밀을 안다고 해도 살아있는 자들의 위안만 될 뿐 죽은아이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허무하기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관심가져줘도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기 나오는 교사들의 행동들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학창시절을 지나왔지만 교사들이 감당하기에 학생들만의 세계는 너무나 크고 벅차다. 학생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의욕이 없이 그저 자신의 업무만 하는 것 같은 교사들도 있다. 요즘은 학교라는 곳이 지식을 배우는 곳이라기 보다는 인격형성에 필요한 부분을 배우는 곳이라는 생각이다. 공부란건 학원에서 거의 하기 때문에 어느때보다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런 이야기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더 읽고 알아야 할 현실인 것 같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청소년들의 이야기이지만 전 세대가 읽고 느껴야할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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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교육감이 새로 뽑히면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다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학생의 인권을 중시하는 쪽과 교사들의 인격이 더 존중되어야 한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있는데,과연 실제로 학생과 교사들의 생각은 어떠할 지 궁금하다. 여기에 이런 학생인권조례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학교폭력 혹은 왕따로 인한 문제들도 최근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빵셔틀이나 스마트폰 셔틀같은 것들과 함께 점점 그 강도와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일을 방치하도록 내버려 둔 것은 학교 내부의 책임도 있겠지만,그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수수방관해온 우리를 포함한 관할 당국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동명 드라마로 2개월 여 동안 방송된 동명 드라마를 소설로 간추린 것인데,우리나라와 일본의 학교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학교 측의 행동에 화가 났고 막바지에는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울음이 나와버렸다. 왜 왕따를 할 수 밖에 없는지,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사연이 뜻밖의 이야기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총 12화인 원작 드라마를 단 두 권의 소설로 읽어버렸기 때문에 내용이 간추려졌을 것이라 생각했지만,이 작품만으로도 원작드라마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개인 사정으로 물러난 2학년 3반의 새 담임을 맡은 가지 고헤이는 첫 날 자신에게 진지한 질문을 하는 아이자와 아스카란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결국 제대로 된 대답 한마디 못한 채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학교에서 그 아이자와라는 소녀가 교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에서는 사고사로 처리하려 하지만 그 아이가 죽기 며칠 전 가지에게 맡긴 열쇠로 보관함을 열어보는데,그 안에는 아이자와에게 욕설과 함께 저주가 담긴 교과서를 발견하고 이 사실을 교감에게 알린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이 사실을 덮으려 하고 화가 난 가지는 아이자와의 한때 어머니였던 변호사 스미키를 찾아가고 그 이후 사건은 급격하게 커져버린다.
최근 일어난 학교 내 사건들 대부분이 뒤에서 쉬쉬하거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니던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아이들의 성적을 위해서 시험에 나오지 않는 과목 수업 시간에 시험 과목을 공부하고,잘못을 저질러도 자신의 아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한 학부모,왕따를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하나 없는 아이,원조교제를 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교사,여기에 작품 말미에 사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는 비밀을 지닌 교감의 행동 등은 정말로 이들이 진정한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화가 났다. 여기에 작품 말미에 왜 아이자와가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밝히는 부분에서는 아이자와의 진정한 우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같았으면 이런 용기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철없는 시절에 한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이후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제대로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 부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피해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피해학생의 안타까운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2012/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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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기시감마저 느낀다고 했는데 이 책이 출판된 년도는 - 우리나라말고 일본 - 2007년이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도에 출판되었지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무려(??) 5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시간의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현재 일어지고 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중,고등학생은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뉴스로 나오는 이야기를 보거나 과거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선생들을 생각하면 일본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라고 다를 바는 전혀 없다고 느껴진다. 책이 또한 소설의 형식이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을 소설로 다시 엮으며 많은 내용들이 압축되고 생략된 면이 있어 꽤 스피드하게 진행이 된다.
처음부터 소설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읽다보면 르뽀형식처럼 장황하고 세밀한 묘사보다는 즉시 다음 내용을 이어주거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구조를 쫓아가는데 있어서는 재미가 있지만 소설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런 면에서 일반 소설과는 좀 달라 좋게 볼 수도 있고 -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은 - 소설처럼 세밀한 묘사가 없어 아쉬울 수도 있다.
한 아이의 죽음으로 벌어지는 한 학교에서 벌어진 많은 것들이 감춰지고 숨겨졌고 그와 관련된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정확하게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것을 학교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가족의 문제가 먼저 내 눈에는 보였다. 제대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부모밑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이 부분을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극복해 내는 아이는 부모를 통해 함께 풀어내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는 것을 결국에는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는다.
왕따 경우에도 책에서는 작정을 하고 처음부터 누군가를 헤꼬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치부를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왕따를 저지른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수습할 기회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만다.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면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도 어쩌면 신기하다. 모든 것을 전가한 상태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 아이의 죽음이 자살인가의 여부로 시작된 이야기가 왕따문제로 번지고 학급에 있는 아이들의 가족문제로까지 번지면서 직업인으로써의 선생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소명의식을 갖고 선생님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인다. 소명보다는 직업이 먼저 일 듯 하다. 현실적으로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다만,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프로답게 자신의 일을 잘하면 대접을 받는 것처럼 선생님들도 프로답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부분이였으면 한다. 각 선생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전반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한다.
지금 청소년들이 무섭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내용이다. 사실은. 옛 문헌에도 '요즈음 젊은것들은...'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늘 어른들의 눈으로 보는 아이들은 미숙한 존재다. 자신의 기억은 포장하고 왜곡하지만 현재의 아이들은 날것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래 문제아이이거나 삐뚤어진 아이들은 없다고 본다. 사춘기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책적으로 힘들기에 어른들이 어느 정도 간섭보다는 판을 깔아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다.
이렇게 글을 쓰지만 과연 내 아이들은??? 이라는 생각이 든다. 협찬 받아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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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2 청소년폭력에방재단 홍보대사 윤도현이 자신의 청소년기 학교폭력 경험을 토대로 추천한 책!
1권을 본 후 바로 2권을 들고 순식간에 푹빠져 읽었던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2! 진짜 너무 재밌게 읽었고, 읽는동안 복잡하게 느껴지던 감정들이 하나씩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었다. 아이자와의 죽음으로 그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고군부투하는 새엄마 쓰미키와 그녀의 반대편에 서서 현실을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육당국과 학교,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선생과 학생들이라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삐뚤고 타락한 심리를 통해서 양심이 과연 있기는 한지 자꾸만 화가나서 답답했는데 결과를 예측할 수도 없던 지루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1년이라는 법정공방을 끝으로 모두가 느끼고 깨닫는 바가 커서 읽으면서도 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해지는 도서였다.
2권은 사건을 빠른 전개로 해결하면서 스릴과 함께 미스터리한 궁금증을 토대로 하나씩 풀어놓았는데 정말 양파처럼 까도까도 계속 나오고, 흥미진진한 사건해결의 열쇠들이 처음부터 등장했던 인물과 주변인물들에 의해서 해결이 되는데 추리를 하면서 읽었지만 전혀 다른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보는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손에 땀을 쥐면서 정말 같이 긴장하고 같이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콩닥콩닥하면서 읽었는데 이 책이 지금 막 출간되어진 따끈따끈한 도서기에 책 내용을 덧붙여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서 배제를 시키고 2권의 서평을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정말! 정말! 대박 강추하고 싶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에서도 폭력과 왕따가 있지만 사회에서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한 사람을 괴롭히고, 또 다음 사람이 누가 될지 걱정하면서 돌아가면서 서로가 서로를 왕따를 시키는 심리, 하루도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되는 심리, 그 방법도 점점 악랄하게 변해 정말 심각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요즘 학교폭력과 왕따는 정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이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모른척하는 그 이기심들을 보면서 정말 다들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없다고 정말 하나같이 다 문제가 있는 등장인물들의 조합이라 역겹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용기와 선생님들의 심경변화를 통해 점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미스터리한 사건의 퍼즐들이 하나둘씩 맞춰지면서 그 해답을 찾고, 서로가 반성하고 뉘우치는 감정들, 후회하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한마음이 되고, 뜻하지 않은 해결사가 갑자기 나타나면서 정말 아주 스토리가 기가 막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특히나 자신들의 마음을 눈으로라도 알아주길 바랬던 아이들이 더이상의 상처가 없는 학교생활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관심과 배려를 더해 소통하고 마음을 열고 보듬어 줄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서 노력해야한다는 교훈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지금 고통받고 있을 외로운 청소년들이 아프지말고 힘을 내서 잘 이겨내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어른들의 역활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주는 책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그 행동과 말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소중한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살인행위를 서스름없이 저지르는 양심없는 사회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보듬고 감싸주는 따뜻하고 밝은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희망하면서 <우리들의 얼룩진 교과서 1, 2>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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